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50화 (150/354)

150. 카오야이

“태국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악 지형도 있군요.”

“멋지지? 도시인 콘깬에 비하면 골프를 즐기기에 훨씬 좋은 시골 풍경이지. 일단 고지대라서 비교적 덜 덥고 방콕이나 치앙마이에 비해 공기도 아주 좋아.”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대표는 일전에 한 번 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 방문한 필상과 모모코는 태국이 가장 더운 4월인데도 파란 하늘과 신선한 공기, 그리고 코스에 감도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카오야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카오야이 골프클럽은 필상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 코스였다. 수목이 우거진 산으로 둘러싸여 어딜 보나 자연의 기운이 왕성했고 조성된 코스도 상당히 잘 정돈된 수준이었다.

“이렇게 멋진 코스를 만들어 놨는데도 경영이 어렵다는 건 이해가 잘되지 않네요.”

“가격은 둘째 치고 기본적으로 손님이 없는 걸 어쩌겠나! 한국 단기 골프 투어 손님은 이동 거리가 만만치 않은 게 문제이고, 주변에 비슷한 수준의 골프장은 아예 한국 사람이 임대해 장박 손님을 받으니 더더욱 손님이 없는 거지.”

“그래도 투자하려고 노력했던 흔적들이 보이네요.”

코스 주변에 짓다 만 건물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누군가 거금을 들여 종합 골프 레저 타운을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중도에 파산한 것 같았다. 그 주최가 한국 투자자라는 말에 쓴웃음이 나왔다.

“우리나라 골프 투어 손님이 정말 많기는 많은가 봐요.”

“태국 전역에 골고루 퍼져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여기를 찾는 장기 투어 손님만 연간 수천 명은 되지 않을까?”

“그렇게나 많습니까?”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이른 바 ‘장박골프’라는 것인데, 은퇴한 분들이나 직업적 특성에 따라 2, 3달 일정으로 태국에 장기간 머물며 골프를 즐기는 상품이다.

한국에는 잠시 다녀만 올뿐, 이미 수년 간 은퇴 후의 삶을 이곳에서 보내는 분들도 상당수라고 했다. 그나마 가격이 센 카오야이를 찾는 분들은 비교적 여유가 있고, 훨씬 저렴한 장박투어들이 곳곳에 성행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숙소와 식사, 그리고 그린피를 포함해 하루에 25,000원인 곳도 있다고 하더군. 물론 비시즌 가격이지만.”

“아무리 물가가 싸도 그게 가능한 겁니까?”

“그러니 오죽하겠나! 한국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생활비가 적게 들고 맨땅이나 다름이 없는 코스라도 골프를 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지.”

“기괴한 행각이 이뤄지기도 하겠네요.”

“피해 사례가 하도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지경이지.”

“아! 그렇군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기는 했으나 현실을 접하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은퇴하신 분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인간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TPK 콘깬 클럽은 선수 지망생 전용 전지훈련장으로 방향을 잡고 이곳 카오야이는 일반인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운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지가 넓어서 9홀을 더 신축하는 것도 가능해.”

“기왕이면 36홀로 만들고 연습을 위한 별도의 코스도 조성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 짓다 만 건물들은 어쩌지?”

“부수고 다시 지어야죠. 태국 건축물들이 안전에 취약한 것 같던데, 세계 각지에서 찾아올 손님들을 저런 곳으로 모실 수는 없습니다.”

“리조트를 새로 짓는 건가?”

“물론입니다. 수영장과 승마도 즐길 수 있고 기왕이면 축구 연습장도 지어 전지훈련 팀을 받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 묘안일세. 하하하.”

일전에 치앙마이에 있을 때, 한국 프로 축구팀이 전지훈련을 왔던 걸 기억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추운 겨울에는 따스한 곳으로 훈련을 오는데, 태국만큼 제반 여건이 좋은 곳도 없다고 들었다.

방콕에서 멀지 않고 풍광이 빼어난 지리적 여건, 그리고 아직 크게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라서 선점의 효과도 있었다.

“이 대표님 생각은 어떠세요?”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곳 카오야이를 우리 TPK 태국 골프의 근거지로 삼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인수 가능한 다른 코스도 좀 살펴볼까요?”

“지방 정부는 물론 태국 관광청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으니까 아마 굉장히 좋아할 것 같아요.”

“자금은 넉넉하게 끌어들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최근 잇따른 발표에 벌써 줄을 대고자 하는 큰손들이 꽤 많아요. 호호호.”

사람은 역시 알면 알수록 많이 보이는 법인가 보다.

