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68화 (168/354)

168. 편견의 벽

-오랜만에 미국에 오셨는데, 두렵지 않습니까?

첫 질문부터 공격적이었다.

대체 왜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는지 어이가 없었지만 필상은 미소를 잃지 않고 차분하게 말문을 텄다.

“세계적인 대회 PGA챔피언십에 출전하게 되어 설렙니다. 잘할 수 있을지……. 최선을 다하겠지만 프로 골퍼인 제가 대회 출전에 두려움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미스터 퍼펙트의 실력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어떻습니까?

“프로는 오로지 결과로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번의 출전에 2번 우승한 선수가 저 말고 또 있나요?”

질문했던 기자는 말문이 막혔는지 대답하지 못했다.

엄연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둘 필요를 느낀 필상은 말을 이었다.

“최고의 기량을 갖춘 PGA선수들과 함께 경쟁하는 것은 아주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WGC 매치플레이에서 워낙 몸이 좋지 못해 기권한 것에 대해 여러분이 염려하시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한 것은 선수의 책임이니 그에 대한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대회의 목표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하하하. 우승하러 왔습니다.”

사족을 더 달고 싶었으나 거기까지만 언급했다.

대회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의 목표는 굳이 물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우승은 1명이지만 꿈을 꾸며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당연한데, 필상의 언급에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은 필상이 지나치게 도전적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대체 왜 겸손함을 요구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만약 2승을 거둔 미국 선수가 그런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호기롭다거나 준비를 착실히 했다고 칭찬하지는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건 인종차별적 범주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말을 아꼈다.

과거 타이거 우즈가 그랬듯 자신도 실력으로 모든 편견을 덮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고 두렵지도 않지만 이곳에서 자신은 아직 이방인이라는 것을 망각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 투어는 별 볼 일 없다던데, 굳이 아시아 투어에만 전념하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이 질문을 하신 기자 분은 어느 언론사의 누구십니까?”

얼토당토않은 질문이다.

코리안 투어나 JGTO가 PGA에 비해 규모가 작은 대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타국의 투어를 폄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질문한 기자의 소속과 이름을 묻자 당사자는 크게 당황했다. 그 파장이 어떨지 자신의 말을 되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얼른 자신의 질문을 수정했다.

-제 질문의 요지는 그게 아니고……. PGA를 무시하는 이유가 대체 뭐냐는 겁니다.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언론 종사자이시기 때문에 잘 알고 있으리라 사료되지만 편견에 사로잡힌 질문에 깊은 유감을 표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필상은 생각보다 훨씬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자들이 황당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 대표는 이쯤에서 마치는 것이 서로를 위해 낫다고 판단해 얼른 뒷정리에 나섰다.

필상의 인터뷰 장면은 한국은 물론 골프를 즐기는 아시아 각국의 방송에 소개되면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고 자부하는 필상에 대한 기자들의 무례함과 푸대접은 동서 갈등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였다. 마지막에 헛소리를 했던 기자가 소속된 방송사는 즉각 사과 글을 올렸고 징계 절차에 들어간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전 그냥 경기에만 집중하겠습니다.”

“그래요. 그게 좋겠어요. 언론에 대한 부분은 제가 알아서 조치할 게요.”

편견의 벽이 너무 높았다.

꾹 참고 잘 받아치기는 했지만 길지 않았던 전체 인터뷰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개인적인 모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무리 얄미워도 기자들이 똘똘 뭉쳐 일방적으로 그런 취재 태도를 보이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다른 의견을 가진 기자들도 있었을 것이나 분위기에 얹혀 지켜보고만 말았다.

필상이 이룬 결과에 대한 기대와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되는 잣대로 볼 수도 있고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해진 영향력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큰 파문을 일으킨 필상은 대회가 열리는 롱아일랜드로 향하며 돌아가는 상황을 꼼꼼하게 점검해 봤다.

‘나쁘지 않아!’

무관심보다는 낫다.

원하는 방향은 아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팬들의 마음이다. 아직까지는 기자나 전문가들의 의견에 휘둘리지만 결국 실력을 드러내면 주인공은 자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더 뜨겁게 불이 붙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그 전제는 우월한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썩 내키지 않지만 이겨 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낯선 동양 선수를 진심으로 좋아하기에는 더 많은 시간과 좋은 기억들이 필요할 것이다.

