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76화 (176/354)

176. 난리가 났다.

“쫙 깔아야겠어. 7번 유틸리티!”

“탁월한 선택 같아요.”

유틸리티를 잡은 필상은 절묘한 펀치 샷을 날렸다.

마치 탑핑이 난 것처럼 낮게 깔린 공이 지면을 타고 쭉쭉 날아가는 모습이 하도 신기해 다들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애초에 바람 따위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샷임에도 타구의 비거리가 짧지 않았다. 물기에 젖은 잔디는 평소보다 저항이 적어 마치 미끄럼을 타듯 한없이 굴렀던 것이다.

그 결과 도그렉이 시작되는 지점의 좌우에 세팅된 벙커 바로 앞에 멈췄는데, 그 거리가 무려 276야드였다.

-하하하! 정말 절묘한 샷이군요!

-꼭 필요한 만큼 보내면서도 벙커를 만들어 놓은 게 무색하리만큼 방향도 정확합니다. 이미 공 프로는 바람에 대한 정답은 가지고 있는 겁니다.

-저렇게 낮은 탄도를 유지하면서도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역시 타고난 힘을 지녔기 때문이겠죠?

-힘이라기보다는 정확한 임팩트라고 봐야 합니다. 세게 치려고 하면 할수록 공을 컨트롤하기 어렵거든요. 물론 평소에 그에 대한 훈련도 끝냈다고 봐야 합니다.

-이렇게만 친다면 설사 허리케인이 몰아쳐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요.

그랬다.

다들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만큼 버거운 경기를 펼쳤으나 그 와중에도 필상은 담담하게 타수를 지켰다.

아쉬운 건 바람의 방향을 종잡기 어려워 핀을 곧장 노릴 수 없다는 점이었다. 행여나 그린 주변의 함정에 빠지면 곤란해 그냥 그린 중앙을 보고 낮게 컨트롤해야만 했다.

늘 위협적이던 롱 퍼팅도 홀컵에 잘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 홀 핀에 바짝 붙여 파 세이브를 해냈다.

어려움은 선수들만 겪는 게 아니었다. 억센 비를 막기 위해 들고 있던 팬들의 우산이 뒤집히고 꺾여 날아가는 바람에 경기가 잠시 중단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를 지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샷 감각이 최상이지만 더블보기를 2개나 기록한 타이거의 표정은 심각했다. 후반에 들어서면서 급기야 스윙 밸런스까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조치가 곧 내려질 것 같습니다. 기다려 보죠.”

플레이에 어려움을 겪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후반 들어 필상도 보기를 2개나 기록할 만큼 혼잡한 와중에 늦게 출발한 선수들의 타수는 급전직하를 거듭했다.

아직도 -17을 유지하고 있는 필상은 상관이 없지만 타이거를 비롯한 선두권 선수들의 성적이 곤두박질쳤고, 일부는 리더 보드에서 자취를 감추는 광경이 공포 영화를 연상시켰다.

“9번 아이언.”

그렇게 꾸역꾸역 14번 홀까지 이르렀다.

리더 보드에 급기야 오버파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안전한 공략을 염두에 뒀지만, 사방이 확 트인 파 3홀의 바람은 유독 강하게 휘몰아쳤다.

어드레스를 했다가 바람에 몸이 흔들려 자세를 푼 필상은 156야드에 불과한 이 홀의 느낌이 아주 불길했다.

중간에 움푹 파인 골짜기의 러프가 굉장히 길지만 그것이 문제가 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길게 심호흡을 하며 바람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얼굴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제법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섬뜩한 느낌과 함께 하늘이 쪼개질 듯 강한 벼락이 시야에 잡혔다. 그 순간, 필상은 얼른 어깨에 기대고 있던 클럽을 손에서 놨다.

꾸르르릉……. 꽈앙!

벼락 소리가 곧바로 뒤따른 걸 보면 무척 가까운 지점에서 천둥벼락이 쳤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모두의 눈을 의심케 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있었다. 바로 벼락이 14번 홀 티 박스로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필상은 이미 호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빛이 작렬하는 순간, 잽싸게 들고 있던 아이언을 손에서 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대한 창날처럼 땅을 향해 꽂힌 번개는 필상의 손을 떠난 아이언을 정확히 때렸고 근처에 있던 필상의 몸도 빛 덩어리로 만들었다.

-아악!

-어떻게! 어떻게 된 겁니까?

화면에 필상의 티샷이 중계되던 중이었다.

날씨가 엉망이지만 그래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재미는 쏠쏠했다. 최선을 다해도 애를 먹는 프로들의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흥미로웠던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는 벼락이 사람에게 떨어졌다.

