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101)

공작(工作)

1793. 5. 20. 10:00 가온 본부 대회의실.

각지의 총독들과 관련자들이 모두 참석하는 비상 대책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는 연해주와 백제(유구), 가야(호주)와 고구려(북미) 총독과 이번에 새롭게 총독부가 설립된 해남도와 홍콩을 관장하는 해남 총독 등… 각주의 총독들이 모두 참석했다. 부여주(캐나다 지역)는 아직 현지 업무가 산적해 있고, 인구가 너무 적어 이번 회의에서 제외되었다.

나머지 참석자들은 늘 참석하는 인원 그대로였다.

대회의실에는 직사각형으로 좌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각 지역 총독들은 회의에 들어가기 전 대기실에 모여 환담을 나누었다. 이들이 모두 한자리에 자리한 것도 이들이 총독이 된 후, 처음이었다.

대기실에는 최성용이 이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먼저 가장 선임인 송기훈 고구려 총독이 후배인 김영훈 가야 총독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김 총독, 오랜만일세.”

“정말 오랜만입니다. 총독에 취임하시고 처음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러자 송기훈 총독은 싫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이 사람 통신으로 인사했으면 되었지 새삼스럽게 무슨 인사는~”

그러면서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런 모습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던 김진만 연해주 총독이 최성용을 보고 말했다.

“우리 총독들이 모두 모인 것도 처음이네?”

최성용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김진만이 말했다.

“이번에 해남 총독에 취임한 나 총독이 가장 막내일세.”

그러자 나영철 해남 총독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제일 막내인가 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들.”

그러면서 네 명의 선임 총독에게 인사를 하자, ‘와!’ 하고 대기실에서는 웃음꽃이 피었다.

한참을 웃고 난 후 김진만이 다시 말했다.

“한잔 사셔야지?”

나영철이 그 말에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소관이 한잔 사겠습니다.”

“그래? 오늘 안동 소주로 진하게 한잔하세.”

그러자 송기훈 총독이 말했다.

“최 사장.”

“예, 총독님.”

“이제 이전에 마시던 소주가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러자 주당으로 알려진 김진만이 말했다.

“맞아! 최 사장, 소주는 언제 나오나? 아이고~ 나는 그 독한 보드카에 속 다 내려앉았네.”

그러면서 손을 배로 가져가 슬슬 문지르자 또 한 번 ‘와!’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최성용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른 일이 너무 바빠서 소주는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김영훈 가야 총독이 말했다.

“이봐, 최 사장 소주도 수출품이야~ 꼭 위스키와 와인이 주류 시장을 장악하도록 놔둘 생각인가?”

최성용이 직계 선배인 김영훈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생산하도록 해보겠습니다.”

김진만이 다시 물었다.

“그래, 우리를 이렇게 부른 것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일 것인데. 무슨 일인가?”

최성용이 대답했다.

“조선에 들어가는 일이 앞당겨져서 그렇습니다.”

그러자 모든 총독들의 관심이 최성용에게 집중되었다. 그런 시선을 받으며 최성용이 막 말하려 할 때 대기실 문이 열리며 장준하가 들어왔다. 대기실을 들어서며 장준하가 말했다.

“여~ 오랜만일세.”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앉아 있던 총독들은 모두 일어나 인사를 했다.

장준하는 그런 총독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악수를 하며 그들을 반겼다.

인사를 마치자 장준하가 물었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나?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네?”

그러자 최성용이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장준하도 웃으며 말했다.

“맞아~ 최 사장, 나도 소주가 그립네.”

그러자 최성용이 난감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이거~ 다른 것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소주를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러자 장준하가 다시 말했다.

“그래, 가장 먼저 만든 소주는 나에게 주게!”

그러자 김진만이 말했다.

“아니! 합하, 가장 먼저 신청한 사람은 접니다. 최초 소주는 소관이 먼저 한잔해야 합니다. 이것만은 절대 양보 못합니다.”

그러자 장준하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이 사람~ 소주 한 병가지고 반항하나?”

그러자 김진만도 웃으며 말했다.

“아, 합하시라도 그것만은 절대 양보 못합니다. 아~ 생각만 해도 뱃속에 술ㅠ 벌레가 꿈틀거리네. 쩝.”

김진만이 손으로 배를 쓸면서 혀로 입술을 훔치자 그것을 보고 있던 총독들이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최성용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것이 진짜 우리의 모습이야. 얼마나 여유만만하고 자신감이 넘쳐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가.’

최성용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총독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자심감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상관인 위국공에게도 기가 죽지 않는 당당함이 보기 좋았다.

최성용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장준하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봐, 최 사장.”

