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準備)
1794. 7. 1. 가야주(伽倻州, 호주) 총독부.
“부대 차렷. 총독 각하께 대하여 받들어 총.”
“충! 성!”
“세워 총.”
호주 총독궁 앞 광장에는 지금 수천 명의 병력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조선으로 진주하기 위해 선발된 호주 병력이었다.
김영훈 총독이 단상에서 그들을 보고 훈시를 했다.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본토 공략의 때가 왔다. 제군들은 이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중차대한 사명을 띠고 출항을 할 것이다. 여러분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여러분들이 이전과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를.”
김영훈이 그렇게 말을 하고 도열한 병력들을 한번 굽어보았다.
전원이 새로 지급된 군복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이 늠름하기 그지없었다.
김영훈이 바라봐도 이들은 이전의 나약한 조선 백성이 아니었다.
몇 년간의 강도 높은 훈련으로 간부들은 물론이고 일반 사병에 이르기까지 군기 그 자체였다.
김영훈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둘러보다가 다시 훈시를 했다.
“지금 귀관들은 세계 제일의 정예 부대다. 반드시 제주에 도착해서도 이 군기를 흩트리지 말고 타 부대의 모범이 되어주기 바란다.”
김영훈의 훈시를 마치자 부대는 곧 행진을 시작했다.
“와~!”
“잘 갔다 와라.”
“꼭 성공해야 한다.”
연도에 모여선 고선지시의 시민들은 저마다 손에 삼태극기와 삼족오 깃발을 흔들며 그들의 장도(壯途, 중대한 사명을 띠고 먼 길을 떠나는 길)를 빌어주었다.
그들이 걸어가는 하늘에서는 형형색색의 오색 꽃종이가 하늘을 뒤덮을 듯 뿌려지고 있었다.
김영훈 총독이 단상에 서서 그들을 보며 말했다.
“잘해내야 할 텐데.”
“잘해낼 것입니다.”
김영훈의 옆에 있던 고선지시 시장인 이재호가 말을 했다. 이재호 또한 가온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병력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는 단상을 내려와 총독궁으로 들어갔다.
총독의 집무실에 앉으며 김영훈이 물었다.
“이번 병력이 빠져나가도 치안에는 별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준비는 잘되어 있죠?”
“예. 준비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각하.”
대답을 한 사람은 호주 경찰청 청장인 이칠성이었다. 이칠성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이칠성은 본래 기무 부대 대위 출신이었다.
시간 여행 후 기무 부대와 국정원 통합 당시 국정원에 잠시 몸담았다가, 제주 경찰국이 창설되면서 경찰에 투신하였다가 호주로 와서 호주 경찰청장이 되었던 것이다.
김영훈이 물었다.
“이 청장, 경찰 생활은 해볼 만한가?”
“그렇습니다, 각하.”
“하긴, 자네가 경찰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잘 어울리기는 해.”
그렇게 말하며 이칠성을 바라보았다.
7월이면 호주는 초겨울로 접어들어 가는 날씨였다. 동복으로 입은 짙은 청색의 경찰복이 이칠성을 한껏 돋보이게 하는 모습이었다.
“과찬이십니다, 각하.”
김영훈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 군복을 벗은 지 벌써 몇 년인데 아직도 말투를 보면 군대 말투가 그대로 묻어나.”
이칠성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고치려고 노력을 해도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하긴, 그런 자네의 모습이 지금의 호주 경찰을 만들었는지도 모르지.”
김영훈의 말대로 호주 경찰은 군대식 경찰이었다.
넓은 호주 대륙을 관리하기 위해 기동력을 갖추려고 전원이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말이 경찰이지 훈련은 거의 일반 군과 비슷하게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단 병력이 빠져나간 호주의 치안에도 김영훈은 별걱정을 하지 않았다.
호주 경찰에는 벌써 수천 명의 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연해주와 제주에서는 계속해서 주민들 교육이 실시되고 있었고, 교육을 마친 주민들은 늘 그래 왔던 대로 개척지 각지로 이주를 하고 있었다.
1794. 7. 10. 고구려주 상항(桑港).
북미 대륙 고구려주 상항에서도 호주와 같이 사단 병력이 출발을 하고 있었다.