처음 치앙마이를 갔을 때는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콘깬을 다녀온 뒤에는 개척되지 않은 보석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오야이를 둘러본 필상은 생각이 바뀌었다.

치앙마이는 이미 골프 저변이 포화 지경이고 콘깬은 골프 인프라가 적고 외국인의 유입이 적은 장점이 있지만 관광이나 휴양의 개념을 넣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다.

그런데 카오야이는 전혀 다른 별천지였다.

태국 하면 푸켓이나 파타야처럼 푸른 바다와 해변이 바라다 보이는 골프장을 상상하는데, 산으로 둘러싸인 친자연적인 환경에 선선한 날씨까지, 인위적으로 만들기 힘든 멋진 그림이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날 필상과 일행들은 카오야이 주변에 조성된 8개의 코스를 직접 돌아봤다. 더 많지만 인수 대상은 그 정도였다.

“박 이사님. 전 써 제임스 골프클럽이 마음에 듭니다.”

“현재 한국 사람이 장기 임대를 하고 있는데, 괜찮을까요?”

“소유권을 넘겨받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계약 사항을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위약금을 물어주면 그만이죠.”

써제임스 골프클럽은 카오야이 코스와는 달리 이미 거대한 단지를 형성한 레저 타운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장점을 활용하지 못한 채 투자한 것을 까먹는 중이라고 판단되었다.

오죽하면 한국인에게 임대를 해 제 살을 깎아 먹고 있을까!

광대한 부지에 형성된 골프 코스는 조금만 가다듬으면 바로 세계적인 대회를 개최해도 될 만큼 훌륭했고 코스 주변에 지어진 별장식 리조트들은 곧 손님들로 꽉 채울 자신이 있었다.

필상의 의견에 이 대표가 바로 공감을 표했다.

“저도 아주 마음에 들어요.”

“그럼 수고스럽지만 대표님이 직접 확인 좀 해 주십시오.”

“그럴게요. 워낙 덩치가 커서 제약 조건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런데 태국의 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하거든요. 아마 이런 멋진 타운을 지어 놓고도 운영이 잘 안 되면 성가시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하하하.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날 저녁 필상 일행은 주지사의 저녁 초대를 받아 그의 저택으로 향했다. 그 자리에서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었다.

필상이 눈독을 들였던 써 제임스 골프클럽이 그의 집안 소유였던 것이다.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자 반응이 특이했다.

“소유권을 넘길 수는 없습니다. 저희 가문은 돈 몇 푼 때문에 땅을 판 적이 없거든요.”

“아!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제가 괜한 말을 꺼냈나 봅니다. 결례를 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필상은 계면쩍은 얼굴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이 대표의 말이 사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주지사는 다른 부분에 관심을 드러냈다.

“지분을 인정한다면 장기 임대는 가능합니다. 이십 년, 아니 원하신다면 오십 년도 가능하죠.”

놀라운 제안이다. 물론 남의 소유지에 투자하거나 사업을 벌일 생각은 없으나 오십 년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을까?

또한 그가 원한 것은 임대료를 대신한 수익에 대한 지분이었다. 즉,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를 해도 오십 년 동안 뽑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손해날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이 대표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당사자가 앞에 있지만 필상은 터놓고 대화를 나눴다.

이 대표 또한 사업의 주체이기 때문이고 상대는 그걸 잘 이해하고 있는 상태라서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저는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하지만 태국의 사업은 타이거가 주도할 계획이니까 그의 의견을 들어 보고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타이거 우즈라는 이름이 나오자 주지사, 쑤까팝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도 이번 사업에 타이거가 관여하는지 여부를 확인했었다.

“타이거 우즈가 태국에서의 사업을 담당합니까?”

“네. 모친의 나라인 태국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은퇴 후에 그가 태국에 머물 생각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 그렇다면 가문 소유의 땅을 파는 것만 제외하면 원하는 것은 뭐든 기꺼이 받아 줄 용의가 있습니다. 하하하.”

기대하지 않았던 이상한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 물론 그 저변에 깔린 감정은 호의적이고 긍정적이었다.

주지사는 필상의 팬이기도 하지만 진즉에 타이거 우즈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이다. 일전에 만난 적도 있고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그의 선전에 크게 고무된 상태였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그의 집안은 중부의 명문가로 태국 왕실과도 밀접한 관계였고 형제들은 태국 전역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가문 소유의 땅이 강원도보다 넓다는 말에 그 무슨 사족이 필요하겠는가!

이 대표가 말했던 상상 이상의 부자가 바로 그의 일가였던 것이다. 물론 그는 정치를 하고 있지만 그의 영향력은 사업을 하는 데 다양한 편의를 제공할 수 있음도 확인되었다.

