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제국
1799. 1. 1. 한성 환구단(圓丘壇).
“전하, 환구단에 천제(天際)를 지내실 시간이옵니다.”
전 상선인 내관청장 김시묵의 말을 들은 정조가 희정당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 가자!”
정조는 자신의 전용차에 올라 환구단으로 갔다.
환구단.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세조 때 하늘에 지내는 제사가 폐지된 후 무려 336년 만의 일이었다.
새롭게 조성된 환구단은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남별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지었다.
바닥은 땅을 나타내는 3단으로 화강석을 쌓아 사각형으로 만들었고, 가운데는 둥근 원추형 지붕을 금색으로 칠하였다.
그리고 원구의 뒤에는 황궁우(皇穹宇)를 세웠다.
정조가 차에서 내리자 장준하를 비롯한 만조백관들이 금관 조복 차림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환구단 밖에는 한성의 백성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었다.
정조가 자리에 서자 곧 천제가 시작되었다.
천제를 마친 후 장준하가 말했다.
“전하,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부디 천자의 위에 오르셔서 만백성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그러자 정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인이 과연 천자의 위에 오를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드오.”
그러자 총리대신 채제공이 정조에게 말했다.
“전하, 이미 고유제까지 마쳤으니 황제의 자리에 오르옵소서.”
그러면서 채제공이 궁내부 대신 최성용을 바라봤다. 최성용이 들고 있던 천을 젖히니 12류 면류관과 12장복이 있었다.
장준하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전하, 부디 제위에 오르소서.”
장준하의 말에 2번이나 사양을 했으나 신하들의 거듭되는 주청으로 정조가 금으로 만들고 칠조룡이 장식된 제좌(帝座)에 앉았다.
장준하가 정조에게 12면류관과 12장복을 입혀주었다. 그러자 궁내부 대신 최성용이 두 손으로 옥새를 바쳤다.
정조는 그것을 받았다. 이어서 정조는 왕후 김씨를 황후로, 원자를 황자로, 왕대비를 황태후로 책봉하였다.
장준하가 백관을 거느리고 세 번 춤을 춘 후 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 두 손을 들어 만세를 삼창하였다.
국호가 대한(大韓)으로 정해졌다. 연호는 건양(建陽)으로 정하고 금년을 건양원년으로 삼았다.
정조는 이어 황궁우로 가 황제로서 처음 열성조의 신위를 봉안하는 예식을 거행하고는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태묘로 향했다. 태묘(太廟)는 이제 황제국이 된 대한의 종묘였다.
태묘에서 열성조에 대한의 제국 선포를 고한 정조는 선왕들을 모두 황제로 추존하였다.
열성조들을 황제로 추존한 정조는 백관을 거느리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경복궁은 이미 중건을 마치고 황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앞에는 대형 단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근정전의 위용은 대단했다.
좌우로 부속 건물을 거느리고 대칭으로 건축된 근정전은 이 당시 조선 최고, 최대의 건축물이었다.
경복궁 낙성식은 한성 전체의 축제였다.
조선이 제후국에서 황제국이 되는 것을 축하하듯 낙성된 경복궁은 황제의 궁으로 손색이 없었다.
다른 나라와 다르게 하늘과 땅 사이에 산을 절묘하게 집어넣어 조화를 이루는 조선의 궁성 건축 방식은 새롭게 건설된 경복궁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정조가 제좌에 앉자 곧 예식이 거행되었다.
예식은 교육부 국장에서 자리를 옮긴 궁내부 의전국장 김조순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황제 폐하를 모시고 경복궁 낙성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먼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단상에 계신 모든 분들은 뒤로 돌아 근정전 정면에 게양된 삼태극기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근정전 위에 펄럭이는 삼태극기를 바라보자 김조순이 말했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장악원의 웅장한 아악이 울려 펴지며 시작된 국민의례를 경복궁 밖에 모여 있던 수많은 한성 주민들도 동시에 따라서 했다.
특히 새로운 대한의 국가(國歌)로 채택된 김민기 작사, 송창식 작곡의 ‘내 나라 내 겨레’를 제창할 때는 낙성식에 참석한 모든 만조백관들은 물론 경복궁 밖에 있던 수많은 한성 주민들이 합창을 하였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으로 시작된 노래가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의 후렴에 가서는 대부분 사람들의 눈에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이슬을 맺게 했다.
