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37화 (137/354)

137. 팔불출

“이거 재미있네.”

“카메라가 자꾸 형을 비추는데 괜찮아요?”

“흥미로운가 보네. 내가 자국의 선수를 응원할지, 나를 칭찬한 타이거를 응원할지 궁금한가 봐.”

“만약 기자가 질문하면 어쩌려고요.”

“그야 당연히 김시우를 응원한다고 말해야지. 타이거에 비하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선수잖아. 언더독을 응원하는 걸 뭐라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그래도 적당히 하세요. 이제 좀 이미지가 좋아졌는데.”

“하하. 이번 대회 성적을 내려면 그 정도 긴장감은 자청해서 만드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형. 변태세요?”

성호는 결국 한 방 맞고 말았다.

누가 봐도 장난처럼 보였지만 복부에 꽂힌 주먹의 무게는 상당했다. 하지만 성호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못해.

캐디를 패는 선수, 필상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보다 좋은 핑계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필상이 치명적인 이미지 손상을 받는 것보다는 툭 튀어나온 농담에 대한 응징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게 여러 모로 나았다.

그런데 경기의 양상은 좀처럼 타이거가 주도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김시우의 플레이가 아주 탄탄하고 상대와의 경쟁을 즐길 줄 알았다.

상대가 치고 나가면 그 또한 멋지게 멍군을 불렀고 기회다 싶으면 여지없이 집중력을 발휘했다. 파3, 17번 홀에서 7m 롱 퍼팅이 들어가는 순간 필상은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 저녁 신문에 난리가 나겠어요!”

“요새 누가 신문을 본다고!”

“에이 진짜! 여하튼 대단하네요. 김 프로.”

“PGA에 진출할 정도면 기본적인 기량은 갖췄다고 봐야지. 게다가 매치플레이에 아주 강점을 지녔네.”

“그래서 연습하러 가시는 겁니까?”

“응. 퍼팅 그린으로 가자.”

골프가 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잠시 망각한, 자만했던 마음가짐을 고쳐먹었다.

첫 상대가 비록 PGA 정회원이 아닌 것이 기회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시험이라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드디어 우리 공 프로가 7번 홀로 들어섭니다. 럭키 세븐, 첫 홀의 숫자도 아주 마음에 드네요. 하하하!

-텍사스에 사시는 교민 분들이 모두 나오신 것 같습니다. 늘 글로브 라이프 필드만 찾으셨는데 이젠 미스터 퍼펙트를 응원하기 위해 필드에 나오셨습니다.

-레인저스의 홈구장은 알링턴 파크 아닌가요?

-하하. 올해부터 글로브 라이프 필드라고 개명되었습니다. 그런 지식으로는 메이저리그 중계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아이고! 저는 우리 공 프로의 중계를 맡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입니다. 하하하. 맞대결을 펼칠 샤르마 선수에 대해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같은 아시아 선수가 같은 조에 편성된 것은 좀 아쉽습니다. 본인도 인터뷰에서 이기기보다는 한 수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했지만 원래 그런 선수가 더 무서운 법입니다.

샤르마는 필상에 비해 한참 젊어 먼저 다가와 인사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짙은 눈썹 아래 까만 눈동자는 상당히 총명하고 선량해 보였다.

하지만 플레이는 과감하고 거칠었다.

201야드 파 3인 7번 홀에서 7번 아이언을 잡아 그린을 훌쩍 넘겼다. 아마 자신이 만만치 않음을 증명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필상은 차분하게 6번 아이언으로 컨트롤 샷을 구사해 2m 버디 기회를 마련했다. 상대가 차분했다면 차라리 긴장했을 텐데 서두르는 모습에 오히려 여유를 찾았다.

그는 어프로치도 길었고 5m 퍼팅을 넣지 못하며 컨시드를 받아 첫 홀부터 보기를 기록했다. 물론 필상은 수월하게 버디를 잡아 1업으로 앞서 나갔다.

“잔뜩 긴장했네요.”

“자신과의 싸움부터 이겨야 할 것 같군!”

“그러니까요.”

498야드 파 4인 8번 홀에서는 그의 티샷이 아예 우측 나무숲으로 들어갔다. 몸이 먼저 나가며 클럽페이스가 열려 맞은 어이없는 푸시성 티샷이었다.

필상은 물론 336야드를 페어웨이에 떨어뜨리며 상대를 압박했고 레이 업을 한 그에게 절망적인 상황을 직면케 했다.

164야드를 7번 아이언으로 가볍게 때려 또 다시 핀에 붙여 버렸던 것이다. 결국 2홀에 2업으로 앞선 필상은 8&7으로 11개 홀 만에 승부를 결정지었다.

-너무 싱겁네요.

