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호주
1793. 2. 10. 호주 고선지시 총독궁(總督宮).
황희 제도를 돌아본 최성용은 다음 출장지인 호주로 갔다.
호주 총독 김영훈이 총독궁 정문에서 최성용을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게, 최 제독.”
“안녕하십니까? 총독님.”
김영훈 총독이 고선지시에 있는 총독궁에서 최성용을 두 손 벌리고 환영해 주었다.
최성용은 신제주도 공항에서 비행선 제105금강호를 타고 호주 북부에 있는 여왕의 땅(퀸즐랜드)주의 신무산(웨이파)에 있는 보크사이트(Bauxite) 광산에 들러 알루미늄 제조 공장을 둘러보았다.
알루미늄 공장은 옆에 가공 공장까지 들어서 있었다.
초기에는 신무산의 주변 시설이 부족하여 알루미늄 괴를 화순까지 가져갔으나, 이제는 신무산에 가공 공장을 건설되어 생산된 알루미늄으로 아예 반제품을 만들어 각지로 수송하고 있었다.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으로 무한정 공장을 확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료의 생산지이고 발전소가 건설되어 전력이 풍부한 이곳에 가공 공장까지 세운 것이다.
가공 공장에서는 창문틀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제품들이 생산되고 있었다.
최성용은 알루미늄 공장 부근에 있는 농업부 직영 목장도 시찰을 했다. 직영 목장에는 인도산 소가 대량으로 방목되고 있었다.
영국과의 협상 이후 그동안 지속적으로 소가 수입되어 이젠 이곳만도 수만여 두가 방목되고 있었다.
이곳도 가온의 농협 출신 감독관과 천여 명의 조선 출신 목부들이 이들 소를 관리하고 있었다.
이 목부들은 이곳에서 경험을 축적하여 앞으로 조선 축산업의 중추를 담당하게 될 것이다.
신무산(웨이파)에서 하루를 보낸 최성용 제독은 비행선을 타고 오늘 호주 대륙의 남단에 호주 총독궁이 있는 고선지시의 안창남 비행장에 비행선을 내렸다.
비행장에는 김영훈 총독의 부관이 최성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영훈의 부관은 비행선에 내린 최성용을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태워 고선지시 중앙부에 있는 총독궁으로 왔던 것이다.
최성용은 동승한 김영훈 총독의 부관 이기선 대위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 고선지시의 인구가 벌써 5만을 넘어가고 있다 했다.
중앙의 대형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상 도시로 계획된 고선지시는 계속하여 주변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고선지시는 점차 대도시의 면모를 서서히 갖추어 나가고 있었다.
차가 시청 앞 광장을 지나 총독궁에 들어서자 정문을 지키고 있던 조선 출신 경계병의 각이 잡힌 ‘충성’ 소리를 들으며 차는 잘 정비된 정원의 정면 도로를 따라 총독궁 정문으로 향했다.
총독궁의 정문에는 김영훈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영훈의 진심 어린 환대를 받으며 총독의 집무실 소파에 앉은 최성용은 모처럼 만난 김영훈 총독과 환담을 나누었다.
최성용이 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했다.
“총독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김영훈도 1년 만에 만나는 최성용을 반갑게 맞이해 주며 방문을 축하해 주었다.
“그래, 오랜만일세. 이번에 진급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빨리 진급해서 다른 동료들 보기가 민망합니다.”
“그렇지 않네. 이제 자네가 맡고 있는 가온 무역이 곧 우리 전부가 아닌가. 가온 무역의 대외적인 위상을 봐서도 자네 승진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네.”
최성용이 고개를 숙여 김영훈에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먼저 이곳에 출장 온 목적부터 끝내야지? 이 대위, 준비한 자료를 갖고 보고를 시작하게.”
“예, 알겠습니다.”
그러자 김영훈 제독의 부관인 이기선 대위가 준비된 자료를 최성용과 김영훈에게 건네주고는 자신은 도표 앞에 섰다.
이기선이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호주 지역 현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군입니다. 지금 호주의 남부군은 총 1개 사단 3개 여단, 남부 함대 사령부, 범선 함대, 호주 비행단을 포함하여 총 4만여 병력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이 중 가온 친위군은 전원이 장교들로 2,000명이고 조선 출신 병력은 2만 명, 그리고 호주 원주민 출신 병력이 2만 명 등 총 42,000명의 병력입니다.”
최성용이 물었다.
“호주 출신 병력이 예상외로 많군.”
“그렇습니다. 이 병력도 원주민의 군 입대 자원을 철저한 신체검사를 통하여 선발하여서 나름대로 훌륭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최성용이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물었다.
“탈락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신체검사에서 탈락된 군 입대 예정자들은 지역 방위군으로 복무시켰고, 그 수도 4만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온 이주민은 지금 5만 명이 이주해 와 있습니다. 호주의 주민 교육은 3년차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최성용이 물었다.
“대륙의 내부는 개발을 하고 있는가?”
“아직은 인원이 부족하여 농업과 목축을 위해 고선지시 인근의 산맥을 일부 넘은 정도입니다. 아직은 인구가 적어 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가온의 훈련을 받은 조선 출신 병사들도 많이 늘어나 5만 명이 군 복부 중이었다.
조선인 중 최초로 제주 출신 약 1,000명이 부사관으로 임용되어 교관으로 복무 중에 있었다.
가온은 제주도에서 교육을 받는 조선 백성들뿐이 아니라 모든 개척지의 주민들에게도 철저한 의무 교육을 실시했다.
의무 교육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4년간 계속되었으며, 6살만 되면 모든 아동들을 유치원에 입학시켜 그때부터 의무 교육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약 50여 만 명의 조선 백성들이 1차 교육을 마치고 개척지 각지로 분산되어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고 있었다.
이 숫자는 처음의 예상했던 인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한 명이라도 사람이 아쉬운 가온에서는 인력 운용에 한결 숨통이 트여졌다.
교육을 받은 50여 만 명의 조선 출신 백성들은 연해주 10만, 북미 지역 10만, 호주 지역에 5만, 청진에 5만, 유구 제도와 태평양 각 섬에 2만 명을 이주시켰고 나머지는 제주의 각 공장에 배치되어 근무하고 있었다.
