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략
1796. 6. 5. 나가사키.
무려 10개월에 걸친 일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통신사 박지원 일행이 조선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가사키의 가온 무역 상관에 도착해 있었다.
통신사 일행이 도착한 나가사키에는 궁내대신 최성용과 국정원장 신경식이 와 있었다.
최성용이 박지원을 보고 인사를 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최성용의 말에 박지원이 대답했다.
“별말을 다 하시오. 이번 방문은 막부의 극진한 환대로 아주 편하게 다녀왔소.”
그러자 부사로 같이 파견되었고, 지금은 조달청장이 된 별무사 전수 서이수가 말했다.
“맞습니다. 정사님의 말씀대로 환대가 너무 극진하여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박승호가 말했다.
“가온 무역이 사쓰마를 도와주어서인지 막부에서 만일 통신사 접대를 잘못할 경우 폐번을 한다는 특명까지 내렸다고 합니다.”
최성용도 처음 듣는 말이어서 되물었다.
“그런가? 처음 듣는 말이네.”
“각지의 다이묘들에게 내린 밀명이라 우리도 돌아오는 길에 들른 조슈 번의 번주인 모리 나리후사에게 들었습니다. 아마도 가온 무역과의 무역으로 막부에서 엄청나게 세금을 거둬들이고 있고, 에도에 살고 있는 사쓰마 번의 전대 번주의 입김이 막부에 크게 작용을 한 것 같습니다.”
국정원장 신경식이 물었다.
“사쓰마 전대 번주를 만나 보니 어떻던가?”
박승호가 대답했다.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원장님의 지시대로 에도에 있으면서 그를 몇 차례 만나 보았습니다. 제가 본 사쓰마의 전대 번주는 절대 아들에게 전권을 넘겨주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최성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나가사키에 사쓰마 번의 번주가 와 있으니 그를 만나 보면 이제 그가 그동안 어떤 결정을 했는지 알 수 있겠지.”
박승호가 말했다.
“전대 번주를 만나 본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좋은 결과가 있으실 겁니다.”
최성용은 고개를 끄덕이다 서이수를 보고 물었다.
조달청장이 된 서이수에게 최성용이 존대를 했다.
“오사카 상인들을 만나 보니 어떻습니까?”
서이수가 대답했다.
“역시 그들은 대상인들입니다. 저희가 본주로 들어서자마자 바로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호오! 저들의 정보력이 생각보다 대단하군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만일 사쓰마가 우리의 생각대로 끌려오지 않으면 바로 오사카 상인들과 거래를 시작해도 될 정도로 접촉을 해놓았습니다. 오사카 상인들은 우리가 거래선을 바꿔도 막부에서 가온 무역에 제재를 가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까지 약속을 했습니다.”
최성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오사카 상인들의 저력이 대단하군요. 알겠습니다. 사쓰마와 협상할 때 적절히 활용하겠습니다.”
신경식이 박승호 소령을 보고 물었다.
“조슈 번의 번주를 만난 일은 어떻게 되었나?”
“우리들의 지원에 아예 목을 놓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아무 말이 없자 상당히 당혹해하고 있었던 것이 표가 날 정도입니다. 저희가 일부러 조슈 번으로 일정을 잡았다는 것을 알고 번주가 직접 번의 경계까지 마중을 나올 정도였습니다.”
박지원이 말했다.
“모리 번주가 비록 나이는 많지 않으나 상당한 야심가로 보입니다. 그와 손을 잡아도 이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성용과 신경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식이 박승호를 보고 물었다.
“밀명은 어떻게 되었나?”
“완수했습니다.”
그러자 박지원이 처음 듣는 말이라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박 소령에게 다른 밀명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신경식이 웃으며 말했다.
“예, 저희 국정원에서 별도로 실시한 작전이 있었습니다.”
박승호가 이번 통신사에 파견이 된 것은 일본의 현재 군세를 파악하는 것도 있었지만 또 다른 밀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암살 작전이었다.
국정원에서 주도한 이러한 작전은 이전 시대 정한론을 주장하며 조선 침략의 선봉이었던 기도 다카요시를 비롯한 명치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과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타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가쓰라 다로, 다카스기 신사쿠, 사카모도 료마를 비롯한 일본의 개화기를 이끌었던 일본 지도자들이 애초에 나오지 못하도록 그들의 조상들을 암살하라는 밀명이었다.
