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100화 (100/354)

100. 찰 슈와첼

-1번 홀을 절대 만만히 보면 안 됩니다.

-그러네요. 평균 타수가 4.142면 버디보다는 보기가 훨씬 많다는 거니까요.

-1번 홀이 가지는 특이성도 작용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찰 슈와첼입니다. 누가 뭐래도 마스터스를 거머쥔 실력자죠. 하지만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골프 코스를 우습게 생각한 것부터가 착오였던 겁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조금 다른 의미인데, 그는 아마도 우리 공 프로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 같습니다. 곁으로는 애써 무시했지만 그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아시아에서만 필상을 주목한 것은 아니다.

PGA 홈페이지의 메인을 장식한 적도 있고 특집 기사도 다뤄져 투어프로라면 퍼펙트 콩이라는 닉네임을 모를 수 없다.

특히나 18홀 -14 기록은 그 누구도 밟지 못한 전입미답의 길이었다. 아무리 쉬운 코스라도 그런 대기록을 만든 사람은 인정하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했다.

하지만 아시아인을 무시하는 습성은 골프 이외의 스포츠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나쁜 습성인데, 그 역시 비슷한 행동을 보인 것이고 팬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대회 참가를 위해 일본에 도착한 이래 자신을 알아본 팬들의 사인 공세를 은근히 즐기던 그는 필상을 졸졸 따라다니는 인파를 보며 배가 아팠던 것 같다.

아무리 실수를 했다손 치더라도 설마 야유까지 받을 줄은 몰랐던 그는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분노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화를 자초한 꼴이 된 셈이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4온 2퍼트로 첫 홀에서 더블을 기록한 슈와첼은 190야드 파3홀인 다음 홀에서도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버디를 기록한 필상과 파를 잡은 존스가 좌측으로 치우친 핀을 바로 공략하지 않고 그린 중앙을 노린 이유는 명백했다.

포대 그린을 빙 둘러싼 4개의 벙커도 부담스럽지만 좌측으로 흐르는 경사 때문에 핀을 직접 공략하면 그 근처에 세우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그린 중앙에 떨어뜨려 적당히 경사를 태우는 것이 적절한데 그나마도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첫 홀에서 심각한 내상을 입은 슈와첼은 핀을 바로 공략하다가 좌측 그린 뒤의 벙커로 들어가고 말았다.

“얼씨구!”

“그만해. 안 그래도 착잡할 텐데.”

“형은 괘심하지도 않으세요?”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사람을 더 밀어 버릴 건 없잖아. 어차피 여긴 그보다 내가 더 편한 곳이니까 손님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지.”

“부처님 나셨네!”

한 번 보고 말 것 같으면 필상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돌고 돌다 보면 언젠가 다시 대회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고 그때는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감안했다.

인사를 외면한 것이 대단한 실수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도 이해했다.

-저 정도 벙커 샷은 올릴 수 있겠죠?

-평상시라면 잘 붙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난 홀에 더블을 기록해 마음이 상한 상태라면 일단 붙일 생각보다는 탈출을 목표로 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일본에 초청받아 아주 호된 신고식을 하네요.

-지닌 기량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니 평정심을 되찾고 차분하게 플레이를 하면 아직 늦은 것은 아닐 겁니다.

-그렇죠. 이제 겨우 2번 홀이니까 어서 정신 차리고 좋은 샷을 보여 주면 좋겠습니다. 우리 공 프로의 좋은 경쟁자 역할을 하면 더더욱 바람직할 것 같고요.

벙커에 들어간 슈와첼은 무척 신중했다.

반드시 핀에 붙이고자 하는 의지가 펄펄 흘러넘쳤는데 샷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클럽 페이스가 너무 깊이 들어간 까닭에 공은 벙커 턱을 맞고 겨우 프린지에 올라섰다.

하마터면 탈출 실패로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던 위기를 벗어났다고 보는 것이 합당했다. 하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던지 그는 들고 있던 웨지로 벙커를 냅다 후려쳤다.

얼른 캐디가 보수를 했지만 그 광경을 지켜본 팬들의 입에서는 또다시 실망 어린 탄식이 흘러 나왔다.

누구든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원인을 스스로에게 찾아야지, 남을 탓하는 것은 아시아의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저 새끼가 미쳤나?”

“성호야!”

“또라이네요! 또라이!”

“난 내 플레이에만 집중하고 싶어. 누가 뭘 하든 반응하지 말라고!”

“알았어요.”

다행히 성호가 필상의 말을 알아들었다.

누군가의 나쁜 플레이는 동반자들에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저렇게 실수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안전한 플레이를 펼칠 수도 있지만 성호처럼 악감정이 생기면 전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제시킨 것이다.

“아!”

