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량식(上梁式)
1794. 8. 10. 창덕궁 선정전.
정조가 두 달이 넘는 동안 심하게 병을 앓았다.
그래서 조정의 모든 사람들은 물론 가온에서도 초긴장 상태였다.
다행히 이틀 전 몸이 완쾌되었다는 내의원의 진단을 받고 이날 장준하와 통화를 하였다.
“전하, 하례드립니다.”
―공연히 공에게 심려를 끼쳐 볼 낯이 없소.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두 달이 넘도록 환후가 깊으셔서 신들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정조가 말했다.
―다행히 이렇게 환후가 물러났으니 걱정 마시오.
정조가 말했다.
“조선의 의학도 대단하지만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의학도 그에 못하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저희들 의학으로도 전하의 환후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정조가 웃으며 말했다.
―허허, 다음에는 내 그리하리다.
장준하가 물었다.
“앞으로 있을 거사가 전하를 힘들게 하였나 봅니다.”
정조가 대답했다.
―솔직히 그 문제도 이번 환후에 작용을 한 것이 사실이오. 과인도 몰랐지만 그동안 마음속에 늘 압박감이 있었는가 보오.
장준하가 말했다.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조선의 모든 백성들의 삶이 걸려 있는 일입니다.”
정조가 대답했다.
―그랬던 것 같소.
“그래도 쾌차하셔서 천만다행입니다.”
이번에는 정조가 물었다.
―그래, 준비는 잘되어가고 있소?
“예, 모든 병력들이 차질 없이 제주에 집결하고 있습니다.”
―다른 문제는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소?
“조선의 백성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칠 교사들도 1차로 일만 명 양성을 거의 끝내놓고 있고, 2차도 인선에 들어가 있습니다.”
―호, 그렇소? 일만의 교사들이라……. 백성들을 교화시키려고 그렇게 애를 쓰다니, 아주 잘한 일이오. 잘했소.
장준하가 다시 말했다.
“함경도에 주둔해 있는 사단 병력은 이미 함경도 장악을 끝냈습니다. 그곳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조가 말했다.
―참으로 잘했소. 가온군의 기강이 엄정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소. 아직 조정의 그 누구도 함경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신하들이 없소.
“그럴 것이옵니다. 함경도는 다른 곳과 달리 백성들이 통행할 도로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길목만 잘 지키면 험준한 산악을 굳이 넘어가면서까지 함경도에 있는 일을 전할 사람은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기 위해 이미 불순분자들은 모조리 색출해 놓았습니다.”
―잘했소.
장준하가 다시 말했다.
“지금부터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부디 옥체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신, 창덕궁에서 전하께 가온군과 함께 인사를 올릴 때를 기다리겠사옵니다.”
―걱정 마시오. 내 어떤 일이 있어도 조선이 천하대국으로 일어설 때까지 살아 있을 것이오.
“그러셔야 합니다. 반드시 전하를 천하대국의 제위에 오르도록 해드리겠습니다.”
―허허, 제위(帝位)라.
장준하가 말했다.
“전하,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신,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약속드리겠습니다.”
정조가 말했다.
―위국공.
“예, 전하.”
―과인은 제위에는 별 미련이 없소. 하지만 원자와 우리 백성들에게 더 이상 조공국으로서의 설움은 물려주고 싶지 않소.
장준하가 말했다.
“신뿐이 아니라 우리 가온 친위군 전부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목표를 완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과인은 공을 믿소.
“믿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일의 전개 상황은 수시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알겠소. 고맙소.
장준하가 본론을 말했다.
“내일 통신사가 떠난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정조가 대답했다.
―그렇소. 드디어 내일이오.
“전하의 치세에 첫 통신사입니다.”
―허허, 그렇구려. 잘 다녀와야 할 터인데.
“전하의 성심을 알고 있으니 잘해낼 것입니다.”
―하긴, 박지원 정사는 연경에도 다녀온 경험이 있으니 잘해낼 것이라 믿소. 그런데 이번에는 뱃길로 간다고요?
“그렇습니다. 마포에서 배를 타고 바로 황해로 나가 외양에서 배를 갈아탈 예정입니다.”
정조는 지난번 자신이 보았던 마라도함이 생각이 났다. 정조가 말했다.
―하긴, 지난번 본 그 함정 같으면 오히려 육로보다 더 편할 것이오.
“그렇습니다. 육로는 인원이 많아 시간도 많이 걸리고 중간에 들르는 고을에 피해를 줄 수도 있어 아예 해로로 길을 잡게 하였습니다.”
―잘하였소.
두 사람은 그렇게 통신사 문제를 주고받고는 교신을 마쳤다.
다음 날이 되었다.
이번의 통신사의 전송은 대궐이 아닌 마포나루에서 이루어졌다.
정조가 이를 위해 친히 마포나루까지 거둥하였다.
“주상 전하, 신 박지원 다녀오겠사옵니다.”
정조가 말했다.
“먼 길이오. 몸조심하고 잘 다녀오기 바라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정조는 파격적으로 정사와 부사 종사관과 제술관의 손을 일일이 잡고는 무사함을 빌어주었다.
이러한 파격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뒤를 따라온 대신들이 웅성거릴 정도의 파격을 보인 정조가 뒤에 있는 수행원들을 보고 말했다.
“너희들도 몸 성히 잘 다녀오거라.”
그러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는 소리쳤다. 한 사람이 선창을 했다.
“주상 전하의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러자 일제히 모든 사람들이 합창을 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정조가 그 모습을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맙도다, 과인의 백성들아.”
정조에게 인사를 마친 것을 보고는 박승호가 군인답게 바로 절도 있게 지시를 했다.
“모두 질서 있게 승선을 하라. 시작하라.”
그러자 수행원들이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정조는 그들이 모두 배에 오를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모든 사람들이 배에 오르자 박지원이 말했다.
“전하, 신 이제 떠나야 하옵니다.”
“연암, 부디 몸조심하시오.”
정조의 거듭된 당부에 박지원이 대답했다.
“전하의 하교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배에 올랐다.
박지원이 배에 오르자 박승호 소령이 다시 소리쳤다.
“승선을 마쳤으니 출항하라.”
그러자 각 배에서는 일제히 소리가 들려왔다.
“영차.”
“영차.”
사람을 태운 조운선이 서서히 나루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박승호의 배가 가장 늦게 출발을 했다.
출발을 하는 배의 선미(船尾)에선 박승호가 차렷 자세를 취하며 정조에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정조가 그 모습을 보고는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해주었다.
경례를 마친 박승호가 인원 파악을 위해 몸을 돌렸다.
정조는 그렇게 배가 한강을 타고 내려가 행주산성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1794. 9. 1. 제주도.
8월 말이 되자 제주에는 각지의 병력이 모두 집결을 하였다.
모여진 병력은 남부군에서 가야 1사단, 북미의 고구려 1사단, 동부군의 백제 1사단, 그리고 북부군인 연해주군과 중부군에서는 본부 사단이었고, 본래 가온의 특수군 병력도 포함된 10만에 가까운 병력이 집결되어 있었다.
