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66화 (66/354)

066. 펀치 샷

아이언을 건네는 성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필상보다 더 긴장한 이유는 평소라면 7번 아이언으로 컨트롤 샷을 할 거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한 클럽을 요구한 필상은 아주 당당하게 티 그라운드에 올라갔다.

그린까지의 경로는 물이 절반이다.

10야드가 짧으면 공은 여지없이 워터해저드에 빠지고 길거나 밀리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가드 벙커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그린 중앙을 보고 살짝 페이드를 거는 공략이 최선이라고 논의했었다. 물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필상은 스트레이트가 아닌 구질은 구사하지 않지만.

쉬익!

성호가 느낀 것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7번이 아닌 8번으로 그렇게 컨트롤 샷을 할 경우, 172야드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초조한 눈빛이 높게 치솟은 공을 따라갔다.

“어?”

자신이 클럽을 잘못 줬나 싶을 만큼 충분한 비거리가 확보된 것에 먼저 놀랐다. 뒤에서 보면 오로지 하나의 직선만 그려질 만큼 완벽한 스트레이트 구질은 봐도, 봐도 신기했다.

퍽!

그린에 자신의 자취를 확실하게 남긴 공이 크게 한 번 튀고는 마치 공회전하는 바퀴처럼 돌더니 우뚝 멈춰 섰다.

높은 탄도와 스핀이 만들어 낸 절묘한 멈춤이었다.

성호의 눈에는 공과 홀컵이 일직선이라서 얼마나 붙었는지 눈대중이 되지 않았지만 귀청을 울리는 거대한 함성이 멍한 정신을 일깨웠다.

-하마터면 홀인원이 나올 뻔했습니다. 하하하.

-참 대단하네요. 대기하고 있는 김경태 프로도 혀를 내두를 정말 깔끔한 아이언 샷입니다.

-그래도 슬라이스 라이가 적잖은 2m 퍼팅은 좀 부담스럽기는 하겠네요.

-오늘 저렇게 핀을 직접 공략하다가 공을 호수에 헌납한 선수가 9명이나 됩니다. 저 정도면 만족해야죠.

지뢰밭의 첫 물꼬를 기가 막히게 튼 필상은 보무당당 티 박스를 내려왔다. 교대하며 올라서던 김 프로가 오른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은 팬들의 박수를 자아냈다.

아무리 친해도 경쟁자끼리, 그것도 승부의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의 굿 샷을 응원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역시 김경태인가?

인품만 원만하면 좋으련만 그의 샷은 필상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한 클럽을 길게 잡았고 페이드를 걸었는데, 결과는 누가 더 핀에 붙었는지 자를 들고 재야할 것 같았다.

추격하는 자나 추격을 거부하는 자나 한 치의 빈틈도 없는 환상적인 대응에 팬들의 응원 소리는 지축을 흔들었다.

“아. 진짜! 너무합니다.”

“뭘 너무해! 넌 경로 우대도 모르냐?”

“형이랑 나랑 겨우 한 살 차이거든요!”

“그런가? 내가 말하는 건 짬밥이지, 짬밥!”

“19승이면 먹을 만큼 먹은 거 아닙니까?”

“배고파. 나도 오래 굶었다고. 넌 올해 3승이나 했잖아!”

이걸 누가 경쟁자들 간의 대화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그린으로 향하는 필상과 김 프로는 마치 반찬 투정하는 어린애들처럼 서로 양보하라고 보챘다.

농담이지만 서로 팽팽한 기 싸움이 저변에 깔린 대화였다. 프로라면 승리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필상의 3연속 버디에 김 프로도 2연속 버디로 맞장구를 치는 1타 차의 팽팽한 승부에 팬들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431야드입니다.”

“뒷핀이면 타수를 줄여야 하는 홀이네.”

“우측 6야드지만 뒤에서 4야드라서 자칫 넘어가는 걸 조심해야 합니다.”

“일단 티샷을 마음껏 때려 보자고.”

“드로우 거시게요?”

“아니. 스트레이트!”

평소 필상은 드라이버 티샷을 가용한 힘의 70%로 때린다.

가장 안전하다는 결론을 얻었고 그만큼만 보내도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 홀도 별다르지 않지만 조금 더 보내려는 이유는 보다 확실한 핀 공략을 위해서였다.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 슬라이스 맞바람이 있어!’

첫날 더블보기를 기록했던 홀이라 찜찜했다.

당시 좀 두껍게 맞기는 했지만 아무리 되돌아봐도 우측으로 밀려 해저드로 굴러들어 갈 정도의 미스 샷은 아니었다.

유독 바람이 느껴졌던 1라운드 다른 선수들의 기록을 살펴봤는데 자신처럼 앞핀을 바로 공략했던 선수들 중에 상당수가 타수를 잃었다. 그것도 호수에 공을 빠뜨리며.

때문에 가장 자신 있는 거리, 130야드를 남겨 갭 웨지로 공략하기로 작정한 필상은 평소보다 조금 더 강한 힘을 썼다.

