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86/101)

변화(變化)

1793. 12. 1. 창경궁 춘당대(春塘臺).

이날은 조선의 군(軍)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날이다. 드디어 새로 채택된 군복이 보급된 것이다.

별무사에서는 유구의 나염 공장과 봉제 공장에서 만들어진 군복을 장용영의 외영과 내영, 그리고 용호영의 전 병력에게 보급하였다.

이날 창경궁 춘당대에서는 대신들이 참석한 열병식이 있었다.

이 열병식에는 화성에서 올라온 장용외영 병력 1,000명과 하성호 중령이 참석을 했다.

대신들 사이에서는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조총이 별무사에서 같은 무게의 금을 주고 구입한 것이라는군.”

“그래? 도대체 별무사에 돈이 얼마나 있는 거야?”

“외국과의 교역을 독점하는 계열사인 가온 무역이 발화기 등 새로 만든 제품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고 들었네.”

그러자 옆에 있던 대신이 말했다.

“저 군복도 영국이라는 나라에서 만들어진 천을 유구에서 만들어 왔다는구먼.”

“그래?”

“그리고 지금 저들이 입고 있는 옷이 예복이라고 하더군.”

“그건 지난 가을 편전에서 본 적이 있으이.”

“어쨌든 화려하군.”

대신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정조의 귀에까지 들려왔으나 모르는 척했다.

하성호가 앞으로 나왔다.

“부대 차렷!”

착!

“주상 전하께 대하여 받들어 총!”

“충! 성!”

장병들은 거의 악에 받친 소리로 춘당대가 떠나가도록 소리쳤다.

그러자 하성호도 뒤로 돌고 나서 고개를 들고 거수경례를 올렸다.

“충. 성.”

정조는 이미 한 번 군례를 받은 적이 있어서 바로 답례를 했다.

그러자 절도 있게 손을 내린 하성호가 뒤로 돌아서더니 구령을 했다.

“세워 총!”

착!

절도 있고 일사불란하게 소총들이 내려졌다.

오와 열이 정확히 맞추어지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외영은 가히 주변을 압도할 정도였다.

그러자 대신들 사이에서, 특히 서유대 등 고위급 무관들 사이에서는 술렁임이 들려왔다.

“저들이 복창을 하는 것이 새로운 인사법인 모양이군.”

“우리가 하는 인사법과는 많이 다른데?”

“양이들이 하는 인사법 아닌가?”

“그래도 행동 통일을 하는 데는 그만이군.”

“하긴, 군대는 무엇보다도 기강이 서야 하는데 참 보기는 좋네.”

“아주 훈련이 잘되어 있네?”

“저러니 지난번 난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지 않았겠나.”

“근데 저 조총이 우리 부대에는 언제 보급이 되려나.”

“훈국(훈련도감)의 서 대장도 예산이 없어 포기했다고 하더군.”

“그것도 있지만 서양에서 들여오는 데 일 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더군.”

“별무사와 장용영이 이제는 아예 전하의 친위대가 되었네.”

“어쨌든 대단하네. 저 절도 있는 행동을 보게.”

무관들 사이에서도 설왕설래하였지만 정조는 일체 모른 척했다.

하성호 중령이 다시 구령을 했다.

“지금으로부터 분열을 시작한다. 각 부대 분열!”

“분열!”

예하 부대장들이 동시에 복명복창 소리가 들리더니, 곧 부대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장용외영은 절도 있게 부대 이동을 마치고는 곧바로 분열을 시작하였다.

하성호는 분열에 참석하지 않고 정조의 옆에서 분열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부대 분열 앞으로 가!”

척! 척! 척! 척!

곧 첫 번째 부대가 단상에 도착했다.

“우로 봐!”

“충! 성!”

하성호가 정조에게 말을 했다.

“전하, 손을 들어 답례를 해주시면 되옵니다.”

그 말에 정조가 손을 들어 답례를 해주었다.

무관들이 또 수군거렸다.

“저게 행군 중에 하는 인사법이라고 만든 것인 모양이군.”

“그런가 보네. 맨 오른 줄은 그대로 앞만 보고 가네?”

“아마도 줄을 맞추려고 그러는 것인가 보군.”