이기선 대위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지금까지 호주 원주민의 교화는 2년 만에 삼십만 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제는 원주민들 자체적으로 주민 교화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주민 중 성적 우수자를 선별하여 중급 교육을 조선 백성들과 같이 시행하고 있습니다.”
최성용이 김영훈에게 물었다.
“원주민들의 교육 성과가 상당히 높아 보입니다.”
김영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음 심규진 부족의 적극적인 협조가 많은 도움이 되었네.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그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해야겠지.”
최성용도 이미 심규진 부족에 대한 일을 보고받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예, 그렇겠습니다.”
이기선 대위의 설명이 계속 되었다.
“농업은 이제 2번째 수확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곳의 밀과 쌀농사는 이미 제주도를 포함한 가온의 관할 지역의 식량을 감당할 정도를 넘어설 정도로 수확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3~4년만 지나면 조선 백성의 절반 이상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의 곡식을 대량으로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그리고 목축은 1,000만 두를 목표로 계속해서 소를 영국과 인도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이번 출장을 하면서 보니 농업부 직원들이 상당히 고생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김영훈이 말했다.
“그래, 지금 시대는 누구나 힘이 들겠지만 특히 농업과 광업부 직원들은 원주민들을 교육시켜 가면서 개척을 해야 하니 고생이 심할 것이네.”
“총독님께서도 그들에게 많은 격려를 해주십시오.”
“알겠네. 내 이번에 그들을 위한 별도의 조치를 마련하겠네.”
“고맙습니다.”
김영훈과 최성용이 말을 마치는 것을 보고 이기선이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광물의 경우 금과 은의 채굴은 속도를 내고 있어 처음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기선 대위의 긴 설명을 들은 최성용이 김영훈에게 물었다.
“총독님, 태즈메이니아와 뉴질랜드 상황은 어떻습니까?”
김영훈이 대답했다.
“태즈메이니아는 앞으로 섬 이름을 도원도(桃園島)라고 부르기로 했네. 도원도의 원주민들이 아직까지 극도로 우리를 경계해서 별다른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네. 역사에 보면 이들의 숫자가 5,000명 내외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들을 무시하고 우리 가온 주민들의 휴양지가 될 건축물들이 지금 건축되고 있다네. 그리고 뉴질랜드의 북 섬의 마오리 족과는 계속 접촉 중에 있으며, 남 섬은 아직 여력이 모자라 서양 세력의 침입만 막을 요새를 건설해 놓은 중이네.”
“몇 년간 참으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별말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내가 할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이보다 더 큰 행운은 없을 것이네.”
최성용은 그동안의 호주 개척 내용을 듣고 총독 관저에서 하루를 쉬기로 했다.
다음 날 최성용은 신부산(멜버른)을 비롯한 호주 대륙을 10일 이상에 걸쳐 비행선을 타고 곳곳을 일일이 돌아보았다. 여기에는 당연히 영상 제작팀이 동행했다.
제주에서 생각하던 것과 달리 호주는 지금 대륙의 연안 곳곳이 공사 중에 있었다.
제주에서 예상하기로는 몇 곳의 지역만 개발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 와보니 가온에 개발 보고가 올라가면 벌써 그 옆 지역이 개발될 정도로 빠르게 개발되고 있어 호주 동부 해안의 중요 거점 거의 전부에 요새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요새에는 교화된 호주 원주민들도 각지에 배속되어 개척지 개발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
최초에 호주에 이주해 온 제주 출신 주민 3,000명은 2년간의 교육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에 가까울 정도로 의식이 개조되어 있었다.
제주 출신 주민들은 호주 전역의 현장에서 호주 원주민들을 이끌고 있었고, 후에 온 조선 출신 주민들 또한 이들과 협조해 가며 자신들의 기반을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제주에서 교육을 받고 온 이주민들에게는 직업의 선택권을 주었다.
이주해 온 모든 사람들에게 3,300㎡(1천 평)의 땅이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주어졌다.
이 땅만큼은 토지 국가 소유의 예외로 인정하여 개인 소유가 허용된 땅으로, 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고 반드시 농사만을 지어야 하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주민 각 가정마다 주택이 1채씩이 제공되었다.
만일 이들에게 제공된 토지에 도시 개발이 진행된다면 반드시 대체 농지를 환지해 주는 것으로 하고 토지가 무상 제공되었다.
단, 제공된 주택은 개척민 모두에게 무한정 무상으로 제공할 순 없었기 때문에 그 주택의 대금으로 일정 기간 총독부에서 실시하는 도시 개발 공사에 인력을 제공함으로 대신 상계 처리하기로 하였다.
이때는 주민들 기본 생활에 필요한 모든 생필품이 총독부에서 무상으로 지급되었다.
이주민들이 농사를 지을 계획으로 총독부에 신청을 하면 이들에게 33,000㎡(1만 평)의 땅이 제공되었고, 앞으로 이들이 완전 정착을 하게 되면 최고 100,000㎡(약 3만 평)까지 제공될 예정이다.
목축을 하겠다고 하는 경우는 대형 초지와 200두의 소가 유상 제공되었다. 유상 제공되는 그 소는 돈이 아닌 그 수만큼 송아지를 되돌려주는 조건이었다.
조선의 이주민들은 조선에서 땅에 대한 한풀이를 하는 것같이 대부분의 이주민들이 농업을 선택을 했고, 중인들은 대부분 상업을 택했다.
광부들은 일본 출신 광부들이 주축을 이루었고, 그 밑에 호주 원주민이 대부분 배치되었다.
광산도 속속히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고, 특히 금광과 은광은 서부 호주 곳곳에서 개발되고 있어서 여기서 생산되는 금과 은은 화폐 경제 정착의 밑거름을 넘어 단단한 뿌리가 내리게 해주고 있었다.
가온에서는 이러한 직업의 불균형을 타파하기 위해 가온 대학의 호주 분교를 고선지시에 설립해서 광물 탐사 및 광업에 필요한 학과를 신설하여 이들을 감독할 인력을 육성하고, 농업 육성을 위해 농과 대학도 같이 설립하기로 했다.
주민들 직업이 세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주민들에게 철저한 의무 교육 실시했으며, 농업의 경우 대단위 농업 육성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호주 대륙의 서부 지역의 철광 지대는 이전과 달리 원료를 수출하지 않고 현지 가공 생산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대단위 용광로 건설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신무산에 있는 화력 발전소를 이용하여 전기로 공장을 우선 건설하기로 했다.