이러한 밀명은 통신사의 수행원으로 참여한 10명의 저격조에 의해 진행이 되었다. 대부분이 조슈 번과 사쓰마 번 출신인 암살 대상자들을 암살하는 일은 아주 쉬웠다.
저격조는 이미 일본에 파견되어 있었던 국정원 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작전을 실시했다. 이러한 저격은 통신사가 방일을 하던 지난 10개월 동안 약 100건이 쥐도 새도 모르게 실시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박지원과 서이수 등 조선 출신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어 밀명으로 처리했던 것이었다.
신경식이 물었다.
“저격조는 어찌 되었나?”
“현지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래, 잘했네. 앞으로 일본의 미래에 혹 희망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인재는 아예 싹을 잘라버려야 하네.”
박지원이 물었다.
“우민화(愚民化) 정책입니까?”
박지원의 정확한 지적에 약간 놀라며 신경식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일본을 철저하게 우민화시킬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일본의 미래의 지도자가 될 만한 자들이 아예 커나가지 못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박지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저도 일본에 파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을 아주 낮춰 봤었는데 그게 아닙니다. 안으로 들어와 본 일본은 대단했습니다.”
그러자 서이수도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저도 정사(正使)님과 생각이 같습니다. 일본을 이대로 두어서는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의 말에 최성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보셨습니다. 조선에서는 일본을 아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절대 일본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 국정원이 군의 지원을 받아 실시하려는 것이 바로 그런 일본의 미래 희망을 잘라내는 작업입니다. 이미 일본에는 많은 수의 국정원 요원들이 파견되어 있어서 그런 자들을 찾는 것은 별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서이수가 물었다.
“그러면 모두 저격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서이수가 되물었다.
“그것은 너무 잔인한 것 아닙니까? 그들을 따로 불러 교화를 시키는 것도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신경식은 단호했다.
“일단 미래의 화근은 아예 제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서 청장 말대로 그들을 따로 모아 교화를 시키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그들의 후손들까지 신경 쓸 수는 없습니다.”
서이수가 말했다.
“아직 있지도 않은 후손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신경식이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하하, 말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조선은 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 문제로 국력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서이수도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국정원의 이러한 우민화 정책에 따른 암살 작전은 그 이후 10년간 계속되었다.
이 암살 작전은 일본 근대화 시기의 지도자와 군부, 정재계를 비롯한 학자 등이 총망라되었다.
이전 시대 역사를 참고한 이 작전이 끝났을 때는 10,000여 명을 사살하여 일본 개화의 씨를 아예 말려버렸다.
신경식이 말했다.
“내가 모리 번주를 만나 봐야겠습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사쓰마 번주를 만나 보겠습니다.”
최성용은 그러면서 박지원을 보고 말했다.
“선생님, 돌아가시는 길에 대마도를 들러보십시오.”
“대마도에는 무슨 일이 있소?”
“지금 일본이 지난번 왜구의 일로 폐번하며 섬 주민들을 모두 구주로 이주시키며 대마도를 공도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 우리 군이 들어가 기지를 건설하고 있으니 잠깐 쉬었다 가는 것도 좋으실 것입니다.”
박지원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 이제부터 대마도는 조선의 영토가 된 것이오?”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번 방문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박지원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렇다면 당연히 방문해 봐야지요. 귀국길에 꼭 들러보겠소.”
그렇게 말을 하는 박지원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최성용이 말을 했다.
“그럼 피곤하실 텐데 쉬십시오. 저는 사쓰마 상관에 잠시 들렀다 오겠습니다.”
그러자 신경식이 일어나며 말했다.
“저도 한번 번주를 만나 보고 싶군요.”
“그럼 함께 가시죠?”
두 사람이 박지원 등을 놓아두고 상관을 나왔다.
그들을 안내한 것은 일본 상관장 기정진이었다.
기정진이 앞서 나가다 잠시 기다려 보조를 맞추며 말했다.
“만일 조선에 두 명의 대신이 이곳에 와 있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될까요?”
최성용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놀라겠죠. 아니,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발칵 뒤집어지겠죠.”
신경식도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저들의 목을 자르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는 것을 알면 모골이 송연해질 것입니다.”
“하하, 이런 기분이 음모를 꾸미는 느낌인가요?”
그러자 신경식과 기정진도 파안대소하였다.
“하하하하하.”