무관들은 일일이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자신들 스스로 올바르게 알아 나가고 있었다.

정조는 무관들이 그렇게 알아 나가는 것에 속으로는 흐뭇한 생각을 하며 지나가는 부대가 군례를 올릴 때마다 일일이 손을 들어 답례를 해주었다.

이윽고 모든 분열이 끝났다.

춘당대 앞에는 다시 장병들이 처음과 같이 도열해 있었다.

하성호가 단상을 내려가서 앞에 섰다.

하성호가 다시 구령을 했다.

“부대 차렷.”

착!

군화 소리가 1,000명의 발소리답지 않게 한 소리를 냈다.

“주상 전하께 대하여 받들어 총.”

“충! 성!”

장병들이 경례를 하자 하성호가 곧 뒤돌아 서서 정조를 보고 거수경례를 했다.

“충. 성. 분열 끝.”

정조가 손을 들어 답례를 하자 하성호가 손을 내리고는 곧 뒤돌아서서 구령을 했다.

“세워 총.”

착!

분열식이 끝이 났다.

하성호가 다시 구령을 했다.

“지금부터 행진을 한다. 모두 우로 어께 총.”

장병들이 소총을 어께에 올리자 하성호가 말했다.

“부대 앞으로 가.”

척. 척. 척. 척. 척.

조선에서 처음으로 군대의 행진이 한성에서 실시되었다.

이들은 창경궁을 나와 시전이 모여 있는 운종가를 지나 숭례문까지 가는 한성을 가로지르는 행진을 하였다.

한성의 백성들은 이들을 보기 위해 행진을 하는 길로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일종의 시위였다.

장준하는 정조와 상의하여 새로운 군복이 보급됨과 동시에 친위군으로 지칭되는 장용외영의 군세를 백성들과, 특히 대신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분열식과 행진을 계획했던 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관보 게시판을 통해 이미 한성 일대에 알려져 있었고, 국정원 요원들 또한 백성들이 모이는 곳마다 침투하여 구전으로 전하였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12월 초하루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백성들이 운집한 것이다.

“참 멋진데?”

“그래도 옷이 조금 이상하네?”

“양이들이 입는 옷이라는데, 맞는가?”

“양이들의 옷이든 아니든 군복인데 전투를 할 때 유용하기만 하면 되지.”

“하긴, 지난 군복은 너무 화려해.”

“그래, 호복(胡服)이든 양복(洋服)이든 군복다우면 되지 뭐.”

백성들이 처음 제복을 입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한성 일대를 행진하고 있는 장용영 부대를 보고는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그러자 다른 백성이 말을 했다.

“저들이 지난번 아전들의 난을 진압한 부대가 아닌가. 참으로 위풍당당하구먼.”

“그래, 맞아.”

그러자 다른 백성이 말을 거들었다.

“그때 신하들이 저들에게 상급을 내려야 한다고 주청을 드렸는데, 저들은 상급보다는 주상 전하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수천금의 상급보다 더 좋다고 하였다네.”

“그래? 참 대단한 부대로구나.”

“그러니 조선 제일의 부대가 아닌가.”

“이 사람, 뭘 모르네.”

“아니? 내가 뭘 모른다는 건가?”

“저 부대는 조선 제일이 아니라 천하제일이야.”

“맞아, 맞아. 그런 정신이라면 천하제일의 부대야.”

“우리 주상 전하께서도 이제는 저런 친위군의 비호를 받으시니 앞으로는 큰 걱정이 없으시겠네.”

“그래, 우리도 저들을 응원해 주세.”

“그러세.”

그러면서 백성들은 스스로 손을 흔들며 장용외영 부대를 환영해 주었다.

장용외영 부대는 이렇게 백성들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한성을 가로질러 행군을 했다.

숭례문을 나온 부대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곧바로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이 행진한 끝은 마포나루였다.

마포나루에는 십여 척의 판옥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하성호가 다시 구령을 했다.

“전원 질서 있게 판옥선에 탑승을 실시한다. 시작하라.”

하성호의 구령과 함께 장병들이 일제히 탑승을 시작했다.

이들이 가는 곳은 여의도였다.

