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101)

변화하는 조선

1996. 3. 5. 화성 행궁.

1년 동안 조선은 상전이 벽해가 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도로였다.

1년간 거의 전 국민이 동원되다시피 한 도로 건설 사업은 눈에 띈 성과를 가져왔다. 특히 고속도로는 왕복 4차선으로 대부분 포장까지 마쳤다.

아직은 모든 강에 다리를 놓지 못해 중간중간이 끊겨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뚫고 있는 터널이 완공을 보지 못해 길을 돌아가기는 하였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넓은 길은 국민들의 생활을 바꾸어놓기에 충분했다.

한성 주변은 더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

건설부가 한성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하수도 공사였다.

한성의 모든 주요 도로는 도로를 넓히고 도로 바닥을 파 대형 하수관로를 건설하였다. 이러한 하수관로는 대형으로 만들어져 그 높이가 사람 두 명이 서도 닿지 않을 정도인 사방 4미터나 되었다.

이 하수관로는 새롭게 건설되는 하수 종말 처리장으로 연결되었다. 아직은 처리장이 완공되지 않아 바로 한강으로 오수가 버려졌지만, 이 하수도 공사로 인해 한성의 풍경이 변했다.

가장 변화된 것이 냄새였다. 이 무렵 한성의 모든 화장실은 당연히 재래식이었다.

한성은 철저한 계획 도시였다. 초기 십만 명을 예상하고 만든 도시였지만 이십만이 살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잘 계획된 도시였다.

그랬기 때문에 유럽처럼 곳곳에 널린 인분을 피하기 위해 하이힐이 생겨나고 몸을 씻지 않아 향수가 발달할 정도로 더러웠던 것과 달리 한성은 상당히 깨끗했다.

더구나 몇 년 동안 실시된 위생 교육으로 한성을 이전보다 몰라보게 깨끗하게 변화시켰다.

하지만 화장실만은 어쩔 수 없어서 날이 흐린 날은 은근히 냄새가 심하였다.

가온이 조선에 입성하면서 시작된 하수도 공사는 재래식 화장실의 개보수와 동시에 진행을 했다.

아직은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아 수세식 화장실로 개조를 할 수 없어서 화장실의 하부를 벽돌과 시멘트를 이용하여 사방을 밀폐시키는 공사를 했다.

그리고 화장실의 변기 뚜껑을 덮도록 하여 냄새가 나지 않도록 주민들 위생 교육을 실시했다.

정부에서 필요한 만큼의 벽돌과 시멘트를 지원하면서 시작된 화장실 개보수는 여름 장마 전에 끝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하수관에 연결할 각 가정의 하수관 공사 또한 연결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되어 있었다.

그러자 한성의 도시 환경은 엄청나게 개선되었고, 당연히 한성 주민들의 위생 또한 엄청나게 개선되었다.

오늘도 건설부 대신 장병국이 한강의 다리 공사 현장에 나와 있었다. 한강에는 이미 교각이 모두 건설되어 있었다.

장병국이 현장 소장에게 말했다.

“최 소장, 첫 번째 트러스는 언제쯤 완성되나?”

그러자 청진에서 수송되어 온 철제 트러스가 제법 모양이 갖춰지는 것을 바라보던 현장 소장 최문성이 대답했다.

“이번 달이면 완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좀 더 빨리할 순 없나?”

그러자 최문성이 죽는소리를 냈다.

“아이고, 대신님. 죽겠습니다. 지금 다른 것도 아니고 트러스 공사입니다. 내일 안에 안전 검사를 반드시 마쳐야 합니다. 제발 그만 쪼세요.”

그러자 장병국이 말했다.

“무슨 소리, 건설 현장은 쪼아야 해. 그래야 안전 사고도 나지 않아.”

최문성이 장병국을 보고 말했다.

“대신님, 여기 군대 아닙니다. 그리고 저들도 이제 처음으로 대형 교각 공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확실한 기술 축적을 시켜야 곧 있을 압록강과 두만강 등의 대형 다리 공사에 써먹을 기술자들이 배양됩니다. 아무리 빠른 준공도 좋지만 제발 기다려 주십시오.”

“아, 그걸 누가 모르나. 그래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투입된 것 아닌가. 사람이 많이 투입되었으니 당연히 공사 진척도 빨라져야지.”

장병국의 말대로 한강 대교 공사에는 보통의 인원보다 몇 배의 인원이 투입되었다.

