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43화 (143/354)

143. 자신과의 싸움

“가족들은?”

“아침 비행기로 귀국했어요.”

“인사라도 했어야 하는데 아쉽네.”

“안 그래도 안부 전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두 분께 모두.”

“이 대표도 들어간 거야?”

“네. 저랑 이미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럼 일단 타이거의 저택으로 가자고.”

미켈슨이 찾아왔다. 필상이 머무는 호텔로.

함께 타이거의 집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필상도 이번에 귀국하면 언제 다시 들어올지 몰라 사업 얘기를 어느 정도 확정짓고 싶었다.

“이건 뭐……. 저택이군요.”

타이거의 집은 어떤 것을 저택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그 기준을 한참 올려놓은 것 같았다.

미국 내에서도 집값 비싸기로 소문난 주피터 아일랜드에 위치한 저택은 전용 해변이 있는데도 엄청나게 큰 고급 수영장이 있고 규격에 맞는 농구 코트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역시 뒷마당 골프 홀이었다.

드라이버 장타를 소화할 거리는 아니지만 아이언 샷, 숏 게임, 퍼팅까지 소화할 수 있는 페어웨이와 러프, 4개의 그린과 6개의 벙커까지 갖췄다.

가와사키 집에 연습 타석을 만들고 얼마나 흐뭇했던가!

“우리 집에도 그린과 숏 게임 연습 시설은 있어. 물론 이렇게 거대하지는 않지만.”

“부럽네요…….”

차에서 내리자 타이거가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필상이 부러움이 가득 찬 표정을 보이자 어깨를 으쓱한 그가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말을 던졌다.

“앞으로 이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멋진 골프 코스를 보유하게 될 거 아닌가?”

“그렇긴 하죠. 지금 생각난 건데, 전 코스 옆에 예쁜 집을 지어야겠습니다. 언제나 나가서 칠 수 있게.”

“나도 그 옆에 하나 지으면 안 될까?”

“나도!”

타이거가 맞장구를 치자 미켈슨도 바로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다들 크게 웃었다.

해변이 보이는 테이블에는 이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만찬이 마련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인사말이 오간 뒤, 대화의 주제는 필상에게로 쏠렸다.

“공 프로. 몸은 괜찮아졌나?”

“네. 푹 쉬었더니 이제 아주 개운합니다.”

“난 자네의 결정을 존중해. 나도 기권 여러 번 해 봤거든.”

필상의 성을 유일하게 정확히 발음하는 타이거가 필상의 걱정부터 털어 내고자 했다. 이미 미켈슨과는 여러 번 통화해 말이 필요 없었지만 타이거와는 대회가 끝나고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켈슨이 첨언하며 끼어들었다.

“이제 콩이 본격적으로 나서면 우린 다 은퇴해야 할 거야.”

“그건 무슨 말입니까?”

“갑자기 비거리가 늘었다고 하잖아. 그것도 한 클럽 이상.”

“아! 그게 가능한가요?”

“그러니까!”

괜히 그런 말을 했나 싶었다.

하지만 건강에 이상이 없는데 기권한 이유라도 밝혀야 했기에 생각 없이 던진 사실인데, 미켈슨은 타이거를 내부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은 그 내용이 평생 골프만 해 온 그들에게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타이거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화제를 전환했다.

“식사하면서 우리 사업 얘기나 좀 해 보죠.”

“TPK GC. 어때?”

“필. TPK는 알겠는데 GC는 뭡니까?”

“골프 컴퍼니. 골프 관련 사업을 할 거잖아.”

언론에서 이 세 명의 조합을 묶어 지칭한 표현이다.

누가 뭐래도 사업의 주체는 이 3명이 될 것이기 때문에 필상도 공감이 갔다.

“좋네요. 하하하.”

“그렇지? 그럼 일단 난 한 건 했으니까 구체적인 구상을 좀 풀어놔 봐.”

“일단 사업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아시아에서 시작할 겁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다음 단계고요…….”

필상은 이 대표와 상의한 몇몇 사업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처음부터 철저히 장기적인 계획 아래 하나씩 이뤄 나가는 보다 안전한 과정을 선택했다.

중요한 것은 일을 진행하는 주체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J&L의 이 대표를 세우는 데 이견이 없었고 소기의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순수하게 3명의 투자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지분 구조가 중요한데, 난 콩 프로가 원하는 대로 할게.”

“저도 이견이 없습니다.”

“하하하. 왜들 이러십니까? 동등한 비율로 하시죠.”