그동안 여의도는 제방 공사를 마치고 장병들이 머물 군영 공사까지 끝내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의나루에 도착한 장용외영군은 곧바로 하선을 하고는 새롭게 지어진 군영으로 들어갔다.

새롭게 지어진 군영은 화성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부대 막사와 같이 침상이 설치된 군영이었다.

모든 병사들이 자신에게 배정된 막사로 들어가자 하성호는 부대 본부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성국 차장과 서이수 전수를 만났다.

강성국이 먼저 손을 내밀어 인사를 했다.

“오늘 고생했네.”

손은 맞잡고 악수를 마친 하성호가 말했다.

“아닙니다.”

강성국이 웃으며 말했다.

“한성을 가로지른 소감이 어떤가?”

“대신들의 놀란 모습과 백성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니 본부에서 왜 이런 기획을 했는지 확실히 알겠습니다.”

“반응이 좋았던 모양이군.”

“아마도 대신들의 속이 한참 울렁거릴 것입니다.”

서이수가 말했다.

“그럴 것입니다. 지난번 난을 진압했다고는 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인데, 이렇게 새로운 군복을 입고 한성을 행진하는 장용외영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한 대신들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하성호가 말했다.

“서 전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연도에 나와 있는 백성들의 얼굴을 보면 그들의 타들어가는 속이 훤히 보입니다.”

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릇 군왕이란 덕도 있어야 하지만 힘도 있어야 하네. 어차피 지금의 조정의 주도권은 주상 전하께서 쥐고 있지만 이렇게 힘까지 겸비한 것을 보고는 서 전수 말대로 가슴이 내려앉는 사람이 많을 것이야. 특히 노론 벽파 대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세 사람은 그렇게 마주 보며 대소를 터트리지는 않았지만 통쾌한 표정으로 환한 웃음을 마주 지었다.

1793. 12. 1. 창덕궁 선정전.

오전의 기분 좋은 열병식을 마치고 편전으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오후 정사를 보기 위한 정조의 앞에는 윤대(輪對)를 하는 호조정랑 중 한 사람인 정동교(鄭東敎)가 들어와 있었다.

정동교가 정조에게 아뢰었다.

“근래에 돈이 매우 유통되지 않는데, 그 폐단을 바로잡는 방도는 돈을 더 주조하는 데에 있으나 구리와 주석이 아주 귀합니다. 지금 만일 1문(文)이 10전(錢)에 해당하는 돈을 주조하되, 문마다 5, 6돈쭝으로 정한다면 상평통보(常平通寶) 1냥에 들어가는 재료를 가지고 십 전에 해당하는 돈 20여 문을 주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비단 돈이 유통되지 않는 폐단만 바로잡는 방도가 될 뿐 아니라, 경비에도 당연히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돈의 이름을 십전통보(十錢通寶)라 하고 상평통보와 함께 유통시키면 참으로 공사(公私) 양쪽이 모두 편리할 것이니, 묘당에 명하여 품처하도록 하소서.”

정조는 정동교의 의견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온 은행권 은화(銀貨)를 발행한 이래 화폐의 사사로운 주조를 절대 하지 못하게 금하고 있을 때 호조정랑이 윤대에서 이를 거론한 것이다.

정조가 말했다.

“그대의 말은 일견 일리가 있으나 화폐 주조에 관한 일이니 잠시 기다리라.”

그러면서 정조는 여의도로 사람을 보내 별무사 전수 서이수와 가온 은행 최영수 행장을 편전으로 불렀다.

편전으로 온 두 사람을 보고 정조가 말했다.

“그대들은 호조정랑의 의견에 대해 말을 해보라.”

호조정랑이 오전의 주장을 다시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서이수가 말했다.

“이는 화폐 주조에 관한 민감한 문제이니 당사자인 가온 은행장에게 직접 여쭈시기 바랍니다.”

정조가 말했다.

“그래, 그게 좋겠소. 가온 은행장이 말해 보시오.”

“예, 전하. 신은 반대이옵니다.”

호조정랑이 말했다.

“아니, 같은 양으로 10배의 가치를 지닌 주화를 주조하는데 왜 반대를 하는 것이오?”

