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17화 (117/354)

117. 묘한 실험

-대, 대체 몇 야드입니까?

-하하하. 화면에 나온 데이터를 보십시오. 364야드!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온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거리입니다.

-이번 스윙도 풀스윙에 가까웠죠?

-아! 그러고 보니 거의 220도 가량 헤드가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 작은 차이가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나요?

-그러게요. 그러고 보면 우리 공 프로는 처음부터 장타자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풀스윙을 하지 못한다는 소문은 다 헛소리였을지도 모르죠!

-하하하.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지난 달 전지훈련에서 이룬 성과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전혀 소식이 없었는데, 최근 태국 콘캔을 다녀왔다는 말이 있더군요. 그가 그곳에 골프장을 만든다는 구체적인 사업 계획도 나왔다던데요?

허 해설은 금시초문이었는지 관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투어에 전념해도 모자랄 신인 선수가 다른 사업에 눈을 돌리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지훈련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뤘다면 그곳이 어디였는지 그건 궁금했다. 결혼까지 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확실한 결과를 만들었다고 보이기 때문이었다.

놀라기는 동반자인 몰리나리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알기로 필상은 반쪽 선수였다.

대개의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휘두르는 풀스윙을 하지 못하는 것부터가 프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자가 아시아에서 우승을 거둔 것은 알 바 아니지만 PGA대회에 초청되어 자신과 함께 경기를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힘 좀 내십시오.”

“아! 그러지.”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고, 오늘 죽을 쑤고 있지만 필상의 격려에 그는 쓴웃음으로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필상이 자신이 했던 것처럼 오른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청하자 마지못해 마주치기는 했지만 영 찜찜했다.

아까 1번 홀에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필상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상과 손을 마주친 그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았고 힘이 났다.

필상의 손에서 뭔가 따스한 기운이 자신에게 전달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착각일지는 몰라도.

“나이스 샷!”

몰리나리의 드라이브 평균 비거리는 290야드 안팎이다. 그것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꾸준히 늘어난 거리였다.

나름 세계적인 추세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였고 마음껏 때리면 330야드까지는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방향성이 보장되지 않아 300야드를 한계점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번 티샷은 임팩트를 가하는 순간의 느낌이 너무도 좋았다. 정확히 스윗 스팟에 맞춘 공이 터져 버릴 듯 쏘아지는 것에 격한 감동을 느꼈다.

최근 들어 이렇게 짜릿한 감각은 처음이다. 때맞춰 ‘나이스 샷’을 외친 필상을 바라보던 그는 기이한 느낌에 젖고 말았다.

‘이건 뭐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동양 선수가 싫었다. 스스로 인종주의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미 필상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가끔 동양 선수들에게도 밀려 순위가 떨어지는 것이 치욕처럼 느껴진 걸 보면 좋지 못한 편견에 사로잡힌 건 분명했다.

그런데 어제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보다가 오늘 자신과 동반 플레이를 펼칠 선수가 미스터 퍼펙트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경기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런데 늘 나약하다고 생각했던 동양인, 필상의 체구는 크고 탄탄했으며 가볍게 휘두르는 스윙에도 비거리는 짱짱했다.

게다가 정확성까지 갖춰 함께 경기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자신의 캐디가 필상을 극구 칭찬했다는 것이다.

“헤이! 콩. 얼마 전에 결혼했다고?”

“응. 넌 싱글인가?”

상대의 어투가 가볍다면 굳이 정중할 필요는 없다.

자신과의 하이파이브를 통해 그가 최고의 샷이 가능했는지는 필상 역시 알 수 없었다. 그저 불편한 관계를 이어 가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화해의 손을 먼저 내밀었다.

하지만 상대는 아직도 반감이 느껴져 아쉬울 뿐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라며?”

“여자? 아주 멋진 프로 선수지.”

“아! 사진을 봤는데 아주 섹시하더군. 하하하.”

“말을 가려서 해!”

필상은 참기 어려웠다.

정서가 다르다 해도 말이라는 것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며 꺼내야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배려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몰리나리는 움찔했다.

필상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 살벌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발끈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인데 그러지 못하고 시선을 돌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주먹질을 할 수 없어 참는다고 생각한 그는 얼른 앞장서서 걸었다. 하지만 그의 뒤통수에 필상의 말이 꽂혔다.

“존중을 바라지는 않아. 하지만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할 거야!”

