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101)

6월 정국

1794. 6. 조선의 유월.

이달은 혜경궁의 회갑연이 있는 달이다.

유월 초하루 혜경궁 회갑연을 축하하는 뜻에서 김종수는 특별 사면하고 그동안 유배되었거나 파직된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대사면을 단행했다.

이 대대적인 대사면에는 정조와 장준하의 고도의 정치 전략이 내재되어 있었다.

지난 몇 개월간 조선은 많은 문제가 있었다.

김종수가 정조에게 무례한 상소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다음으로 과거 시행이 근 한 달여에 걸쳐 시행되었다.

그리고 은언군의 방면에 관한 문제로 한 달 넘도록 조야가 시끄러웠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몇 개월이었다.

어떻게 보면 가온으로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인지도 몰랐다.

정조와 장준하는 이러한 일을 겪으며 파면되거나 유배를 갔던 많은 신하들을 대부분 방면하도록 조치를 했다.

특히 김종수의 방면은 정조의 강력한 의지로 시행을 했다.

장준하도 국정에 너무 깊숙이 관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더 이상의 조언을 하지 않았다.

사면이 일어나기 며칠 전인 5월 하순이었다.

정조와 장준하가 북한산성 행궁에 마주 앉아 있었다.

정조는 늘 대동하는 상선과 용호영 별장과 함께였고, 장준하는 최성용과 함께였다.

이날의 대면에는 이번에 일본으로 가는 정사인 박지원과 서이수, 그리고 박승호와 처음으로 국정원 강성국 차장이 함께 참석을 했다.

참석자 중 먼저 최성용이 입을 열었다.

“이번 통신사의 파견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실상을 파악하라고 보내는 것은 두 번째 목적입니다.”

그러자 참석자 중 몇 사람의 눈의 커졌다.

최성용이 그런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 통신사 파견은 열도 공략의 일환입니다.”

그러자 처음 그 소리를 듣는 박지원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보시오, 최 제독.”

“예, 선생님.”

최성용은 호형호제를 하는 박제가의 스승인 박지원에게 스승으로 예를 표하고 있었다.

“열도 공략이라니, 그럼 우리 조선이 일본을 침략한다는 것이오?”

“조선이 침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온에서 일본을 공략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박지원이 놀라지 않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하는 표정을 지었다.

박지원이 다시 최성용에게 물었다.

“인명 피해가 크지 않겠소? 일본 족속이 본래 호전적이라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드오.”

최성용이 말했다.

“잘 보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그들을 우리의 속국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속국이라니요?”

최성용이 말했다.

“저는 일본을 세 조각으로 분할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을 모두에게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모두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졌다.

정조가 말했다.

“과인의 생각도 최 사장과 같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본을 완전히 우리의 속국으로 만든다면 지난 임란의 치욕도 씻을 수 있고, 우리 민족의 손상된 기상도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소.”

정조가 최성용의 말에 호응을 했다.

장준하도 말을 했다.

“신이 보기에도 최 사장의 말에 상당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가 힘이 없어 이렇게 공략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성용이 다시 말을 했다.

“이번에 파견되는 통신사에는 그들을 학문적으로 압도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무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거 선발했습니다. 그중 특히 국정원 요원도 다수가 함께 갑니다.”

강성국이 일어나 처음으로 정조에게 인사를 했다.

“전하, 신 강성국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정조가 장준하를 돌아봤다.

장준하가 설명을 했다.

“국정원의 강성국 차장입니다.”

“오! 그대가 국정원 차장이오?”

“그렇습니다.”

“차장이면 직위가 어떻게 되오?”

강성국이 아주 쉽게 설명했다.

“참판(參判)으로 보시면 됩니다.”

“아, 그렇소. 참판.”

“예, 전하.”

인사를 마친 강성국이 설명했다.

“이번 통신사 파견에 우리 국정원 요원이 다수가 참여를 합니다. 물론 기존의 조직을 점검할 목적도 있지만, 본래 목적은 포섭할 수 있는 대상을 물색하기 위함입니다.”

강성국의 말에 박지원과 서이수, 그리고 박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성국이 다시 말했다.

“혹, 그들이 조금 과한 움직임을 보이더라도 절대 통신사 고유의 업무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통신사의 정사나 부사께서는 아무 염려 마시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시면 됩니다.”

정조가 박지원을 보고 말했다.

“이보시오, 연암.”

“예, 전하.”

“부디 통신사의 임무를 잘 완수해 주기 바라오.”

