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98화 (198/354)

198. 자연의 이치

‘대체 왜 이러지?’

건강한 성인 남자라면 성적인 욕구는 어쩔 수 없다.

오랫동안 금욕을 했다면 더더욱.

하지만 이렇게 광기에 사로잡힐 정도는 아닌데, 잠을 청하려던 필상은 전신이 뜨겁게 달아올라 얼른 정좌하고 토납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마음을 진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토납이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미쳐 버렸거나 온몸을 뜨겁게 달군 열기에 불타 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전에도 잠시 보였던 이런 증상은 몸 안에 내재된 뇌(雷)의 기운이 낳은 부작용이었다.

“프로님. 어제 잠 안 주무셨어요?”

“왜?”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어요.”

“괜찮아.”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겨우 욕망을 잠재웠지만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었다. 수시로 뜨거운 기운이 갑자기 치솟아 몸 안에 떠돌았다.

그럴 때면 애써 토납을 해 진정시켜야 하는데 만약 스윙을 할 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정상적인 샷이 가능할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형님. 괜찮아 보이지 않아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성호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어 일단 연습에 집중했다.

결국 사토시가 말한 부작용이 나타난 것 같은데, 하필이면 양기의 폭주라는 것이 씁쓸할 뿐이었다.

그나마 토납이 일정 수준을 넘어 바람직하지 못한 기운을 억누를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통제할 수 없었다면 광기에 사로잡힌 짐승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이번 대회를 마치는 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한 시간을 들여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공 프로. 저 왔어요.”

“아! 대표님.”

이보영 대표가 날아왔다.

이 먼 데까지 굳이 올 필요 없다고 했는데 그럴 수는 없다며 한사코 달려온 것이다.

아침 식사를 함께하러 이동했는데, 그녀도 필상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본인이 한사코 괜찮다는 말에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필상과 알고 지낸 시간이 짧지 않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은 일들이 종종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상태로 경기를 하는 것이 가능한지 염려될 만큼 필상은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출산이 늦어지나 봐요.”

“네. 그렇다네요.”

예정일이 이미 며칠 지났다.

언제 소식이 들려올지 몰라 수시로 통화를 하는데 아직 산통이 없어 병원에 다녀왔는데 별 이상은 없다고 했다.

때문에 얼른 대회를 마치고 귀국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왕이면 클라레 저그를 가져가면 더 좋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경기를 무사히 마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연습을 해 봤는데 샷에 집중하면 양기가 슬슬 도지는 느낌을 받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답답한 차에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차마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입에 담기 어려워 식사를 마친 뒤 이 대표만 따로 밖으로 불러내 도움을 청했다.

“저 좀 도와주십시오.”

“무엇이든 말해 봐요.”

“대표님이 마사지를 좀 해 주세요.”

“음……. 그럼 어서 호텔로 가요.”

눈치 빠른 이보영은 자신과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할 때부터 뭔가 특별한 부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

필상의 정상적인 경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 줄 용의가 있었기에 그녀는 흔쾌히 필상과 함께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는 필상의 부탁대로 마사지를 해 줬다.

아침시간에 갑자기 두 남녀가 호텔 방으로 향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드디어 디 오픈 최종 라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공 프로의 경기는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지만 쟁쟁한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보시며 한껏 즐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결국 공동 1위까지 치고 올라왔습니다. 저는 KPGA챔피언십에서 주춤했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을 했었거든요.

-주춤했다는 말씀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준우승이면 충분히 좋은 경기를 펼친 게 맞습니다. 오히려 최만철 프로가 더 대단한 한 주를 보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기야 외국 언론들의 평가를 보니 기분은 좋더군요. 한국 선수들의 대단한 경기력에 대해 조명했는데, TPK 세 선수가 휩쓸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모두 톱 10에 들기는 했죠. 하지만 그들과도 당당히 경쟁하는 우리 선수들의 실력에 대해 찬사를 보냈더군요.

한국 여자 골프는 이미 세계 최고라고 인정받는다.

하지만 남자 골프가 그에 비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해 아쉬웠는데 필상의 등장과 더불어 새롭게 조명되었다.

