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101)

북벌(北伐)

1799. 1. 5. 채제공의 집.

정조가 채제공의 집을 찾았다.

“황제 폐하, 불충한 신을 용서하지 마십시오.”

채제공은 누워서 정조를 맞이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채제공은 기력이 너무 쇄하여 정조가 왔어도 이부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채제공에게 정조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몸이 불편하신데 당연히 누워 있으셔야지요.”

채제공이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신은 이제 더 이상 폐하를 모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정조가 채제공의 손을 잡고는 말했다.

“무슨 말씀이오. 경은 짐의 스승이 아니오. 빨리 자리를 털고 쾌차하셔서 짐과 함께 새로 건설된 경복궁도 돌아보고, 저 의주까지 기차도 타보고 해야 할 것 아니오. 곧 있으면 60만 대군이 그동안 준비한 북벌을 위해 압록강을 건너는 것도 같이 가서 봐야 하지 않소. 어서 일어나시오.”

채제공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신은 행복하옵니다. 황상 폐하께서 제좌(帝座)에 앉는 것도 보고, 폐하의 숙원이신 장헌 세자마마의 신원도 보고 갈 수 있어서 신의 소임은 다한 듯하옵니다.”

정조가 그 말에 기어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 모두가 공이 평생을 애쓴 덕분 아니오. 어서 일어나시오. 그래야 짐이 공에게 무어라도 해줄 수 있지 않겠소. 부디 짐을 혼자 두고 가지 마시오.”

채제공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옵니다, 폐하. 신은 그동안 입었던 황은만으로도 누구보다 행복한 신하였습니다. 신이 죽어 혼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저 압록강을 넘어 만주의 너른 들을 우리 군과 함께 달리겠습니다.”

정조가 채제공의 손을 부여잡고 말했다.

“그 무슨 약한 소리를 하시오. 혼이라니요. 짐과 함께 가봐야지요.”

채제공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신이 먼저 가서 황송하고 또 황송하옵니다. 하지만 신의 한평생, 주군으로 폐하를 모실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번암.”

정조는 채제공의 손을 잡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채제공의 삶이 다했다는 것은 정조도, 당사자인 채제공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조는 채제공을 보내주기 싫었다.

세손 시절부터 평생을 자신을 위해 목숨도 돌보지 않고 살아왔던 채제공이기에 정조의 애틋함은 누구보다 더하였다.

한참 동안 채제공의 손을 잡고 그를 위로하던 정조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정조는 태의(太醫, 황제국의 어의를 지칭함)에게 채제공의 병을 돌보라고 하고는 환궁하였다.

경복궁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정조는 오늘이 채제공을 보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정조가 환궁을 하자 최성용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좌에 앉는 정조를 보고 최성용이 말했다.

“폐하, 청국의 건륭제가 죽었다고 합니다.”

정조가 놀라서 물었다.

“건륭제가 죽었다고? 그게 언제요?”

“이틀 전이라고 합니다.”

정조의 안색이 돌연 어두워졌다.

최성용이 그것을 보고는 물었다.

“청국의 사신이 오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까?”

정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건륭제가 죽었다면 분명 칙사를 파견하여 부고를 전할 것이오. 만에 하나 칙사가 현재 조선의 상황을 눈치채고 북경에 전한다면 청국의 준비가 강화되어 우리 군의 희생이 늘어날까 그게 걱정이오.”

최성용이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아마 청국의 사신이 2월경에는 조선에 들어오지 않겠사옵니까?”

정조도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그렇소, 거의 그 시기쯤에 들어올 것이오.”

최성용이 말했다.

“그때가 되면 저희들의 북벌 준비가 모두 끝났을 때입니다. 그때 청국의 사신이 본국으로 들어오면 곧바로 억류를 하고 돌려보내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혹, 청국이 의심을 하여 대대적으로 칙사를 파견할 수도 있지 않겠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때쯤이면 우리 군이 압록강을 넘었을 것입니다.”

정조가 안색을 조금 펴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신이 알아서 조처하겠습니다.”

정조가 다시 당부를 했다.

“자칫 칙사를 소홀히 했다가 수행원 중 하나라도 도망을 친다면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오. 신중히 대처하기 바라오.”

“예, 폐하.”

정조의 집무실을 나온 최성용은 바로 옆 위국공 공관으로 갔다.

