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79화 (179/354)

179. 최고의 코치

[TPK 훈련 프로그램. 골프의 새로운 지평을 여나?]

TPK 컴퍼니의 사업은 아직 정식 오픈되지 않았다.

첫 삽을 뜬지는 오래되었지만 아직 고객과 만날 준비가 미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알려진 골프장 운영보다 더 관심을 받는 부분이 있었다.

골프장을 열면 대박이 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쉽게 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가 뜰 줄은 필상도 미처 몰랐다.

물론 이미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디 좀 보죠.”

필상은 일단 기사부터 꼼꼼하게 읽었다.

그런데 그 근거가 바로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미국 골프팬들도 열광시킨 월등한 실력도 중요하지만 기자가 분석한 요점은 뜻밖에 모모코로부터 출발했다.

전문 코칭프로를 사사하던 모모코가 필상을 만난 뒤, 일본 여자 투어의 강자로 거듭났는데, 캐디로만 고용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적시했고 필상 이외의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결혼까지 한 둘의 신뢰가 긍정적인 힘을 냈으며 필상이 본디 실력 있는 프로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타이거와 필이 추가 증인이라잖아!”

“결코 나쁜 징조는 아니네요.”

필상을 만난 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펄펄 날고 있는 둘의 성적도 필상과 무관지 않다고 분석했다.

익명의 투어프로가 제보하길 두 선수는 필상과 함께 훈련을 하며 자신의 단점을 극복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버젓이 계약한 코치가 있지만 그들과 머리를 맞대지 않고 필상과 훈련한 뒤, 급격히 샷이 날카로워진 것도 사실이었다.

동업할 만큼 급격히 친해진 것, 필상이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 적극적으로 옹호한 행동도 그런 관계에 대한 보답이라고 표현했다.

“뭔데 그래?”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찾아서 한 번 보세요.”

이상한 낌새를 챈 타이거가 연습을 접고 다가왔다. 그는 필상이 권한 대로 얼른 관련 기사를 찾아 확인했다.

필상이나 사업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만 당사자들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먼저 그의 의견을 기다렸다.

그 와중에 미켈슨도 합류해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해졌는데 타이거의 첫 마디가 예상을 훅 벗어났다.

“사실이잖아.”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죠. 제가 뭔 대단한 코치를 했다고요?”

그 말에 대한 대답은 미켈슨이 달았다.

“사실 맞아. 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네와 훈련하는 것이 늘 즐겁지. 그리고 익명의 제보자가 누군지 짐작이 돼.”

미켈슨은 속을 감추는 성격이 아니다.

그는 한참 후배인 필상에게 조언을 듣는 게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지 않았다. 나이와 관계없이 어린애한테도 배울 게 있다면 오픈된 마인드로 다가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친한 동료 몇에게 필상의 조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들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웃고 말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타난 결과마저 부정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계획을 좀 더 앞당기는 게 좋겠어.”

타이거는 호전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당장은 입에 쓰지만 수만금을 들여 노력해도 이런 호의적인 기사를 잡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때문에 필상은 빠르게 확인절차를 밟았다.

“이 대표님. 가능한가요?”

“네. 중요한 건 사람인데 빠르게 충당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니까.”

“창립 행사 일정에 맞추려면 버거울 테니까 전체적인 공정의 속도를 두루 높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몸을 사리지는 않겠지만 그것으로는 많이 부족해요. 적어도 여기 있는 세 분은 보다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해요.”

진즉에 구상은 잡혀 있지만 가장 기본은 역시 코스 확보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남의 골프장을 이용해 자사의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단 코스 확보에 만반을 기했는데 호재를 놓칠 이유는 없었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했고 그 결과는 다음 날 아침 연습장에서 실행되었다.

챔피언 조에서 함께 경쟁할 TPK가 아침 일찍 연습장에 나타나자 티오프 시간을 기다리던 선수들의 시선이 몰렸다.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중에는 강한 거부감이 느껴지는 이들도 있었고 어제 나온 특별한 기사를 확인하고 싶은 열망을 가진 이들도 꽤 많아 보였다.

그러던 차에 미리 점찍어 두었던 선수가 눈에 띄었다. 앞서 나가 바람을 잡은 이는 미켈슨이었다.

“빌리. 네 강한 승부욕도 비바람은 뚫지 못한 모양이지?”

가만히 연습에 몰두하던 선수에게 느닷없이 던진 말치고는 상당히 도발적이었다. +4로 공동 38위에 랭크된 것은 그에게 그다지 즐거운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86년생인 빌리 호셀은 미켈슨의 호방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지 씩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우승 못 할 상황인 것은 피차일반 아닌가요?”

