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101)

출장―좌도도 지도군

1793. 4. 21. 좌도도.

좌도 여단장 박정기 중령이 이미 오키 항구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지난번 유구(오키나와)를 들렀다 좌도도에 들렀을 때는 일정 때문에 섬의 모든 것을 둘러보지 못해서 지도군으로 가는 길에 다시 들르게 되었다.

“충성! 어서 오십시오, 제독님.”

“충성. 박 여단장 보려고 하니 자주 보게 되네. 요즘 고생이 많지?”

“아닙니다. 요즘은 일본의 도발이 없어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군.”

최성용은 박정기 중령은 안내를 받으며 차에 탑승하고 좌도 성으로 갔다.

오키 항과 사도가 성과의 도로에는 이미 청진의 시멘트 공장에서 수송된 콘크리트로 포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10분도 되지 않아 도착을 했다.

박정기는 최성용을 자신의 관사로 사용하고 있는 좌도 성의 천수각으로 안내를 했다.

가온군이 사도가 성을 점령한 지 3년이 되어서인지 일본풍의 실내가 한국식으로 많이 변경되어 있었다.

방을 들어서면서 최성용이 말했다.

“2년 만에 찾아와서 그런지 많이 바뀐 것 같군.”

박정기도 사방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전 시대 같으면 일본풍이라고 그대로 두었을 것인데, 지금 시대 실내를 굳이 일본 양식으로 놔둘 필요가 없어서 우리 식으로 조금 손을 봤습니다.”

그러자 최성용이 천수각의 제일 안에 있는 방에 앉으며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방 안에 다다미를 걷어내고 장판을 깔았나?”

“첫해 겨울 다다미를 깔고 그대로 생활했는데 추위서 고생을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도가 성 안에 있는 3개의 방에 다다미를 걷어내고 보일러를 깔았습니다.”

최성용이 방바닥을 손으로 만지며 물었다.

“일본 기후는 바닥에 다다미를 깔지 않으면 방 안이 습해서 곤란하다고 하던데.”

박정기 여단장이 말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 콩기름을 먹인 우리 식의 종이 장판을 교체해 주니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여름에는 이 성 안에 방이 수십 개가 있어 다다미로 만들어진 방에 자는 것이 시원하고, 겨울에는 반대로 우리 식 온돌에서 잠을 잡니다. 겨울철에는 아무래도 따듯하게 자는 게 저에게는 좋습니다.”

“병사들은 어떻게 하나.”

최성용의 물음에 박정기가 대답했다.

“이곳은 일반 병사들의 방에는 다다미만 깔려 있고, 고타츠(일본 전통 난방 기구. 겨울철 기구에 숯을 넣고 이불을 덮어 바닥 난방이 없는 전통 다다미방의 난로 역할을 함. 사용상 편리한 점도 있었으나 일산화탄소로 인한 중독 문제도 상당히 많이 발생함)도 아예 없이 단지 이불만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우리 병사들의 이곳에서의 병영 생활을 위해 제가 고안을 해서 새로 침상을 만들었습니다.”

최성용이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새로 침상을 만들었다니?”

박정기가 대답했다.

“일본에는 바닥 난방이 아예 없어 첫해 겨울철 난방에 모두들 고생을 조금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전 시대 우리가 쓰던 방식대로 가운데 통로를 두고 길게 침상을 만들어 그 침상 바닥에 전부 보일러를 깔아 난방에 신경을 썼습니다.”

최성용이 그 말에 다시 물었다.

“여름에는 어떻게 하나? 방바닥에 바로 자면 습기가 많은 지역이라 몸에 상당히 좋지 않을 것인데.”

박정기가 대답했다.

“여름에는 전부 개인별 다다미를 지급해 주어 장병들이 매트같이 그 위에서 자도록 배려해 병사들 건강에 최대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최성용이 감탄의 목소리로 물었다.

“오! 그렇게 하면 되겠구먼. 궁하면 통한다더니, 좋은 방안을 생각해 내었네. 훈련소 신병들도 그렇게 조치를 하나?”

박정기 여단장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훈련 여건상 이동을 자주하는 바람에 다다미 관리가 어려워서 자주 만들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비가 자주 오고 날씨가 습하기 때문에 지금 시대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박정기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최성용이 물었다.

“일본 본토에서 도발 징후는 없는가?”

박정기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2년 전 대대적인 니가타 폭격이 있고부터는 아예 없습니다. 고기를 잡는 어부들조차도 이 섬 주변으로는 아예 오지를 않습니다. 그동안 10여 척의 어선들이 섬 주변으로 왔지만 모두 나포해서 선원들 전부를 광산으로 보내 잡역부나 인부로 쓰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최성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본인 어부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래도 이전과 같이 전부 몰살은 시키지 않는가 보네.”

“그렇습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박 여단장 부하들 중 몇 명을 선발해서 나하고 동행한 영상 기록물 제작 팀들에게 내일 오전부터 섬 곳곳의 안내를 하도록 해주게.”

“알겠습니다.”

박정기 중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박정기 중령은 부대원을 선발하여 영상 기록물 제작 팀에 사람들을 붙여주었다.

다음 날 새벽부터 영상 기록물 제작 팀은 좌도도 여단 장교의 안내를 받으며 육군 훈련소를 비롯하여 은 광산, 그리고 섬 가운데 있는 평야 지대를 돌아본 후 해안선을 끼고 가-구 자주포로 만든 해안 포대와 초소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촬영했다.

영상 기록물 제작 팀은 섬 내부의 촬영을 마치고 나자 배를 타고 섬을 돌면서 섬의 해안 상황을 촬영했다.

영상 기록물 제작 팀은 해안에서 바라본 일본 본토 해안선까지 전부 망원 렌즈로 촬영을 했다.

여기에 더해 영상 기록물 제작 팀은 박정기 여단장의 배려로 헬기를 타고 지난 폭격으로 항구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니가타 항 부근도 항공 촬영을 하였다.

니가타 항은 2년 전 최성용이 헬기로 항공 관측을 할 때 1,000여 척의 선박이 집결된 광경이 촬영되어 있었고, 직접 폭격에 참여한 허큘리스(C-130 수송기)도 폭격 장면을 촬영한 기록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영상 기록물 편집에 같이 사용할 계획이었다.

