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프가 좋아-28화 (28/354)

ILG028- 이건 사기에요!

정색한 이보영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으나 그런데도 최 프로는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필상이 아주 정확한 샷을 구사한다는 것은 알지만 PGA프로들과 비교하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도대체 뭘 본 것인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를 이보영은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사람의 생각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적당한 선을 지킨 듯.

필상을 주시하는 이 대표의 시선은 여전히 뜨거웠다.

- 드디어, 드디어 승부가 종지부를 찍나요?

- 정말 피가 마르는 경기였습니다. 하하하!

15, 16번 홀에서도 모모카의 샷은 위협적이었다.

비록 버디를 낚지는 못했으나 무리하다 괜한 결과를 내지 않으려는 조심성이 더 빛난 플레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했다.

안선주가 16번 홀에서 다시 버디를 잡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지만 파5 홀인 17번 홀에서 때린 티샷이 나무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순간, 승부는 결정되고 말았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감히 단언했던 중계진의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일찌감치 축하모드에 돌입한 것이다.

“오빠!”

마지막 우승퍼팅을 넣은 모모카가 필상의 품에 폭 안겼다.

펑펑 우는 그녀를 차마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자신도 그녀가 느낀 격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에 안시현과 함께 이뤘던 우승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훨씬 고생한 느낌이 강해서인지 모모카의 등을 토닥이며 축하의 말을 건넸다.

“고생했어. 그리고 축하해.”

“엉, 엉, 엉... 고마워요. 오빠, 고마워요!”

“모모카. 그만 울어. 옷에 묻은 네 화장품, 잘 지워지지 않거든!”

“에이 씨! 내가 다 빨아준다니까요!”

사방에서 달려 나온 동료들의 샴페인 세례가 퍼부어졌다.

자꾸 필상의 뒤로 숨는 바람에 주인공보다 필상이 더 많이 젖어야 했다. 물론 즐길 뿐 싫지는 않았다.

그러다 문득 필상의 시선에 닿은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모모카. 저기 네 아빠 계셔.”

“아빠...”

첫 우승이다. 당연히 가족들의 축하가 먼저다.

이곳을 비추는 카메라가 기대한 그림도 그것이었을 텐데, 다소 엉뚱하게 축하 쇼가 먼저 벌어진 셈이다.

필상이 의아한 것은 왜 미우라가 먼저 달려 나오지 않았냐는 점이었다. 누구보다 축하받아야할 사람이지 않겠나?

아무리 서로 다퉜고 불편하기로 이런 장면을 그냥 스쳐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 필상이 멈칫한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달려 나간 모모카가 아빠의 품에 안겨 다시 펑펑 울었다.

*

절대 안 된다며 고집을 부리는 모모카를 겨우 가족들에게 넘긴 필상은 어렵게 최 프로, 이 대표와 식탁을 마주했다.

다소 어색했지만 이 대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승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제게는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고 든든한 자산이 될 것 같습니다.”

“자산이라니? 아! 보너스를 듬뿍 받겠구나!”

최 프로가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그가 편했던 것이다.

“네. 계약조건이 좋아서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지낸다고? 내일 우리랑 같이 안 가고?”

아마도 대회가 끝났으니 함께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면 대화를 나눌 시간은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던 최 프로는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네. 단기간에 결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 같아 모모카와 3개 대회를 계약 했습니다.”

“3개나?”

“네.”

“아예 일본에 주저앉을 생각이야?”

“할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도전을 해 보려고요. 다행히 언어도 좀 되고 일거리도 있어서 괜찮을 것 같습니다. 미리 상의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 그럴 것까지는 없고...”

워낙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던지 최 프로는 이 대표의 표정을 살폈다. 이곳에 오며 서로 나눈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당황스럽기는 이보영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녀는 바로 미소 띤 얼굴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

“나쁘지 않네요. 저로서는 좀 아쉽지만.”

“일전에 좋은 제안을 주셨다는 말씀은 전해 들었습니다.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사양했지만 이렇게 뵙게 되었으니 감사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양하지 않으면 되죠.”

뜻하지 않은 반전이 일어났다.

아쉽다더니, 사양하지 말라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하지만 필상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제 스스로 해 보고 싶습니다.”

“일단 주문부터 하죠?”

