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46화 (146/354)

146. 신선한 시각

“오빠. 정말 도와주려고요?”

“그래야지. 이렇게 예쁜 딸을 내게 보내 주셨는데 그 정도 보답은 해 드려야지.”

장인은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뒤, 돌아갔다.

구체적인 사안은 따로 의논드리겠다는 말에 상당히 고무된 그는 도쿄로 날아가 연락하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미스터 퍼펙트라는 이름이 최근 일본은 물론 아시아시장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모모코는 끝내 불안한 기색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다는 것을 필상도 모르지 않을 텐데, 자신 때문에 너무 무리한다고 걱정하는 것 같았다.

“계약이 꼬이면 어쩌려고요?”

“이 대표와 상의해 봐야지. 그리고 이번 기회에 아예 단단히 조치를 취하면 좋을 것 같아.”

“조치요?”

“정말 가능성이 있는 사업이라면 우리가 직접 투자를 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어.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손을 떼고 다른 일을 권해 드리면 어떨까?”

모모코는 그제야 표정이 밝아졌다.

아무런 복안도 없이 덜렁 지원하는 것은 무의미할뿐더러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킬 수도 있음을 필상이 잘 알고 있는 것에 안심한 것이다.

사실은 가능성 유무를 판단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통제되지 않는 구역에 계시는 것보다 필상이 준비하는 사업에 일정 부분의 역할을 주면 서로에게 득이 된다.

“아빠도 어울리지 않는 의류 사업보다는 골프장 관련 일을 하시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요.”

“내 생각도 그래. 일단 TPK에서 인수 가능한 골프장들을 알아보고 있으니까 조만간 설계도가 나올 거야.”

“그냥 어디 가서 내밀기 좋은 명함 하나 파 드리면 될 것 같아요. 친구들과 좋아하는 내기 골프를 매일 칠 수 있다면 그보다 기뻐할 일은 없을 걸요? 흐흐흐.”

“기분 상하지 않으시게 조심해야 해. 계약은 이 대표더러 차일피일 미루라고 할 테니까, 슬쩍 지나는 말로 사위가 골프 클럽을 인수할 거라는 말을 흘려 봐.”

“덥석 무시겠죠. 사장 시켜달라고 할까 봐 그게 걱정이에요.”

“그게 뭐 어려워. 경영은 어차피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거니까 직함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어. 하지만 그것보다는 당신의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응원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오빠…….”

그냥 마지못해 자리를 만들어 드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당신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말에 모모코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물론 뜻대로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딸인 자신도 포기한 아빠를 필상이 끝까지 배려하려는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필상은 모모코가 마음 아파할 일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에 일단 장인을 사업에 참여시킬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놀고먹거나 배임 행위를 저지를 경우 방치할 의사는 전혀 없다.

땀 흘리지 않고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여러 안전장치를 해 둘 요량이었다.

* * *

“일찍 나왔네?”

“네. 어제 일찍 잤습니다.”

“일본 최고의 미녀 옆에서 잠이 잘 올 것 같지는 않은데?”

“하하하. 왜 이러십니까. 유부남끼리.”

“어? 벌써 그런 건가? 하기야 살을 맞대고 살면 다 거기서 거기긴 하지. 하하하.”

양 프로에게 유부남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지만, 사실 필상은 아직도 모모코가 자신의 곁에서 자는 모습을 보면 설렌다.

인생 역전을 이뤄 냈지만 마치 긴 꿈을 꾸고 있다는 착각이 일어 볼을 잡아당겨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몸 좀 풀어 볼까?”

“네. 시작하시죠.”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일단 선수는 오늘 경기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샷에 대해 의논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고.

한 시간가량 각자 연습에 집중할 무렵, 먼저 타석에서 물러서는 양 프로가 꺼낸 첫 마디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젊음이 좋긴 하네.”

“네?”

“먼저 쉬지 않으려고 버텼는데 되지도 않을 고집이었던 거지. 하하하.”

“저도 그렇게 젊은 건 아닙니다. 프로님 앞에서 꺼낼 말은 아니지만.”

“87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는 34살인가?”

“네.”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가더라고. 난 한창 전성기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먼저 인사를 하고 어른 대접을 하는 거야. 그게 익숙해졌다는 건 이미 노장이라는 말이지. 요샌 꼰대라고 하던가?”

갑자기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크게 보였다.

