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11화 (111/354)

111. 멕시코 챔피언십

한국에 돌아왔지만 집으로 가지 못하고 J&L로 향했다.

태국에서의 사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결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내년 후원 계약인데, 그것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 딱히 나설 것도 없다.

그런데도 직접 본사에서 나온 홍보 책임자와 면담하는 이유는 필상이 기대했던 대회 개최의 최종안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션 던컨 이사님.”

“아! 미스터 퍼펙트를 이렇게 직접 만나다니, 저야말로 더없는 영광입니다.”

“낯부끄럽게 그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작은 성공이라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다 저를 믿고 후원해 주신 나이키의 든든한 도움 때문입니다.”

첫 대면부터 호감을 주려고 노력했다.

나이키와의 계약은 가만히 둬도 끌려다닐 입장은 아니지만 반드시 관철시키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이키는 필상이 먼저 언론에 터트리는 바람에 계획을 수정했다. 큰 배려였지만 확인한 내용은 아직 성에 차지 않았다.

KPGA를 배려해 이벤트 대회를 하나 더 여는 것으로 조정했는데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 나이키의 입장에서 보자면 중국 상하이와 일본 도쿄 시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걸 손대는 것은 가용할 것 같지가 않았다.

“연말에 이벤트 대회를 구상한 것은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 미스터 퍼펙트만 출전한다면 저희로서도 오히려 고마운 행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출전하는 것은 당연하죠. 하지만 기왕이면 이벤트 대회가 아니라 파이널로 바꾸면 어떨까요?”

“파이널이라면?”

“시리즈의 최종 대회로 나이키의 이름을 건 ‘아시안 챔피언십’ 어떻습니까? 필요하다면 저도 적극 후원하겠습니다.”

나이키 홍보 담당 이사가 직접 나섰는데도 필상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직접 후원하겠다는 말까지 꺼냈다.

그것은 곧 굉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아! 그것도 좋은 방향이네요.”

“혹시 서브 스폰서가 필요하다면 그건 저희가 얼마든지 나설 수 있을 겁니다.”

“으음……. 흥행이 문제인데, 4개의 대회에 모두 출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 점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설사 마스터즈와 겹치더라도 전 제 후원사가 주최하는 대회에 나갈 테니까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만약 당치도 않을 것 같으면 잘랐을 것이다. 필상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고려하면 나이키도 허언을 할 수는 없다.

때문에 시원하게 내년도 후원 계약에 사인한 필상은 기쁜 마음으로 귀향할 수 있었다.

***

“동네잔치가 따로 없네!”

“이 정도면 다음 시장 선거에 나가도 되겠어.”

“다들 축하하러 왔는데 딱 한 집만 빠졌군.”

필상의 인기는 이 마을이 생긴 이래 최고라 할 만했다.

동네 사람들을 모두 초청한 전통 혼례를 치렀는데, 각 언론 기자들은 물론 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시장부터 시의원들까지 동네에서 힘깨나 쓴다는 인사들은 다 모였다.

그뿐인가, 일본에서 초청받은 모모코의 가족들은 일본 취재진과 함께 도착해 성대한 결혼식의 일원이 되었다.

단 한 가족만 빠졌는데, 의사한테 시집보내고 집안이 폈다던 성희의 식구들은 참석하지 못했다.

“신랑 신부 맞절!”

전통 혼례복을 입은 모모코의 모습은 한 장 한 장이 모두 작품이었다.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자꾸 훔쳐봤다.

하지만 혼례식 내내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기 바쁜 엄마의 감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온 가족의 희망과 같던 아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여자에게도 버림을 받아 낙향했을 때의 심정이 어떠하셨을까?

실의에 빠져 알코올에 의존하고 있는 아들을 위해 남의 집 밭일 품앗이까지 다니시던 모습, 절대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

“사랑해요.”

“고마워.”

모모코는 자신이 꿈꾸던 사랑을 얻었고 필상은 꿈만 같은 여인이 자신의 곁에 머물게 된 것을 감사했다.

계획에 없던 결혼이지만 결혼을 했기 때문에 더욱 무거워진 책임감을 지니고 필드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모모코 개인으로 보면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녀로 인해 더욱 강한 동기부여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허니문을 맥시코로 떠났다. 왜 그렇게 먼 곳을 선택했는지는 공항 인터뷰에서 밝혀졌다.

-WGC의 초청을 받으셨다는데, 멕시코 챔피언십에 임하는 각오부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새해 첫 대회는 한국에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한국의 봄은 4월 둘째 주부터 시작되는 터라 본의 아니게 타국에서 테이프를 끊게 되었습니다.”

-많은 팬들이 우승을 간절히 바라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드 확보가 늦어 초청 선수로 임하게 되었지만 저 또한 유러피언투어 우승자입니다. 또한 KPGA 메이저 대회 챔피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펼치겠습니다.”