니가타 항구는 폭격이 있은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항구에는 그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당시의 폭격이 얼마나 대대적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최성용은 영상 기록물 제작 팀들이 섬 주변을 촬영하는 동안 긴 출장 중에서 모처럼 망중한(忙中閑)이 나서 하루를 푹 쉴 수 있었다.

니가타 항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영상 기록물 제작 팀과 최성용은 박정기 여단장의 배려로 일본식 성(城)인 사도가 성에서 처음으로 하룻밤을 보내고는 지도군으로 향했다.

1793. 4. 23. 지도군.

최성용 일행이 좌도 섬을 나와 판옥선으로 갈아탄 것은 제주도와 추자도 중간 해상이었다.

추자도, 지금은 제주도에 속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전라도 영암군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제주 봉금령 당시 추자도는 봉금 지역에 속해 있지 않았다.

최성용 일행이 추자도 중간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판옥선을 갈아타고 지도군의 자은도 유리 공장에 도착한 것이 23일 오후였다.

자은도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갯벌이 넓게 형성되어 있는 여건상 대규모 선착장이 건설되기 어려운 지형이었다.

때문에 최성용 일행은 판옥선을 자은도 선착장 멀리 세워 놓고 그보다 작고 바닥이 넓은 배인 조운선으로 갈아타고 섬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최성용은 영상 기록물 제작 팀과 조운선에 동승하고 자은도의 둔장 해수욕장에 설치된 선착장에 내렸다.

선착장에는 지도군수 유동혁과 농업 단장 이성규, 요업 공업 단장 설상진과 이현호의 후임으로 부임해 해남수영에서 근무하는 전희수 전라 우수사가 특별히 최성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간부들 중 가장 연장자인 농업 단장 이성규가 최성용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단장님.”

최성용은 이성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과도 악수를 나누었다.

초면인 전희수 전라 우수사는 최성용에게 군례로 인사를 했고, 그런 전희수를 최성용도 군례로 답례를 해주었다.

최성용이 말했다.

“전 수사는 처음 뵙습니다.”

전희수가 대답했다.

“예, 이현호 수사 후임으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용호영 출신이겠군요.”

“예, 전하께서 신을 특별히 불러 위국공 합하와 가온친위군을 도우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라는 특명을 내리시며 발령을 하셨습니다.”

최성용은 40대로 보이는 전희수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셨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희수는 인사를 받자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당연히 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부탁이라는 말씀, 당치 않습니다.”

최성용이 이성규를 보고 물었다.

“그런데 김회정 여단장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성규가 대답했다.

“김 여단장은 여단 본부에서 최 제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최성용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하였지만 잠시 후에 보면 알겠지, 하는 생각에 더 이상 묻지를 않고 곧 다음 일정에 들어갔다.

전희수 전라 좌수사가 말했다.

“소관은 돌아갔다 잠시 후 김회정 여단장과 같이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전희수 전라 우수사가 인사를 하고 돌아가자 최성용은 곧 다음 일정에 들어갔다.

이성규는 먼저 자은도 유리 공장으로 안내를 했다.

유리 공장은 생각보다 큰 규모였다.

유리 공장에 도착한 최성용이 말했다.

“공장이 생각보다 많이 큽니다.”

옆에 있던 설상진 박사가 그 말에 대답해 주었다.

“그동안 조선 국내에서도 유리 수요가 늘어나 시설을 증산하였습니다.”

자은도에 있는 유리 공장은 어느덧 소량 생산을 넘어서는 대규모의 공장이 건설되어 있었던 것이다.

최성용이 물었다.

“이 정도면 이미 소량 생산의 단계는 훨씬 넘은 것 같습니다.”

설상진 박사가 대답했다.

“그래서 오히려 걱정입니다. 담수를 비롯해 원료가 내륙에 대부분 있기 때문에 앞으로 폭발적으로 유리 수요가 늘어나면 지금 시설로는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곳에서는 공장을 더 이상 증설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렇다고 본토에 공장을 건설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청진에 건설을 하려니 수송에 문제가 따르고 진퇴양난입니다.”

최성용이 대답했다.

“아쉽지만 조금만 더 현재 상태를 유지합시다. 지금 별무사에서 조선 내로 유통하는 유리는 서양에서 가져온 유리로 알고 있는데, 만일 그 유리가 조선에서 생산이 된다면 그 공장을 두고 조정의 대신들이 얼마나 많은 암투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설상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그렇겠죠. 저도 그래서 본부에 이런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최성용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몇 년만 이렇게 지내십시다. 계획대로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유리 공업이라는 것이 한 번 노에 불을 붙이면 몇 년간은 불을 꺼트리면 안 되는 시설입니다. 더구나 높은 숙련도가 요구되는 기술 축적이 많이 필요한 대규모 장치 산업이라 지금은 미래를 위해 전문 기술자를 양성한다는 생각을 갖고는 있습니다.”

최성용은 설상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설명을 하던 설상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주변에 널려 있는 수요를 생각하면 시설을 늘리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일어나니 연구만 하던 사람인 제가 사업가가 다 된 것 같습니다.”

설상진의 독백 같은 말에 최성용이 대답했다.

“잠시만 더 기다리고 계시다가 그 꿈을 펼쳐 보시지요. 그때쯤 되면 3,000톤급 범선들도 유리 수송을 위해 수십 척이 운용될 테니, 국내 수요는 물론 수출에도 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 설상진이 대답했다.

“지금 유리 공업은 꾸준히 인원이 늘어나 2,000명의 기술자들이 양성되고 있으니 4~5년 후면 이들의 기술 축척이 엄청날 것입니다.”

최성용이 그를 다시 한 번 위로했다.

“잠시만 참고 기다립시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던 이성규 단장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뭘 고민하시오, 몇 년 안 남은 시간인데.”

그 말에 설상진이 대답했다.

“지금 서양의 유리 공업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대 우리에게 일 년은 앞으로 십 년보다 소중한 시간인데,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니 그렇습니다.”

세 사람은 유리 공업의 처해진 상황이 답답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다음 장소인 유리 온실로 자리를 옮겼다.

자은도에는 농협 진흥을 위해 곳곳에 대형 유리 온실이 지어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유리 온실은 지금의 자은면 소재지 뒤에 있는 두모산 기슭에 지어져 있었다.