이 전기로에서 철도 레일과 철근 등을 생산하여 광활한 호주 지역 개발에 필요한 철도와 건설 등 자체적으로 필요한 제강 생산에 주력하기로 했다.
그동안 영국에서는 수차 탐험대를 보내왔었으나 모조리 수장시켰기 때문에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새로운 선단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에 있는 유럽 대륙이 호주로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다.
인도의 동인도 회사도 가온 무역의 제이스 소총을 구입해 갔지만 마이소르 왕국과의 전쟁은 가온의 조언을 받은 후 한층 정교해진 마이소르 로켓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가온의 의도대로 전황이 고착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 때문에 동인도 회사는 다른 곳에 사업을 전개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가온의 호주 개척은 한동안 누구의 간섭도 없이 순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10일간의 호주 방문을 마친 최성용 소장은 비행선을 돌려 광저우로 향했다.
1793. 2. 25. 11:00 중국 광저우(廣州) 가온 무역 상관.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반갑습니다, 관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경식 상관장과 최성용은 1년 만에 만나는 탓인지 서로를 무척 반가워했다.
최성용은 105금강호를 타고 광저우와 유구도의 중간 해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광무황제함에 내렸다.
함장인 공진성 대령과 인사를 나눈 최성용은 대기하고 있던 개조된 판옥선에 올라타고 광저우로 왔다.
광저우의 가온 무역 상관에 들른 최성용은 기다리고 있던 이경식 관장과 이영달 과장, 그리고 이제는 30여 명으로 늘어난 광저우 상관의 직원들이 모두 나와 최성용을 방문을 반기고 있었다.
최성용은 이들의 환대를 받으며 상관으로 들어섰다.
처음으로 와보는 광저우의 상관은 말로만 들었지만 그 규모가 대단해서 거의 왕궁 수준이었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안휘 상인 대저택(徽商大宅院)이라고 이름 붙일 만합니다.”
이경식이 말했다.
“중국이란 나라가 땅이 넓고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인건비가 아주 형편없습니다. 하루 일당을 받아서 4인 가족이 하루를 살지 못할 정도이니 그들을 동원해 이런 저택도 지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최성용이 말했다.
“맞습니다. 이들의 빈부격차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자, 이리로 들어가시죠.”
최성용과 이경식은 가온 무역 상관을 주제로 이야기하며 응접실 옆에 있는 귀빈실로 들어갔다.
최성용 소장이 자리에 앉자 좌우로 이경식과 이영달 과장이 앉았고, 앞에는 국정원 요원과 가온 무역 지배인이 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가온 무역은 금년부터 광저우와 나가사키, 유구의 상관 업무가 폭주하여 중간 관리인으로 지배인 제도를 도입하여 상관의 실무를 전담하게 했다.
이경식 관장과 이영달 과장은 각각 자신들 직원을 최성용에게 인사시켰다.
이들이 자리에 앉자 곧바로 차나 나왔으며, 그 차는 제주산 오미자차였다.
오미자차를 마시던 이경식 관장이 말했다.
“사장님, 커피는 언제부터 생산이 가능합니까?”
“내년부터는 가능하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까? 빨리 생산되어 제가 먼저 한잔 마셔봤으면 좋겠습니다.”
“아, 관장님이 커피를 좋아하시는군요.”
“하하, 시간 여행 전에 커피 마니아라는 소리를 들었었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제가 농산에 부탁을 해서 첫 수확한 커피콩을 가장 먼저 관장님께 보내라고 지시를 해놓겠습니다.”
그 말에 이경식이 얼굴을 활짝 펴고 말했다.
“아이고, 말씀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그렇게 최성용은 마이소르에서 생산될 아라비카 커피콩을 가정 먼저 이경식에게 공수되도록 약속을 했다.
잠시 환담을 나누던 일행은 곧 광저우의 상관업무에 대한 보고를 시작했다.
먼저 이경식 관장이 보고했다.
“광저우에서는 지금도 대청국 무역으로 매월 천은 삼백만 냥의 거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의 무역 품목이 점차 다변화되고 있어서 초기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발화기(發火器) 매출이 하락한 것에서 생기는 결손을 충분히 메워주고 있습니다.”
“예, 저도 발화기 판매가 주춤하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다른 제품으로 대체를 하고 있다니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청국에 수출하던 발화기의 인기가 대단했었으나 3년이 돼가는 지금은 고급 시장에 발화기(發火器) 제품이 어느 정도 선을 보였고, 비록 특허를 등록하기는 했지만 일본과 유럽과는 달리 청국 곳곳에서 비슷한 아류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발화기(發火器) 매출 성장에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이경식이 계속 보고를 했다.
“나머지 제품들은 비교적 순항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특히 라면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청국은 이전 시대나 지금이나 빈부의 격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서 도시 빈민들에게 라면은 이들의 주식으로까지 변해가고 있을 정도입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그 정도입니까? 그러지 않아도 제주의 라면 공장이 중국과 일본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생산이 따라가지 못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곧 생산 라인 증설에 들어간다는 보고를 받고 왔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저희들도 폭주하는 라면 주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라면이 이렇게 반응이 대단할 줄을 몰랐습니다.”
최성용이 이경식의 말에 대답했다.
“조금 기다리면 생산 시설을 증설해서 공급에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과장님, 백련교도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최성용의 질문에 이영달 과장이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했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백련교의 훈련이 6개월째로 접어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발주한 제이스 소총은 이미 전부 공급을 마쳤습니다. 이들의 소총 사격 훈련이 얼마나 많은지 실탄 구입 의뢰가 벌써 2차례나 들어왔습니다. 우리 가온군 교관들이 백련교군을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있어서 내년이면 10만 강군 육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는 9월부터 훈련을 시작해 매월 5,000명씩의 병사들이 추가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30,000명의 병력이 육성되어 있습니다. 우리 국정원에서도 내년을 대비해서 국정원 요원 100명이 이미 중국전역에 파견되어 있습니다.”
최성용이 이영달의 보고에 치하를 해주었다.
“국정원이 항상 고생이 많습니다. 항상 국정원이 최선봉입니다.”
이영달이 말했다.