이들을 위해 지난 6월부터는 제주 주민 훈련소를 임시 부대 막사로 사용하기 위해 주민 교육 전부를 연해주로 이관하여 실시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제주도의 각지에는 이들이 머물 가설 시설물들이 도처에 건설되어 있었다.
장준하가 임시 지휘부로 사용하고 있는 제주 주민 훈련소로 갔다.
“충! 성!”
훈련소의 정문위병이 장준하가 탄 차를 알아보고 군례를 올렸다.
10여 대의 차가 본부 건물에 차를 세우자 정문 앞에는 이미 이형구 대장을 비롯한 제병부대장이 모두 나와 장준하를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10여 대의 차에는 최성용을 비롯해 약간의 민간인들과 해군의 주요 지휘관들이 타고 있었다.
“충! 성! 어서 오십시오.”
이형구 합참의장이 모두를 대표하여 인사를 했다.
“충성. 그래, 고생들이 많네.”
장준하가 답례를 하였다.
“들어가십시오. 안내를 하겠습니다.”
“음, 그러지.”
장준하는 이형구 의장의 안내를 받으며 본부 건물 안에 있는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중앙에 앉은 장준하가 모두를 보고 말했다.
“드디어 그동안 기다리던 본토 상륙 작전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회의는 그동안의 준비 상황을 최종적으로 점검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형구 합참의장.”
“예, 합하.”
이형구가 가장 먼저 발언을 시작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지 벌써 5년차입니다. 예상했던 시기보다 5년이나 앞당겨 조선에 진출하는 만큼 준비가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떤 작전이든 늘 시간에 쫓기고 시간이 부족한 것은 똑같습니다. 오늘은 작전 개시 마지막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입니다. 각 부대별 상황을 정확히 보고해 주기 바랍니다.”
이형구의 말이 끝나자 각 부대별로 상황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가야 사단, 고구려 사단, 그리고 백제 사단이 순차적으로 보고하였고 연해주군의 1사단과 2사단 11여단, 중부군 본부 사단 사단장의 보고가 있었다.
다음으로 중부군 사령관이며 가온군 부대장인 이기형 소장의 보고를 끝으로 각 부대의 보고를 모두 마쳤다.
이형구가 말했다.
“모든 부대의 준비가 잘 갖춰진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지금부터는 본토 상륙 작전에 관한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합참 참모장인 정병국 소장의 작전 설명이 있겠습니다.
이형구의 말이 끝나자 한 사람이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합참 참모장 정병국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을 모시고 설명을 드리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정병국은 인사를 마치고는 곧바로 설명에 들어갔다.
탁.
정병국이 자신의 컴퓨터의 엔터키를 누르자 그의 뒤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지난 시대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군 전산 시스템이 켜지며 정병국의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던 가온군의 표시인 둥근 원 안에 비상하는 삼족오가 곧바로 보였다.
정병국이 그 삼족오를 잠시 바라보다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전체 작전에 대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작전 계획은 1년여간 저희 합동 참모회의 참모 본부에서 각 예하 부대의 상황을 종합 분석하고 수십 번의 도상 훈련(圖上訓練)과 슈퍼컴퓨터의 상황 분석까지 마친 것입니다.”
정병국은 그러면서 화면을 조선 반도로 바꾸었다.
“먼저 부대별 투입 사항입니다. 먼저 평안도는 북부군 1사단 황해도는 2사단, 그리고 강원도는 11여단이 투입됩니다. 그리고 먼저 청진을 통해 들어가 있는 중부군의 함경도 사단을 예하에 두고 평양에 군사령부를 둡니다.”
그러자 연해주 총독이자 북부군 사령관인 김진만 중장이 일어나 인사를 했다.
다른 부대와 달리 예비 사단을 남겨두고 전군이 투입된 북부군은 총독인 김진만이 직접 부대를 인솔하고 들어왔다.
정병국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경상도는 가야 사단으로 대구에 사단 본부를 둡니다. 다음으로 전라도는 백제 사단으로 전주에 사단 본부를 둡니다. 그리고 충청도는 고구려 사단이 투입되며 충주에 사단 본부를 둡니다.”
각 부대가 호명될 때마다 사단장이나 여단장이 일어나 일일이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모두들 그들에게 박수는 보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더한 응원을 보내주었다.
참모장 정병국이 가장 중요한 한성과 경기도에 대한 작전 계획을 설명했다.
“경기도 지역은 지금 수원에 들어가 있는 수원 여단이 그대로 투입되며, 한성은 우리 가온군이 직접 투입됩니다.”
그러면서 정병국은 다음 화면으로 바꾸었다.
“지금 보시는 항공 사진은 지금 시대 한성 일대의 사진입니다. 금년 초부터 우리 참모 본부에서는 거의 매일 허큘리스를 띄워 전 조선을 정밀 항공 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각 부대장님들께 지금 나눠 드리는 책자와 지도는 이 항공 사진을 바탕으로 저희 참모 본부가 직접 작성한 작전 지도입니다.”
정병국의 말이 끝나자 대기하고 있던 참모 본부 소속 장교들이 도판으로 된 대형 책자를 각 부대장들에게 배포를 하였다.
관심이 있는 부대장들은 도판을 받아보자 바로 펼쳐보았다.
“이야, 잘 만들었네.”
“이 정도면 얼마나 정성을 들인 거야?”
“참모 본부장, 대단하오.”
“고맙습니다.”
그러자 김진만 총독이 말을 했다.
“우리 고생한 참모 본부를 격려하는 의미에서 박수를 쳐줍시다.”
짝짝짝짝짝!
“그래, 참모 본부. 수고했어.”
부대장들의 박수는 우레와 같았고, 저마다 한마디씩 칭찬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장준하도 말을 했다.
그의 책상 앞에도 대형 도판이 놓여 있었다.
“정 장군, 대단해. 굳이 나한테까지 이렇게 준비를 다 해주고.”
“아닙니다. 합하께 먼저 드려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장준하의 책상에는 한성 일대의 작전 지도가 놓여져 있었다.
이들 지휘관들이 감탄을 한 것은 도판의 좌우로 항공 사진과 작전 지도를 동시에 볼 수 있도록 제작이 되어 있었고, 더구나 항공 사진은 수십 장이 겹쳐 있어 필요한 부분을 바로 뽑아 볼 수 있도록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 지휘관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병국이 말했다.
“칭찬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항공 사진은 각 사단별로 작전에 용이하도록 별도로 다시 드릴 것입니다.”
김진만 총독이 항공 사진을 들어 보며 말했다.
“지금의 지형은 이전과 달라 그렇지 않아도 생소한 지형이라 많은 고심을 했었는데, 이 항공 사진은 부대 작전 전개에 아주 큰 도움이 되겠네. 고맙네, 정 장군.”