이쯤 되면 뒤돌아서서 격렬한 항변이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져도 한판 붙는 것이 이태리 남자의 성격이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이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물론 매너 좋은 자신이 참는다고 합리화했지만.

315야드 지점에 도착한 그는 남은 132야드를 공략하기 위해 52도 갭 웨지를 들었다. 충분히 붙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샷을 했는데 또다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뒤땅을 때린 공이 60야드도 날아가지 못하고 서 버렸다. 분명히 자신 있는 거리였고 전력을 다한 정확한 스윙을 구사한 것 같은데.

‘이것도 내 능력인가?’

그의 터무니없는 실수를 지켜본 필상의 표정도 굳어졌다.

매너가 없는 그가 샷을 하는 동안 필상은 악의를 가지고 쳐다봤다. 그냥 뒤땅이나 확 때리라고 주문했는데, 그대로 되어 버렸다.

한번이라면 모를까 연이어 그런 상황이 벌어지자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건 그다지 반가운 능력이 아니다.

골프가 상대적인 경기인 것은 맞지만 경쟁자가 동반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경쟁자들이 여러 팀으로 나눠 경기를 펼치기 때문에 상대의 실수를 바라는 것은 강자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못 쳐서 이기는 것보다 자신이 보다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우승을 쟁취하는 것이 더욱 값지다고 생각했다.

“저 인간 샷 하는 꼬라지 좀 보세요!”

“자업자득이지.”

“도대체 왜 저런 못된 심보를 가졌을까요?”

“편견이지. 감추고 부정해도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삐뚤어진 우월감, 그 추악한 실체가 필드에서 드러나는 게 안타까울 뿐이야.”

“필 미켈슨은 그렇지 않잖아요.”

“사람은 환경이나 교육의 영향을 받으니까. 미켈슨처럼 편견이 없는 사람이 훨씬 많아져야 하겠지.”

“골프계의 인종 차별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거네요.”

“개인 스포츠라서 각자의 인성에 그냥 맡기는 것이 그런 폐단을 부추기는 걸지도 모르겠네.”

스포츠에서 인종차별은 만연되어 있다.

메이저리그는 물론 프리미어리그나 라 리가처럼 인기 절정의 스포츠에서도 흔하게 발생하는 문제다.

협회가 나서 징계하고 팬이라면 출입금지 조치도 취하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이 이뤄지는 무대가 인종 차별을 일삼는 자들의 안방이기 때문이다.

드러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지경이며 알게 모르게 행해지는 차별은 때로 경기력을 갉아먹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나마 골프는 덜하다고 인식되었는데, 오늘 겪어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투어를 대표하는 자의 인식이 이러할 진데, 더 무엇을 바랄 수 있을지 답답했다.

“몰리나리와 언쟁을 한 것 같아요.”

“언쟁이 아니라 경고를 한 것 같아. 공 프로는 전혀 샷에 영향을 받지 않는데 저자만 헛짓을 하고 있잖아.”

“우리 오빠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모르나 봐요.”

“그 말은 좀 심하다.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 화를 낼 성격은 아니잖아.”

“치. 대표님이 어떻게 저보다 더 잘 아세요?”

“왜 이래. 모모코. 난 너희 부부의 가장 큰 후원자잖아. 너희 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나니까, 시샘은 그만.”

“미안해요. 괜히 심술 부려서.”

“이해해. 지금 한참 민감한 때잖아.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최대한 편하게 경기를 지켜봐.”

“알았어요.”

이 대표는 모모코가 오늘 따라 유난히 까탈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멕시코에 온 이유가 필상의 PGA 데뷔를 위한 것인데, 허니문과 겹친 것은 아무래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모모코에게는 하루하루가 소중한 일정인 것은 이해되지만 앞으로 함께할 날이 무수히 많은 것을 고려해 보다 차분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렇다고 그런 얘기를 대놓고 꺼낼 수는 없지 않겠나.

모모코에게 할 수 없다면 필상과 의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필상의 환상적인 83야드 웨지 샷을 지켜봤다.

필상은 9번 아이언을 잡았다.

그린 좌우로 나무가 없어 유독 바람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기에 러닝 어프로치를 선택한 것이다.

따악!

이번에도 팬들은 너무 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프스윙으로 가볍게 맞추는 정도로는 80야드를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9번 아이언 클럽헤드는 제법 묵직하다.

