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05화 (105/354)

105. JGTO 최고의 선수

“도인이라도 된 겁니까?”

“무슨 소리야?”

“어젯밤에 형의 몸에서 빛이 난 거 아십니까?”

“그랬어?”

불안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펑펑 굿 샷을 날리자 성호도 덩달아 신바람을 냈다. 그리고 어제 자신이 봤던 광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작 당사자는 알 수 없는 희귀한 현상에 놀랍기도 했지만 앞으로 행동에 더 신중을 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만 살살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럴 수는 없지.”

전반에 7타를 줄인 필상은 10번 홀을 파로 넘어가더니 다시 버디 행진을 벌이기 시작했다.

명색이 메이저 대회라 보통 대회보다는 세팅이 어려워 20언더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다. 하지만 전반에 이미 -23에 접어든 필상은 버디 쇼를 멈출 기미가 없어 보였다.

다른 선수들도 똑같이 선방하고 있다면 모를까, 공동 2위 스코어는 겨우 -13이었고 16번 홀까지 4타를 더 줄인 필상의 마지막 라운드 성적은 -11로 들어섰다.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와! 엄청난 파워 샷입니다.

-아예 끝장을 보려는 것 같습니다. 이번 홀에서 이글을 기록한다면 -13, 파 70인 것을 감안하면 또다시 꿈의 57타를 기록하게 되는 겁니다!

-9언더였던 기존 코스 레코드는 진즉에 넘어섰고 자신이 만든 최저타 기록까지 또 갱신하려는 건가요?

-똑같은 57타이긴 하지만 태국에서 기록한 -14에는 1타가 부족하긴 합니다. 그래도 그 기록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던 전문가들에게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는 셈이 됩니다.

-코스가 너무 쉬웠다는 둥, 헛소리는 나오지 않겠지요!

535야드 파5 홀이지만 내리막이 많아 페어웨이만 지킨다면 굳이 장타자가 아니라도 가볍게 2온을 할 수 있는 홀이다.

필상은 시즌을 마무리하는 마당에 힘을 아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가진 기량 또한 마음껏 펼치고 싶었다.

그 결과 컨트롤이 어려운 드로우 샷이 아니더라도 장타를 날릴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 강력한 임팩트를 가했다.

탄도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치솟던 공이 마치 3단 멀리뛰기 선수처럼 중간에 다시 한 번 튀어 오르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며 엄청난 비거리를 장식했다.

게다가 페어웨이에 떨어진 타구의 런도 비정상일 정도로 길었다. 티샷과 동시에 비명을 질렀던 팬들은 체공 시간이 너무 길어 목이 쉬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우! 대체 얼마나 나간 거죠?

-하하하. 347야드입니다. 대체 누가 우리 공 프로를 감동이라고는 한 치도 찾아볼 수 없는 짧순이라고 놀려댔습니까!

-하하하. 전 절대 아닙니다. 허 위원님. 저기 물 건너 몇몇 무지한 작자들이 그런 헛소리들을 했다는데, 이런 살벌한 샷을 보고는 정말 아찔했을 것 같아요.

-쓰리쿼터 스윙이 원인이라던 자들, 반성해야 합니다. 굳이 클럽헤드가 백스윙 탑을 넘어가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상체 꼬임이 살짝 부족한 것 아닌가요?

-물론 조금 더 돌아가면 보다 많은 힘을 비축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공 프로의 스윙을 보면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비록 뒤로 돌아가지는 않지만 탑에서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가는데, 그게 바로 힘을 비축하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박인비 프로의 스윙과 비슷한 거죠?

-그렇습니다. 거리보다는 정확성에 초점을 맞춘 스윙인데, 지금 보여 준 저런 파워풀한 스윙이라면 제아무리 PGA라도 얼마든지 거머쥘 수 있습니다.

-어허! 그러고 보니 우리 공 프로가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은데, 아닐까요?

-최근 들어 보란 듯이 장타를 날리는 걸 보면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본인은 겸손하게 더 배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제가 볼 때, 아니 그 어느 골프팬이 지금의 공 프로가 더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필상은 최근 기회만 되면 장타를 시험했다.