그들이 웃으며 걷는 사이 일행들이 사쓰마 상관에 도착했다. 사쓰마 상관 앞에는 연락을 받은 사쓰마의 숙노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정진이 말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예,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안으로 드십시오. 번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를 받고 상관으로 들어서자 번주인 시마즈 나리노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마즈가 깊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자 최성용도 마주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만나 뵌 지 오래되었는데도 번주님 뵙는 게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시마즈 나리노부도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사장님을 뵈니 뵌 지 1년이 넘었는데 마치 어제 본 듯합니다.”
최성용도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하하, 이거 마음이 통하나 봅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보며 웃었다.
이윽고 신경식의 소개를 끝내고 상관 안에 있는 번주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집무실에는 이미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최성용이 말했다.
“차 맛이 아주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께서 오신다고 준비는 했었는데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두 사람은 차에 대해 몇 마디 말을 나누고는 최성용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난번 말씀드린 것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시마즈 나리노부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저에게 이런 제안을 하시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최성용이 솔직히 대답했다.
“우리 조선은 일본을 분할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일환으로 이 구주 땅을 귀 번에서 차지해 독립을 하도록 지원을 해줄 계획입니다.”
“만일 우리가 거부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번주께서 거절을 하신다면 우리 조선은 새로운 대상자를 물색할 것입니다. 물론 사쓰마와는 죄송하지만 결별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계획을 완성시킬 것입니다. 본주에 있는 한 번(藩)과는 이미 말을 끝내놓았습니다.”
그러자 시마즈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그런 시마즈를 보고 최성용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은 가온 무역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정책으로 정식 입안한 계획입니다.”
그러자 기정진이 말했다.
“여기 사장님은 이제 가온 무역의 사장님이 아니라 조선 왕실을 관리하는 궁내부 대신이십니다.”
그러자 시마즈 나리노부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이 계획은 이제 조선 조정에서 진행하는 계획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최성용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러자 시마즈 번주가 말했다.
“솔직히 대신님의 말씀에 마음이 기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독립 전쟁을 하려면 돈만으로는 시작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큰 번이기는 하나 막부에 정면으로 맞서기는 힘이 벅찹니다.”
최성용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지금 막부가 타락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징병을 하면 상당한 병력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번주께 오늘 저희들의 진면목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시마즈 나리노부가 놀라서 물었다.
“진면목요?”
“그렇습니다. 잠시 저에게 시간을 내주시지요?”
“알겠습니다.”
시마즈 나리노부의 말이 있자 일행은 바로 일어나 나가사키 항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최성용이 타고 온 범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해상 세력이었던 사쓰마 번의 번주인 탓인지 시마즈가 그것을 보고 부러운 눈으로 물었다.
“서양에서 이런 커다란 범선을 사려면 가격이 많이 비싸지요? 이 범선은 얼마나 합니까?”
그러자 최성용이 웃으며 말했다.
“아, 번주님께서 모르시는군요? 이 배는 서양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라 우리 조선에서 직접 만든 범선입니다.”
그러자 시마즈가 놀라서 물었다.
“예? 아니, 조선에서 이렇게 큰 배를 만들 조선술이 있었습니까?”
“하하, 일단 배에 오르시지요. 지금부터 놀라시면 곤란합니다.”
그 말에 시마즈 번주는 아무 말도 못하고 숙노와 시마즈의 심복인 번의 관리들을 대동하고 범선에 올랐다. 이 범선은 중부 범선 함대의 기함인 101대지호였다.
함대 사령관이며 선장인 이칠성 대령이 배에 오른 최성용을 보고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오셨습니까?”
“음, 수고하네. 손님이 오셨으니 잘 부탁하네.”
이칠성이 시마즈 번주를 보고 다시 경례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처음 뵙겠습니다. 함장 이칠성 대령입니다.”
기정진 상관장의 통역으로 인사를 받은 시마즈가 답례를 했다.
인사를 마치는 것을 본 최성용이 이칠성에게 말했다.
“자, 광무 황제께서 기다리시는 외양으로 나가세.”
“알겠습니다.”
이칠성은 최성용의 지시를 받고는 바로 부관에게 명령을 했다.
“자, 출항하세.”
삐이~ 삐이~ 삐이~
출항 준비를 알리는 신호음이 들리자 선상은 갑자기 분주해졌다.
“자, 우리는 안으로 들어갑시다.”
최성용은 시마즈를 선교로 안내를 했다. 범선의 선교는 탁 트여 사방이 훤하게 보였다.
이들이 자리에 앉자 곧 배가 출항을 했다.
