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69화 (169/354)

169. 보여 주마!

-PGA 챔피언십이 드디어 개막되었습니다. 여느 해보다 많은 골프팬들이 이 중계방송을 시청하시는 이유는 바로 공필상 프로가 오랜만에 PGA 정벌에 나섰기 때문이죠.

-그렇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이후 편파적인 보도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 않았는지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현역 최고의 선수이자 동업자인 두 선수와 함께 생활하며 독하게 연습했다고 합니다.

-아!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 말씀이군요?

-네. 전에도 각별한 우의를 드러낸 바 있는 그 두 선수가 공 프로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면서 그나마 균형 잡힌 보도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직 어림도 없습니다. 대체 지들이 뭐라고! 아이고, 제 표현이 좀 심했나요? 하하하.

그렇게 생각하는 한국 시청자는 없었다.

한국이 낳은 최고의 골퍼가 이제 세계 정상에 우뚝 설 날이 멀지 않다고 믿었던 한국 골프팬들은 분노했다.

IT 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필상에 대한 차별적인 기사를 실은 기자와 언론사들을 폭격하기에 이르렀다.

하루에 수천, 수만 개의 항의성 댓글과 메일이 날아와 정상적인 업무에 지장을 받을 수준이었다. 적어도 그들은 필상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 와중에도 비정상적인 고집을 부리던 몇몇 골프 채널들도 PGA챔피언십이 시작되며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다. 왜냐면 자신들이 무시하던 필상이 큰일을 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7시 50분 티오프라니! 어이가 없군.”

“하하. 저 루키입니다. 필.”

“2승한 루키도 있나? 어렵게 초대해 놓고 이러면 좀 곤란하지.”

“아침 일찍 맑은 공기 마시면서 치는 게 좋습니다. 게다가 잔디 상태도 최상일 테고요.”

“자네 때문에 새벽부터 일어나 서둘러 여길 찾아오는 팬들은 생각 안 하나? 적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점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가까이 사는 이들도, 멀리서 이번 대회를 보기 위해 일부러 휴가를 내고 찾아올 한국 팬들도 아침잠을 설치고 와야 한다.

때문에 팬들의 사정까지 고려해 티오프 시간을 배정받는다면 좋겠으나 그건 자신이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성공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파이팅. 공 프로!”

“힘내라! 공필상.”

1번 홀로 이동하는 필상의 귀에 익숙한 한국어 응원이 들려왔다. 자제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고개를 돌려 손을 흔들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새벽부터 바삐 움직였을 그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 서비스는 해도 무방했다.

이름도 모르는 동반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필상이 아너로 티 박스에 올라서자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말이 나왔다.

이름과 출신만 밝힌 아주 무덤덤한 소개였다.

한국과 일본에서와는 확실히 다른 열기에 쓴웃음이 나왔지만 그로 인해 더 이를 악물었다.

-어허! 어딜 에이밍 하나요?

-첫 홀부터 드로우 샷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린을 바로 노리는 것 같습니다.

-429야드 파 4홀인데요?

-아닙니다. 그건 IP지점으로 잘라 갈 경우이고 우측 도그렉 홀이라서 그린까지의 직선거리는 382야드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 못 갈 이유도 없는 거네요.

-아침 일찍 몸을 충분히 풀었을 겁니다. 공 프로는 절대 무모한 선수가 아니니까요.

주변에 몰려들었던 갤러리들도 필상이 치켜든 드라이브헤드가 우측 숲을 넘어 거의 다른 코스를 향하는 걸 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왈가왈부 많지만 필상의 기량이나 장타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관전하기에 이보다 흥미로운 기회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지 누군가가 시작하자 다함께 박수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필상은 모두가 예측하듯 실제 온 그린을 노리고 있었다. 그 방향대로 친다면 그린 우측의 벙커가 정면에 놓이는 꼴이라 사실 1온을 시도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다.

‘아예 벙커로 치자!’

티샷이 머금은 강한 힘은 벙커에 떨어진 타구도 튕겨 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쳐다보자 미사키도 조용히 지켜봤다.

두 손을 꼭 마주잡은 걸 보면 그녀 또한 긴장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그 어떤 말도, 티도 내지 않았다.

에이밍을 마친 필상은 급기야 누구도 흉내 내지 않는 방향으로 어드레스를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타깃 방향을 확인한 뒤, 서서히 테이크 백을 가져갔다.