300야드를 보내려면 적어도 가용한 힘의 80%는 써야 하지만 아주 살짝 힘을 보탰을 뿐인데도 타구는 힘차게 날았다.

스윙의 별다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성호는 안심했다.

필상이 막상 티샷을 하는 순간에는 방향성에 유의해 평소처럼 안전한 공략을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샷 결과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괜찮았어?”

“뭐죠? 왜 갑자기 비거리가 늘어난 거죠?”

“컨디션이 올라온 것 같아.”

“컨디션이 올라와요? 오늘이 4일째이고 후반부인데요?”

“그러게.”

성호는 변강쇠냐고 되묻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지치고 힘들어 한계 상황으로 다가갈 시기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1타 차의 팽팽한 우승 경쟁을 하던 차가 아닌가?

하지만 필상의 티샷은 캐리만 274야드, 런도 심하게 발생해 비거리가 무려 302야드를 기록했다. 특별히 드로우 샷을 구사한 것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필상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업이 된 컨디션에 적응된 건가?’

인코스에 접어들면서 필상은 갑자기 변한 자신의 컨디션을 면밀히 살폈다. 이런 경우 나타나는 증상은 두 가지였다.

업이 되거나 다운이 되는데, 쉽게 샷 이미지가 맺히는 것을 확인한 필상은 컨디션이 업 되었음을 확신했고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지난 홀에서 한 클럽을 짧게 잡고도 버디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티샷은 기대 이상의 비거리가 나왔다.

300야드를 노렸지만 공의 궤적을 유심히 살핀 필상은 허공에 존재하는 강한 맞바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더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하겠어!’

맞바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김 프로의 샷에서도 확인되었다.

필상이 아주 인상 깊은 티샷을 날렸지만 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평상시와 똑같은 티샷을 때렸다.

280야드를 염두에 둔 부드러운 샷이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티 박스에서 내려왔다. 267야드에 불과한 비거리가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파악했는지 묘한 질문이 푹 들어왔다.

“필상아. 너 왜 갑자기 세게 때린 거야?”

“세게 때리지 않았는데요!”

“왜 이래? 선수끼리.”

“뒷바람이 있나?”

“뒷바람?”

헷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느낌은 분명히 맞바람이지만 필상의 샷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뒷바람이 분다는 말도 그럴 듯했고.

그래서 스캇의 티샷을 참조하려고 했건만 그나마도 불가능했다. 이미 심각하게 망가진 그의 티샷은 어이없게도 토우(toe- 클럽헤드의 끝부분)에 맞아 낮은 탄도의 기형적인 궤적을 보였기 때문이다.

비록 공이 러프에 들어갔지만 김 프로보다 더 멀리 굴렀다는 것도 참으로 아이러니한 부분이었다. 세컨샷을 먼저 하는 선수의 부담이 큰 상황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세컨샷 지점에 도착하자 성호는 터지는 웃음과 의문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설마 경태 형이 뒷바람이라고 믿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있냐! 본인의 감각을 믿어야지. 근데, 내 말이 좀 솔깃하기는 했을 거야?”

“그러니까요.”

필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세컨샷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지만 성호의 시선은 김 프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친했던 형이라 한 마디 해 주고 싶지만 그건 매너가 아닐뿐더러 규정에도 어긋나는 행위였기에 참았다.

169야드를 남긴 김경태는 잠시 고심한 끝에 7번 아이언을 잡았다. 클럽만으로 본다면 맞바람을 인정한 것이다.

멀리서 봐도 아이언 번호를 알 수 있는 성호는 비로소 얼굴이 밝아졌다. 그런 변화를 김 프로도 감지한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한 채, 김 프로의 샷을 지켜봤다.

“어?”

“스윙 크기는 적당했는데 그래도 물에 대한 부담이 컸나?”

“아! 그랬나 봅니다.”

김경태의 세컨샷은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살짝 드로우가 걸리며 그린 좌측의 러프에 떨어졌다. 파악한 바로는 꽤나 질기고 긴 러프여서 핀에 붙이는 것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 같았다.

“근데 성호 너. 너무 아쉬워하는 거 아냐?”

“크크크. 제 얼굴에 그렇게 써 있나요? 하지만 이미 결과가 나온 샷인데, 뭐 어때요!”

물론 필상도 농담이다.

아무리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도 성호가 제 역할을 잊을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미사키가 더없이 좋은 캐디라는 것을 알지만 그녀의 한계는 분명했다. 일본 투어는 그녀와 함께하겠지만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둔다면 결격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미국 전역을 돌며 빡빡한 PGA일정을 소화하려면 언어도, 체력도 걸림돌이고 더 큰 문제는 시즌 내내 붙어 다닐 전속 캐디가 여자라면 과연 모모코가 용납할 수 있을까?