“아! 예, 합하.”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

“아니, 잠시 다른 생각 좀 하느라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장준하가 웃으며 말했다.

“이런 사람하고는 그런데 아직 청진에서는 도착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곧 도착할 것입니다.”

최성용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세 명의 민간인이 양복차림으로 들어왔다.

장준하가 그들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고, 백 박사님~ 오랜만입니다. 방금 최 사장에게 언제 오시나 하고 묻던 참이었습니다.”

백기소 박사가 장준하가 내미는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방금 전 도착했습니다.”

그런 백기소를 장준하가 환대하며 말했다.

“그래요, 잘 오셨습니다. 오랜만에 내려오시는 것이지요?”

“예, 그러고 보니 1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장준하는 그런 백기소와 동행한 단장들을 위문하고는 총독들과 함께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 안에는 이미 기존의 참석자들이 모두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모두가 인사를 하느라 떠들썩한 풍경을 연출을 하더니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모두 자리에 착석을 하였다.

장내가 질서를 찾아가자 회의 진행을 맡은 이성호 대령이 마이크를 잡고는 진행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일어나셔서 정면에 있는 태극기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회의 참석자들은 자리에 일어났다. 잠시 후 국민의례를 마치고 장준하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비상 대책 회의를 하는 것은 갑작스런 변동 사항이 있어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가온 무역의 최성용 사장에게 듣겠습니다.”

그러자 최성용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성호가 서 있던 자리로 나갔다.

최성용이 자리에 서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제가 이번에 출장을 다녀 온 후 만든 영상 기록물은 여러분들도 모두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최성용은 그동안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참석자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가온에 있는 참석자들은 이미 장준하에게 상황에 대한 말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총독들과 청진의 단장들은 상당히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최성용의 설명이 끝나자 군에서 가장 선임인 현역 상장이며 고구려총독인 송기훈이 먼저 말했다.

“대단한 반전입니다. 정조가 그렇게까지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백기소 박사도 말을 했다.

“청진에서 그 영상 기록물을 봤을 때 조선의 관리들의 반응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됩니다. 보고를 들으셔서 아실지 모르시겠지만 최 사장이 출장을 마치고 본토로 돌아오는 길에 청진에 들러 함경도 관리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백기소 박사는 당시 박지원을 비롯한 조선관리들 반응을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었다.

백기소의 설명이 있자 참석자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들 또한 영상 기록물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성용이 자리에 앉자 장준하가 다시 말했다.

“내년 9월입니다. 이제부터 모든 체재를 여기에 맞추어야 합니다. 군 문제를 비롯해 제반 시나리오를 허심탄회하게 의논하였으면 합니다.”

장준하의 말이 있자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되었다.

회의는 이날부터 사흘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군 문제부터 주민들 교육 문제 그리고 양반들의 의식 개혁 문제에 이르기까지 각자 업무를 분담해 논의를 했다.

사흘간에 걸친 대책 회의를 마치고 자신들의 임지로 돌아간 것이 5월 22일이었다.

물론 첫날 저녁 해남 총독이 주최하는 술자리가 조촐하지만 뜻 깊게 진행된 것은 물론이었다.

장준하는 이러한 회의 결과를 즉각 정조에게 알렸다. 장준하는 정조에게 이미 회의에 대한 것을 미리 알려 놓았었다.

그날 밤이었다. 장준하가 정조와 교신을 했다.

“전하, 신 장준하입니다.”

―그래요, 회의는 잘 끝냈습니까?

“그렇습니다. 전하의 하교대로 내년 9월 중에 결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정조가 물었다.

―각지의 총독들은 모두 참석을 했나요?

장준하가 대답했다.

“예, 전하 그들에게 전하의 결심을 알려주자 모두 쌍수를 들어 환영했습니다.”

―참으로 다행한일입니다.

“그리고 전하.”

―말씀하시오.

장준하가 정조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공작을 이제 시작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장준하의 말에 정조가 대답했다.

―안 그래도 과인은 며칠 후 조정의 인사를 단행하려고 하오.

“예, 미리 당사자를 만나 의중을 물어보시려고 하십니까?”

정조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이라 생각되오. 그동안 과인에게 더할 수 없는 충정을 보여 왔지만 이 사안은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는 것이라 당사자의 의중을 꼭 한 번은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그렇게 하십시오. 전하.”

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앞일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교신을 마쳤다.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장준하는 문득 뒷목이 뻐근해짐을 느꼈다. 기지개도 킬 겸 장준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면에 있는 창으로 갔다.