“당연히 저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번에는 조선 출신 요원들도 50명이 같이 들어갔으니 좋은 결과를 기다려보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청국 교역에 대해 청국 조정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습니까?”
최성용의 질문에 이영달이 말했다.
“아직까지는 월해관(?海關)의 송지청과 광둥십삼행(廣東十三行)의 총상(總商) 대표인 조정왕 등이 청국에서 우리들의 제품을 영국이나 다른 서양 나라의 제품으로 위장을 하고 있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우리 제품을 비롯한 우리들의 실체가 청국 조정에 알려질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조선에서도 발화기 등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실체에 대해 곧 문제가 되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최성용이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조선이 문제가 되겠군요.”
이영달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문제가 별로 없지만 청국이 조선을 압박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리 되면 조선의 외교적 입지가 좁아져 정조에게 상당한 정치적 압박이 가해질 우려도 있습니다.”
최성용이 다시 말했다.
“청국 조정의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겠군요.”
“맞습니다. 내년에 백련교의 봉기를 적극 지원하는 것이 이러한 청국의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지금은 너무 많은 금액의 교역이 오가고 있으니 특별히 신경 써서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최성용과 광저우의 이경식과 이영달이 협의하고 있을 때 청국에 파견된 국정원 요원 심정식은 백련교도 3명의 안내를 받으며 귀주성 산간에 있는 묘족(苗族)을 찾아가고 있었다.
심정식이 찾아가는 묘족은 귀주성 산악 지역을 근거로 넓게 베트남까지 분포되어 있으며 2005년 중국 정부 추정으로 900만 명의 인구가 있는 중국 내 5번째로 큰 민족이었다.
묘족은 청대 이전부터 독립을 하기 위해 역대 왕조에 반기를 수없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수십만의 종족이 죽어나가면서 실패를 거듭하였고, 중국을 가로지르는 민족 대이동을 하면서도 이들 종족은 독립의 의지를 끝까지 꺾지 않은 민족으로 유명하다.
특히 묘족은 그들이 모시는 조상신이 ‘치우’이고 그들의 생활 풍습이 우리 민족과 유사한 점이 많아 황제 헌원과 치우 천자와의 전쟁의 결과로 북방에서 이주한 동이족의 한 갈래가 아닌가 하는 학설도 제기되고 있는 민족이다.
심정식 요원은 중경 부근의 백련교의 비밀 근거지를 출발하여 15일 만에 묘족의 대족장을 만났으며, 5일간의 협상 끝에 1794년 백련교의 봉기 때 묘족도 같이 궐기하기로 하였다.
백련교는 가온 무역과 협상을 하여 묘족의 국가를 인정해 주기로 하였으며, 그 지역은 지금 묘족이 머무는 귀주 지역이 아닌 예전 대리국 영토인 운남 지역을 묘족에게 분할해 주기로 했다.
심정식은 한 달 만에 묘족과의 협상을 마무리하고 광저우로 돌아왔다.
심정식의 돌아올 때 묘족의 사절 10여 명도 변복을 하고 은밀히 동행을 했다.
묘족의 사절은 이경식 상관장과 이영달 과장과의 비밀협상으로 10,000정의 제이스 소총과 탄환, 그리고 가온에서 군사를 훈련시킬 교관을 파견하기로 했다.
그리고 제공한 소총 및 소모품의 대금은 이들이 독립 후 지하자원으로 대신 받기로 하고 조약을 체결했다.
1793. 2. 27. 나가사키 가온 무역 상관.
광저우에서 며칠을 머물며 중국과의 교역과 백련교와의 일을 마무리한 최성용이 나가사키 상관에 도착을 했다.
기범선을 타고 항해를 하던 최성용은 나가사키에 근접해 개조한 판옥선으로 갈아타고 입항을 했다.
나가사키 항에서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가온 무역 상관은 그 크기가 이미 네덜란드 인의 거주지인 인공 섬 데지마(出島)를 훨씬 넘어서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을 했다.
초기에 66,000㎡의 면적으로 시작된 가온 무역의 조계지는 이후 그 권역이 늘어나 100,000㎡이 되었다.
기정진이 최성용이 타고 온 판옥선에 올라 인사를 했다.
그들은 선착장 너머에 있는 가온 무역 상관과 조계지를 보고 최성용이 말했다.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기정진도 그 말에 동감을 표시하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가온 무역 상관은 이제 본격적으로 일본을 공략해도 충분할 만큼 성장했습니다.”
최성용이 선착장에 서 있는 사람은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서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기정진이 대답했다.
“사장님께서 오신다는 전갈을 받고 사쓰마번의 숙노 카바야마 치카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내려가서 만나봅시다.”
최성용과 기정진은 판옥선에서 내려 카바야마 치카라가 기다리고 있는 선착장으로 갔다.
최성용이 도착하자 카바야마 치카라는 일본인 특유의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사쓰마번의 숙노 카바야마 치카라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가온 무역사장 최성용입니다.”
그러자 카바야마 치카라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공손한 어투로 말했다.
“저희 사쓰마번의 번주님께서 사장님을 한번 모셨으면 해서 이렇게 결례를 무릅쓰고 찾아뵈었습니다.”
그러자 기정진 관장이 숙노 치카라에게 물었다.
“번주께서는 어디 계시는지요?”
“예, 이번에 사장님께서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이곳 나가사키에 와 계십니다.”
그러자 최성용 소장이 말했다.
“그렇습니까? 오늘은 저희 회사 일로 조금 바쁘니 시간을 내일로 잡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카바야마 치카라가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대답했다.
“그것은 관계없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에 가온 무역 상관을 찾아뵙고 시간을 일정을 조정하겠습니다.”
“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사쓰마번의 숙노 카바야마 치카라는 최성용에게 더할 수 없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그래도 일본 제일번의 숙노인데 너무 허리를 숙이는 게 아닌가요?”
최성용의 말에 기정진이 답했다.
“하하. 사장님, 저 숙노와 현재의 번주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생명의 은인 아닙니까? 편하게 받아주십시오.”
최성용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과례(過禮)는 비례(非禮)라고 너무 심합니다.”
“이해하십시오. 우리 가온 무역이 2년 만에 저들의 목을 쥐고 있는 형국이니 저들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도 저들을 적극 밀어주고 있으니 공생 관계로 보시면 됩니다.”