나가사키 항을 벗어난 범선은 곧 기관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사쓰마는 본래부터 해군이 강한 번이었다. 왜구의 본거지이기도 했던 사쓰마 번의 번주인 시마즈는 범선을 보고 감탄을 거듭했다.
그러다 범선이 본격적으로 기관을 가동하며 속도를 높이자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배가 이렇게 빨리 운항할 수 있습니까?”
“하하. 자, 왜 그렇게 되는지 보러 갑시다.”
최성용은 시마즈를 데리고 기관실로 내려갔다.
기관실은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가 진동했다.
쿵, 쿵, 쿵, 쿵.
기관실은 석탄으로 불을 때고 있어서 아주 더웠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며 시마즈가 물었다.
“이게 뭡니까?”
놀라서 물어보는 시마즈를 보고 최성용이 기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했다. 시마즈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저 기관이라는 것이 가동하여 배를 빨리 움직이게 한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저 기관은 바람이 없어도 배가 움직이는 데 전혀 지장이 없고, 바람에만 의지한 것보다 엄청나게 빨리 운항할 수 있습니다.”
시마즈가 감탄을 하며 말했다.
“대단합니다. 배가 바람이 아닌 기관에 의해 움직이고, 지금 같이 빠르게 운항할 수 있다면 천하무적이겠습니다.”
최성용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씩 놀라십시오. 아직 볼 것이 많습니다. 자, 안이 더우니 위로 올라갑시다.”
일행이 다시 선상으로 올라갔다. 바다를 가르며 힘차게 달리는 범선 때문에 시원한 바람이 일행들을 감쌌다.
시마즈 번주가 가슴을 확 열어 제치며 말했다.
“후, 시원합니다.”
시마즈가 선상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을 때 이칠성 대령이 다가와 최성용에게 말했다.
“대신님, 항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얼마나 떨어져 있나?”
“이키 섬 서방 해상에 있다고 하니 한 시간이면 도착을 할 수 있습니다.”
“알겠네. 도착을 하면 연락해 주게.”
“알겠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이칠성이 쌍안경을 가지고 와서 말했다.
“정면에 도착해 있습니다. 확인하십시오.”
“음, 고맙네. 자, 이것으로 정면을 보십시오.”
최성용은 이칠성 등이 가져온 쌍안경을 시마즈 번주에게 주었다. 옆에서 이칠성의 부관이 시마즈에게 쌍안경의 조작법을 알려주었다.
“아니! 저것이 무엇입니까?”
“저희 조선이 보유하고 있는 항공모함이라고 하는 배입니다.”
“항공모함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배로, 전부 철로 만들어졌습니다.”
시마즈가 그 말에 놀라서 물었다.
“철로 만든 배가 물에 뜹니까?”
최성용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세한 것은 저 항모에 승선해서 다시 말을 합시다.”
시마즈는 그 말에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쌍안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잠시 후 항공모함에 점점 더 다가서자 시마즈는 그 위용에 놀라 말을 하지 못했다. 시마즈를 따라온 숙노와 가신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타, 타, 타, 타, 타!
광무황제함에서 수리온이 떠올랐다.
“어억! 저건 또 무업니까?”
“우리 조선이 보유하고 있는 하늘을 나는 직승기(直昇機)입니다.”
“하늘을 나는 직승기라고요?”
최성용은 그런 시마즈를 보고 말했다.
“자, 자세한 것은 일단 항모에 올라서 말합시다.”
타, 타, 타, 타, 타!
범선은 세 개의 마스트가 있어 헬기가 접근하기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수리온 기장의 경험이 풍부한지 곧 선수에 있는 공간 위에 도착을 하고는 줄사다리를 내렸다.
최성용이 시마즈에게 말했다.
“저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합니다.”
“예, 저 줄사다리를요?”
“그렇습니다. 저 앞에 가는 기정진 상관장처럼 오르시면 됩니다.”
그러자 스스로 사무라이라고 자부하던 사쓰마의 일행들은 옆 사람이 보아도 알 정도로 심하게 다리를 떨었다. 20대인 시마즈 번주가 그나마 나았다.
시마즈는 줄사다리를 잡고는 심호흡을 하더니 힘차게 줄을 밟고 올라갔다.
헬기는 10여 미터 상공에 있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시마즈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사쓰마의 나머지 일행들도 죽을상을 하고 줄사다리에 올랐다.