한 개인의 특출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타이거와 미켈슨이 코리안 투어에 연속으로 출전하면서 한국 선수들의 기량에 세계의 전문가들이 놀랐다.

기술적인 기량이나 경기 운영, 그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았고 PGA마저 씹어 먹을 것 같던 필상의 우승도 저지할 선수가 있음을 확인시켜 줬기 때문이다.

참가하는 대회마다 휩쓸던 필상의 메이저 대회 연승 기록이 깨진 것은 안타깝지만 한국 남자 골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엄청난 골프 붐도 더불어 소개가 되었고 특히나 TPK 골프코스에 대해서도 호평이 이어졌다. 돈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광고가 된 셈이었다.

“오늘 우리 프로님 괜찮을까요?”

“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미사키. 가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지만 늘 이겨 냈거든요.”

필상이 이 대표와 어디론가 조용히 사라지자 성호와 미사키는 할 일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둘이 나란히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걱정이 태산인 미사키와는 달리 성호의 표정은 싱글벙글, 걱정이라고는 한 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진즉부터 미사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도 말고 딱 자기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다만 일본어가 딸려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기 두려웠는데 이렇게 둘이 있다 보니 슬슬 자신감이 생기고 있었다.

하지만 찬물을 끼얹는 핀잔이 주어졌다.

“성호 씨.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대체 왜 그래요!”

“네?”

“프로님이 아프신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한가할 수가 있느냐고요! 지금 웃음이 나오세요!”

“아! 그게 아니라…….”

“됐어요! 전 이렇게 무심한 사람인 줄도 모르고.”

벌떡 일어난 미사키는 그냥 카페를 나가 버렸다.

얼른 뒤따라가 변명하려 했지만 계산도 하지 않고 도망가려는 줄 알고 붙잡는 직원 때문에 아주 난감하게 되어버렸다.

얼른 계산하고 쫓아간 필상은 미사키가 호텔로 향한다는 것을 알고는 기겁했다. 필상이 이 대표와 함께 그곳으로 간 것은 자신에게만 알려 준 내용인데 어떻게 안 것인지, 혹시 오해라도 할까 싶어 부리나케 쫓아갔다.

“왜 구급차가?”

“에이. 아닐 겁니다.”

호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구급차가 입구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사키는 혹시 걱정하던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었지만 성호는 당황한 미사키를 진정시켰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필상의 모습이 보였다.

다행이라면 실려 나오는 게 아니고 누군가를 업고 나왔다.

하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업혀 나와 구급차에 실린 사람이 바로 이 대표였기 때문이다.

“얼른 병원으로 갑시다!”

필상은 구급차에 함께 오르며 그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구급대원은 필상의 탑승을 저지했다. 원래 보호자 한 명은 같이 타도 되지만 그는 필상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다른 보호자는 없습니까?”

“지금 환자가 한시가 급한데 무슨 소리입니까?”

“기절했지만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닙니다. 게다가 미스터 퍼펙트는 곧 경기에 나가야 하잖아요.”

그는 필상이 누군지, 오늘 무슨 상황인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마사지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이 대표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마침 성호와 미사키가 구급차로 다가왔다.

“형님. 병원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아! 흑돈.”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야, 내가 가야지.”

“형님. 어차피 진료와 치료는 의사가 합니다. 제가 든든하게 대표님 곁을 지킬 테니까 형은 시합에 집중하세요.”

그제야 자신의 상황이 인지된 필상은 그래도 차마 이 대표를 그냥 보내는 것이 찜찜해 자신이 가겠다고 고집했다.

그런데 정신을 잃었던 이 대표의 목소리가 들렸다.

때마침 깨어난 것이다.

“공 프로. 어서 돌아가요.”

“대표님. 괜찮습니까?”

“그럼요. 그냥 힘이 좀 없을 뿐이에요. 제가 요즘 너무 무리했나 봐요. 괜찮으니까 어서 코스로 가세요.”

“그래도…….”

“꼭 우승하세요!”

“네.”

갑자기 쓰러졌던 이보영이 깨어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래도 그녀의 곁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출산을 앞둔 아내의 곁도 지키지 못하고 이곳까지 날아온 이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대표도 깨어났기 때문에 결국 성호에게 맡기고 떠나는 구급차를 바라봐야만 했다.