대형 건설 공사는 경험 많은 기술자들이 많이 필요했다. 이러한 기술자들을 학교를 만들어 양성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어서 아예 공사 현장에서 기술자들을 숙련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청진 공단을 건설했던 경험이 많이 있는 건설 기술자들이 전국의 공사 현장에 골고루 나누어져 국가 기간 산업 공사를 주도하고 있었다.

건설대신 장병국이 최 소장에게 물었다.

“금년 안에는 완공을 볼 수 있겠나?”

“그야 당연히 가능합니다. 이 공기대로라면 철교와 인도교 모두 금년 내는 물론 본래 공기보다 6개월 이상 빠른 10월경이면 완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장병국이 말했다.

“다행이군. 그때쯤이면 한성과 인천 간 철로도 모두 완공을 볼 수 있으니 동시 개통을 하면 되겠군.”

“그렇습니다. 저희도 철로 준공에 맞추어 준공을 하려고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대신님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우리 스스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오셔서 다그치지 말아주십시오.”

그러자 장병국이 웃으며 말했다.

“알겠네, 알겠어. 아, 이 사람. 내가 뭐 그렇게 쪼았다고 그러나.”

“그럼 아닙니까?”

그러자 장병국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어.”

최문성이 장병국에게 말했다.

“그럼 기술자들에게 한턱내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오후부터 비 온답니다.”

“알겠네. 내 오늘 사과하는 의미에서 한턱내지.”

그러자 최문성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이, 김씨. 사람들 모아.”

그러자 최문성에게 불린 사람이 소리쳤다.

“어이, 모두들 모여! 소장님이 모이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기술자들이 신이 나서 모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장병국은 그런 건설 기술자들에게 단단히 한턱내었다.

평안도에 있는 한 부대에서 중사 계급의 부사관이 한 사병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이, 김 일병.”

“예, 일병 김종수.”

“자네, 입대한 지 얼마나 되었지?”

“이제 7개월입니다. 지난달 일병으로 진급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장기 복무 신청을 했다며?”

“예, 그렇습니다.”

“자네는 출신이 양반 아닌가? 장기 복무를 신청한 것을 집안에서 알고 있나?”

“예, 며칠 전 어머님께서 면회를 오셨을 때 말씀드렸습니다.”

“반대가 심하셨지?”

“아닙니다. 걱정은 하셨지만 남자가 하는 일이니 잘해보라고 오히려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자네는 집안도 아주 좋던데 왜 장기 복무를 하려고 하는가?”

“어차피 3년은 군에 있어야 합니다. 7개월 군에 있어보니 군이 저의 적성에 맞는 것 같아서 군인의 길로 가려고 합니다. 제대를 하고 나서 공직에 진출하려면 이전에 배웠던 공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학문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그게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면 사업을 하는 것도 방법이 아닌가?”

“여쭤보지는 않았지만, 아직 집안에서 장사는 못하게 하실 겁니다.”

“흠, 그렇군. 그래, 군이 어떻게 보면 좋아.”

“그렇습니다. 지난번 정신 교육 때 상영된 영화를 보니 우리 조선의 개척지가 엄청나던데, 장기 복무를 하여 부사관이 되면 그 개척지에 근무를 하고 싶습니다.”

“하긴, 나도 집사람이 허락만 하면 나가 보고 싶은데 이 마누라가 당최 허락을 해야 말이지.”

부사관은 훈련도감 출신의 평민이었고, 일병인 사병은 명문의 경주김씨 출신이었다. 이전 같으면 부사관이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신분 차이였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신분의 벽이 가장 먼저 없어진 곳은 군이었다.

철저한 계급 사회인 군은 아직 사회에서 양반과 양민으로 되어 있는 신분의 벽이 아예 없어져 버렸다.

군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신분의 벽이 없어지자 조선 전체에서 누가 말을 하지 않아도 이전과 같이 신분 문제를 갖고 사람을 경원시하는 것은 없어지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도 차별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였다. 그렇게 되자 술자리에서 고성이 오갈 때 이외에 표면적으로는 신분 차별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군에서 시작된 신분의 벽이 허물어지는 현상이 정부에서 시키지 않아도 점차 일반인들에게 확대되기 시작되고 있었다.

부사관이 사병에게 물었다.

“자네, 그러면 앞으로 계속 복무를 하여 위관까지 바라보는군.”

그러자 사병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군에서 위관 이상이 되려면 사병으로 먼저 장기 복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 복무를 신청한 것입니다.”

그러자 부사관이 말했다.

“하긴, 나도 위관 승진 시험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는데 나이가 있어 어렵더군. 하지만 자네는 어리니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을 거야.”

“격려 감사합니다, 중사님.”