최영수가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각처에서 주화를 남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전을 재산의 가치로 생각하여 집 안에 숨겨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상 전하의 전교로 지난번부터 가온 은행권이 대대적으로 발행되고 있고, 전국에 가온 은행 지점들이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지금 권문세가들이나 양반가에 수장되어 있었던 퇴장화폐(退藏貨幣)들이 본격적으로 가온 은행에 예치가 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럴 때 실질 가치보다 10배의 가치를 지닌 십전통보가 발행된다면 그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절대 그러한 주화를 발행하는 것은 물가 안정을 위해서도 불가한 일입니다. 지금의 주화는 실 질가치를 지닌 주화여야 합니다. 명목 화폐는 가온 은행권으로 충분하옵니다.”

최영수 은행장이 나서서 절대 불가의 입장을 보이자 정조가 호조정랑을 보고 말했다.

“호조정랑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렇다면 이제는 다른 곳에서도 주화를 발행할 수 없사옵니까?”

그 말에 정조 대신 최영수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가온 은행에서 발행하는 주화는 위조와 변조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실질 가치가 있는 은(銀)을 본위로 주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화는 이득을 취하려고 발행을 하여서는 안 되고 물산을 장려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목적으로 발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호조정랑 정동교가 다시 말했다.

“우리 조선은 자원이 부족하여 구리와 주석이 상당히 귀하오이다. 그런데 화폐를 발행하면서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 아니겠소?”

최영수 행장이 말했다.

“지금까지 백성들이 화폐에 대한 불신으로 지폐(紙幣)사용을 꺼려하고 주화(鑄貨)를 사용하려고 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습니다만, 얼마 전부터 서서히 변하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 백성들이 가온 은행권에 대한 신뢰가 쌓여 지폐 사용이 늘어난다면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도 막을 수 있습니다.”

정동교가 다시 말했다.

“지금까지 저화(楮貨) 사용을 권장해 왔으나 백성들의 불신과 물물 교환에 익숙한 습관으로 활성화되지 못한 것이 현실 아니오?”

최영수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가온 은행권은 다릅니다. 지방 공무원들의 급여와 중앙 관리들 급여를 가온 은행권으로 지급한 지 벌써 1년입니다. 처음에는 바로 은행에 와서 은화나 동전으로 바꿔가던 것이 이제는 그대로 저축을 해두거나 필요한 때 찾는 정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호조정랑께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정동교가 아무 말 없이 인상을 썼다. 그 자신도 최영수 행장이 말한 그대로 겪고 있기 때문이다.

“끙.”

그런 정동교를 보고 최영수가 말했다.

“전하, 이제 막 은화와 지폐의 사용이 자리를 잡고 있사옵니다. 앞으로는 불필요한 화폐 발행은 철저히 차단을 하여야 할 줄 아옵니다.”

그 말에 정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기존에 발행된 상평통보는 그대로 유통시키고 있소?”

최영수가 대답했다.

“저희 가온 은행에서는 지금 전국 각 지점에서 상평통보와 같은 이전에 발행된 화폐를 신화폐로 무조건 교환을 해주고 있사옵니다. 이 상태로 일, 이 년만 지나면 이전에 발행한 모든 화폐의 교환이 끝나리라고 예상됩니다.”

정조가 다시 말했다.

“그 후 이전 화폐의 유통을 중지시키면 되겠군.”

최영수가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그렇게 되면 퇴장화폐들은 당연히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조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오. 최 은행장이 돌아가 그에 대한 자세한 일정을 만들어 보고를 하도록 하시오.”

“알겠사옵니다, 전하.”

정조가 정동교를 보고 말했다.

“호조정랑은 들으라.”

“예, 전하.”

“지금까지 들어본 바를 말해 보라.”

“신의 생각이 짧았나 보옵니다.”

“그대의 생각이 나쁜 것은 아니오. 하지만 지금의 조선으로 봐서는 득보다는 실이 훨씬 더 많은 시책이오. 앞으로 화폐의 발행 문제는 일체 가온 은행에 일임을 할 것이니, 호조에서도 이에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바라오.”

“예, 전하.”

정조가 밖을 보고 말했다.

“도승지를 들라 하라.”

정조의 명이 있자 곧바로 도승지 이조원(李祖源)이 들어왔다.

“찾아 계시옵니까, 전하.”

정조가 도승지에게 하교를 했다.

