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39화 (39/354)

039. 첫 출격!

“시기와 배척?”

그런 시선은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앞으로 그녀와 함께 다닐 때마다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에게도 비칠 게 아닌가!

그건 부담스러웠다. 스스로 실력을 입증하고 존재감을 알릴 필요도 없이 유명세부터 타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인기가 아닌 부정적인 시선을 감내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벌써 사람들의 시선이 껄끄러웠다. 방금 전에 끝난 인터뷰 내용을 그들이 알 리 만무했지만.

그냥 자신이 나서 부정한들 소용도 없는 사안이다. 어찌 되었든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인 모모코다.

그녀와 먼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필요를 느낀 필상은 시상식에 참석한 모모코를 찾아냈고 그녀 곁에 다가갔다.

“대체 왜 그런 거야?”

“그냥 운동에만 집중하고 싶어서요.”

“그것과 네 감정을 드러낸 것이 무슨 상관이 있지?”

“쉬! 다들 보잖아요. 이따가 밥 먹으면서 얘기해요.”

어쩌다 끌려가는 신세가 된 것인지 답답했다.

누군가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모모코의 인터뷰 파급효과는 상상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높다.

백설 공주와 난쟁이처럼 희화화되지 않으면 다행이려나, 어쩌면 내일 아침 누나들한테 전화가 걸려 올지도 모를 일이다.

시상을 받은 모모코가 슬며시 먼저 빠져나가자는 눈치를 보냈고 급기야 필상은 그녀와 단둘이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둘만 남게 되자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제가 싫어요?”

“아니.”

“그럼 제가 너무 어린가요?”

“그건 부정할 수 없지. 우린 띠 동갑이잖아.”

“좋아요. 하지만 제 마음까지 오빠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어요. 다른 데 관심 쏟지 않고 그냥 골프에만 전념할 게요.”

지금까지도 그래왔을 것이다.

사적인 것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말처럼 누군가를 향한 마음까지 구속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을 공개한 것이 문제일 뿐.

그러나 그 또한 쉬운 결정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함부로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다. 호감이 없지 않은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모모코. 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

“알아요. 오빠는 반드시 해낼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제 곁을 떠나게 될 거라는 것도 알아요.”

“좋게 봐 줘서 고맙기는 한데, 나중에 벌어질 확정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조바심? 맞아요. 전 오빠가 없는 골프, 너무 힘들 것 같아요.”

바로 그것이었다. 마치 쐐기라도 박듯이 제 마음을 공개한 이유가 그 불안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의 최근 성공이 모두 필상으로 말미암았다는 생각이 강했고 호감을 넘어선 감정적인 의존도도 지나치게 높았다.

필상이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면 과연 지금처럼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도 없었던 것이다.

“모모코. 넌 충분히 강해.”

“오빠 없이도 그럴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생각해 봐. 내가 뭘 그리 대단한 걸 해 줬다고? 네가 이미 갖고 있었던 네 스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뿐이야. 결과는 모두 네가 직접 만든 거잖아!”

“그렇기는 하죠…….”

“내가 대신 쳐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네 기량이 받쳐 주지 못했다면 내가 아무리 최고의 조언을 해 줬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거야.”

“자신감! 오빠가 곁에 있으면 그게 살아나요. 전에는 그렇지 않았단 말이에요.”

“오늘 라운드를 생각해 봐. 넌 이미 네 샷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어. 난 거리를 불러 준 거 말고는 별로 한 거도 없었어.”

감정이 현실과 복잡하게 얽힌 어려운 문제다.

어리고 순진한 모모코는 필상의 꿈을 열렬히 응원하면서도 그게 자신과 멀어지는 길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이다.

못내 버거웠던 답답한 마음이 이상한 방향으로 표출되었는데, 미연에 신경을 쓰지 못한 자신의 불찰도 돌아봐야 했다.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흔들리는 여린 여심에 대한 배려는 총각인 그로서도 버거운 지점이었다.

자신에게 닥쳐올 문제는 당당히 맞서 나갈 자신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모코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기량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 반짝 성공에 그칠 것이고, 필상도 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산토리 레이디스 오픈에서 홀로서기 시험해 볼게요.”

“괜찮겠어?”

“네. 오빠도 대회 준비해야 하잖아요.”