“그래, 지금은 군에 복무하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이야. 지난번 관보 게시판을 보니 원자마마께서도 앞으로 나이가 드시면 군에 입대를 하신다고 나오지 않았나.”

김 일병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의무 교육이 실시되면서 모든 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것을 보면 중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그래서 장기 복무를 신청한 것입니다.”

이렇듯 군의 위상이 1년 사이 확연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기피의 대상이었던 군이 기회의 대상으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이에 따라 차츰 양반 출신들이 장기 복무를 신청하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날은 뜻깊은 날이었다. 화성의 행궁이 준공된 것이다.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성에서 화성까지 정조는 자신의 전용차를 타고 갔다.

체어맨 리무진을 타고 간 정조의 능행에는 내각의 대부분 각료들이 동행을 했다. 수십 대의 승용차가 새롭게 건설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화성은 장안문을 손봐서 정조의 차가 직접 드나들 수 있도록 개조를 하였다.

차를 타고 장안문을 그대로 통과한 정조의 차가 화성 행궁에 도착했다. 뒤이어 장준하를 비롯해 총리대신 채제공과 각부의 대신들 차가 연이어 행궁에 도착했다.

장악원의 장중한 아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도착한 정조는 차에서 내린 후 잠시 기다려 장준하와 보조를 맞추었다.

정조가 준공된 행궁을 보고 말했다.

“대단하오. 과인은 저렇게 큰 건물을 실제로 본 것이 처음이오.”

장준하가 말했다.

“인정전의 10배라고 하니 넓기는 넓습니다.”

정조가 말했다.

“정면 50칸(90미터)에 측면이 40칸(72미터)이라니, 대단하오.”

“지금 한성에서 짓고 있는 경복궁의 근정전은 이보다 훨씬 크지 않습니까?”

정조가 말했다.

“왕실을 위해 이런 궁을 지어주는 것은 고맙지만 너무 규모가 크오. 앞으로 경복궁 중건만 마치면 궁성의 추가 건설은 자제를 했으면 하오. 만일 그럴 계획이 있다면 자금을 전용하여 백성들을 위해 사용했으면 하오.”

“전하의 분부 받들어 앞으로 궁성 건설은 당분간 자제를 하겠습니다.”

그러자 채제공이 말했다.

“그래도 행궁이 크고 웅장하니 왕실의 권위가 서는 것 같아 신은 보기 좋습니다.”

장준하가 그 말에 장단을 맞추었다.

“그렇습니다. 신이 행궁을 크게 짓도록 지시한 것도 바로 총리님의 말씀처럼 그동안 위축되었던 왕실의 권위를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앞으로 이 화성 전체는 왕성에 맞게 조성될 것입니다.”

그러자 정조가 놀라서 물었다.

“왕성으로 조성을 한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자세한 것은 식을 마치고 궁에 들어가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정조는 궁금하였으나 궁금증을 잠시 미루고 준공식에 참석했다.

정조의 용상이 마련된 단상 주변에는 장준하를 비롯한 대신들의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공식적인 준공식이 끝이 나고 정조가 행궁으로 들어가기 위해 장준하와 이동을 했다.

그 뒤로 참석한 모든 대신들이 뒤를 따랐다.

행궁은 직사각형이었고, 외벽은 전부 화강 석재로 시공되어 있었다. 궁의 전면 중앙에는 돌출된 테라스가 있었다. 정조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기존 조선의 건축술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오.”

“그렇습니다. 이 궁은 서양의 건축술과 우리 조선의 건축술이 최초로 결합된 건축물입니다.”

정조의 걸음에 맞춰 정문이 열렸다.

정문이 열리자 그 안의 넓은 중앙 홀이 나왔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정조가 중앙에 걸려 있는 샹들리에를 보고 말했다.

“아! 아름답소.”

장준하도 그것을 보고는 감탄했다.

그러자 최성용이 건물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이 궁은 내부가 전부 운남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대리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하께서 보시는 등은 샹들리에라는 것으로, 크리스털이라는 최고급 유리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쉽게도 조선에는 아직 만드는 기술이 부족하여 이번 건물 준공에 맞추어 서양에서 수입을 한 것입니다.”

“샹들리에?”

정조의 물음에 최성용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본래 초를 거는 촛대에서 유래된 말로 불란서 말입니다.”

“그렇소? 샹들리에… 이름이 예쁘군.”

최성용이 다시 설명했다.