“앞으로 모든 화폐의 발행 및 관리는 가온 은행에서 관장하도록 하는 가온 은행법을 만들도록 각 부처에 하달을 하라.”

이조원 또한 노론이기는 하였지만 당파를 떠나 정조의 충직한 김이소와 같은 인물이었다.

이조원이 말했다.

“앞으로 모든 화폐의 발행을 엄금하는 것이옵니다.”

“그렇다. 이제부터 조선의 화폐는 가온 은행권으로 통일을 하도록 하라.”

“그럼 기존의 상평통보는 어떻게 되는 것이옵니까?”

정조가 말했다.

“내년 말까지를 한시적인 기간으로 두고 모두 가온 은행권으로 교환을 해준다는 전교를 내리라. 그렇게 되면 백성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도승지가 대답했다.

“감영과 군영에서 주조하는 것도 아니 되옵니까?”

“일체 엄금하도록 하라.”

“알겠사옵니다, 전하.”

도승지 이조원은 정조의 하교를 교지로 만들기 위해 서둘러 편전을 나섰다.

이날 정조의 하교는 곧 전 조선의 관보 게시판과 신문을 통해 전국으로 알려졌다.

아직은 1년이라는 시간이 있어서인지 백성들의 동요는 거의 없었지만, 그동안 은행도 믿지 못하고 광 속에 주화를 꼭꼭 숨겨두었던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은 일이 시작되자 당황해했다.

이러한 돈은 대부분이 정치 자금 등 비자금으로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돈이거나, 지방의 토호들이 그동안 착취를 하여 숨겨두었던 돈이 대부분이라 밖으로 내놓기가 상당히 곤란한 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와 함께 적극적으로 화폐의 유통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은 본위제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장준하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조선의 금은 광산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정조에게 부탁하여 잠채를 철저하게 금하도록 하였고, 국정원에도 지시하여 이를 특별히 감시하도록 하고 있었다.

1793. 12. 20. 여의도 신문사.

짝짝짝짝짝~

신문사에서 현판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한성일보’였다.

그동안 신문은 장족의 발전을 했다.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상인들, 그리고 양반들의 정보 획득 욕구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여기에 관보 게시판이 활성화되면서 일반 백성들의 신문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정착이 되자 드디어 창간된 지 1년여 만인 오늘 매일 발행하는 쾌거를 이룩하게 된 것이다.

이날 현판식과 더불어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이 기념식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왔다.

신문사 사장 이긍익(李肯翊)과 주필 한치윤(韓致奫), 그리고 30여 명의 직원들로 출범한 한성일보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늘어나 10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 기념식에는 조정에서 정조를 대신해 채제공이 참석하였고, 특이하게 예조판서도 참석을 했다.

이긍익이 기념식 축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올랐다.

“먼저 바쁘신 정무에도 이 자리를 빛내기 위해 찾아주신 영부사 대감과 예판 대감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시작된 축사는 그간 신문의 위상 제고와 백성들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일간 신문으로 발전한 것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며 마지막으로 이긍익이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론직필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사실에 입각한 기사만을 쓸 것을 내외 귀빈들에게 약속드립니다.”

이긍익의 축사가 끝이 나자 엄청난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의 축사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것은 일간 신문 발행을 기념하여 참석자들에게 위공 손수레 공장에서 내놓은 10대의 손수레를 경품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처음 있는 이러한 경품 행사는 주민들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기념식을 마치고 즉석에서 추첨을 하였고, 여기서 당첨된 사람들은 마치 오늘날 승용차에 당첨된 것보다 더 기뻐하는 모습들이었다.

기념식을 마치고 10대의 경품을 타서 끌고 가는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과 그것을 부러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채제공과 한성일보 사장 이긍익과 한치윤, 그리고 별무사 전수 서이수가 그러한 장면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조선의 1793년에는 도처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화폐의 활성화였다.

작년부터 발행을 시작한 화폐는 금년 초부터 모든 공무원들의 급여를 화폐로 지급하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차츰차츰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가온이 조선에 온 지 4년이 지난 지금 직접적인 개입도 없이 무역과 금융만을 정비했는데도 누가 보아도 확연히 알 수 있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1793. 4. 시비르 왕국.