지분의 구조를 필상에게 맡기는 것은 투자를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의 선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초기 자본의 크기가 예상보다 작아서 누구든 충분한 여력이 되기 때문에 가급적 많이 투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미켈슨이나 타이거는 필상에게 지분 50%를 제안했다.

“나중에 눈덩이처럼 커질 텐데요?”

“어차피 자네가 제안한 거고 자네가 책임질 것 아니던가?”

“하하하. 좋습니다. 그럼 저는 30%, 그리고 20%는 라일리에게 주죠. 그녀도 그래야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테니까요.”

“좋네. 하하하.”

1000만 달러(114억 원) 투자에 대한 지분이 결정되었다.

결코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사업이 구체화되면 그만큼 은행에서 융자를 받을 계획이었다. TPK가 상징하는 여력을 감안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일단 콘깬에서 인수한 골프장을 기점으로 태국 중북부에 2개의 챔피언 코스를 더 개설하는 사업을 첫 단추로 결정했다.

“콘깬 공항을 국제공항으로 만드는 게 필요하겠어.”

“그건 자연스럽게 성사될 겁니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방콕 주변과 치앙마이가 아닌 제3의 대규모 골프 타운 조성을 위해 태국 정부와 직접 협의를 시작할 겁니다.”

“스케일이 남다르군. 하하하.”

“어차피 태국은 관광이 국가의 주요 산업이고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베트남의 추격에 신경을 바짝 쓰고 있는 상황이라서 여건이 아주 좋습니다.”

“으음……. 자네한테만 너무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하니까 우리가 움직일 필요가 있을 때는 언제든 호출만 하게.”

“태국은 아무래도 필 형이 아니라 우즈 형이 움직여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게 뭐 어렵겠나!”

타이거우즈의 모친이 태국 국적이기 때문이다.

서운해하는 미켈슨은 추후 일본을 공략할 때 나서기로 했다. 한국은 당연히 필상이 주도할 것이고 최근 극적인 평화 모드로 전환된 북한에 투자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대충 사업에 관한 논의가 마무리되자 타이거는 다시 투어프로로서 본연의 자세로 돌아왔다.

갑자기 필상에게 자신의 스윙에 대한 조언을 구한 것이다. 미켈슨은 물론 필상도 좀 당황스러웠지만 필상은 자신이 느낀 것들을 여과 없이 쏟아 냈다.

경험으로 치면 아직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는 필상의 남다른 능력을 신뢰하는 것 같았다.

“몸에 무리를 주는 스윙을 교정해야 더 오래 투어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말은 내 스윙이 아직 몸에 무리를 준다는 건가?”

“스윙이 문제가 아니라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일시적인 치료는 가능하겠지만 반복되는 부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버릴 건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일이라 끼어들지 못했던 미켈슨이 타이거가 잠시 생각에 잠기자 도우미로 나섰다.

“타이거는 나보다 5살이나 젊잖아. 그럼 나도 스윙 교정이 필요한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T형이 더 많은 우승을 쌓은 저변에는 그 이상의 노력과 집념이 투입되었는데, 딱 그만큼 몸이 성하지 않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우승을 언급하는 순간, 그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지만 가만히 새겨 본 미켈슨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이번에 우승했다시피 앞으로 남은 날은 자신이 우즈보다 유리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거는 지나온 것, 미래가 더 중요하지 않겠나!

그런데 타이거에 비해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대목은 영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토를 달지는 않았다. 노력의 기준은 늘 상대적인 것이지만 타이거가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타이거의 입이 열렸다.

“자네 조언을 깊이 새기지. 하지만 막히면 좀 도와줘.”

“물론입니다. 기꺼이.”

그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빅뉴스다.

현존하는 골프 선수 중에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다. 물론 선수와 코치는 별개의 영역이지만 경험이 일천한 필상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부터가 신뢰의 깊이를 가늠했다.

그날 필상은 모처럼 편안하게 와인까지 즐겼다.

지극히 냉철하고 이성적인 타이거에게 T형이 아니라 그냥 형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도 말투가 한결 편안해졌는데, 그건 미켈슨도 가능하지 않았던 관계였다.

* * *

“마스터즈에 불참한다고?”

“네. 이미 결정하고 통보했습니다.”

“혹시 한국이나 일본 투어에 참가하나?”

“아닙니다. 참가할 일본 투어 개막전은 그 다음 주입니다.”

“그런데 왜?”