온실들은 이 지역에 자주 발생하는 태풍 등의 피해를 막기 위해 지형을 최대한 고려하여 설치된 대규모 유리 온실로, 조선의 농업을 개혁하려는 연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수고들 하십니다.”

최성용이 온실에 들어서면서 안에서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안에서 안경을 끼고 흰색 가운을 입은 한 사람이 급하게 뛰어오더니 마주 보고 인사를 했다.

“오시는 것은 알았는데 연구를 끝마치지 못해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심경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성규 단장이 심경보를 소개를 했다.

“심경보 박사는 자은도의 농업 진흥청을 이끄는 수석 연구원입니다.”

그러자 최성용이 손을 내밀고 심경보와 반갑게 악수를 하면서 말했다.

“그러신가요? 반갑습니다. 늦으면 어떻습니까, 연구가 더 중요한 일인데요.”

심경보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더 죄송합니다.”

최성용이 그런 심경보를 보고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무슨 연구를 하시느라 그렇게 바쁘셨습니까?”

“이번에는 종자 개량이 아니라 농산물을 이용하여 제품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이성규 농업 단장이 궁금한 듯 물었다.

“심 박사,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는 것이오?”

“잠시 기다려 보십시오.”

그러자 심경보가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고는 연구실로 뛰어갔다.

잠시 후 심경보가 무엇인가를 들고 나왔다.

설상진 박사가 그것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초콜릿이 아닙니까?”

심경보 박사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설상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초콜릿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 아닙니까?”

심경보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우리가 먹는 고형 초콜릿은 본 역사에서는 1828년에 개발이 됩니다. 지금 시대는 액체 상태의 코코아를 설탕에 섞어 마시는 것이 지금까지의 초콜릿의 음용법입니다.”

그러자 설상진 박사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이 초콜릿을 다른 제품보다 제일 먼저 만든 것은 이유가 있습니까?”

심경보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 초콜릿은 말 그대로 신이 내린 식품입니다. 앞으로 이 고형 초콜릿은 하나의 사업이 되어 엄청난 부가 가치를 창출해 줄 것입니다. 제가 이 초콜릿을 먼저 만든 이유는, 유럽에서는 앞으로 많은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고형 초콜릿은 기호 식품으로도 많은 소비가 있겠지만 전쟁 때 군용 식품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할 것입니다.”

그랬다. 심용보의 말대로 초콜릿은 그 뒤 엄청난 부가 가치를 낳았으며, 신거제도(新巨濟島)에 조성된 초콜릿 농장은 현지 주민들의 주요한 소득원이 되었다.

그 뒤 가온 무역은 계속하여 확보한 태평양에 있는 많은 섬에 코코아나무를 심어 코코아 산지를 남미에서 태평양으로 옮겨오게 하였다.

그 후 심용보가 만든 고형 초콜릿과 우유를 섞어 만든 초콜릿은 ‘심스 초콜릿’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 초콜릿 시장을 석권한다.

최성용은 심용보를 격려해 주고는 위국공에게 줄 초콜릿 한 상자를 선물받고는 유리 온실을 계속 둘러보았다.

온실을 둘러보던 최성용이 물었다.

“생각보다 많은 식물들이 재배되고 있군요.”

심용보 수석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이 작은 섬에서 시작하지만 앞으로 전 세계의 모든 종자들을 우리가 장악하여, 이전 시대 다국적 기업이 악랄하게 장악한 종자 시장과는 달리 우리 가온 무역에서 건전하게 육성, 관리하여 식량 문제 해결에 선봉이 되려고 합니다.”

최성용이 그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말했다.

“대단한 포부입니다. 앞으로 가온 무역에서는 심 수석이 하는 일을 전적으로 밀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최성용이 심용보 수석에게 물었다.

“사람은 충분합니까?”

그 말에 심용보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는 이 종자 관리 사업에 조선 출신 직원들을 특별 교육을 시켰으면 합니다.”

“그래요? 그러한 이유가 있습니까?”

“조선은 지금 농업 국가입니다. 그래서 일반 백성들도 가온 주민들보다는 농산업 적응이 상당히 빠릅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실학자들 중 중농학자들을 선발하여 교육시키면 연구 인력 육성도 쉬울 수 있고, 농업을 육성한다는 것이 그동안 그들이 지금까지 배워온 학문과도 일치하는 점이 상당히 많아 다른 공업과 더불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성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점도 있겠군요. 그 문제는 이 단장님과 상의하여 심 수석이 전결로 처리할 수 있도록 위국공 합하께 건의를 올리겠습니다. 총으로 타국을 점령하는 것보다 더 큰일이 종자 전쟁이라고 들었습니다.”

심용보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그래서 전쟁을 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아직 서양에서는 종자에 대한 귀중함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완전히 평정을 해보겠습니다.”

최성용이 설상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설 박사님께서 심 수석이 연구에 필요한 유리 관련 제품을 잘 공급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상진도 크게 고무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그래야겠습니다. 심 박사가 저런 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네요. 앞으로 적극적으로 그에 대한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러자 심경보가 설상진에게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고맙긴, 이 사람. 나는 자네가 이렇게 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네. 걱정 말게. 내 무조건 도와주겠네.”

설상진은 한참 후배인 심경보 박사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유리 온실을 한 바퀴 돌고 나온 일행은 자은도와 비금도 등 9개의 섬에 쌓여 있는 이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천일염전을 향했다.

천일염전으로 가는 길에 최성용은 영상 기록물 제작 팀에게 유리 온실과 종자에 대한 영상은 기록물로만 남겨놓고 홍보용 기록물에는 완전 삭제를 하라고 특별히 지시를 했다.

일행은 잠시 후 천일염전에 도착했다.

일행들이 도착한 천일염전은 햇빛을 받아 보석같이 빛나는 모습이 사방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최성용이 눈이 부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말했다.

“참으로 장관입니다.”

최성용의 말대로 드넓은 갯벌에 조성된 염전에는 흰색의 금인 소금 결정이 천일염전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햇빛과 만난 소금 결정이 염전 바닥에서 반짝이는 풍광은 최성용의 말대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드넓은 염전에는 소금을 모으고 그것을 퍼서 나르는 작업들이 쉴 사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성용이 다시 말했다.