두 사람은 말을 주고받으며 조계지에 있던 가온 무역 상관으로 들어섰다.
가온 무역 상관에는 이미 최성용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업무 보고가 시작되었다.
최성용이 물었다.
“관장님, 자세한 것은 서류로 보면 되고 몇 가지만 질문하겠습니다. 작년 우리 가온 무역의 순수익은 어느 정도 됩니까?”
기정진이 대답했다.
“은으로 육백만 냥 정도 됩니다.”
최성용이 다시 물었다.
“은은 청국과 중계 무역을 하고 있습니까?”
“예, 청국과 일본의 환율 차가 20% 이상 나기 때문에 순수익으로 발생한 일본의 은을 청국의 금으로 바꾸면 은으로 150만 냥 이상의 추가 수익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계속 중계 무역을 하고 있습니다.”
최성용이 기정진을 치하하며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그나저나 들어오면서 보니 우리 회사 상관이 엄청나게 커져 있습니다.”
기정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른 것은 그대로인데 교역 품목이 늘어나니 창고가 감당이 안 되었기 때문에 작년 하반기 나가사키 봉행소에 신청에서 추가로 40,000㎡의 면적을 조계지로 더 받았습니다.”
“우리 조계지 안에서의 주권 문제는 봉행소와 협상을 하셨습니까?”
기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대략적인 협의는 끝냈는데 이번 사장님께서 오시면 선물로 주려는지 결정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그렇습니까? 협상 내용은 어느 정도입니까?”
“거의 지난 시대 조계지 수준으로 치외법권 지역 지정과 우리 국민의 사법권 문제를 다 적용시켜 놓았습니다. 아직은 일본이 이러한 것이 어떠한 법적 문제가 있는지 몰라 내용의 대부분을 일본과 조선과 맺은 1877년 1월 30일 부산항 조계 조약(釜山港租界條約)의 내용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최성용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하나씩 하나씩 되갚아줍시다. 총칼을 들이대지 않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일본을 경제 속국으로 전락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도 가능합니다. 힘이 필요하면 힘으로 속국을 만들고, 그게 아니면 세뇌가 될 정도로 정신적인 속국으로 만들어 저들을 철저하게 복속시켜 봅시다.”
기정진도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철저하게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석원형 과장.”
“예, 제독님.”
“일본에 앞으로 침투시킬 국정원 요원들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석원형이 최성용의 질문에 대답했다.
“지금 가온 출신 50명과 조선 출신 100명의 요원들이 침투 준비를 완전히 끝내고 울릉도에서 대기 상태로 있습니다.”
“앞으로 일본 본토로 들어가면 닌자(忍者)들과의 조우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대비책은 있는가?”
“닌자(忍者)들 속성상 대부분이 밤에 움직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래서 우리 국정원에서는 열 감지기와 야간에 활용 가능한 적외선 망원경과 적외선 안경을 전 요원들에게 지급했습니다. 기습만 당하지 않으면 1대 1의 격투에서는 자신 있습니다.”
“알겠네. 아무리 우리가 첨단 무기로 무장을 해도 저들의 냉병기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네. 지금의 우리 인적 자원 한 명 한 명이 소중할 때이니 요원 관리에 만전을 기해주게. 아무리 저들이 전국 시대보다 쇄락했다고는 하나 엄청난 훈련을 받은 자들이네.”
석원형이 대답했다.
“보다 철저한 훈련을 하도록 지시를 하겠습니다.”
닌자(忍者)는 탐정, 첩자, 자객 등으로 활동한다.
변장과 은신, 암살, 교란 등의 달인으로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가면, 복면, 인피면구 등을 쓰거나 자신의 정체를 옷으로만 바꿀 수도 있다.
대표적인 집단으로 이가(伊賀)류, 코가(甲賀)류 등이 전해진다.
이들은 수리검(手裏劍, 십자 형태 표창)과 쇄겸(鎖鎌, 사슬 낫), 만력쇄(萬力鎖, 추가 달린 사슬), 바람총(입으로 부는 독침) 등을 다룰 뿐 아니라 미혼향(迷混香)을 사용하기도 한다.
6세기부터 출현한 이들은 전국 시대 정리 정책으로 위축되기도 했지만, 이들은 대대로 도쿠가와 가문(막부가 아님)에 절대 충성을 바쳤다.
최성용은 기정신 관장의 여러 가지 사안들을 보고받으며 첫날을 보냈다.
1793. 2. 29. 나가사키 가온 무역 상관.
아침 일찍 사쓰마번에서 상관으로 사람을 보내왔다.
사쓰마번은 가온 무역과의 교역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가온 무역의 조계지 옆에 아예 막부의 허가를 받아 자신들의 상관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최성용은 사쓰마번주를 만나기 위해 기정진과 석원형 과장을 대동하고 사쓰마번 상관을 찾았다.
사쓰마번 상관을 찾은 최성용은 우선 그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대단하죠?”
“그렇네요. 이건 우리 상관의 몇 배는 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일본의 판매권을 전부 사쓰마번에 넘겨주었기 때문에 사쓰마번의 상관에 전 일본의 상인들이 모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규모가 우리의 2배 이상이 될 것입니다.”
기정진의 설명대로 나가사키의 사쓰마 상관은 그 규모가 가온 무역의 몇 배가 되었다.
기정진은 가온 무역 상관에서 상품을 보관을 하지 않고 수입 되들어오는 족족 세관에 신고를 하고는 바로 사쓰마 상관에 넘겨주었다.
일부 귀중품은 어쩔 수 없이 가온 무역 창고에 보관을 했지만 대부분 사쓰마 상관으로 물건을 넘겨주어서 지금 나가사키 사쓰마 상관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최성용 일행이 멈춰 서서 사쓰마번 상관에 대하여 말을 주고받을 때 번의 숙노 카바야마 치카라가 이것을 보고는 황급히 뛰어왔다.
카바야마 치카라가 어제와 같이 허리를 직각으로 숙여 인사를 하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지금 번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최성용이 간단히 답례를 했다.
“예, 들어가십시다.”
숙노의 안내를 받으며 상관으로 들어선 최성용은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청년을 보게 되었다.
숙노 카바야마 치카라가 말했다.
“저희 사쓰마번의 번주님이신 시마즈 나리노부(島津?宣) 님이십니다.”