-세계 톱랭커들이 빠짐없이 참가하는 대회인데, 혹시 팬들의 기대가 부담스럽지는 않은가요?

“저는 제 경기에만 집중하겠습니다. 골프는 누구와 치느냐보다 얼마나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느냐의 싸움이니까요.”

허니문을 겸한 PGA 초청 대회 참가차 떠나는 것이었다.

모모코가 반대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녀는 오히려 아주 기뻐하며 좋아했다. 자신에게는 그보다 멋진 허니문이 없을 것이라는 말에 우승에 대한 각오가 더욱 단단해졌다.

WGC 대회는 PGA 사무국이 아닌 국제프로골프투어연맹이 주관하는 대회다. PGA, 유럽, 일본, 호주, 남아공, 그리고 뒤늦게 아시아와 캐나다 프로골프투어도 합류해 진정한 세계 챔피언을 가리기 위해 만든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아직 한국 투어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세계 랭킹 64위까지 출전 자격을 주고 컷오프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필상도 진즉에 랭킹은 충족되었지만 투어 입문 기간이 짧아 초청 선수로 출전하게 된 셈이다.

“WGC가 그래도 현명한 선택을 했네요.”

“PGA의 보수적인 정책을 비웃는 거지. 내 입장도 그와 다르지 않아 흔쾌히 동의한 거고.”

“총상금이 무려 1050만 달러더라고요.”

“총상금은 의미 없고 우승 상금이 174만 5천 달러더군.”

“우와! 잔금 치르면 되겠네요!”

“무슨 잔금?”

“으…….”

모모코의 당황한 기색에 찜찜함을 느낀 필상은 하는 수 없이 추궁해야만 했다. 허니문이라 가급적 자제하려 했지만 20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언급되는 순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전지훈련을 다녀온 동안 엄마를 비롯한 누나들과 뭔가 수상쩍은 일을 벌인 게 분명했다.

“끝내 말 안 할 거야?”

“이번 대회 끝나면 얘기해 줄게요. 대신 반드시 우승해야 해요.”

“우승 못하면 말하지 않겠다는 건가?”

“네. 그 이유도 그때 얘기할 게요.”

궁금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일단 억눌렀다.

아무 이유도 없이 입을 닫을 모모코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허니문 아니던가.

멕시코시티는 정말 멀었다.

무려 14시간을 비행하는 동안 필상은 모모코가 걱정되어 한숨도 쉴 수가 없었다. 밝은 표정을 유지한다고 편한 것은 아닌 것 같아 시시때때로 안마를 해 주며 지루한 시간을 버텼다.

“흐음……. 왜 이렇게 후덥지근하죠?”

공항에 내린 모모코의 첫마디였다.

답답한 열기 때문인지 실제 느낌도 그러했다. 짐을 잔뜩 짊어진 성호도 맞장구를 쳤다.

“고원지대라서 덥지는 않다고 하더니, 순 공갈이었네!”

“비가 와서 그럴 거야.”

“아! 그런가?”

대회가 열리는 골프 코스는 의외로 시내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미리 코스를 확인한 적은 있지만 당연히 자연 속에 파묻힌 아름다운 코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시 한가운데 떡 하니 위치한 코스는 생각만큼 훌륭하지는 않았다. 지친 몸을 빨리 쉴 수 있다는 것을 빼면.

“어머! 저기 좀 봐요!”

“으으으…….”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정말 큰가 보다.

곧 쓰러질 것 같던 모모코는 멕시코시티의 이국적인 풍광을 보자 눈빛이 반짝였다. 경기에 대한 부담보다는 자신이 멕시코라는 나라에 온 사실이 더 피부에 와 닿은 듯, 연신 두리번대며 여행의 정취를 즐겼다.

하지만 제대로 쉬지 못한 필상은 어서 호텔로 들어가 일단 몸부터 누이고 싶었다. 시차 적응에 실패하면 컨디션 난조가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혀 토납이 되지 않아!’

그게 더 심각했다.

이곳이라고 왜 자연지기가 없겠는가!

하지만 도심의 한가운데서 지낸다는 생각을 하자 자신의 강점이 사라진다는 불안감부터 밀려왔다.

호텔에 여장을 푼 필상은 멕시코시티에 대해 찾아봤다. 그런데 이 도시는 자연을 인간의 의지로 바꾼 결과물이었다.

과거에는 텍스코코 호수 위의 섬이었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호수를 메워 도시를 건설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중에 하나였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밀려왔다.

“우와 멋져요!”

“난 별론데?”

“세계 100대 코스 19위에 오른 적도 있다고요.”

“일단 코스부터 한 번 둘러보자.”

