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42화 (42/354)

042. 강적(强敵)

[던롭 스릭슨 후쿠시마 오픈, 참신한 얼굴의 등장.]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15, 4타 차 단독 선두.]

[한국 출신 모모코의 캐디, 후쿠시마를 달구다.]

메인에 나온 기사는 아니었지만 별 이름도 없는 선수의 등장을 다룬 기사는 각 스포츠 지면의 한 귀퉁이를 장식했다.

개중에는 경기 내용은 물론 필상의 기량을 상세히 분석한 기사도 섞여 있었다. 물론 우승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말을 아꼈지만 퀄리파잉에 참가해도 충분한 실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의 부진 때문인지 한국의 언론은 필상의 기사를 다룬 곳이 없었다. 물론 그나마 필상은 찾아보지도 않았지만.

“난리에요!”

“뭐가?”

“골프 관련 지면마다 프로님의 기사를 실었거든요.”

“호들갑은! 이제 겨우 본선이잖아.”

미사키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만 필상은 담담했다.

아직 우승을 확정지은 것도 아니고 4타 차가 뒤집힌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관심을 끌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4타 차로 벌어진 것이 부담스러웠다.

남은 라운드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본래 계획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으나 지켜야 할 타수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사키. 무빙 데이 세팅은 어렵겠지?”

“그럴 것 같아요. 작년도 우승 타수가 -10인데 예선 통과 컷이 -1에서 잘렸고 프로님이 벌써 -15를 쳤으니까 주최 측에서는 아무래도 난해한 세팅을 하겠죠.”

“그럼 지켜야 하나?”

“그게 통상적인 공략 아닐까요?”

하지만 필상은 애초의 계획을 고수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입장은 남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지키다 역전을 당해도 상위권은 보장되는 그런 그림은 자신에게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축하해요!

-너도. 하지만 분발해. 둘 중에 성적이 더 나쁜 사람이 소원 하나 들어주는 약속, 어때?

-불공평해요.

필상은 2위와 4타나 벌어진 단독 1위지만 모모코는 현재 공동 6위였기 때문이다.

-그럼 하는 수 없지. 월요일에 요코하마에서 만나.

-좋아요. 내기해요!

-정말?

-좋다니까요.

-OK! GOOD NIGHT.

-오빠 내 꿈 꿔요!

-악몽은 사절!

***

“좋은 아침입니다.”

“네. 처음 뵙습니다. 공필상입니다.”

“오늘 멋진 경기 해 봅시다.”

1번 홀에 먼저 도착해 기다린 필상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넨 이는 유타 이케다, JGTO 통산 20승에 빛나는 강자다.

176cm, 76kg의 단단한 체구와 검게 탄 혈색이 그의 연습량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의례적인 인사만 건넨 그는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마땅히 상대가 알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겉과 속이 동일한 사람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나마 그는 호인이었던 걸까?

‘숀 모리스?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예선에서는 동반자들이 누군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알 만한 선수가 없기도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챔피언 조에 속한 이들은 앞으로 자주 볼 수도 있는 거물인 탓에 미리 확인해 봤다.

이케다는 너무도 잘 알려진 선수라서 말할 것도 없지만 남아공 출신의 모리스는 고의적으로 안면을 까는 것 같았다.

버르장머리 없는 백인 특유의 거만함이 몸에 밴 듯, 동반자들과 인사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똑같이 대하면 그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15 공필상/ -11 이케다/ -10 모리스]

아너인 필상이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자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 멘트가 흘러나왔다.

-한국 출신 공필상 선수를 소개합니다. -15로 선두입니다.

‘아마추어라는 말은 뺐네?’

선두에 대한 예의인지, 아마추어에게 선두를 내준 것이 주최 측의 심사를 건드린 것인지 괜히 쓴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주변 분위기가 호의적이지 않다는 느낌 때문에 오히려 필상의 전투력이 상승했다.

까앙!

그다지 아름다운 소리는 아니지만 필상은 첫 티샷을 가볍게 휘둘렀다. 거리보다 방향을 우선시한 스윙이었다.

275야드, 짧은 비거리였지만 398야드의 파4 홀에서 그만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다. 페어웨이 정중앙을 지켰기에.

이케다 역시 무리하지 않고 편안한 스윙으로 페어웨이를 지켰다. 하지만 모리스는 뭔가 단단히 작정한 사람 같았다.