“우리는 이렇게 보고 있으니 장관이지만, 지금 저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고생이 여간 아니겠습니다.”

천일염전을 담당하는 유석원이 말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저분들의 임금을 다른 곳보다 훨씬 높게 책정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더운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니 건강 문제에 특별히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예, 저희도 식사 문제는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만 말씀하신 대로 한층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최성용이 인부들을 보며 말했다.

“그래 주십시오. 어떻게 보면 가장 고생하신 분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석원도 인부들을 보며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참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수고를 많이 하시는 분들이십니다. 잘해 드려야지요.”

유석원의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해주었다.

최성용의 말대로 천일염전에서 하는 일은 말 그대로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중노동이었다.

최성용은 유동혁 지도 군수에게 말해 조선인 출신 염전 노동자들의 집에 특별히 위국공의 하사품이 내려갈 수 있도록 부탁을 했다.

한참 염전을 둘러본 최성용은 곧이어 대기해 있던 배에 올라 요업 공장이 있는 압해도로 향했다.

황해를 향해 불가사리가 불을 뿜는 형상을 하고 있는 것같이 생긴 압해도에는 지금 대규모 요업 공장이 세워져 있었다.

요업 공장에는 엄청나게 큰 터널식 가마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배에서 내린 최성용도 그 모습에 압도되었다.

“규모가 엄청납니다. 가마가 몇 개나 됩니까?”

설상진 박사가 대답했다.

“지금 대형 가마가 15개 있는데, 지금 오른쪽에 보이는 안산과 송공산 방면에 다시 20개의 가마를 신설하고 있습니다.”

골회자기에 대해서는 최성용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료 수급은 어떻습니까?”

“아직까지는 자체 수급으로 버틸 만합니다. 앞으로 몇 년 지나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때쯤이면 우리가 본토로 들어갈 것이니 별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최성용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물었다.

“벽돌 가마는 별로 증설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설상진이 대답했다.

“이제는 조선 내부를 비롯해서 각 개척지에서 적 벽돌을 자체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대부분 제주도에 소요되는 벽돌만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별로 보이지가 않았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설상진이 최성용을 안내한 곳은 최석봉 공장장을 비롯한 조선의 최고 도예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설상진이 그들을 소개했다.

“이분이 도자기 공장의 공장장님을 비롯한 조선 출신 부장님들이십니다.”

그러자 최석봉을 비롯한 10여 명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공장장 최석봉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최성용입니다.”

최성용은 최석봉과 악수를 나누었다.

인사를 마친 최석봉은 뒤에 서 있는 10여 명의 부장들도 일일이 최성용에게 인사를 시켜주었다.

최성용이 모든 부장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본 최석봉이 말했다.

“저희 도자기 공장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최성용은 최석봉이 절도 있게 말하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이들이 정말 몇 년 전 조선에서 온 도공이 맞는가’라고 할 정도로 변한 말투와 가온 주민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한 외무를 보고는 과연 교육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끼며 최석봉의 뒤를 따랐다.

최석봉은 최성용이 그렇게 느낄 정도로 외모뿐이 아니고 머릿속까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이제는 너무도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여 설상진 박사가 간혹 곤혹스러워할 정도였다.

최성용은 공장 안을 돌아보면서 감탄을 거듭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최신 시설만 들어오지 않았지 완전 분업화된 공장이 현대적인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설상진이 최석봉 공장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분들은 처음에 적응할 때 약간의 불편한 시기를 넘기자, 우리가 교육시키려는 것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능력을 보고는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저 자신도 엄밀히 따지면 도자기 공장의 운용은 단지 책에서 본 것뿐인데 이분들은 한 번 설명으로 마치 그동안 계속 해왔던 것처럼 아주 능숙하게 분업화를 실시했습니다.”

최성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골회자기 생산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조선 백성들은 시작할 때 어려운 시기만 넘기면 그 뒤로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엄청나게 빠릅니다. 앞으로 우리가 조선 백성들을 교육할 때 이 점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꼭 참조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석봉은 그 뒤로도 공장을 돌며 일일이 분야별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 설명을 기분 좋게 들으며 공장을 나와 일행은 뒤에 있는 한 곳으로 이동을 했다.

그곳에는 기존의 조선식 가마가 만들어져 있었다.

최성용이 의아해하며 최석봉에게 물었다.

“공장장님, 이 가마는 조금 전에 본 터널식 가마와 전혀 다릅니다.”

최석봉이 설명했다.

“그렇습니다. 이 가마는 설 박사님의 배려로 저희 도공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기 위해 조성된 가마입니다.”

“그럼 이곳이 조선백자를 만드는 가마로군요.”

최석봉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저희들이 가온 무역으로 인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더라도 저희는 어쩔 수 없는 도공입니다. 설 박사님께서 처음 우리에게 이 가마를 만들라고 하셨을 때, 처음에는 우리가 또 조선백자를 만들기 위해 물레를 돌리겠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석봉이 숨을 한 번 몰아쉬더니 계속 말했다.

“이곳에 와서 삶이 안정되자 우리들 가슴속에 숨겨져 있던 도공의 피가 다시 끓어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사가 지정해 주는 공휴일이나 근무가 끝나는 저녁이면 틈나는 대로 물레를 다시 돌리게 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몇 작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리로 들어가시죠.”

그러면서 최석봉은 가마 옆에 있는 한 건물로 최성용을 안내했다.

탁.

최석봉이 문을 열고 들어간 건물의 불을 켰다.

지도군에는 이미 자은도에 발전소가 들어와 있어 자은도 주변 9개 섬에는 이미 전기가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압해도는 그 섬들과 거리가 있어서 아직도 군용 발전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불이 켜지자 건물 안은 대형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리로 만든 전시대에는 백여 점의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최성용이 그것을 보고 감탄을 발했다.

“이야! 대단합니다.”

전시된 도자기는 문외한인 최성용이 봐도 한눈에 기품이 느껴질 정도의 명품들이었다.

최석봉이 최성용을 보고 말했다.

“부끄럽지만 저희들이 생각해도 이 정도 작품이면 명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자 같이 따라온 요업 공장의 부장이 말했다.