수리온 헬기의 탑승 정원 때문에 헬기는 최성용까지만을 태우고 곧바로 떠올라 항모로 갔다.
타, 타, 타, 타!
수리온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항모에 안착했다.
“자, 내리십시오.”
최성용은 시마즈 일행에게 머리 조심하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가 머리 위에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는 날개 때문에 자신들도 모르게 몸을 거의 땅에 붙이고 기다시피 걸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그들을 본 최성용은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뒤를 따랐다.
사람을 내린 헬기는 곧 떠올라 다른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다시 범선으로 갔다.
얼마 전 대령에서 제독으로 승진한 광무황제함의 함장인 공진성 소장이 최성용을 반겼다.
공진성의 승진은 조선에 하나밖에 없는 항모의 함장은 최소한 제독이어야 한다는 최성용의 추천으로 이번에 소장으로 승진했던 것이다.
공진성이 최성용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제독의 복장이 어울리네. 승진 축하드리네.”
“고맙습니다.”
최성용은 흰색 해군 제독 복장을 한 공진성과 인사를 나누면서 그의 승진을 축하해 주었다.
최성용이 공진성에게 사쓰마의 시마즈 등을 인사시켰다. 공진성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광무 황제의 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함장 공진성이라고 합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시마즈는 이전 기정진 등과 악수를 주고받은 경험이 있어 쭈뼛거리기는 했지만 손을 마주 내밀었다. 시마즈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기범선을 탈 때부터 정신이 없었던 시마즈는 헬기를 타고 축구장의 몇 배 넓이의 거대한 항모에 오르자 거의 넋이 빠져 있었다.
공진성 제독이 그런 시마즈에게 선상에 있는 해리어기와 수리온 헬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듣던 시마즈와 일행은 경악에 경악을 했다.
그들이 거의 졸도할 정도로 경악한 것은 해리어기의 이륙과 발진에 있었다.
공진성과 최성용은 일부러 선교로 이들을 데려가지 않고 선상에서 해리어기가 이륙과 발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거기다 해리어기가 바다에 떠 있는 목표물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보고는 결국 시마즈는 다리가 풀려 털썩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시마즈를 보고 최성용이 말했다.
“항모를 한번 돌아보시겠습니까?”
시마즈에게는 당연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런 시마즈를 안내한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공진성이었다. 공진성은 광무황제함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공진성의 설명에 시마즈가 놀랐다.
“예? 이 배에 수천 명이 승선해 있다는 것입니까?”
공진성 제독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자세한 숫자는 군사 기밀이어서 곤란하지만 분명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배는 연료를 공급받지 않아도 몇 년간 바다에 떠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조금 전 범선을 타고 올 때 최 대신님께 듣기로는 기관은 연료를 공급받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연료 공급도 없이 어떻게 이런 섬만 한 배를 움직일 수 있습니까?”
“예, 이 배에 탑재된 기관은 몇 년간 스스로 운항할 수 있는 무연료 공급 기관입니다.”
공진성은 그러면서 어차피 이들의 기술로는 백 년이 지나도 만들지 못할 것이기에 항모의 주요 군사 시설을 제외한 대부분을 모두 개방해 보여주었다.
항모 견학을 마치고 선교에 오른 시마즈를 보고 최성용이 물었다.
“어떻습니까?”
시마즈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희들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너무도 엄청나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다 놀라시면 안 됩니다. 잠시 후 화력 시범을 보러 가셔야 합니다.”
“화력 시범요? 아니, 조금 전 비행기라는 것이 한 것 말고 또 있습니까?”
“그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예에?”
순간 시마즈와 가신들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까지 본 것만 해도 엄청난 것인데 또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최성용이 그러한 시마즈를 보고 말했다.
“잠시 쉬셨으면 가실 곳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시마즈는 두말하지 않고 일어났다.
이들은 선상에 내려가 바로 대기하고 있던 수리온 헬기를 탔다.
몇 시간 동안 너무도 엄청난 것을 본 탓인지 처음과는 달리 두 번째 탑승은 비교적 안정되게 헬기에 오를 수 있었다.
타, 타, 타, 타, 타.
두 대의 헬기에 분승한 이들이 도착한 것은 대마도로 이미 헬리포트가 건설되어 있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우리 조선 땅 대마도라는 곳입니다.”
“대마도요? 예~ 섬이 참 아름답습니다.”
사마즈는 쓰시마가 아닌 대마도라는 말에 같은 섬인지 모르고 주위를 둘러보며 인사치레로 말했다.