조선 본토가 변화를 시작하는 사이 조선과 밀접한 두 곳에서도 많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종찬 중령이 자신의 이름으로 명명된 이종찬시를 벗어나 강 건너에 있는 이르쿠츠크를 방문한 것은 지난 4월 초였다.

“어서 오십시오.”

“국왕 전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저희들은 그동안 훈련에 전념하느라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비르 왕국의 푸가초프 국왕은 이종찬을 보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환대했다.

처음에 약간의 혼란을 제외하고는 시비르 왕국은 곧 안정을 찾았다.

그동안 톰스크까지의 시들이 항복을 해와 병력도 꾸준히 증강되어 20,000명에서 출발한 시비르 군이 그동안 1.5배인 30,000명으로 늘어났다.

대부분이 러시아의 정치적 압박으로 유형수가 된 사람들이라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은 그 누구보다 높아 생각보다 많은 수의 자원 입대자가 생겨났다.

그동안 확장된 시비르 왕국의 영토는 곧바로 안정을 되찾았으며, 특히 야삭(러시아식 현물 공물)이 폐지된 후 가온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상설 모피 시장은 시비르 왕국에게 엄청난 수입원이 되었다.

가온에서는 시비르 왕국의 국경 지대 순찰을 위해 특별히 비행선 1척을 배정하여 국경 감시에 들어가 있었다.

오늘은 드디어 서진을 하는 날이었다.

시비르 왕국의 군제는 가온의 군제를 그대로 따라했다. 단지 병력이 적어 2개 사단을 1개 군으로 하여 2군을 편성하였다.

전 네르친스크 시장이었던 세르게이 이바노프 남작에게 1군을 맡기고 자신이 직접 2군사령관과 총사령관을 겸직하였다.

“훈련이 많이 힘드셨죠?”

세르게이 이바노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이고,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무슨 교관이 그렇게 악독하던지.”

이종찬이 미안한 듯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러게 남작 각하께서는 빠지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말씀을. 국왕 전하께서도 일반 병사들과 같이 훈련을 받는데 제가 빠질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푸가초프 국왕이 웃으며 말했다.

“이봐, 이바노프. 지금 그 말은 나 때문에 훈련받았다는 핑계로 들리네.”

이바노프가 말했다.

“사실 전하 때문에 훈련받은 게 맞습니다.”

그러자 푸가초프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뭐라?”

이바노프 남작은 그에 상관없이 하소연 비슷한 말을 내쏟았다.

“사실 맞는 말 아닙니까? 세상에 국왕께서 몸소 훈련을 받는다는데 빠질 간 큰 위인이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와하하하하하!”

푸가초프와 이종찬이 마주 보며 대소를 터트렸다.

그랬다. 지난겨울 시비르 왕국을 건설하고 주변 도시의 항복을 받고 난 후 그 추운 겨울 동안 도저히 훈련이 힘들 때를 제외하고는 이르쿠츠크의 군사 훈련장에는 훈련병들의 고함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종찬도 이런 열성에 감동하여 특별히 연해주 총독께 품신하여 질 좋은 고기들을 공수해 주기도 여러 번 했다.

그 바람에 이종찬시에 주둔해 있는 이종찬 부대의 병사들도 쉴 틈이 없었고, 이러한 훈련 열풍은 전 사백력은 물론 연해주에도 파급되어 지난겨울은 말 그대로 혹한기 훈련을 톡톡하게 받았다.

이종찬 또한 지난겨울 훈련만을 하며 한겨울을 넘길 정도였다.

이종찬이 푸가초프를 보고 말했다.

“그래, 준비는 잘되었습니까?”

푸가초프 국왕이 대답했다.

“지난번 군은 훈련이 말을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정도입니다. 한번 보시죠.”

이종찬이 푸가초프의 손짓으로 훈련장에 도열한 군대를 바라보았다.

“호오~ 대단합니다.”

이종찬도 솔직히 깜짝 놀랐다.

“이렇게까지 잘 훈련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국왕 전하의 말씀대로 훈련이 말해 주는군요.”

이바노프 남작이 말했다.

“말도 마십시오. 가온의 군사 교관보고 욕하지 않은 장병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이고, 생각만 해도 살 떨리네.”