연습장에서 수백 번을 때려 성공해도 실전에서 긴장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만 필상은 노리고 노리다 한 번 날리면 어김없이 정확한 장타를 구사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앞으로 보다 큰 무대에 진출해도 장타를 남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여전히 일관성 있는 정확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80야드를 남긴 필상은 7번 아이언을 잡고 컨트롤 샷을 구사했다. 시야를 어지럽힌 벙커가 있었지만 타구는 정확히 핀 앞에 떨어져 2m 이글 퍼팅을 남겼다.

어떤 팬들은 알바트로스를 바랐을지 모르지만 그린의 뒤가 높은 가파른 경사를 감안해 오르막 퍼팅을 남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기가 막히죠?”

“그래. 정말 대단하구나.”

“아빠. 그러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제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요. 오빠는 타이거 우즈를 넘어서는 최고의 골퍼가 될 거에요.”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 하지만 너무 잘난 남자라서 그게 걱정이지.”

“은근히 보수적이라 그것도 염려할 것 없어요. 저밖에 모르는 남자이고 어머님 말씀을 잘 따르는 걸 보면 자기 가족은 확실히 보살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도 그렇게 봤으니까 허락했다만 남자는 성공하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법이라서…….”

“아빠!”

모모코의 곁에는 그녀의 부친 미야가 함께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지막 우승까지 함께하는 이유는 가족의 일원으로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천양지차의 변화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왜 모모코가 필상을 고집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프로 자격을 취득했다지만 서른이 넘어 프로에 뛰어든 선수의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낮은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디로서의 능력은 뛰어나다는 걸 알았고 딸과의 갈등이 너무 깊어져 피치 못해 승낙했다. 그래서 남녀 관계로 발전하면 안 되다는 경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깜짝 놀랄 만한 비범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드도 없이 예선부터 참여한 던롭 스릭슨 대회 우승만 해도 기적이었다.

‘그런데 10승이야! 무려 10승!’

참가하는 대회마다 풍운을 일으키며 우승을 거두더니 어느새 아시아 최고 선수라는 칭호까지 붙었다.

모모코가 워낙 좋아하는 것 같아 필상이 참가한 대회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다 견제하기 위해 꼬투리를 잡으려는 행위였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팬이 되었다.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강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 사이에 위험신호가 감지되는데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두 남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미야의 시선은 늘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모모코의 적극적인 구애를 무시하는 필상이 괘씸스럽기도 했는데, 설마 애까지 배었을 줄은 몰랐다. 믿거니 하고 감시망을 거둔 사이, 둘이 뜨겁게 불타올랐던 것이다.

“와아!”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미야는 홀컵 뒷벽을 강하게 때리며 떨어진 이글 퍼팅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딸과 사위가 될 필상의 미래를 더듬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뜨거운 환호성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두 팔을 힘껏 치켜든 필상의 세리모니는 이상할 게 없다. 우승 퍼팅도 아닌데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이로써 2위와는 14타 차가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파3 홀을 남긴 상태였지만 이미 우승 축하 모드였다.

“56! 56!”

“14언더! 14언더!”

18홀 최저타 기록에 대한 격한 바람이 쏟아졌다.

파 70 코스라서 57타라는 기록이 상대적으로 빛을 잃지만 56타가 되면 그 또한 새로운 골프 역사의 한 조각이 될 게 분명했다.

18번 홀로 이동하는 사이, 팬들에게서 전해진 뜨거운 기원이 온몸을 뜨겁게 달구는 느낌을 받았다.

자연지기도 큰 힘이 되지만 인간의 간절한 소원도 자신의 컨디션에 영향을 미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기야 인간의 의지만큼 대단한 것도 없다는 생각은 들었다.

팬들의 바람을 힘의 바탕으로 다시 한 번 -14라는 기록에 도전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필상은 어제처럼 4번 아이언을 들고 티 그라운드에 올라섰다.

“오늘도 좋은데?”

좋은 느낌을 받은 필상의 시선이 부상으로 걸린 고급 승용차로 향했다. 거기에 작은 안내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제 필상이 기록한 홀인원 시간과 PS GONG이라는 이름.

그리고 또다시 홀인원이 나오면 한 대 더 후원하겠다는 후원사의 안내 문구도 함께 보였다.

“소진된 게 아니고 한 대 더 준단 말이지?”

물욕에 젖었기 때문일까?

어제와 한 치의 다름도 없는 완벽한 스윙이 펼쳐졌지만 공은 거리와 방향이 살짝 틀어졌다. 그래도 3.5m 버디 퍼팅을 남겼다면 환호성이 들릴 만도 하건만, 아쉬운 탄식을 터졌다.