“하하하. 그런가?”

미켈슨이 더 이상 받아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시선이 뒤 따르던 타이거와 필상에게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필상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 그걸 느낀 필상은 미켈슨 때문에 마지못해 끼어든 것처럼 어색한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빌리.”

“최고의 코치께서 납시셨군요.”

부정적인 견해였으나 꺼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필상의 코칭 능력은 물론 TPK 사업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뭐든 경쟁하기를 즐기는 그의 근성은 이미 잘 알고 있었는데, 현역 선수가 골프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 성미에 차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필상은 이미 준비된 레퍼토리가 있었다.

“우연히 봤는데, 요즘 스윙이 이전 같지 않더군요.”

“그게 무슨 소리지?”

“정교한 아이언 샷이 네 트레이드마크 아니던가?”

기껏 한 살 차이다.

게다가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나이가 많다고 누군가를 쉽게 생각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의 거만한 대꾸는 존중할 의사가 없다는 의미였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다가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의를 지키지 않는 그의 행동을 용납할 생각은 없었다. 필상의 대꾸도 퉁명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한 언급에 그의 이마에 잔주름이 잡혔다. 찰나지만 서로의 관계에 대해 잠시 고심한 것 같았는데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괜찮다면 연습 스윙을 한 번 볼 수 있을까?”

판단의 기로였다.

대단히 어려운 제안은 아니지만 네가 뭔데 남의 스윙을 보자냐며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풍문처럼 스윙 분석에 남다른 재주가 있다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반골 기질이 강한 것인지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반응은 일단 인상부터 확 구겼다는 것이다. 적잖은 동료 선수들이 이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게 의식된 까닭이다.

대화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걸 파악한 타이거가 한발 먼저 나선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빌리. 이건 기회야.”

“기회라니요?”

“나도 사실 공 프로의 코치를 받고 많이 좋아졌거든.”

타이거의 증언은 무시할 수 없었다.

골프 황제라는 칭호를 듣던 그가 인정하는 자를 마냥 무시하기 힘들었고 솔깃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자 미켈슨이 끼어들었다.

“하하하. 빌리, 어차피 연습하던 거 아닌가? 부담스럽다면 그만 가자고.”

“아닙니다. 한 번 보죠.”

사람들의 시선이 자꾸 몰려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정황은 TPK 사단이 의도한 바였다. 기왕 기사가 난 김에 구상하고 있던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을 광고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한 것이다.

빌리는 실전 경기를 하는 것보다 더 신경이 쓰였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스윙을 감행했다. 아예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셋이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만 있자 5번의 스윙을 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타이거였다.

“언제 봐도 스윙 템포가 좋군!”

“흠 잡을 데가 없는 거 아냐?”

칭찬을 들어 기분은 좋았으나 그 둘은 필상의 판단을 기다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립 서비스라는 말이다.

은근히 화가 났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몇 초에 불과했지만 마침내 필상의 입이 열렸는데 아무도 알 수 없는 뜨끔한 말부터 꺼냈다.

“빌리. 허리가 안 좋은가 봐.”

“그걸 어떻게 알았지?”

“다운스윙을 하면서 체중을 좌측으로 밀어주는 리드미컬한 타이밍이 발군이었는데, 지금은 스윙마다 제각각이야.”

“제각각이라고?”

“본능적으로 그걸 느끼기 때문에 클럽 헤드의 속도로 조절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는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지.”

자신의 부상 정도는 가족들과 담당 의사, 그리고 전담 코치만 알고 있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말을 꺼낸 적이 없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미세한 차이를 몇 번의 스윙만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일단은 대안을 듣고 싶었다.

“그렇다 치고! 당장 어떻게 교정을 하는 게 좋을까?”

“경기를 포기하고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라는 말은 나부터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고. 굳이 당장 효과를 보고 싶다면 샤프트를 타깃 방향으로 밀지 말고 오히려 딜레이 히트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평소 자신의 지론과는 완전히 상반된 의견이다.

그는 어떻든지 스윙 시에 클럽이 뒤쳐지는 것을 질색한다.

항상 두 발 안에서 스윙이 이뤄지는 것과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일관되게 몸의 중심을 유지하려 노력해 왔다.

또한 임팩트 때 가속을 붙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스윙 시 가장 중요한 것은 털듯이 휘두르지 않고 몸의 오른쪽 전체를 릴리스 한다는 느낌으로 공에 힘을 실었고 그런 스윙으로 5승의 업적을 이뤘다.