72년생인 그는 최경주, 미켈슨보다는 어리지만 비슷한 세대라고 봐야 한다. 쉰에 다가가며 젊은 선수들과 겨루기 위해 부단히 스스로를 관리한다.

체력 관리는 기본이고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연습한다. 하다못해 먹는 것까지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고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고단한 삶을 이어 가는 이유는 누가 억지로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이미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본 적이 있는 그로서는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 아니라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과정의 일부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함께 운동을 시작했던 분들 중에 아직 현역에 남은 분들이 별로 없으시잖아요?”

“음……. 그렇지. 그러고 보니 난 행복한 사람이었군!”

“저도 그렇고 프로님도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하하하. 그것도 그러네. 원지 않아도 마지못해 버티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설사 힘들고 어려워도 자신이 원한 일이기에 후회나 미련이 적을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필상도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회사의 일원으로 취업해 전체가 가고자 하는 길,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너가 원한 목표를 향해 달렸을 뿐이다.

그것이 지상목표인 양.

그럼에도 불구하고 팽을 당했다. 이용가치를 따진 것도 아니고, 오로지 오너의 필요에 따라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아무런 가치도 평가받지 못함으로써 겪게 되는 개인의 좌절은 우리 사회가 과연 올바른 길로 향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참. 궁금한 게 하나 있어.”

“말씀하십시오.”

“우리 KPGA 말이야. 올해 메이저급 대회가 대거 생긴다고 했다던데, 실현 가능성은 있는 건가?”

“선배님들이 도와주시면 훨씬 수월할 것 같습니다.”

“내 역할이 있다면 언제든지 두 손 들고 앞장설 수 있어. 문제는 뭘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모른다는 거지.”

최경주 프로와 양용은 프로가 PGA에 진출해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가 KPGA가 한 발 도약할 수 있는 적기였다.

세계를 주름 잡는 한국 여자 골프처럼 한국 남자 골프도 충분한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니까. 하지만 기회를 놓친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매년 엄청난 성장을 거듭해 LPGA마저도 견제하는 KLPGA와 비교하면 더 쓰라린 현실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최경주 프로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대회까지 창설해 개최한다.

그런데도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현실을 가장 안타까워한 사람들이 바로 양 프로와 같은 세대였던 것이다.

“KPGA를 움직이시는 분들이 변화에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설득해 주십시오.”

“아!”

마땅히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정체되거나 퇴보하는 모든 문제에는 복합적인 사안들이 얽혀 있다.

하지만 본질을 들여다보면 항상 사람이 문제다.

대표성을 가지는 조직은 이권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걸 기득권으로 만들려는 이들은 위계와 파벌을 형성한다.

조직의 논리는 본연의 역할이나 대의마저도 무시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그게 반복되면 결국 길을 잃고 만다. 지금 KPGA가 그렇다고 치부할 수는 없지만 변화를 두려워하는 기득권 세력은 없는 논리도 만들어 낼지 모를 일이다.

필상은 그에 대해 아는 바 없지만 마침 적절한 기회라고 판단해 양 프로에게 그 역할을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노력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어제 자네 스윙에 대해서도 말이 많더군.”

“아! 그랬습니까?”

“그래서 나도 좀 찾아봤지.”

긴장된 순간이었다.

주변에서 뭐라고 한다고 해서 자신의 의지를 굽힐 의사는 없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양 프로의 말이라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프로님이 보시기에도 많이 불안하던가요?”

“불안? 하하하. 불안할 이유가 전혀 없더군. 중요한 것은 임팩트잖아. 스윙 궤적이 어떻고 공략이 어쩌고 하는 소리는 다 헛소리지. 정확히 원하는 대로 때려서 보내는데 뭐가 문제야!”

“아!”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었다.

늦게 배운 만큼 필상은 가장 안정적이고 표본적인 스윙을 배우려고 수없이 많은 프로들의 가르침을 섭렵했다.

직접적인 사사는 아니었지만 좋은 코칭이라면 편견 없이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려고 얼마나 인터넷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는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결과 교과서적인 스윙을 한다는 평가와 함께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전설을 써내려 가는 중이다.

그런데 투어에 뛰어든 지 1년도 되지 않아 자신만의 스윙을 만들려고 기존에 가졌던 아주 훌륭한 틀을 벗어던졌다.

