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16화 (116/354)

116. 집 나간 탕자

지난 이틀 동안 72명의 선수가 2번의 라운드를 거치는 동안 1번 홀에서 더블 보기는 딱 1번 나왔다.

나무에 맞은 공이 숲으로 튀어 들어가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껏 안정적인 티샷을 날린 몰리나리는 서툰 아마추어들이나 범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버디가 기대되는 손쉬운 웨지 샷을 실수한 것은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자존심이 구겨질 아주 심각한 내용이었다.

어려운 벙커샷을 단번에 올렸다면 그나마 구겨진 체면이라도 살릴 수 있었는데, 그것도 되지 않았고 그 다음 샷도 핀에 붙이지 못한 심리적인 타격은 이루 말하기 어려웠다.

이젠 타수고 나발이고 롱 퍼팅을 집어넣을 의욕도 사라져 얼른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일 것이다.

-이거 정말 큰일이군요! 마치 제 거울을 보는 것 같아요.

-하하. 누구든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좀 심하군요. 우리 공 프로에게 기가 눌린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무 아래로 기가 막히게 때린 펀치 샷, 그건 예술이었잖습니까!

-이미 지나간 샷은 잊어버리고 어서 정상 컨디션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실제 몰리나리의 안색은 붉디붉었다.

마치 과음을 한 사람처럼.

이쯤 되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샷의 결과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비록 얄미운 마음에 실수를 염원했지만 그게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아아!”

13야드 롱 퍼팅이 홀컵을 아주 살짝 스치며 지나갔다.

골퍼라면 누구든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아쉬움을 담은 탄식이 깊이 내려앉았다.

탭인으로 더블 보기를 기록한 몰리나리는 조용히 물러나 필상의 버디 퍼팅을 지켜봤다. 애매한 거리였지만 필상은 정확한 스트로크로 첫 홀부터 버디를 잡아냈다.

그 모습은 세컨샷을 기다리는 챔피언 조 선수들에게도 잘 보였을 것이다. 공동 2위로 올라섰고 1타 차로 바짝 추격하기 때문에 선두인 토마스는 부담을 느낄 것이다.

-와우! 우리 공 프로 오늘 샷이 아주 좋습니다!

-어제의 좋았던 리듬을 그대로 이어 가는군요. 이렇게 좋은 분위기를 이어 간다면 3라운드에서 선두로 나서는 것도 기대해 볼 만한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무빙 데이 코스 세팅이 어려울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고 바람도 제법 강하지만 꿋꿋하게 타수를 줄여 나가는 모습은 굉장히 믿음직하네요.

필상이 1, 2번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았으나 뒤에서 출발한 토마스와 매킬로이도 1번 홀에 버디를 낚았고 2번 홀 드라이브 티샷도 페어웨이를 잘 지킨 상태였다.

필상의 기세도 뜨겁지만 경쟁 중인 두 선수도 결코 녹록치가 않았다. 그걸 잘 알지만 중계진은 필상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지금까지 수많은 난관을 헤쳐 왔으며 최고의 샷을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는 금방 찾아왔다.

“어허!”

지붕 없는 터널 같은 196야드 파3 홀에서 때린 6번 아이언샷이 나뭇가지를 맞고 좌측 벙커로 기어들어 갔기 때문이다.

핀을 좌측에 바짝 붙여 놨지만 공략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봤다. 정확한 스트레이트 구질을 구사한다면.

하지만 필상의 타구는 왼쪽으로 살짝 휘어 원치 않는 방해를 받은 것이다. 그게 바람 때문이었다면 다행이지만 스윙의 때문이라면 그건 문제였다.

더 중요한 것은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무엇이 문제인지 금방 알아챘는데, 그제야 자신의 컨디션이 그리 좋지는 못하다는 것 인지했다.

“바람을 탔나?”

“네.”

“정말이야?”

“테이크백이 평소보다 조금 더 뒤로 빠진 것 같기도 해요.”

“이제부터는 잘 봐. 아무래도 정상은 아닌 것 같으니까.”

“아, 네.”

필상의 말을 들은 성호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이제 겨우 3번 홀인데,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약한 말을 꺼낼 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상은 그린을 향하며 입식 호흡법을 끄집어냈다. 아직 답답함을 느끼는 단계는 아니었으나 할 수만 있다면 둔해진 감각을 다시 끌어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굿 샷!”

“나이스 아웃!”

필상은 집중했다.

