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08화 (208/354)

208.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꽈아앙!

실로 무시무시한 임팩트가 이뤄졌다.

안 그래도 스윙 궤적이 큰데다가 느린 테이크백에 스윙 탑에서 숨이라도 고르듯 잠시 멈춘 것처럼 보이는 필상의 드라이브 티샷에서는 도무지 그런 스피드가 나올 것 같지가 않다.

통상적인 장타자들처럼 강력한 힘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타의 비결은 힘이 아닌 헤드 스피드다.

PGA 평균이 115마일이고 더스틴 존슨이 평균 124마일, 그리고 전성기 때 타이거의 헤드 스피드가 128마일까지 나왔다고 하는데 지금 필상은 그걸 가볍게 넘겼다.

-우와 헤드 스피드가 무려 134마일이 나왔습니다!

-생각만큼 강한 스윙은 아니군요.

일전에 138마일을 찍은 적도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지만 필상의 경우는 다른 선수들보다 더 장타가 나온다.

그 이유는 스위트 스팟에 정확히 맞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타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역시 방향성이다. 아무리 어마어마한 장타를 날려도 방향이 담보되지 못한다면 한낱 쇼에 불과한 탓이다.

필상은 비거리와 정확성을 겸비했다는 것을 알지만 타구를 쫓아가는 팬들의 시선에는 우려가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너무 좌측이 아닌가요?

-스윙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걸 봐서는 처음부터 그 방향을 노린 것 같습니다. 다만 하필이면 그 방향에 벙커가 있어서 좀 더 지켜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 벙커까지 직선거리는 392야드이고 아예 확 넘기려면 440야드는 날려야 하는데요?

말은 그렇게 해도 벙커를 넘길 것 같다는 뉘앙스를 한껏 풍기는 임 캐스터의 발언에는 오류가 있다.

보통 티샷의 비거리는 런을 포함해 계산된다. 때문에 아무리 이전에 400야드를 날렸다고 하더라도 벙커에 들어간 타구는 런이 적기 때문에 벙커를 넘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걸 잘 알지만 허 위원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필상은 언제나 상식을 파괴하는 탁월함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벙커에 들어갈 것 같아요.”

“…….”

클럽을 받으러 다가온 미사키도 그걸 염려했다.

보통 부정적인 견해는 드러내지 않지만 이미 손을 떠난 타구였고 워낙 중요한 상황이라 필상의 의도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답 없이 조용히 타구를 바라보는 필상의 시선에는 후회의 빛이 한 점도 비치지 않았다.

너무 탄도가 높고 비거리가 길어 샷의 결과를 지켜보는 가슴이 터질 무렵, 급기야 타구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곧게 뻗던 타구가 슬그머니 바람을 타기 시작하자 그동안 참고 있던 팬들의 비명이 터지기 시작했다.

“슬라이스 바람이 있었네요.”

“응. 좌측 골짜기에서 낮게 깔린 바람이 불더라고.”

“와아! 그런 것까지 파악하고 계셨어요?”

“언젠가 한 번은 장타를 날릴 것 같았거든.”

미사키는 소름이 돋았다.

사흘 내내 경기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의 연속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그런 세세한 것까지 챙긴 필상이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또한 그게 자신의 역할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반성했다.

나름 짧은 시간에 최선을 다해 야디지 북을 작성했지만 최선을 다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히네요.

-그래도 좀 위험한 시도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때마침 바람이 불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벙커에 들어가도 전에 나뭇가지에 걸려 낭패를 봤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하하. 그 내용은 나중에 직접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고요. 공식기록이 396야드가 나왔습니다. 정말 벙커에 빠질 수도 있었다는 거네요. 하하하.

임 캐스터는 허 위원의 해설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누가 뭐래도 필상이 모든 조건을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샷을 했다고 확신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타구가 멈춘 지점이 굴곡이 심해지는 구역의 좁은 페어웨이에 정확히 한가운데였기 때문이다.

“참! 미치고 환장하겠네!”

“왜요?”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아서.”

정확한 샷은 고사하고 자신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장타에 대한 미켈슨의 시기 어린 투정이었다.

물론 악의를 가진 도발이 아니기에 필상은 그저 웃고 말았다. 그러나 격려의 한마디는 놓치지 않았다.

“300야드까지는 바람이 없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알았다고!”

미켈슨은 안전하게 페어웨이를 지켰다.

어차피 2온을 노리지 않는다면 굳이 거리에 신경 쓸 필요가 없기에 필상의 장타를 보고도 침착하게 291야드를 보냈다.

“정확히 200야드 남았어요.”

“6번 아이언.”

필상은 한 클럽 길게 잡고 컨트롤 샷을 구사했다.