그러자 기정진이 최성용을 소개했다.
“이분은 우리 가온 무역 회사의 사장님이신 최성용 제독님이십니다.”
두 사람은 각각의 소개가 있자 시마즈 나리노부는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고, 최성용은 해군 정장을 입은 탓에 거수경례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최성용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쓰마 번의 당대 번주인 시마즈 나리노부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1773년 태어난 시마즈 나리노부는 올해로 21살이었다.
15살이 되던 해인 1787년에 아버지로부터 번주 직위를 이어받은 시마즈 나리노부는 그동안 아버지의 에도에서의 사치로 인한 과도한 지출에 힘들어하던 재정을 일거에 해소해 준 가온 무역에 남다른 애정이 보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나름대로 호감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갔다.
다다미가 놓여진 방 안에는 가운데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탁자가 놓여 있었다.
최성용과 일행들이 자리에 앉자 바로 차가 나왔다.
잠시 차 맛을 음미하던 기정진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번주님께서 직접 나가사키를 찾아주시다니 고맙습니다.”
그러자 시마즈 나리노부가 말했다.
“아닙니다. 그동안 가온 무역 때문에 우리 사쓰마번이 먹구름을 걷어내고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미리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기정진이 번주의 인사말에 답변을 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희가 오히려 사쓰마번에 감사드려야지요. 사쓰마가 이렇게 상업을 잘하시는지 몰랐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숙노 카바야마 치카라가 번주를 대신해 말했다.
“그거야 저희는 관장님과 가온 무역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저희들도 관장님 말씀이 이렇게 큰 효과를 거둘지 몰랐습니다.”
기정진이 다시 말했다.
“별말씀을요. 조선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가르치려고 해도 사쓰마번에서 그것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으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입니다.”
기정진의 칭찬대로 실제 사쓰마번의 상술은 놀라웠다.
이들은 기정진이 오사카 상인을 상대하는 방법과 발화기와 구필 등 고급품을 판매하는 방법 등을 가르쳐주자 단번에 습득을 하여 지금 가온에서 판매하는 20여 종의 물품으로 불과 2년 만에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되었다.
가온 무역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쓰마번은 한 해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수백만 냥의 은이 쏟아져 들어오자 그동안 난학으로 쏠려 명시관 의학관을 설립하여 네덜란드 학문을 받아들이려던 것을 중단하고 번의 모든 힘을 집중하여 가온의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애를 썼으며, 가온 무역과의 교역과 가온의 물품을 팔기 위한 전국적인 유통망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기정진이 카바야마 치카라 숙노에게 물었다.
“그래, 유통망 건설은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카바야마 치카라 숙노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곳 큐슈(구주) 지역과 시코쿠(사국) 지역 유통망은 완성을 보았으나 본토인 혼슈(본주)는 오사카 상인들의 보이지 않는 견제로 상당히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기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실 겁니다. 그래도 유통망을 확보하셔야 합니다. 유통망이 확보되면 그 다음에 전국 장악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입니다.”
카바야마 치카라 숙노가 다시 말했다.
“그래도 조선에서 들여온 손수레가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손수레는 산간 오지에도 거침없이 들어가기 때문에 지금 가온 무역의 물품을 시작하여 큐슈우(구주)와 시코쿠(사국)는 어느 정도 상권을 장악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가온 무역에서는 초기에 사쓰마번에 물건을 넘기고 그것을 오사카 상인이나 다른 대상들에게 넘기던 것을 사쓰마가 앞으로 상업을 하기 위해서는 일부 지역부터 직접 유통망을 갖추라는 조언과 함께 바닥 상권을 장악하는 조선 보부상의 상술 몇 가지를 이들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렇게 되자 사쓰마는 발 빠르게 가온 무역의 조언대로 가온 무역과 경제적인 종속 관계가 성립되는 줄도 모르고 상단을 구성하였다.
이들은 구주 지역과 사국 지역의 상권을 점차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으며 2년 만에 상당 부분 상권을 장악한 지금 사쓰마번은 중간 상인들에게 물건을 넘기는 것보다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었다.
기정진이 다시 말했다.
“잘되셨습니다. 우리 제품은 경쟁력이 있습니다. 다른 상인들과 부딪치지 마시고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시면 몇 년 가지 않아 좋은 성과가 있을 겁니다.”
숙노 카바야마 치카라가 기정진 관장에게 거듭 사의를 표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말을 마치는 것을 보고 최성용이 시마즈 나리노부 번주에게 물었다.
“번주님, 지난번 우리 가온 무역이 조계지 설정 문제를 의뢰한 건은 어떻게 처리되셨는지요?”
그러자 시마즈 나리노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가온 무역의 조계지 획정 문제를 에도의 쇼군께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여기 문서가 있습니다.”
시마즈 나리노부가 최성용에게 문서를 전했고 그 문서는 기정진이 읽어주었으며, 그 내용은 가온 무역이 신청한 면적보다 2배가 넓은 200,000㎡의 면적을 전관조계(專管租界, 외국 영토에서 어느 한 나라의 행정권, 경찰권 따위가 행사되는 지역)와 치외법권 지역으로 지정하고 이 지역 내 재판권과 치안권을 가온 무역에 준다는 일본 왕의 공식 문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쇼군의 확인 서류였다.
기정진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이렇게 넓은 면적을 지정하도록 힘써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시마즈 번주가 말했다.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 번에 신경 써주신 가온 무역의 배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정진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설정된 조계지에 저희들이 벽돌로 담장을 쌓아야겠습니다. 봉행소 지토에게 말씀을 드려주셨으면 합니다.”
시마즈 번주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지토에게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에 조계지를 결정할 때 아버님이신 전대 번주님께 쇼군께서 아예 조계지에 관한 모든 사항을 일임받으셨습니다. 아버님께서 그러한 사실을 저에게 알려주셨으니 이미 지토도 이 건에 대하여 어떠한 권한도 없고, 막부에서 이미 지토에게 전갈이 갔을 겁니다. 담장을 쌓는 게 편하시면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기정진과 사쓰마번 번주가 하는 말을 듣고 있던 최성용이 시마즈 나리노부 번주에게 말했다.