“공장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희들이 분원 가마에 있을 때도 왕실에 들어가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사실 먹고 살기 위해 만든 작품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여기 있는 백자들은 저희들이 처음부터 마음먹고 만든 작품들입니다. 공장장님은 겸손해서 하시는 말씀이지만 지금 그려 있는 그림도 도화서 화원께서 직접 그리신 그림이고, 특히 공장장님의 작품은 그 어느 도자기보다 뛰어난 명품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최석봉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 사람 별말을 다 하는구먼.”

최성용이 말했다.

“아닙니다. 저 같은 문외한이 봐도 감탄이 절로 납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최석봉이 설명하고 최성용이 감탄한 대로 전시된 도자기들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엄청나게 큰 달 항아리에서부터 아주 빛이 선명하고 고운 대형 청화 백자 용문호를 비롯하여 작게는 도공의 그림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 앙증맞은 연적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명품 일색이었다.

최성용이 전시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한마디로 도자기 박물관이군요.”

그러자 최석봉이 말했다.

“지난번 아전들의 반란 때 그들의 가옥을 몰수하여 그중 가장 큰 가옥을 각 지방별로 민속 박물관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만든 도자기가 비록 뛰어나지는 않지만 받아만 주신다면 기증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최성용이 놀라서 물었다.

“이 많은 작품을 기증하신다고요?”

최석봉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희들이 도공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마음먹고 만든 작품입니다. 손톱만큼의 사심도 없이 만든 것입니다. 기증을 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가슴이 훈훈해진 최성용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희들이 이 작품들을 가져가 여러분 이름으로 도자기 박물관을 만들어 후세에 전해지도록 약속하겠습니다.”

최석봉이 겸손해하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시기 조선백자의 최전성기였다.

최성용은 이들 도공들이 기증한 작품을 시작으로 후일 가온이 조선에 들어간 후에 이들과 약속한 대로 도자기 박물관을 만들었다.

이 도자기 박물관은 그 후에도 왕실을 비롯하여 조선의 유력 가문에서 명품 자기들을 기증받았고, 조선 각지에 흩어진 고려자기를 비롯해 이전 시대 도자기를 수집하였다.

그 뒤에도 계속 도공들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에서 최고 중의 최고의 작품을 선별 전시하여 최고의 도자기 박물관이 되었다.

압해도를 마지막으로 3개월간에 걸친 최성용의 출장은 끝이 났다.

최성용은 영상 기록물 제작 팀을 별도로 강화도로 보내 홍삼 증포소를 촬영하도록 보내면서 그동안 그들과의 긴 동행을 끝냈다.

최성용은 압해도에서 바로 영상 기록물 제작 팀을 조운선에 태워 강화도로 보냈다.

이어서 최성용은 그 자리에서 이성규 단장과 설상진 박사와 인사를 하고는 유동혁 지도 군수와 함께 지도 섬에 있는 지도군 관아 옆 지도 여단 본부로 이동했다.

여단 본부에는 김회정 여단장과 전희수 전라 우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회정이 경례를 했다.

“충성. 마중을 나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최성용이 답례를 하면서 말했다.

“아닐세,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무슨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전 우수사가 말을 하던데, 무슨 일인가?”

“잠시 이리로 오시죠.”

김회정이 최성용을 이끌고 간 곳은 여단 본부 뒤에 있는 한 채의 가옥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최성용은 한쪽 벽면에 유리창이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지금 시대처럼 한쪽에서 보이지 않는 유리가 아닌, 커튼이 드리워진 유리였지만 들어온 곳이 어두웠기 때문에 반대편에서는 이쪽이 잘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최성용이 반대편을 바라보자 밝은 방의 의자에 묶여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저들이 누구인가?”

“오전에 제독님께서 오시기 직전에 지도 섬을 침투하려고 했던 자들입니다.”

최성용이 놀라서 물었다.

“침투라니 어디로 말인가?”

“무안 방면에 있는 해제 반도(海際半島)를 통해서 침투하려고 했습니다.”

최성용이 물었다.

“이들이 잠입도 아니고 침투를 하려고 한 이유는 알아냈나?”

그러자 김회정이 대답했다.

“아직은 자백을 받지 못했습니다.”

“무슨 의도로 침투를 한 것일까? 혹, 호기심이나 범법자는 아닌가?”

김회정이 말했다.

“그동안 지도군으로 들어오는 조선 백성들을 철저한 검색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이 없는 경우라도 그들의 고향에서 국정원 요원들이 먼저 조사를 했기 때문에 초기에 국법을 어긴 일부 범법자를 제외하고는 그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호기심이나 단순 범법자였다면 저 앞에 있는 수사관들의 위압된 조사에 이미 자백을 했을 것인데 자백을 안 하는 것이 더 의심이 갑니다.”

최성용이 그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그렇군. 호기심이나 단순 범죄자였다면 벌써 자백을 했을 건데. 그렇다면 김 여단장 말대로 뒤가 있다는 소리군.”

“그렇게 판단됩니다.”

최성용과 김회정, 전희수가 보고 있을 때도 수사관의 계속된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세 명은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을 한참을 지켜보던 김 여단장이 다시 말했다.

“흠,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왜 입을 닫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 말 못하는 장애인인가?”

김회정의 말을 듣자 최성용이 머리를 확 스치며 지나는 생각이 있었다.

“이보게, 김 여단장.”

“예, 제독님.”

“혹시 저들 중국인들 아닐까?”

“중국인이요?”

“아니, 저들이 우리말이 어눌해서 우리와 말을 섞으면 자신들이 탄로가 날 것 같아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자 김회정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설마 그럴 일이 있을까, 하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최성용이 김회정에게 말했다.

“김 여단장, 빨리 부하들을 시켜 국정원에 상황을 말해 주고 중국어를 하는 요원을 급파해 달라고 하게. 아무래도 수상하네.”

“알겠습니다.”

김회정은 옆에 있는 부관을 불러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김회정의 지시 사항을 전달받은 부관이 여단본부 통신실로 뛰어갔다.

최성용이 말했다.

“혹 자살 시도가 있을 수 있으니 일단 저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감시를 철저히 하면서 국정원 요원이 오기만을 기다리세.”

“알겠습니다.”

김회정은 앞의 방에 있는 수사관을 불러 지시를 하고 있을 때 국정원과 통신을 마친 부관이 뛰어와서 보고를 했다.

“바로 보내준다는 전갈입니다. 2시간이면 헬기로 자은도에 도착을 한다고 합니다.”