핀이 좌측으로 이어진 그린 벙커에 바짝 붙어 있어 핀을 직접 노리는 것이 무모해 보였으나 탄도를 높인 타구는 정확히 핀 우측 5야드 앞에 떨어졌다.

크게 튄 공이 3야드를 전진한 뒤에 슬쩍 굴러 홀컵을 향하는 순간에는 앨버트로스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비명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스핀이 걸린 듯 런이 짧았던 공은 들어가지는 않은 대신 1야드 안팎의 굉장히 쉬운 오르막 퍼팅을 남겼다.

-이글! 이걸 넣으면 공동 선두가 되는 건가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정말 귀신 뺨치는 멋진 아이언 샷이 절묘한 순간에 터졌습니다.

-그러니까 세계 랭킹 1위인 거죠. 하하하.

필상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글을 낚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승을 장담한 필상이 경기를 포기하느니 감각이 무뎌졌다느니 말이 많던 이들도 필상의 공격적인 공략이 성공하자 할 말을 잃었다.

유일한 약점이 갑작스러운 컨디션 난조라고 생각했고 마침 그런 상황이 전개되는 것 같아 여지없이 몰아붙였는데, 단 하루 만에 자신의 입이 얼마나 가벼운지 반성케 했다.

“우우!”

18번 홀은 절대 쉽지가 않다.

파 4홀이고 핀의 위치도 까다롭지 않지만 473야드의 긴 전장이 주는 부담과 좁은 페어웨이를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상은 크게 무리하지 않고도 티샷을 334야드를 날려 141야드의 비교적 만만한 세컨샷 거리를 남겼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환상적인 아이언 샷을 구사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걸린 백스핀이 내리막 경사와 만나 5야드의 애매한 퍼팅을 남겼는데, 그래도 대다수의 팬들은 넣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들어갈 것 같던 공이 홀컵을 스치며 그냥 지나가자 무거운 한숨소리가 그린 주변을 내려앉힐 것만 같았다.

“라이를 좀 더 봐야 하는 거였네!”

“너무 아까워요. 디샘보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 수 있었는데.”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고.”

아쉽지만 최종 -16을 기록한 필상은 최종 라운드에서 -8을 기록하며 자신에게 쏟아진 온갖 우려를 확실하게 날려 버렸다.

설사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비난을 거부할 수 있을 만한 성적은 거뒀다고 볼 수 있다. 누가 봐도 컨디션에 문제가 많았음에도 끝까지 우승 경쟁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디셈보를 비롯한 선두권 선수들에게 넘어갔다. 아직 경기를 끝내지 못한 8개 조의 성적이 어떤지 모두 살필 필요는 없지만 필상은 연습장이 아닌 운영 본부로 향했다.

그곳에는 모든 홀을 상세하게 비추는 카메라 영상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12로 경쟁에서 멀어진 미켈슨도 같이 따라왔다.

“-17이 2명이야?”

“토마스도 -16입니다.”

“그러게. 마지막 날인데 코스 세팅이 너무 평이했나?”

5홀을 남긴 디셈보와 4홀을 남긴 더스틴 존슨이 공동선두였고 챔피언 조의 저스틴 토마스도 공동 3위였기에 지켜보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골프는 모른다. 장갑을 벗을 때까지.

마지막 홀로 다가갈수록 긴장감이 고조되기 때문이다.

여타 인기 스포츠들은 대부분 팀 경기다. 축구는 11명, 야구는 9명의 동료가 함께 승리를 위해 달리기 때문에 부담이 분산되지만 골프는 오롯이 홀로 모든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어떻게 끝날 것 같아?”

“제가 샤워하러 가지 않고 여기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뒤집어질까?”

“글쎄요.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질 것 같습니다.”

필상의 그 말은 곧 연장전을 대비한다는 말이었다.

파 3인 15번과 파 5인 17번 홀이 그나마 버디가 가능한 홀이지만 팽팽한 긴장이 흐르기 때문에 알 수 없다. 게다가 다른 3개 홀은 절대 쉽지가 않아 그럴 것도 같았다.

“연장전이라…….”

“차라리 마지막까지 제가 주도하는 것이 낫지, 이렇게 기다리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네요.”

그런데 공동 선두는 좀처럼 타수를 잃지 않고 한 홀 한 홀 줄여 나가기 시작했다. 162만 달러를 향한 그들의 집념과 정신력에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가장 먼저 나가떨어진 선수는 토마스였다.

16번 홀에서 8야드 버디 퍼팅을 남긴 그가 반드시 넣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까지는 나무랄 데 없었다. 1타만 줄이면 공동 선두가 되니까.