장준하의 집무실에는 이미 국정원장 신경식을 비롯해 주요 각료들과 이형구 합참 의장 등이 모여 있었다.

장준하가 물었다.

“황상께 보고는 드렸는가?”

“그렇습니다. 곧 파견될 칙사 문제를 걱정하고 계십니다.”

장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청국에서 사신이 올 것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일단 사신이 들어오면 바로 억류를 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신경식이 대답했다.

“그게 좋습니다. 공연히 한성으로 데려오다 한 명이라도 도주를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장준하가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신경식이 대답했다.

“의주에서 바로 결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자 최성용이 말했다.

“전원 사살입니까? 아니면 생포입니까.”

장준하가 말했다.

“우리가 3월이 되면 북벌을 위해 압록강을 도강할 것인데 그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네.”

최성용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제가 요즘 정치인이 다 되었나 봅니다. 후일 협상 카드로 그들을 억류하자고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준하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조선에 온 지 벌써 10년이네. 자네나 나는 이제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이라고 해야 옳겠지.”

신경식이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합하와 최 대신이 굳건히 버티고 계셔서 이나마 만들 수 있지 않았습니까.”

최성용이 말했다.

“합하와 저를 같이 놓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신경식이 말했다.

“합하께서 안에서 중심을 잡아주셨고, 최 대신이 밖에서 일을 주도한 것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장준하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신 원장의 말이 맞네. 처음부터 힘보다는 경제로 세계를 석권하자는 자네의 생각이 10년이 지난 지금 그대로 들어맞고 있지 않았나. 우리가 북벌을 이렇게 편하게 준비할 수 있는 것도 군자금을 전혀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야. 최 대신이 그동안 정말 고생 많이 했어.”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할 일이 태산입니다.”

그러자 내무대신 김석태가 웃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최 대신은 정말 결혼하지 않을 거요? 벌써 40대 후반이오.”

그동안 결혼을 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사람들도 조선에 들어온 후 제각각 짝을 찾아 결혼을 했으나 각료 중에는 장준하와 최성용만이 유일하게 결혼을 하지 않았다.

최성용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혼자 사는 게 몸에 익어 불편한 줄도 모르겠습니다.”

장준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하는데, 저러다 혼자 늙을지 걱정이야.”

최성용이 장준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언젠가 제 짝이 있을 것입니다.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김석태 또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평생 혼자 살겠다는 말을 듣지 않아 다행입니다.”

장준하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자,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지었다.

장준하가 이형구 대장을 보고 물었다.

“북벌의 준비 상황은 어떤가?”

이형구가 대답했다.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상태라면 3월의 출진은 문제없습니다.”

“군의 사기는 어떤가?”

“얼마 전 폐하께서 순방을 다녀가신 후로 가뜩이나 높았던 사기가 더 충천해져서 이제는 하늘을 찌를 정도입니다.”

장준하가 말했다.

“이달 말 폐하를 모시고 어전 회의를 개최할 것이네. 군부에서는 북진하기 전의 마지막 회의이니 만큼 전군 주요 지휘관들이 모두 참석을 하도록 하고, 회의 준비에 만전을 다해주게.”

이형구 합참 의장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철저하게 준비하겠습니다.”

1799. 1. 18. 체제공의 집.

채제공이 죽었다. 채제공의 죽음은 곧바로 경복궁의 정조에게 알려졌다. 이미 예견된 일이기는 하였으나 정조의 아쉬움은 옆에서 보기 안타까울 정도였다.

정조는 친히 제문을 지어 채제공의 영전에 바치도록 했다. 위국공 장준하도 내각의 모든 대신들을 대동하고 문상을 갔다.

정조는 채제공에게 문숙공이란 시호를 내리고 사흘간 조회를 폐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장준하는 채제공의 진충보국해 온 일평생을 생각하여 정조에게 특별히 말하여 그의 동상을 세우기로 칙허를 받았다.

채제공의 동상이 들어설 곳은 화성 행궁이었다.

채제공이 살아생전 화성 건설에 전력을 기울였었고, 이제는 정조를 위해 궁성이 될 화성(華城)에 그의 동상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살아서는 정조에게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하였고, 죽어서는 동상이 되어 그가 만든 궁성에서 정조를 모시게 된 것이다.