낙성식을 마친 정조는 의전국장 김조순의 안내로 근정전을 둘러보았다. 새롭게 건설된 근정전은 화려했지만 아주 품격 있게 건설되었다.
이 근정전도 화성의 행궁과 같이 외부는 화강석으로, 내부는 운남의 최고급 대리석으로 장식되었다. 특히 기둥 부분은 금박을 입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3층으로 된 근정전 본관을 둘러보던 정조가 동행하고 있는 장준하에게 물었다.
“위국공.”
“예, 폐하.”
“화성의 행궁과는 내부 구조가 완전히 다르오.”
“그렇습니다, 폐하. 이 근정전은 폐하께서 정무를 보시는 정전으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침전 부분은 아예 없습니다.”
정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접견실에 들어가 사방을 살펴보더니 다시 말을 했다.
“그런데 접견실이 너무 큰 것 아니오?”
그러자 궁내부 의전국장 김조순이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 근정전에는 대한 제국의 황제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많은 사신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앞으로 전 세계에 우뚝 설 대한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접견실은 결코 넓지 않습니다.”
김조순의 똑 부러진 말에 정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조순이 다시 말했다.
“신은 폐하의 의전을 담당하는 부서의 장입니다. 앞으로 타국의 사신이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예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신이 그렇게 의전 절차를 만들겠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장준하가 말했다.
“너무 의전 절차가 많으면 상대국에 결례가 될 수도 있네.”
김조순도 동의하며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신은 청국같이 절을 몇 번 한다는 정도의 의전이 아니라 단 한 번을 하더라도 우리 대한 제국의 황제 폐하께 절로 존경심이 나올 수 있도록 의전 절차를 만들 계획입니다.”
장준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김 국장이 책임지고 잘 알아서 의전 절차를 격식 있게 만들어보게.”
그러자 김조순이 고개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임지고 만들어보겠습니다.”
김조순의 말에 장준하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조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상기될 정도로 흡족해했다.
장준하는 그런 정조를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러다 본래 역사처럼 정조가 그의 딸을 며느리로 맞는 것은 아닐까?’
장준하는 그 생각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된다 해도 이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김조순 또한 1회 신사유람단으로 개척지 등을 순방하고 3개월간의 집중 교육을 받은 후 세상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김조순은 그래서 6개월의 연수 기간이 끝나고 추가 연수를 신청했었지만, 정부에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공직 근무를 하면서 추가 교육을 받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작년부터 성균관에는 가온 대학교가 새롭게 마련한 최고 경영자 대학원 과정이 신설되었다. 이 대학원에 김조순이 가장 먼저 원서를 낼 정도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 되었다.
김조순의 안내를 받으며 근정전을 나와 경회루 등 경복궁의 새로 지은 전각들을 둘러본 정조는 점심을 들기 위해 잠시 경복궁 뒤 왕실 전용 공간으로 이동을 했다.
왕실 전용 공간에 마련된 정조의 처소는 근정전과 같이 새로운 건축술로 건축된 2층 건물이었다.
장준하는 경복궁의 앞에 새로 건설되어 있는 정부 종합 청사 구내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정부 종합 청사는 전면에 이전 육조 거리에 있던 전각들을 이전하여 민원실과 기념관으로 조성을 하고, 그 뒤에 일률적으로 3층 건물을 지어 각 부가 입주해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하고 난 장준하는 자신의 집무실인 근정전의 좌측 건물에 들어갔다. 이 건물은 본래 궐내각사로 사용하려 건축했던 것을 정조의 지시로 장준하의 전용 건물로 변용되었던 것이다.
장준하 또한 그것이 국정을 운영하는 데 편리할 것 같아 그대로 수용을 하였다. 이후부터 근정전의 좌측 건물은 위국공 공관으로 불리게 되었다.
장준하가 공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비서실장 이성호가 들어왔다. 이성호가 말했다.
“합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폐하께서 경무대를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경무대는 경복궁 왕실 전용 공간에 마련된 정조의 처소였다. 장준하가 말했다.
“알겠네. 자, 나가세.”
장준하가 근정전 뒤 경회루까지 가자 정조가 내려오고 있었다.
장준하가 잠시 기다렸다 정조를 맞이하며 말했다.