곧 이들을 위한 자리로 이동을 했다.
시마즈 일행이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최성용이 대마도 주둔 부대장에게 말했다.
“준비됐으면 시작하지?”
“알겠습니다.”
부대장은 곧 헤드셋을 열고는 어디론가 지시를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정면에 있는 절벽과 산기슭을 보십시오.”
부대장이 가리키는 정면에는 커다랗게 둥근 원이 표적지로 그려져 있었다.
최성용과 시마즈 일행이 표적지를 바라볼 때였다.
쾅―! 콰, 콰, 콰, 쾅!
쉬이익~ 콰쾅!
어디선가 날아오는지 모를 포탄들이 표적지에 작렬하기 시작했다.
사쓰마의 숙노가 그것을 보고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아니! 저럴 수가!”
그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폭발을 보고는 놀란 것이다. 시마즈도 그것을 보고는 아주 놀라워했다.
하지만 압권은 역시 다른 것이었다.
쌔~엑!
잠시 포격이 멈춘 사이 하늘에 해리어기가 나타났다. 시마즈는 조금 전 광무황제함에서 본 적이 있던 터라 놀라지 않고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해리어기는 곧 하나의 폭탄을 떨어트리고는 바로 기수를 돌려 돌아갔다.
쾅! 화~악!
네이팜탄이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엄청난 화력을 폭발시킨 네이팜탄의 위력을 본 시마즈를 비롯한 사쓰마의 모든 일행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얗게 질린 얼굴로 폭발을 바라봤다.
피가 나도록 꽉 잡은 두 손을 벌벌 떨면서 전면을 주시하는 시마즈를 보고 최성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털썩.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정신을 차린 시마즈가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러고도 얼마의 시간이 지나 마음을 진정시킨 시마즈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최성용을 보고 물었다.
“또 무엇이 있습니까?”
최성용이 그런 시마즈를 보고 웃으며 되물었다.
“더 필요하십니까?”
시마즈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정말 충분합니다.”
이들은 곧바로 헬기에 올라 다시 광무황제함으로 돌아왔다. 이번의 안내는 공진성의 부관이 했다.
헬기에 내려 힘없이 함교로 걸어가는 시마즈 일행을 보고 공진성은 최성용에게 눈짓을 했다.
어땠냐고 눈으로 물어보는 공진성에게 최성용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을 본 공진성이 웃으며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교에 있는 광무황제함의 회의실은 크고 넓었다.
모든 사람이 자리에 앉고 잠시 시간이 지났다.
시마즈 번주가 마음을 진정했는지 최성용을 보고 물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최성용이 대답했다.
“지금 보신 화력은 우리의 무력을 모두 보여드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보여드리는 목적은 우리 조선을 믿고 시작을 하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맘만 먹으면 쇼군이 있는 에도 정도는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시마즈는 최성용의 말이 절대 허풍으로 들리지 않았다.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시마즈를 보고 최성용이 다시 말했다.
“앞으로 사쓰마가 독립 운동을 시작하여 구주 지역을 확실히 장악할 때까지 제해권은 확실히 장악해 드리겠습니다.”
시마즈가 물었다.
“우리가 조선에 해드릴 것은 무엇입니까?”
“먼저 새롭게 건국될 나라는 확실한 독립 국가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주 국가가 될 것입니다. 이 점 분명히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희는 너무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선이 사쓰마에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말씀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첫째, 우리의 말과 글을 정식으로 새로운 국가의 언어로 채택해 달라는 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최성용의 말에 시마즈는 물론 사쓰마의 가신들 모두 놀랐다. 시마즈가 물었다.
“아니, 우리 일본은 우리 고유의 말과 글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선의 말과 글을 우리가 채택할 수 있습니까?”
최성용은 여기서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우리는 사쓰마에 영토를 할양해 달라거나 우리의 속국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받아들이라는 것뿐입니다. 일본의 말과 글은 고대 우리 선조들이 만든 것이라 서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자를 공유하고 있고 어순이 일치하니 보급에 별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이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일본의 문맹률을 구 할이 넘습니다.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상태에서 배우고 익히기 쉬운 우리말과 글은 아주 빠르게 보급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마즈도 일본이 고대 조선에서 넘어온 도래인(渡來人)들이 문자를 만들고 선진 문물을 들여왔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시마즈가 되물었다.
