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71화 (171/354)

171. 지구 최고의 장타자

필상의 플레이는 불꽃처럼 빛났다.

4번 홀까지 5타를 줄이고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는지 매섭게 몰아붙였다. 1온 시도가 불가한 423야드 파 4인 5번 홀은 파를 기록하고도 버디나 다름없는 난해한 홀이었으나 386야드 6번 홀에서 또다시 1온을 시도해 성공했다.

2퍼팅 버디를 기록하고도 아쉬워하는 팬들의 반응을 보면 얼마나 필상의 플레이에 열광하는지 짐작이 됐다.

7번 홀은 502야드의 짧은 파 5 도그렉 홀이지만 높다란 나무로 인해 애초에 다른 선택이 불가한 홀이었다.

“어차피 끊어 가야 할 홀이에요.”

“최대한 우측으로 붙이면 얼마까지 보낼 수 있지?”

“기껏 쳐 봐야 310야드에요. 어차피 220야드 이상의 세컨샷에 승부를 걸어야 할 것 같아요.”

“좋아. 5번 유틸리티.”

세컨샷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멀리 보내기보다는 우측 나무에 걸리지 않게 최대한 붙이는 것이 중요했다.

때문에 필상은 20도 유틸리티를 소환했고, 위험천만했지만 나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최적의 지점에 타구를 보냈다.

“나이스 샷!”

“얼마나 남았지?”

“218야드요. 더는 줄일 수 없는 최단거리에 붙이신 거예요.”

“좋네. 일단 가서 라이부터 확인해 보자고.”

“네.”

당겨지면 러프에 빠져 2온이 불가능한 거리가 남고 밀릴 경우에는 나무에 걸려 레이 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하지만 질릴 정도로 정확한 티샷을 보낸 필상의 완벽함에 급기야 미국 중계진들도 감탄사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미스터 퍼펙트. 정말 정확한 샷을 구사하는군요.

-왜 매킬로이가 아직도 슬럼프를 벗어나지 못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화면으로 보는 저희도 숨이 막히는데 같이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WGC 멕시코 챔피언십에서 매킬로이와 정면 대결을 펼쳤던 것이 거의 4달 전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제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해 대회 출전을 자제하고 있다.

가끔 나와도 본인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성적을 거둬 세계 2위까지 올라갔던 랭킹도 어느새 9위까지 추락했다.

당시 그의 인터뷰를 기억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애써 부정했지만 오늘 필상의 파격적인 플레이에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장타자라도 380야드 안팎의 파 4홀을 연이어 1온 시도하는 경우는 없다.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상은 시도하는 족족 거의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그런 선수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5번 아이언.”

“4번으로 컨트롤을 하시죠?”

“그럼 4번 줘.”

필상은 미사키의 조언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였다.

오늘 장타가 수월하게 펼쳐져 시원한 샷을 날리고 싶었으나 그것보다는 조금 길게 잡고 컨트롤 샷을 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폭주하는 자신의 마음을 미사키가 짚어 준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필상은 그에 맞는 이미지를 그려냈고, 정확히 그린을 공략해 냈다.

-굿 샷! 전혀 무리하지는 않는군요?

-지금처럼 그린 중앙을 보는 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핀이 꽂힌 우측을 노리다 짧으면 벙커, 길면 내리막을 타고 그린을 오버하기 때문에 최상의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기야 오르막 퍼팅을 남기는 것이 낫겠네요.

-사실 라이가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볼 때는 우측으로 2컵 정도는 봐야 할 것 같은데, 한 번 지켜보시죠.

-그나저나 처음에는 곧잘 따라오던 동반자들이 5번 홀부터 갑자기 심하게 흔들리는데, 그게 오히려 공 프로의 플레이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알다시피 그런 것에 영향을 받을 선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다음 플레이를 준비할 겁니다.

필상은 가볍게 2온에 성공했지만 티샷부터 흔들린 동반자들은 3온에도 실패했다. 애꿎은 필상을 노려보는 걸 보면 그게 다 필상의 탓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그 덕에 필상은 퍼팅그린을 보다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고 예상보다 조금 더 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잔디의 결이 공이 휘는 방향으로 누워 가속이 붙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오르막인데 너무 많이 봤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홀컵으로 사라지는 공을 보며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참지 못했다.

그중에는 필상에 대해 늘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해 왔던 PGA 투어프로 출신 NBC 골프 해설가 챔블리도 포함되었다.

-우우우! 퍼팅도 기가 막히네요!