“타이거에게 직접 이곳에 방문하라고 해야겠어요.”

“지금 제가 통화해 볼 게요.”

필상은 바로 그 자리에서 타이거 우즈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긴 지금 아침이고 이번 주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마이애미에 머물고 있던 타이거의 밝은 음성이 들렸다.

필상은 앞뒤 사정을 짧게 이야기했고 주지사의 이름을 들은 그가 기억해 내자 곧바로 주지사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가장 극적인 효과를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쑤까팝은 유창한 영어로 타이거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표정을 확인한 필상은 코랏에서의 제반 사업이 술술 풀릴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미스터 퍼펙트.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말씀해 보십시오. 힘이 닿는 대로 적극 돕겠습니다.”

“다음 주에 타이거가 저를 만나러 온다니까 그때 함께 여러 가지 논의를 다시 하시죠.”

“타이거가 태국에 온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니고 한국에서 열리는 투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방문한다고 합니다. 시간이 되시면 초청하고 싶은데, 주지사님도 한국을 한 번 방문하시죠.”

“한국이요? 기꺼이 가겠습니다. 하하하.”

“방문 기간에 맞춰 좋은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아직 정치적으로 민주화 수준이 낮은 태국은 군부와 기득권층의 영향력이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썩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던가!

주지사는 일단 카오야이 계약에 중재자로 나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인수하는 것을 도왔다.

주정부 지원을 통해 주변 도로망을 정비하게 되었고 전기와 수도와 같은 기반 시설에 대한 확충도 약속받았다. 게다가 필요하다면 금융권과의 연계도 알선한다고 했다.

* * *

“태국에서의 사업이 가장 잘 풀릴 것 같아요.”

“첫 번째 사업이라서 더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타이거가 매경오픈에 참가하는 건가요?”

“절 만나러 온다는데 골프백을 가져오라고 해야죠.”

“네? 그럼 확정된 것은 아닌 거잖아요.”

“놀면 뭐 하냐고, 한 푼이라도 벌라고 하면 되죠. 하하하.”

“그 정도로는 안 돼요. 얼른 확정을 지어야 매경오픈 주최 측에 알리고 홍보도 할 거 아니에요.”

“알았어요. 하하하.”

한국으로 귀국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등쌀에 못 이긴 필상은 재차 타이거와 통화했고 매경오픈 출전을 확정지었다.

“내리막을 탄 뒤로 아시아에서 열리는 대회는 처음 출전하는 건데, 확실히 공 프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요즘 몸 상태가 별로 안 좋답니다.”

“네? 그런데 어떻게?”

“다 방법이 있죠. 하지만 그가 펄펄 날면 제 우승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텐데…….”

이 대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지만 실은 작은 거래가 있었다. 매경오픈에 참가하라고 했더니 느닷없이 요즘 허리가 안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괜찮을 거라는 필상의 대답은 곧 모종의 조치를 취해 주겠다는 암묵의 동의였다. 단 한 번의 경험이지만 타이거는 필상의 각별한 능력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저나 가장 중요한 우리나라 골프클럽 인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일단 강릉의 파인비치는 거의 합의가 끝났어요.”

“소유권을 가진 강릉시가 쉽게 놔주지 않는다면서요?”

“골프장 주변의 강릉시가 소유한 매립지까지 함께 인수받는 조건을 일찌감치 제안했는데, 사실 우리로서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죠.”

“작전상 거부했었군요?”

“네. 기존 위탁 경영 업체는 투자 여력이 없고, 골프장에서 인수하지 않으면 나대지에 불과한 땅이거든요.”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대지가 되겠군요. 하하하.”

인천공항과 너무 멀어 외국 손님을 유치하기 어려운 단점은 명확하지만 국내 골퍼들을 위해서는 나쁘지 않은 위치다.

바다에 인접한 링크스 코스는 극히 드물고 주변에 유명한 관광 명소들도 있기 때문에 휴양과 골프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첫 삽은 수월하게 떴지만 아직 문제가 많았다. 양양공항이 있지만 파인비치는 국제 대회를 개최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아 결국 인천공항에서 가까운 명문 코스가 절실했다.

그런데 그게 잘되지 않았다. 지방의 운영이 어려운 퍼블릭코스는 섭외할 것도 없이 매수 의사를 밝힌 곳이 많지만 정작 수도권 골프장은 좀처럼 인수가 어려웠다.

그나마 물망에 오른 코스가 몇 있는데, 리노베이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어 확장성이 보장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있는 그대로는 필상이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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