그런 광경은 만화책이나 영화에서나 봤지, 실제 벼락이 사람에게 떨어지는 끔직한 장면을 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강한 충격에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들 사이로 얼른 달려온 이들이 있었다. 가장 앞선 이는 바로 타이거 우즈였다.

그는 쓰러진 필상에게 다가가 살폈다.

“공. 공. 정신 차려!”

필상의 몸에 손이 닿는 순간, 우즈는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강한 스파크가 일었기 때문에 쉽게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필상은 혼절했고 전신에서 하얀 연기가 풀풀 떠오르는 장면을 목도한 타이거의 표정도 까맣게 타들어 갔다.

도무지 필상이 살아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벼락을 맞다니!

이건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괴이한 일이었다.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던 미사키의 얼굴에는 이미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서웠던 것이다.

“타이거. 좀 도와줘요.”

“라일리. 아! 네.”

어느새 다가온 이 대표가 옆으로 꼬꾸라진 필상을 바로 눕히고 있었다. 그녀도 필상의 몸에 손이 닿는 순간 움찔했지만 하던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 용기에 힘을 얻은 타이거가 도와 필상을 똑바로 눕혔고 이 대표는 얼른 몸을 숙여 필상의 호흡부터 확인했다.

그녀는 침착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살아 있어요. 살아 있다고요!”

“정말입니까?”

“네. 여긴 구급차가 들어오기 힘들 테니까 일단 공 프로를 저 아래로 옮겨야 해요.”

“제가 업겠습니다.”

티 박스가 높아 카트를 타려고 해도 어차피 내려가야만 했다. 그래서 타이거는 필상을 조심스럽게 등에 업었다.

아래에 대기하던 카트에 옮겨 싣고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는 클럽하우스를 향해 출발했다.

그제야 경기 중단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이런 지랄 같은 경우가!”

“괜찮을 거예요. 처음도 아니니까.”

“네? 처음이 아니라고요?”

“전에도 번개를 맞은 적이 있지만 멀쩡하게 살았어요. 아무리 강한 벼락을 맞아도 우리 공 프로는 괜찮을 거라고요!”

확신을 넘어선 강력한 의지의 표현을 쏟아 냈지만 필상을 바라보는 이 대표의 눈에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그래도 그녀는 쉬지 않고 필상의 몸을 마사지했다.

-이건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 도대체 왜 이런 궂은 날씨에 경기를 지속한 겁니까!

-뇌우 경보가 없었기 때문인데, 인간이 자연을 예상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드러난 사태입니다.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요.

-아!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일단 공 프로가 혼절했을 뿐, 살아 있다는 소식이 방금 들어왔습니다. 큰 외상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말입니까? 벼락을 맞았는데요?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을 했다고 합니다. 최고의 의료진들이 치료를 할 테니까 일단 지켜보시죠.

-기도가 필요한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 * *

난리가 났다.

생방송 중계를 하던 도중에 끔찍한 사고가 터졌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사고 소식과 장면이 모든 방송을 통해 알려졌다.

필상의 안전한 회복을 비는 기원이 사방에서 쇄도했다. 골프를 즐기지 않는 이들도 워낙 충격적인 장면이었기에 하루 종일 그 얘기들이 오르내렸다.

하지만 필상의 안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매니저인 이 대표가 나서 철저하게 기자들의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말에 아무도 기웃거리지 못했다. 단 4명만 필상의 곁을 지켰는데 이 대표와 미사키, 타이거와 미켈슨이 바로 그들이었다.

“라일리는 어딜 간 거야?”

“모모코에게 전화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로 괜찮은 거야?”

“그렇다고 하잖아요. 의사가!”

미켈슨도 곧바로 따라왔지만 병실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렸었다. 그나마 이 대표가 그의 접근을 허락해 조금 전에 들어왔는데, 이미 정밀 진단이 끝난 뒤였다.

의사는 일단 전신에 옅은 화상이 있음을 확인했고 다른 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다고 소견을 밝혔다.

하지만 기다리면서 벼락 맞는 장면을 수없이 확인한 미켈슨도 쉽사리 믿기지 않았다. 피부 트러블 정도의 화상이라니!

“그런데 왜 깨어나질 않는 건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확언할 수 없다고 합니다. 워낙 강한 충격을 받아서 검사에서 나타나지 않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은 했습니다.”

“진짜 답답하군! 그렇게 무시무시한 벼락을 맞았는데 이만한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평소에 워낙 대단하고 튼튼한 친구잖아요. 라일리가 그러는데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답니다. 그때도 괜찮았다고요.”

“그렇다면 좋지만 일단 깨어나는 걸 봐야겠네.”

“그나마 클럽을 얼른 던진 게 다행인 것 같아요. 최소한 직접 벼락을 맞은 건 아니니까요.”