여전히 항구 쪽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장준하는 문득 자신들이 이곳에 온 것이 혹 우리 민족을 살리기 위한 하늘의 보살핌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최성용은 가온 무역을 맡아 아주 훌륭히 성장을 하고 있었고, 계획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자신의 나이가 50대 후반이라고 생각하니 이제 은퇴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벌써 내 나이가 그렇게 되었나. 이 몇 년간은 나이도 잊고 정말 정신없이 살아왔었군.’

장준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은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여러 생각을 하며 창밖을 내다보는 장준하의 등 뒤에는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이 무심하게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1793. 5. 24. 창덕궁 후원.

저녁 수라를 물린 정조가 은밀히 채제공을 편전에 불렀다. 채제공은 이때 화성의 유수로 있었다.

“전하, 화성 유수 입시옵니다.”

“들라하라. 그리고 주변에 잡인의 접근을 금하도록 하라.”

“예, 알겠사옵니다.”

상선 강진구는 대답을 하고는 주위에 있는 여관들을 모두 일정 거리로 물리고 용호영 장병들과 내관들에게 주변에 번을 서게 하여 잡인의 접근을 금지시켰다.

정조가 자신의 앞에 앉은 채제공을 바라보았다.

나이가 70이 넘은 늙은 신하, 평생을 자신을 위해 자신과 함께 조선의 앞날을 위해 노심초사해온 채제공을 보는 순간 또다시 그에게 어려운 짐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채제공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다.

정조가 자신을 불러 놓고 말을 할 듯 말 듯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에게 어려운 말을 하려나 보다하고 바로 짐작했다. 채제공이 먼저 말했다.

“전하, 신에게 하교하실 것이 있으시면 서슴지 마시고 하교하여 주시옵소서.”

정조는 채제공이 그렇게 말은 하는 것을 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경이 과인을 도와 온 지 벌써 수십 년이 흘렀는데 오늘 또 과인이 경에게 힘든 부탁을 해야겠소.”

그 말이 떨어지자 채제공이 천부당만부당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전하, 신은 평생을 살아오며 전하를 보필(輔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큰 행복이었사옵니다. 괘념치 마시고 신의 목이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하교하여 주시오소서. 언제라도 목을 씻고 스스로 목을 잘라 바치오리다.”

채제공의 말에 정조는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후! 내 말을 하리다. 내일 과인이 경을 수상(영의정)에 올리려 하오.”

그러자 채제공이 말했다.

“전하, 신 독상(獨相)으로 정국을 이끈 것이 수삼 년이옵니다. 수상이라니요. 감당하기 어렵사옵니다. 영을 거두어 주시오소서.”

채제공의 겸손한 말에 정조가 말했다.

“아니오. 경은 과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오.”

정조가 그렇게 말을 하자 채제공은 더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하교를 기다렸다.

정조가 다시 말했다.

“내일 경과 함께 몽오(김종수)도 좌상에 임명을 할 것이오.”

정조가 그렇게 말을 하자 채제공은 순간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전하, 탕평을 하시려고 하옵니까?”

“외부적으로는 그렇소이다.”

채제공이 묘한 말을 듣고 정조에게 물었다.

“외부적이라니요? 그럼 다른 복선이라도 있으신지요.”

“그렇소.”

그렇게 말을 하고는 정조가 채제공을 바라봤다.

바로 그 순간 고개를 들던 채제공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순간 체제공은 고개를 숙여 왕과 눈이 마주치는 불경을 피했다. 정조는 그렇게 채제공을 바라보는 자세로 말을 했다.

“경은 남인의 영수요. 특히 기호남인은 경의 말한 마디에 좌지우지될 정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 말에 탕평을 부르짖는 정조 앞에서 자신이 당파의 영수라는 것이 황송한 듯 채제공은 고개를 깊게 숙였다. 정조가 그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경은 지난해 영남 선비들이 올린 만인소를 알 것이오.”

“예, 전하.”

“경이 이번에 영상이 되면 조정에서 그와 같은 일을 해주었으면 하오.”

순간 채제공의 가슴에는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영남만인소가 무엇이던가. 죽은 사도세자를 신원하고 그 관련자들을 처벌하라는 상소가 아니었던가. 당시 사도세자의 죽음을 주도한 노론에 직격탄을 날린 두 차례의 만인소로 인해 조야가 발칵 뒤집혀진 적이 있었다.

정조가 그들의 기상을 기특히 여겨 친히 소두(疏頭, 만인소의 지도자)를 불러 편전에서 대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만인소를 낭독하게 하는 파격을 시행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조는 자신이 보위에 있을 때는 절대 임오화변(사도세자의 죽음)의 일을 거론하지 않겠다는 신하들과 했던 스스로의 약속을 저버리지 못하고 김종수의 상소 등으로 더 이상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그들을 위로만하며 돌려보내지 않았던가. 그것을 이제 자신에게 그것도 조정에서 노골적으로 하라는 밀명을 내리는 것이다.