너무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당연히 마지막 라운드였기에 핀의 위치는 바뀌었다. 그런데 오묘하게도 어제의 핀 위치였다면 또다시 홀인원이 되었을 궤적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하하. 정말 대단한 일관성이네요!

-핀을 어제보다 더 뒤로, 더 좌측으로 뺐습니다. 딱 그만큼 벗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홀인원을 노렸다면 조금 더 좌측을 봐야 하는데, 그건 너무 위험천만한 에이밍이지요.

-그래도 이 퍼팅을 넣으면 또다시 -14라는 대기록을 작성하는 것이죠? 본인의 기록이지만.

-한 시즌에 2번이나 -14를 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기록입니다. 전입미답의 길이며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왜요? 우리 공 프로가 -15, -16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 계산은 쉽지요. 하지만 오늘 공 프로가 이 버디를 성공한다면 18개 홀에서 이글 하나, 버디 12개를 낚는 겁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하하.

말하기는 쉽지만 그 과정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한 편의 영화나 다름이 없다. 기적 같은 샷과 스트로크가 어떻게 그리도 연속적으로 터지는지 마치 잘라 붙인 픽션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 임 캐스터는 더 큰 대기록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 말을 던짐으로서 -14라는 신이 내린 기록이 볼품없어 보일까 저어한 허 해설이 나무라듯 바로 잡았다.

진정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쉬운 말이라고 함부로 내뱉는 것은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린으로 올라서는 필상을 소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음성도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이름 외에는 경력을 소개하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과도할 정도로 치켜세웠다.

-시즌 9승, 18홀 최저타, 72홀 최저타 기록까지 갈아치운 JGTO 최고의 선수를 소개합니다. 퍼펙트 콩,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오빠! 오빠!”

좋은 닉네임도 있건만 팬들의 연호성은 거의 하나로 통일되었다. 아무래도 극성 아줌마 팬들의 목소리가 가장 강했기 때문인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이들도 그렇게 외쳤다.

거기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왜 오빠라고 부르지?”

“무슨 뜻인데?”

“몰라요!”

신경질을 부리는 딸의 모습에 미야는 혀를 쯧쯧 찼다.

착하지만 한 번 고집을 부리면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고약한 성질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필상이 아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모코가 보여 준 모습은 때로 현명했고 때로 사랑스러웠다. 그건 필상의 마음이 자신을 향하게 만들기 위한 위장 전술이었던 걸까?

그러나 미야가 모르는 것이 있다.

사람 관계는 상대적이라는 것, 처음부터 일방적이었던 관계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첫 흐름을 어긋나기 힘들다는 것.

만약 필상이 자꾸 억지를 부린다면 모를까, 둘 사이의 사제 관계가 이어지고 지금처럼 점점 더 높은 곳을 향한다면 한 번 형성된 관계는 조정되기 힘들 것 같았다.

“반 컵. 요놈의 반 컵이 참 애매하지!”

수많은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는 것을 알지만 이젠 담담했다. 모모코처럼 그걸 즐기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경험을 통해 익숙해진 탓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반대편 라이까지 살핀 필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크를 집어 들고는 어드레스를 취하기 위해 이동했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마추어들에게 귀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서두르거나 지체하지 않았다.

어드레스를 취한 필상은 공이 굴러갈 라이를 따라 홀컵까지의 경로를 2번 체크하며 거리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퍼팅은 라이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드레스를 취한 뒤에는 방향에 대한 의심은 걷어야 한다. 그것마저 의식하면 정작 중요한 거리감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윽!

본격적인 프로 준비를 하며 가장 곤란을 겪었던 것이 바로 퍼팅이다. 처음 캐디 일을 하며 많은 아마추어들의 퍼팅을 지켜본 필상은 퍼팅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들을 수없이 겪었다.

드라이브 샷도 1타이고 퍼팅도 1타인데, 너무 대충 퍼팅 스트로크를 하는 이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웠다.

자신이 어떤 루틴을 통해 어떻게 집어넣을지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행운이 따라 주기만을 바라는 자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그런 자들의 퍼팅까지 받아 줄 만큼 골프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작은 빈틈도 허용치 않는 게 퍼팅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퍼팅 하나만큼은 자신만의 루틴을 찾으라고 충고하곤 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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