다음 날 아침 공항으로 떠나기 전 상황이다.

미켈슨은 필상에게 오거스타에서 만나자고 인사했는데 필상이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다.

KPGA도 개막하지만 대회 규모가 작은 대회는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다.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규모의 대회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총상금이 미국은 물론 JGTO의 우승 상금보다 적기 때문에 자신을 초청하려면 대회의 규모를 키우라는 시위였다.

“샷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의문을 표한 사람은 가만히 지켜보던 타이거였다.

“아직 후유증이 남은 건가?”

“네. 보다 완벽한 모습으로 팬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부끄럽군.”

그는 부상 복귀 후에 다시 부상을 당하는 일을 반복해 왔다. 팬들의 성원도 있지만 스스로 조바심을 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스스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필상의 자세에 대해 부끄럽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그럼 5월 3째 주에나 볼 수 있는 건가?”

“그것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PGA 챔피언십인데?”

“같은 기간에 한국의 메이저 대회도 열립니다. 저는 그 대회에 출전 의사를 이미 밝혔습니다.”

PGA 메이저 대회는 골프 선수라면 누구든 출전을 원한다.

물론 시즌 2승을 거둔 필상은 자격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본인이 원지 않는다면 출전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

지난 주 기권이 비겁하다고 언급했던 이들이 이번에도 같은 헛소리를 지껄일지 두고 볼 문제였다.

필상은 그저 스스로 팬들에게 한 약속을 지킬 뿐이다.

그런데 타이거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자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KPGA에 메이저 대회는 없지 않던가? 메이저급 대회는 있어도.”

“하하하. 메이저라고 지칭한 규정은 없지만 한국 골프팬들과 제 마음에 메이저면 그게 메이저 아니겠습니까!”

“내가 한국 투어를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라는 걸 알지?”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필상이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는지 타이거의 당황한 표정이 볼만했다. 말이라는 것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본인은 악의가 없었지만 필상이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을 열려는 순간, 눈이 마주친 필상이 씩 웃으며 음흉한 속내를 드러냈다.

“US 오픈이 끝난 다음 주에 한국에 한 번 오시죠?”

“자네랑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간다면.”

“하하하. 좋습니다. 제가 US 오픈에 참가하고 저랑 같이 한국 오픈에 나가시기로 약속한 겁니다?”

“오케이!”

“KPGA 사무국에 그렇게 통보할 겁니다. 주최 측이 따로 챙겨 주지 못한다면 제가 저희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게 더 좋지. 하하하.”

한국 오픈에 타이거가 온다면 대회의 품격이 달라진다.

게다가 필상과 함께 출전한다면 흥행에도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부상 때문에 웬만해서는 다른 투어에 나가지 않던 그였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살살 서운함을 느꼈던 미켈슨이 드디어 폭발했다. 자신에게는 한 마디도 없는 것이 괘심했던 것이다.

“콩! 정말 너무하는 거 아냐!”

“왜요?”

“나한테는 가자는 말도 없었잖아!”

“형제는 언제든 도와주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닌가요?”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이번에는 그냥 못 넘어가겠어.”

형제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지만 서운함은 여전했는지 필상에게 다가온 그가 헤드락을 걸었다.

그만큼 친숙한 느낌을 가진다는 것인데,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덩치는 미켈슨이 크지만 날렵한 필상은 그의 팔을 낚아채 뒤로 꺾은 뒤 바로 목을 졸랐다.

“어 어!”

얼른 탭을 쳤지만 도발에 대한 응징은 확실했다.

“형도 그때 저랑 같이 갈 거죠?”

“알았어. 우리 TPK사단 회의를 한국에서 하자고. 한국에서.”

“아! 그럼 제가 미리 준비를 좀 해 놓겠습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세요. 하하하.”

* * *

한국에 돌아온 필상은 조용히 연습에 매진했다.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었고 챙겨야 할 일도 많았지만 이 대표가 집으로 찾아와 의논했고 가끔 절간을 찾았다.

신앙이 깊어서가 아니라 작은 암자를 찾을 때는 어김없이 모모코와 동행한 필상은 하루 이틀 토납에 온 정성을 들였다.

그사이 ‘더 마스터즈’가 개최되었고 미켈슨과 타이거가 나란히 톱 10에 들어 주목을 받았다.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꾸준한 성적을 내는 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3주 동안 조용히 자신과의 싸움에 매달렸던 필상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장소는 인천공항이었다. JGTO 개막전 출전을 위해서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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