-이제 겨우 7번 홀을 마쳤는데, 벌써 8언더입니다. 이러면 우승을 장담한 그가 챔블리의 의견처럼 허황된 소리를 한 게 아니라는 건데, 아직도 본인의 의견을 수정할 의사는 없나요?

흥미롭게도 캐스터인 프랭크는 중계 도중에 입장의 변화를 보였다. 주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독설을 말리지도 부정하기도 않은 그가 필상을 고립시킨 역할에 동참한 건 사실이다.

그런 자가 느닷없이 자기는 처음부터 중립적이었다는 듯 챔블리를 반대편에 밀어붙이고 대답을 강요하자 챔블리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강한 자극을 받으면 인간은 일단 강한 거부감부터 보인다.

-하하하! 아직 72홀 중에 10분의 1도 돌지 않았습니다. 장타를 앞세워 깜짝 놀랄 기록을 보이고 있지만 빛이 있으면 늘 그림자도 있는 법입니다.

-아! 그런가요? 그래도 ‘깜빡 놀랄’ 기량을 갖춘 것은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음……. PGA 2승을 거둔 투어프로입니다. 우승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돌이켜보면 그가 터무니없이 무능력한 골퍼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미스터 퍼펙트가 출중한 기량을 갖춘 것은 인정이 되는군요. 좀처럼 선수 평가에 인색한 챔블리 위원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말입니다. 하하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라운드라서 코스 세팅이 평이했지만 그래도 18홀 기록이 5언더 아래로 내려가면 톱10 진입은 무난할 것이라고 봤다.

PGA 메이저 대회는 이븐파만 기록해도 예선 통과가 가능하며 때로는 우승 스코어가 한 자릿수일 때도 많다.

아무리 새로운 코스라고 하더라도 지금 필상의 기세를 보면 오늘 하루에 두 자릿수 언더를 기록할 것만 같았다.

아직 많은 선수들의 경기가 남았지만 전체적인 흐름에서 유독 필상만 튀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191야드 파 3홀에서 1온 2퍼팅으로 잠시 숨을 고른 필상이 9번 홀에서 또다시 그린을 향해 에이밍을 하자 벌떼처럼 몰려든 갤러리들은 필상의 닉네임을 외치기 시작했다.

“퍼펙트 1온! 퍼펙트 1온!”

-어어! 446야드 파 4 홀입니다. 446야드요!

-그 거리는 잘라 갈 경우이고 지금처럼 그린을 바로 보면 424야드입니다. 약간의 내리막이 있어서 실제 온 그린을 하려면 400야드만 때려도 됩니다.

-오! 그런가요? 400야드가 쉬운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이번에도 그린에 올릴 수 있다고 보십니까? 챔블리.

-앞선 홀들에서 보여준 장타력과 정확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지만 가능은 하죠. 그러나 조금이라도 짧아 나무에 걸리면 심각한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바로 그린을 노릴 경우 바로 앞에 벙커가 있기 때문에 1번 홀처럼 모래에 맞고 튀어 올라야 하는데 그게 좀 어려워 보이네요.

-그렇기 때문에 굳이 1온을 노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잘라 가도 버디를 할 능력이 있는데 왜 무리수를 둡니까!

본의 아니게 챔블리는 필상의 기량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말았다. 과한 욕심이라는 걸 부각시키고 싶은 것 같은데 그 말을 하는 순간, 이미 마음이 드러난 것임을 깨달은 그의 낯빛이 벌겋게 물들었다.

실제 필상도 이번 홀의 공략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에서 380야드를 무난히 공략했지만 400야드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챔블리의 말처럼 짧으면 위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그린을 노리는 이유는 그림을 넘길 경우, 큰 장애물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도 끝도 없이 길게 칠 수는 없을 것이고 30야드 안쪽 어프로치라면 잘라 가는 것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꽈아앙!

오늘 필상이 보여 준 드라이브 티샷의 임팩트는 강렬했다.

스리쿼터 스윙으로 어떻게 저런 파워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포인트는 힘이 아니라 헤드 스피드다.

세게 치려고 잔뜩 힘이 들어가면 거리는 물론 방향성을 유지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축이 되는 왼팔과 받쳐 주는 오른손의 역할을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백스윙은 상체의 꼬임을 이용한 스피드를 가속시키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지, 힘을 모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스윙 중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오로지 왼손으로 클럽을 당겨 내려올 때뿐인데,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오른손이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윙의 축보다 뒤쳐진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스피드에 방해가 된다. 임팩트가 가해지고 클럽 헤드가 로테이션이 되는 과정에서 비로소 오른손의 역할이 생기는 것이다.

-풀, 풀스윙을 했습니다!

-네. 아주 교과서적인 스윙입니다.