“번주님께서 앞으로 상단을 잘 이끄셔서 그것을 바탕으로 일본 제일의 번이 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우리 가온 무역에서도 힘닿는 대로 사쓰마번을 적극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시마즈 나리노부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서로 간에 대화를 하는 동안 식사 시간이 되었고, 최성용의 일행은 번주와 식사를 하면서도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나가시키 봉행소 장관인 지토 가토마사모리(家藤昌盛)를 만났다.
“아이고, 관장님. 안녕하십니까?”
“지토 님 아니십니까?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어디를 가시는 길이 십니까?”
“예, 가온 무역 사장님께서 오셨다기에 인사차 가온 무역 상관을 방문하는 길입니다.”
그러자 기정진이 화답을 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여기 앞에 계신 분이 우리 회사 사장님이십니다.”
가토 마사노리가 최성용을 보고 허리를 크게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렇습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나가사키 봉행소의 지토 가토마사모리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성용입니다.”
길에서 만난 가토마사모리를 최성용은 상관으로 데리고 와서 선물을 한 아름 안겨 돌려보냈다.
최성용과 기정진 석원형은 원탁에 둘러앉아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의논을 했다.
최성용이 먼저 물었다.
“석 과장, 지금 준비된 요원 150명은 일본에서의 일상적인 활동에 문제가 없는가?”
석원형이 말했다.
“다른 것은 문제가 없는데 가온 출신들 키가 문제입니다. 지금 일본인들 키가 우리의 초등학생 수준이라서 요원들이 다른 사람 눈에 너무 띄는 게 문제입니다. 중국 쪽은 여러 민족이 섞여 있어 큰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키가 상당한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선별을 한다고 했는데도 그렇습니다.”
최성용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시대가 다르니 별게 다 문제가 되는구먼. 가온 출신이 너무 표가 나면 조선 출신 요원들만 우선 침투시키는 것도 연구해 보게.”
“그렇게 하려면 지금 지급된 기자재의 숙련도를 끌어올리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충분히 숙지시켜서 투입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최성용 등이 고민한 것처럼 이 시기의 일본인들 키는 말 그대로 왜인(倭人) 수준이었다.
한참을 고심을 하던 국정원은 그 후 50명의 가온 출신 중에서 20명만을 선별하여 일본에 침투시키게 되었다.
1793. 3. 2. 좌도도.
나가사키를 떠난 최성용이 판옥선을 몰아 좌도도를 들렀다.
좌도도에는 육군 훈련소가 있었고, 오늘도 수천의 병사들이 후반기 교육을 받고 있었다.
연병장에서는 훈련병들의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것 봐, 그것밖에 못하나?”
“시정하겠습니다!”
“뭘 시정해? 시정하기 전에 안 해야지.”
“죄송합니다!”
“뭐! 죄송해? 이거 안 되겠구나. 전부 앞으로 취침.”
“앞으로 취침!”
“기상. 뒤로 취침.”
“뒤로 취침!”
“기상.”
빨간 모자를 쓰고 눈에 독기가 가득 찬 조교들의 통제를 받고 있는 훈련병들에게 교관이 말했다.
“군대는 연대 책임이다. 동기가 낙오되면 업고라도 와야 하는 게 군인이야. 측정에 자신만 합격하려고 동기가 낙오됐다고 버려두고 와? 전쟁에서 동기가 총에 맞으면 버리고 올 거야?”
“아닙니다!”
“아니라는 놈들이 훈련 중에 동기를 버리고 와?”
“시정하겠습니다!”
“향도, 나와.”
그러자 훈련병 중 한명이 교관 앞으로 뛰어 나왔다.
“예, 이병 성경수.”
“너는 향도라는 놈이 같은 내무반 동기가 낙오된 것도 모르고 병력을 인솔해?”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야? 너는 지금 즉시 완전 군장하고 10분 만에 연병장에 집합한다. 튀어가?!”
향도가 내무반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고 교관이 훈련병들을 보고 말했다.
“너희들은 이미 제주도와 연해주에서 6개월간의 기초 군사 교육과 군 입대 후 1개월간 전반기 교육을 받은 병력이다. 어떻게 훈련 중에 동기를 버리고 오는 일을 저지르나? 군은 한 사람 때문에 사단 병력이 몰살을 당하고 한 사람 때문에 수십만이 살 수 있는 게 군이다. 모두 오른쪽을 봐라.”
훈련받던 병사들이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봤다.
거기에는 부대 정문이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제주 출신 교관이 훈련병을 보고 말했다.
“너희들은 스스로 걸어서 저 문을 들어왔다. 훈련받기 싫으면 언제라도 말해라. 우리 친위군은 절대 떠나는 병사는 잡지 않는다. 우리가 이전에 얼마나 설움을 받고 천대를 받았는데 이까짓 훈련이 힘들면 얼마나 힘들다고 그러느냐. 또다시 예전과 같은 그런 천대를 받고 싶은가?”
“아닙니다!”
교관이 다시 말했다.
“힘들어도 참아라. 우리가 흘리는 땀 한 방울이 전쟁에서 피 한 말이다. 절대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뛰고 또 뛰어야 한다. 할 수 있겠나?!”
“예! 할 수 있습니다!”
“좋다. 지금부터 연병장 100바퀴를 돈다. 몇 바퀴?”
“100바퀴!”
“이번에는 본 교관도 너희들을 잘못 가르친 벌로 같이 뛴다. 모두 우향우. 뛰어가. 구보 중에 군가 한다. 군가는 팔도 사나이.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교관의 지휘로 군가가 연병장에 울려 퍼졌다.
가온군은 조선 주민들의 교육에 군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군가의 특성상 주민들을 단합시키고 통일감과 일체감을 조성하는 데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가온에서는 50여 곡의 군가를 선정하여 주민들에게 가르쳤으며, 군가를 교육받은 주민들은 이전 조선의 노래와는 다른 리듬의 군가를 놀랍도록 잘 따라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좋게 나와 주민들 교육 및 병사들 훈련에 엄청난 효과를 나타냈다.
교관과 같이 연병장을 도는 병사들의 열기가 한참 떨어져 있는 최성용과 좌도 여단 박정기 여단장이 서 있는 곳에까지 느껴졌다.
최성용이 그들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훈련받는 열기가 참 대단하네.”