하지만 너무 강했던 스트로크에 공이 홀컵을 지나 내리막을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 그의 마음도 함께 무너졌다.

우승을 향한 그간의 노력이 3퍼팅으로 귀결되자 그를 지탱하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이후 2타를 더 잃어 미켈슨과 동타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같은 시간, 17번 홀에서도 사달이 났다.

“어허! 저게 뭐지?”

“2온을 노린 것 같습니다.”

“못할 이유도 없지만 안전하게 3온 버디가 낫지 않았을까?”

“뒤따라오는 디샘보가 부담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먼저 끝낸 자네가 -16인 게 걱정된 건 아니고?”

“하하. 그럴 리가요.”

앞에는 필상이, 뒤에는 디샘보가 있는 게 다 영향을 미쳤을 것이나 오늘 샷 감이 좋은 그로서는 파 5홀이 경쟁자를 따돌릴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하지만 힘이 잔뜩 들어간 그의 드라이브 티샷은 스윙리듬부터 지나치게 빨랐다. 먼저 이동한 하체에 비해 클럽이 너무 늦게 쫓아와 우측으로 급격하게 휜 슬라이스 타구가 나왔다.

“어깨에 너무 힘이 잔뜩 들어갔어. 아마추어도 아니고 대체 왜 저러지!”

“확실한 2온을 위해 적어도 380야드는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저기서 3온이 가능할까?”

“아마도 레이 업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운이 따르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더스틴 존슨의 타구는 우측 나무숲으로 들어갔다.

울창하지는 않아 웬만하면 꺼낼 수 있지만 문제는 어느 방향으로 꺼내느냐에 따라 온 그린이 여부가 결정될 것 같았다.

실제 이동 후에 확인한 결과 안전한 방향으로 꺼내면 대략 270야드가 남는데 그린에 올리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잠시 고심한 그가 결정을 내리고 나뭇가지를 통과하는 샷을 구사했는데, 타수를 잃으면 안 되는 그의 상황에서는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

따닥!

이런 소리가 들리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나뭇가지에 연속으로 맞은 타구가 일단 숲을 벗어난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리 멀리 가지 못한 채 긴 러프에 떨어져 잘 보이지도 않았다.

“이렇게 한 명을 또 보내나?”

“하하. 4온 1퍼팅을 하면 되죠.”

“글쎄……. 그게 될까?”

미켈슨은 자신이 그런 상황을 겪는다면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할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게 닥친 상황을 아주 냉정하게 봤다.

남은 거리는 258야드, 잘만 하면 그린에 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 더 문제였다.

-이거 의외로 흥미로운 상황이 전개되네요.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은 알지만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 아니겠습니까!

-일단은 강력한 경쟁자인 더스틴이 타수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아직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필드의 물리학자라는 디샘보가 티 그라운드에서 저 모습을 보며 오히려 안도감을 느낄 것 같아 그게 좀 걱정되네요.

-아! 그렇게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만약 더스틴이 여기서 무너진다면 디샘보는 절대 무리한 샷을 할 필요가 없어 지키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산 넘어 산이로군요.

더스틴의 러프 샷은 다시 한 번 불운을 겪었다.

깊은 러프였지만 4번 아이언을 잡은 그의 샷은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무난히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던 튀어나온 나무의 잎에 슬쩍 스친 공이 생각보다 많이 휘었다.

맞은 지점에서는 대략 3도가량 꺾였으나 그린에 다다른 타구는 참혹하게도 좌측의 깊은 벙커에 박히고 말았다.

그사이 디샘보는 3온 1퍼팅 작전을 들고 나와 안전하게 295야드만 보내는 전략을 구사했다. 물론 페어웨이를 잘 지켜 우승에 한 발 더 바짝 다가갔다.

그와 반대로 더스틴은 벙커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이변을 낳으며 결국 들고 있던 샌드웨지로 바닥을 내리치는 망동을 서슴지 않았다.

“아주 디샘보를 확실하게 밀어주는군!”

“그러게요. 이거 괜히 기다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뭘.”

더스틴은 결국 5온 2퍼팅을 하며 기회의 홀을 악몽으로 끝내고 말았다. 필상보다 아래로 쳐졌지만 18번 홀에서 버디를 잡으면 아직 기회가 없지는 않다.

물론 디샘보가 이 홀에서 버디를 잡으면 -18이 되어 거의 우승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때문에 74야드를 남긴 3번째 샷이 너무도 궁금했는데 3야드 지점에 붙이면서 필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이라도 좋지 않으면 모를까, 평지에 경사도 거의 없어 집어넣을 확률이 훨씬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켈슨이 붙잡아 앉혀 일단 지켜봤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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