정조는 채제공의 동상을 세우라는 칙지(勅旨)에 날인을 하면서 한참을 울었다.

채제공에 대한 정조의 마음이 조정에 알려지자 모든 신하들이 옷깃을 적시며 고인을 추모하였으며, 신하들 스스로가 나라에 진충보국하자는 마음을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날 조선왕조실록에 참으로 희한한 글이 나온다. 바로 노론 출신 사관의 시각과 정조의 시각이 그대로 적혀 있는 것이다.

먼저 노론의 시각으로 쓴 사관의 채제공을 비판하는 글이다.

‘채제공은 일을 만나서는 권모술수 쓰기를 좋아했다. 외모는 거칠게 보였으나 속마음은 실상 비밀스럽고 기만적이었다. 항상 연석(筵席, 왕과 신하가 모여 의논하는 자리)에서는 웃으며 말하고, 누구를 헐뜯거나 찬양하는 데 있어 교묘하게 임금의 뜻을 엿보았다. 물러가서는 임금의 총애를 빙자하여 은밀히 자기의 사적인 일을 성취시키곤 하였다. 그런데 천주교가 널리 퍼짐에 미쳐서는, 임금이 사교도들의 마음을 고쳐 귀화시킬 책임을 일체 그에게 위임했으나, 그는 사교에 연연하여 흐리멍덩한 태도로 은근히 사당(邪黨)을 비호하다가 끝내 하늘에 넘치는 큰 변이 있게 만들었으니, 역사의 의리로 논한다면 먼저 치죄하는 율(律)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표리부동하고 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사리사욕을 채웠으며, 남인을 비호하려고 천주교를 박해하지 않았으니 먼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열흘 전에 죽은 김종수의 기록은 칭찬 일색이었다. 물론 이 실록이 편찬될 시기는 정순 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던 시기. 벽파가 득세를 했을 때 만든 것이기는 하였지만 해도 너무한 일이다.

조선의 예로 죽은 사람은 죄가 있어도 묻어주는 것이 보통인데, 노론이 얼마나 채제공을 죽이고 싶었으면 이렇게까지 실록에 적어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정조의 말은 전혀 다르다.

‘이제 채제공이 별세했다는 비보를 들으니, 진실로 그 사람이 어찌 여기에 이르렀단 말인가. 내가 이 대신에 대해서는 실로 남은 알 수 없고 혼자만이 아는 깊은 계합(서로 맞은 부분)이 있었다. 이 대신은 불세출의 인물이다. 그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격이 우뚝하게 기력(氣力)이 있어 무슨 일을 만나면 주저 없이 바로 담당하여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굽히지 않았다. 그 기상을 시(詩)로 표현할 경우 시가 비장하고 강개하여 사람들이 연조비가(燕趙悲歌, 춘추 전국 시대 연, 조의 개혁적 성향의 시)의 유풍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벼슬을 시작하여 이때부터 영고(寧考, 영조 대왕)께 인정을 받아 금전과 곡식을 총괄하고 세법을 관장하였으며, 어서(御書)를 윤색(潤色)하고 내의원에 있으면서 선왕의 옥체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리고 매양 주대(奏對, 왕의 물음에 답함)할 적마다 선왕의 웃음이 새로웠는데, 그때는 그의 수염이 아직 희어지지 않았었다. 내가 즉위한 이후로 참소가 여기저기서 빗발쳤으나 뛰어난 재능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는데, 극히 위험한 가운데서 그를 발탁하여 재상 지위에 올려놓았었다. 그 지위가 높고 맡은 임무가 나와 친근하였으며, 권우(왕의 특별 대우)가 두텁고 은총이 성만하였다. …중략… 더구나 50여 년 동안 조정에 벼슬하면서 굳게 간직한 지절은 더욱 탄복되는 바인데, 이제는 다 그만이구나’. 참으로 극과 극의 평가다.

다행한 것은 벽파가 자신들의 사견을 적으면서도 정조의 말은 가감 없이 그대로 실록에 남긴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이렇듯 동시대를 살았던 조정 신료들이 당파 때문에 사람을 얼마나 왜곡되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서글픈 기록인 것이다.

1799. 1. 30. 경복궁 근정전 대회의실.

근정전 대회의실에서 정조가 참석한 가운데 어전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전군 주요 지휘관들과 장준하를 비롯하여 내각의 주요 각료들도 모두 참석을 하였다.

