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67화 (167/354)

167. JFK 국제공항

필상의 염려와는 달리 타구는 엄청난 힘을 머금은 채 장거리 비행 중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지 않는 드로우가 걸린 것인데,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카트 도로까지 갈 것 같아요.”

“이 녀석이 마지막 임무를 다한 건가?”

“네. 공이 깨지고 클럽도 망가지고. 확실히 짐승 맞는 것 같아요!”

“짐승? 하하하.”

나쁜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웃고 말았다.

딱!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던 타구가 계속 전진하더니 급기야 카트 도로에 정확히 맞고 말았다.

살짝 왼쪽으로 말린 타구였기에 순수한 캐리만 무려 344m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파괴력에 다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으나 필상은 시선은 튀어 오른 타구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디로 튈지 그게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 다행입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드로우가 걸려서 나무 근처로 가지 않나 저도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군요?

-그렇습니다. 도로공사의 협찬을 받은 공이 페어웨이에 들어갔다면 올 시즌 최장타 기록이 되었을 텐데, 그게 아쉬울 뿐입니다. 하하하.

최종 비거리는 무려 375m가 나왔다.

야드로 환산하면 무려 410야드에 해당하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타가 국내 메이저 대회에서 나온 것이다.

페어웨이를 지키지 못해 기록에서는 제외되겠지만 팬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꽂혔다. 인간의 잠재력이, 아니 공필상 프로의 장타가 얼마나 위대한지 똑똑히 아로새긴 것이다.

“참! 이러니 클럽이 망가지죠.”

“공은 물론 클럽도 이제 매번 점검이 필요할 것 같아.”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러려면 평소에 여러 개를 동시에 손에 익혀 두셔야 할 것 같아요.”

“새 클럽 좋지. 하하하.”

대부분의 골퍼들은 클럽에 대한 징크스가 있다.

같은 메이커라도 모든 제품이 동일한 성능을 지닌 것은 아니라서 본인에게 맞는 클럽의 사용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손에 익은 클럽으로 경기를 치른다. 하지만 후원사가 정해지기 전까지 저렴한 중고 제품을 사용해 왔던 필상은 새 제품이라면 무조건 마음에 들었다.

샷이 더 잘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좋은 샷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때문에 징크스 따위는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

“내가 좀 심했나?”

“다시는 프로님과 같이 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대충 칠 수는 없는 거잖아. 기회라고 생각하고 한 수 배운다면 유익할 텐데…….”

필상의 기가 막힌 장타에 주눅이 든 동반자들의 티샷은 과도하게 힘이 들어간 나머지 우측 대형 벙커에 빠지고 말았다.

12언더에 다시 이글 온이 가능한 위치까지 보내 놓은 상황에 겨우 오버 파를 면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타수를 줄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이 벙커에서 고심하는 사이 필상은 세컨샷 지점에 도착했다. 다행스럽게 퍼스트 컷에 놓인 공의 상태는 양호했다.

“207m 남았어요.”

“4번 아이언.”

“유틸리티 거리가 아니라서 마음이 놓여요.”

“설마……. 하하하!”

참 별의별 일이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레이어가 공의 상태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동반자들은 3온이 가능한 위치로 보냈고 급기야 필상의 턴이 돌아왔다.

연습 스윙을 통해 이미지 생성에 성공한 필상의 롱 아이언 샷은 가차 없이 휘둘러졌다. 공의 상태가 염려되었지만 끝까지 헤드업을 하지 않고 버틴 결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와! 진짜 아깝다!”

“그린 경사가 왼쪽으로 흐른다는 건 알고 있었잖아.”

“그래도요!”

타구는 그린 앞 오르막 러프에 떨어진 뒤 깃대를 향해 정확히 올라섰다. 하지만 힘이 떨어지면서 좌측으로 휜 것이다.

그린 경사를 알고 있었으나 더 우측을 노리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까딱 조금이라도 밀리면 심각한 내리막 칩샷을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오르막 퍼팅을 남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필상은 의도한 대로 정확히 구현되었다고 판단했다.

-으아! 진짜 대단하지 않나요?

-한두 번 보는 게 아니라서 그냥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하하!

-581m 파 5홀에서 이렇게 2온을 쉽게 하는 선수도 없을 겁니다. 정말 세계적인 기량이 아닐 수 없죠!

늘 하는 찬사지만 시청자들은 지루하지 않았다.