보고를 받은 김회정이 말했다.

“자은도에서 여기까지는 참수리 고속정으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잠시 여단 본부로 가셔서 휴식을 취하시지요.”

“그렇게 하세.”

김회정은 전희수와 최성용을 여단 본부 여단장실로 안내를 했다.

본부장실에 앉은 최성용은 막간을 이용하여 전희수 전라 우수사에게 물었다.

“전 수사, 지금 하삼도의 민심은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최고입니다. 지난 아전의 난을 평정한 후 새로 임명된 지방 공무원들로 인해 조선 백성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라니, 그것이 무엇입니까?”

전희수 전라 우수사가 말했다.

“물론 전부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이번에 임용된 공무원들이 백성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서인지 지방 행정이 이전과는 다르게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 돌아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특히 공무원들이 발령을 받고 나자 바로 발생한 역병 때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활동은 이전과 달리 역병을 빠르게 수습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전부 다가 아니라고 말했는데, 발령을 받고도 아직도 구태를 벗지 못한 공무원도 있다는 말이군요.”

전희수 수사가 말했다.

“전혀 없다고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그들을 전부 해직을 시켰나요?”

최성용의 물음에 전희수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조정에서도 수시로 암행 감찰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리 공무원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그들이 비리를 저지르면 얼마 가지 않아 공무원 교육원에서 입소 통지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요?”

전희수가 다시 대답했다.

“예, 그렇게 두 달여를 공무원 교육원에 교육을 갔다 온 공무원은 두 번 다시는 백성들을 상대로 착취를 하거나 목에 힘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공무원 교육원에서의 교육이 아주 철저한가 봅니다.”

최성용이 물었다.

“다녀온 공무원들은 교육 내용이 어떻다는 말을 한다고 하던가요.”

그 말에 전희수가 대답했다.

“잘 모릅니다.”

최성용은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예? 잘 모르다니요?”

최성용의 질문을 받은 전희수가 대답했다.

“교육을 다녀온 공무원들은 그 뒤로 교육에 대해 절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물으면 공무원 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교육 내용을 발설하지 않고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최성용이 다시 물었다.

“얼마나 철저한 교육을 받았기에 그렇습니까?”

전희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것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최성용은 가온 무역 일이 바빠 잘 모르고 있었지만, 처음 부임한 지방 공무원들은 대부분이 열성적으로 일을 하였다.

하지만 어느 조직에나 불평을 하거나 적당히 시류에 편승하려는 무리들이 있듯이 새로 임용된 공무원들 중에서도 생겨났다.

국정원에서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이들은 조선 개혁의 가장 밑바탕이 될 주축들이었기 때문에 장준하는 특별 명령을 내려 국정원에서 이들 공무원을 철저하고 은밀히 감찰하였다.

조선 시대는 한 고을에서 큰 논쟁거리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새로 발령을 받은 공무원의 일거수일투족은 각 고을 사람들의 입에 당연히 오르내리게 되었다.

국정원에서는 공무원들을 근접 감찰을 하지 않고 주막에서 흘러나오는 말만 들어도 이들의 근무 태도가 좋고 나쁨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감찰에 걸린 공무원들은 곧바로 공무원 교육원에 재입소를 해서 철저한 정신 교육과 함께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가혹한 육체적인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그 어느 교육과 훈련보다 이들을 180도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전에 아전들에게 행한 가혹한 형벌을 교육시키는 것으로, 이러한 교육은 김석태 교육단장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법을 어긴 지방 공무원은 이전의 아전들과 마찬가지로 전 재산 몰수와 출향 조치, 그리고 10년간의 강제 노역은 당연한 형벌이었고, 여기에 더해 비리 공무원들에게는 특별히 2대까지 공무원 임용 금지 조항이 추가되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실수 한 번에 자신은 물론 위로는 부모와 아래로는 자식들까지 모든 길이 막혀버리는 것이다.

이 연좌제에 대해 지도부에서도 말이 많았지만 제주 부지사 출신의 김석태와 이전 시대 공무원들이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방법으로 강력히 주장하여 추가되었다.

누구에게도 연좌제를 적용하면 안 되지만 지방과 국가 공무원을 포함해서 군인 등 나라의 녹을 먹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공무원들에게만은 2대 60년간은 연좌제를 적용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한마디로 가혹한 형벌이었고, 공무원들에게 아예 비리는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공무원들에게 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도 있었다.

열심히 근무하는 반대급부로 조선 최초로 퇴직금 제도가 공무원을 위해 도입된 것이다.

처음으로 지방 공무원에게만 퇴직금 제도가 실시됐다.

후일 다른 공직자들은 가온이 조선에 들어가면 적당한 때를 기다려 전면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이 퇴직금 제도 실시는 조정 대신들의 격렬한 반대와 사대부들이 자신들도 아니고 아전이라고 낮춰 부르던 지방 공무원들에게만 퇴직금을 주는 것에 대한 엄청난 상소가 있었다.

정조는 그 모든 상소를 단 한 장도 읽지 않았다.

정조는 모든 상소를 돈화문 앞에 쌓아 놓게 하고 모조리 불살라 버리고는 단 한 마디의 비답을 내렸다.

중앙의 관리들도 퇴직금을 받으려면 지방 공무원같이 평생을 국가를 위해 봉직하면서 청백리로 살 자신이 있으면 중지를 모아 다시 고하라고 했다.

그러자 모든 반대와 반대 상소가 순식간에 없어졌다.

정조는 그것을 보고 편전에 대신들을 불러놓고는 엄청나게 질책을 하며 개탄하였지만 누구 한 사람 정조의 개탄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신들이 없었다.

관리들은 당연히 깨끗해야겠지만 조선에서 청백리를 칭송하는 것은 그만큼 이권에 개입되지 않은 관리들이 없다는 말의 반증이었다.

조선의 관리들, 특히 정권을 잡고 있는 서인들은 물고 물리는 사이라 누구도 이 문제에 초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500년 조선 왕조에 청백리는 불과 200여 명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한마디로 대소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개가 부패하였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부패하지 않으면 녹봉으로 먹고 살기조차 어려웠던 것이 조선의 관리들이었다.