“전체 차렷. 황제 폐하께 대하여 경례.”

“충. 성.”

“바로.”

“회의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은 착석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궁내부 의전국장 김조순의 사회로 북벌에 따른 마지막 어전 회의가 시작되었다.

김조순이 말했다.

“먼저 위국공 합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장준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조에게 인사를 하고 참석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우리는 영광스럽게도 황제 폐하를 모시고 북벌을 위해 여기에 모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상 이민족에 쫓겨 한반도로 밀려 내려온 후 저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진군한 적은 몇 번 없었습니다. 거기다 점령을 한 후 방어가 어렵다고 그 넓은 영토를 포기하고 철수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의 북벌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민족의 고토를 회복하여 우리의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주고자 북벌을 하는 것입니다. 민족의 정기를 바로잡고 실지(失地)를 되찾은 전쟁이니 만큼 반드시 이겨야 하고, 반드시 이번에 끝을 내야 합니다. 나는 우리 군을 믿습니다.”

장준하가 말을 하고 자리에 앉자 곧 회의가 시작되었다.

합참 의장 이형구가 말했다.

“먼저 군의 현황에 대해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북진에 직접 참여하는 병력은 총 60만 명입니다. 그 구성은 50만의 육군과 8만의 해군, 그리고 2만의 공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육군은 10만의 기병과 40만의 보병입니다. 이 40만의 보병 중 3만의 낙하산 부대와 5만의 상륙 부대, 그리고 포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해군은 항모 광무황제함을 비롯해서 총 200척의 전함과 수송함, 그리고 공군은 30척의 비행선과 각종 비행기들이 참여를 합니다.”

이형구가 군의 현황을 한참 동안 설명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을 두고는 다시 말했다.

“다음으로 병력 배치와 진격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기병입니다. 기병은 만주 외곽 오소리강 일대와 흑룡강 일대에 산재된 군진과 각지에 살고 있는 만주족을 평정하기 위해 출진을 합니다. 이 지역은 그동안의 항공 정찰로 사람이 거의 살고 있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지만 지역 특성상 산발적인 전투가 우려되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기병들을 배치하여 이들을 비롯해 도처에 산재한 진(鎭)에 주둔하는 청군을 완전 소탕하려고 합니다.”

전면의 스크린에는 항공 촬영된 진과 만주족 마을들이 아주 상세히 표시되고 있었다.

“다음으로 보병입니다. 보병의 진격은 모두 3군으로 나누어 진군을 합니다. 먼저 1군은 해안을 따라 진군하며, 2군은 유조변(柳條邊, 명, 청대의 버드나무 방책) 안쪽, 그리고 3군은 유조변 밖으로 진격로를 정했습니다. 각 군의 병력은 10만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작전은 2군이 만주를 가로질러 곧바로 산해관까지 진격을 하는 것입니다.”

이형구의 설명에 따라 스크린에는 군의 이동 경로가 표시되었다. 이형구가 다시 설명했다.

“보병의 이동은 모두 그동안 보급된 트럭으로 하고, 흑표 전차와 가-구 자주포는 별도의 기계화 부대를 편성하여 진격하는 3군에 어려움이 있을 때 즉각 출동하여 도울 수 있도록 유조변을 따라 진격할 것입니다.”

이형구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해군입니다. 해군은 제물포에서 곧바로 천진으로 진격합니다. 해군은 공군의 도움을 받아 천진에 대폭격을 감행한 후 상륙 부대를 천진에 상륙시킬 것입니다. 5만의 상륙 부대가 천진에 상륙하여 천진을 점령한 후 바로 부대를 재편하여 북경으로 진격을 합니다. 그리고 낙하산 부대는 이곳 북경의 외곽에 3만의 병력이 모두 투입되어 북경의 청국 조정이 열하(熱河)나 몽고 방면으로 도주하지 못하도록 차단을 할 것입니다. 이사이 천진을 점령한 상륙 부대가 북경의 외곽으로 진군하여 3만의 낙하산 부대와 함께 북경을 완전 포위하고 다른 병력이 산해관을 넘을 때까지 북경을 포위하고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스크린이 공군으로 넘어갔다.