-비긴 3홀은 공 프로가 파를 한 홀입니다. 물론 파를 하고도 이긴 홀이 2개나 있지만 11개 홀에서 공 프로는 무려 6개의 버디를 잡았으니 샤르마로서는 비벼 볼 데가 없었던 거죠.

-내일 만날 브랜든 그레이스도 수월한 상대 아닙니까?

-PGA는 2승이지만 EUR의 9승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장타자이고 올 1월에 우승을 했던 점을 주시해야 합니다.

-그래도 무난히 이길 것 같고 결국 금요일에 만날 잰더 슈펠레가 어떤 성적을 안고 나타날지 그게 문제로군요.

-슈펠레는 이미 오전에 그레이스를 3&2로 이겼습니다. 내일 샤르마를 이길 가능성이 높아 결국 금요일이 16강을 위한 1장의 카드를 놓고 공 프로와 결전을 가를 것 같습니다.

잰더 슈펠레는 1993년생이지만 PGA 데뷔는 2017년이다.

동갑내기 경쟁자 조던 스피스가 2013년에, 다니엘 버거가 2015년에 신인왕을 차지한 것에 비하면 한참 늦게 출발했다.

하지만 2017년 루키로서 다승을 거두며 신인왕을 차지한 슈펠레는 작년에 2승을 추가하며 상금 순위 2위에 올랐다.

그의 기록은 어떤 부분에서도 1위는 없지만 드라이브 티샷 정확도를 빼면 대부분 최상위권을 유지해 투어 최고의 만능 플레이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나 그의 이름 첫 이니셜을 딴 X 팩터라는 이론은 칩샷의 일관성을 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손목의 스냅을 이용한 숏 게임은 부정확해 가슴이 타깃 방향으로 향하는 동작의 흐름을 중시하는데,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이론이다.

“오빠! 축하해요.”

“응. 고마워. 엄마는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긴. 풀밭에 놀러 다니면서 힘들면 관에 들어앉아야지.”

“참!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얼른 씻고 나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니야. 우린 따로 식사하러 갈 거니까 넌 신경 쓰지 말고 원래 계획한 대로 해.”

엄마는 필상이 가족들을 챙기느라 연습을 소홀히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오늘 넉넉하게 이겼지만 행여 가족들이 건너와 아들의 경기에 영향을 미칠까 저어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사실이 그러했고 혹시 좋지 못한 결과라도 나오면 가족들 때문이라며 상심이 크실 것 같아 그 말에 동의했다.

“어? 언제 왔어?”

필상은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를 하고 바로 연습장에 왔다.

그런데 한 시간가량 지나자 저녁을 거하게 걸친 우즈와 미켈슨이 나란히 연습장에 나타난 것이다.

우즈는 오늘 김시우에게 된통 당했으니 의욕이 불타겠지만 여유 만만 승리한 미켈슨은 의외였다.

“가족들이 저를 왕따 시켰습니다.”

“너무 예쁜 아내에게 기가 다 빨릴 것 같아 그랬나?”

“어허! 모모코가 예쁘기는 하지만 기를 빼앗는 그런 여인은 아닙니다. 오늘 8&7으로 이긴 걸 보면 모르겠습니까?”

“봤어. 아주 숨 쉴 틈을 안 주더군. 하하하.”

미켈슨과 잠시 수다를 떠는 사이, 타이거는 연습을 시작했다. 공을 때리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리자 잡담을 나누던 둘도 타석에 들어서 땀을 흘렸다.

중간 중간 미켈슨의 스윙에 대해 지적하던 필상은 조용히 앉아 타이거의 스윙을 지켜봤다. 그의 샷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그의 스윙이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왠지 상체가 부자연스러웠다.

‘목 부상이 완치된 게 아닌가?’

그의 부상 경력을 짚어 보면 부상 병동이라고 할 만하다. 무릎, 허리, 손목, 등, 목, 골프 선수들이 한두 번 겪는 부상을 그는 거의 종합 세트로 달고 살았다.

“타이거. 잠시 쉬죠.”

“그럴까?”

굳이 다가와 휴식을 권하는 필상의 말에 그는 순순히 따랐다. 실제 그는 지금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을 알면서도 연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시우에게 패한 것이 꽤나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그와 나란히 앉은 필상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등부터 목으로 이어지는 부상이 재발한 겁니까?”

“재발은 아닌데 좀 불편하기는 해.”

“제가 마사지를 좀 배웠는데, 잠깐 살펴봐도 될까요?”

“마사지?”

“네. 잠깐이면 됩니다.”

실제로 필상은 스포츠 마사지를 비롯해 지압과 경락 마사지도 공부했다. 본인이 이제 운동선수로 살기 때문에 몸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취하는 행동은 그것 때문이 아니다.

홀로 세상의 기대와 싸우는 그의 무거운 책임감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싶다는 호의를 품었기 때문이다.

