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7권) (66/101)

여의도 사건

1793. 1. 5. 김종수(金鍾秀)의 북촌 자택.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김종수의 자택에 이조 참판(吏曹參判) 심환지, 규장각 직제학(直提學) 서용보, 정순 왕후의 8촌인 전 홍문관 수찬 김관주(金觀柱), 안동 김문의 김달순(金達淳), 규장각(奎章閣) 직각(直閣) 이만수 등 1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난해 말 아전들의 반란에 사직서를 내거나 도성을 도망친 이천 명의 양반들 중 거의 대부분이 서인, 특히 노론 집안이었다.

의리를 정치 이념으로 삼는 정조였기에 모여 있는 대신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여파가 미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벌열 집안은 그야말로 줄초상이었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자신들도 말만 하지 않았지 반란이 있었을 때 한성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종수의 집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 문중뿐이 아니고 한성을 포함한 기호 지방 대부분의 집안에서 종손이나 장손들을 대피시켰기 때문에 지금 각 문중은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그렇다고 정조의 단호한 처벌에 누가 나서서 반발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조선의 사대부가 의리정치(義理政治)를 이상으로 삼는 정조에게 삼강오륜 중 군신유의(君臣有義)도 지키지 못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삭탈관작이 아니라 사적(士籍)에서 삭적되어 두 번 다시 신원되지 못하도록 아예 못을 박았고, 도망친 자들을 절대 도성 문을 넘지 못하게 한 조치에 있었다.

더구나 도망친 자들이 도성에 들어오면 반역으로 알고 삼족을 멸한다는 교지도 문제였다.

어떤 조치가 필요했지만 명분을 갖고 있는 왕의 처사에 감히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판중추부사 김종수가 말했다.

“후!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참으로 걱정이오.”

그러자 이조 참판 심환지가 말을 했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사면초가입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았다가는 두 번 다시 일어나기 힘든 상황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판중추부사 김종수가 말을 했다.

“그러게 말이오. 여기서 잘못 밀리면 그대로 나락으로 추락할 수도 있소이다. 그렇다고 이번 일을 번복하기는 힘들게 되었소이다.”

김종수의 말에 규장각 직각 이만수가 말했다.

“그 관보 게시판이 생긴 이후 조정 내부의 일이 너무 알려지는 바람에 이전과 같이 문제를 덮을 수도 없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더구나 오늘 이렇게 신문이란 것이 창간됐으니 앞일이 걱정입니다. 이제 백성들이 우리의 뱃속까지 들여다보려고 하지나 않을는지요.”

그들의 앞에는 ‘한성주보(漢城週報)’라는 한글로 만든 신문이 놓여 있었다.

28자모 중 없어진 4개의 자모에서 아래아(?)만큼은 이 시대의 문체에서 없애기가 어려워 살려놓고 나머지는 현대의 한글 그대로 만들었다.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총 8면으로 만들어진 ‘한성주보’의 창간호에는 지난 아전들의 반란 사건에 대하여 아주 상세하게 취재되어 있었다.

그와 더불어 한성에서 도망치거나 도망치다가 붙잡힌 이천 명의 양반들의 인명과 주소지를 상세히 싣고 있었다.

한글로 만들어진 신문은 조금만이라도 지식이 있는 일반 백성들은 읽기가 쉬웠다.

오늘 창간호가 나가고 지난 변란에 도망친 양반들이 수록된 것이 확인되자 한성의 일부 주민들은 이들의 집안사람이 사는 곳으로 몰려가 인분을 던지고 돌을 던지는 등 거세게 항의를 했다.

설이 지난 5일 노론 벽파의 중추인물들이 세배를 핑계로 급히 모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판중추부사 김종수가 규장각 직제학 서용보를 보고 물었다.

“서 직제학, 신문을 만드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요?”

김종수는 오늘 창간한 한성주보 신문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지만, 이를 다시 상기시키는 의미에서 성균관 직제학 서용보에게 물었다.

“한성주보는 주상 전하의 지시로 별무사(別貿社)에서 만들었고, 본사는 지금 여의도(汝矣島)에 있습니다.”

그러자 김종수가 말했다.

“그것은 알고 있소.”

서용보가 다시 말했다.

“한성주보는 글을 쓴다는 기자(記者)라는 자들이 열이요. 일을 보는 자들이 다섯, 인쇄에 필요한 기술자가 열 명으로 해서 만들어지고 있고 사장에는 소론 출신의 이긍익(李肯翊)이, 주필에는 남인 출신 한치윤(韓致奫)이란 자들이 있습니다.”

