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30화 (30/354)

ILG030- 성실의 아이콘

모모카가 컨트롤 샷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충분히 잘 하지만 버디를 잡을 기회를 더 얻기 위해서는 보다 세심한 컨트롤이 필요하다. 그걸 절감한 계기는 지금이 아니고 어제 필상과의 대결이었다.

샷을 준비하는 필상의 자세는 감히 말을 붙이기도 어려운 마치 신성한 제를 올리는 과정처럼 보였다. 본인이 누차 강조하던 샷 메이킹의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거리와 여타 조건을 따진 뒤, 어떤 탄도로 어떤 구질로 칠 것인지 결정하고 그 스윙을 만들기 위해 반복하는 빈 스윙은 그저 긴장감을 풀려는 통상적인 행동이 아니다.

‘아크가 크면서도 밸런스가 좋은 안 프로의 스윙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겠네!’

그게 좀 아쉬웠다.

모모카의 신체조건은 동양선수로서는 보기 드물다. 키가 크고 늘씬하기에 비슷한 조건의 선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나 일본에서 활약하는 세계적인 기량을 검증받은 선수는 김하늘 정도뿐이라, 안 프로의 스윙을 참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녀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만의 독특한 캐릭터이고 참조하지 않는다고 큰일 날 것도 없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예전기록을 보면 그렇게 쳐지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지난 대회부터 모모카의 퍼팅이 흔들렸다.

“미셸 위 알지?”

“한국계 LPGA 장타자잖아요. 설마...”

“설마 뭐?”

“전 다르다고요. 2년 만에 우승했잖아요.”

“하하하. 그 얘기 하자는 게 아니야. 미셸 위와 넌 일치하는 부분이 별로 없어.”

“그 말도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제 2의 타이거 우즈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던 대형신인이다. 남성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은 매우 강한 스윙을 구사했지만 너무 일찍 흥행의 주인공이 된 탓에 혹사로 인한 부상의 여파로 끊임없이 스윙을 교정한 바 있다.

“내가 미셸 위를 끌어들이면서까지 네게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야.”

“뭔데요?”

“일단 퍼팅이 경기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첫 번째지.”

“퍼팅이 성적과 상금에 직결된다는 거 알아요. 언제든 오빠 조언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말만 해요.”

“근본적인 솔루션은 시간을 두고 찾아야겠지만 내가 볼 때 네 퍼팅의 문제점은 기술적인 게 아니라 심리적인 거야.”

“인정해요. 그린에만 오르면 심장이 날뛰는 것 같아요.”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야 해. 오로지 공이 굴러갈 선만 보고 그리고 공을 굴려야 하는데 의심이 너무 많은 거지.”

“의식을 해도 그게 잘 안 돼요.”

“꼭 넣어야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건 어떨까? 쓰리 퍼팅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핀에 붙이는 거야.”

아마추어라면 적절한 조언이다.

하지만 투어프로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환상적인 아이언 샷으로 매번 온 그린에 성공하는 상황이라면 프로선수가 버디를 노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 결과가 버디는커녕 쓰리퍼팅으로 이어진다면 좋았던 다른 스윙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경계해야 했다.

버디로 이어지면 좋고, 아니어도 안정적인 파를 기록할 수 있다면 보다 편안한 스트로크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큰 짐을 덜은 듯 편안해 보이는 모모카의 표정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된다는 사실을 뒷받침했다.

“다른 하나는 뭐죠?”

“대학에 진학하는 거 어때?”

“공부요?”

“응.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전성기를 맞이하는 게 좋다고들 하지만 그게 과연 자신의 삶을 위해 좋은 선택일까?”

“제가 공부하고는 담 쌓은 얼굴이라면서요?”

“그러니까 더 지적인 노력을 기울여야지.”

“이 씨... 진짜!”

장난처럼 마무리되었지만 필상은 학업을 이어가는 것이 그녀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실질적인 손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부터 오로지 골프 한 길만 걸어왔던 그녀에게 학업은 더 넓은 시야와 다른 세상을 알려줄 것이다.

- 모모카가 후반 들어서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치는군요.

-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됩니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하는 게 골프지요. 지금은 지켜도 충분하다고 본 것입니다.

- 어린선수가 완급조절 능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알려진 대로 모모카의 캐디가 적절한 리드를 하는 것이겠죠?

