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청진(靑津)
1793. 4. 19. 청진 공업 단지.
동명 비행장에 내린 최성용은 총독인 김진만 중장에게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는 대기하고 있던 판옥선을 타고 바로 청진으로 출발했다.
청진항에는 이미 연락을 받은 유득공과 여러 명의 조선인 관리들이 항구 선착장에서 최성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성용이 박지원(朴趾源)에게 인사를 했다.
“선생님,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박지원이 최성용을 따듯하게 맞이하며 말했다.
“어서 오시오. 최 공도 그동안 별고 없었소? 이번에 장기간 외유를 했다면서요? 고생이 많았겠소.”
“아닙니다, 주어진 업무입니다. 당연히 해야지요.”
그러자 옆에 있던 박제가와 유득공이 인사를 했다.
“이번에 승진을 했다고 하던데 축하하네.”
“고맙습니다. 짐이 하나 더 늘었을 뿐입니다. 초정(楚亭, 박제가) 형님과 영재(冷齋, 유득공) 형님도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그러자 박제가가 답변을 했다.
“우리야 앉고 서서 하는 일이 공부밖에 더 있겠나. 잘 있었네.”
“공부도 쉬어가며 하십시오. 몸 생각도 하셔야지요.”
그러자 성격이 괄괄한 박제가가 말했다.
“이 사람, 자네는 몇 달 동안 이 세상을 돌면서 밤낮 없이 일하는데 형 된 입장에서 동생 일은 못 도와줄망정 한없이 널려 있는 배우는 기회를 포기면 되나. 어느 정도는 배워둬야 후일 우리 조선을 위해 쓸 것 아닌가.”
최성용이 박제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맞습니다, 형님. 같으신 분들이 많이 계셔야 조선이 비로소 스스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박제가가 다시 말했다.
“걱정 마시게. 지금 함경도 전역에 소리 없이 공부 열풍이 불고 있네. 기다려보게. 이렇게 몇 년만 지난다면 이들로 인해 조선도 많이 달라질 것일세.”
“기대하겠습니다.”
그들의 덕담을 따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그 사람은 연암 박지원이었다.
그 자신도 박제가와 유득공과 같이 열성적으로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고 있었다.
가온이 빨리 조선에 들어와 개혁을 시작하기를 학수고대하는 사람 중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었다.
항구에서 잠시 인사를 한 일행들이 청진 부청으로 갔다.
청진 부청에는 작년 8월 달과 같이 함경도의 전 지방관과 청진 공단 관계자들 전원이 와 있었다.
일행은 관찰사가 기다리고 있던 귀빈실로 들어갔다.
함경도 관찰사는 이가환(李家煥)이었다.
“어서 오시오.”
“안녕하십니까, 관찰사님.”
최성용은 이가환 관찰사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요. 몇 달간 출장으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소.”
“아닙니다, 제가 할 일입니다.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도 대단하오. 보고를 들어보니 엄청난 거리를 다녀왔다고 하던데.”
“그래도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 편한 출장이었습니다.”
정조에게 정학사(貞學士)라는 호칭을 들을 만큼 천재이자 대학자이고, 특히 기하학의 대가로 채제공의 후계자로 지목될 만큼 정치적 비중이 높았던 이가환을 비롯한 함경도의 지방관들은 2년의 기간 동안 엄청나게 변해 있었다.
실록에 보면 이가환이 당상관이 된 후 그의 이름이 나온 것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탄핵일 정도였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노론에서는 능력을 떠나 후일 남인의 영수가 될 이가환을 제거하는 데 모든 힘을 집중했고, 결국 이가환은 마지막 벽을 넘지 못했다.
이미 채제공의 제거에 실패한 경험이 있던 노론은 더 이상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그의 제거에 모든 전력을 기울인 것이다.
정조가 말년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주문모신부 사건과 연루하여 이가환을 충주 목사로 좌천시키고 정약용을 금정찰방에 임명한 것이다.
이 일로 남인은 중앙 정계에 있던 힘이 거의 사라졌다.
채제공이 있었지만 이미 그는 김종수와의 정쟁에서 패해 화성 축조를 하는 등 정계에서 거의 은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후 정조는 이가환을 오위도총부 도총관과 한성부판윤에 임명하였지만 그 자리는 한직이었다.
이런 이유로 정조가 갑작스레 죽었을 때 이가환은 물론 정약용조차도 중앙 정계에서 힘을 쓰지 못하게 한 것이 정조의 가장 큰 실수의 하나였을 정도로 그가 조선 정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했다.