“이 중앙 홀은 앞으로 전하께서 연회를 베푸실 때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넓게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최성용은 궁의 이곳저곳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침전 앞에 선 최성용이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주상 전하의 침전 지역이니 다른 분들은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전하를 제외한 모든 분들은 3층의 회의실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최성용은 그러면서 내관과 여관들, 그리고 정조를 경호할 경호실의 경호원들과 함께 침전 구역으로 들어갔다. 이층에 마련된 침전 구역은 완전 한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정조가 물었다.

“이곳은 조선의 건축술로 만들어졌구려.”

“그렇습니다. 이 구역은 창덕궁의 침전을 참고하여 만들었습니다.”

정조는 자신의 침실과 중전이 묵을 침실 등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렇게 중간에 큰 공간이 있고, 중전의 처소와 과인의 처소가 마주 보고 있는 것이 참으로 편리하구려.”

“그렇습니다. 경호 문제를 고려하여 창은 중앙에 통로를 만들어 이중으로 하였고, 유리는 모두 소총 탄환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방탄유리를 사용했습니다.”

정조는 그 말에 감탄했다.

침전 구역에는 당직 내관들과 여관들이 머물 곳, 경호원들이 머물 곳도 마련되어 있었다. 모든 곳을 둘러본 정조가 침전 구역을 나와 모두가 기다리고 있던 회의실로 갔다.

“주상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내관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에 마련되어 있는 집기도 아름답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정조가 중앙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 정조의 자리 뒤에는 대형 삼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정조가 자리에 앉자 최성용의 사회로 바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각료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은 국기를 향해 서주시기를 바랍니다.”

최성용의 사회로 국민의례가 시작되었다. 조선은 금년부터 공식적인 행사의 경우 국민의례를 실시하였다.

국민의례를 마치고 정조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최성용이 말했다.

“오늘 화성의 행궁 준공식에 맞춰 그동안의 활동 상황을 보고드리겠습니다. 먼저 개척지의 상황 보고입니다. 작년 비리 문제로 개척지로 이주한 분들이 아주 성공적인 정착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최성용의 뒤편으로 각 개척지에서 보내온 영상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번도 지어보지 않았던 농사를 손수 짓는 일로 많이 힘들어했으나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곧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야주(호주)의 원주민 교화와 고구려주(북미)의 원주민 교화도 상당히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화면은 두 곳의 원주민들을 교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성용의 설명대로 화면에는 두 곳의 원주민들을 교화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잠시 화면을 보던 최성용이 설명을 다시 했다.

“다음으로 주요국 상황입니다. 먼저 일본입니다.”

그러자 화면이 바뀌면서 일본에 대한 상황들이 상영되었다. 최성용이 화면을 보면서 설명했다.

“지금 보시는 화면은 항공 촬영을 한 사진입니다. 저희들이 공략을 한 대로 일본의 사쓰마와 조슈 번에서는 병력을 징집하면서 군사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3년을 예상하고 시작한 군사 훈련은 아주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의 요청으로 금년부터는 가야주와 연해주에서 생산된 군량미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정조가 물었다.

“지난번 과인이 듣기로는 우리 문화재를 반환하기로 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소?”

“지금 국정원 요원들에 의해 우민화 작전을 펼치면서 사쓰마와 조슈 번의 도움으로 전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 조사를 먼저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문화재 환수는 그 조사를 마친 후에 시작될 것 같습니다.”

최성용의 설명을 들은 정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청국입니다.”

역시 최성용의 뒤편에 새로운 화면이 나왔다.

“지금 보시는 것처럼 만주 봉천에 주둔하고 있던 만주 팔기가 드디어 이동을 개시하였습니다.”

총리대신 채제공이 물었다.

“그러면 만주에 남아 있는 청군의 병력은 얼마나 되오?”

최성용이 화면을 보고 대답했다.

“사백력과의 경계인 흑룡강을 끼고 있는 10여 개의 진에 있는 병력이 전부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들이 파악한 바로는 1개 진에 백 명 정도의 병력이 주둔해 있을 뿐입니다.”

국방대신 서유대가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만주로 진격해 올라가면 되지 않소이까?”

장준하가 말했다.

“청국의 병력은 백련교와의 전투로 앞으로 만주에 병력이 충원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몽골에 몽고 팔기가 십오만 명 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니, 그 병력까지 강남으로 파병을 하면 그때 진군을 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정조가 물었다.

“그때가 언제가 될 것 같소?”

최성용이 말했다.

“우리는 청국과 백련교가 이전투구하여 병력을 소진할 때를 기다리려고 합니다. 3년 정도 지나면 우리 군도 수십만의 정예병이 양성되니, 그때가 가장 좋은 시기로 판단됩니다.”

장준하가 부연 설명을 했다.