- 그런 것 같습니다. 둘은 마치 오누이처럼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그게 다 설 익은 모모카의 심리적 안정감을 더하는 요인이라고 봐야 합니다.

- 캐디의 역할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 선수들도 많은데, 그러고 보면 모모카는 좋은 협력자를 만난 것 같네요.

투어대회에서 캐디가 주목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워낙 많은 선수들이 동시에 경기하기 때문에 주요선수들의 경기장면을 보여주기도 급급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모모카의 성적이 워낙 눈에 띠어 그 원인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캐디의 역할이 부각되었다.

그냥 백을 매고 쫓아다니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 한나절을 경기에 집중하는 선수가 기대고 상의할 수 있는 대상이 오로지 캐디뿐이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실제 유명한 프로들은 자신과 잘 맞는 캐디를 구하는데 많은 정성을 들이고 성적도 무관치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투어는 가족들이 캐디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편하기 때문이라지만 실은 경제적인 이유가 주를 이룬다.

캐디의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낮은 탓이다.

“고생했어.”

“코치님도 수고하셨어요.”

“어허!”

“이상하네? 왜 오빠라는 호칭을 더 좋아하지?”

후반에 보기를 하나 범했지만 그래도 버디를 2개 잡은 모모카는 5언더로 매우 훌륭한 첫 라운드를 마쳤다.

깜짝 우승이었다는 구설을 피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필상에게 고마웠던 모모카는 존경의 의미를 담아 그리 불렀건만, 그걸 거부하는 필상에게 묘한 미소로 공격해 왔다.

자신을 여자로 보지 않는다면 당연히 코치님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해야 하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이상야릇한 다그침에 필상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오케이. 그냥 코치라고 불러. 그것도 나쁘지 않아.”

“흐흐... 삐쳤어요? 오빠?”

“얼른 씻고 와. 배고파.”

“네. 뽀송뽀송하게 씻고 올게요. 자기야.”

“야!”

분명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다.

항상 우위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공격의 날은 무뎌졌고 수시로 기습당해 무장이 해제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한껏 친해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만 조심해야할 여지는 보다 커졌다. 농담이지만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지 않겠나.

그리고 그 걱정은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어머! 조금 전에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누군가 했더니 안신애 프로였다.

같은 조로 경기를 했으니 비슷한 동선이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런 짓궂은 농담을 들어 난처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하지만 부정하지 않으면 엉뚱한 소문이 날 것 같아 극구 변명을 해야만 했다.

“모모카가 한국말 배우는데 재미를 붙였거든요.”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정상에 선 그녀가 뭐가 아쉬워 저한테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그냥 좀 친해져서 장난을 자주 합니다.”

“좋아요. 일단 그런 거로 하죠. 그런데 우리 인사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같은 한국 사람끼리.”

안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녀는 진즉에 반가워하는 눈치였으나 모모카가 무서워 애써 회피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녀도 짐작한 듯 싶다.

“경기 중에는 모모카가 좀 민감해서 알고도 인사가 늦었습니다. 공필상입니다.”

“공 프로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워낙 유명하셔서. 호호호.”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했으나 한국 여자골퍼들 사이에서는 필상에 대한 이야기가 가십이 된지 오래란다. 특히나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정된 여자선수들에게 꽤나 흥미로운 화제였다.

모모카가 한국인 캐디를 쓰는 것부터 아주 특이한 일인데, 함께 우승을 일궈내자 여기저기 수소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더 놀라웠다.

안시현의 캐디로 2번 나서서 3위 한 번, 우승 한 번, 그야말로 눈부신 성적을 거뒀으니 어찌 관심이 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노라니 기쁘기보다는 머리가 복잡했다.

“부디 좋은 성적을 기대하겠습니다. 저는 그럼 이만.”

“어머! 너무 하세요.”

“네? 제가 무슨 실수라도?”

“그게 아니고...”

겨우 인사만 하고 그냥 가냐는 반응인데, 늘 관심의 대상이던 그녀에게 이런 대접을 하는 남자는 드물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필상은 어서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다그칠 모모카는 없지만 본인 스스로도 불필요한 구설에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서둘러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필상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안 프로의 뾰로통한 표정, 그걸 보지 못한 것은 다행이었다. 남자라면 뭐래도 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자태였기에.

‘내가 일본에 온 목적이 흐려지는 느낌이네!’

샤워를 하는 필상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난감했다. 캐디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은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기에 나쁠 것이 없다.