“폐하, 경무대는 어떻습니까?”
“아주 좋았소이다. 특히 서재가 아주 잘되어 있어서 참으로 마음에 들었소. 고맙소이다, 위국공.”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이 모두가 폐하의 홍복이십니다.”
“허허, 짐이 무슨 복이 있어 이렇듯 좋은 일이 겹치며 제위까지 오르게 되다니. 참으로 꿈만 같소.”
장준하가 말했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이 폐하의 치세에 일어날 것입니다. 천수를 누리시어 반드시 우리 대한이 천하제일의 대국이 되는 것을 지켜보셔야 합니다.”
정조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황자를 보고 말했다.
“내 필히 그리하리다. 짐이 우리 대한을 탄탄한 대국으로 만들어 황자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소.”
장준하도 황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황자께서 제위에 오를 때 우리 대한은 천하제일 대국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후일 순조가 되는 황자는 이때 나이 10살이었다.
아직 황태자로 책봉되지는 않았고, 그의 나이 10살에 불과하였지만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들어맞을 정도로 벌써부터 천재적 역량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조가 근정전 앞에 대기하고 있던 전용차에 황자와 함께 올랐다. 장준하도 곧 차에 올라 뒤를 따랐다.
나머지 대신들은 이미 다른 곳에 이동해 있었다.
이번에 간 곳은 지금 시대 서울역인 한성역이었다.
정조는 경복궁에서 한성역까지 전용차로 이동을 했다.
조선의 철길은 이미 경인선은 준공을 하였고 대부분의 철도는 동해안 철도를 제외하고는 한성을 기점으로 X자 형으로 의주에서 부산까지, 그리고 목포에서 함경도, 청진을 지나 연해주의 신청진(합롭스크)까지 건설 5년 만에 모두 완공을 보았다.
물론 그 사이에 있는 다리들과 터널도 모두 준공되어 지금 공사를 하고 있는 사백력 횡단 철도 건설만 마치면 대한의 끝에서 끝으로 연결된 철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고속도로는 이미 작년에 모든 터널이 굴착되고 교량 건설도 모두 완료하여 철도와 똑같은 형태로 부산진에서부터 이종찬시까지 도로망이 모두 완공되어 있었다.
오늘은 국가 대동맥 건설의 그 마지막으로, 한반도를 X자 동맥으로 관통하는 철도가 준공식을 하는 날이었다.
“와!”
짝! 짝! 짝! 짝! 짝!
“황제 폐하 만세!”
정조가 전용차에서 내리자 모여 있던 시민들이 삼태극기와 군을 상징하는 삼족오기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간단히 준공식을 마치고 정조가 장준하 등과 함께 황제 전용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정조의 전용 열차 나머지 칸에는 한성 일대에서 선발된 국민들과 조정 대신들도 함께 타고 있었다.
삐~익~!
드디어 기적이 울렸다.
치~!
증기 빠지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거대한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커덩. 철컹.
치~ 푹! 치~ 푹!
증기가 빠져나가며 그 힘으로 기차 바퀴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이어 큰 덩치의 기관차와 객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삐~익~!
칙~ 푹! 칙~ 푹! 칙~ 푹! 칙~ 푹!
칙칙~ 폭폭! 칙칙~ 폭폭!
탄력을 받은 기관차가 곧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정조의 전용 객차는 방음이 잘되어 아주 안락했다.
지금 전용 객차에는 장준하를 비롯한 몇 명의 각료들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채제공이 없었다.
정조도 그러한 것을 느낀 듯 기차를 타고 떠나는 설레는 기분이 가라앉자 쓸쓸한 얼굴로 말했다.
“번암(樊巖, 채제공)께서 많이 불편하신 모양이라고 하던데 걱정이군. 오늘 같은 날 그분이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소.”
“그래도 마음은 폐하와 함께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총리대신을 천거까지 해주지 않았습니까. 너무 심려 마십시오.”
그러자 새로 총리대신이 된 이가환이 말했다.
“오늘 등청을 하기 전 번암 선생 댁을 들렀습니다. 폐하의 제위 등극에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정조가 말했다.
“어리석은 양반. 자신 몸은 돌볼 생각도 않고 병상에 누워서도 자나 깨나 나라 걱정뿐이오.”
장준하가 말했다.