물론 기억하지 못하거나 구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형적인 그런 스윙으로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십분 발휘할 수 없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몸 상태, 매번 다른 샷의 환경, 단 한 번도 동일하지 않은 공의 포지션, 거기다가 기분마저도 항상 바뀌는데 똑같은 샷을 고집하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상황을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황에 맞춘다는 새로운 골프 이론이 등장한 셈이네! 신선한 그 시각, 자네라면 가능할 것 같아.”

“긍정적으로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수없이 많은 굴곡과 변화를 겪게 될 거야. 사람은 세월을 이길 수 없는 법이거든. 자네 이론대로라면 그때마다 교정할 필요가 없는 거지. 하지만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제 생각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재의 저는 그것이 옳다고 믿을 뿐입니다.”

생각만 하는 것과 입으로 내뱉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막연한 생각이 언어의 옷을 입는 순간, 더 정교해지고 논리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특히나 상대가 양 프로처럼 다양한 경험을 가진 선배라면 더 정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와 대화를 통해 필상은 큰 힘을 얻었다.

먼 미래의 자신이 어떤 골프 선수로 남을지 모르지만 지금 자신의 도전과 실험이 결코 헛된 짓이 되지 않게 하려면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아직 자신의 변화를 읽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미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법,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2라운드를 맞이했다.

-이번 스윙은 마치 클럽이 춤을 추는 것 같지 않았나요?

-짐 퓨릭의 8자 스윙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시야를 가로막은 나무를 피하기 위한 드로우 샷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전 사실 어제 오늘 외신의 몇몇 기사를 보고 정말 화가 났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죠? 7언더 단독 1위, 더 할 말이 뭐가 있나요?

-하하하. 비판을 위한 비판만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공 프로의 상징과 같던 간결한 스윙이 사라지고 갑자기 현란한 스윙이 대신 등장했으니 의아한 입장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이고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한 전 단계, 임팩트가 아주 정확하고 빼어나다는 것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요! 실력도 성적도 나오지 않았다면 문제를 지적해도 좋아요! 하지만 본질을 왜곡하는 보도, 거기다가 더 열불이 나는 것은 그런 터무니없는 외신을 끌어다 쓴 국내 기사가 여럿 있었다는 겁니다. 도대체 왜들 그러죠?

허 위원은 잠시 대답을 늦췄다.

자신이 바로 맞장구를 치면 열불이 난다는 표현까지 쓰고 있는 임한석 캐스터가 더 흥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허 위원도 그의 입장에 적극 동의한다.

외국 기사라면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내용인 줄도 모르고 베껴 쓰는 기자들의 비양심적인 행위는 기자의 자질마저 의심케 한다.

평생 그렇게 습작만 하다가 남의 눈탱이나 치려고 하겠지.

더욱이 온 국민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필상에게 시기와 질투에 눈이 먼 외국 전문가의 잣대를 들이대다니, 그쯤 되면 언급하지 않아도 곧 자폭할 것 같았다.

“살살 좀 해요.”

“왜?”

“어제 드라이브 평균 비거리가 얼마나 나왔는지 아세요?”

“368야드. 그게 왜 문제지?”

“2위랑 50야드 이상 차이가 나니까 그러죠. 이러다 약물검사 받으라는 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다고요.”

“하하하. 그것도 나쁘지 않지. 깨끗한 게 증명될 테니까.”

“형 때문에 엄한 애들이 죽어난다고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주니어 새싹들 말이죠. 우리 배울 때는 타이거 우즈 따라 하라고 시켰는데 이젠 형의 장타를 훈련시키려고 할 거 아니냐고요. 인간의 샷이 아닌데!”

“인간의 샷이 아니면 뭔데?”

같잖은 소리에 면박을 줬지만 새로운 사실을 하나 인지했다. 그저 평범한 선수라면 모를까, 지금 자신은 한국 골프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그 말은 곧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주니어들이 자신을 따라 하는 것처럼.

때문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근력이 완성되지 않은 애들에게 무리하게 장타를 훈련시키다 보면 오히려 선수 생명을 갉아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시엔 대회에서 연투로 혹사당해 투수 생명이 짧아지고 결국 프로로 전향한 뒤에는 평균 이하가 되는 일본 야구 선수들처럼.

또 하나 의식해야 할 부분은 자신만의 스윙을 만드는 데 보다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본도 익히지 않고 따라 한다면 아까운 세월만 허비하게 될 테니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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