“그렇습니다. 지금 말이 본토지 사실 우리 가온군에게는 지금 조선의 지형은 처음 보는 지형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한 사람은 가야 사단장 이은성 대령이었다.
아직까지 가온군은 대령이 사단장일 정도로 고급 간부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이은성 대령의 말에 모두들 공감을 표시했다.
참모장 정병국이 말했다.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 참모 본부에서 항공 사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였으니, 부하들에게 남은 기간 충분히 숙지하도록 지시를 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성 일대에 투입되는 가온군의 작전 개요입니다.”
정병국은 그러면서 가온군이 투입되는 작전에 대한 설명을 상세히 해주었다.
모든 설명이 끝이 나자 이번에는 누가 말을 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참석자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짝짝짝짝짝짝!
그만큼 정병국의 작전 계획은 생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합참의장 이형구가 말했다.
“과연 참모장이네. 정 장군, 정말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각하.”
이형구가 일어서서 말을 했다.
“우리는 조선에 진군하는 것을 적을 제압하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들어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형구가 그러면서 모두를 돌아봤다.
지휘관들이 결의를 다지는 것이 이형구의 눈에 바로 들어왔다.
그것을 보고 이형구가 말했다.
“작전은 한성의 작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시작이 되느니 만큼 한 치의 오차나 착오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민간인에 대한 실탄 사격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무장한 반군들이나 폭도들도 되도록 최소한의 인명 피해가 나도록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가온군 조선 병사들의 제식 소총은 전부 아카보 총(AK 소총의 개량형)이었고, 가온군의 제식 소총은 가-둘(K-2) 소총이었다.
가온군이 가-둘(K-2) 소총을 제식 소총으로 한 까닭은 총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순전히 몸에 익은 탓이 더 컸다.
총을 막 다루기는 부품이 단순하고 고장이 거의 없는 아카보 총이 그 어느 총보다 우수했다.
그러다 보니 일반 사병들과 부사관들은 아카보 총을, 위관급 이상 간부들은 가-둘 소총이 제식 소총이 된 형국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아카보 총의 총구를 총알을 같이 쓰기 위해 가-둘 소총과 같이 5.56㎜로 했기 때문에, 비록 이전 시대와 같은 관통력은 뒤질지 모르지만 반동이 아주 적어져 체구가 작은 조선인의 체형에 더 잘 어울렸다.
이형구 대장이 말했다.
“지금까지의 작전 계획대로만 되면 큰 문제는 없으니 각 부대장은 예하 지휘관들의 정신 교육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각 부대 지휘관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윽고 최성용이 일어났다.
“부관, 그것을 가져오게.”
그 말에 대기하고 있던 부관 배반식이 가져온 상자들을 각 부대장들 앞에 놓았다.
“모두 열어보기 바랍니다.”
최성용의 지시로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교지가 들어 있었다.
“지금 이것은 원본입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칼라로 복사된 교지를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복사본은 관보 게시판에 일제히 게시를 하고, 원본은 각 고을의 수령방백에게 직접 전해주시면 됩니다. 교지에는 모두 각각의 고을 지명이 쓰여 있으니 이 점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최성용의 말대로 교지에는 각 고을의 지명과 함께 동일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최성용이 다시 말을 했다.
“지금 보고 계신 교지의 하단에는 정조의 친필 날인이 전부 되어 있습니다. 이 수백 장의 교지를 일일이 날인하여 넘겨준 정조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최성용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지휘관들은 정조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최성용이 말했다.
“작전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마쳐야 합니다. 그래야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최성용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민간인 중에서 한 사람이 일어났다. 국정원장 신경식이었다.
“국정원장 신경식입니다.”
신경식이 인사를 마치자 또 한 권의 서류가 분배되었다.
분배를 마치는 것을 본 신경식이 말했다.
“지금 나눠 드린 서류는 각 지방의 요주의 인물들에 대한 국정원 요원들의 조사 보고서입니다.”
그 말에 모두가 서류를 넘겨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이름 위에 붉은 네모가 쳐진 사람들은 반드시 체포를 해야 합니다. 반항하는 경우 사살해도 무방합니다.”
신경식의 말에 약간의 술렁임이 있었다.
처음으로 사살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신경식이 말했다.
“그들은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는 탐관오리들이거나 각 지역에 세거하며 조정의 정책에 반대는 물론 필요한 경우에 따라서는 역모도 불사할 정도의 인물들입니다.”
신경식의 설명에 지휘관들은 굳은 표정으로 책장을 넘겼다.
이은성 사단장이 물었다.
“이렇게나 많은 수입니까?”
신경식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것도 추리고 추린 숫자입니다.”
그 말에 지휘관들이 또 웅성거렸다.
신경식이 그것을 무시하고 다시 말했다.
“다음으로 밑줄만 붉은 줄이 쳐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요주의 인물이니 철저한 감시를 해야 합니다. 특히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 아주 감시를 잘하셔야 합니다. 그들은 지역에 명망은 있으나 너무 외골수라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사람이거나 매사에 조정의 정책에 반대만 일삼는 불평분자들입니다.”
그렇게 신경식이 책자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했다. 한참의 설명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마침내 장준하가 일어섰다.
그것을 본 지휘관들이 모두 부동자세를 취했다.
장준하가 지휘관들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그동안 고생들이 많았다. 이제 그 고생의 결실을 거둘 때이다. 이 작전의 작전명은.”
그러면서 장준하가 지휘관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상량식(上梁式)이다. 모든 집을 지을 때 들보에서 가장 중요한 가운데 보를 얹으며 상량식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집을 짓는 심정으로 이번 작전을 수행하여야 한다. 귀관들, 잘 부탁한다.”
그러면서 장준하가 머리에 쓴 모자를 벗고는 허리를 깊이 숙여 지휘관들에게 절을 했다.
순간 지휘관들은 자신들도 모자를 벗고는 장준하를 보고 절을 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허리를 숙여 절을 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모두가 몸을 일으키자 장준하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다. 모두 몸 성히 다시 만나자. 알겠나?”
그러자 모든 지휘관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만세 삼창으로 이번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제가 선창을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최성용이 소리쳤다.
“대한 제국 만세!”
그러자 참석자들 전원이 외쳤다.
“대한 제국 만세!”
최성용이 다시 선창했다.
“천손 민족 만세!”
“천손 민족 만세!”
“만만세!”
“만만세!”
“이야~!”
“이야아~!”
엄청난 환호였다.
그동안 가슴에 품은 응어리를 뱉어버리는 양 지휘관들은 엄청난 목소리를 토해내었다.
그동안 지휘관으로서 참았던 소리를 맘껏 내지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장준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아니, 장준하가 지휘관 중 가장 큰 소리를 내질렀는지도 몰랐다.
만세 삼창과 함성을 내지르고는 모든 지휘관들이 돌아갔다.
장준하는 일일이 그들의 손을 잡아주며 격려를 하였다.