채제공은 수십 년을 정치판에서 그것도 급격히 세가 위축된 남인이라는 군소정파의 당원으로 수많은 어려움을 몸소 겪으며 살아왔던 감으로 이 일이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자신이 정조에게 마지막으로 충성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도 바로 알았다.

채제공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정조에게 고했다.

“전하, 신에게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셔서 삼생의 광영이옵니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신 죽음을 각오하고 소임을 다하겠사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고개를 숙이는 노신을 바라보는 정조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정조나 채제공이나 알고 있었다.

조정에서 임오화변의 일을 거론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부탁을 하는 정조나 두 말하지 않고 승낙을 하는 채제공이나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채제공이 인사를 하고 물러났어도 정조는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

그런 정조의 손아귀는 움켜질 대로 움켜져서 하얗게 변한 채 미세하게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1793. 5. 25. 창덕궁 선정전.

이날 조회에 정조가 파격과 같은 인사를 단행한다. 영의정에 채제공 좌의정에 김종수를 임명한 것이다. 여기에 채제공이 맡고 있던 화성 유수에 골수 노론 벽파인 이명식을 임명했다. 정조로서는 채제공을 영상에 올리기 위한 인사였던 것이다.

남인이 영의정에 오른 것은 실로 백여 년 만에 일이었다. 조정은 술렁였다. 하지만 이미 좌의정으로 있으면서 독상으로 몇 년 동안 홀로 의정부를 이끈 적이 있었던 채제공이었기에 예견된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생각보다는 큰 반발은 없었다.

여기에는 정조가 워낙 채제공을 편애하는 것도 상당 부분 작용을 했고 그의 나이가 고령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백여 년 만의 남인 출신 영상이 탄생한 다음날이었다. 정조는 화성에 있는 장용외영의 병력을 5,000으로 증원을 하라는 전교를 내린다.

정조의 장용외영 병력 증원 전교는 특이하게도 노론, 소론, 남인 가릴 것 없이 조정의 모든 정파가 대찬성을 한다. 평상시 같았으면 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병력증원을 교묘한 방법으로 가로막았을 것인데 작년에 있었던 아전들의 반란제압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장용외영 병력 증원에 조정에서는 누가 나서서 반대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조는 이 때 병력을 증원하면서 장용외영 병력의 지휘권을 전격적으로 하성호 중령에게 주었다.

여기에 더해 병력의 증원 또한 장용외영 주체로 별시를 시행하도록 하여 병력을 모집하도록 했다.

이는 완전히 장용외영 병력이 정조의 친위군이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중령이었고, 대외적으로는 천총의 지위에 있는 하성호에게 5,000의 대병을 맡기기에는 조선의 군 편제에서는 무리가 있었으나 정조는 행수법에 의해 30대 초반의 하성호를 장용외사(장용외영 대장 화성유수 겸직)에 임명한다.

그렇지만 군권(軍權)에 관한 문제였으므로 조정에서는 약간의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채제공이 나서서 남이(南怡, 28세에 병조판서가 됨)의 예를 들어 반발을 잠재워버렸다.

이에 정조는 다시 전교를 내려 9월 말까지 병력을 충원하라는 영을 내렸다. 전교를 받은 하성호 중령은 미리 장준하에게서 지시를 받았었지만, 사람의 일이 그렇듯 직접 문서를 손에 쥐고 나니 평소보다 마음이 급해져 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용외영 병력 충원은 당연히 제주와 연해주에서 훈련 받은 병력을 충원하기로 했다.

1794. 5. 28. 창덕궁 선정전.

며칠 전부터 좌상으로 임명된 김종수가 수차 사직 상소를 올리고 있었다.

사직 상소의 내용은 자신에게 잘못이 있으니 벌하고 사직을 윤허하라는 것이었지만 김종수가 사직을 하려는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였다.

채제공과 김종수가 나란히 상신에 임명된 25일 밤이었다. 김종수의 북촌 자택에는 그의 정승 임명을 축하하는 하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대문은 활짝 열려져 있었고 넓은 앞마당에는 차일이 쳐져 넘쳐 들어오는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무리 검소하기로 소문난 김종수였지만 이런 날은 곳간 문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앞마당에서는 방문객들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앞마당에서 잔치가 열리고 있을 때 김종수의 사랑채에는 1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례 드리옵니다. 대감.”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용궁현감에 임명된 김관주가 김종수의 좌상 임명을 축하하는 인사를 했다.

그러자 벽파에서도 대표적 강성 인물에 속하는 사간원의 사간인 권유(權裕)가 말했다.