“전하의 성총(聖寵, 임금의 은총)에 누가 되지 않도록 성심을 다하겠사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고개를 숙인 박지원을 보고 정조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박지원과 정조의 사이가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썩 좋은 출발이 아니었다.

박지원의 청장년 시절은 매우 불우했다.

반남박문 출신이면서도 남의 집에 세를 얻어 살 정도로 집안이 좋지 않았었다.

과거 운도 좋지 않아 생원진사시에 연속 장원을 하여 이름을 날렸어도 거듭된 과거 실패로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과거를 포기하고 1771년 황해도 금천의 연암골로 은거를 하게 된다.

그의 연암이라는 호도 여기서 유래를 하였다.

더욱이 몇 년 후 정조가 등극하자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홍국영과의 불화로 목숨의 위협을 느끼자 가족들 모두를 연암골로 이주하게 하였다.

그러다 홍국영이 제거되고 은거한 지 10년이 되던 해인 1780년, 삼종형인 박명원의 권유로 그의 사행길에 동행을 하여 청국의 문물을 접하며 그때 보고 들었던 것을 저술한 것이 『열하일기』다.

열하일기로 주가를 올리던 중 그의 절친한 친구인 유언호(兪彦鎬)의 추천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던 그에게 1792년 규장각 직각인 남공철의 서신을 받게 된다.

그 서신에는 정조가 열하일기를 읽고 자신을 불러 서신을 써서 열하일기의 문체의 바르지 못함을 빌고, 글을 순정하게 수정을 하겠다는 글을 써 보내라고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당시 정조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던 문체반정으로, 그 주 표적이 열하일기였던 것이다.

당연히 박지원은 속죄의 편지를 보냈으며, 이를 받아본 정조는 그의 문재(文才)를 칭찬하며 더 이상은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던 일이 있었다.

그 후 가온이 들어와 역사와는 다르게 박지원은 빠른 승진을 하여 의주부윤에까지 이른 것이다.

두 사람은 속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군신으로뿐 만이 아니라 문호(文豪)로서 서로에게 깊은 호감을 갖고 있었으며, 이번 일본 통신사의 정사에도 정조가 박지원을 바로 지목하였던 것이다.

정조가 다시 말했다.

“과인은 경이 지은 열하일기를 아주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었소.”

“황송하옵니다, 전하.”

“이번 파견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좋은 저작을 남겨주시기를 바라오.”

박지원이 그 말에 깊게 고개를 숙여 사은(謝恩)하며 말했다.

“이전에 신의 졸저인 열하일기는 청을 배우자는 뜻에서 지은 것이옵니다. 만일 신이 이번 사행을 다녀와 글을 쓸 여력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면 일본을 공략할 수 있는지를 연구해 보겠사옵니다.”

그 말에 정조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연암이오. 그렇소. 경이 다녀올 때는 우리 조선도 완전히 개벽이 되어 있을 것이오. 부디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많이 보고 오시오. 그리고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꼭 좋은 글을 남겨주기 바라오.”

“명심하겠사옵니다.”

두 군신 간에 주고받는 이러한 대화는 바로 가온의 자리를 말해 주는 것이었다.

이제는 정조도 박지원도 일본을 공략한다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할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장준하도 최성용도 두 사람의 어투가 바뀐 것을 의식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최성용이 말했다.

“자신감입니다.”

뚱딴지 같은 최성용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몰렸다.

그런 시선을 받으며 최성용이 말했다.

“우리들 입에서 이렇게 일본에 대한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신감입니다.”

그제야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준하가 말했다.

“전하, 건의드릴 일이 있사옵니다.”

“말해 보시오.”

“시절이 벌써 6월로 접어듭니다. 자궁(慈宮, 혜경궁 홍씨를 지칭함)의 회갑 탄신일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정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소.”

장준하가 다시 말했다.

“지난 몇 개월간 조정의 많은 일로 원지에 유배된 사람들과 파직된 사람 또한 많습니다. 이 기회에 그들을 사면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정조가 말했다.

“흠, 그들은 대부분 정치적인 이유로 파면되거나 귀향을 간 자들이오. 당분간은 그들을 묶어놓는 것이 좋지 않겠소?”

장준하가 말했다.

“그들을 묶어놓는다고 해도 별 이득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긴장시켜 가을의 거사에 그들이 불상사를 일으켜 많은 인명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사면을 시켜 그들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내는 것으로 인식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정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소. 그렇다면 이 기회에 몽오(김종수)도 풀어주어야겠군.”

박지원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판부사를 풀어주시다니요? 그는 주상 전하께 역도와 같은 불경을 저지른 자입니다.”