지휘관들이 돌아가고 얼마 동안은 각 부대 지휘부의 불빛이 밤늦도록 꺼지지 않았었다.
이들의 제주도 주둔은 그 후 한 달여간 계속되었다.
제주도에 주둔하는 동안 항해를 해오는 동안의 처졌던 체력도 회복하고 부여받은 임무를 숙지하기 위해 연일 한라산 부근을 오르고 내리며 강훈련들이었다.
이들의 함성으로 제주도 전역이 훈련장이 되었다.
1794. 9. 10. 한성 상공.
우웅~!
C-130 수송기 허큘리스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한성 상공에 도착을 했다.
“어? 저게 뭐지?”
“새 아냐?”
“새가 저렇게 높게 나나?”
“그런데 이 소리는 뭐지?”
“그래, ‘우웅’ 하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리네? 이 소리가 뭐지?”
한성의 백성들이 허큘리스를 보고 있는 사이 허큘리스는 무언가를 떨어트리고는 바로 기수를 돌렸다.
“저게 돌아가네?”
“에이, 그럼 새가 맞네.”
“그런데 저게 뭐지?”
“뭐라니?”
“아니? 새가 뭐를 싸고 간 것 같은데?”
“새가 뭘 싸기는 뭘 싸? 새똥이겠지.”
“그런가.”
백성들이 그렇게 말을 주고받으며 관심이 멀어져 갈 때였다.
잠시 후 한성의 하늘은 온통 전단으로 뒤덮였다.
“어? 하늘에 종이가 날린다.”
“무슨 종이지?”
전단이 바닥에 떨어지자 백성들이 너도 나도 종이를 주웠다.
“이게 무슨 글이지?”
“잠시 기다려, 내가 읽어줄게. 흠흠, 조선의 백성에게 고함. 음? 우리한테 말한다는 글인데?”
“그래? 어서 읽어봐.”
그러자 그 사람의 주위로 손에 종이를 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794. 9. 10. 창덕궁 선정전.
“이게 무엇인가?”
정조의 물음에 도승지 이조원이 대답을 했다.
“지금 한성 일대에 뿌려진 전단입니다.”
“누가 뿌렸는지 아는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하옵니다.”
“뭐라? 하늘에서?”
“예, 그렇습니다. 창덕궁에도 이 전단이 온통 뿌려져서 내관들과 여관들이 이 전단을 줍는다고 한바탕 소동을 부렸다고 하옵니다.”
이조원의 말에 기가 찼지만 내심 짐작하는 바가 있어 더 묻지 않고 전단을 들여다보았다.
<-서체 시작
조선 백성에게 고함.
조선 백성들은 들어라.
지금 조선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해 있다.
조정은 권문세가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고, 영명하신 주상 전하는 그들과 싸워가며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계시다.
조정의 권신들은 자신들 당파의 이익을 위해서 백성들은 물론 국가의 안위조차 도외시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시행해 온 탕평책도 이러한 권신들의 반대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는 주상 전하께서 개혁을 하시려고 해도 번번이 이들의 보이지 않는 거부로 제대로 시행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일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다.
<-서체 끝
이렇게 시작된 글은 마지막에 하늘이 그들을 반드시 벌한다는 내용과 이 글은 하늘에서 내리는 글이라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정조가 물었다.
“정말 이 글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이오?”
도승지가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있어 감히 이 넓은 대궐에 이런 전단을 동시에 뿌릴 수가 있겠사옵니까? 내관들 중에 하늘에서 뿌려졌다는 것을 증언하는 자들도 상당수 있다고 하옵니다.”
도승지의 말을 들은 정조는 겉으로는 심각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가온이 작전을 시작했다는 것을 짐작했다.
정조가 읽어봐도 손에 있는 글은 가슴이 후련할 정도로 통쾌하게 권신들을 비판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단은 하루 두 차례씩 뿌려졌다.
처음에는 별일 아닌 일로 치부하려던 권신들도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신들도 직접 하늘에서 전단이 뿌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들은 모여 여러 차례 회합을 가졌지만 하늘에서 뿌려지는 전단을 막을 길이 없었다.
전단은 날이 갈수록 권신들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노골적이 되었다.
그렇게 되자 백성들 사이에서도 누구의 짓인지는 모르지만 권신들이 모여 사는 북촌에 오물이 던져지는 일이 종종 발생하였다.
달라진 것은 또 있었다.
이전 같으면 대신들이 지나가는 길을 하인이 길을 비키라고 소리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길을 비키거나 부복을 하던 것이, 이제는 대신들에게 조금씩 흘낏거리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성의 분위기는 점점 뭔가 터질 듯한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었고, 조정의 대신들도 뭔지 모를 위기감에 전전긍긍해하고 있었다.
한성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지자 시류와 담을 쌓고 날마다 색주가를 찾던 한량들의 발걸음도 급격히 줄어들어 밤이 되면 도성 전체가 조용해질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정조는 전단이 뿌려진 후 곧바로 장준하와 통화를 하여 일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자 정조는 대신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되었다.
1794. 9. 20. 한성의 남산.
일단의 사람들이 남산 기슭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쪽은 어떻게 되었나?”
“다되어 갑니다.”
“이걸 한성 사람들 모두가 볼 수 있을까?”
“특수 영상이라 가능할 것입니다.”
“나머지도 잘 보여야 할 텐데 걱정이군.”
“충분히 잘 보일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들은 특수 효과 팀이었다.
드디어 2차 작전이 시작되었다.
“자, 빨리하고 철수하자.”
조장이 이렇게 말을 하자 다른 사람들의 손이 조금 빨라졌다.
잠시 후 장비를 모두 설치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밤이 되었다.
우르르르릉~ 쿵쾅!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집이 흔들릴 정도였다.
큰 소리는 한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릴 정도였다.
창덕궁에 있던 정조도 놀랄 정도였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저~ 저~ 전하.”
상선 강진구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왔다.
정조가 목소리가 떨리는 상선에게 나무라듯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호들갑인가?”
정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르르릉~ 꽈릉!
“으악!”
“끼약!”
상궁 중 그 소리에 놀란 두 명이 뒤로 벌렁 자빠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정조가 다시 큰 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상선의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더욱 크게 들려왔다.
“전, 전, 전하~ 잠시 밖으로 거둥을 하시옵소서.”
“으악! 저게 뭐야?”
차분한 성격의 상선이 목소리를 심하게 떨며 말을 하고, 천둥 같은 엄청난 소리가 들리며, 여관들의 비명 소리가 속출하자 궁금한 정조가 선정전 밖으로 나섰다.
“으윽!”
정조도 너무 놀라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그것은 창덕궁 후원 방면에서 어마어마한 청룡포를 입은 사람의 형상이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창덕궁을 내려다보고 있던 어떤 시선이 헤드셋으로 지시를 했다.
“나왔다. 시작해.”
지시가 있자마자 그 형상이 입을 크게 벌렸다.
우르르르릉~ 꽈릉!
“으악!”