“전통이란 게 이래서 중요한가 봅니다. 제주 병력부터 자신들이 왜 훈련을 받아야 되는지부터 가르쳐온 정신 교육이 엄청난 동기 유발이 되어 훈련받는 병력들이 자발적으로 훈련에 참여하는 전통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박정기 여단장의 말에 최성용이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이 훈련소도 벌써 상당한 병력을 배출했네.”
“이제는 제주도와 연해주에서 교육받는 주민들이 들어오는 수자가 비교적 안정이 되어 육군에 3,000명과 해군에 1,000명의 병력이 여기 좌도 훈련소와 흑산도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교육받는 주민에 비해 병력 충원이 많은 것 아닌가?”
“안 그래도 가온 사관학교에서 그 문제를 연구 조사한 자료가 배포되었던데, 자료를 안 보셨습니까?”
“내가 한 달 이상 장기 출장 중이라 아직 받아보지 못했네.”
“그 보고서에 보면 병력 충원이 이전과 달리 많은 이유가 우리가 주민 교육을 시작한 지 2년이 다 돼가면서 예상대로 몰락한 양반들과 중인들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하고, 일반 양민들도 처음과 달리 능동적으로 달라진 교육 태도에 있다고 합니다. 군대 문제가 조선에서와 같은 인두세 개념의 군포가 없어지고 반드시 군역을 필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되고부터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가장 자극을 받은 것은 교관들 때문입니다.”
“아! 제주 출신 교관들?”
“그렇습니다. 처음에 주민 훈련소에 들어올 때는 훈련병들이 자신을 통제하는 사람들이 자신들과는 격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미뤄 짐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훈련을 받으면서 자신들을 가르치는 교관들이 전부 자신들과 같은 조선인 출신이라는 데 주민들이 상당한 충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더구나 교관들이 부사관인 하사 계급을 달고 정식으로 종8품 수의부위(修義副尉)의 품계에 급여를 받는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상당한 자극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제주에서는 주민들 교육 수료 때마다 나이든 사람들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자신들도 군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매달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합니다.”
최성용은 박정기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1년여를 대외 업무에만 매달려온 최성용은 그동안 자신의 업무 밖에 있던 훈련소의 세부적인 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다.
최성용이 말했다.
“그런가? 그래서 이렇게 많은 수의 병사들이 입대를 했구나. 그런데 입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불평불만이 쌓일 텐데.”
“안 그래도 그 문제로 지금 교육단에서 그들을 위한 직업 전문학교를 만들자는 제안이 있어 연구 중에 있는 것으로 압니다.”
최성용이 그 말에 동의를 하며 말했다.
“그래야겠지. 이제는 자신이 하기 싫어서 힘들게 살겠다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낙오되는 사람은 없게 해야 하는 게 우리의 목표이자 임무 아닌가.”
박정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이제는 단 한 명의 우리 주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도 연병장에서는 훈련병들이 엄청난 열기를 뿜으며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 몸을 돌려 좌도 여단의 본부로 들어온 최성용은 가온 무역의 좌도 금광 담당자를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서 과장. 그래, 고생 많습니다.”
좌도 금광 담당 과장 서종인이 최성용의 인사에 답을 했다.
“고생은요. 광부들이 잘 따라와 줘서 괜찮습니다.”
“광부들 수급은 잘 되었습니까?”
“몇 개월간은 상당한 생산 차질이 있었는데 갱도 밖의 일에 부녀자들까지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나니 이제는 이전 생산량을 거의 회복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절반 이상의 광부들이 빠져나갔는 데도 상당히 선전하셨습니다.”
서종인이 최성용에게 광산에 대해 보고를 했다.
“장비 선진화가 인력을 줄이는 데 많은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 좌도 광산에는 증기 기관이 들어와 있습니다. 광석을 옮기는 데도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하고 있어서 많은 부분에서 인력이 절감되는 부분이 있어서 생산성이 배가(倍加)된 것입니다.”
최성용이 물었다.
“증기 기관은 문제가 없습니까?”
“처음에는 보일러실이 터지는 등 상당히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엔진 개발팀에서 2달 정도 상주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보완해서 지금은 별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성용이 다시 물었다.
“전력을 어떻게 사용합니까?”
“작년 하반기에 증기 터빈이 공급되어 좌도도에 1㎿급의 화력 발전소가 건설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각 갱도 막장마다 전동 도구들이 모두 공급되었기 때문에 적은 인원으로 높은 생산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말에 박정기 여단장이 말을 덧붙였다.
“섬 각지에도 전기가 공급되고 있습니다.”
“전력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 다행이군.”
광산에 대한 보고를 들은 최성용은 여단 본부를 나와 이들과 같이 섬의 중간에 있는 국중(國中) 평야로 갔다.
아직까지 벼농사가 시작되지는 않아서 황량한 벌판 그대로였다.
최성용이 박정기에게 물었다.
“좌도 섬 농사는 어떠한가?”
“벼 품종 개량 전에도 5만 명 정도는 충분히 자급자족이 될 정도였고, 지금은 개량 볍씨의 보급으로 7~8만 명은 충분히 자급자족할 정도가 됩니다.”
“섬의 인구는 얼마나 되나?”
“지금 섬의 인구가 평균 4만 정도입니다. 앞으로 훈련병이 지속적으로 들어온다 해도 충분히 자급이 가능하며, 지금도 상당한 양의 쌀이 비축되고 있습니다.”
최성용이 박정기 여단장에게 다시 물었다.
“요즘 일본 본토에서의 도발은 없나?”
박정기가 대답했다.
“작년에 니가타 항 폭격으로 10여 만의 일본 병사들이 몰살을 당한 이유로는 아직까지 별다른 동향이 없습니다.”
최성용이 말했다.
“나가사키에서 1년에 거둬들이는 세수가 이미 좌도 도 금 생산량을 넘어선 지 오래기 때문에 이제 그들에게도 좌도도가 그리 절박하지 않은가 보네. 하지만 그래도 경계에 만전을 기해주게.”
박정기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최성용은 국중 평야를 둘러본 후 좌도도의 금광으로 갔다. 좌도도 금광은 그동안 말끔히 단장이 되어 이전 소이탄 폭격의 상흔이 완전히 가셔 있었다.
최성용은 좌도도의 해안 등을 둘러본 후 비행선 105금강호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연해주 동명 비행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