“이번 대감의 좌상 임명은 의외이옵니다. 우선은 하례를 드려야 하나 현 조정의 정세로 봐서 뭔가 숨겨진 의도가 있지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그러자 김관주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 노론의 영수인 몽오 대감께서 정승이 되셨으면 당연히 하례를 드려야지 의외라니.”

그러자 옆에 있던 이조참판 심환지도 말을 했다.

“아니, 국포(菊圃, 권유의 호)의 말이 일리가 있네. 이번 인사는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규장각 직제학 서용보가 말했다.

“그래도 몽오 대감의 좌상 임명은 주상 전하께서 화해를 하자고 손을 내민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방 안에 있던 10여 명의 사람들이 둘로 나뉘어 각자의 의견을 말하느라 잠시 소란스러웠다.

그것을 보고 있던 김종수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내 생각도 만포(晩圃, 심환지의 호)의 생각같이 이번 인사는 뭔가가 있는 것 같소. 아무래도 이번 임명에는 복선이 깔려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소이다.”

김종수가 결론을 짓는 것과 같은 말을 하자 좌중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그런 분위기를 깨고 심환지가 다시 말했다.

“대감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그 느낌이 맞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심환지의 물음에 김종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김종수를 도와주기 위해 잠시 동안 모두 입을 다물어 주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김종수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사직 상소를 내야겠군.”

심환지가 물었다.

“사직 상소라니요?”

“일단 그것이 좋을 것 같소. 내가 사직 상소를 내면 전하의 본심을 알 수 있겠지. 아무리 번암(채제공)이라고는 하나 백년 만에 남인 영상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도 모양이 빠지고 하니 그게 좋을 듯하오.”

그러자 서용보가 말했다.

“지금 상황으로는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드옵니다. 일단 이 인사는 넘어가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심환지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직 상소를 내시겠다는 대감의 생각이 옳으신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세가 위축된 상태에서 이번 인사를 그대로 수용한다면 주상 전하에게 또다시 끌려가는 모양새가 납니다. 특히나 남인 출신 영상이 아닙니까.”

당사자이고 영수인 김종수와 그를 이어 영수가 될 심환지가 그렇게 말을 하자 당론은 정해졌다.

김종수가 말했다.

“아무래도 한바탕 바람이 불 것 같소.”

심환지가 그 말에 대답했다.

“저도 무언지 모르지만 느낌이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김종수가 결론을 맺었다.

“일단 시작을 해봅시다. 도대체 무슨 속인지.”

그렇게 김종수의 북촌 자택의 모임은 끝을 맺었다.

다음날부터 김종수는 등청도 하지 않고 치열한 정치격돌에 앞서 간보기 같은 사직상소를 매일 올린다. 핑계야 여러 구실을 붙였지만 기세 싸움인 이 사직 상소는 다음의 격렬한 정치 격돌의 전초전이나 다름없었다.

이 무렵 정조는 아전들의 난이 수습되고부터 팔도에 경차관과 암행어사를 백성들의 민심을 위무하고 탐학한 수령들이 있는지를 색출하기 위해 팔도에 파견하고 있었다.

각지의 지방 공무원들과 국정원 요원들이 이들 암행어사들의 활동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결과 이 암행어사 파견은 상당히 높은 성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러한 때 채제공과 김종수를 영상과 좌상에 임명을 하였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노론에서는 사직 상소로 대응하였던 것이다.

1793. 5. 28. 한성 북촌, 김종수 자택.

5월 28일 채제공이 정조에게 상소를 올렸다.

이것이 그 유명한 천토상소(天討上訴)이다.

채제공은 이 천토상소에서 채제공은 천지간에 극악무도한 자들의 부자, 형제와 그 인척들이 모두 벼슬아치 대장(臺帳)을 꽉 메우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사도세자를 참소하고 무함(誣陷)했던 큰 수괴로서 원수가 되는 자들의 이름을 밝히고 사도세자가 무함 입은 것을 깨끗이 씻어낼 것’을 주장하면서 노론을 정면으로 겨누는 격렬한 상소를 올린 것이다.

한마디로 조정은 발칵 뒤집혀 졌다.

벌열 가문과 노론을 한꺼번에 싸잡아 모조리 몰아내자는 상소는 선전포고와 다름없었다.

역사에서도 채제공은 이후 화성 성역을 담당하면서 현역에는 머물러 있었으나 이후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거의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채제공이 상소를 올린 이날 저녁 급히 북촌에 있는 김종수의 집에 노론의 회합이 열렸다.

성질 급한 김관주가 씨근덕거리며 말했다.

지난 여의도 사건으로 한참을 자중하던 김관주는 채제공이 낸 천소 상소를 한 것을 알고는 단숨에 북촌 김종수의 저택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영상 대감이 저런 말도 안 되는 상소를 올릴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영상이 우리들을 얼마나 얕보았으면 이제 대놓고 우리를 죽이려 드는 것입니까?”