“까악!”
“사람 살려!”
난리도 아니었다. 내관들은 그나마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한둘밖에는 없었지만, 여관들은 그게 아니었다.
몇 명은 이미 실신을 하였고, 몇 명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고, 또 몇 명은 고개를 땅에 처박고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쪽을 봐라!”
정조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숭례문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곳에도 거대한 형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 형상은 곤룡포를 입은 형상이었다.
그때 내시가 소리쳤다.
“이번에는 목멱산(남산)이다.”
그러자 모두가 남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도 곤룡포를 입은 거대한 형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또다시 내시가 소리쳤다.
“으악! 저 흥인지문을 봐라.”
정조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흥인지문(동대문)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도 역시 곤룡포를 입은 거대한 형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다시 북방에 있는 청룡포를 입은 형상의 입에서 온몸이 떨릴 듯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네 형상이 동시에 입을 벌린 것이다.
우르르르릉~ 꽈릉!
우르르르릉~ 꽈릉!
우르르르릉~ 꽈릉!
우르르르릉~ 꽈릉!
어마어마한 소리였다.
정조가 그 소리에 놀라 다리가 후들거려 그대로 서 있을 수 없어 선정전 기둥을 잡고 간신히 섰다.
그 순간 정조가 청룡포를 입은 형상을 바라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아앗! 저분은?”
그랬다. 청룡포를 입은 사람은 태조 대왕이었다.
정조가 고개를 숭례문 쪽으로 돌리며 소리쳤다.
“아! 세종 대왕이시다.”
그러자 정조의 몸이 자동으로 돌아갔다.
남산에 있는 형상 보고 소리쳤다.
“아! 효종 대왕이시다.”
이번에도 정조가 소리쳤다.
“아! 할바마마.”
흥인지문 위에 떠 있는 형상은 영종(영조)이었다.
이들의 형상은 엄청나게 컸다.
그 크기가 무려 십여 미터 이상이었다.
그것도 상반신만 보이는 형상이니 가히 상상이 안 될 크기였다.
이미 도성에 있는 모든 백성들은 물론이고 도성 밖에 있는 모든 백성들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잠시 지상을 내려다보던 형상 중 청룡포를 입은 형상이 말을 했다.
―과인은 이 나라를 건국한 태조니라.
엄청난 크기의 소리였다.
한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정도였다.
그 소리에 놀라 기절을 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였고, 어린아이들이 형상을 보고 무서워하며 도처에서 울부짖었다.
정조가 그 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대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이러한 현상은 대궐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한성의 모든 곳에서 거의 모든 백성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태조 이성계가 그것을 내려다보고는 말했다.
―그래, 맞다. 당연히 무릎을 꿇어야 하느니라. 과인이 바로 태조니라.
한성의 모든 사람들은 형상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줄 착각하고는 나머지 사람들도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
다시 태조 이성계의 형상이 말했다.
―과인이 나라를 건국한 지 400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의 후손들이 많은 어려움에도 나라를 잘 이끌어왔고, 불쌍한 백성들도 어렵지만 잘살아 주어서 과인은 너무도 고맙도다.
“망극하옵니다.”
“황공하옵니다.”
정조는 물론 한성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태조 형상을 보고 부르짖었다.
다시 태조 이성계의 형상이 말했다.
―과인이 그동안 천계에 있으면서 우리 조선이 잘되기를 빌고 빌었는데, 요즘의 작태가 한심하여 여기 세 명의 후손들을 대동하고 현신한 것이다.”
그러자 나머지 세 곳에 있던 형상들이 동시에 부르짖었다.
―네 이놈들~!!
“으악!”
“아이고.”
“저는 아닙니다.”
난리도 아니었다.
대궐에 있는 내관과 여관들은 물론 대궐 밖에 있는 수많은 백성들이 갑자기 사방에서 들려온 호통 소리에 기겁을 했다.
특히 남방의 효종 대왕의 현신이 대부분이 모여 사는 북촌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들!
우르르릉!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땅이 울릴 정도였다.
처음에는 누구를 지칭하고 고함을 지르는지 아무도 몰랐다.
또다시 효종 대왕의 형상이 큰 소리를 냈다.
―네 이놈들!
우르르릉!
눈동자 하나가 거의 사람 하나 정도 크기의 형상이 한 곳을 바라보자, 곧 어디를 바라보는지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북촌을 바라보신다!”
“그래! 북촌이다!”
그렇게 되자 수많은 백성들의 시선이 북촌 방향으로 쏠렸다.
―네놈들이 우암(尤庵, 송시열)의 잔당들이로구나.
그러자 조선의 최고 권력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북촌에서는 도처에서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헉!”
“으윽!”
대부분 자신의 집에 혼자 있다 당한 일이라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그들의 반응은 일반 백성들보다도 더 확실하게 나타났다.
효종 대왕의 현신이 다시 말했다.
―네놈들은 과인이 평생을 고심하던 북벌(北伐)에 대한 꿈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지?
우르르릉!
사방이 울렸다. 그러면서 효종은 눈을 깜빡였다.
감았다 뜨는 눈에서는 살기가 나오는 듯했다.
솔직히 북촌을 노려보는 효종 대왕의 시선은 무서웠다.
다시 그 형상이 부르짖었다.
―어떤 놈이 과인의 꿈을 팔아먹는 놈이냐?
그러면서 그 형상이 북촌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 형상이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네놈이냐!
꽈광!
북촌의 어느 한 집에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건물이 폭발했다.
다시 또 형상이 손을 들면서 소리쳤다.
―네놈이냐!
꽈광!
또다시 건물이 폭발했다.
“으악!”
“악!”
이번에는 사람들이 폭발의 여파로 죽고 다쳤는지 비명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북촌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동네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음과 비명 소리에 혼비백산했다.
“피해라!”
“으악! 여기를 노린다!”
“마마, 살려주시옵소서.”
쾅!
“도망쳐라.”
어느 집인가 대문이 부서지면서 사람들이 집에서 쏟아져 나왔다.
효종 대왕이 소리쳤다.
―과인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운 네놈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천벌이 얼마나 무서운지 네놈들은 두고두고 후회를 할 것이다.
효종대왕의 현신이 이렇게 말을 하자 한성의 어느 곳에서는 오히려 환호가 터져 나왔다.
효종이 다시 말했다.
―하늘의 천벌이 네놈들에게 떨어질 것이다.
우르르릉!
효종대왕의 현신이 이렇게 부르짖자 북촌의 노론 대신들은 물론 한성의 모든 사람들의 등줄기가 섬뜩해졌다.
혹시 그 천벌이 자신에게 떨어질지 몰라서였다.
곧이어 영조 대왕의 형상이 소리쳤다.
그 형상은 단 한마디만 했다.
―과인이 50년을 넘게 탕평을 편 것이 고작 이것이냐!
우르르릉!
세 왕이 돌아가면서 호통을 치자 북촌의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심장이 튼튼하더라도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태조의 현신이 다시 소리쳤다.