아이언에 떨어진 벼락의 대부분은 땅으로 흡수되었다.

그 일부가 필상에게 전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는 순간, 필상의 몸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빛이 눈부셨다.

그래도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인간의 몸은 그보다 훨씬 적은 전기 충격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저 무사하게 깨어나길 바라며 앉아 있는데 밖에 나갔던 이 대표가 들어왔다. 그녀는 곧바로 타이거와 미켈슨에게 뜬금없는 부탁의 말을 전했다.

“두 분은 내일 곧바로 경기가 속행되지 않도록 주최 측에 압력을 좀 넣어 주세요.”

“경기?”

“네. 적어도 내일 아침에는 깨어날 테지만 내일보다는 예비일인 모레가 더 나을 것 같아서요.”

“정말로 콩이 깨어날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시합도 참가할 수 있다고 보는 거야?”

“깨어나지 못해도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요. 저도 정식으로 요청할 테지만 두 분이 도와주시면 훨씬 수월할 것 같아요.”

이 대표는 다된 밥에 재가 뿌려지는 상황을 막고자 했다.

-17을 지키고 있는 필상과 공동 2위 그룹과는 무려 13타의 차이가 난다. 하지만 오늘 중단된 경기가 내일 속개될 경우, 필상이 참가하지 못하면 결국 우승은 물거품이 된다.

이 대표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타이거가 나섰다.

“라일리. 그럼 제가 일단 주최 측에 내일 경기가 속개되는지 확인부터 할 테니까 일기예보부터 확인해 보시죠.”

“아! 그게 좋겠네요.”

사실 타이거와 미켈슨은 강력한 우승 경쟁자다.

오늘 5타를 잃어 -3이 된 타이거는 공동 4위였고 6타를 잃어 -1이 된 미켈슨도 공동 7위에 올라 있었다.

만약 필상이 대회에 나서지 못하면 둘의 우승 가능성은 훌쩍 올라간다. 하지만 이 대표도 그들도 최우선은 필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승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알고 있었고 필상과의 인간적인 관계도 작용한 결과였다.

그런데 PGA 사무국은 내일 아침 일찍 오늘 못 다한 경기를 속개하고 곧이어 4라운드를 진행한다고 했다.

내일도 비바람이 거세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정해진 일정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바꿀 의사가 없다고 전했다. 타이거는 물론 미켈슨도 관련된 얘기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공 프로가 일찍 깨어나기를 바라야 하나요?”

“아닙니다. 조금 있다가 제가 밖으로 나갈 겁니다.”

“밖에는 왜요?”

“기자들이 엄청나게 몰려왔을 것 아닙니까. 저와 미켈슨이 나서서 위험한 경기를 속행하는 것에 대한 항의를 하면 팬들이 알아서 해 주지 않을까요?”

“음……. 좋은 방법이지만 그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사무국을 지나치게 압박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봤다시피 정상적이지 않은 날 선수들에게 시합을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인지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이거의 생각은 확고했다.

팬들의 사랑을 먹고사는 프로 선수라고 하더라도 위험에 내몰리는 것은 옳지 않다. 팬들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지만 실상은 주최 측의 편의를 위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대회의 주인공은 팬들도, 주최 측도 아닌 선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처럼 심각한 부상에 내몰린다는 것을 이제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수위를 어떻게 조절하는 것이 좋을지 서로 의논을 하고 있는데 엉뚱한 음성이 들려왔다.

“거……. 남의 병실에서 너무들 떠드는 거 아닙니까?”

“콩!”

필상이 깨어난 것이다.

사실은 조금 전에 정신을 차렸지만 온몸이 욱신거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상체를 세우기도 버거워 곁을 지키는 이들이 있음을 확인한 필상은 일단 운신을 위해 토납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고 조용히 누운 채로 몰입했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자청하겠다는 타이거의 말을 듣고는 더 이상 놔둘 수가 없어 일단 중단하고 불렀던 것이다.

미켈슨이 먼저 달려왔고 타이거와 이 대표, 눈물이 글썽이는 미사키도 필상의 곁으로 다가왔다.

“지금 몇 시나 됐습니까?”

“8시. 몸은 괜찮아?”

“괜찮지 않아요. 필, 이 무거운 팔은 좀 치워 주시죠.”

“아! 미안해.”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필상의 팔을 너무 꼭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또한 자신을 걱정한 행동이기에 씩 웃어 보였다.

“타이거. 일단 인터뷰는 하지 마세요. 내알 아침까지는 어떻게든 힘을 낼 테니까요.”

“그게 가능해?”

“걱정하지 말고 이제 나가들 계세요. 아니, 숙소로 돌아가 쉬세요. 내일 또 험난한 시합을 해야 하잖아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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