정조가 말했다.

“아니오. 이왕 사면을 할 바에야 모두 풀어주는 것이 좋소.”

장준하는 지금 박지원이 놀랄 정도로 신하로서 범해서는 안 될 불경을 저지른 김종수를 풀어주려고 하는 정조의 깊은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정조가 다시 말을 했다.

“과인과 판부사와는 이십 년을 넘게 한결같이 지내온 사이요. 비록 이번에 그의 언사가 과한 면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번만은 과인이 그를 용서해 줄 생각이오.”

최성용이 말했다.

“그것이 전하의 어심이시라면 그리하십시오. 판부사도 전하의 어심을 알 것입니다.”

“고맙소.”

정조가 대답을 하자 바로 장준하가 말했다.

“어차피 자궁의 회갑연입니다. 이 기회에 대대적인 사면은 자궁의 회갑을 축하하고 전하의 치세를 빛내는 일이니, 흉악범을 제외하고는 대사면을 단행하는 것이 좋사옵니다.”

박지원도 동조를 했다.

“묘당에서도 건의가 올라오지 않겠사옵니까?”

장준하가 말했다.

“이번에 판부사와 신료들의 사면과 복권은 주상 전하께서 먼저 하교를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정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왕 풀어주려면 그게 좋겠소.”

정조가 통신사 일행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일본의 사행은 북경과는 달리 많이 험하다고 들었소. 부디 몸조심하고 잘 다녀오기 바라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렇게 하여 최성용이 계획한 일본 통신사 파견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통신사의 출발은 사행 준비를 마치는 것을 고려하여 8월에 하기로 했다.

정조가 북한산성을 내려가고 참석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준하가 말했다.

“잘 알다시피 이번 사행은 앞으로 일본을 공략하기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모쪼록 철저하고 확실하게 파악해 오시기를 바랍니다.”

박지원이 대표로 인사를 했다.

“꼭 소기의 성과를 얻고 돌아오겠습니다.”

최성용이 이어서 말을 했다.

“박 소령.”

“예, 제독님.”

“박 소령은 특히 일본에 도착을 하면 그들의 군사력에 대한 것을 철저하게 파악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에도 막부가 상당히 관료화되어 있어 무사들이 무사안일하고 사치와 향락에 물들어 있다고 하는데, 자네가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강성국 차장이 말했다.

“일본에 가면 국정원 요원들이 잘 안내를 할 것입니다.”

박승호 소령이 말했다.

“동행하는 요원들과 함께 유기적인 협조를 해서 향후 있을 일본 공략에 필요한 자료 수집을 최대한 많이 해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자네의 활약에 거는 기대가 가장 크다는 것을 명심해 주게.”

“알겠습니다.”

장준하가 말했다.

“8월에 출발하려면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서 전수가 직접 챙겨서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부탁합니다.”

그러자 모두가 대답을 했다.

“알겠습니다.”

5월의 북한산성에서의 모임은 끝이 났다.

6월의 조선의 정국은 초하루 정조의 대사면에 대한 교지로 초여름의 날씨답게 화창하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回甲宴)이 있는 달이기도 해서인지 다행히도 그나마 지난 몇 달과는 달리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1794. 6. 10. 중문 단지.

정조와 장준하가 개혁 일자를 합의한 이후 중문 단지의 모든 호텔에는 가온의 주민 중 자원한 사람들과 그동안의 교육 중 특별히 선발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 교육은 조선에 들어갔을 때 주민들을 교육시킬 교사들을 양성하는 교육이었다.

이들을 총괄 지휘하는 곳은 과거 관광 공사 중문 단지 관리 사무소에 있었다.

“총장님, 안녕하셨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이날 중간 점검을 하기 위해 가온의 지휘부가 관리 사무소에서 회의를 하기 위해 방문을 하였다.

가온 대학 부영철 총장이 지휘부를 맞이하기 위해 사무소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소 안에 마련된 회의실로 들어서며 장준하가 말을 했다.

“오다 보니 단지 전체가 정신이 없습니다.”

부영철 총장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제 1년여가 돼가니 제법 자리를 잡은 것이 그렇습니다.”

권오인도 말을 거들었다.

“그래도 교육생들 모두가 활기차 보여서 보기가 좋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본토로 들어가 조선의 백성들 교육을 담당해서인지 교육생들 열의가 얼마나 뜨거운지 교수들조차도 놀랄 정도입니다.”

이윽고 모두가 자리에 착석을 하자 부영철이 각 담당 교수들 인사를 시켰다.