“저 바다가 북대서양이에요.”

“아주 멋지군요.”

“숙소가 썩 훌륭하지는 못하지만 주변에 괜찮은 골프 코스가 많아서 연습하기에는 좋을 것 같아 이곳으로 정했어요.”

“훌륭한데요, 뭘!”

이스트햄프턴 비치에 위치한 독립형 리조트에 도착했다. 이 대표의 말과는 달리 충분히 좋았다. 시원한 바다가 한눈에 잡히는 해변에 지어졌고 전용 비치에서 땀을 식힐 수영도 할 수 있었다.

또한 대회가 열리는 베스페이지 스테이트 파크는 십여 분 거리였으며 인근에 3개의 골프장이 위치해 대회 준비를 위해서는 더 이상의 조건이 없을 것 같았다.

“오늘은 그냥 푹 쉬는 거로 하죠.”

“네. 내일부터 연습 라운드 나갈 수 있도록 예약 잡을 게요.”

필상은 마음을 다질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자신감은 넘치지만 오랜만에 찾은 PGA 대회에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필요가 더 절실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샤워를 마친 필상은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모처럼 오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야금야금 늘어난 내력은 언제든 필요할 때 쓸 수 있을 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파괴력이 넘치는 힘을 통제 가능한 범주에 묶어 둬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번처럼 폭주하는 힘을 견디지 못해 대회를 포기하는 일은 반복할 수 없다.

“확실히 새 장비들이 좋네.”

“그래요? 전 익숙한 게 더 좋던데.”

“처음 머리를 올리러 나갔을 때, 내 백에는 4종류의 메이커가 섞여 있었지. 하다못해 아이언도 두 종류였어. 하하하.”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골프를 배운 미사키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캐디 일을 하면서 별의별 손님들을 다 겪어본 필상은 자신이 골프를 치면 과연 얼마나 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었다.

그러던 차에 캐디들도 골프를 배우라는 회사 방침이 떨어져 여기저기서 중고 클럽을 모았다. 10년도 넘은 클럽도 있었고 누나가 쓰던 여성용 웨지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챙겼다.

“늦게 배웠다는 말은 들었어요.”

“그래서 더 악착같이 했는지도 모르지.”

“그러고도 최고의 선수가 된 걸 보면 타고난 것 같아요.”

“글쎄……. 과연 그럴까?”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그날 번개를 맞아 각별한 능력을 얻지 못했다면 과연 이렇게 가파른 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

감히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필상은 떳떳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 않았던가!

어떤 상황에서고 물러서지 않고 나가려는 불굴의 의지가 없었다면 그 어떤 결과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평소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였다.

리조트에 붙어 있는 메이드스톤 골프클럽에서 연습 라운드를 마치고 들어오던 필상의 시야에 반가운 모습이 잡혔다.

“콩!”

“왜 이렇게 빨리 오셨습니까?”

필 미켈슨이 나타난 것이다.

골프백을 멘 캐디까지 동반한 걸 보면 필상과 함께 연습하기 위해 서둘러 건너온 것 같았다.

“자네가 와서 연습하는데 나도 놀 수는 없지.”

“요즘 출전하는 대회마다 성적이 시원찮던데, 연습을 너무 대충 하시는 거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난 태어나서 요즘처럼 열심히 연습해 본 적이 없다고.”

“그럼 제가 한 번 점검 좀 해 보죠.”

“정말이야?”

“네.”

“샤워하고 와.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몸 풀고 있을 테니까.”

미켈슨은 필상과 함께 있었던 시기와 그 이후 잠깐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최근에는 컷 탈락의 수모까지 겪어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가 찾아온 것이다.

확인한 결과 스윙 교정이 완벽하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원래대로 회귀했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였다.

말은 들었지만 그 유명한 미켈슨이 필상에게 오히려 아쉬워하는 모습을 지켜본 미사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의미였으나 그 모습을 지켜본 필상은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

“왜? 내 코칭 능력이 못 미더워?”

“아뇨. 모모코를 최고로 만든 솜씨잖아요. 단 1년 만에 몽땅 채 갔지만.”

“하하하. 채 간 게 아니고 꼬심을 당한 거지.”