김종수가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별무사가 모든 운영 자금을 대고 있나?”

그러자 이번에는 초계문신(抄啓文臣) 김달순(金達淳)이 답했다.

“아니옵니다, 영부사 대감. 이들은 이미 두 달 전부터 한성에 신문 발행을 공표하여 신문 구독을 신청받았고, 거기서 나오는 신문 구독료와 이렇게 신문에 실리는 광고 대금으로 운영한다 하옵니다.”

그들이 보고 있는 한성주보의 창간호에는 양일현의 위공 손수레 공장의 광고가 실려 있었다.

이 위공 손수레 공장의 광고는 조선에서 첫 번째로 신문에 등재된 광고였다.

김달순의 말에 이조 참판 심환지가 물었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이 비싼 종이 값과 인건비 등 운영비를 충당하겠나?”

그러자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전 홍문관 수찬 김관주가 말했다.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이들이 신문의 힘을 빌려 자신들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면 무지한 백성들이 그들의 말에 동조하여 문제를 일으키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김관주의 말에 모두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김관주가 다시 말했다.

“오늘의 사태도 여기에 기인했다고 봐야 합니다. 이전 같았으면 어떻게 백성들이 이번 일에 연루된 것이 어느 집 누구인지 속속들이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관보에는 상세한 이름까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김종수의 입에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후! 그렇다고 지금 뾰족한 방책이 있나.”

김관주가 다시 말했다.

“자칫하면 우리 노론이 숨 한번 못 쉬고 고사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련의 사태가 별무사가 설립되고부터 발생된 것입니다. 별무사는 바로 주상과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련의 사태 뒤에는 주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묵직한 저음의 김관주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림을 주며 퍼졌다.

그의 말을 들은 방 안의 사람들은 무겁던 낯빛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초계문신 김달순이 다시 말했다.

“우상 대감이라도 우리 쪽이었으면 한층 도움이 되었을 것인데 아쉽습니다.”

그러자 김종수가 그 말을 바로 받았다.

“그 인사는 이제 거론하지 마시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목을 내놓아도 바뀌지 않을 인사요. 다른 것도 아니고 신념이 그렇다면 그리 두는 게 옳소. 우리와 척을 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오.”

영수인 김종수의 말에 우상(右相)인 김이소(金履素)를 성토하려던 사람들의 입을 막아버렸다.

김종수도 내심은 김이소가 아쉬웠다.

김이소는 지금의 노론을 있게 한 노론사대신(김창집(金昌集), 이이명(李?命), 이건명(李健命), 조태채(趙泰采)) 중 상신을 지냈던 김창집의 증손이며 신안동김문의 좌장이 아니던가. 그라도 있었다면 지금 벽파가 이렇게 위축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안동김문은 이번에 김이소의 엄명으로 가문이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김이소의 5촌 조카인 김조순(金祖淳) 역시 정조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가문을 엄히 단속했다.

하지만 다른 가문은 정조의 배려로 대다수 큰 타격을 입었으나 재산만 몰수되고 당사자만 처벌을 당하면서 가문의 완전한 몰락만은 면하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조선 후기의 벌열 가문 상당수가 역사와는 다르게 이때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김종수가 다시 말했다.

“우리가 이러고 있다간 아무 일도 하지 못하오. 우선 별무사부터 철저히 탐문에 들어가야겠소. 이 문제는 김 수찬(修撰)이 맡아주시오.”

김종수는 김관주가 예전부터 자신만의 비선 조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인에게 맡겨주시지요. 소인이 판부사 대감의 기대에 부응하겠나이다.”

심환지가 김관주를 거들었다.

“김 수찬(修撰)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 문제는 판부사 대감 의향대로 처리하시면 되고, 장용외영(壯勇外營)의 이야기는 들어보셨습니까?”

김종수가 의아한 듯 물었다.

“장용외영 이야기라니요?”

심환지가 말을 했다.

“그들이 이번에 신무기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조 참판 심환지의 말에 김종수가 의문을 표시하면서 다시 물었다.

“신무기라니요?”

“이번에 그들이 사용한 조총은 기존의 화승총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총포류에 관심이 많았던 김관주가 심환지를 보고 물었다.

김관주는 정조의 등극 이후 사도 세자의 죽음에 중추적 역할을 한 영조의 계비인 정순 왕후의 척족으로, 정조 등극 이후 그동안 벼슬자리에서 밀려나 있었다.