사업하는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투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그렇게 볼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필상이 단호한 거부의사를 드러내자 이보영은 한 발 물러섰다. 참으로 현명한 여인이었다. 식사를 나누며 그녀는 외곽부터 찬찬히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3개 대회를 연속해서 치를 건가요?”

“그건 모모카와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캐디 일만 할 건 아니잖아요.”

“네. 도전을 위한 준비도 병행해야겠지요.”

“그렇군요. 프로골퍼는 오로지 자신의 기량을 닦는 데만 열중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럴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요. 하지만 새로운 길을 하나씩 개척해 나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병풍을 너무 두텁게 세우네요. 호호호.”

이보영은 에이전트의 역할이 뭔지 정확히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이 지금 필상에게 바라는 것은 딱히 없다.

무리한 계약을 강요할 의사도 없고.

하지만 쉽게 접히지 않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 무리하지 않기로 마음을 바꿨다. 필상이 가야할 길은 아직 멀고 험하기 때문이다.

그저 뒤에서 조용히 도와주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뒤로는 그와 관련된 화제는 뒷전으로 미루고 일본생활에 대한 잡다한 팁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과거 일본에서 10여년을 살았다는 말에 필상의 눈과 귀는 그녀에게 고정되었다.

“라인 아이디 있죠?”

“라인이라뇨?”

“한국은 카톡을 많이 쓰지만 일본에서는 라인을 많이 써요. 어서 라인부터 깔아요.”

엉겁결에 라인 앱을 깔았고 그녀가 필상의 첫 라인친구로 등록되었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그녀의 선의를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 프로는 이제 페럼CC 고객들이 뚝 떨어질 거라며 엄살을 부렸지만 그 역시 필상을 응원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가볍게 반주로 한 잔 걸쳤던 필상은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심란했다. 자신이 결정한 일인데 막상 떠난 그들 뒤에 홀로 남는다고 생각하니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모모카!”

“왜 이렇게 늦었어요?”

“가족들은?”

“조금 전에 미야자키로 돌아갔어요.”

“내일 같이 가지 그랬어?”

“제가 가긴 어딜 가요! 오빠를 놔두고.”

“나?”

“정말 이럴 거예요? 나랑 한 약속!”

“지켰잖아. 우리 이미 우승한 거 아냐?”

“그거 말고요.”

“아!”

머리가 찌근거렸지만 솔직히 싫지는 않았다.

할 일이 태산처럼 많지만 필상도 하루 이틀은 푹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되물었다.

“좋아! 일정을 말해 봐.”

“후쿠오카로 가요.”

“후쿠오카? 거긴 볼만한 곳이 있나?”

“있죠. 1억 2천만 엔이 걸린 호켄 노 마도구치 레이디스 대회. 물론 어서 비행기 타고 가서 이틀 동안 신나게 놀아요.”

“흐흐흐... 그래. 가기 전에 온천이나 실컷 해야겠다.”

“저도요!”

모모카가 이렇게 적극적인 투어 참가를 원할 줄 몰랐다.

너무 힘들게 우승을 이뤄냈기에 한두 주는 푹 쉴 줄 알았다. 사전에 출전신청을 끝냈을 테지만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오래 음미할 줄 알았는데, 후쿠오카로 가자는 그녀의 눈에서 빛이 났다. 강렬한 열망을 담은.

일정이 비면 자신도 구체적인 준비를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미뤄야할 것 같았다.

나흘째 한 공간에 머물며 익숙해져서인지 함께 온천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젊은 남녀 둘이 탕 속에 앉아 있는 광경은 많은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뒷목이 뻣뻣하다며 안마를 해달라고 조르기 전까지는.

*

“같이 다니기 참 불편하네.”

“치! 인기 많은 저랑 같이 다니는 게 자랑스럽지 않아요?”

“맨날 생얼을 보는 내가?”

“정말 이러기에요?”

“안마 해 달라더니 코를 골지를 않나, 신비감이 없어요, 무슨 여자애가!”

“이이이! 도저히 못 참아!”

“이봐, 이봐! 이젠 폭력까지!”

도망칠 수도 없었다. 비행기 안이었기에.

생전 비즈니스 석은 처음이다. 투어 때문에 이동이 많아 항공사 협찬을 받는데, 캐디까지 챙겨 주리라고는 미처 몰랐다.