가온에서는 이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조와 상의하여 이가환을 보호하기 위해 미리 이가환을 함경도 관찰사로 특임하도록 하였다
그동안 가온에서는 이가환을 포함한 함경도 지방관들에게 일대일 교육으로 철저한 교육을 실시했다.
그들 자신들이 이미 일가를 이룰 만큼의 학문적 경지에 올라 있었고, 대부분이 남인 출신들로 그동안 노론이 주도하는 정치권력에 경계를 받으며 정가에서 소외되어 온 사람들이어선지 몰라도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대해 가온에서도 놀랄 정도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국민의례와 함께 함경도 지방관 회의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최성용이 먼저 발표를 했다.
“이번에 관찰사님과 여러분들을 모시고 회의를 하는 것은 함경도 군제 개편에 관한 사항입니다. 먼저 도표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최성용이 말을 하자 대기하고 있던 비서관이 도표를 펼쳤다.
최성용이 그 도표를 보고 설명을 했다.
“지금 도표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함경도를 비롯한 주요 지역은 전부 일선 지방관이 군직을 겸직하고 있는 것이 조선의 현실입니다. 이것은 작게 보면 인건비를 줄이고 명령을 단순화할 수는 있지만 크게 보면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발생하는 일입니다.”
그러자 박제가(朴齊家)가 말했다.
“손실이 발생을 하다니요? 군의 명령 계통이 일원화되면 오히려 좋은 일 아닙니까?”
박제가가 그동안 교육을 받은 덕분인지 이전과 같이 늘어지는 말투가 아니라 간단명료한 말투로 질문을 했다.
최성용이 박제가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지금의 조선은 함경도와 평안도 변방 같은 경우 대부분 무관이 수령이 되어 지방관을 발령받고, 하삼도 해안 지역의 경우는 문관이 수령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조선으로는 최대한 현지 상황을 고려한 인사이기는 하지만 개인으로 보아서는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문과 무, 어느 하나는 반드시 소홀히 하게 됩니다. 문과 무를 겸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극히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곳으로 특화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문관의 경우 변란이 생길 경우 군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해 많은 희생을 야기하거나, 무관의 경우 일선 행정을 몰라 불필요한 정책을 남발하거나 무관의 신분으로 정치에 개입하게 되어 헛된 마음을 품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러자 관찰사 이가환(李家煥)이 물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조직 편제가 변하게 되는 것이오?”
최성용이 이가환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곧 주상 전하의 교지가 당도하겠지만, 함경도는 조선에서 최초로 군과 행정이 분리됩니다.”
그러자 지방관들이 약간 술렁였다.
최성용은 그런 것을 무시하고 말했다.
“우선은 각 지방관이 갖고 있는 군권을 회수하여 군으로 돌려줄 것입니다. 이때 지방관들 중 군으로 이동을 하겠다는 분이 있으면 그대로 직급을 인정해서 군에서 받아들일 계획입니다. 이러한 분들은 반드시 신체검사를 통과하여야만 합니다. 앞으로 군은 철저하게 백성의 안위를 위한 국방의 업무에만 충실하게 하고, 지방관은 철저하게 지방 행정만을 전담하게 할 계획입니다.”
그러자 유득공이 말했다.
“그렇게 되면 지금 각 지방에 병졸들이 담당하고 있던 치안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최성용이 대답했다.
“좋은 지적이십니다. 앞으로는 각지의 대민업무를 담당할 치안 조직은 별도로 조직됩니다. 그 조직은 경찰청이라고 하며, 이 조직은 한성의 포청이 각지에 설치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최성용이 말을 하자 참석자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최성용이 다시 말했다.
“지금 가온에서는 20명의 용호영 군관들이 고급 장교가 되기 위한 군사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훈련을 마치고 오는 7월 초순부터 함경도 전역은 앞으로 5년 동안 외부와 철저히 차단될 것입니다.”
그러자 함경도에 주둔해 있는 용호영 출신 군관 중 한 명이 최성용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최성용이 다시 말했다.
“주상 전하의 특별 지명으로 이곳에 온 여러분들은 지금 가온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군관들과 같이 당연히 6개월간 2차 교육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 교육은 가온에서는 고급 간부 교육이라고 하는데, 그 교육에서는 육체적인 훈련만이 아니라 근대식 군사 전략 전술을 포함한 고급 장교로서 지녀야 할 덕목과 군사 교육을 받게 됩니다. 가온에서도 고급 간부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고급 장교로 승진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받아야지요.”
그러면서 참석해 있던 20여 명의 용호영 군관들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면해졌다.