연습 스윙부터 바람소리를 휙휙 내더니 화산이 폭발할 것처럼 강력한 티샷을 선보였다. 188cm의 신장에 100kg을 훌쩍 넘어선 육중한 체구에서 터진 파워 스윙은 압도적이었지만.

‘스윙을 힘으로 하나?’

깎여 맞은 공은 이상야릇한 포물선을 그리며 우측의 러프로 흘러들어 갔다. 필상이 확인한 바, 그의 드라이브 평균 비거리는 287야드로 투어 전체에서 35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이케다는 296야드를 찍어 최상위권인 5위에 랭크되어 있다. 체중 이동의 묘리를 정확히 체득한 이케다야말로 장타자로 분류된다.

그처럼 정확한 데이터가 존재하는데, 모리스는 대체 뭘 믿고 무리수를 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세컨 샷이 홀컵에 가깝다고 더 잘 붙이는 것도 아니다. 거리가 먼 선수가 홀컵에 쩍 붙이면 오히려 그것에 영향을 받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향이 짙다.

“123야드에요.”

“피칭.”

이케다는 115야드, 러프에 들어갔지만 모리스도 112야드 가량 남았기에 필상이 먼저 세컨 샷을 시도했다.

갭 웨지가 적당한 거리지만 필상은 피칭으로 컨트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프스윙보다 조금 더 올라간 헤드가 최고점에서 잠시 휴식이라도 취하는 듯 멈추었으나 그 무게를 그대로 살린 아주 부드러운 스윙이 이뤄졌다.

공이 헤드에 맞는 소리도 나지 않았고 클럽헤드가 지나간 자리에 디봇이 생기지도 않은 정말 깔끔한 샷이었다.

“굿 샷!”

“홀 인!”

누구나 필상처럼 완벽한 리듬의 샷을 원한다.

하지만 알면서도 잘되지 않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에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스윙이 이뤄지자 갤러리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핀 하이로 정확히 날아갔기에 샷 이글을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측으로 살짝 벗어난 공은 한 번 크게 튄 뒤,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절묘한 스핀을 먹여 1.5m 버디 퍼팅을 남긴 것이다.

“멋졌어요!”

“퍼터.”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퍼터를 받아 든 필상의 시선이 이케다에게로 향하자 미사키는 필상의 뒤통수에 대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원래 무뚝뚝한 스타일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반응이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보다 더 담담해진 게 아쉬웠다.

아마도 일생일대의 중요한 경기라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괜히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모모코의 폭탄 인터뷰가 아무 근거가 없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도 그녀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샷 좋네!”

이케다는 52도 웨지를 이용해 홀컵을 바로 공략했다.

백스핀이 강해 홀컵 앞에 떨어진 공이 더 멀어진 점은 아쉬울 만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면 스스로 샷 감각을 조율하는 과정으로 비쳤다.

문제는 생각보다 깊은 러프에 공을 빠뜨린 모리스였다.

퍼스트 컷과 세컨드 컷의 경계에 애매하게 걸린 공은 테이크백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강한 힘으로 찍어 쳤다.

임팩트는 제대로 이뤄졌지만 필상이 판단하기에 그의 스윙은 애당초 너무 컸다. 게다가 탄도가 낮게 나온 공은 그가 좋아하는 힘을 잔뜩 머금고 그린을 직격했다.

“우우우…….”

갤러리들의 안타까운 탄식을 자아낸 그의 공은 그린을 지나 다시 깊은 러프에 파고들었고 그나마 뒤편의 오르막이 없었다면 홀의 경계를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린에 올라가 마크를 하고 확인해 보니 그의 공은 다운힐 라이(Downhill lie-어드레스 시, 왼발이 오른발보다 낮은 경사지에 공이 서 있는 상태)에 공이 잘 보이지도 않는 헤비러프에 잠겨 있었다.

그의 붉게 달아오른 혈색이 그가 처한 난처한 상황을 확연하게 보여 줬다. 그러게 사람은 겸손하고 봐야 할듯.

틱!

헤드가 두툼한 피칭웨지 같은 클럽으로 피치샷(pitch shot-아이언으로 백스핀이 걸리게 공을 높게 쳐 올려 목표 지점에 정확히 멈추도록 하는 어프로치샷)을 하면 적당할 것 같은데, 그는 샌드웨지로 로브 샷(lob shot-공을 높이 띄워 치는 샷)시도했다.

그 결과 클럽 페이스가 공의 하단을 그냥 스치고 지나가 버렸다. 애초에 힘의 전달이 미약했던 공은 2m 앞의 러프에 다시 박히고 말았다.