송기훈 총독과 고구려주 관리들이 그들을 전송하고 있었다.
이곳의 상황은 호주보다는 조금 더 좋았다.
호주는 중간에 괌이나 유구 등 중간 기착지가 있었기 때문에 병력 수송이 그나마 좋았지만,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항로를 고려하여 지금 상항에는 호주와 달리 광무황제함과 시간 여행 당시 넘어온 함대가 이들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도착했기 때문이다.
공진성 광무황제함 함장이 송기훈과 함께 항모에 오르는 병력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송기훈이 말했다.
“언제 보아도 항공모함을 보면 그 위용에 감탄이 절로 나오네.”
“그렇습니까? 저는 늘상 타고 있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빨리 우리 기술이 발달하여 저 빈 계류장에 항공기가 꽉 찼으면 좋겠군.”
“그래도 요즈음은 수리온 헬기라도 싣고 다녀서 아쉽지만 그나마 낫습니다.”
공진성 함장이 말한 대로 항모의 선상에는 8대의 해리어기와는 별도로 10여 대의 헬기가 얹혀 있었다.
송기훈 총독이 웃으며 말했다.
“대양함대를 지휘할 정규 항모에 헬기라… 모양은 좀 떨어지네.”
공진성도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게 어디입니까? 옆을 보십시오.”
송기훈이 옆에 있는 전함을 바라보았다.
공진성이 말했다.
“저 헬기 전용 항모인 마라도함도 5대의 헬기밖에 싣고 다니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공진성의 말대로 마라도함의 함상에도 5대의 헬기밖에 실려 있지 않았다.
송기훈 총독이 물었다.
“항공기 정비는 문제가 없나?”
“그래도 시간 여행 당시 항공기 정비단이 넘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습니다.”
송기훈이 말했다.
“빨리 우리도 항공기를 직접 제작해야 하는데 걱정이군.”
“본부에서는 비행선을 더 활성화시킬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비행선이 그 나름대로 아주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네. 하지만 언제까지 비행선에 의지할 수는 없지 않나.”
“그건 그렇습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항모가 기함인 10여 척으로 구성된 함대는 계속 병력을 싣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많은 화물도 동시에 하역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이 건전지였다.
송기훈 총독이 말했다.
“전지가 생각보다 빨리 만들어졌네.”
“그렇습니다. 저도 이렇게 빨리 알카라인 건전지가 만들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예상보다 빠릅니다. 들리는 말로는 러시아 과학자들이 기초 과학에 아주 강한 면모를 보여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송기훈이 말했다.
“청진 공단이 예상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군.”
공진성도 말을 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의 일 년이 십 년입니다.”
“그래, 맞아. 지금의 일 년이 앞으로의 십 년이네.”
병력을 모두 태우고 하역 화물을 내리고 다시 군장을 싣는 데는 사흘이 걸렸다.
“충성.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공 함장. 수고하게.”
공진성이 인사를 마치고는 대기하고 있던 고속정에 올랐다.
부아아앙!
고속정은 곧 속력을 올려 항모가 정박한 곳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항모에 오른 공진성이 명령을 내렸다.
“전 함대 출항하라.”
뿌~앙!
기함에서 기적이 울리자 십여 척의 함대에서도 각자의 목소리로 기적이 울려 퍼졌다.
빠~앙! 빵!
공진성이 함교(艦橋) 밖 테라스로 나와 선착장에 있는 송기훈 총독에게 거수경례를 올렸다.
조금 멀기는 하였지만 선착장에서 그가 경례를 올리는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잘 가게.”
송기훈도 이렇게 말을 하며 답례를 해주었다.
이윽고 항모가 거센 용트림을 하듯 거칠게 몸을 비틀며 물살을 가르고는 곧 상항만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항모의 앞뒤로 마라도함을 비롯해 십여 척의 전함들이 호위하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래, 너희들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다.”
송기훈은 그런 함대가 이전 시대 미국과 같이 오대양 육대주를 종횡무진 누빌 꿈을 생각하며 독백을 하였다.
송기훈의 독백을 들었는지 상항만을 막 벗어나려는 항모에서 또다시 이별의 기적이 울렸다.
뿌~앙!
1794. 7. 10. 백제주 유구 나패.