“올해 여든입니다. 그동안 나라와 폐하를 위해 너무도 많은 족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평생을 그리 사셨으니, 그분으로서는 자리에 누워서도 오직 나라 걱정뿐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몇 년 전 번암 대감의 진충보국 정신이 알려져 초등학교 교재에 실릴 정도로 평생을 나라만 생각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의 80 평생의 숙원인 새로운 조국 건설을 보시지 못한 것이 많이 안타까우실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함께하실 것입니다.”
최성용의 말에 정조가 대답했다.
“이번 시승식을 마치고 짐이 번암의 집을 한번 찾아가 보리다.”
장준하가 말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그분의 마음이 얼마나 위안이 되겠습니까.”
그러자 총리대신 이가환도 말했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번암 대감께서 참으로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그래, 꼭 한번 짐이 찾아보리다.”
정조가 그렇게 말을 하는 사이 기차는 임진강 철교를 건너고 있었다. 정조가 기차가 철교를 넘는 것을 보고는 장준하에게 물었다.
“고토 회복 전쟁을 위한 병력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소?”
장준하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10만의 기병도 모두 준비를 갖추었고, 육군과 해군, 공군도 이미 모든 훈련을 마치고 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육십만 대병이라 걱정은 크게 하지 않지만, 그래도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거요.”
장준하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군에 다시 한 번 지시를 하겠습니다. 지금 가는 의주 방면에 보병들이 집결해 있으니 폐하께서 직접 한번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정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지금 각 부대가 몇 달 남지 않은 출전을 위해 마무리 훈련에 여념이 없을 것이오. 짐이 방문하여 그들의 훈련에 차질을 빚게 하고 싶진 않소.”
가온이 조선에 들어온 뒤 5년이 지난 지금 조선은 엄청나게 변화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변한 것이 단발과 복식의 변화였다.
단발은 특별히 정부가 법령으로 제도화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거나 군에 입대를 하면 당연히 단발을 해야 했기 때문에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단발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부분의 국민들이 단발을 하게 된 것은 정조의 결단이 큰 작용을 했다.
정조는 삼 년 전 희정당에서 스스로 단발을 결행하였다. 군사(君師)로 자처하는 정조의 단발은 조선 관리들 머리를 모조리 단발로 만드는 파괴력을 가졌다.
물론 이러한 단발에 일부 유학자들의 상경 투쟁이 있기도 하였지만 정조와 학문적으로 토론을 하여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은 조선에 몇 되지 않았다.
상경 투쟁을 하려고 올라온 유학자들은 오히려 모두 단발을 하고 내려가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다음으로 복식은 아주 실용적으로 개량되었다.
개량 한복은 소매가 넓은 기존의 한복을 빠르게 대체했고, 관리들은 정부가 재정한 공무원 복장인 재건복(再建服)을 착용하였다.
이전과 달리 상하가 복식으로 품계를 구분하지 않는 재건복은 군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오늘같이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은 어쩔 수 없이 예복을 입지만, 장준하 또한 평상시에는 재건복을 착용하고 업무를 볼 정도였다.
그렇게 조정의 상하가 작은 것에서부터 근검절약을 하기 시작하자 조정의 면모가 일신되었다.
정조가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철길을 따라 전봇대가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정조는 뒤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전봇대를 보며 말했다.
“5년간 참으로 많이 변했소. 전기며 전화 같은 경우는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소.”
이가환 또한 정조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사옵니다. 지금 우리 대한의 5년은 지난 시절 50년보다 더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조가 말했다.
“총리의 말에 백번 공감하오. 이 기차는 무어며, 또 하늘을 나는 비행선, 그리고 자동차하며, 위국공과 가온이 아니었으면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오?”
그 말에 장준하가 말했다.
“폐하, 이제 마지막 조선의 잔재를 털어낼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정조가 물었다.
“마지막 조선의 잔재라니?”
“장헌 세자마마의 신원과 함께 폐하의 정통성을 회복하는 문제입니다.”
쿠쿵!
순간 전용 객차 안은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게 정지했다.
덜커덩, 덜커덩.
레일의 연결 부위를 지나갈 때 나는 소음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정조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위공, 짐은 짐이 보위에 있을 때 내 손으로 아바마마의 신원을 거론하지 않겠다고 즉위 초 백관들에게 스스로 다짐을 했소.”