필상의 5m 내리막 퍼팅이 훅 라이를 타고 절묘하게 흐르다 홀컵 옆을 살짝 지나쳐 멈췄다.

조금 더 강하게 밀었다면 들어갔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다. 성공하지 못하면 파를 잡는 것도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탭인을 하기 위해 움직이던 필상은 슈와첼의 동선과 겹쳤다. 프린지였지만 필상의 퍼팅 거리보다는 짧았기에 파를 잡기 위해 반대편에서 라이를 읽은 그가 멀리 돌지 않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필상은 씩 웃으며 길을 양보했다.

굳이 묘한 신경전을 펼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움직였고 그 역시 좋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냥 확 부딪치지 그랬어요.”

“또!”

“알았다고요.”

그에게 길을 터준 필상은 파를 기록했지만 그의 파 퍼팅은 들어가지 않았다. 심리상태가 그러할 진데 어찌 들어가겠는가!

3번 홀은 396야드 파4로, 티 그라운드에 서면 페어웨이 티샷 랜딩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좌측으로 심하게 휘는 내리막 홀이고 양옆으로 우거진 나무들이 제법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프런트 나인에서 평균 타수가 언더인 4개 홀 중에 하나다. 때문에 필상도 과감한 티샷을 선보였다.

아니, 250야드 이상의 티샷을 날리는 프로라면 어쩔 수 없이 숲을 넘기는 샷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독 근래에 보기 드문 강한 샷을 날렸다.

-엄청나게 날아가는데요?

-지금 공이 날아가는 방향대로라면 지르면 지를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마음껏 날린 것 같습니다.

-우우우! 그래도 이 수치가 맞는 건가요?

346야드.

캐스터는 화면에 뜬 그 드라이브 비거리를 쉽게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리막을 감안해도 평소 필상이 보여 준 거리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티샷 스윙 동작에서는 그다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기에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위하신 거 맞죠?”

“아니야. 그냥 느낌이 좋아서 한 번 날려 본 거야.”

“흐흐……. 아닌 것 같은데!”

성호의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필상은 보여 주고 싶었다. 못 때려서 안치는 것이 아님을. 물론 슈와첼은 보다 멀리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그는 드라이브 평균 비거리 332.4야드를 날려 EUR 3위에 올랐다. 하지만 페어웨이 적중률은 고작 41.7%로 그가 왜 최근 3년간 우승이 없었는지 짐작케 하는 근거가 된다.

필요한 만큼만 보내도 충분히 버디를 잡을 수 있는 것이 골프고 거리 욕심보다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망각하는 순간, 성적은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내 공이 얼마나 나갔는지 모르는 게 약이 될 거야.”

“하하. 알아야 하는데 아깝네요.”

경기 중인 성호도, 필상도 티샷의 정확한 비거리는 모른다.

하지만 쭉쭉 뻗어 나간 공이 평소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것은 분명했다. 다만 페어웨이에 떨어졌다는 것도 팬들의 반응을 보고 짐작할 뿐.

하지만 티 그라운드에 올라서는 슈와첼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대충 멀리 나간 것은 짐작한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바라본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제발 무리하지는 말기를 바랄 뿐.

까앙!

연습 스윙을 할 때부터 알아봤다.

그는 아예 핀을 직접 노리는 것처럼 보였다.

캐리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잘만 구르면 파4에서 희귀한 1온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티샷한 공은 또다시 급격하게 말렸다.

페어웨이 좌측으로 그린을 막아선 개울이 있는데 정확히 그 방향이었다.

“미치겠네. 하하하.”

“들어갔겠지?”

“90% 이상입니다.”

개울의 위치는 대략 350야드 지점이기 때문에 아무리 용을 써도 티샷으로는 그곳에 보낼 수 없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보통 세컨샷의 어려움을 주기 위해 설치된 장애물인데, 마음껏 때린 슈와첼의 드라이브 샷이 드로우까지 먹었다면 영락없을 것 같았다.

남의 불행을 즐길 필요는 없지만 그린에서의 기본적인 예의조차 차리지 않는 모습은 본때를 보여 줘야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한 번의 실수는 눈 감아 줄 수 있지만 반복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물론 골프는 서로 몸을 부딪치는 운동이 아니라서 직접적인 도발은 불가하다.

하지만 스윙은 아주 미세한 부분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상대를 의식하다 보면 이처럼 어이없는 실수가 나온다.

“쟤 뭐하는 거죠?”

“그러게.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건가?”

먼저 앞서간 슈와첼이 필상의 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필상이 그런 장타를 때릴 수 없을 것이라고 본 것 같았다. 자신의 공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지만 뭔가에 맞아 튀었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한 것 같았다.