그런데 가만히 되돌아보니 허리 부상 이후 그 리듬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는데 결국 허상이었던 것이다.

부상은 스윙에 악영향을 미쳤고 그 변화를 커버하기 위해 반응하다 보니 오히려 샷의 일관성은 중구난방이었다.

필상의 지적이 정확했던 것이다.

그러나 딜레이 히트가 답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난 클럽 헤드가 뒤쳐지는 건 받아들일 수 없어.”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지. 빌리, 네가 자신의 스윙에 대해 설명한 것을 읽은 적이 있거든. 하지만 딜레이 히트는 과도한 체중 이동이 부담스러운 네 허리에 도움이 될 거야.”

그 말을 뱉은 필상은 일어서더니 그가 들고 있던 아이언을 잡고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극단적인 딜레이 히트 스윙을 보여 줬는데 가볍게 휘둘렀는데도 타구는 쭉쭉 뻗었다.

다운스윙 때까지 코킹을 풀지 않다가 임팩트 순간에 휙 돌며 발생한 가속력이 타구에 미치는 파괴력은 딜레이 히트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에 충분해 보였다.

어차피 시도하지 않았을 뿐, 빌리도 그 원리를 알고 있기에 더 이상의 긴 얘기는 필요치 않았다.

“허리에 부담을 줄이면서도 거리를 확보할 수 있지. 다만 충분한 연습 없이 들이대는 건 좀 위험할 거야.”

“글쎄…….”

대답이 시원찮았음에도 필상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타석 쪽으로 움직였다. 미켈슨이 뒤따랐지만 타이거는 빌리와 한참 머물며 그와 스윙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연습도 진행했다.

제자리로 돌아온 미켈슨은 연습 준비를 하며 아까 나눴던 이론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너무 파격적인 시도 아닐까?”

“결과가 말해 줄 겁니다. 저 상태로 비를 맞고 어떻게 시합을 치렀는지 그게 궁금할 따름입니다.”

“부상이 생각보다 심한가?”

“제가 볼 때는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고집스러운 그가 경기를 포기하지도, 제 조언을 경기에 반영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충고를 한 거지?”

“만약을 위한 제안이었습니다. 정말 허리가 심각하게 아프면 기존 스윙대로 경기를 할 수는 없을 테니, 딜레이 히트를 연습한 것을 다행이라고 여길 겁니다.”

이후 시간은 흘렀고 경기에 나선 빌리는 필상의 예언대로 4번 홀 티샷을 하고 난 뒤, 허리에 심각한 통증을 느꼈다.

정상적인 제 스윙을 하는 것이 어려워 연거푸 미스 샷을 거듭한 빌리는 급기야 5번 홀부터 체중 이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딜레이 히트를 감행했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 생각해 봐도 오늘 그 연습을 했던 것이 시기적절했으며 자신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자신과 경쟁할 타이거와 미켈슨은 연습에 골몰하는 광경에 필상도 집중했지만 오늘 희한한 광경을 목도한 미사키는 실시간 중계방송을 체크했다.

그리고는 빌리가 필상의 조언대로 경기에 임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급기야 필상에게 그 얘기를 전했다.

“굉장히 잘하네요. 딜레이 히트.”

“그래?”

“마치 제 장기인 양 자신감이 넘쳐요. 결과도 나쁘지 않고요.”

“그러다 말 거야. 간단하지만 몸에 완전히 익히지 못하면 쌩크도 나고 뒷땅도 때리는 게 딜레이 히트거든.”

“약 주고 병을 준 건가요?”

“약을 준 거지. 병은 스스로 키운 거고.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거야.”

끝까지 확인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의 경기가 채 끝나기 전에 챔피언 조가 경기를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공 프로가 굉장히 얌전한 샷을 하네요. 날씨도 한결 좋아졌는데 말입니다.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 대회는 PGA 챔피언십입니다. 메이저 대회 우승자는 어딜 가나 그 타이틀이 붙기 때문에 일단은 쟁취하고 봐야 합니다.

-그런 깊은 뜻이 있군요. 그래도 좀 아쉽기는 하네요. 어마어마한 장타를 기대한 팬들이 많을 텐데요. 하하하!

1라운드에서 연거푸 파 4홀 1온에 성공했던 필상이 드라이브를 잡지 않고 차분하게 유틸리티 티샷을 하는 모습에 아쉬움을 표한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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