―나라를 좀먹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거나,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놈들은 내 반드시 하늘의 벌로 그자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무장이었던 태조가 그렇게 말을 하며 한성을 훑어보자 그 효과는 장난이 아니었다.
호안(虎眼)의 그 큰 눈으로 사방을 훑어보자 모든 사람들이 주눅 들기에 충분했다.
한바탕 사방을 훑어본 태조가 말했다.
―명심해라. 천벌을 내릴 것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형상이 흐트러졌다.
다시 또 태조가 말했다.
―명심해라. 천벌을 내릴 것이다.
서서히 형상이 흐려져 가며 계속 이 소리가 반복되었다.
팍!
그러다가 어느 순간 형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는 그 잔상이 한참 동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이 당시 사람들이 동서남북 네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형상을 보는 것은 가히 충격이었다.
여기에 태조를 비롯한 선왕들의 형상이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정조도 큰 충격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침소로 갈 정도였다.
특수 효과 팀이 상당 기간 준비한 덕에 이들의 형상은 좌도도보다 몇 배나 컸다.
특히 북한산에 마련한 태조 형상은 그 크기가 다른 형상들을 압도했다.
그리고 연출을 위해 북촌의 권문세가의 집에는 이미 도처에 폭약을 묻어 놓았었다.
다음 날 한성은 난리가 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형상을 봤지만 보지 못한 사람들도 상당수 있어서 그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고 자신의 느낌을 말하느라 모든 일이 마미될 정도였다.
어느 집이 어제 폭삭 주저앉았다느니, 누가 죽었다느니, 그동안 자신들을 괴롭히던 양반들이 천벌을 받을 거라는 둥 하루 종일 도성이 시끄러웠다.
이러한 현상은 관리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어제 보았는가?”
“그래, 나도 섬뜩하더군.”
“우리가 그렇게 잘못했는가?”
“무슨 소리.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권리를 주장한 것뿐일세.”
“그래도 어제 그 말을 듣고 나니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겠더군.”
“하긴, 그분들이 현신(現身)하실 줄 누가 알았겠나.”
“뭔가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닌가? 얼마 동안은 하늘에서 괴문서가 날리더니, 이게 뭔가?”
“그래, 맞아. 요사이 도대체가 이상한 일 천지군.”
“아, 어제는 솔직히 오싹했네.”
“그런가? 나도 등골이 서늘했어.”
관리들이 이렇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나왔다.
“어제 봤는가?”
“그렇습니다.”
“허어, 그거 참.”
젊은 관리들은 그래도 자신의 속내를 보여도 되기 때문에 그나마 나았다.
대신들도 삼삼오오 모여 어제의 일을 말했지만 그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조정에서도 공론에 부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형상들이 바로 자신들을 지칭했기 때문이었다.
혹여 말을 하다 자신들의 속내를 들킬 것 같아 더 쉬쉬하고 있었다.
이날은 그래도 조용했다.
다음 날 밤에도 똑같이 형상들이 현신하여 한바탕 소란을 벌이자 술렁임이 더 심각해졌다.
사흘째 되는 날이 되자 드디어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승정원에는 하나둘 사직 상소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북촌에도 한 집 두 집 소리 없이 짐을 싸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나흘째 되는 날에는 그 수가 더 늘더니, 닷새째 되는 날은 거의 봇물이었다.
조정의 신하들의 사직 상소는 산을 이루었고, 조금이라도 뒤가 구린 사람들은 서둘러 한성을 벗어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 장용영 병력이 모든 성문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들이 전부 도성 문을 나서는 순간 모조리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모조리 은밀하게 여의도로 끌려갔다.
형상은 오 일간 나타나고는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백성들이나 조정 대신들의 마음에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노론들은 이러한 일로 연일 대책 회의를 가졌지만 하늘에서 벌을 주는 것으로 인식한 상태에서는 어떠한 대책도 나오지 못했다.
연일 북촌을 비롯하여 권력에 기생하던 자들이나 그동안 권력에 빌붙어 살던 사람들, 그리고 조정의 일부 신하들도 이 도주 대열에 동참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도성 문을 벗어나는 순간 체포되기는 매한가지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때 체포되었다. 그리고 누구도 모르게 여의도로 모조리 압송되었다.
하지만 아직 권력의 최상층에 있는 사람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시간이 약이 되듯 오 일의 시간이 지나자 이러한 현상도 조금씩 잦아들어 갔다.
이 열흘간 정조도 대신들도 일체 이 현상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정조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가온군이 작전을 시작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아 분란을 만들지 않으려고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라 더더욱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한성일보는 연일 호외를 발행하며 당파 싸움만 하는 조정을 질책하고 있었다.
입을 다물고 있는 관리들과 달리 한성의 백성들은 시끄러웠다.
곧 무슨 일인가 벌일 기세로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백성들은 나라가 이렇게 계속 어수선한데 우리가 이대로 좌시하면 안 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할 정도였고, 대자보도 도처에 나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론이 들끓고 있을 때, 드디어 작전 개시일이 되었다.
1794. 9. 30. 05:00 한성.
그믐날 달도 없는 새벽이었다.
우웅~
한성의 밤하늘에 조용한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특수군을 실은 비행선이었다.
비행선의 내부는 아주 조용했다. 얼마나 조용했는지 기장이 실내 방송으로 안내를 할 정도였다.
한 대의 비행선에는 화물칸에까지 병력을 실어 300명씩의 인원이 탑승하였다.
“목표 상공 도착 10분 전.”
“목표 상공 도착 10분 전.”
삐. 삐. 삐.
101금강호 비행선 기장의 목소리가 실내 방송을 통해 들려오자 비행기 실내에 빨간 불이 삐삐 소리를 내며 켜졌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특수군의 헤드셋도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선임 장교가 소리쳤다.
“전원 낙하 준비.”
“낙하 준비.”
그러자 앉아 있던 장병들이 복창을 하고 모두 일어나 안전선에 안전 고리를 걸었다.
철컥. 철컥.
잠시 후 지상에서 신호탄의 불빛이 올라왔다.
기장이 다시 말했다.
“목표 지점 포착.”
그러자 선임 장교가 다시 지시를 했다.
“다시 한 번 장비를 점검하라.”
선임 장교의 지시가 있자 모든 장병들이 장비 점검을 하였다.
잠시 후 다시 기장의 소리가 들렸다.
“목표 지점 도착.”
선임 장교가 다시 소리쳤다.
“목표 지점 도착. 문을 개방하라.”
덜컹.
쏴아~
비행선의 양쪽 문이 동시에 개방되었다.
그러자 실내로 엄청난 압력과 함께 바람이 몰아쳐 들어왔다.
잠시 안팎의 공기가 교차하는 것이 지나가자 공기가 조금 안정이 되었다.
그러자 곧바로 선임 장교가 명령을 했다.
“낙하!”
대기하고 있던 장병들이 복창을 하며 순서대로 낙하를 시작했다.