“프로님은 괜찮으세요?”

“나?”

“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연습장으로 가자.”

캐묻는 미사키를 애써 무시한 필상은 코스로 향했다.

대답하기 애매했고 받아 주다 보면 한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태가 이제 한결 좋아졌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마사지를 하기 위해 이 대표의 손길이 몸에 닿는 순간부터 준동하던 양기가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에게서 불순한 기운을 잠재우는 음한 기운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바람직한 치료는 방사라는 것을 알지만 그럴 수는 없어 차선을 선택했는데 그게 먹혔다.

정작 신경 쓰지 못한 문제는 이 대표가 쓰러질 만큼 많은 기운을 한꺼번에 자신이 빨아들였다는 점이다.

‘출산하면 앞으로는 모모코와 함께 다녀야겠어!’

그나마 이번에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이 대표라도 도와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이 문제는 굉장한 타격이었다.

충분한 시간과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결국 아내와 함께 투어를 다닐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부작용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엄한 여인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차마 상상하기 싫지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파렴치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인간이 될 수는 없었다.

너무도 고마운 이능을 얻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필히 명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자연의 이치라는 것은 그러했다. 음과 양이 함께 존재하듯이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굿 샷!”

1번 홀은 416야드 파 4홀이다.

링크스 코스의 무서운 점은 타구가 홀의 경계를 벗어나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경험해 보지 못한 갈대숲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아예 공을 꺼내기도 힘든 라이에 떨어지기 때문에 한 홀에서 몇 타씩 까먹기도 한다.

환경 자체가 낯설어 안전한 공략을 해 왔다.

그러나 티 그라운드에 올라선 필상은 이번 대회 들어 처음으로 강력한 티샷을 터트렸다. 우승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담은 엄청난 장타가 터진 것이다.

-하하하. 진즉에 이렇게 날렸어야지요.

임한석 캐스터는 첫 티샷이 터지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허 해설은 타구에 집중하느라 미처 대꾸를 하지 못했다.

필상이 지금까지 왜 장타를 아껴 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려와는 달리 필상의 티샷 한 타구는 일직선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해변에서 먼 가장 안쪽에 위치한 홀이라도 바람을 무시할 수 없건만 스트레이트로 날아가는 이유는 적절한 드로우 구질을 구사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서 나온 첫 마디는 긍정적이었다.

-그린이 아주 커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앞뒤의 폭이 무려 41야드나 되죠. 온 그린 할 수 있겠죠?

-전장이 416야드입니다. 올라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칩샷을 하기 좋은 위치에 떨어질 것 같습니다.

그 말이 무색한 상황이 곧바로 펼쳐졌다.

필상이 416야드를 날릴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설마 첫 홀부터 그렇게 무리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으나 캐리 379야드를 기록한 타구는 머금은 힘을 감추지 못하고 급기야 그린까지 기어 올라갔다.

핀을 향해 곧장 굴러가는 그 놀라운 광경에 갤러리들의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한 함성이 터졌음은 물론이다.

“아!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너무 아까워요.”

“하하하. 그건 과욕이고 잘하면 이글은 할 수 있겠어.”

“고마워요. 프로님.”

“무슨 소리야?”

“건강을 되찾아 줘서요.”

“나 괜찮았었다니까. 그만해.”

무슨 소리냐며 타박하고 싶었지만 눈물까지 글썽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도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오늘 아침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 일절 함구한 것이 그녀로서는 서운할 만도 한데, 그러지는 않고 오히려 필상만 걱정한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멋진 장타였습니다.”

매킬로이와 드디어 챔피언 조에서 만났다.

챔피언 조에서 만나자던 말이 정말 실현된 것이다. 영국 출신인 그의 안방에서 펼쳐졌지만 공동 선두로 나선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홈팬들의 열렬한 응원이 그를 지탱하지만 그게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는데, 그의 멘탈이 아주 굳건하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필상의 의도하지 않은 티샷 한 방에 흔들렸다는 것을 느꼈다. 티샷을 치기 위해 올라가는 그에게서 좋지 못한 느낌이 전해져 한 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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