인사가 끝이 나자 오늘 발표를 할 교수가 발표대로 나섰다. 40대로 보이는 여자 교수였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그동안의 성과를 중간 발표할 교육 대학 학장인 최은희입니다.”

최은희 학장이 인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저희 교육 대학에서는 이번 교사들 교육을 위해 가온에 있는 모든 교수 자원을 총동원하였습니다. 다행인 것은 군에서도 많은 교수들을 지원을 해주셔서 500여 명의 교수들을 충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뒷면에 있는 스크린을 열었다.

열린 화면에는 교수들의 인적 구성이 나와 있었다.

최은희가 말했다.

“그리고 지금 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들이 10,000명입니다.”

최성용이 물었다.

“인적 구성비는 어떻게 됩니까?”

“저희도 놀란 것은, 그 인적 구성비가 여기 와서 처음으로 학문을 접한 평민 출신들이 반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웅성. 웅성.

회의실에 있는 참석자들이 조금 놀라서 술렁였다.

최은희 학장이 말했다.

“저희도 그 점이 궁금하여 대상들을 상대로 조사를 한 바에 의하면, 개개인의 능력도 우수하지만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는 열린 자세 또한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권오인이 물었다.

“지금 교육생들에게 실시하는 교육에서 역사 교육은 어떤 비중입니까?”

최은희 학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회장님께서 그 말을 여쭈어볼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하하.”

참석자들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권오인 또한 최은희의 말에 당연히 웃음을 지었다.

최은희가 웃음이 가라앉자 말을 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모든 한글 교재는 우리 위인전을 기초하여 만들었고, 당연히 그동안 연구되고 재정립된 우리의 역사를 모든 과목에 우선하여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권오인이 말했다.

“너무 우리 것만 찾다 보면 자칫 국수주의(國粹主義)로 변질될 우려는 있겠지만, 지금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좋은 교육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이형구 대장도 적극적으로 찬성의 말을 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조선에서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의 사고가 철저한 사대 모화사상에 물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사고를 완전히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천손 민족의 자긍심을 살릴 수 있는 보다 철저한 민족 교육이 필요합니다.”

김석태가 말했다.

“그래도 너무 지나친 국수주의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명치유신 이후의 일본이나, 2차 대전 당시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극단적인 파시즘은 곤란하다고 생각됩니다.”

우종철 중장이 말했다.

“김 지사님의 말씀은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강화된 민족 교육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조선에는 물론 조선의 문화가 천하제일이라는 사상이 막 일어나고 있을 때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그 저간에는 사대 모화사상에 물든 교육이 깔려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철저한 민족 교육이 필요합니다.”

신중한 성격의 우종철조차도 이렇게 말을 하자 회의장의 분위기가 그쪽으로 몰렸다.

최은희 학장이 말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교수진들 사이에서도 지금 여러분들이 말씀하신 문제를 갖고 많은 시간을 토의하였습니다.”

최성용이 물었다.

“토의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다.”

“우 장군님 말씀대로입니다.”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권오인이 말했다.

“지금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만족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교육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수시로 여기에 와서 교수진들과 토론을 하고 있지만 교수들의 생각도 대부분 저와 같은 생각입니다.”

최은희 학장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권 회장님이 이끄시는 연구회에서 우리의 교육 자료를 검수해 주고 계시고 있습니다.”

참석자들이 당연히 그래야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최은희가 다시 말을 했다.

“지금 조선은 8도와 300여 개 지방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구도 1개 지방에 평균 300명씩을 배정할 계획을 갖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장준하가 말했다.

“일단은 최 학장 말씀대로 그대로 시행을 하시고, 곧 있을 행정 개편에 맞추어 다시 배정을 하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최성용이 물었다.

“2차로 교육할 교사들 선발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최은희가 말했다.

“지금 각 훈련소에서 선발 중에 있는 있습니다.”

최성용이 다시 물었다.

“그들의 인적 구성은 어떻습니까?”

“1기 때도 그렇지만 교사가 될 사람을 선발한다고 하니 양반 출신 백성들 중 조건이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청을 하고 있습니다.”

권오인이 말했다.

“남을 가르친다는 선생이라는 것이 그들이 그동안 배워온 것을 활용도 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는가 보군요.”

최은희가 대답했다.

“그것도 상당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준하가 말했다.

“어찌 되었든 적극적인 동참은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최은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2차로 선발하는 교사들은 그들을 가르칠 교수들이 부족하여 내년 초부터 교원 교육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장준하가 물었다.

“교사들 전공은 어떻게 구분이 됩니까?”