“다음으로 공군입니다. 공군은 이번 북벌에 가장 먼저 기동을 합니다. 이번 작전은 공군의 산해관과 진황도 폭격으로 시작됩니다.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고도 불리는 이 산해관은 우리 민족과는 원한이 많은 곳으로, 이번에 아예 흔적도 없이 없애버릴 계획입니다. 이 폭격을 시작으로 우리의 북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형구가 보고를 마치자 정조가 말했다.

“우리 군이 모든 힘을 기울여 준비한 북벌이니 만큼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믿소. 짐이 대한 제국의 황제로, 그리고 대한(大韓)의 한 사람으로 여러분들의 무운장구를 기원하오. 여러분의 뒤에는 이천만 대한 백성이 이번 북벌을 두 손 모아 성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바라오. 짐은 반드시 저 청의 가경제에게 지난 병자년에 선조들이 당한 치욕을 반드시 되돌려주고 싶소.”

정조의 말이 끝나자 이형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모든 군 지휘관들과 각료들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형구가 말했다.

“폐하, 우리 군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산해관을 넘어 북경을 반드시 함락해서 청의 가경제를 폐하의 발아래 무릎 꿇리겠습니다. 이를 다짐하기 위해 신이 먼저 만세 삼창의 선창을 하겠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모든 사람들이 두 손을 높이 들어 소리쳤다.

“황제 폐하 만세!”

“대한 제국 만세!”

“대한 민족 만세!”

이형구의 선창에 따라 모두가 외치는 만세 소리는 경복궁 근정전을 넘어 온 세상에 메아리쳤다.

1799. 3. 1. 의주 통군정(統軍亭).

정조와 장준하가, 그리고 군 지휘부가 나란히 의주성의 압록강 변에 있는 삼각산의 통군정(統軍亭)에 올라서 있었다.

통군정은 고려 시대 때 건립된 정자로, 유사시 국경 방위 거점인 의주의 군사 지휘소로 쓰이는 곳이다. 정자에 오르면 의주성과 압록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이형구가 한 섬을 가리키며 정조에게 말했다.

“저곳이 위화도입니다.”

“오! 그런가?”

정조는 태조 이성계가 회군을 한 위화도를 관심 있게 바라보았다.

장준하가 이형구에게 물었다.

“산해관 폭격은 어떻게 되었는가?”

“조금 전 정오부터 시작되었다는 보고입니다.”

이형구의 말에 장준하가 쌍안경을 들어 압록강 너머 안동(지금의 단동) 쪽을 바라보았다. 지금 조선의 압록강 변에는 도강이 쉬운 위화도 방향으로 엄청난 대한 제국군이 밀집되어 있었다.

쌍안경을 들여다보던 장준하가 물었다.

“안동 포격이 곧 시작되겠군?”

“12:10을 기해 포격이 시작될 것입니다.”

정조도 옆에서 만주 방향을 바라보다 말했다.

“청국의 움직임이 아직 없는 게 수상하군.”

이형구가 대답했다.

“미리 특전사와 저격조들이 침투를 하여 경비 병력을 모조리 제거해서 그렇습니다. 심려 마십시오, 폐하.”

“아, 그렇다면 다행이오.”

정조의 말이 끝나자마자 의주 방면에 배치되어 있던 가-구 자주포와 흑표 전차에서 드디어 포격이 개시되었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20대의 흑표 전차와 20대의 가-구 자주포에서 동시에 불이 뿜어져 나왔다.

40대의 포에서 동시에 발사되는 포탄은 압록강을 넘어 정확히 목표인 안동성에 타격하였다.

꽈광! 꽝……!

안동에서 터지는 포탄 소리가 압록강을 넘어서까지 들려왔다. 통군정에 있던 정조와 장준하의 쌍안경에는 안동을 정확히 타격하여 폭발하는 광경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30여 분간의 폭격이 끝나자 이번에는 10여 대의 수리온 헬기가 떠올랐다.

타, 타, 타, 타, 타, 타!

그러자 이형구가 정조에게 말했다.

“폐하, 이제 진군의 칙령을 내려주십시오.”

정조가 그 말에 장준하를 바라봤다. 장준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조의 손이 올라갔다. 어느 순간 정조가 손으로 만주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전군, 진군하라!”

정조의 손이 내려가며 내린 진군 명령에 강변에 대기하고 있던 100대의 수륙 양용 장갑차가 동시에 북벌(北伐)을 위해 도강을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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