“지금 연해주에는 기병대가 양성되고 있습니다. 수년 전부터 카자흐 기병대에 의뢰하여 양성되고 있는 기병대가 이제 군단을 이룰 정도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기병대는 앞으로 함경도의 개마고원으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북벌을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북벌에 참전하는 병력 중 10만 명은 기병으로 양성하려 합니다.”

정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듣다 말했다.

“기병이 쓰는 군마는 상당 기간 훈련을 시켜야 하는데 말의 수급에는 차질이 없소?”

장준하가 대답했다.

“이미 연해주에는 대규모 말 목장이 조성되어 있어서 자체 훈련과 생산이 가능합니다. 말 문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정조를 보고 최성용이 다시 말을 시작했다.

“작년 9월에 실시된 한구(漢口) 대폭격으로 청국의 병력이 장강을 넘지도 못하고 반 토막이 났고, 그 후 병력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수십만이 도망을 하여 지금 무한삼진에는 삼십만 명 정도의 병력이 있을 뿐입니다.”

최성용의 뒤로는 다시 한구 대폭격의 상황과 그 이후의 항공 촬영 사진이 연달아 상영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주 팔기 10만이 내려가도 백련교군이 이제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사진은 이번에 폭격의 대가로 할양받은 홍콩 일대의 사진으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항만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할양받은 면적은 상당히 넓어 제주도 2배 면적에 이릅니다. 그리고 대만도 백련교가 점령하여 우리에게 할양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 홍콩도 유구의 나패와 마찬가지로 자유 무역 지대로 만들려고 합니다.”

채제공이 물었다.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은 하지 않고 고토 회복만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최성용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토 할양은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 화면을 보시면, 우리가 대만 일대를 할양받으면 앞으로 그 안의 바다는 우리의 내해와 같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정조가 물었다.

“우리가 회복할 고토가 어디까지인가?”

“만리장성 이북의 땅 전역과 산동반도 일대입니다.”

정조가 다시 물었다.

“북경과 직례는 어떻게 하려는가?”

“일단 점령을 해서 그들의 항복을 받고는 돌려주려고 합니다.”

“점령한 지역을 굳이 돌려줄 필요가 있는가?”

장준하가 말했다.

“처음에는 양자강까지 내려가려고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판단입니다. 그래서 만리장성을 경계로 국경을 정하고 본래 우리 영토인 산동반도 일대만을 회복할 계획입니다.”

그러자 채제공이 화면을 보고 말했다.

“지금 저 지도를 보면 산해관과 산동반도 사이는 아주 좁습니다. 구태여 북경을 돌려줄 것이 아니라 아예 북경까지를 접수하여 저 발해만과 황해를 조선의 내해로 만드는 것이 어떻습니까?”

국방대신 서유대도 동조했다.

“총리대신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앞으로 바다를 지배하는 민족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배웠습니다. 굳이 함락한 곳을 돌려줄 것이 아니라 아예 산동반도와 연결을 하여 내륙 통행로도 확보하고 바다도 우리 조선의 내해로 만들면 후일 많은 이득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장준하는 채제공과 서유대의 제안에 지도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제안대로라면 발해만 일대 바다는 조선의 품에 들어오게 되었다.

정조도 지도를 보면서 말했다.

“총리와 국방대신의 말에 과인도 동의하오. 어차피 시작한 전쟁이라면 확실한 실리도 챙기고 청국을 철저하게 무너트려 두 번 다시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보오.”

정조까지 나서서 동의하자 장준하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전하와 두 분 대신의 말씀을 참작하여 작전을 새로 수립하겠습니다.”

장준하가 승낙의 말을 하자 세 사람의 얼굴에 만족감이 배어 나왔다. 최성용이 다시 설명했다.

“다음으로 가온 무역에 대한 보고입니다.”

최성용의 뒤로 막대그래프가 비춰졌다.

“가온 무역의 수출 실적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그에 따라 대청 무역과 대일 무역, 그리고 서양과의 교역에서도 도표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막대한 순이익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우리 조선의 화폐, 특히 은화는 정확한 실질 가치로 각국과의 교역에 기준 화폐가 될 정도로 확실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장준하가 물었다.

“지폐는 어떤가?”

“각국의 지폐 자체가 뿌리내리기 전이라 아직은 사용이 미미합니다. 나패에 있는 가온 은행으로 인해 일부 사용이 될 정도입니다.”

장준하가 말했다.

“그 정도면 처음 시작치고는 좋은 성과네.”

그러자 정조가 물었다.