“낙하!”
이 작전을 위해 그동안 가온에서 만든 비행선 10척이 모두 동원되었다.
이번에 낙하하는 특수군은 모두 3,000명이었다.
이들은 각기 지정된 장소에서 낙하를 시작했다.
비행선은 비행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아 낙하산의 안전 고도까지 낮게 비행을 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정밀 낙하가 가능하였고, 이들은 각기 10군데 지정된 곳으로 낙하를 하였다.
특수군이 낙하를 하는 그 시각, 거의 동시에 도성 안에서도 작전이 시작되었다.
여의도에 주둔하던 장용외영 부대와 북한산성의 저격 대대가 며칠 전부터 뒤숭숭한 도성의 분위기를 들어 정조가 특명을 내려 그동안 훈련도감에 머물고 있었다.
하성호 중령이 이들 병력 1,000명을 이끌고 들어와 있었다.
훈련도감군은 결혼한 사람들이 많아 훈련도감 부근과 훈련원이 있는 곳에 밀집되어 거주를 하며 훈련도감으로 통근을 하고 있어서 실제 훈련도감 군영 안에서 숙직하는 병사들은 얼마 없었다.
하성호가 헤드셋으로 지시를 했다.
“각 저격 부대 조장, 목소리 들리나?”
그러자 헤드셋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1번.
―2번.
―3번.
…
총 10명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하성호가 다시 명령을 했다.
“먼저 군영을 장악한다. 시작하라.”
그러자 이들이 머물고 있는 막사의 문이 소리 없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저격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틱. 틱. 틱. 틱.
저격 대대는 전원 헤드셋에 야간에도 전방 투시가 가능한 적외선 망원경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들의 뒤로 장용외영 부대가 같이 동행을 하며 제압된 훈련도감 병사들에게 수갑과 차꼬를 채우기 시작했다.
“누구?”
틱.
“억.”
“누구?”
틱.
“억.”
저격 대대는 훈련도감 병력이 세 마디 말을 못하도록 엄청난 속도로 전진을 하였다.
저격 대대 100명은 일당백의 전사들이었다.
이들의 실력은 이미 좌도섬 점령에서도 충분히 그 위력이 입증되었다.
순식간에 훈련도감이 장악되었다.
아쉽게도 이 작전에 50여 명의 훈련도감 병사들이 사살되었다.
저격 대대는 일발필살이었다.
훈련도감에는 오백여 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병력들은 바로 옆에서 사람이 말도 못하고 죽어 나가자 대부분이 모두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벌벌 떨며 손을 들거나 고개를 땅에 묻고는 움직일 줄 몰랐다.
하성호 중령도 이들의 행동을 보며 속으로 몇 번이고 혀를 찼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겁먹은 행동으로 장용영 병력들이 손쉽게 훈련도감을 장악할 수 있었다.
훈련도감을 장악한 하성호가 바로 다음 명령을 했다.
“훈련도감 군영을 지키는 병력을 제외하고는 지시한 대로 각자 임무를 위해 이동을 실시한다. 이동 중 인명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한다. 자, 시작하라!”
“이동 개시!”
명령을 받은 병력은 모두 8곳으로 분산되었다.
그들은 도성의 4대문과 4소문을 장악하도록 이미 명령을 받았다.
훈련도감이 경희궁 옆에 있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숭례문이 장악되었다.
이 병력은 하성호가 직접 지휘를 했다.
“누구냐?”
틱.
“헉!”
단 한 발의 소음 총으로 성문을 지킨 병사를 사살하고는 하성호가 소리쳤다.
“모두 꼼짝 마라. 움직이면 죽는다.”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모조리 제압되었다.
이런 순식간의 기습은 방어하는 병력이 정병이고 아니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십여 명에 불과한 나약한 병졸들로는 최정예 병력 100명의 기습을 막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순식간에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제압되었다.
하성호는 그것을 보고는 바로 숭례문 성루로 뛰어 올라갔다.
“무전병.”
“여기 있습니다.”
무전병이 내미는 무전기를 들고 하성호가 교신을 시작했다.
“여기는 둥지, 여기는 둥지, 삼족오 하나 나와라. 여기는 둥지, 여기는 둥지, 삼족오 하나 나와라.”
찌직~ 찌~찍!
무전기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잠시 동안 기다리던 하성호가 다시 교신을 했다.
“여기는 둥지, 여기는 둥지, 삼족오 하나 나와라.”
그러자 곧 응답이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여기는 삼족오 하나, 둥지 나와라.
“여기는 둥지. 어떻게 되었나?”
―모두 낙하하였다.
“현 위치는?”
―목표 지점 앞이다.
“알았다. 잠시 대기하라.”
그러자 하성호가 품에서 손전등을 꺼내서 켜고는 전방에 신호를 보냈다.
곧바로 전방에서도 손전등이 켜지고는 답신이 왔다.
하성호가 바로 수화기를 손에 쥐고는 말했다.
“성문을 열겠다. 잠시 대기하라.”
―알겠다.
하성호가 바로 수화기를 내리고는 아래를 보고 소리쳤다.
“성문을 개방하라.”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성문을 열기 시작했다.
삐이걱.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성문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고는 하성호가 다시 전방으로 신호를 보냈다.
깜빡. 깜빡.
그러자 전방에서도 답신이 바로 왔다.
깜빡. 깜빡.
하성호가 답신을 받고는 아래를 보고 소리쳤다.
“삼족오를 영접할 준비를 하라.”
그러자 지시를 받은 병력이 일제히 반으로 나뉘어 성문을 중심으로 둥글게 대형을 유지하고는 모두 전방으로 총을 겨누었다.
척.
잠시 후 숭례문 앞으로 일단의 병력이 달려왔다. 그들은 특수군이었다.
하성호는 그들이 입은 얼룩무늬 군복 덕분에 바로 확인이 가능했다.
지금 새로운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정조의 친위 부대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병력이 순식간에 성문 앞에 집결되었다.
하성호가 이들에게 소리쳤다.
“지휘관은 누굽니까?”
그러자 소령 계급장을 단 한 장교가 뛰어왔다.
“접니다.”
하성호는 그 장교와 악수를 나누고는 말했다.
“잘 왔습니다. 자, 지시받은 대로 이동을 실시하십시오. 여기는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서로 거수경례를 했다.
소령은 바로 뒤돌아서서 명령을 했다.
“작전대로 이동을 실시한다. 곧 여명이다. 최대한 빨리 이동한다. 시작하라.”
그러자 각 중대 중대장들이 자신의 중대를 지휘하기 위해 앞으로 뛰어나왔다
먼저 한 명의 장교가 소리쳤다.
“1중대 속보로 이동한다. 앞으로 가.”
척척척척척!
그러자 다음 중대장도 명령을 했다.
“2중대 속보로 이동한다. 앞으로 가.”
척척척척척!