“조총이 화승총이 아니라면 격발이 어찌 됩니까?”

심환지가 말했다.

“장용외영이 사용한 조총은 어떤 방식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지만 화승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분명 하네.”

“이번에 별무사를 탐문할 때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안동김문으로 유일하게 벽파로 남은 초계문신 김달순이 말했다.

김달순은 안동김문을 대표하는 격이 있었으므로 젊은 나이에 불려온 것이다.

김달순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아전들에게 몰수한 임자별전(壬子別田)이 10만 결에 달하다니 엄청난 규모입니다. 아전들이 조선의 환부(患部)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김달순 또한 신안동김문이라 집안에 별다른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했지만 그의 말에 방 안에 공기가 싸늘해졌다.

지금 임자별전의 상당 부분이 벽파의 각 집안 토지로 오늘 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젊은 김달순이 아전을 빌어 자신들의 치부를 건드린 격이 되어버렸다.

지금 모여 있는 사람들 중 이번 일로 가문이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김달순뿐이었다.

김달순의 말에 분위기가 흐트러진 방 안은 수습이 되지 않고 잠시 후 모임을 파하게 된다.

김종수의 자택에서 회합을 마치고 나온 김관주는 곧바로 자신이 은밀히 마련해 놓은 북촌의 안가(安家)로 갔다.

김관주의 안가는 앞의 대문으로 들어가면 뒤 골목길로 작은 문이 나 있어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전혀 다른 전형적인 안가의 구조였다.

김관주는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났고, 밀담을 나눈 그자는 은밀히 뒷골목으로 빠져나갔다.

국정원 요원은 아쉽게도 김관주의 뒤를 밟았지만 김관주가 들어간 집의 뒤에 또 다른 문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국정원 요원이 한참을 기다리자 김관주가 다시 나와 자택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왜 그 집에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성주보’ 창간호에서 아전 반란 사건에 대한 특집 기사를 다루면서 한성주보는 한성의 지가(紙價)를 한껏 올려놓았다.

가판 형식만이 아닌 가판과 직접 배달 방법을 혼합한 배포 방식은 20만 명이 살고 있던 한성과 기호 지방 일대에 빠르게 정착되었다.

월간 구독료가 1냥(40,000원)에 이를 정도로 가격이 비쌌지만 각 지방에 관보 게시판을 담당하는 파발을 이용하여 전국에 퍼져 나갔으며, ‘한성주보’는 창간호에 이은 계속된 아전 반란 소식 특집과 경향(京鄕)의 주요 인사와 명망가의 부고(訃告) 등 알찬 내용의 지면으로 신문이 창간되자마자 예상외로 바로 흑자를 기록했다.

기사를 먹고사는 신문은 조선 시대라 하여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한성주보’는 반관반민 형태로 운영이 되었으며, 가장 중요한 조선 백성의 의식 개혁을 위한 글도 서서히 게재하기 시작할 계획이다.

1793. 1. 8. 새벽 여의도(汝矣島) 별무사 상관(商館).

별무사 상관에 도적이 들었다.

새벽 일찍 각 상단을 상대하기 위해 상관 옆 별무사의 관사에 머물고 있던 서이수가 출근을 하였다.

상관 정문에 도착한 서이수가 상관 문이 잠겨 있지 않은 것을 보고는 어제 전영진이 잠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막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뭔가 등골이 오싹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서이수 전수(典需)는 순간 들어가던 발을 그대로 빼고 상관 문을 조용히 닫고 급히 뒤에 있는 안가로 가서 정철학 차장을 깨웠다.

정철학은 지난 반란 사건 당시 10일 동안을 거의 뜬눈을 새우고 국정원 업무를 보았기 때문에 아전들의 반란이 끝나고 20여 일이 지났어도 체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서 아직도 아침의 기상이 다른 때와 달리 조금은 늦었다.

탕탕탕! 탕탕탕!

“차장님! 차장님!”

숙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철학이 잠에서 깨어나 물었다.

“누구요?”

“서이수입니다.”

정철학이 문 두드리는 사람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정철학이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이른 새벽에 어쩐 일이십니까?”

“아무래도 상관에 도적이 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정철학의 눈이 순간 빛을 내며 물었다.