정철학 고문과 박용현 백제주 총독이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는 이경식, 기정진 상관장과 김영석 국장, 그리고 이영달 과장과 석원형 과장이, 그리고 동남아시아 담당인 태인선이 동석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최성용 또한 참석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참석을 마쳤으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최성용의 말이 끝나자 곧바로 국정원 차장이며 유구 국왕 고문인 정철학이 발언을 했다.
“오늘은 지금까지의 유구 지역 준비 상황 점검과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한 논의를 하는 국정원과 가온 무역과의 회의입니다. 먼저 총독 각하께서 말씀이 있겠습니다.”
지목을 받은 박용현 총독이 말을 했다.
“먼저 우리 백제에서 파견될 사단 병력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염 공장과 방적 공장에서 새롭게 지급될 군복의 제작 또한 이미 전부 마쳐놓은 상태입니다.”
최성용이 물었다.
“유구 병력은 별문제가 없겠습니까?”
“그 문제는 일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이제 유구군단은 우리 백제에서 가장 큰 자원이네.”
박용현이 단언을 하듯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유구군단 20,000은 이미 백제주 전체에 고르게 파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철학이 말했다.
“유구군단은 백제주의 주력 부대입니다. 저희들이 알기로는 이번 부대 파견에서 제외된 것을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용현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다민족이 들어갔다가는 자칫 점령군으로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이니까.”
박용현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자, 외부적인 상황은 시간이 말해 줄 것이고, 오늘 우리가 모인 본 주제로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일본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정진이 말을 했다.
“일본은 조선 통신사의 방문으로 지금 에도에는 그 준비를 위해 통신사가 지나가는 각지의 영주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쇼군이 그들에게 이번 통신사 방문에 한 점 소홀함이 있을 경우 할복할 각오를 하라는 말을 했다는 풍문이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철학이 석원형을 불렀다.
“석 과장.”
“예, 차장님.”
“장주번(長州藩)의 공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그렇지 않아도 하기(萩)에 있는 장주번의 번청에서 얼마 전 번주인 모리 나리후사(毛利?房)와 독대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철학이 물었다.
“그래? 결과는 어땠는가?”
“결과보다 의외인 것은, 그를 만난 것은 모리 나리후사(毛利?房) 번주가 먼저 우리에게 만나자는 전갈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정철학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그래? 아니, 그자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면 무슨 속셈이 있어서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저희들도 의외의 일이라 이곳에 오기 바로 직전 그를 만나고 왔습니다.”
정철학이 다시 물었다.
“음, 자세하게 말해 보게.”
“저희가 일본을 떠난 날이 7월 7일이고, 그를 만난 것은 바로 전날입니다.”
모두가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자 석원형이 숨을 고르고는 말했다.
“그쪽에서 만나자고 전갈이 온 것은 6월 말이었습니다. 나가사키 사쓰마 번으로 물건을 사러 온 장주번의 관리가 우리 상관에 들러 소식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장주번의 본래 근거지는 히로시마였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초대 번주인 모리 테루모토가 서군 총대장으로 출전하여 패배한 후 근저지인 히로시마에서 쫓겨나고 120만 석의 방대한 영지도 몰수당한 후 약 40여 만 석으로 감봉당하였다.
이때 새로운 성지로 선택한 것이 영지에서도 가장 궁벽한 곳인 하기였다.
와신상담이라고 할까. 그런 전통을 가진 장주번이었기에 토막(討幕)의 주역이 되고 메이지 유신을 이끈 수많은 인재들이 나온 곳이기도 한 지역이다.
석원형이 말했다.
“하기(萩)로 가서 번주를 만나니 그가 의외의 제안을 하였습니다.”
정철학 차장이 물었다.
“의외의 제안이라니? 그것이 무언가?”
그러자 석원형은 모리 번주와 만난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1794. 7. 7. 하기(萩) 성 천수각.
하기(萩)는 섬이었다. 본토에서 흘러나오는 강이 동해로 흘러가는 끝에 있는 지역으로, 아부강(阿武川) 삼각주에 형성된 성읍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가온 무역의 석원형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장주번 번청인 하기 성 천수각에서 독대를 하였다.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찾아뵈었습니다.”