각 중대 병력들이 미리 지시받은 대로 자신들의 목적지를 향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들은 이미 항공 사진과 지도를 통해 모든 지형지물을 완벽하게 숙지를 해서인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목적지로 향했다.
병력이 모두 출발하는 것을 보고 하성호가 다음 지시를 했다.
“성문 밖에 있는 병사는 모두 안으로 들어와라.”
그러자 50명의 장병들이 신속하게 성문 안으로 이동을 했다.
하성호가 다시 명령을 했다.
“성문에 공고문을 붙이고 문을 닫아라.”
그러자 미리 한 장교가 앞으로 뛰어 나오더니 성문에 공고문을 붙이기 시작했다.
주위가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손전등에 의지한 장교는 곧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삐이이이걱~ 쿵!
마침내 성문이 닫혔다.
하성호는 성문 앞에 늘 준비되어 있던 목책으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관보 게시판과 같이 나무를 세우고는 공고문을 붙였다.
이러한 일은 숭례문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도성에 있는 8개의 성문에서 동시에 일이 벌어졌고, 누구고 실패 없이 순식간에 성문을 장악하고는 바로 특수군을 한성으로 진입시켰다.
모든 일을 마치고 시계를 들여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6시를 향하고 있었다.
아직은 주변에 정적만이 감도는 한밤중이었다.
마침내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늦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왔다.
“무전병!”
“예, 여단장님.”
“각 조에 무전을 넣어라.”
“예, 알겠습니다.”
무전병이 바로 무전을 타전했다.
“여기는 둥지, 1조 나와라. 여기는 둥지, 1조 나와라.”
그러자 곧바로 답신이 들어왔다.
―여기는 1조 둥지 받아라.
“연결되었습니다.”
“음. 그래.”
수화기를 건네받은 하성호가 물었다.
“1조, 어떻게 되었나. 가장 먼 거리라 힘들었을 텐데 혹 교전은 없었나?”
―임무 완수하고 성문을 장악 후 대기 중에 있습니다. 오다가 몇 명의 백성들을 만났지만 우리 군복을 보고는 모두 길을 비켜주거나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하긴, 파루(罷漏, 한성에서 통행금지를 해제할 때 치는 종 5경 3점(새벽 4시경에 침)을 치고도 한 시간이 지났으니 사람들 왕래가 있었겠군. 수고했다.”
―고맙습니다.
하성호가 통화를 마치자 운전병은 곧바로 2조와 연결을 시도했다.
이렇게 모든 통화를 마친 하성호는 모든 병력이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는 바로 다음 지시를 했다.
“박격포 신호탄 발사하라.”
“예.”
하성호의 지시를 받은 병사가 순식간에 박격포 거치를 마쳤다.
뽕!
특유의 박격포 소리가 나면서 포탄이 발사되었고, 곧 하늘에서 아주 밝은 빛이 터졌다.
펑!
아주 강렬한 신호탄은 그 강렬한 빛이 마포나루를 넘어 여의도에서도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북한산에 있던 통신관도 그 불빛을 정확히 봤다.
통신관은 곧바로 교신을 시도했다.
―여기는 북한산, 여기는 북한산. 상륙 부대 나와라.
그러자 곧바로 답신이 들어왔다.
“여기는 상륙 부대다. 말하라.”
―한성 성문이 접수되었다.
“알았다. 이상.”
상륙 부대를 수송하는 마라도함의 통신 장교가 특수군 상륙부대장에게 보고를 했다.
“한성의 성문들이 접수되었다고 합니다.”
“흠, 그래? 그렇다면 우리 낙하산 부대도 입성을 마쳤겠군.”
“그렇습니다.”
“함장님께 연락해라, 출항하자고.”
“알겠습니다.”
상륙부대장의 지시를 받은 통신 장교는 곧바로 함장에게 연락을 했다.
잠시 후 교신을 마친 마라도함과 LST함 4척은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제물포 앞바다에서 서서히 한강 하구로 접근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접근을 하자 마라도함과 LST함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낮은 곳에 다다랐다.
특수군 부대장인 김기수 대령이 마라도함장 김철승에게 인사를 하였다.
“이제 하선해야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두 사람은 그렇게 인사를 하며 서로 악수를 했다.
김기수 대령은 인사를 마치고는 마라도함 내부로 들어갔다.
마라도함 내부에는 곧바로 바다와 연결된 도크가 있어 그곳에서 상륙정을 타기 위해서였다.
김철승 대령이 지시를 했다.
“하역하라.”
김철승의 지시에 마라도함의 선미가 열렸다.
그러자 LST함의 선수도 열리기 시작했다.
김철승의 지시가 있자 함상에 있던 수리온 헬기가 이곳저곳에서 모두 4대가 떠올랐다.
타타타타타!
수리온 헬기는 먼저 마포나루 방면으로 경계 비행에 들어갔다.
마라도함과 LST함에서 가장 먼저 정원 7명의 KM-7 고무보트가 쏟아져 나왔다. 총 50척이었다.
김기수 대령 또한 이 고무보트에 타고 있었다.
부릉~ 부릉~ 부릉~ 부릉~
고무보트에 달린 엔진의 소음이 주위를 온통 시끄럽게 했다.
모든 고무보트가 나온 것을 확인한 김기수 대령이 손을 들었다.
“부대 전진.”그러면서 김기수가 한성 방향으로 손을 힘차게 내렸다.
부~아~아~아~앙!
50척의 KM-7 고무보트가 350명의 병력을 태우고 굉음을 울리며 마포로 전속 질주를 시작했다.
하얀 물살을 뒤로 내뿜으며 달려가는 50척의 KM-7 고무보트는 대단한 장관이었다.
KM-7 고무보트는 3번을 왕복하며 총 1,000명의 병력을 수송할 예정이다.
다음으로 나온 것이 마라도함에서는 공기부양정 솔개였다.
그리고 LST함에서는 상륙 돌격 장갑차(KAAV7A1) 20척이 쏟아져 나왔다.
공기부양정 솔개에는 1대의 흑표 전차와 2대의 군용 트럭이 실려 있었다.
먼저 공기부양정이 마포나루를 향해 출발을 했다.
부~앙~
시속 80km로 달리는 공기부양정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다.
이 공기부양정은 앞으로 10차례 왕복을 하며 10대의 흑표 전차와 20척의 군용 트럭을 수송할 계획이었다.
이어서 20척의 상륙 돌격 장갑차(KAAV7A1)도 출발을 했다.
20명의 상륙 병력을 태운 장갑차는 13.4km의 속도로 바다를 가르며 서서히 마포 방향으로 전진해 나갔다.
상륙 부대는 총 1,500명의 지상군과 10대의 흑표 전차, 20대의 장갑차, 그리고 20대의 군용 트럭이 장비로 동원되었다.
선발대가 삼십여 분을 달리자 마포나루가 시야에 들어왔다.
김기수는 곧바로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받은 고무보트들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해는 떠오르지 않았으나 여명이 밝아 사방이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