그런데 흔히 볼 수 있는 풀스윙도 아니었다.

쉬이이익! 까앙!

-어우! 스리쿼터 스윙 아닌가요?

-백스윙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정확히 스윗 스팟에 맞췄느냐는 게 중요한데,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죠?

-물론입니다. 높은 탄도와 무지막지한 저 헤드 스피드를 보세요.

티샷과 함께 공의 궤적이 파란 선으로 그려지면서 과학의 눈부신 데이터가 수치로 주르르 표현되었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 드라이브 헤드 스피드가 무려 136마일이 나왔다. 장타자로 유명한 캐머런 챔프의 시즌 평균이 133마일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빠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래도 충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자꾸 작았던 백스윙의 크기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니시를 마친 필상은 기다리고 있던 미사키에게 클럽을 건네주며 그제야 타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충분할까요?”

“응. 다소 강한 것 같아.”

“그린을 넘기면 다시 벙커잖아요.”

“벙커 샷도 괜찮지 뭐.”

그러나 타구는 생각보다 뻗어 나가지 못한 채 그린 앞 벙커에 떨어졌다. 느낄 수 없었던 바람이 조화를 부린 결과였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일렀다.

벙커에 떨어졌던 공이 커다란 모래 파편을 만들면서 불쑥 튀어 올라 그린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함성이 터졌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온 그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타구는 생각보다 많이 굴러 깃대를 지나 에이프런에 겨우 멈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엄청난 모험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골프를 치는 팬이라면 이런 어마어마한 장타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정말 우리 공 프로 대단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대회 첫 홀부터 이런 과감한 샷을 하는 선수는 본 적이 없습니다. 편견에 가득 찬 시선들이 쳐다보고 있는 와중에 그 모든 부정적인 생각을 일시에 날려 보내는 정말 속이 후련한 샷이었습니다.

-이글은 쉽지 않아 보이네요.

-네. 11야드 거리이고 라이도 더블 브레이크입니다. 차분하게 붙여 버디만 낚아도 저는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계진의 해설이 다소 편향적인 것은 대다수 팬들의 억눌린 감정이 이입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골프는 개인 스포츠지만 필상에 대해서만 편향된 생각이 드러난 것은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투어를 무시한 발언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드러내도 괜찮은 분위기, 그것에 대해 분노한 것이다.

“오늘 작전이 ‘공격 앞으로’인가요?”

“응. 마음껏 휘둘러 보려고.”

“우황청심환이라도 먹고 나왔어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요.”

“미사키가 브레이크를 걸면 언제든 멈출게.”

“흐흐……. 정말이죠?”

미사키의 환한 미소에 필상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가 웬만해서는 제동을 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때문에 행여 페이스를 잃을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자신을 신뢰한다는 느낌 때문인지 더 야무진 표정을 짓는 미사키를 보며 필상도 경기에 더 몰입하려고 노력했다.

동반자들이 2온, 3온을 하는 동안 미리 그린 근처에 도달한 필상은 라이를 꼼꼼하게 살폈다. 제법 멀고 라이도 복잡했지만 마침내 크리티컬 라인을 찾아냈다.

“인 더 홀!”

과감하게 밀었다.

홀컵을 지나쳐도 마무리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망설임 따위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용감한 퍼팅이었다.

경사를 타고 왼쪽으로, 다시 오른쪽으로 휜 공이 정확히 홀컵을 향하는 순간,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난무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음에도 공은 홀컵 안쪽을 맞고 빙그르르 돌아 나왔다. 진한 아쉬움이 느껴진 것은 필상만이 아니었다.

-와! 저게 그냥 돌아 나오네요!

-조금 강했습니다. 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저런 모습은 너무 보기 좋습니다. 탭 인 버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우리 공 프로의 세계 랭킹이 어느새 4위까지 올라갔더군요.

-그렇습니다. 역대 한국 선수로도 최고입니다. 아시아 투어 포인트가 작아서 그렇지, 실제 우승 횟수는 가장 많습니다.

-그럼 이번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면 1위로 올라설 수도 있지 않을까요?

-1위인 존슨이 10위 밖에 머문다면, 또한 2위인 저스틴 로즈가 5위 안에 들지 못하면 가능합니다.