“우리 조선의 지폐를 타국에서 사용하는 것이 계속 화폐를 발행해야 하는 일 등으로 오히려 자제를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장준하가 대답했다.

“우리의 은행권이 타국에서 통용되고 각국 간의 기준 화폐가 된다면 그것은 조선이 바로 기준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지금은 주화 발행으로 손실이 있을 수 있으나 곧 지폐의 시대가 됩니다. 그때가 되면 조선은 엄청난 이익을 보게 됩니다.

정조는 장준하의 말에 확실한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조선이 기준이 된다는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최성용이 말했다.

“각 개척지의 광산에서 생산되는 금과 은은 금으로 환산해서 지난해 모두 1,500톤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교역에서 나오는 수익 등으로 해마다 2,000톤 이상의 금이 정부 금고에 쌓이고 있습니다.”

미터법으로 도량형이 개정된 지 5년이 지났기 때문에 정조도 2,000톤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장준하가 말했다.

“본토의 광산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 말에 국토 관리부 대신 박지원이 대답했다.

“산업 개발에 필요한 광산을 정부 주도로 개발하는 것 이외에 사사로운 광산 개발은 일체 불하하고 있습니다.”

박지원의 말에 장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계십니다. 지하자원은 한계가 있습니다. 무분별하게 개발한다면 곧 고갈될 것입니다. 본토의 광산 개발은 천천히 해도 늦지 않습니다.”

장준하의 말대로 조선 본토의 광산 개발은 전부 북쪽에 있는 무산 철광과 인근에 있는 탄광,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일부 자원만을 한정하여 개발하고 있었고, 남쪽에는 시멘트 생산을 위한 석회석 광산만이 개발되었을 뿐 금광이나 은광의 개발은 철저하게 인허가를 통제하고 있었다.

특히 잠채(潛採)를 할 경우 법정 최고형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조선에서의 잠채가 없어졌다.

광산을 개발하여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은 개척지로의 이주를 신청하였다.

개척지에서는 권장 사업으로 광산 개발은 정부의 허가를 받고 일정 세금을 납부하면 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개척지로 이주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성용이 다시 말했다.

“영진 제약에서 생산되는 제약으로 5월부터는 전국의 보건소에서 영유아를 비롯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예방 접종을 실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정조가 기뻐하며 말했다.

“잘했소, 정말 장한 일이오. 이제부터 조선 백성들이 병마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겠구려.”

최성용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마진(홍역)과 소아마비 등을 비롯해 법이 정하는 전염병을 법정 전염병으로 규정하여 최선을 다해 예방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예방 접종은 이헌길(李獻吉)과 피재길 등 가온 의대에서 교육을 받은 조선 출신 의사들이 주도를 할 것입니다.”

정조가 말했다.

“조선의 의원들이 가온에서 새로운 의술을 배워 와서 백성들의 건강을 보살피다니 참으로 장한 일이로다.”

정조가 조선 출신 의원들을 칭찬하는 말에 모든 각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도 최성용의 보고는 계속되어 2년차에 접어든 의무 교육과 군 문제 등의 보고가 있었다.

보고 말미에 최성용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주상 전하께 신이 주청을 드릴 일이 있습니다.”

정조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과인에게 주청을 할 것이 있다니 말해 보시오.”

“강화에 있는 은언군마마에 관한 문제입니다.”

순간 회의실이 약간 술렁였다. 그런 분위기를 무시하고 최성용이 말했다.

“이제 은언군을 방면하셔서 도성으로 불러들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정조가 말했다.

“과인 또한 은언군을 방면하고 싶었으나 때를 기다리고 있었소.”

채제공이 말했다.

“은언군께서는 지난날 강화에 유배된 것이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노론의 심한 견제 탓도 있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사면 복권을 해드려야 할 분입니다. 이참에 방면하시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전하의 하나 남은 형제분이십니다. 이제 그만 한성으로 불러올리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 무렵 은언군은 강화 교동에서 직접 논밭을 일구며 아주 힘들게 살고 있었다.

정조가 말했다.

“고맙소. 그 문제는 궁내부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전하.”

장준하가 말했다.

“그리고 작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각 지방의 군정을 가을쯤에는 민간에 이양을 할 계획입니다.”

채제공이 말했다.

“군정을 마칠 계획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신사유람단도 이제 6차에 걸쳐 3,000명의 인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였고, 그것도 금년 가을이면 끝이 납니다. 가을경에는 지방 행정을 민간에 이양하고 군이 본연의 업무로 복귀를 하여도 충분할 것입니다.”

정조가 말했다.

“그 문제는 지금부터 각료들이 충분히 논의하여 결정을 해주기 바라오.”