여기에는 관리들에게 희생만을 강요하면서 너무도 적게 지급해 온 녹봉 제도와 아전들에게 녹봉도 주지 않고 알아서 먹고 살라고 하면서 적당히 백성들을 뜯어먹어야지 조금 많이 뜯어먹으면 수탈한다고 하는 이상한 아전 제도가 아주 큰 몫을 하였다.

평생을 나라에 봉직하고 재상(宰相)까지 지낸 사람이 집 고칠 돈이 없어 나라에서 돈을 내렸다고 실록에 당당히 쓰는 어이없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조선의 아전 제도를 비판하는 수많은 양반들의 글 중 아전들에게 정식으로 녹봉을 주면서 제도를 바꾸자는 글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

물론 이러는 과정에 정조는 채제공을 비롯한 자신의 친위 세력에게 퇴직금 문제로 절대 반대 상소를 하지 말라는 밀명도 함께 내렸었다.

백여 년 동안 권력을 잡고 있던 서인 세력의 허물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단단한 방책에서 조금씩 누수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동혁 군수가 이에 대해 공무원 교육원 입소를 비롯한 지방 공무원에 관한 신상필벌의 내용에 대해 소상히 말을 해주었다.

최성용이 유동혁에게 말했다.

“제가 몇 개월 출장을 다녀오는 동안 상당한 일이 진행되었군요.”

유동혁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공무원 교육원에서는 이러한 문제로 연일 강도 높은 재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유동혁의 말을 들은 최성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초가 튼튼해야 집을 잘 지을 수 있듯이, 조선의 관료 조직의 뿌리가 되는 지방 공무원 조직이 튼튼해지면 당연히 줄기와 잎 또한 강성해지지 않겠습니까?”

최성용의 말에 전희수 수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지방 공무원이 관료 조직의 뿌리라니요?”

최성용이 말했다.

“이전까지는 아전으로 불리는 관료 조직의 최하부 지방 조직은 아예 관리로 인정을 하지도 않았습니다만, 그들이 없었다면 조선 지방의 실무는 과연 누가 있어 담당할 수 있습니까?”

유동혁과 전희수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최성용이 말했다.

“가장 일선에서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관리로 인정도 해주지 않고 호구지책도 만들어주지 않으면서, 그저 부려만 먹으려니 조선의 행정이 이렇게 뿌리부터 썩어버린 것입니다. 앞으로 두고 보십시오. 이들이 이대로만 잘 움직인다면 금년 늦어도 내년이 되면 이들의 월급을 충당하고도 남을 세수가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자 전희수 수사가 말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려면 외관(外官)들이 청렴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유동혁이 말했다.

“그래도 벌써 확연히 표가 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최성용이 약간 의외라는 듯 물었다.

“그래요? 그곳이 어느 부분입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중앙 정보에 밝은 전희수가 말했다.

“삼정(三政)이 급속도로 안정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삼정은 그동안 지방 공무원들이 담당을 해왔기 때문에 이들이 청렴해지자 삼정이 급속도로 안정을 되찾고 있습니다. 전하의 특명으로 그동안 수령과 아전들이 숨겨놓은 수십만 결의 은결을 찾아내게 되었고, 군정과 환곡 또한 빠르게 정상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최성용이 다시 물었다.

“각 지방 수령들의 반발은 없었습니까?”

최성용의 물음에 전희수가 다시 대답했다.

“지난 역병 때 전하의 명을 어긴 수십 명의 지방 관리들이 엄청난 형벌을 받았기 때문에 그동안 지방에서 세도를 부려왔던 수령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은결을 모두 자진 신고하면 그동안의 죄를 덮어주겠다는 전교가 있어서 지금 전 조선이 은결 확인에 나서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성용이 물었다.

“혹 지방관들이 지방의 토호들과 결탁하여 토지를 빼돌리는 경우는 없습니까?”

최성용의 말에 전희수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제독님은 흡사 바로 옆에서 본 것같이 말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역병 때와 마찬가지로 각 지방에 10여 명의 수령들이 그런 짓을 저지른 게 적발이 되었습니다. 이 토지를 사들이려고 했던 지방의 유력 토호들도 국법을 어긴 죄로 외관들과 똑같이 전 재산을 몰수당하는 등 역병 때와 같은 형벌을 받았습니다. 특이한 사항은, 이들을 고발한 사람들이 전부 지방 공무원들입니다.”

“고발한 자들이 전부 지방 공무원이라고요?”

최성용의 물음에 전희수가 다시 대답했다.

“예, 지금 조선 팔도 각지에는 정조가 특별히 임명한 경차관과 암행어사가 파견 나가 있습니다. 새롭게 임명된 지방 공무원들이 모든 은결들을 찾아 상부에 보고를 하려고 하자 아직 타성에 물들어 있는 몇몇 수령들이 이를 빼돌려 토호들에게 팔아넘기려 하는 것을 바로 고발했다고 합니다.”

최성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이제 지방 행정 조직 쇄신 효과가 차츰 나타나고 있나 봅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자 전희수 수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최성용에게 상세히 말해 주었다.

정조는 공무원들의 첫 월급이 나가고 나자 장준하와 상의하여 삼정(三政)의 안정을 우선 꾀하기로 하고 전국의 은결을 일제 조사하게 하고 군정과 환곡도 일제 정비에 나섰다.

그러자 생각지도 않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대소의 차이가 있었지만 전국에 있는 모든 지방 단 한 곳도 빠지지 않고 수십만 결의 은결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정조는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고는 대소 신료들을 편전에 불러모았다.

편전에 모인 대신들을 보고 정조가 말했다.

“그대들은 각지에서 올라온 장계를 알고 있는가?”

대신들을 대표하여 채제공이 말했다.

“신등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자 정조가 언성을 약간 올리며 말했다.

“이보시오, 번암. 경은 그 장계를 보고 느낀 점이 없소?”

정조가 그렇게 말을 하자 채제공은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조정에 올라온 장계 중 자신이 이전에 부임했던 지역도 있었기 때문이다.

채제공이 가만히 있자 정조가 언성을 다시 높이며 이번에는 김종수를 보고 물었다.

“이보시오, 몽오(夢梧).”

“예, 전하.”

“경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러자 김종수 또한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자신 또한 채제공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조가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 대노하였다.