쇳덩어리에 맞은 공은 힘만 제대로 실리면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나간다는 사실을 아마추어는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50야드 지점에 떨어진 공은 페어웨이를 따라 힘차게 구르기 시작해 급기야 그린에 올라섰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환호성이 터졌고 공은 깃대를 맞출 듯 지나 오히려 홀컵 1m 뒤에 멈춰 섰다.

-이야! 샷 이글이 아깝네요!

-정말 기가 막힌 힘 조절입니다. 솔직히 저도 이번 샷은 좀 약하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공 프로는 저희가 보지 못한 한 가지를 더 감안한 것 같습니다.

-뭐죠? 그게.

-잔디의 결입니다. 본인이 굴리고자 했던 라인의 잔디가 그린을 향해 누운 것까지 본 겁니다. 제 생각처럼 쳤다면 아마도 그린을 오버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말 닉네임 그대로 퍼펙트한 공략이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동반자가 아주 형편없는 샷을 해서 영향을 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샷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방금 전에 웃기는 샷을 했던 몰리나리가 어느새 멋진 샷을 날린 필상에게 다가와 하이파이브를 청한 것이다.

남의 굿 샷을 축하할 겨를이 없어 보이는 그의 괴상한 행동을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했는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갤러리들의 웅성거림이 한동안 이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필상의 반응이었다.

괘씸해서 거들떠보지도 말아야 할 것 같은데, 피식 웃은 필상은 그가 원하는 대로 손을 마주쳐 줬고 환한 미소를 피운 몰리나리는 얼른 자신의 공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바빠도 경기 중인 선수가 뛰는 경우는 드물다. 가빠진 호흡은 스윙 리듬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뭐죠?”

“일단 지켜보자.”

“망신이나 떨지 않으면 다행이죠.”

“아니야.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그는 이번에 아주 멋진 샷을 할 거야.”

영문을 모르는 성호는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남은 거리 75야드를 피칭으로 펀치 샷을 시도한 그의 3번째 샷은 필상의 공보다 홀컵에 더 바짝 붙었다.

50cm나 되려나?

오늘 연이어 망신살이 뻗쳤던 그의 절묘한 이 샷은 갤러리들의 뜨거운 함성을 이끌어 냈다. 아무래도 혼자 마구 무너진 그를 가엽게 여긴 언더독 효과라는 것은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 왜 씁쓸할까요?”

“5타나 잃었잖아. 그래 봐야 파 세이브야.”

“형은 저 자식이 괘씸하지도 않으세요?”

“계속 그러지는 못할 거야. 두고 보자고.”

왜 괘씸하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내에 대해 헛소리를 지껄인 놈이다. 하지만 모모코에게 악의를 가졌다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고 봤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그는 당분간 투어에 참가할 백여 명의 주요 선수 중에 한 명이다. 언젠가 또 만나고 함께 경기를 펼칠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몰리나리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앞으로 투어 생활을 하는 데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이제라도 올바른 태도를 가지기를 바랐다.

“나이스 터치!”

“고마워. 당신도 마무리 잘해.”

“오케이!”

그 와중에 다시 손을 들어 올린 그의 행동은 무시했다.

그다지 탐탁지 않은 그에게 나쁜 버릇을 심어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짧은 퍼팅을 놓칠 것도 아니고.

문제는 자신의 괴이한 능력이 과연 실질적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눈치챈 인간들은 자신의 손에 교황의 면죄부라도 되는 양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확인할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파5 홀인 6번 홀은 오늘 조금 더 길어져 무려 628야드로 세팅되었다. 물론 필상은 무리하지 않고 310야드만 공략했다.

바람을 종잡을 수 없는 와중에 호수를 넘겨 핀을 바로 공략하는 것은 최선을 다해도 2온은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멋진 공략이었어!”

“그런가? 당신도 안전하게 공략해.”

“난 아주 강하게 날릴 건데?”

“오호! 한 번 기대해 봐도 되나?”

“물론이지.”

대화를 나누며 필상은 그의 손을 마주쳐 줬다.

그는 필상이 자신의 의도를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손이 마주치는 순간, 뭔가 빠져나간 듯 허전해지지 않는다면 모를 수도 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자신이 다른 의도를 품으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실험했다. 그에게는 못할 짓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남의 덕을 공짜로 취하려는 태도는 제지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성호도 하이파이브의 의미를 대충 눈치챘는지 투덜거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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