-아! 쉽지는 않겠네요. 하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기대를 해 봐도 될 것 같네요. 하하하.

너무 핑크빛 상상만 하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그런 멘트도 시청자들에게는 뜻깊게 들렸다.

굳이 PGA를 고집하지 않고도 세계 정상에 우뚝 선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미뤄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1번 홀을 버디로 지나친 필상은 2번 홀에서도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 냈다. 354야드 파 4, 좌측으로 휘는 도그렉 홀인데 이번에도 직접 그린을 에이밍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밍을 마친 필상은 어드레스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치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바람을 감지하기 위해서였다.

홀의 진행 방향은 1번 홀과 마찬가지로 북동향이었다.

‘맞바람이 있기는 하네!’

막연한 느낌에 불과했지만 지난 홀의 경험이 더해진 필상은 창공을 가로지르는 바람의 존재를 미세하나마 감지했다.

그린 앞에는 징글징글한 벙커 2개가 존재하지만 뒤쪽은 제법 넓은 러프이고, 3번 홀 티 박스로 이어지기 때문에 370야드를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필상의 티샷은 지난 홀과 거의 유사했다.

어떻게 풀스윙을 하지 않고도 그런 강력한 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보는 이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동양인치고는 훤칠한 신장이지만 그래도 근육질로 보이지 않는 날렵한 체구인데, 자신보다 더 우람한 선수들보다 훨씬 멀리 보내는 스윙이 왠지 신비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와! 언제 봐도 아름다운 궤적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일직선으로 보낼 수가 있는 거죠?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자유분방한 샷을 구사했지만 그런 심한 부침을 겪은 뒤에 오히려 더 스윙이 탄탄해진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풀스윙을 하지 않는 걸 보면 대체 공 프로가 보낼 수 있는 비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450야드도 날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방향성을 보장하기는 어렵겠지요.

-450야드요? 웬만한 미들 홀은 다 1온이 가능하다는 말이네요. 하하하!

아니다.

작정하고 날려 보지는 않았지만 필상은 500야드 이상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럴 경우 장비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400야드까지는 평소에 연습을 했고 어느 정도는 방향성에 대한 자신도 있었다.

혹자는 풀스윙과 스리쿼터 스윙이 상당한 비거리 차이를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비거리 차이는 많지 않았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임팩트 순간의 헤드 스피드인데, 오랫동안 몸에 익어서인지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정확한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리쿼터 스윙이 더 편했다.

‘우우우우!’

타구는 그린 앞에 떨어졌지만 크게 튀더니 그린을 훌쩍 오버했던 것이다. 최종 비거리는 384야드, 갤러리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바람이 생각보다 약했나 봐요.”

“아니야. 아까보다 조금 더 임팩트가 좋았던 것 같아. 거리 조절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네.”

“아이언도 아니고 드라이브로 350야드 이상을 때리면서 거리까지 조절하기는 어렵죠.”

“어려워도 해내야지. 연습 부족이야.”

“헐!”

그만하면 만족해야 할 것 같은데, 필상은 그 와중에도 연습하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탁월한 실력자인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하다는 생각, 아니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공은 제법 깊은 러프에 있었지만 필상은 샌드웨지로 정확히 퍼 올려 핀에 붙인 뒤, 다시 버디를 잡아냈다.

2개 홀에 -2, 그것도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파 4홀 1온을 시도해 만들어 낸 기이한 결과였기에 카메라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필상의 특별한 골프는 또다시 많은 구설수를 낳고 있었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은 꼭 그렇게 쳐야만 버디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역설하며 따라 하면 큰일 난다고 떠들어댔다.

“타이거. 이거 좀 봐.”

“뭔데요?”

“실시간 중계. 콩이 또다시 주목받을 일을 저지르고 있어.”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묵묵히 연습하던 타이거는 미켈슨이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상의 이름이 언급되자 얼른 다가와 미켈슨이 보던 태블릿을 빼앗듯 가져갔다.

상기된 표정만 봐도 그가 이번 대회에 어떤 각오로 임하는지 짐작이 되었는데, 익숙하게 필요한 장면을 검색했다.

필상의 경기 내용은 이미 굉장했던 티샷 2번을 포함해 따로 저장된 영상 파일로 존재했고, 그걸 틀어 한참 들여다보던 타이거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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