장준하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다는 위공이 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짐이 화성을 경영하려 한 진정한 이유를 모르시오?”
“알고 있습니다.”
정조의 목소리가 아주 차갑게 변했다.
“그런 위공께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짐을 능멸하려는 것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신의 말을 들으시면 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러자 목소리를 약간 누그린 정조가 말했다.
“말해 보시오.”
장준하가 약간 숨을 고른 후 말을 시작했다.
“폐하께서는 조선의 국왕으로 즉위할 당시 분명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지금 조선의 국왕은 없습니다.”
그러자 정조의 용안이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장준하가 그런 정조를 보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이제 신하들의 반대를 겨우 막으며 즉위한 조선의 국왕이 아니라 천하를 아우를 대한 제국의 황제이십니다. 그것도 만조백관들과 천하의 백성들이 두 손 받들어 즉위하신 왕 중의 왕인 황제이십니다. 신은 조선의 신하가 되기 위해 가온에서 온 것이 아니라, 바로 대한 제국의 신하이며 폐하의 신하가 되기 위해 온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신 분이 바로 장헌 세자마마십니다. 대한 제국의 초대 황제이신 폐하의 이전 문제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고, 신이 바로잡을 것입니다. 그것이 장헌 세자마마께서 신에게 오신 까닭이실 겁니다.”
그러자 이가환이 감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 이가환, 위국공 합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폐하께서는 이제 청국의 속국이었던 조선의 국왕이 아니라 청국을 발아래 거느리실 대한 제국의 황제 폐하십니다. 그런 폐하의 문제는 당연히 정비해야 하옵니다. 신 또한 각의에 의견을 모아 반드시 바로잡겠사옵니다.”
정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사람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최성용이 말했다.
“폐하!”
최성용의 말에도 정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정조가 입을 열었다.
“짐이 어리석었소. 위공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것을… 짐 스스로가 논리의 함정에 빠져 있었구려.”
장준하가 말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이제 폐하의 앞에는 새로운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전의 힘든 고리는 이제 모두 없어졌습니다.”
정조가 고개를 들더니 장준하를 보고 말했다.
“고맙소, 위공. 짐은 경모궁(敬慕宮)을 찾아 슬피 울기만 했지 어떻게 아바마마를 신원시켜 드릴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구려.”
정조는 그러면서 자리에 일어나 장준하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공이 짐을 살려주는구려. 어떻게 이 고마움을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소. 고맙소, 정말 고맙소.”
그런 두 사람을 이가환과 최성용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기차는 연신 힘찬 증기를 내뿜으며 의주로 가고 있었다.
1799. 1. 5. 경복궁 근정전.
정조는 경의선 철도 시승식 때 의주에 들러 이틀을 더 묵었다. 본래 다음 날 바로 오려던 계획을 바꿔 장준하의 제안을 받아들여 인근에 있는 부대를 불시에 순시한 것이다.
정조의 이러한 순시는 정조의 우려와 달리 장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에 고무된 정조는 인근에 있는 군부대를 모두 순시했던 것이다.
이 무렵 보병 사단에는 병력과 군수 물자를 수송할 대형 트럭들이 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공급되고 있었다.
가온의 엔진 개발 팀과 자동차 공업단에서는 그동안의 연구 개발 끝에 모든 엔진의 개발을 완전하게 마쳤다.
아직은 승용차의 보급이 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 개척지와 군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대형 농기계와 대형 트럭 생산 준비에 박차를 가한 끝에 양산 체제를 갖출 수가 있었다.
여기에 제철소가 완공되면서 필요한 강판의 수급이 원활하게 되자 자동차 공장에서는 농기계와 트럭의 양산을 하게 되었다.
1년 전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대형 트럭은 이제 전 부대에 배치를 거의 마치는 수준까지 공급되었다.
부대 순시를 마치고 한성으로 돌아온 날이 1월 3일이었다. 지금 경복궁 근정전에서는 어전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장준하가 먼저 발언을 했다.