팬들의 어이없다는 반응에 얼굴이 벌게진 그가 개울로 이동하며 필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구겨진 인상은 당장이라도 싸우자고 달려들 것처럼 보였다.

“한판 붙자는 거 같은데요?”

“무섭네!”

“하하하. 형이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서양인들의 공통점이지. 아시아인들이 약하다고 보는 거.”

근현대사는 슬프게도 서양인들의 정복과 약탈의 역사다.

원주민을 잔혹하게 죽이고 몰아낸 뒤에 그 땅을 차지한 유럽인들이 세운 나라가 미국뿐인가, 유럽 강대국들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인 대륙은 아시아뿐만이 아니다.

온갖 착취와 이권을 독점해 쌓은 어마어마한 국부로 아직도 선진국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계에 도달했다고 필상은 생각한다.

‘유럽이 똘똘 뭉치는 이유지!’

근대에 접어들 시기, 과학의 발전과 기술 혁명을 이루지 못한 아시아 각국이 치른 대가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지만 무보다 문을 숭상했던 아시아 국가들은 서양인들의 호전적인 도전에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수많은 나라들이 유럽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그나마 발 빠르게 움직였던 일본은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헛된 야욕을 불태우다가 자멸했다.

서양인들의 시선에 아시아는 여전히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으로 비친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비뚤어진 역사관일지 모른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고 왜곡되고 편향된 서양인들의 관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유효하다는 증거가 정치뿐만이 아니라 스포츠에서도 나타난다는 게 필상이 느끼는 현실이었다.

“일본과 우리나라, 그리고 중국까지 성장하면서 이젠 제법 아시아 국가들의 위상도 상당히 올라간 거 아닌가요?”

“착각이야. 아직도 아시아 국가들은 전략적이지 못해. 뿔뿔이 흩어져 미국과 유럽연합의 공세에 맞대응할 여력이 없지. 미국 애들이 깡패 짓을 해도 늘 당하기만 하잖아.”

“갑자기 머리가 아프네요. 저 자식은 대체 뭐하는 거죠?”

너무 복잡한 사안까지 생각하는 게 골치 아픈지 성호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하기야 골프를 치다 말고 갑자기 동서의 힘의 논리에 대해 언급하는 게 어이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진행 요원이 공이 개울에 빠졌다고 확인시켜 줬는데도 슈와첼은 공을 한참이나 찾았다. 있을 턱이 없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찰 슈와첼, 원래 매너가 안 좋은 선수인가요?

-그런 말은 들어보지 못했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낯선 환경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 저런 무리한 행동은 사실 제지받아 마땅한 짓입니다.

-동반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벌타를 받을 수도 있죠?

-분실구를 찾는 시간이 5분에서 3분으로 단축되었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면 규정을 따라 벌타를 받게 됩니다.

-3분을 넘긴 것 아닌가요?

-각자에게 스트로크 플레이 시간 40초가 더 주어지기 때문에 아마 그 시간까지 아낌없이 쓰는 것 같습니다.

-아! 최대한 질질 끄는 거군요.

-본인에게 불리한 상황이니 그럴 수는 있습니다만 그게 반드시 유리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허 해설의 판단은 정확했다.

최대한 시간을 벌었지만 그의 러프에서의 샷은 또다시 그린을 공략하지 못했다. 지난 샷이 너무 길고 스핀도 먹지 않은 걸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이번 웨지 샷은 그린에 올랐던 공이 백스핀을 먹고 다시 굴러 내려왔던 것이다.

그 와중에 존스가 3m 거리에 붙이며 필상을 압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필상은 다시 한 번 깃대를 맞출 듯 정확한 방향과 거리를 선보이며 1m 남짓한 버디 기회를 맞이했다.

차분하게 라이를 읽고 공략한 필상은 버디를 잡아 3홀에서 2타를 줄이며 시즌 10승을 향한 과감한 행보를 이어 나갔다.

다행히 슈와첼도 전반에서 가장 어려운 4번 홀에서 파를 잡아내며 일단 평상심을 되찾았다.

“나이스 터치!”

먼저 홀 아웃을 한 필상은 쉽지 않은 3m 퍼팅을 차분하게 성공한 슈와첼의 퍼팅을 바라보다 격려의 한 마디를 건넸다.

이미 팬들의 환호에서 멀어진 까닭에 필상의 음성은 더 선명하게 들렸다. 그게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그의 얼굴에 떠오른 어색한 미소가 좀 안쓰럽기는 했다.

하지만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린 필상은 부담스러워 하는 그에게 뭔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3번 홀이었던가요? 마스터스에서의 웨지 샷 이글 영상을 어제 다시 한 번 봤는데, 다시 봐도 정말 멋지더군요.”

[다음 편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