비교적 이동 거리가 짧은 일본에서는 적절한 선이 유지되지만 미국 투어의 생활은 남녀를 따지기가 힘들 것이다. 요청하면 이 대표가 알아서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성호를 만난 순간,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정확히 130야드네요.”

“피칭.”

“피칭이요?”

“그래. 탄도를 낮추면 바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세울 수 있을까요?”

“세워야지.”

세컨샷 지점에서 핀까지 확보된 공간에 장애물은 없다. 게다가 세로로 비스듬히 누운 그린 모양 때문에 정확한 방향이 보장된다면 10m 정도의 런까지는 허용된다.

그래도 바람이 타지 않을 낮은 탄도의 공에 피칭으로 스핀을 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람을 감안하고 조금 더 길게 치는 것이 안전해 보였지만 필상의 생각은 달랐다.

‘길어서 그린을 오버하면 최악이거든!’

펀치 샷(Punch shot)이 정답이다.

손목의 움직임이 포인트인데, 코킹을 최대한 유지한 상태에서 펀치를 때리듯이 임팩트를 가하는 게 포인트다.

지금처럼 비교적 짧은 거리에서는 위험성이 적지 않지만 이미지를 그리는 데 성공한 필상은 공을 평소보다 우측에 뒀고, 체중을 확실히 왼쪽에 싣기 위해 오른발 뒤꿈치를 살짝 든 스탠스가 이채로웠다.

필상의 깔끔한 펀치 샷이 터졌다. 팔로우 스로우에서 손목의 로테이션이 거의 없는 낮은 피니시도 일품이었다.

문제는 결과인데, 일단 탄도는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날아가는 공의 속도를 지켜본 이들의 표정에 놀람이 묻어났다.

이건 너무 강한 게 아니냐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그린이 아닌 러프에 떨어져야 좋을 것 같은데, 공은 그린에 떨어졌다.

“스톱!”

“서!”

“멈춰!”

필상의 성공을 기원하는 수많은 팬들의 염원이 다양한 외침으로 터져 나왔다.

필상의 펀치 샷 장면을 지켜본 중계진도 잠시 말이 끊겼다. 그들도 팬들의 느낌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바운드 뒤에 공의 속도는 급격히 줄었고 핀 바로 앞 1m 지점에서 이뤄진 두 번째 바운드에서는 마치 벽에 부딪친 것처럼 갑자기 위로 튀었다.

물론 강하게 걸린 백스핀 때문에 느낌이 그랬을 뿐이지만, 공은 홀컵을 지나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점에 정확히 멈췄다.

“우와아아아!”

“퍼펙트! 퍼펙트! 미치겠네, 시팔!”

영어로 시작해 욕설로 끝난 누군가의 외침에 다들 크게 웃었다. 그 어떤 탄성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극명하게 드러낸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욕이라도 인상을 찌푸리는 팬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또한 중계진의 반응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 미치겠네요!

-정말 대단한 기술 샷이었습니다. 오른발 뒤꿈치를 들고 스윙하는 모습에 저는 솔직히 걱정스러웠습니다. 안정적인 스탠스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렇게 극단적인 샷이 필요한지 의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하하. 하지만 보셨잖습니까! 강하게 걸린 백스핀을.

-저런 낮은 탄도를 구사하려면 그린을 오버해 해저드에 빠지는 것도 염두에 뒀을 텐데, 그 두려움을 이기고 과감한 샷을 날린 공 프로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짜 졌습니다. 졌어요.”

“뭔 소리야?”

“존경합니다. 형님!”

“오버하지 마. 이런 샷도 못하고 어디 우승을 꿈꿀 수 있겠어!”

딴에는 맞는 말이다.

KPGA 메이저 대회의 우승을 거두려면 신이 점지한 행운이 내리거나 압도적인 실력으로 경쟁자들을 따돌려야 한다.

지난해 박상현 프로가 보여 줬듯이, 올해는 관록의 김경태가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기량을 과시하며 흥행을 이끌었다.

그런데 떠오르는 신성, 퍼펙트 콩이 그에 못지않은 경기력을 발휘하며 맞불을 놓음으로서 그 어느 대회보다 성공적인 팬들의 관심과 인기 몰이를 선도했다.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김성호가 받은 감동은 존경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났고 그건 가식이 아니었다.

틱!

안타까운 장면이 나왔다.

한 치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았던 김 프로의 칩샷 미스였다. 필상의 연이은 굿 샷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걸까?

클럽 페이스의 볼터치가 의도한 만큼 이뤄지지 않은 채 공 밑으로 깊이 지나가는 바람에 칩샷한 공은 어렵사리 프린지에 올랐을 뿐이다.

마크하고 버디 퍼팅을 기다리던 필상은 아무런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안타깝지만 그걸 표현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린지에서의 6.5m 퍼팅은 더 아까웠다. 상당히 까다로운 S자 라이였으나 정확하게 읽은 퍼팅이 홀컵을 외면하고 옆으로 그냥 지나갈 때는 비명 소리가 절로 터졌다.

[다음 편에 계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