그러자 모든 대신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화성 행궁에서의 어전 회의는 끝이 났다.

장준하는 은언군을 한성으로 모셔오는 문제를 최성용이 전담하게 하고, 지방 행정의 민간 이양은 관계되는 대신들과 군이 협의하여 결정하기로 했다.

1796. 3. 30. 창덕궁 희정당.

은언군이 한성으로 돌아왔다.

은언군의 귀경은 최성용이 직접 강화 교동을 방문하여 정조의 교지를 전달하고 은언군을 한성으로 모셔왔다.

강화의 교동도는 애환이 많은 섬이다.

연산군이 반정으로 왕의 자리를 내놓고 귀양을 한 곳이 교동이었다. 그리고 비교적 한성과 가까워 화완 옹주 등 왕족들의 귀양처로 많이 사용된 교동은 이때 부사가 다스리는 부(府)로 작은 섬치고는 농지가 많아 살림이 아주 팍팍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성용이 섬에 도착했을 때는 10여 년간의 귀양 생활과 직접 농사를 지었던 탓인지 완전 농부가 되어 있었다.

정조와 은언군은 사이가 각별했다.

은언군 또한 이를 내세우며 정조 즉위 초 약간의 문제를 일으켰으나 정치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론을 비롯한, 특히 정순 왕후는 기회만 있으면 은언군을 죽이려 했고, 정조는 이를 필사적으로 막았었다.

이러한 은언군이 사면 복권되어 드디어 한성으로 온 것이다.

“주상 전하, 은언군 입시옵니다.”

“들라 하라.”

정조의 하교에 희정당의 문이 열리고 은언군이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서는 은언군을 보고 정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너라.”

“전하.”

두 형제는 10년 만의 상봉에 정조가 내미는 손을 잡고 가슴이 울컥하여 잠시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전하, 좌정하시옵소서.”

“그래, 그러자.”

정조가 자리에 앉자 은언군이 사배를 하였다.

사배를 마친 은언군이 앉자 정조가 말했다.

“그래, 그동안 고생 많았지?”

“아니옵니다. 신의 잘못으로 형님 전하께 성려를 끼쳐드려 늘 황송하게 생각하고 있었사옵니다.”

정조가 말했다.

“아니다. 과인이 무력하여 하나뿐인 동생을 이렇게 힘들게 하였구나.”

정조가 이렇게 말을 할 때 밖에서 내관의 소리가 들렸다.

“전하, 위국공과 궁내부 대신 입시옵니다.”

“들라 하라.”

장준하와 최성용이 들어와 자리에 앉자 정조가 말했다.

“위국공과는 초면이겠구려.”

“그렇습니다. 장준하라고 합니다, 마마.”

은언군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관보 게시판으로 위공에 대해 잘 듣고 있었습니다. 우리 형님 전하를 위해,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 애쓰시는 공께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진작 모셨어야 하는데 정무를 수습하느라 1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죄송합니다.”

“개인의 일보다는 국사가 우선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한성에 올라와 형님 전하를 뵙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정조가 은언군을 바라보다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은언군의 나이도 벌써 마흔이 넘었구나.”

“예, 그렇사옵니다.”

“허허, 우리 형제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구나.”

은언군이 정조에게 물었다.

“두 군주들은 잘 있습니까?”

“안 그래도 청연과 청선 군주가 중전에게 와 있다고 하는구나. 잠시 후 함께 가보자.”

“알겠사옵니다, 전하.”

정조가 최성용을 보고 물었다.

“은언군의 한성 사저는 10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많이 퇴락해 있었을 것인데 어떻게, 수리는 하였는가?”

“우선 급한 대로 안채와 사랑채만 손을 봤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하께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

정조의 대답에 최성용이 말했다.

“전하의 윤허만 있으면 은언군마마의 사저에 한식이 아닌 양식으로 저택을 지어드리려고 합니다.”

은언군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궁내부 대신, 굳이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닙니다. 아직 한성에는 새로운 형태의 주택이 한 번도 들어선 적이 없습니다. 만일 은언군마마의 사저에 새롭게 건축된 저택이 호응을 얻는다면 이는 주택 경기 활성화에 아주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조선에는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필요합니다.”

정조가 말했다.

“그리하시오. 내 은언군의 사저에 형으로서 저택을 한 채 지어주리다. 궁내부 대신.”

“예, 전하.”

“기왕 신축을 할 거, 왕실의 권위를 살릴 수 있도록 지어주시오. 필요한 경비는 내수사에서 지급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전하.”

장준하가 말했다.

“최 대신.”