그러자 번주인 모리(毛利)가 말했다.
“예, 제가 만나자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혹, 이곳을 방문한 것을 누가 알고 있는지요?”
“상관장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약속을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당연히 지켜드려야지요.”
석원형은 그러면서 번주인 모리 나리후사(毛利?房)를 바라봤다.
평범하게 생기기는 하였지만 번주로서 위엄 또한 묻어 있는 얼굴이었다.
석원형이 물었다.
“저를 만나자고 하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모리 나리후사(毛利?房)가 목소리를 낮추고는 물었다.
“지난번 귀측에서 사쓰마 번에 제안을 한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모리 나리후사(毛利?房) 번주가 말했다.
“귀측에서 사쓰마의 독립에 대한 제안을 한 것 말입니다.”
순간 석원형의 손이 조금 떨렸다.
평정심을 유지한다고는 해도 그 정도까지 직접적으로 물어오는 모리 나리후사 번주의 말에 반응이 없을 수는 없었다.
석원형을 바라보고 있던 모리 나리후사 번주는 일순 감탄의 눈빛을 보였다.
석원형이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리 나리후사 또한 평범한 외모와는 달리 심모가 깊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제가 잘못 들었나 봅니다.”
석원형 또한 냉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조선의 왕실 직할 별무사의 대외 무역 독점 회사인 가온 무역입니다. 우리는 무역만을 할 뿐입니다. 우리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모리 번주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면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말은 제가 답변할 말이 아닙니다.”
“그럼 조선에 있는 귀측 대표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석원형은 이미 모리 번주가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 문제도 제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모리 번주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물었다.
“내가 귀측의 대표를 만날 수는 없습니까?”
석원형이 바로 대답했다.
“우리 가온 무역의 대일본 무역 상대는 사쓰마 번인데 번주님과 우리 회사 사장님과의 면담이 성사될지는 장담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조슈 번(長州藩)이 어떻게 해야 귀측의 사장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이번에는 석원형이 잠시 생각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욕이었다.
‘이런 C8. 명색이 사쓰마 번의 번주란 놈이 이런 중요한 기밀 하나도 지키지 못하고 이게 무슨 꼴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석원형이 물었다.
“번주님께서 우리 사장님을 만나시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모리 번주가 일어서더니 자신의 뒤에 있던 한 상자를 앞으로 가지고 왔다.
길게 생긴 그 상자를 열자 그 속에는 놀랍게도 제이스 소총이 들어 있었다.
석원형이 모리 번주를 보고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보시다시피 총입니다.”
“그런데요?”
그러자 모리 번주가 소총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귀측에서 만든 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소총을 석원형에게 내밀었다.
소총을 받아 든 석원형이 영문을 몰라 하자 모리가 말했다.
“이곳을 보시지요.”
모리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두 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서체 시작
청진
<-서체 끝
모리가 그 글씨를 보고 말했다.
“조선의 정음이라는 문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속으로 욕을 해댄 석원형이 물었다.
“이것을 저에게 보여주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모리 번주가 대답했다.
“우리는 귀측과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일본 내 무역에 관한 전권은 이미 사쓰마에 주었습니다.”
“아니, 그런 거래가 아니라 무기와 군사력에 대한 지원을 요청합니다.”
모리 번주가 의외의 요청을 하자 석원형이 처음으로 깜짝 놀랐다.
잠시 기분을 가라앉힌 석원형이 물었다.
“번주님의 제안이 너무 엄청난 것이라 무슨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모리 번주가 몸을 가까이 하며 말했다.
“우리는 그동안 200년을 넘게 이곳 하기에서 칩거하며 자중자애(自重自愛)해 왔습니다. 귀측에서 도와만 주신다면 한번 날아보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러면서 깊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석원형은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 직면하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일순 말문이 막혔다.
그런 침묵의 시간이 조금 흐르자 석원형이 말했다.
“일어나십시오, 번주님. 제가 무슨 말을 드릴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모리 번주가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그러시다면 귀측 사장님을 만나도록 주선을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석원형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말씀은 전해드리겠지만 확신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자 모리 번주가 다시 일어서더니 한 상자를 건네주었다.
“귀측 사장님께 제 마음이라 하고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석원형은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바로 천수각을 나왔던 것이다.