“이보시오. 경들이 정녕 과인의 신하들이오? 무엇을 어쩌자고 아무 말씀이 없는 거요? 말을 해보시오, 말을.”

탕! 탕!

정조는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말을 했지만 편전에 있는 대신들은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한 신하들을 바라보며 정조가 한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구나. 아니, 단 한 사람도 변명의 말조차 할 수 없는 게요?”

정조가 이렇게까지 말을 해도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참으로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오. 어찌 학문을 배우고 익힌 자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오. 모두들 부끄러운 줄 아시오.”

정조의 말에 대신들은 정말 얼굴이 달아올라 정조를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조정의 대신들 중 지방관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던가. 이는 당파를 가리지 않는 정조의 엄중한 질책이었다.

이날 편전에서 대신들은 자신들이 출사한 이래 가장 많은 질책을 당했다.

대신들이 돌아가자 정조는 상선에게 장준하와 통화를 하도록 하교하였다.

정조가 은결의 상황과 대신들을 질책한 일을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장준하가 대답했다.

“신도 수십만 결의 은결을 찾아냈다는 것을 보고로 들어 알고 있사옵니다.”

정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조선의 현실이구려. 과인이 참으로 부끄럽고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하겠소.

장준하가 정조를 위로했다.

“이제라도 밝혀졌으니 그나마 다행이옵니다. 너무 큰 상심 마십시오. 그나마 지방 공무원들의 맹활약이라는 좋은 소식도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정조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맞소. 내 이번에 그들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소. 참으로 다행한 일이오.

그러자 장준하가 말했다.

“전하, 그러시면 그들에게 포상을 해주시지요?”

―포상이라? 어떻게 말이오?

장준하가 말했다.

“그들은 이제 월급으로만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포상을 전하의 특별 하사금이라는 명목으로 상여금(賞與金)을 지급해 주시면 어떠신지요.”

그러자 정조의 목소리가 환해졌다는 것이 수화기를 통해 들릴 정도로 톤이 높아졌다.

―그래, 이제 그들에게 그것이 가장 큰 포상일 게야. 위국공 말이 맞소. 이번에 고생한 그들에게 특별 하사금을 내려주어야겠소.

“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서이수 전수에게 하사금을 준비해 보내드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자 그 말에 정조가 거절했다.

―아니오. 지난번 준 기밀비도 있고 내수사전에서 많은 수확도 있었으니 이번에는 과인이 준비를 하도록 하겠소.

정조의 말에 장준하가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래요, 내 이번에는 과인이 준비하리다.

정조의 목소리를 들으며 장준하의 입에는 저절로 미소가 돌았다.

대신들에게는 화를 냈지만 이번의 성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수십만 결의 은결은 1년 세수로 수십만 석의 미곡을 거둘 수 있어 백만 냥이 훨씬 넘는 세원을 확보한 것으로, 이는 지방 공무원들 급여의 절반을 상회하는 엄청난 재원이었다.

장준하는 그래도 서이수 전수에게 지시하여 정조에게 기밀비로 삼십만 냥을 만들어주었다.

그러자 정조는 이를 전부 6만 석의 미곡으로 바꿔 자신이 마련한 특별 상여금과 함께 조선 각지의 지방 공무원들에게 내려주었다.

이 쌀은 춘궁기라 1석에 5냥으로 쌀값이 올라 있었지만 전국의 상단이 적극 협조하여 힘들이지 않고 매입을 할 수 있었다.

미곡과 상여금이 각 지방에 도달하는 날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300개 지방 관아에 평균적으로 200석의 쌀이 배급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부분의 지방 공무원들이 상여금은 수령을 하고 춘궁기라는 이유로 쌀은 각 고을의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내놓았다.

한마디로 축제였다. 위에서 처음으로 베풀자 그것이 어려운 지방 주민들에게까지 돌아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최성용이 출장을 다녀오는 불과 3개월 만에 발생한 것이다.

전희수 수사는 장준하와 정조가 협의한 사항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제외한 일련의 모든 사건들을 자신이 아는 한 상세히 말해 주었다.

유동혁도 자신의 지도군에도 미곡과 상여금이 내려왔기 때문에 이 일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단할 줄은 미처 알지 못해서 ‘그랬었구나’를 거듭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만 있었다.

전희수의 설명을 듣고 있던 최성용 또한 자신이 적극 건의하여 시작된 아전 문제가 이렇게 빨리 자리 잡을 줄은 예상 밖이었다.

최성용이 말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제가 없었던 삼 개월 동안 엄청난 일이 있었습니다.”

전희수가 동의하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도 전하의 특명으로 해남에 내려오면서도 전하께서 추진하시는 일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빠르게 좋은 결과가 나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조선의 백성들이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징조입니다.”

최성용의 말에 유동혁이 말했다.

“이제는 한성입니다. 전하를 둘러싼 명문 거족들과 권신들이 얼마나 빠른 시간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최성용 또한 동의하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들도 우리 민족이 분명할진대 곧 합류를 하겠지요. 대세는 거스를 수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최성용의 말이 끝날 무렵 여단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김회정 여단장의 말에 네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회정 여단장의 부관과 세 명의 국정원 요원이었다.

최성용이 그들을 보고 말했다.

“어서 오시오.”

안면이 있는 국정원 요원이 최성용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제독님. 출장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국정원 요원의 인사에 최성용이 대답했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국정원 요원이 자리에 앉자 김회정이 체포한 세 명에 대해 말을 해주었다.

최성용이 국정원 요원을 보고 다시 말했다.

“세 사람을 급히 오라고 한 것은, 오면서 들어 알겠지만 아무래도 그들이 청국 첩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오.”

“예, 저희들이 조사를 해보겠습니다.”

최성용은 국정원 요원에게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나는 세 분만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합하께 오늘 복귀한다고 했으니 뒷일을 잘 부탁합니다.”

국정원 요원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염려 말고 돌아가십시오.”

최성용은 지도군에 있는 지휘관들과 작별을 하고는 이들이 타고 온 헬기를 타기 위해 헬기장이 있는 자은도로 향했다.

국정원에서 급히 온 요원들은 기무사 출신 조장에 조선 출신 요원 2명으로 국정원에서 청국 업무를 전담하는 요원이었다.

이들과 이별을 하고 밤늦은 시간에 헬기에 오른 최성용이 송악산 비행장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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