“예, 합하.”

“전하의 하교대로 조선 왕실의 최고 어른이 사는 저택답게 지어보게. 앞으로 우리 조선이 제국이 되면 친왕이 될 분이 아닌가?”

그러자 최성용이 바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알겠습니다, 합하.”

그러자 놀란 것은 은언군이었다.

“아니, 위공. 친왕이라니. 우리 조선이 요즘 강성해졌다고는 하나 아직 청에 조공을 하는 입장이오. 괜히 형님 전하께서 곤란해지는 말은 삼가시오.”

그러자 정조가 웃으며 말했다.

“은언군이 아직 잘 몰라서 그러니 위공께서 이해를 해 주시오.”

“아니옵니다, 전하.”

은언군은 정조가 장준하에게 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아니! 형님 전하, 그럼 위공께서 하신 말씀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은언군의 말에 정조가 미소를 지으며 가만 있었다.

그러자 최성용이 나서서 말했다.

“오늘은 시간이 없으시니 자세한 것은 시간을 내시면 신이 상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은언군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내일 바로 시간을 내겠습니다.”

“그럼 내일 사저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최성용과 은신군이 약속을 마치자 정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우리 형제는 내전에 들러 여형제인 청연과 청선을 보러 가야겠소.”

장준하가 말했다.

“그렇게 하십시오, 전하.”

정조가 은언군과 함께 중궁전으로 가자 최성용이 장준하에게 말했다.

“이제 사도 세자의 신원만 남은 셈입니다.”

“그래, 그것도 곧 해야지. 정조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얼마나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겠나.”

“우리가 들어와 아무리 조정의 사람들이 일신되었다고는 하나 정조가 자신의 재위 때는 거론하지 않기로 한 것을 어떻게 풀면 되겠습니까?”

장준하가 웃으며 말했다.

“왕을 시키지 않으면 되지 무얼 그리 걱정인가.”

최성용은 놀란 눈으로 장준하를 바라봤다.

“예? 정조를 보위에서 끌어내리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장준하가 파안대소를 했다.

“하하하하, 이 사람.”

최성용이 장준하의 파안대소에 곤혹스러워하자, 그런 모습을 보고 장준하는 더욱 크게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난 장준하가 최성용을 보고 말했다.

“왕이 되지 않는 것이 꼭 보위를 물러나게 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자 최성용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런, 내 정신 봐. 맞습니다. 더 좋은 방법을 두고 제가 괜한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 우리가 예정보다 몇 년 일찍 왔듯 그 문제도 꼭 고토 회복 후로 미룰 필요는 없다고 보네.”

“언제가 적당할 것 같습니까?”

장준하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북벌하기 전이 좋겠군. 그게 부대의 사기를 올리는 방편도 되고 말이야.”

최성용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그게 좋겠습니다. 그게 군사들 사기 앙양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장준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왕실 친위군보다 황실 친위군이 병사들의 사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일세.”

장준하와 최성용은 그렇게 희정당을 물러나와 장준하는 운현궁으로, 최성용은 건설부로 갔다.

다음 날이 되었다.

정조의 교지가 반포되었다. 은언군의 세 아들에게 군호를 내린다는 교지였다.

은언군에게는 다른 아들들은 다 죽고 서자를 포함한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이미 서얼 제도가 철폐된 마당에 서자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정조는 세 아들에게 풍계군과 전계군, 그리고 서자인 이철득에게는 완계군이라는 군호를 각각 내려주었다.

그리고 풍계군은 숙부인 은전군의 작위를 회복시키며 양자로 입적을 시켰다.

은언군의 사저 신축 공사는 2개월간 설계도면을 작성하고 난 6월부터 공사의 첫 삽을 떴다.

정조를 만난 다음 날 은언군의 사저에는 궁내부 직원이 방문을 하였다.

은언군과 그의 세 아들은 곧바로 여의도 비행장으로 이동을 하였다.

그곳에는 최성용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성용의 안내를 받고 들어선 비행장 귀빈실에는 영상 기록물이 상영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은언군은 교동에 귀양을 갔었기 때문에 주민 홍보 영화 상영 때는 늘 빠져 있었다.

교동 마을에 나가 관보 게시판을 보는 것이 전부였던 은언군 부자로서는 영상 기록물 시청이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상 기록물을 시청한 은언군 부자는 곧 비행선에 올라 3박 4일간의 짧은 여행을 떠났다.

멀리 사백력 이종찬시에서 아래로 유구의 나패를 돌아 오는 여행은 짧은 기간이기는 하였지만 은언군 부자를 환골탈태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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