“치! 그게 그거죠.”

샤워하고 연습장으로 들어섰더니 그새 한 명이 더 늘었다.

“공 프로, 어서 와!”

“연락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게 요즘 여기 유행인가요?”

“섭섭하게 왜 이래. 들었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자넬 위해서 얼마나 고군분투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아마 지금쯤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터트렸을 텐데…….”

불쾌했던 인터뷰 이후 기사 검색은 일절 하지 않았다.

좋은 소리가 나올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거와 미켈슨이 무슨 인터뷰를 했는지 궁금해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선수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바란다.]

타이거는 평생 처음 언론사에 칼럼을 기고했다.

과거 자신이 겪었던 차별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어제 필상이 경험한 황당한 인터뷰 내용까지, 타이거는 신랄하게 비판했다.

게다가 필상에게 무례한 질문을 던졌던 몇몇 언론사와는 일절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는 엄포까지 했다.

그가 비교적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한 반면, 미켈슨은 상당히 감정적인 언사까지 동원해 필상을 대변했다.

[나의 친구이자 동업자인 미스터 콩을 무시한 기자들, 경고하건대 다시는 무례를 범하지 말라!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난 전혀 동의할 수 없으며 선수 개인의 선택마저 강제하려는 자들의 오만한 태도에 강한 분노를 느낀다.]

“하하하. 밥 사라는 건가요?”

“당연하지. 난 한국과 자넬 무시한 뉴욕포스트 기자한테 전화까지 걸어 단단히 경고했지. 제발 똑바로 살라고!”

“알았습니다. 대회 끝나고 한국에 가서도 일체 비용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맞다. 우리 한국 가기로 했지?”

“이미 출전한다고 주최 측에 연락해 놨으니까 딴소리하지 마십시오.”

“알았다니까. 하하하.”

PGA의 가장 저명한 두 선수가 나서 필상을 옹호했다.

대회 출전 여부는 철저히 선수 개인의 선택권인데, 왜 언론이 나서서 편파적이고 국수주의적인 태도를 취하는지 지적했고 그것은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못을 박았다.

“팬들의 반응이 엇갈리네요.”

“결국 자네가 실력으로 보여 주는 게 가장 빠를 거야.”

“네. 타이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신경 쓰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런! 누가 감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거야!”

“그만하고 이제 연습이나 시작하죠.”

필상과 타이거 우즈, 필 미켈슨이 나란히 서서 연습하는 모습을 보려고 클럽 직원들은 물론 경영진까지 몰려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다. 직원들이 앞다퉈 스마트폰을 꺼내 이 신기한 장면을 촬영하려는 행동도 경영진이 나서서 극구 만류했다.

개인이 아닌 직원들에게는 초상권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기념사진을 남겨 달라고 정중히 부탁해 셋은 나란히 사진을 찍었고 그로 인해 편안한 연습 환경을 제공받게 되었다.

“필. 스윙이 아주 망가진 건 아니네요.”

“그래?”

“네. 새로운 폼을 완전히 몸에 익히기 힘들다면 차라리 적당한 선에서 절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냥 이대로 괜찮다는 건가?”

“그건 아니죠. 다 좋은데 테이크 백을 조금만 더 의식적으로 플랫하게 가져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필상은 직접 미켈슨에게 다가가 스윙 궤적을 교정시켰다. 강한 임팩트를 만들면서 업라이트 한 스윙을 했는데, 과거 습관대로 회귀해 어느 순간 짐 퓨릭의 8자 스윙에 가까워졌다.

퓨릭은 평생 그렇게 쳐 왔기에 문제가 없지만 필에게는 현란한 스윙 궤적이 자꾸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빠악!

“어! 좋은데?”

“야구 좋아하시잖아요. 꼭 높이 치켜들어야만 강한 힘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약간 비스듬해도 제대로 된 리듬만 잡는다면 임팩트는 저절로 만들어질 겁니다. 다만, 드로우 구질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 너무 잡아채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음. 그 정도는 나도 알지.”

늘 운동을 하지만 70년생이라는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필상이 감지한 그의 신체 능력은 자신의 과거는 물론 젊은 선수에 비해 확연하게 떨어졌다. 때문에 그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과거와 같은 영광은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말은 안 했지만 다행히 그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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