시간이 지나면 거국적으로 시작될 조선의 개혁에 선봉에 설 기회가 왔는데, 이를 흘려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가환 관찰사가 물었다.
“그러면 앞으로 군제는 어떻게 되는 거요?”
최성용이 설명을 했다.
“앞으로 군제는 이들이 훈련을 마치는 금년 말경부터 본격적으로 조정될 것입니다. 그리고 군제는 지금 전부 알려드릴 수는 없고, 이전과 다르게 아주 공정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전부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은, 조선의 군제는 저희도 어느 정도 가닥을 잡고 있지만 일단은 40명의 조선 출신 군관들이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뒤 그들과 논의를 거쳐 결정할 계획입니다.”
그러자 용호영 군관 출신 중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조선의 군제를 연구하는 데 우리 무관들이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돌아와 반드시 주상 전하 받들고 백성들의 안위를 보살피는 국방의 첨병이 되겠습니다.”
최성용이 그 군관의 말에 화답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2개월 동안 우리 가온 무역이 전 세계에 펼쳐놓은 수많은 개척지를 돌아보고 오는 길입니다. 여러분, 이 지도를 봐주십시오.”
그러자 최성용의 뒤에는 세계 전도가 펼쳐졌고, 그 지도에는 조선의 위치와 가온 무역이 획득한 영토가 상세히 표시되어 있었다.
세계 전도를 보며 최성용이 설명을 했다.
“여러분, 이제 우리 가온은 이미 조선의 수백 배에 달하는 영토를 이미 소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색깔이 표시된 지역이 지금 가온이 획득한 영토입니다.”
“아니, 저럴 수가!”
“정말 저것이 사실이라는 말인가?”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수십 명의 조선 관리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악하며 지도를 보고, 각자가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을 다 하며 소리쳤다.
그들의 경악한 외침은 계속되었다.
“아니, 저 정도란 말인가?”
“아니, 저럴 수가.”
“정말 저게 사실이란 말인가.”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렇게 큰 영토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청국보다 몇 배나 넓은 땅이 아닌가.”
“웅성. 웅성. 웅성. 웅성.”
수십 명의 관리들이 웅성거리며 저마다 소리치는 것을 보고도 가온 출신들은 누구 한 사람 자리에서 일어나 이들을 제지하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다.
10여 분을 어떤 사람은 경악을 하고 어떤 사람은 불신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떠들던 조선의 관리들이 가온 출신 10여 명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들이 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자 서로가 주변에 주의를 주면서 장내를 수습했다.
장내가 수습된 것을 본 최성용이 다시 말했다.
“여러분들께서는 제가 한 말이 수긍이 안 될 겁니다. 당연합니다. 그동안 조선은 늘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싸여 그들의 침략만을 받아왔지 언제 한번 큰 소리로 외쳐본 적이 있었습니까? 여러분들도 배워서 아시겠지만, 수천 년 전의 우리 선조들은 대륙을 질타하면서 온 천하를 호령하고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왜? 조선은 이렇게 약소국이 되어 이전에 우리의 속국인 청국의 눈치나 보는 속방(屬邦)이 되어 그들에게 죽어지내야 합니까?”
최성용은 잠시 말을 멈추고 이가환을 비롯한 조선의 관리들을 일일이 바라봤다.
최성용의 짧은 말에 그들도 아주 많은 생각을 하는 듯 착잡한 얼굴들이었다.
최성용이 목소리를 높여 지방관들을 꾸짖듯 말했다.
“조선의 위정자들이 스스로의 생각에 빠져 세상을 넓게 보려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문제입니다. 조선은 힘이 없으니 청국의 속방으로 만족하면서, 백성들과 힘을 모아 국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꿈을 키울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안위와 자신들의 가문만을 위했던 것 때문 아닙니까?”
최성용의 열변에 회의장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쥐 죽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성용의 질책에 가까운 말에 나는 아니다, 라고 서슴없이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회의장을 한번 둘러본 최성용이 다시 말했다.
“우리 민족은 본래 다른 나라가 업신여겨도 되는 그런 약소 민족이 아닙니다. 제가 이번에 출장을 가게 된 목적 중에 여러분들 같은 조선 관리들의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을 바꾸게 하기 위한 것도 출장의 아주 중요한 목적의 하나입니다. 먼저 준비된 화면을 보십시오. 이 영상물은 제가 이번에 출장을 가면서 동행한 영상 제작 부서에서 만든 기록물입니다.”