그러자 안동 김씨문이지만 유일한 벽파인 김달순도 김관주의 말에 동조했다.

“아무리 번암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너무한 일입니다. 이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들을 전부 난신적자(亂臣賊子)로 몰다니요.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김달순의 말에 뒤에 있던 몇 명의 사람들도 감정이 격양된 목소리로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침착한 심환지가 말했다.

“대감,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심환지가 하는 물음은 의논을 하는 형식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듣기로는 김종수에게 그냥 있으면 안 된다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죽으면 되겠군.”

김종수의 말에 방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김관주가 말했다.

“무슨 그런 험한 말을 하십니까?”

김종수가 대답했다.

“아닐세. 이번에는 내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네.”

김종수가 이렇게 말을 하자 방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내려앉았다. 김종수가 다시 말을 했다.

“이번 상소는 번암도 목숨을 걸고 하는 만큼 나도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오. 어차피 여기서 밀리면 죽는 이만 못한 꼴을 당하게 될 터, 우리 노론을 대표해 내가 나서겠소.”

김종수의 말에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채제공이 나선 만큼 김종수가 나서야 하는 것이 중량감에서 밀리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밤이 깊어지는 줄 모르고 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그러한 그들의 움직임은 그대로 국정원의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지난 초 새롭게 취임한 국정원 2차장 강성국은 취임하자마자 한성 일대와 권신들을 철저히 감시하도록 지시해 놓고 있었다.

이러한 노론의 움직임은 이러한 국정원 요원들의 보고로 실시간으로 장준하에게 보고되었다.

장준하의 집무실에는 장준하와 최성용이 앉아 있었다. 장준하가 최성용에게 말했다.

“결국 역사와 같이 김종수가 대표로 나서게 되는군.”

장준하의 말에 최성용이 대답했다.

“채제공이 나섰으니 대항마로 김종수가 나서야 무게감에서 밀리지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장준하도 그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하긴 평생의 라이벌이었는데 당연한 수순이겠지.”

“내일부터는 선정전이 시끄럽겠습니다. 정조에게는 말씀을 드렸습니까?”

“말은 했는데 정조가 미리 짐작하고 있더군.”

최성용이 대답했다.

“하긴 정조도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이런 식으로 개입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 갑니다.”

최성용의 우려 섞인 말에 장준하가 대답했다.

“이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불필요한 희생을 최소로 줄일 수 있지 않겠나.”

최성용이 물었다.

“그러시다면 합하께서는 이번 정치 공작을 저들의 성향 파악의 일환으로 계획하신 것입니까?”

“그래, 물론 역사를 살펴보면 대체로 저들의 성향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역사 아닌가. 최대한 가려내서 희생을 최소화할 생각이네.”

“그들을 구분할 최소한의 기준은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국정원 신 원장에게 일임하였네. 나는 뼛속 깊은 골수 사대주의자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전혀 없고 자신의 안위와 자신의 집안만을 아는 자, 그리고 부정부패한 자 등 몇 가지 기준은 정해 주었네.”

그 말에 최성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신 원장이면 충분히 잘 해낼 것입니다.”

“그래, 믿어 보세.”

이렇게 노론의 상황은 장준하에게 보고되는 동시에 그 즉시 정조에게도 여러 경로를 통해 보고되고 있었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정조 또한 마음속으로 결전을 준비하고 있기는 장준하와 다르지 않았다.

1793. 5. 30. 창덕궁 선정전.

편전에는 좌상인 김종수와 노론 측 대신들이 대거 나와 있었다. 처음에는 정조가 김종수의 사직 상소에 대한 위로와 함께, 채제공이 올린 상소를 다시 되돌려 보냈으니 사직을 하지 말라는 말을 김종수에게 하였다.

이에 김종수는 지난번에 자신의 작은 실수를 들어 계속 사직을 청하자 정조가 계속 만류를 했다.

그러자 김종수는 드디어 영남 만인소의 일을 들먹이며 채제공을 비난하였으나 정조가 채제공을 두둔하였다.

정조가 실록에서 한 말은 이렇다.

“영상의 상소는 늙어 정신이 흐린 소치에서 빚어진 것인 듯한데, 무어 꼭 이같이 말할 것이 있겠는가.”

…라고 말하면서까지 김종수의 마음을 풀어주려 했다.

하지만 김종수는 다시 반발하면서 계속하여 영남 만인소의 일과 채제공을 싸잡아 ‘역적을 비호한 자 또한 역적이라’며 역적을 운운하면서까지 채제공을 격렬하게 끝까지 비난하였다.