턱이 높고 공이 모래에 반쯤 잠긴 상태였기에 조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샷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벙커 탈출에는 성공했다.

갤러리들은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핀에서 5m 떨어진 온 그린이 반가울 리는 없었다.

지금 상황은 어떻게든 타수를 잃지 말아야 한다. 기껏 기선을 잡았는데 초를 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신중하게 밀었고 다행스럽게도 공은 홀컵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퍼팅 멋졌습니다.”

“그래. 내가 봐도 괜찮았어.”

“아직도 컨디션이 안 좋아요?”

“응. 일단 지켜야 할 홀들이니까 무조건 안전하게 가자.”

샌드 세이브에 성공한 필상은 컨디션이 최고조가 아니라도 집중력을 발휘하면 얼마든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4번 홀에 들어선 필상은 느낌이 영 안 좋았다. 그래서 좌측으로 휜 비교적 긴 도그렉 홀이지만 드로우 샷을 날리지 않고 안전하게 스트레이트 구질의 티샷을 했다.

그런데 이번 샷도 살짝 당겨졌다.

원치 않는 드로우 구질이 형성된 것이다. 만약 드로우를 걸었다면 더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자 아찔했다.

“형. 너무 우측인데요?”

“그린 우측 끝을 봤어. 됐냐?”

“아! 그렇다면 맞아요.”

티샷이 당겨진 탓에 필상은 페어웨이를 놓쳤다.

남은 거리도 184야드, 러프에서 7번 아이언은 좀 무리수로 보였다. 게다가 에이밍까지 우측을 봤기에 뒤로 물러난 성호의 표정에는 초조함이 묻어났다.

평균 타수 4.42인 핸디캡 1번 홀이기에 파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필상의 강한 스윙에 움찔했다.

아무리 7번을 잡았어도 평소에 보이지 않던 강력한 샷이었기 때문이다.

-어! 탄도가?

-러프에서 다시 펀치 샷을 때렸습니다. 일전에도 보여 준 적이 있었지요?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탄도를 낮추는 것은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렇다면 너무 약한 것 아닌가요?

그 말을 하는 와중에 타구는 지면에 닿았고 그 지점은 아직 그린과는 한참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공은 계속 굴렀다.

묘한 것은 우측을 봤음에도 타구는 기이하게 휘어 그린 좌측을 타고 올라갔다는 점이었다.

일단 충분한 거리가 나온 것에 다들 박수를 터트렸지만 필상은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이번에도 의도한 것보다 훨씬 많이 휘었기 때문이다.

“바닥을 기면서도 회전이 먹다니!”

“좀 특이하네요. 지면의 저항 때문에 스핀이 줄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클럽헤드가 공을 타격하는 순간, 평소보다 빨리 로테이션이 이뤄진다는 의미였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아침나절 미켈슨에게 강한 임팩트를 만드는 걸 보여 주기 위해 클럽헤드가 공에 정확히 꽂히는 스윙을 지속했었다.

당시에는 쭉쭉 뻗어 나가는 타구의 가속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그게 드로우 구질을 만든다는 것을 망각했었다. 그런데 원치 않는 시점에 몸에 밴 그 스윙이 시현된 것이다.

‘컨디션이 떨어졌기 때문일 거야!’

원인을 알게 되자 마음은 편했다.

만약 드로우 구질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면 그걸 감안한 샷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백스윙을 교정하고 스트레이트 구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그게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좌측으로 그린을 오버한 공이 프린지에 멈췄는데, 아주 고약한 라이의 12야드 롱 퍼팅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샌드.”

“굴리려고요?”

“응. 세워야지. 퍼터보다는 나을 거야.”

퍼팅보다 어프로치가 낫다는 말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복잡한 라이와 마지막에 내리막을 타는 경우는 스핀이 걸린 웨지 샷이 낫다.

다만 퍼팅보다 정확한 구사가 어려워 실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필상은 과감했다.

맞는 순간, 홀컵은 물론 반대편 그린도 넘어갈 것 같았다. 그런데 6야드 지점에 떨어진 공은 내리막을 앞두고 팍 튀어 올랐다.

그 이유는 공에 강한 백스핀이 걸렸기 때문이다.

다들 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스핀이 걸린 공은 오히려 내리막 중간 지점에 멈춰 섰다. 도저히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경사였기에 결과와 상관없이 박수가 쏟아졌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마크를 하러 이동하는 도중, 갑자기 잘 서 있던 공이 다시 슬금슬금 구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으으으……. 뭐죠?

-바람을 탄 것 같습니다.