“지난 임오년 조선에서 일어났던 변(사도 세자의 죽음)으로 황실 정통성은 많은 왜곡을 겪었습니다. 신하가 황상 폐하의 등극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는가 하면, 현 황상 폐하를 시해하려는 자객을 궁으로 보내기도 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겪으셨습니다. 이는 100년 동안 정권을 독점하면서 공룡이 되어버린 노론 세력들이 자신들의 당리당략에 맞게 정치를 끌고 가려고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장준하의 말에 회의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 누구도 여기에 반박을 할 수 없었고, 혹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분위기에 짓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장준하가 다시 말했다.
“이제 새롭게 개국된 대한(大韓)에는 당파가 없습니다. 오직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들에 봉사하는 관리들만 있을 뿐입니다. 앞으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사당(私黨)을 만드는 경우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준하는 다음 말을 하기 위해 잠시 숨을 골랐다.
“우리는 조선이라는 왕국에서 깨어나 대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지난 정월 초하루 칭제건원하며 새롭게 나라를 일으켰습니다. 이에 본인은 황제 폐하의 오랜 숙원인 장헌 세자의 신원(伸?)을 주청드리는 바입니다.”
그러자 총리대신 이가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 총리대신 이가환 아룁니다.”
이가환이 고개를 숙여 정조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위국공 합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대한은 새로운 나라입니다. 새롭게 건국한 나라의 만대(萬代)를 이어가기 위해 전조(前朝, 조선)의 불미한 문제는 깨끗이 털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받들어야 하는 대한 황조에 충성하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그러자 국방대신 서유대가 일어나서 말했다.
“신 국방대신 서유대, 폐하께 말씀 올리겠습니다. 앞서 두 분의 말씀에 신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신은 이참에 장헌 세자의 신원뿐이 아니라 잘못된 황통을 바로잡아 장헌 세자의 추존(追尊)까지도 논의했으면 합니다.”
그러자 국토 관리부 대신 박지원이 말했다.
“황상 폐하께옵서 진종(효장 세자)의 적통을 이으신 문제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장준하가 말했다.
“그 일은 전조의 일입니다. 물론 우리 대한이 전조의 열성조를 모두 선황제로 추존하였다고는 하나 이제는 새롭게 황제 폐하의 황통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우리 황조의 황통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에 따라 어전 회의에서 진종은 추존 황제로 그대로 두고, 장헌 세자를 장조(莊祖)로 추존하여 황실의 황통을 바로잡기로 결의했다.
장조로 추존하는 일에 어전 회의에 모인 각료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장준하가 황제를 상징하는 칠조룡이 새겨진 제좌(帝座)에 앉아 있는 정조에게 어전 회의에 참석한 모두를 대표하여 말했다.
“폐하, 신등은 이제 잘못된 황통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신등의 이 같은 충정을 헤아려 주셔서 대한의 황조가 만대를 이어가도록 칙허(勅許)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회의에 참석한 모든 각료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칙허하여 주시옵소서.”
“칙허하여 주시옵소서.”
“칙허하여 주시옵소서.”
대신들은 세 번이나 연거푸 정조에게 허락을 구하는 청원을 하였다. 그러자 정조가 대신들을 보고 말했다.
“짐이 황위에 올라 가슴에 맺힌 한을 이렇듯 경들이 풀어줄지는 정녕코 몰랐소. 그리하시오. 자세한 문제는 위국공이 알아서 처결해 주시오.”
정조의 칙허가 떨어지자 모든 대신들이 소리쳤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정조는 자리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자칫 신하들 앞에서 눈물을 쏟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조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로 나가자 장헌 세자의 추존에 관한 구체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장조의 능은 현륭원에서 융릉으로 높여 부르고 혜경궁 홍씨를 태후로, 그리고 조선의 왕실 족보인 선원록을 황실의 족보에 맞게 새롭게 개수하면서 황통을 바로잡도록 했다.
정조가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서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는 듯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있다 같이 들어온 궁내부 대신 최성용을 보고 말했다.
“최 공.”
“예, 폐하.”
“경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짐이 살아서 이런 기쁨을 볼 수 있었을까?”
최성용이 대답했다.
“시간을 걸릴지는 모르지만 분명 선황제 폐하께서는 신원되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짐의 대에는 어려웠을 것이오. 경들이 100년간 정권을 휘둘러온 노론을 혁파하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것이오. 부황의 신원은 아마도 한참이 지난 후였을 것이오.”
“폐하의 효심이 하늘에 닿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경들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것이오.”
정조는 그러면서 최성용을 보고 말했다.