그러자 정조가 다시 김종수를 위로했으나 김종수는 아예 충신과 역적을 구분하는 것이 의리라며 ‘채제공과는 한 하늘 밑에 있을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까지 채제공을 거세게 몰아붙인다.

그러자 조정의 다른 노론 측 신하들도 정조에게 ‘서리가 내리면 얼음만 어는 것이 아니라’는 협박성 말을 하면서 정조를 압박하고는 편전을 대거 물러난다.

이 당시 본래의 역사에서는 채제공은 금오문(金吾門, 의금부정문을 말함) 밖에서 거적자리에 앉아서 정조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의정부에서 정조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록에는 여기서 정조가 채제공을 편전에 들게 하고는 천토상소를 한 이유와 김종수뿐 아니라 노론의 격렬한 반대를 예상하지 않았느냐는 질책을 하였다고 쓰여 있다. 그러면서 정조가 채제공을 비난한 김종수의 말을 하자 채제공은 대면을 해서라도 억울함을 풀겠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실록에 보면 상소를 올린 것은 죽을죄이니 계속하여 그저 죽여 달라고만 쓰여 있다.

벽파가 편찬한 정조 실록의 내용대로 채제공이 과연 그러했을까?

불과 며칠 전에 목숨을 걸고 천토상소를 쓴 채제공이 상소의 먹물이 채 마르지 않은 이때 상소를 잘 못썼으니 죽여 달라고 하는 말은 이상하게 앞뒤가 너무도 맞지 않은 말이었다.

실록에 나와 있는 채제공이 상소를 잘못했으니 죽여 달라는 말이 과연 그가 한 말일까? 아니면 실록을 편찬할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벽파 서인들이 첨언한 말일까. 그것은 시간을 두고 학자들이 연구할 일이다.

하지만 역사와는 전혀 다르게 일이 진행된다. 정조가 편전에 채제공을 불러 말했다.

“경이 많이 힘드시겠소.”

“아니옵니다. 전하 이미 예견한 일 아니 옵니까.”

“그래도 과인이 경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운 것 같소.”

“그렇지 않사옵니다. 전하. 백성들을 믿어보시옵소서.”

그러자 정조가 놀란 눈으로 채제공에게 말했다.

“백성들을 믿으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신의 상소는 이미 관보 게시판과 신문을 통해 조선 팔도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것이옵니다. 전하의 효심은 조선의 모든 백성들이 다 알고 있사옵니다. 예전같이 저들이 자신들의 사욕을 위해 정국을 마음대로 끌고 갈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정조가 반색을 했다.

“오! 그래 그렇지 관보 게시판과 신문이 있었어.”

채제공이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비록 신이 올린 상소가 이행되기는 어렵겠지만 이제는 그 일이 수면 위로 올라가 조선의 백성들이 모두가 주시를 하고 있게 되었습니다. 연초에 아전들의 난 때 백성들이 전하를 충심으로 따른 것을 잊지 마소서. 이제 전하께는 민심이 있사옵니다.”

정조는 아련한 눈으로 지난 연초에 돈화문에 올라 백성들을 위무하던 일이 기억났다.

“그래, 그랬어. 경의 말대로 과인의 옆에는 이제 백성들이 있었어.”

채제공이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힘을 내시옵소서.”

그렇게 채제공은 오히려 정조를 위로하였다.

이러한 선정전에서의 일은 그대로 감청되어 북한산성의 감청소(監聽所)에서 모두 도청되고 있었다.

처음 CCTV를 설치할 때부터 선정전에는 초고감도 무선 도청기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박승호 소령이 감청소를 담당하는 통신 장교를 보고 말했다.

“모두 실시간으로 본부로 전송하고 있나?”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따로 백업도 하고 있습니다.”

박승호 소령이 말했다.

“그래, 그나저나 저 채제공 어른이 정조를 섬기는 것을 정말 하늘같이 하는군. 존경할 만한 분이야.”

통신 장교가 대답했다.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주군을 섬기는 것이 저렇게 다를 수 있는지 의아스럽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저 김종수란 분… 정조 옆에 배향될 정도로 충신이라고 들었는데요.”

“주군을 모시는 방법의 차이가 아니겠나. 충성은 하지만 당리당략을 위해서는 주군을 위협하고 협박하는 일을 당연시 생각하는 것이 지금의 조선의 관리들 아닌가.”

그들이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 가온의 위국공 집무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들은 장준하를 비롯해 최성용과 국정원장 신경식이었다.

장준하가 말했다.

“참 대단하군. 당파를 위해서는 앞뒤가 없군. 저 김종수라는 분도 정조에게 대단한 충신으로 알고 있는데 아주 대놓고 막말을 하는 군.”