하지만 이미 모모카와 독점적인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런 관심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행여 본질을 호도하는 상황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모모카와의 감정이 뜻하지 않게 애매한 선을 향하고 있기에 다시 한 번 스스로 돌아볼 필요를 느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는 결국 마음을 굳혔다. 미우라와 약조한 대로 여동생처럼 아끼고 그녀가 투어의 강자로 우뚝 서는 밑거름이 되겠노라 결심했다.

“연습이요?”

“응. 어서 후딱 먹고 퍼팅부터 점검하자.”

“난 시내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하지만 필상은 클럽하우스 식당으로 앞서 걸었다.

마치 스스로의 결의를 다지기라도 하듯이 곧바로 제 역할을 분명히 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투덜거렸지만 모모카는 잘 따랐고 그날 늦은 밤까지 필상은 퍼팅과 숏 게임 연습을 시켰다. 질릴 만도 한데 꿋꿋이 따르는 모모카도 대단했다.

그런 집념과 성실함을 갖췄기에 어린 나이에도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로 성장하지 않았나 싶었다.

- 오늘 아침 골프 매거진 특집기사 보셨나요?

- 아! 봤습니다. 저는 아주 감동 받았습니다. 하하하.

- 백조처럼 우아해 보이지만 사실은 물밑에서 쉬지 않고 발을 저었던 것이더군요. 예쁘고 귀여운 외모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다던 안티 팬들이 이제 쑥 들어가겠죠?

- 물론입니다. 일본 골프의 내일을 책임질 모모카의 쉬지 않는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아마 다른 선수들도 그 기사를 보고 느낀 것이 많을 겁니다.

- 그래서 오늘 모모카의 플레이가 더 기대가 되네요.

- 오늘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어젯밤 10시까지 야외그린에서 묵묵히 연습하던 모모카의 모습이 한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던 것이다.

그가 관찰한 시간은 저녁 7시부터 세 시간이었고 그 동안 모모카는 5분씩 단 2번 쉬었을 뿐, 퍼팅과 어프로치 연습에 매달렸다.

사실 어제저녁 연습장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찼다. 대회 중이니 너무도 당연한데, 저녁을 먹으러 나간 이후에 돌아온 선수는 많지가 않았다.

그나마 9시가 넘어서면서 다 빠졌는데 모모카는 그들보다 1시간가량 더 연습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자의 긍정적인 멘트까지 더해지면서 모모카는 미녀골퍼라는 이미지를 넘어 이젠 성실의 아이콘으로 도약했다.

“저 이제 어쩌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네!”

“역시 오빠 말 듣기 잘한 거 같아요.”

“웬 오빠? 코치님이라고 불러.”

“싫어요.”

일부러 살짝 정색했지만 모모카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마도 이젠 코치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딘지 모르게 변한 필상의 분위기를 감지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집중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제처럼 아이언 샷이 날카롭지는 않았으나 오늘은 숏 게임이 아주 좋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하나가 좋아지면 다른 게 말썽이라는 것이다.

“내일은 다 좋았으면 좋겠어요.”

“다 나쁘지 않으면 다행이지.”

“뭐에요! 긍정적인 말을 보태도 시원찮은데!”

“오늘은 연습할 게 더 많다는 얘기야.”

“어우! 진짜.”

모모카는 오늘 2언더를 쳤다. 합산 7언더로 아직은 단독선두를 유지했지만 바로 밑에 6언더가 무려 4명이나 됐다.

히가 마미코, 테레사 루, 우에다 모모코, 그리고 전미정.

누가 한 명 쉬운 상대가 아닌 탓에 방심할 수 없었고 그날도 필상과 모모카는 10시가 넘어서야 숙소로 돌아갔다.

*

메이저대회가 아닌 보통 대회는 3라운드로 치러진다.

최종라운드에서 단독선두가 전반에만 3타를 줄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야 한다. 하지만 챔피언 조에 속한 우에다와 테레사는 인생 샷을 터트리고 있었다.

통산 12승의 우에다는 작년의 무승을 딛고 필승의 의지가 담긴 샷을 연신 퍼부었고 이에 질세라 통산 16승의 대만에서 온 강자 테레사도 최상의 컨디션을 보였다.

그 결과 인코스로 접어들 때, 팬들은 올 시즌 가장 흥미진진한 승부를 관전하게 되었다. 챔피언 조에 속한 세 선수가 모두 10언더, 공동선두였던 것이다.

선작과 추천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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