최성용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 창문에 검은 장막이 쳐졌으며, 곧이어 최성용의 뒤로 화면이 나오면서 해설자의 설명이 나오기 시작됐다.
조선의 관리들은 이미 영상 교육을 몇 차례 받은 경험들이 있어서인지 동영상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영상 제작팀은 1차로 이미 연해주까지의 일정을 편집했었다. 나머지 북미 지역도 멕시코를 다녀오고 연해주로 돌아오는 열흘 동안 비행선에서 가편집을 종료해 놓았었다.
일출과 동시에 시작된 영상 기록물은 2부로 나누어 3시간에 걸쳐 최성용이 출장을 다녀온 모든 곳을 편집해 방영하였다.
해설자의 묵직한 저음에서 나오는 해설을 들으며 기록물이 방영되는 3시간 동안 회의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시청을 할 정도로 영상 기록물은 아주 감동적이었다.
출장을 다녀온 당사자인 최성용 자신이 보면서도 가슴이 벅차올랐는데 조선의 관리들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불문가지였다.
3시간의 긴 상영 기간이 끝나고 창문의 장막이 젖혀졌어도 50여 명의 관리들은 방금 본 기록물에 감동되어 누구 한 사람 입을 열지 않았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연암 박지원이 최성용을 보고 물었다.
“최 공, 방금 전 기록물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겠소?”
최성용이 대답했다.
“가능합니다만 다른 분들이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참석자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한 번 더 시청을 원했다.
최성용이 그들을 보고 말했다.
“그럼 잠시 휴식을 갖고 다시 상영을 하겠습니다.”
최성용의 말대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다시 한 번 장막이 쳐지고 기록물이 상영되었다.
처음에 너무 놀라 경악하던 것과는 달리 두 번째 상영을 하자 조선의 관리들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유구 왕국부터 시작해서 광저우와 나가사키 상관, 드넓은 대양에 펼쳐져 있는 대가온 제도의 수많은 섬들과 황희 제도를 거쳐 호주로 가는 동안의 일과 만났던 사람들, 호주에서의 원주민들 교화와 엄청나게 크고 이국적인 호주 총독궁,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이 펼쳐진 호주 대륙, 그리고 연해주의 수해(樹海)와 사백력의 끝이 보이지 않는 동토의 땅 그 끝에 있는 우리 민족의 발원지인 밝달호와 알혼 섬, 사할린에서의 기관차, 말 그대로 망망대해(茫茫大海)인 태평양의 드넓음, 신고구려 개척지의 상황과 신부여에서의 전투 등 3시간 동안 상영된 기록물은 말 그대로 순간순간이 감동 일색이었다.
두 번째 상영이 끝나자 이번에는 모든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열광하면서 박수를 쳤다.
대다수의 참석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고, 가슴이 벅차서 치는 박수는 끝이 없었다.
사대부라고 자부하던 조선의 관리들이 자신의 속내를 다 내보이며 치는 박수 또한 변화된 새로운 모습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최성용이 손을 들어 주위를 환기시켰다.
관리들이 조용해지자 최성용이 말했다.
“여러분이 방금 보신 것이 우리 가온의 실체입니다. 조선은 약소국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이제 조선을 업신여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자각하여 스스로가 알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 가온은 여러분들이 스스로 깨어나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 역사는 여러분들이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박제가가 감동에 물든 목소리로 말했다.
“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 조선의 갈 길이 활짝 주어져 있는데 좁은 땅에서 당파 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나부터 변하고 또 변하겠습니다. 조선을 위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그러자 젊은 관리가 말을 했다.
“그렇습니다. 저 넓은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데 무엇을 주저하겠습니까?”
“합시다. 그리고 배웁시다. 이제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봅시다.”
수십 명의 관리들이 격정에 찬 목소리로 자신의 포부를 서슴없이 밝혔다.
최성용은 그들의 속에서 우러나오는 열정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것을 표현하게 해준 박지원을 돌아보는 순간 박지원도 최성용을 바라봤다.
최성용은 그런 박지원을 보고 목례를 보냈고, 박지원은 그것을 보고는 따듯한 미소를 보내주었다.
잠시 후 회의장은 안정을 되찾았고, 회의를 주제하는 최성용은 함경도의 사업에 대한 앞으로의 문제점에 대해 관리들과 격정적인 토론을 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지난 회의와는 달리 스스로가 나서서 문제점과 해결점들을 토의하였다.
몇 시간의 열정적인 시간이 지나 회의가 끝나자, 조선의 관리들은 벅찬 가슴을 안고 자신들의 임지로 돌아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