남의 일이지만 괜히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번에는 그나마 라이가 괜찮아 칩샷을 하면 되는데 이미 마음의 동요가 컸던 그의 칩샷은 홀컵을 지나 보기로 막는 것이 버거운 거리를 남기고 말았다.

“혼자 치나?”

112야드 세컨 샷부터 로브 샷, 칩 샷, 그리고 롱퍼팅까지 무려 4번이나 주인공이 된 그의 험난한 하루가 그렇게 더블보기로 시작되었다.

그러게 인사나 잘할 것이지.

‘마음을 곱게 써야 복이 굴러들어 온다’는 말은 믿지 않지만 모리스를 수차례 겪어 본 이케다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보면 아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았다.

이케다는 애매한 3.6m 퍼팅을 버디로 연결했고 필상도 신중하게 자신에게 돌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일대일 매치라고 생각하면 간단하겠어!’

필상은 이케다의 컨디션이 좋아 보였기에 그와 매치플레이를 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는 것이 적절하다 판단했다.

그렇게 마음을 굳힌 결정은 유효했다.

이케다는 전반에 3타를 줄였으나 필상과의 타수 차이를 줄이지는 못했다. 그가 버디를 낚은 홀은 어김없이 필상도 버디로 응수를 했기 때문이다.

인코스로 접어드는 길목에 그가 다가왔다.

“공 프로.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제가 두 살 어립니다. 87년생이죠.”

“아! 그렇군요. 일본에 온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이제 두 달 남짓 됐습니다.”

“두 달이요?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해냈군요. 하하하.”

사실 이케다의 인상은 호감을 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살피던 중에 필상은 아주 독특한 기사를 봤다. 골프 전문가들은 그에 대해 평하길, 스스로에게 지나칠 만큼 모질고 냉철한 프로 골퍼라고 말했다.

2016년 이미 통산 16승을 거둔 투어의 강자로 자리매김했지만, 그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도전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겸손한 의지를 밝혔다.

골프에 대한 그런 진지한 자세는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닿은 일화가 있다.

“요즘도 하우스 캐디와 함께 라운드를 하십니까?”

“하하. 아닙니다. 방황을 마치고 이제 정착했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캐디 출신이라 KBC 오거스타 골프 토너먼트 우승 뒤에 했던 인터뷰를 아주 인상 깊게 봤습니다.”

“아! 아리사? 그때 우리는 굉장했지요. 하하하.”

한국인인 필상이 자신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이 쑥스러웠는지 어색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필상이 언급한 내용은 그가 우승을 거둔 뒤,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 자신의 캐디였던 미야자키 아리사를 불러내 모두에게 소개하며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눴던 일화다.

‘난 누구에게 감사를 표할까?’

김칫국부터 마실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 기사를 읽으며 프로 선수라면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느꼈다.

대부분의 우승자들은 인터뷰에 부모와 친지, 후원사, 협회 관계자들까지 일일이 호명하며 감사를 표하지만 함께 나흘간 고생한 캐디의 이름은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다.

함께 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캐디의 역할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당시 이케다는 하우스 캐디였던 젊은 아리사의 최선을 다하는 열정과 노력을 보고 자신도 힘을 얻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체력도 집중력도 떨어지던 경기 후반, 수동 카트를 끌며 힘겹게 언덕을 오르던 캐디의 뒤에서 슬그머니 백을 밀어주던 그의 따스한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을 보면 그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라고 보는 게 옳다.

“후반에는 서로 치고받네요?”

“받고 싶지는 않아. 치고 싶지. 그것도 먼저!”

10번 홀에서 이케다가 6m 퍼팅을 버디로 연결한 뒤, 필상은 훨씬 더 가깝고 라이도 좋은 4m 퍼팅을 놓쳤다.

하지만 11번 홀에서 되갚았다.

둘 다 2온에 실패했지만 그의 칩샷은 홀컵을 훌쩍 지나간 반면 필상은 탭인 거리에 붙여 먼저 파로 홀 아웃을 했다.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 그의 퍼팅은 흔들렸고 3온 2퍼팅으로 다시 둘의 스코어 차이는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필상이 아쉬운 것은 일단 벌렸다 줄어들면 더 좋겠건만 꼭 먼저 당한 뒤에 따라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짝수 홀에서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경향은 마지막 홀까지 이어졌다.

차이가 있다면 인코스에서 필상은 버디 1개에 나머지는 모두 파로 막았지만 버디 4개에 보기 2개를 기록한 이케다는 결국 1타를 줄이고야 말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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