“짐이 오늘 번암의 집을 찾고 싶은데, 준비를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폐하. 김 청장에게 준비를 하라 이르겠습니다.”
정조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최성용이 집무실을 나왔다.
집무실을 나온 최성용은 김시묵에게 정조의 지시를 전달하고는 곧바로 근정전을 나와 국정원으로 갔다.
국정원은 경복궁 뒤 삼청동에 있었다.
최성용이 국정원장 집무실로 들어서며 물었다.
“일본에서 온 소식 없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그보다도 드디어 몽고에 있던 마지막 몽고 팔기 병력이 드디어 이동을 시작했다 합니다.”
신경식이 최성용에게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그 사진에는 대규모 병력 이동이 찍혀 있었다.
“이 정도면 십만도 넘을 것 같습니다.”
“십오만이 넘는 병력이라고 합니다.”
“그럼 몽고에 있는 전 병력을 강남으로 끌어들였군요. 건륭제가 마지막까지 우리를 도와줍니다.”
신경식이 웃으며 말했다.
“건륭제가 죽으면서 마지막 망령을 부렸나 봅니다. 그 망령이 우리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됐고요.”
최성용이 물었다.
“건륭제가 죽었습니까?”
“예, 이틀 전인 3일에 죽었다는 보고입니다.”
“그러면 화신 또한 얼마 안 남았겠군요.”
“예, 건륭제가 죽은 날 바로 체포되어 옥사에 갇혔다고 합니다.”
“가경제가 얼마나 이를 갈았으면 하루도 시간을 주지 않고 잡아들였을까요?”
신경식이 그 말에 크게 웃었다.
“하하하! 자기들끼리 이전투구를 벌여야 우리 군이 한 명이라도 덜 죽지 않겠습니까.”
최성용 또한 웃으며 말했다.
“하하! 맞습니다. 사방이 온통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것도 모르고. 아직 자신들이 계속 대국이라고 착각하도록 빌어야죠. 그나저나 강남의 전황은 어떻습니까?”
“이제 청국이 백만 대군으로 장강을 넘어도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
“건국은 언제 한다고 합니까?”
“그게… 시간이 더 걸리겠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백련교가 너무 종교적으로 압박을 가하니 곳곳에서 지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합니다.”
“저런!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유지협이 아주 골머리를 앓겠군요.”
“남의 불행이 나의 기쁨입니까?”
그러자 최성용과 신경식이 서로를 바라보며 파안대소했다.
“그렇게 되나요.”
“하하하하하!”
한참을 웃던 신경식이 다시 말을 했다.
“묘족은 그런대로 운남을 평정해서 자신들의 나라를 건국하려고 하니 별문제는 없지만, 백련교는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상당 기간 건국은 어려울 것이라는 박용희 대령의 보고입니다.”
“그래도 너무 오래 끌면 좋지 않은 것 아닙니까?”
“이번 몽고 팔기만 격파하면 청국이 상당 기간 병력 동원이 어려우니 박용희 단장이 내정 간섭을 이유로 절대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이제 대만도 접수를 하였으니 강남에서 얻을 것은 모두 얻었습니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일본 공략을 해야 하는데, 사쓰마와 조슈 번이 너무 조심하는 게 아닙니까?”
신경식이 말했다.
“조슈의 모리 번주나 사쓰마의 시마즈 번주가 나이는 어리지만 상당히 신중한 성격인가 봅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기다려 보시지요.”
“일단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니 별문제는 없으리라고 판단됩니다만, 자칫 기밀이 막부로 새어 나갈까 걱정입니다.”
“지금까지 철저하게 외부와의 격리는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니 조만간 거병을 할 것입니다. 그나저나 거병에 맞추어 시작하려는 북해도 공략 준비는 군에서 잘하고 있습니까?”
“예, 군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한 제국은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의 거병에 맞추어 북해도를 침공하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 지금 연해주에서는 군단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최성용이 물었다.
“국정원에서 조사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파악은 언제쯤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까?”
“아마도 올 하반기는 되어야 끝이 날 것 같습니다. 일본인들이 생각보다 우리 문화재를 애지중지해서 파악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조슈와 사쓰마의 도움을 받고는 있지만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빨리 끝을 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최성용과 신경식이 논의를 하고 있을 때 정조가 채제공의 집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