-그런가요? 그런데 어떻게 저런 파괴력이 나오는 거죠?

-공 프로 드라이브 티샷의 포인트는 정확한 임팩트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다 경험이 있으실 텐데, 본인은 여느 때처럼 친 것 같지만 평소보다 훨씬 많이 날아가는 경우를 겪어 봤을 겁니다.

-극히 드물지만 그런 일이 있긴 하죠. 하하하.

-네. 바로 그겁니다. 클럽 헤드 어디에 맞춰야 타구가 가장 멀리 나가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는데, 흔히 스윗 스팟이라고 하는 지점입니다.

-아! 반발력이 가장 좋은 지점이겠군요.

-그렇습니다. 다른 지점에 맞아도 공은 날아가지만 비거리의 차이는 확연합니다. 공 프로의 티샷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거의 99%의 확률로 정확하게 스윗 스팟을 공략합니다.

-99%요?

-네. 수없이 흘린 땀의 결정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타고난 재능이 더해지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지요.

-천부적 재능. 그건 저도 공감합니다. 사람마다 주어진 재능이 다른데, 저런 신의 축복을 받은 선수가 어째서 서른을 넘겨 골프를 시작했는지 그게 참 아이러니한 일이죠.

‘수업에 집중했고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다.’

수능 최고점을 기록한 한 학생의 그 인터뷰 내용은 수많은 구설을 낳았다. 동의할 수 없는 이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일 수도 있다.

다만 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일 뿐, 주어진 달란트가 다른데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실제 필상은 어릴 적에 운동을 하고 싶었다. 자신이 있고 운동을 하면 즐거웠다. 하지만 외동아들의 숙명이 그걸 허용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을 내려놨을 때, 기회가 찾아왔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이들, 이것이 숙명이라고 여기지만 실제 재능이 허락되지 않는 이들이 숱한 상황에 어쩌면 늦게라도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와아아아!”

귀가 아플 만큼 엄청난 환호성이 터졌다. 그 어려운 상황을 뛰어넘어 기가 막힌 온 그린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필상은 애당초 위험 요소를 없애기 위해 나무숲을 확실하게 넘기는 강한 티샷을 날렸고 결과가 의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캐리가 무려 398야드, 그린 초입에 떨어진 타구가 엄청나게 큰 자국을 남긴 뒤 그린을 오버해 카트 도로까지 굴러갔다.

최종 비거리는 438야드, 그린에 떨어져 런이 많이 발생했다손 치더라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 정말 무지막지한 장타가 아닐 수 없었다.

끊이지 않는 박수와 환호성에 필상은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잘라 갈 걸 너무했나 싶을 정도였다.

-그린의 앞뒤 길이가 31야드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5야드 지점에 떨어진 공이 40야드나 오버를 하다니!

-날아온 거리를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러프가 잡지 않았다면 10번 홀 티 박스까지 기어 올라갔을 겁니다.

-새로운 종족의 출현인가요?

-저도 할 말을 없습니다. 장비가 좋아지고 과학적인 훈련 방식이 도입된 이래 선수들의 비거리는 획기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미스터 퍼펙트는 그런 것으로 재단하기 힘든 지구 최고의 장타자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챔블리. 드디어 인정을 하는 건가요?

-장타자들이 유리한 것은 맞지만 모든 대회를 휩쓰는 것은 아닙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지만 더 두고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하게 인정하기 꺼리는 것은 분명했지만 논조가 바뀐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도 보수적인 챔블리의 해설에 대해 비판하는 댓글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굳이 그렇게까지 인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과를 떠나 좋은 플레이는 존중받아야 하며 전문가라면 그것을 선도하는 것이 오히려 합당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인종차별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힘이 더 실렸다.

사실 필상은 이런 분위기를 유도한 측면이 없지 않다. 버디를 잡는 데 굳이 이런 모험적인 수단을 쓸 이유가 없다.

차분하게 안정된 공략을 하고도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얻어 왔고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처해진 상황을 보다 극적으로 타개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뭔가가 필요했다. 그 의도가 먹히지 않는다면 포기하겠지만 다행히 오늘 필상의 티샷은 완벽했다.

“피칭.”

“피치 앤 런. 좋은 선택 같아요.”

카트 도로에 놓인 공을 드롭 했다.

그런데 러프의 길이가 생각보다 길어 헤드가 가벼운 웨지로 공략하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묵직한 헤드를 지닌 피칭웨지로 범 앤 런을 구사했다. 타구의 속도는 너무 강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린에 떨어진 공은 급격하게 감속이 되어 오히려 짧았다.

그 와중에도 스핀이 제대로 걸렸던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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