보고 또 봐도 짜릿한 이유는 그 하나하나의 샷이 너무도 소름끼치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150명이 참가한 대회지만 마치 필상을 위한 독무대인 것처럼 모든 샷 장면을 비추는데도 불만을 표하는 이들은 없었다.

마치 자신이 경기를 하는 양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린에 올라서는 필상을 소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음성도 흥분에 가득 차 있었다.

“기록의 사나이! 세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골프 황제, 공필상 선수가 그린으로 올라서고 있습니다. 뜨거운 박수로 맞아 주십시오!”

필상은 모자를 벗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유명세를 탄 공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낱낱이 파헤치는 기사를 보면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새 자신이 그런 입장이 되었다.

떳떳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행동에 제약을 받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의 사랑은 강한 중독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린에 올라섰다. 오르막 퍼팅이지만 결코 쉬운 라이는 아니었다.

거리는 3.2m, 왼쪽으로 살짝 돌기 때문에 반 컵은 봐야 할 것 같았다. 이것을 넣으면 자신이 기록한 18홀 최저타를 다시 한 번 기록하게 된다.

“큰 의미는 없지만 놓칠 수는 없지!”

자그마치 메이저 대회인 SK 텔레콤 오픈이다.

한 번 세운 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힘들 것이고 이 대회가 열릴 때마다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다는 생각을 하자 더 집중력이 생겼다.

그런데도 퍼팅 스트로크는 정확하지 못했다. 생각한 방향대로 밀지 못해 퍼터 페이스가 살짝 열렸고 다소 약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힘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인지 홀컵 앞에 도달한 공은 생각보다 많이 휘면서 홀컵 앞에서 까딱거리다 뚝 들어갔다.

“와아아아!”

“미스터 퍼펙트! 미스터 퍼펙트!”

-정말 대단하네요. 전 약한 줄 알았습니다.

-네. 평소 공 프로는 이런 오르막 퍼팅을 할 때 뒷벽에 쿵 박힐 정도로 강하게 밀죠. 때문에 제가 봐도 실수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하늘이 도와준 것 같습니다.

-코리안 투어에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 주라는 의미겠죠?

-그렇습니다. 지난 매경오픈도 보기 드문 명승부로 항간의 화제가 되었는데, 이번 대회는 첫날부터 또 다른 기록을 낳으며 화려하게 출발합니다.

-1라운드 14언더, 2위와는 6타, 공동 3위와는 8타로 메이저 대회 3연패의 가능성을 더욱 높인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혹자는 너무 쉽게 우승을 해 버려 재미가 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야구나 축구, 농구처럼 일대일 대결이 아니다. 보통 120명에서 150명이 참가해 단 1명에게만 우승이 주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LA 다저스가 10연승을 한 그런 기록과는 질적으로 현격한 차이가 난다.

지금까지 총 17차례 대회에 참가했다. 그중에 2, 3번만 우승해도 무서운 신예가 나타났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무려 15번을 우승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만 기록했다면 모를까, 15승중에는 PGA 우승도 2번이나 포함되었고 쟁쟁한 선수들과 경쟁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미스터 퍼펙트 첫날 -14,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다.]

그날 저녁 한 골프 저널에 실린 필상에 대한 기사 타이틀이다. 필상이 거둔 그간의 성적을 쭉 나열한 뒤, 좀 특이한 논조로 필상을 놓아주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코리안 투어를 위해 헌신하는 필상에게 감사를 표함과 동시에 그가 있어야 할 곳은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고 강변했다.

만약 같은 시간, 필상이 미국에 있었다면 더 마스터즈의 그린재킷 주인공은 달라졌을 것이며 굵직한 대회에서 최소한 3승은 거뒀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판단에 근거한 주장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기사 인터넷 판에 실린 댓글이다. 대부분의 팬들이 적극 동조하며 이제는 미국으로 가라고 외쳤다.

“어쩐 일이세요?”

“미사키와의 호흡이 어떤지 보러 왔죠. 근데 기우였네요.”

“성호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잘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호흡을 맞춘 첫날부터 역사에 길이 남을 신기록을 세운 걸 보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다시 깰 거거든요. 하하하!”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이 대표였다. 세심한 그녀는 필상에게 변화가 생긴 것에 대한 점검이 필요했던 것이다.

“괜찮으면 저랑 어디 좀 가요.”

“밥 먹는 자리입니까?”

“네.”

“미사키. 같이 가자.”

필상은 너무도 당연하게 미사키를 데려갔다.

그 모습이 좀 낯설었지만 좋은 호흡은 그런 배려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에 오르자 필상은 본질을 꿰뚫는 말을 꺼냈다.