신경식이 대답했다.

“그래도 저 말은 정조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입니다. 기록에 보면 대신들이 당리당략을 위해 왕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장준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가, 참으로 어이없군. 이건 마치 협박이네 협박.”

최성용도 거들었다.

“저도 여기에 와서 조선왕조실록 중 정조 실록을 다시 한 번 정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신 원장님 말씀대로 실록의 기록에는 대놓고 왕에게 대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실록이 이 정도면 실제는 어떠했겠습니까.”

장준하는 그런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입안이 씁쓸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한심하다고 해야 되나. 이거 참.”

신경식이 말했다.

“문제는 저들은 어릴 때부터 당리당략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장준하가 그 말에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 못하다가는 정말 쓸데없는데 너무 큰 정력을 낭비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최성용이 말했다.

“그래도 저 채제공 같은 어른이 있다는 것이 희망적입니다.”

그러자 신경식이 옆에서 말했다.

“정 안 되면 삼청 교육대라도 만들어야지요.”

장준하가 그 말에 놀라는 표정이었다.

“음? 삼청 교육대.”

신경식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물론 수많은 부작용도 있었지만 머릿속까지 썩어버린 자들에게는 그런 아주 강도 높은 육체적인 훈련이 때로는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준하가 골똘히 생각하다 말했다.

“하긴 그들에게 사상적으로 교육을 시켜 봐야 우리에게 설득된다는 보장은 거의 전무할 것이네. 어떻게 보면 이론적인 무장은 그들이 우리들보다 훨씬 앞서 있을 것이네. 더구나 그동안 기득권을 지켜오면서 나름대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려온 사람들에게 새로운 개혁이란 그들의 기득권을 버려야 하는 일인데 우리를 따르기가 어렵겠지.”

최성용도 그 말에 거들었다.

“하긴… 이 제주도를 봐도 처음에 일어났던 반발들이 모든 교육 편제가 군사 학교 체재로 개편되니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좋은 면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준하가 말했다.

“그래, 우리들에게 필요한 사람들은 젊은 인재들이니 그도 좋은 생각일세. 하여튼 그 문제는 조금 더 연구를 해보세.”

최성용과 신경식이 동시에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러한 시끄러운 정국에서도 우의정 김이소는 일체의 중립을 지킨다. 이때 이르러 김이소는 이미 시파 벽파를 넘어 정조의 신하가 되어 있었다.

예정된 수순으로 정조는 6월 4일 노론과 남인의 영수인 채제공과 김종수 두 명을 동시에 파직한다.

이해 6월 정조는 팔도에 내려 보낸 암행어사가 보내오는 장계를 처결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노론은 채제공이 파직되고도 그를 몰아붙이기 위해 거듭 상소를 올렸지만 정조는 이에 일체 응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정조는 6월 22일 우상 김이소의 주청을 받아들여 영상에 홍낙성을 우상에 김희를 그리고 좌상에 김이소를 임명한다.

의리탕평을 주창하는 정조가 노론에 대한 화해의 손짓 같이 명실공이 노론 일색의 정승을 임명한 것이다.

이 임명을 두고 노론은 정조의 의지를 꺾은 것에 대하여 대단히 만족하고 환호했다.

자신들의 가장 큰 정적인 채제공을 정국의 전면에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정조는 며칠 전 채제공과 김종수에게 명예직인 판중추부사에 보임하였었다.

이들은 채제공을 끌어내리는데 만족하지 않고 남인들을 모조리 조정에서 내쫓으려 하였으나 정조는 단칼에 이를 잘라버렸다.

그랬기 때문에 노론은 홍낙성과 김희의 제상 임명을 자신들에 대한 화해의 손짓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임명은 정조의 고도한 정치 책략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이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백성들 특히 한성부의 백성들은 이전과 달리 상세히 알게 된다.

그것은 신문과 관보 게시판의 위력 때문이다.

이전과 다르게 정조는 장준하의 말을 받아들여 한성일대 백성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것을 절대 단속하지 못하게 했다.

백성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채제공의 천토상소와 노론의 격렬한 반대에 대한 일을 말하며 노론을 성토 하였다.

특히나 백성들은 정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에 대해 칭찬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고, 심지어는 그 일을 말하며 눈물짓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한성의 여론은 강성국 국정원 차장이 지휘하는 국정원 요원들의 활약으로 급속도로 한성 일대에 퍼져 나갔다. 그렇게 되자 화가 난 백성들은 노론 측 대신들의 대문 앞에 오물이 투척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는 했다.

이러한 백성들의 여론을 노론 측 대신들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가시 같은 신문과 관보 게시판을 없애기 위해 그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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