“후쿠오카는 뭐가 유명해?”

“온천, 그리고 돈코츠 라멘이요.”

“뭐야? 또 온천이야? 라멘은 한국 게 더 맛있다고. 라면.”

“이미 숙소 잡았어요. 아주 좋은 온천여관으로.”

물론 싫지 않았다. 피곤한 하루 일정을 소화한 뒤에 즐기는 온천욕은 중독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꿀맛이다.

그런 생각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모모카도 히죽 웃었다.

“라멘 말고도 맛있는 음식 많아요. 우리 오늘이랑 내일은 맛집 투어 다니는 거 어때요?”

“좋지.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잖아!”

“한국 속담이에요? 재밌네, 크크크.”

월드 레이디스 우승이 그녀를 전국구 스타로 만들었다.

어딜 가나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편히 즐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모모카는 인상 한 번 구기지 않고 팬들을 대했다.

본성이 착하고 익숙하지 않다면 결코 견디기 힘든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필상에게도 사인을 요청했다.

주로 아줌마들이지만 가끔 어여쁜 여자애들도 덤볐는데, 그럴 때면 서둘러 자리를 뜨는 모모카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화요일 낮 시간까지는 놀러 다녔지만, 오후에는 대회가 열리는 후쿠오카 CC에 입성했다. 팬들에게 시달리느니 차라리 골프장에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던 것이다.

“역시 사람은 성공해야 하나 봐요.”

“왜?”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요. 전에는 그냥 연예인 대하듯 했는데, 이젠 진심으로 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존중하는 거지. 그럴 자격이 있다고.”

“그러니까요.”

“필드에 나간 사람들이 있던데, 오늘 라운드가 가능한가?”

“알아봐야죠. 아마 힘들 거예요.”

역시 공을 치던 사람들은 대회 관계자였다. 정식 라운드가 아니고 점검 라운드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온 모모카는 필상이 뭘 원하는지 알아챘다.

“나랑 내기해요!”

“뭔 내기?”

“근처에 골프장 많거든요. 저녁 사기 어때요?”

“좋지.”

아무리 여자라도 메이저대회 우승자다.

하지만 제안한 모모카도 필상도 질 것이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 10분 거리에 위치한 고가GC에 들어서자 매니저가 직접 나와 신경을 써 줬다.

회원도 아니건만 모모카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클럽이 없는 필상은 하우스클럽을 무료로 대여해 주기도 했다.

“본인 클럽도 없는 사람한테 제가 좀 심한가요?”

“그렇다고 내가 핸디를 받을 수는 없지.”

“후회하기 없어요?”

“미투!”

2인 플레이로 필드에 나섰다.

그리고 둘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혈전을 벌였다.

필상은 모모카의 샷을 익히 알지만 모모카는 필상과 첫 라운드였고 실전경기 운영을 어떻게 하는지 처음 겪어봤다.

그런데 매치플레이로 진행된 경기는 어이없게도 11번 홀에서 끝이 났다. 1, 2번 홀에서 비긴 뒤 3번 홀부터 내리 9개 홀을 필상이 이겼기 때문이다.

10번 홀을 마치며 도미상황이 되었고 11번 홀까지 이기며 9&7의 완전히 일방적인 게임이었다.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이건 사기에요.”

“사기라니?”

“어쩜 그렇게 실력을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어요?”

“내가 뭘 속였다는 거야?”

“몰라요. 라멘 먹으러 갈 거예요.”

“알았어. 난 곱빼기!”

“안 돼요. 곱빼기는.”

“으아!”

3DN으로 밀리면서부터 모모카의 표정이 굳었다.

아무리 이틀간 골프채를 놨어도 그렇지, 연습을 못한 것은 필상이 훨씬 오래되었다. 그런데 풀스윙을 하지 않고도 자신을 완전히 압도하는 결과에 멘탈이 무너지고 말았다.

몸이 풀린 뒤, 필상은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워낙 크게 이기고 있어 한 번쯤 기를 살려줄 만도 한데, 그건 모모카의 허망한 바람에 불과했다.

완벽하게 몰아붙여 모모카의 전의를 꺾어버렸다.

이를 악물고 좋은 샷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더 환상적인 샷을 구가했고 퍼팅은 아예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완벽했다.

선작과 추천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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