“완전히 지금 쓰는 말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처음이야 혼용을 해야겠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렇게 시행해도 별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 것이, 이제 우리 조선의 말과 글은 청국의 강남, 그리고 이 일본의 본주와 지난번 할양해 준 유구, 그리고 멀리는 태평양을 넘어선 곳까지 모두가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무역을 하면서 국력을 키워야 할 사쓰마로서는 이중으로 국민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돼서 필요 없는 국력을 낭비하지 않아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숙노가 물었다.
“아니? 언제 조선의 말과 글이 그렇게 멀리 퍼졌습니까? 그리고 우리 일본의 본주에도 사용을 한다뇨?”
그 말에 최성용은 개척지 현황을 대략 말해 주었고, 청국 강남과 일본의 본주에 대해서도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최성용의 설명을 들은 시마즈 일행은 너무도 엄청난 조선의 영토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시마즈를 보고 최성용이 말했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영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영토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단, 우리는 이제 천손민족인 우리가 주축이 되어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더불어 잘살 수 있는 공영의 길을 모색하려고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앞으로 조선은 저 동남아의 여러 국가들에도 일본과 똑같은 제안을 해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하나의 단일된 공동체를 만들려고 합니다.”
시마즈는 그 말에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런 시마즈를 그대로 두고 최성용은 회의실의 한쪽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을 열었다.
“잠시 저 벽을 봐주십시오. 지금 보시는 영상 기록물은 우리 조선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마즈의 말도 듣지 않고 방 안의 불이 꺼지더니 바로 영상 기록물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영상 기록물의 해설은 이미 일본어로 번역되어 녹음되어 있었다. 세 시간 동안 방영된 영상 기록물은 시마즈 일행의 마음속 우려의 먹구름을 걷어내기에 충분할 뿐 아니라 오히려 넘쳤다.
시마즈가 상영이 끝이 나자 바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지난 시절 일본에 불법으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의 반환입니다.”
시마즈는 그 말에 놀랐으나 내친걸음이었다.
“알겠습니다. 다른 곳은 모르지만 이 구주 지역에 있는 조선의 문화재는 모두 환수해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 점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되자 대화는 급진전을 보였다. 조건이 협의되자 실무 문제는 거칠 것이 없었다.
유, 무상 원조로 10만 정의 제이스 소총과 소모품이 제공되었고, 그에 따른 군사 고문단도 200명이 대거 파견하기로 하고, 여기에 우리말과 글을 가르칠 교사들도 군사 고문단의 업무를 겸직하면서 300명을 추가로 파견하기로 합의했다.
독립 전쟁은 정조 재위 23년인 3년 후(1799년) 가을에 봉기하기로 했다.
긴 협상이 끝나고 조약문에 서명을 하고 난 후 최성용이 시마즈 번주를 보고 말했다.
“좋은 결정 하셨다는 것을 후일 아실 겁니다.”
그제야 시마즈가 속에 품은 생각을 말했다.
“솔직히 아버님 때문에 저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가온 무역과의 교역으로 번의 재정이라도 풍족하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비록 24살의 젊은 번주였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정확해서 앞으로 자신의 미래를 어느 정도 아는 눈치였다. 최성용이 대답했다.
“번으로 돌아가시면 주변부터 정리를 하셔야겠습니다.”
“그래야겠지요. 물론 요즘은 번의 재정을 안정시킨 점이 있어서인지 대부분이 마음을 돌렸습니다만, 부끄럽지만 번에는 아직까지 아버님을 따르는 신하들이 상당수 남아 있습니다.”
“그러실 겁니다. ‘사쓰마에 어리석은 군주가 없다’는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번주께서는 미리 그런 것을 각오하시고 과연 대단하십니다. 필요하시면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시마즈 번주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도와주시면 저희들의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이제 사쓰마와 우리는 한 배를 탄 입장입니다. 앞으로 몇 년간은 사쓰마에서 잡음이 들려 막부와 전대 번주님의 주목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시마즈가 대답했다.
“그들이 나의 신하이기는 하나 이미 아버님께 죽음으로 충성을 바치는 맹세를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필요할 경우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이렇게 시마즈 나리노부는 사쓰마로 돌아간 후 전대 번주의 수족을 잘라내는 일을 가장 먼저 하였다.
그 일은 국정원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쥐도 새도 모르게 가능했다. 그것은 시마즈 나리노부의 참근교대(?勤交代)를 이용해서였다.