필상의 손이 어깨에 닿자 그는 움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뭔가 화끈한 느낌이 전달되었기 때문인데, 그게 오히려 몸을 청량하게 한다고 느껴져 기다렸다.

그런데 어깨에서 시작한 마사지가 목과 등으로 이어지며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 그는 마침내 눈을 감고 온전히 필상의 손에 몸을 맡겼다.

“쟤들 뭐 하냐?”

보다 못한 미켈슨이 다가오지는 못하고 성호에게 물었다. 그냥 봐도 등을 주물러 주는 것인데, 미켈슨은 필상의 행동이 뭔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호의 무뚝뚝한 대답은 그의 의구심에 더욱 더 강한 불을 붙였다.

“미스터 콩이 약손이거든요.”

“약손?”

“만지면 뭐든 낫는 손. 그걸 한국인들은 약손이라고 해요.”

“콩 프로가 의사 면허도 있었어?”

“의사 자격은 없지만 마사지에는 일가견이 있을 겁니다.”

성호는 대충 눈치를 채고 있었다.

필상은 아무 이유 없는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다.

지금 그 행동은 몸이 불편한 타이거를 돕는 것이고 그게 필상 자신에게는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오히려 손해가 될 것 같아 퉁명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필상은 무려 10여 분을 정성껏 마사지를 해 줬고 눈을 감고 있는 타이거의 표정은 마치 곤히 잠든 사람처럼 평온했다.

“어떻습니까?”

“으음……. 자네 정체가 궁금하군.”

“하하. 만족하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필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와 타석에 섰다.

그리고는 가볍게 로브 샷 연습을 하는데,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 것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성호가 고정시켜 놓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자 타이거가 다시 연습을 시작했고 미켈슨도 타석에 섰다.

하지만 좌타자인 그는 연습할 생각은 하지 않고 평생의 경쟁자였던 타이거의 스윙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런데 눈이 시릴 정도로 집중했지만 그의 눈에는 특이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사자인 타이거의 심장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저 10여 분 마사지를 받았을 뿐인데, 전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고 스윙에 힘이 팍팍 실렸다.

“아무 문제없는 거죠?”

“왜?”

“연습을 일찍 접는 거 같아서요.”

“마누라가 보고 싶어서 그런다. 왜!”

필상은 먼저 일어섰다.

한 시간 늦게 온 미켈슨에게 그만큼 더 연습하라는 말을 남기고 타이거와 인사를 하는데, 그가 다가와 악수를 나눴다.

둘만이 공유한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성호만이 아니었다. 미켈슨도 뭔가 찜찜해 하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성호는 찜찜한 의문을 풀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득은 없었다.

“오빠! 일찍 왔네요?”

“응. 깜찍한 내 아내가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더라고.”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모모코는 얼른 주변을 살폈다. 엄마가 들으면 싫어하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주무실 거야. 9시 넘었잖아.”

“어머. 그러네요.”

엄마는 일찍 주무시고 아주 일찍 일어나신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셨던 습관인데 이제 아들이 벌어 주는 돈으로 편하게 사실 만도 하건만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이역만리에 와서도 별일만 없으면 9시 이후에는 얼굴을 뵐 수가 없다는 건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누이들이 나타났다.

“팔불출!”

“이 아줌마들이 왜 이러시나?”

“작작해라. 엄한 시누이가 되기 전에.”

“그게 가능할까? 엄마가 나나 누나들보다 모모코를 더 챙기는데!”

“알았어. 우리 한잔할 거니까 어여 올라가.”

주방에서는 매형들과 누나들이 한잔하고 있었다.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호사가 동생 잘 둔 덕이 아니라 모모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괘심하지만 그래서 시누이 노릇은 하지 않아 그 또한 고마웠다.

***

“컨디션 어때요?”

“너 어제 한잔했지?”

“헉! 누나들이 자꾸…….”

“알았어. 백을 못 들 정도는 아닌 것 같아 봐준다.”

“저 쌩쌩해요. 시간도 없는데 얼른 연습이나 시작해요.”

“너도 클럽 들고 나와.”

“제가 왜요?”

“앉아서 노는 꼴 보기 싫어서.”

“에이 진짜!”

평소 성호는 연습하고 싶어도 그럴 틈이 없다.

필상의 연습을 항상 녹화하고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피곤한 아침에 연습을 하란다.

입이 툭 튀어나왔지만 성호는 클럽을 들고 필상의 앞 타석에 들어서 불꽃 스윙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 또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필상은 가끔 남의 스윙을 보며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 독특한 방식을 취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어제 누나들의 강권에 못 이겨 다소 과음했던 성호는 오늘 그 역할이 아니었다. 전후 사정은 알지만 땀을 흘려야 오늘 제대로 제 역할을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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