이바노프 남작이 슬라브인 특유의 과장된 몸짓으로 이런 소리를 하자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와하하하하하.”

이바노프의 말대로 가온 출신 훈련 교관들은 말 그대로 독사였고, 독종이었다.

얼마나 이들을 잡아났으면 교관이라는 한국말만 들어도 이를 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 무렵부터 서서히 시비르 왕국에는 기존의 러시아 어와 함께 조선어와 한글을 배우려는 열풍이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대부분이 우랄알타이 어계로 아주 쉽게 말과 글을 배우고 익혔다.

이종찬이 물었다.

“우리 한글과 우리 조선의 말은 보급이 잘되고 있습니까?”

푸가초프가 말했다.

“나 같은 경우도 간단한 의사 표시는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불원간 상당한 수준으로 주민들의 구사력이 높아지고 또 늘어날 것입니다.”

“이바노프가 말했다.

“우리 같은 슬라브 인들은 솔직히 조선의 말을 익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일단은 한글부터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종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습니까?”

이종찬은 그러면서 시비르 군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군의 맨 앞에는 가온에서 파견 나온 교관들이 빨간 모자를 쓰고 도열해 있었다.

이종찬이 말했다.

“교관들이 저기 있군요.”

이바노프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상하죠? 훈련 때는 그렇게 죽이고 싶은데 막상 훈련이 끝나니 왜 고맙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푸가초프가 말했다.

“남작도 그런 생각이 드는군. 나도 훈련을 마치고 나서 우리 군을 위해 힘쓴 교관들이 고맙다는 생각이 드네.”

이종찬이 말했다.

“훈련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실전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이바노프도 농담을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이종찬이 다시 물었다.

“국왕 전하께서는 굳이 병력을 이끌고 가실 필요까지 있습니까?”

푸가초프가 부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 왕국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입니까? 우리 백성들이 피땀 흘리고 고생하는 것을 가온에서 도와주어서 만든 것이 아닙니까? 이제 새로운 땅을 개척하려고 하는데, 국왕이 된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습니까?”

이바노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도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국왕 전하께서 선봉에 선다는 것을 우리들이 억지로 막아 그나마 2군을 이끌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종찬이 푸가초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셨습니까?”

푸가초프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선봉에 내가 서야 하는데 아쉽군.”

그 말에 이바노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졌다는 듯 말을 했다.

“우리 국왕 전하를 누가 말리겠나.”

푸가초프와 이바노프가 그렇게 말을 주고받는 사이 드디어 병력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베리아의 특성상 전 병력이 모두 기병인 부대의 출발은 장관이었다.

푸가초프가 말했다.

“이 중령, 우리도 이제 가야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이종찬은 그 자리에서 거수경례를 하며 그들의 장도를 빌어주었다.

푸가초프와 이바노프도 답례를 하고는 곧 옆에 있던 말에 올랐다.

히히히히힝~

푸가초프의 말이 앞발을 높게 들더니 곧 대열 쪽으로 달려갔다.

이바노프는 말 위에서 다시 이종찬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 말을 돌려 뒤따라갔다.

시베리아의 4월은 얼었던 땅이 녹기 전이라 이동이 그나마 좋은 시기였다.

땅이 녹고 나면 상당 기간 진창으로 변해 말로도 이동이 상당히 곤란한 곳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은 날이 풀리자 바로 부대를 최전선으로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일차 목적지인 모스크바에서 3,500km 떨어진 톰스크까지 이동을 하려면 한 달간의 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이들은 톰스크에서 부대를 재정비하고는 곧바로 오비 강을 넘어 서진할 계획이었다.

이들의 여정은 긴 시간이 걸렸다.

이들이 우랄 산맥까지 도착한 것은 이로부터 3년이 지난 1796년 말이었다.

그것도 가온군이 막판에 항공 지원을 나가지 않았다면 무너져 버릴 힘들고 고된 서진이었다.

이종찬이 떠나가는 시비르 왕국의 부대를 환송하고는 곧바로 안가라 강을 건너 이종찬시로 돌아왔다.

건축 현장 같은 시가지를 지나 연대 본부로 돌아온 이종찬은 곧바로 시비르 왕국의 서진을 타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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