다음 주에 열리는 대회에 하우스 캐디를 쓰겠다는 모모코의 결정이 고마웠다. 필상이 권하고 싶었으나 그녀가 먼저 상황을 이해하고 자청한 것은 의미 있는 진보였다.

가장 든든한 동료 없이 홀로 싸워 보겠다는 의지, 그게 지금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임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모든 편견과 우려를 깨고 지금 당장 그녀를 확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정말 힘든 저녁이었다.

어쩌면 그녀만큼 자신도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후쿠시마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다.

던롭 스릭슨 후쿠시마 오픈은 JGTO 정규 대회 중에서 가장 작은 대회다. 대부분의 대회 총상금이 1억 엔을 넘지만 이 대회는 5천만 엔에 불과해 탑 랭커들의 참가율이 저조하다.

다음 주에 열리는 JPGA 챔피언십을 위해 컨디션 조절을 하려는 선수들이나 참석할 뿐, 하지만 투어 시드를 유지하고 싶은 선수들에게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필상도 한 번 도전을 해 볼 만한 대회였다.

“프로님!”

“미사키. 오랜만입니다.”

“치! 그래 봐야 일주일 만에 만나는 건데, 갑자기 말투가 왜 그래요?”

“그런가? 하하하.”

본래 계획은 모모코와 산토리 레이디스 오픈까지 치르고 돌아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묘한 상황이 발생해 일정을 조절하게 되었고 필상으로서는 더없이 바람직한 변화다.

니시시라카와에 도착하자 연락을 받은 미사키가 기다리고 있었고 바로 그녀가 짜 놓은 일정에 맞춰 연습에 돌입했다.

무려 열흘간의 여유가 있어 차분하게 샷을 점검하고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있었고 연습 라운드도 충분했다.

“150명 중에 일단 초청 선수가 27명이나 되요.”

“그래?”

“여러 나라 선수들을 초청했는데 한국 선수도 있어요.”

“상금이 적으니 흥행을 위해 여러 수단을 강구했나 보네.”

대회가 다가오며 필상은 점점 더 표정이 사라졌다.

미사키는 필상이 긴장한다고 생각했는지 이런 저런 정보들을 물어 와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일생일대의 전환점을 앞둔 필상은 긴장한 것이 아니다. 진지하게 대회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가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들이 좀 귀찮게 할 것 같아요.”

“괜찮아. 어차피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니까!”

“프로님은 마치 전쟁에 나가는 전사(戰士) 같아요.”

“그렇게 보인다면 다행이네. 하하하.”

웃을 이유도, 억지로 밝아 보일 이유도 없다.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든 좋은 성적을 거둬 상금 순위를 높이는 게 목표지만 필상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뿐이다.

우승!

시드를 받은 선수도 아니고 세계 랭커나 특별 초청을 받은 것도 아니다. 아마추어들과 함께 예선, 본선을 거쳐 바늘구멍과 같은 좁은 문을 통과해 이 자리에 올라왔다.

우승하지 못하면 앞으로 똑같은 과정을 몇 번이나 거쳐야 할지 불확실하고 그도 안 되면 퀄리파잉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너무도 지난한 길이라 이 대회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한국 출신 아마추어 공필상 선수를 소개합니다.

드디어 첫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는 필상에 대한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는 아주 간단했다. 갤러리들의 의례적인 박수 외에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모모코의 캐디로 상당히 충격적인 인터뷰가 있었으나 가십으로 적당치 않다고 판단한 것인지, 다행히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않은 탓이다.

하지만 골수팬들은 모르지 않는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에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필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대체 뭘 했다고?

“1번 홀. 398야드 파4 홀이에요.”

“오케이. 페어웨이 정중앙을 공략할 거야.”

이미 코스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만 드라이브를 건네는 미사키는 홀에 대한 정보를 확인시키며 제 역할을 다했다.

필상도 사전에 짜 놓은 공략 방법을 다시 한 번 읊조리며 대회에 임하는 자신의 굳건한 의지를 되새겼다.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 에이밍을 확인하는 필상은 선선한 바람이 훅 방향으로 불어오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대회 참가를 위해 달려왔던 적잖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고 보고픈 이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하지만 어드레스에 들어선 필상은 고개를 저어 모든 상념을 떨쳤고 자신이 보내고자 하는 IP지점을 재확인했다.

깡!