“공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조건은 달아야겠지요. 다시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조건 없이 해약하는 것으로.”

“그건 당연하죠.”

불편한 자리였다. 하지만 당사자인 필상이 결정할 사안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관계자들과 자리를 마주했다.

그런데 필상이 흔쾌히 계약을 유지한다는 말을 하자 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즉석에서 작성한 계약서 변경 사항을 확인한 그들은 마지못해 사인했다.

“좋은 제품을 꾸준하게 보내 주신다면 저도 무너진 회사 이미지를 복구하는 데 적극적인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저희로서도 완벽한 지원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화는 간단하게 끝냈다.

이제 겨우 1라운드를 치른 상황이라서 밖으로 나도는 것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사를 마친 필상은 곧바로 연습장으로 복귀했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대표에게 기다렸던 소식을 드디어 접했다.

“PGA 챔피언십에 참가해 달라는 정식 요청이 왔어요.”

“사무국 측에서 온 겁니까?”

“커미셔너가 직접 제게 연락을 했더라고요. 정말 왜 그러냐는 엄살까지 보탠 걸 보면 이제 못 이기는 척하고 나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어차피 나가려고 했다는 걸 모르나 보네요. 하하하.”

“그럼 출전하겠다고 전해도 되죠?”

“물론입니다. 이번 대회 끝나면 바로 넘어갈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아 주십시오.”

이 대표가 슬쩍 곁눈질로 미사키를 바라보는 광경에 필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캐디로 계속 쓸 의사가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이참에 미사키와 전속계약을 진행해 주세요.”

“미사키의 의향은 묻지도 않고요?”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앞자리에 타고 있던 미사키의 고개가 뒤로 홱 돌았다. 한국말은 몰라도 대충 감을 잡았는지 환한 미소가 가득 피어오른 얼굴이었다.

이 대표가 짧게 설명을 보태자 그녀는 오른손을 꽉 움켜잡으며 아주 기쁜 마음으로 동의했다. 조건은 이 대표에게 일임했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필상은 연습장에 돌아와 다양한 샷을 점검하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숙소로 돌아온 필상은 흑돈에게 전화를 넣어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공필상 프로 -28, 메이저 대회 3연승 달성!]

완벽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었고 2위와 무려 15타 차를 기록하며 독보적 존재감을 유감없이 증명한 대회였다.

첫날 -14를 기록했지만 이후 주최 측의 처절한 노력에 따라 스카이72 코스는 지뢰밭으로 변모했다. 무리수를 두는 선수에게는 철저하게 응징하는 세팅이었기에 필상도 타수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4, 5타씩 꾸준하게 줄이는 신기를 보이며 이 대회 최저타 우승 기록도 함께 작성했다.

경기를 끝낸 필상은 여주 집에 돌아와 하루 쉰 다음 날 바로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대표와 미사키를 대동한 필상이 JFK국제공항에 내리자 수많은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를 꼭 해야 합니까?”

“불편한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팬들에게 인사는 해야죠.”

“팬들보다 먹이를 노리는 야수가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알면서 왜 그래요. 부담스러우면 지금이라도 취소할까요?”

“하하. 농담입니다. 오랜만에 영어를 써야 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입니다.”

“통역 없이 인터뷰하는 것만으로도 어필이 될 거에요. 불편한 질문이 쏟아지면 못 알아들은 척해도 되잖아요.”

“아! 그런 방법이 있군요. 하하하!”

원치 않아도 이미 출전 소식이 방송을 탔다.

한국을 떠날 때도 셀 수 없이 많은 취재진에 둘러싸였지만 그래도 그 분위기는 격려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지금은 정글에 들어가는 셈이다. 본인이 자처한 면도 없지 않지만 껄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많이도 왔네요!”

“제가 곁에 나란히 앉아 진행하면서 적당히 끊을 테니까 너무 도발적인 말만 자제해요.”

“글쎄요. 그게 잘 될지 모르겠네요.”

한국은 더 극성이지만 미국 언론도 그에 못지않다.

우호적인 생각을 가진 기자들보다 아직 눈꺼풀에 차별의 망막을 덧씌운 기자들은 어떻게든 필상의 약점을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시드를 확보하고도 적극적인 출전 의사를 보이지 않은 필상을 곱게 보지 않는다. 엄연한 결과를 냈음에도 그들의 기억에 남은 것은 WGC 매치플레이에서 기권한 것에 머물러 있다.

[다음 편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