석원형이 그렇게 말을 끝내고는 최성용에게 모리 번주가 준 상자를 건네주면서 말을 했다.
“이것이 모리 번주가 준 상자입니다.”
상자를 건네받은 최성용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상자를 열었다.
딸깍.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하얀 천과 함께 30cm으로 보이는 칼이 들어 있었다.
최성용이 그 칼을 들었다.
싸악.
칼은 싸늘한 소리를 내며 뽑혀졌다.
서늘한 빛이 실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느낄 정도로 날카롭게 빛이 났다.
최성용이 그 칼을 보고 말했다.
“잘 벼려졌군요.”
그러자 박용현 총독이 그 칼을 보고 물었다.
“모리 번주가 칼을 준 의도가 무엇일까?”
기정진 상관장이 말했다.
“비밀을 엄수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최성용이 기정진을 돌아보자 기정진이 다시 말했다.
“비밀에 대한 엄수와 그에 따른 무사로서의 약속을 표시하려고 칼을 보낸 것 같습니다. 이 칼은 무사들이 할복할 때 쓰는 칼입니다.”
기정진의 설명을 듣자 최성용은 칼이 더욱 잘 벼려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최성용이 물었다.
“일본에 이렇게 칼로 자신의 결의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까?”
기정진이 대답했다.
“저도 의외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지역의 패자인 모리 번주가 이렇게까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우리와 거래를 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그 의도가 궁금합니다.”
국정원 정철학 차장이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요원들에게 비상령을 내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정철학의 말이 있자 박용현 총독이 말했다.
“그가 200년 넘게 칩거를 하며 자중자애를 하였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막부와의 구원(舊怨)이 큰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요?”
정철학이 대답했다.
“반드시 그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200년이라는 시기에 벌써 모리 가문도 11번이나 번주가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원한이 깊다고는 하나 이미 많이 희석되어 있을 것입니다.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입니다.”
석원형도 말을 했다.
“저도 차장님 의견에 동감입니다. 모리 번주는 비록 평범한 얼굴은 하고 있지만 사쓰마의 일을 알 정도로 확실한 정보력도 갖추고 있는 인물입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그나저나 사쓰마 번주는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중요한 일을 누설한 거야?”
석원형이 말했다.
“제가 평정심을 유지했다고는 하나 분명 모리 번주는 제 반응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저 사쓰마 번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최성용이 정철학을 보고 말했다.
“일단 차장님 말씀대로 요원들에게 특급 비상령을 내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사쓰마와 관련된 문제는 본토의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에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정철학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본원에 그렇게 보고를 하겠습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다른 곳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영달 과장이 말했다.
“청국의 경우 순조롭게 계획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백련교는 지금 막바지 훈련과 함께 우리가 파견한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는 교관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배우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최성용이 물었다.
“내년 봄 거사는 문제가 없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영달의 대답을 들은 최성용이 김영석에게 물었다.
“김 국장님.”
“예, 제독님.”
“외국의 상황은 특별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 있습니까?”
김영석이 대답했다.
“별문제는 없습니다. 인도의 마이소르 왕국과 영국과의 전투는 그렇게 답보 상태로 서로 간의 소모전을 지속하고 있고, 영국은 지금 발을 빼지도 더 깊숙이 넣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영국이 인도에 발목을 잡혀 있어야 동남아시아에 그들의 마수가 뻗쳐오지 않을 것입니다.”
태인선이 대답했다.
“지금의 동남아시아는 조금만 더 인도에서 영국의 발목을 잡는다면 우리가 의도한 대로 동남아 각국을 그들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태인선의 말을 들은 최성용이 웃으며 말했다.
“태인선 씨, 잘해보십시오. 비록 당신은 귀화를 했지만 근본은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 것이 당신이 이 시대에 온 소명일 것입니다.”
태인선이 깊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제 남은 생을 걸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참석자들은 모두 동시에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박용현 총독이 말했다.
“정 차장, 이제 우리 국정원에도 동남아과가 생겨야 할 때가 아닙니까?”
정철학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정철학은 태인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본원에 말씀을 드려 신 원장님께 부서를 신설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인선이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태인선의 인사를 받으며 모든 사람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