“지난 시대와 마찬가지로 문과와 이과로 구분합니다. 교사들 양성에 있어서 문과는 상대적으로 쉬운데 이과는 교사 양성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일단은 모든 것은 의식 개혁과 백성들 계몽이 우선이니 모든 교사들 교육의 초점을 여기다 맞추는 것은 어떻습니까?”

권오인이 말했다.

“그게 좋을 듯합니다. 기술 인력은 부족한 대로 청진과 군에서 보충을 하고, 지금은 무엇보다 중요한 백성들 의식 교육에 모든 초점을 맞추었으면 합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말을 했다.

장준하가 말을 했다.

“내 생각에도 그게 좋을 듯합니다.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모든 교육의 초점을 의식 개혁부터 하고 나서 차츰 정규 교육을 시작하는 것으로 합시다.”

최은희 교수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남은 육 개월간의 교육은 그쪽으로 주안점을 두겠습니다.”

그러자 이형구 대장이 말했다.

“언젠가 의식 개혁이 되지 않을 정도의 사상 개조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개혁에 부정적인 사람들에 대한 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도 논의했으면 합니다.”

김석태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제주와 연해주에서 교육을 받는 유민들 가운데 일부 양반들 중에는 지금 실시하는 교육에 아주 비판적이고 비협조적인 사람들도 다수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장준하가 처음 듣는 소리에 관심을 갖고 물었다.

“지금까지 그 수가 얼마나 됩니까?”

“백여 명 정도 됩니다.”

“그들은 어떻게 조치하였습니까?”

“사백력의 최오지 광산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장준하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허허, 그거 참. 그동안 그 문제가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김석태 지사가 말했다.

“인원이 얼마 되지 않아 저희 교육단에서 직권으로 조치를 하여서 그렇습니다.”

장준하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자발적으로 넘어온 유민들이라 별문제가 없었지만 이형구 장군 말대로 앞으로 본격적인 본토에서의 교육을 실시하면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반발할 수도 있겠습니다.”

권오인이 말했다.

“충분히 예견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호사를 누려온 양반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을 그대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때 정부 정책에 계속 반발하는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장준하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좋은 제안이 있으면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형구 대장이 먼저 말했다.

“그들에게는 별도의 특별한 정신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김석태가 말했다.

“꼭 그런 강제적이 수단이 필요가 있겠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어차피 도태되어 버릴 텐데요.”

최성용이 말했다.

“우리가 하려는 개혁이 실시되면 상당한 수의 양반들이 기득권 상실로 우리 정책을 드러내놓고 반대를 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뒤에서라도 반대하려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저도 그런 불만 세력들을 그대로 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권오인이 말했다.

“당연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입신양명한 경우도 있지만 좋은 집안에 태어나 부정한 방법으로 과거에 합격을 하여 지금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 또한 상당수에 이를 것입니다. 분명 그들이 불만 세력이 될 것인데, 그들을 그대로 두고 개혁을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우종철도 권오인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권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지금 조선에서 실시하는 과거는 안동 김씨 집권기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타락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권문세가가 아니면 과거에 합격을 했다고 해도 한직이나 외직으로 전전하다 관직을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분명 불만 세력들은 권문세가들 중에서 나올 것인데, 그들이 그동안 누려온 부당한 기득권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불만 세력들에게 철저하고 강력한 정신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력한 제재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말하자 장준하가 말했다.

“내 생각도 그들에게 일정한 정도의 제재는 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와 더불어 부정한 방법으로 호사를 누려온 것에 대한 경제적인 제재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장준하까지 나서서 말을 하자 결론이 났다.

이형구가 말했다.

“합하께서도 말씀을 하시니 결론을 냅시다.”

최은희 교수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을 위해 정신 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결정을 보고, 그 정신 교육에 대한 실시 방법은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하겠습니다.”

이것이 그 악명 높은 조선의 삼청 교육대가 만들어진 이유이다.

본래 불만 세력을 교육시키는 정신 교육에는 정식 명칭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체력 훈련을 담당하던 조선 출신 교관들이 아주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것을 본 가온 출신 교관들의 입에서 나온 ‘삼청 교육대보다 더 훈련이 가혹하다’라는 말이 나오면서 삼청 교육대라는 말이 삽시간에 번져 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훈련이 아주 힘들다고 이미 뿌리박힌 사고를 바꾸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후일 다시 거론하겠지만, 여기서 훈련받은 기득권층 수만 명은 결국 가온의 개혁 방침에 동참을 하지 못하고 개척지 최오지의 광산으로 보내져 대부분이 거기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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