시마즈 나리노부는 최성용과 밀약을 하고 난 후 첫 참근교대에 전대 번주의 핵심 세력인 무사대장을 비롯한 자신의 아버지에게 충성하는 무사들을 모조리 이끌고 에도로 올라갔던 것이다.
사쓰마 번의 참근교대는 번의 위상에 맞게 항상 수백 명이 움직이는 대규모였다.
시마즈 나리노부는 이 참근교대에 번에 있는 최고의 배들로 항상 해로를 이용하였는데, 이 참근교대 수행원 수백 명 중 두 척의 배에 전대 번주의 핵심 측근들을 모조리 몰아넣었다.
사쓰마 번의 참근교대는 오사카에서 보급을 위해 잠시 머물고는 바로 에도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두 척의 배가 수장된 것은 오사카 항을 출발한 지 이틀째 되는 날 밤이었고, 두 척의 배가 사라진 것을 시마즈가 안 것은 다음 날 새벽이었다.
가신들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바다로 나간 시마즈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밤사이 배 두 척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물론 이는 참근교대를 하기 위해 출발하기 전 국정원 석원형 과장과 협의한 사항이기는 하였지만 날짜를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일어날지 몰랐고, 또 이렇게 눈앞에서 배가 사라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국정원에서는 군의 협조를 받아 이전 좌도섬에서의 전투와 같이 이들 배에 줄을 묶어 안중근함이 그대로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가 수장시켜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탈출을 하기 위해 바다 위로 떠오르는 사무라이들은 기다리고 있던 특수전 요원들에게 모조리 저격되었다.
시마즈 나리노부는 이 일을 에도에 알리고 항해를 멈춘 후 며칠 동안 해안을 샅샅이 수색하였으나 바다에서 떠오른 것은 조각 난 배의 파편과 죽어서 떠오르는 사무라이들의 시체뿐이었다.
시마즈 나리노부는 어쩔 수 없이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인근 신사에 안치하고는 에도로 갔다.
전대 번주 시마즈 히데히게는 사실을 보고받고 안타까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속으로 아직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무라이들이 있다고 자위하였지만 나머지 사무라이들은 이미 시마즈 나리노부에게 충성을 맹세한 후였다.
이로써 사쓰마의 먹구름이 완전히 걷힌 것이다.
시마즈가 참근교대를 위해 에도로 떠난 후 사쓰마는 곧바로 숙노의 주도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개혁의 가장 중점은 군사력 증강이었다. 이와 함께 주변의 번과의 교류를 일절 금하는 정책을 동시에 실시하였다. 바야흐로 사쓰마 번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쓰마 번이 움직임을 보일 때 일본의 또 한 곳이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니, 이는 조슈 번이었다.
신경식 국정원장은 조슈 번의 번주 모리 나리후사 또한 숙노를 비롯한 자신들의 가신을 이끌고 사쓰마 번의 번주와 똑같은 경험을 하게 한 것이다.
이미 최성용에게 칼까지 보낸 모리 번주는 당연히 경악하였으며, 오히려 시마즈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막부에 충성을 하고 있었지만 조슈 번의 기상은 막부와 전혀 달랐다.
그리고 조슈 번은 사쓰마 번과는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주변 10여 명의 다이묘들이 이미 모리 가문에 충성을 맹세한 것이었다.
처음 모리 번주는 본주 전체를 자신의 발아래 놓기를 원했으나 이는 최성용과 신경식의 반대로 본주의 한가운데를 완충지로 한 남쪽의 통일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조선이 내민 조건인 우리말과 글의 공식 채택과 문화재 반환은 두말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승낙을 하였다
이로써 광무황제함에서 일본 공략의 두 번째 조약인 모리 가문의 조슈 번과 최성용과의 조약이 체결된 것이다. 이들의 거사 또한 사쓰마 번과 같은 3년 후였다.
이러한 공략에 따른 조약이 모두 마무리된 것은 7월 하순이었다.
최성용은 이러한 일을 모두 마무리 짓고는 조약문과 보고서를 운현궁에 특급 비밀 서류로 분류하여 보내고는 청국의 광저우로 향했다.
신경식 국정원장은 이미 박지원의 귀국길에 동행을 하여 한성으로 돌아갔다.
최성용은 기정진에게 일본 상황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였다.
기정진은 이때부터 가온 무역의 나가사키 상관장에 불과한 신분이었지만, 조슈 번과 사쓰마 번에서는 자신들의 번주와 동격으로 대접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