-공을 움직일 만큼 강하지는 않잖아요?

-가파른 경사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린이 딱딱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장면입니다.

-아!

임한석 캐스터가 비명을 지른 이유는 굴러가는 공이 교묘하게도 홀컵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들어가는 줄 알았다.

워낙 신기한 장면이라서 들어갔다면 결과는 샷 오브 데이가 되었을 것이나 홀컵 가장자리를 타고 들어갈 것 같던 공은 쓱 돌아 나와 홀컵 옆에 섰다.

“아휴! 너무 아까워요.”

“호호호……. 그냥 멈춰 섰다면 굉장히 부담스러운 파 퍼팅이었어요.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야죠.”

“그래도 운 좋게 굴렀는데 확 들어가 버리면 더 좋죠!”

“모모코. 공 프로가 오늘 좀 이상한 것 같지 않아요?”

“네?”

갤러리들 사이에서 필상의 경기를 지켜보던 모모코와 이 대표는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마치 필상의 캐디라도 된 듯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최고의 판단이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얘기를 나눴다.

“우린 공 프로의 샷과 공략 방식을 잘 알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대부분 적중해야 하는데 너무 틀리는 게 이상해서요.”

“…….”

기이할 만큼 예상이 들어맞지 않았다.

두 여인의 일치한 공략 방식에서 벗어난 샷이 많았고 엄밀히 보면 미스 샷이라고 할 만한 스윙도 있었다.

하지만 모모코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저러다가도 펄펄 나는 장면을 수도 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표가 갑자기 그 말을 꺼내자 모모코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게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보다 이 대표가 먼저 알아챈 것이 묘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냥 좋게 받아들여도 될 것을 자신도 모르게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거침이 없었다.

“컨디션이 떨어진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니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직 홀이 많이 남아서……. 미안해요. 괜히 부정 타는 말을 해서. 제가 좀 주책이죠?”

“…….”

이번에도 모모코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필상에 대해 이 대표가 더 정확히 분석하고 있다면 그건 반성해야 할 일이었다.

게다가 찜찜한 것이 없지는 않았다.

보통 대회에 임한 선수는 가족을 동반하지 않는다. 행여 불필요한 잡념을 줄 수 있고 특히나 부부 관계는 금기시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걱정 끼치지 않을 게요.”

“에이. 모모코에게 부담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에요. 사실 공 프로의 경기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게 여기 있잖아요.”

이 대표는 모모코의 배를 가리켰다.

아이를 가진 산모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말에 모모코는 얼굴을 붉혔다. 허니문이라는 명목이지만 임신한 모모코가 14시간을 비행해 멕시코까지 날아온 것은 그리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었다.

대회가 잡히지 않았다면 가까운 동남아 휴양지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소견을 확인한 필상이 먼저 청했다.

같이 가자고.

물론 젊고 건강하기 때문에 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달려드는 필상을 거부하지 못한 자신의 행동이 적절했는지는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까앙!

445야드의 파4인 5번 홀은 핸디캡 6번으로 좌측으로 조금 휘어지는 도그렉 홀이다. 양옆의 나무들이 높고 울창해 페어웨이가 굉장히 좁게 느껴지는 난해한 홀이다.

그런데 필상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강력한 티샷을 구사했다. 마치 조여드는 불안감을 떨치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갑자기 그런 샷을 날린 이유는 그저 컨디션이 좀 저하된 것일 수도 있는데,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시도가 어그러지면 전략을 대폭 수정한다는 나름의 구상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스윙이 감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모처럼 강력한 드로우 샷을 구사했다.

그렇다 보니 갤러리들의 비명이 터졌다. 왜냐면 타구가 너무도 터무니없이 우측을 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비명은 곧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와아아아!”

“들어와! 그래, 들어와!”

그냥 곧게 뻗어 나갔다면 나무는 물론 홀의 경계를 넘어 6번 홀로 날아갈 공이었다.

하지만 남의 홀을 구경한 공은 돌연 믿기지 않을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제 홀로 방향을 틀었다. 그래도 완벽하게 되돌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집 나간 탕자는 개과천선이라도 한 것처럼 기가 막힌 회전량을 보이며 하강하기 시작했다.

타구가 떨어진 지점은 우측의 세미 러프였다. 거친 풀이 공을 잡을 것 같았지만 놀랍게도 러프에 떨어진 공은 미친 듯이 튀어 올라 페어웨이로 들어왔고 그 뒤로도 한참 굴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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