풀스윙은 아니지만 클럽헤드를 보다 높이 치켜드는 독특한 스윙으로 짧은 비거리 문제까지 해결한 필상의 티샷은 부족함이 없었다.

전문가들이 보기엔 왜 스윙을 아끼나 싶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정확히 스윗 스팟에 맞은 공은 바람을 가르며 치솟았고 정확히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향했다.

279야드.

최근 남자 프로들의 드라이브 비거리가 300야드에 육박하지만 훅 바람을 타고 날아간 필상의 티샷이 남긴 거리는 121야드에 불과했다.

“52도 웨지.”

페어웨이 왼쪽에 정확한 티샷을 날렸지만 환호성은 없었다. 그러나 갭 웨지로 121야드 샷을 날린 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냥 편안하게 친 것 같은 공이 벙커가 위협적인 우측 핀임에도 불구하고 홀컵 바로 앞에 떨어져 그 자리에 우뚝 멈췄기 때문이다.

“백스핀이 절묘하네요.”

“뒷바람을 믿은 게 좀 아쉽네.”

“치! 1m 버디 퍼팅을 남기고 그런 소리를 하면 욕먹어요.”

“모든 순간, 모든 샷에 최고의 결과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거야. 대충 이만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실수가 나오는 거거든!”

틀린 말이 아니다.

골프에 대충은 없다.

잘못된 샷이라도 집중하면 때로 좋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탑핑이 난 공이 정신없이 굴러 그린에 올라가고 핀에 붙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물론 필상은 그 어떤 허점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첫 홀부터 멋진 샷으로 90cm의 퍼팅을 남겼지만 라이를 신중하게 살피고 침착하게 공을 터치해 홀컵에 떨어뜨렸다.

정식 투어 대회 첫 홀에서 버디를 잡은 것이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2번 홀. 172야드 파3 홀이에요.”

“앞에서 14야드, 좌측에서 5야드의 좌핀이로군.”

“여기도 바람이 드로우 방향으로 불어요.”

“7번 아이언.”

공중에 부는 바람의 세기를 인간이 어찌 가늠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밝힐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시간쯤에 어느 정도의 바람이 어떻게 부는지는 통계를 참조하면 된다. 그것을 위해 미사키는 직접 하우스 캐디들의 다양한 의견을 모아 왔다.

하지만 필상은 그 계산보다 우측으로 한 클럽 정도를 더 봤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1번 홀과 동일한 방향이기에 지난 홀의 데이터를 참조한 결과다.

쉿!

드로우, 페이드, 다 필요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장 좋은 샷은 역시 일직선으로 보내는 것이다.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필상은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 줬다.

쭉쭉 뻗어 나가던 공의 힘이 빠질 무렵, 훅 바람을 타기 시작하며 공은 핀 하이로 정확히 떨어졌다.

휘던 방향 그대로 튀었다면 홀컵에 떨어질 것도 같았건만 생각과 달리 정면으로 튄 공은 더도 말고 홀컵 우측 1m 부근에 또 붙었다.

“나이스 샷!”

“제법 잘 치는데?”

“그러게. 아마추어라고 소개했지만 실은 한국의 세미프로라는 것 같더라고.”

“어쩐지! 그러니까 모모코의 샷을 지도할 수 있는 거겠지.”

“난 그 정도는 아니라고 봐. 그냥 콩깍지가 씌인 거지. 키나 외모는 제법 준수하잖아.”

“그런가? 여하튼 초반 분위기 좋은 저 친구 경기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따라가 보자.”

“그러든지…….”

3인 1조로 출발한 동반자들 중에도 유명한 선수가 포함되지 않은 탓에 이 조를 따라붙은 갤러리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추어라던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가 머쓱해질 환상적인 샷에 자연스럽게 환호성이 터졌다.

“연속 버디 기회에요!”

“갤러리로 관전하는 비용이 얼마지?”

“그건 왜요?”

“돈까지 지불하고 찾아오신 분들에게 최소한의 값어치는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아마 예선은 2,500엔(약 25,000원)이고 결선은 좀 더 비쌀 거예요.”

“비싸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사인을 원하는 팬들이 있다면 무조건 해 드려야겠다는 흐뭇한 생각을 하며 그린으로 향했다.

그리고 1번 홀에 이어 2번 홀에서도 침착하게 버디를 낚으며 필상은 자신의 첫 공식 대회를 줄버디로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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