대회가 열릴 차풀테펙 골프 클럽에 도착했다.

호텔과 멀지 않아 운동 겸 뛰어다녀도 좋을 것 같았다. 그나마 코스는 아름답고 자연의 기운이 생생했다.

하지만 도심 한가운데 위치했기 때문이지 생각만큼 토납의 효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런 불안감이 내재했기 때문인지, 연습을 해도 마음이 잘 놓이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해결 방안을 찾았다.

“정말 연습 안 해도 되요?”

“그렇다니까! 우리 허니문 왔잖아. 언제 또 멕시코에 와 보겠어. 내 걱정 말고 좋은 구경 다니자니까.”

예상대로 되지는 않았다.

역사 탐방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연지기가 풍부한 외곽으로 나갈 줄 알았는데, 모모코의 취향은 도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나마 도심을 벗어나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국립공원을 방문했을 때가 기회였다.

며칠 간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듯 토납에 집중한 필상은 겨우 정상 컨디션을 유지한 채 대회에 임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엄청 힐끔거리네요.”

“신기하기도 하겠지.”

“그런데 정말 비거리가 많이 나가기는 하네요.”

“예전 모드로 돌아갈 수는 없고 유틸리티 연습을 좀 많이 해야 할 것 같아.”

“그러지 말고 3번 아이언을 쓰는 건 어때요?”

“그래! 모처럼 쓸 만한 제안을 다 하네. 줘 봐.”

기껏 콘깬까지 날아가 비거리를 조정했다.

그런데 작년 이 대회에서 우승한 존슨은 404야드, 로리 매킬로이는 410야드 티샷을 때렸다는데, 해발고도가 2천 미터가 넘는 곳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우와! 241야드 날아갔어요!”

“미치겠네.”

“그냥 이번 대회만이라도 거리를 재조정해서 치죠.”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비거리를 새로 조정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경기 전 마지막 연습 라운드를 나갈 때도 정리가 되지 않아 프로가 된 이후 처음 오버파를 적어 냈다.

그런데 누군가 지켜보기라도 했는지 그게 언론에 흘러나오며 때 아닌 구설수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남아공에서 유러피언투어 첫 출전에 시드를 낚은 필상은 참가한 모든 투어 대회에서 같은 방식으로 시드를 확보했다.

유일하게 남은 투어가 PGA라는 것을 필상은 의식하지 못했다. 한 번 언급한 적도 없는데 기이한 기사가 떴다.

[역시 PGA! 미스터 퍼펙트 컨디션 난조]

[시드 확보 장담한 미스터 퍼펙트, 2오버파 기록]

[분주한 허니문! 대회는 뒷전인가? 연습 부족 드러낸 한국 선수, PGA의 높은 벽 실감]

[W/D(부상 기권)를 예상한 빌리, 그의 예언은 적중할까?]

보다 보다 이렇게 심각한 모독이 있을까?

PGA 전문가라는 한 사람은 필상이 경기를 포기하고 허니문을 즐길 것이라고 장담까지 했다.

평소와 달리 연습을 많이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몇몇 언론은 악의적인 보도를 사실인 양 퍼트렸다.

마치 필상이 선전이라도 하면 PGA가 모욕을 당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확증 편향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필상의 속까지 뒤집어 놨다.

“너무해요! 이 사람들.”

“흥분할 필요 없어. 결과로 말하는 수밖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세계 랭킹 16위라고요. 다른 건 몰라도 알프레드 크리크 챔피언십까지 우승했는데 대체 왜 이러죠?”

“그래도 너무 속마음을 기자들에게 보이지는 마. 안 그래도 꼬투리를 잡으려고 안달이 난 것 같으니까!”

모모코를 진정시키고는 있지만 필상도 분노가 치밀었다.

골프는 철저히 개인 스포츠다. 국가나 인종을 차별하는 행위는 비신사적이며 스포츠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흔들기는 효과가 있었다.

1라운드 필상의 성적은 -1, 버디를 4개 잡았지만 보기도 3개를 적어 내며 독하게 먹은 마음과는 동떨어진 기록이었다.

“공동 35위면 출발치고는 괜찮네.”

“정말 이럴 거예요?”

“왜?”

“보여 줘요. 이 교만하고 사악한 인간들에게 오빠가 누군지!”

끙!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너무 독하게 마음을 먹었는지 오히려 미스 샷이 평소보다 많았다. 게다가 운도 잘 따라 주지 않았는데, 그것도 심리적인 압박감과 무관치 않았다.

그래서 필상은 모모코를 설득해 안정시킨 뒤, 성호와 함께 조용히 도심을 벗어났다. 연습을 하거나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필상은 택시를 타고 인근의 자연 휴양림으로 향했다.

그리고 밤을 꼬박 새운 새벽녘에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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