“도적이 들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서이수는 조금 전의 상황에 대해 말을 해주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그 말을 들은 정철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동안 사용하지 않고 깊숙이 숨겨두었던 권총을 꺼내 실탄 장전을 하고 상관을 향해 뛰어갔다.

“갑시다!”

아직 날이 밝아오지 않아 상관의 실내가 어두웠다.

상관 앞에 도착한 정철학이 은밀하게 물었다.

“서 전수님, 횃불이 없습니까?”

서이수도 조용히 대답했다.

“잠시만요. 건물 뒤에 있을 것입니다.”

서이수는 뒤로 급히 가더니 관솔(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 가지나 옹이)로 만든 횃불을 가져왔다.

정철학이 말했다.

“전수님이 횃불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서이수에게 횃불을 밝히게 하고 정철학이 실내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적은 의도적인 침입이었는지 다른 것은 일체 손을 대지 않았다.

“아! 저기 보십시오.”

서이수가 손짓하는 곳을 보니 숙직실 옆 은밀한 곳에 보관된 총기 보관함이 뜯겨진 채 있었던 것이다.

안을 들여다보니 안에 들어 있던 제이스 소총 5정과 실탄 수백 발이 든 탄통이 없어졌다.

정철학은 권총을 들고 앞에 있는 숙직실 문을 조심해서 열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 전영진이 숙직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숙직실에서 숙직을 하던 송상대방 전창진의 동생 전영진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정철학은 급히 숙직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이런!”

“정 차장님, 피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고문을 당한 듯합니다.”

전영진이 숙직을 하던 숙직실 바닥에는 고문의 흔적과 함께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정철학이 한참 방 안을 살피더니 말했다.

“고문을 받고 나서 납치를 당한 것 같습니다.”

납치가 분명했다. 정철학이 말했다.

“우선 주변에 일체 함구를 하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정철학 차장은 상관을 나서서 안가로 가며 여의도에 있는 10여 명의 국정원 요원에게 비상을 걸었다.

그리고 이 도난, 납치 사건을 즉각 가온으로 보고하였다.

정철학은 이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보고를 받은 제주의 가온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조선 내 불순 세력이 처음으로 몸을 드러낸 것이다.

여의도는 요즘 전국 최고의 도매 시장으로 성장했다.

조선의 각 상단은 물론 한성과 경기도 일원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물건을 떼러 오는 일이 많아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여의도는 상점만 해도 수백 개가 넘는 엄청난 도매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하루 유동 인구만 해도 천여 명이 넘을 정도로 북적이는 여의도는 상업 도시로 변해가고 있었다.

국정원도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여의도를 오가는 모든 사람이 배를 타고 내리는 여의나루의 곳곳에 CCTV를 설치하여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었다.

지난 가온 은행 지하 금고를 만들 때 그 금고 옆 지하에도 하나의 방이 만들어졌으며, 그 방이 여의나루를 촬영하는 CCTV를 감시하는 방이다.

시간 여행 당시 아쉽게도 CCTV를 얼마 가져오지 못해 최신형은 창덕궁의 주요 부문에 설치하였다.

그래도 부족한 숫자는 가온에 있는 불요불급한 CCTV를 떼어와 재활용하고 있어서 여의도에 설치된 것은 해상도가 떨어지는 것이 흠이다.

전원은 은행 옥상에 군용 발전기와 태양열 전지를 설치해 놨기 때문에 CCTV 정도는 아쉬운 대로 사용이 가능했다.

정철학은 서둘러 은행 지하로 내려갔다.

“충성!”

“충성. 오늘 당직자는 누군가?”

“접니다.”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여의나루 주변에 녹화된 것을 모두 가져오게. 비상 사태야.”

“알겠습니다.”

잠시 후 정철학은 당직자가 가져온 지난밤의 녹화된 CCTV를 다시 틀어보게 했다.

넓은 지하 방은 8채널 DVR과 컴퓨터, 대형 화면만을 갖추고 있었다.

후일을 대비해 방을 크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썰렁한 느낌마저 드는 방이다.

검색을 하던 정철학은 이내 일어났다.

여의나루에서는 의심이 가는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나 야간에 배가 나간 흔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정철학은 이들이 영등포 쪽으로 빠져나가거나 아직 여의도에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영등포와 여의도의 샛강 공사 현장으로 사람을 급히 보냈다.

아직 날이 밝기 전이라 급하게 서두르면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샛강 공사 현장 방면으로 갔던 요원이 바로 돌아왔다.

샛강 공사 현장은 곳곳이 깊은 웅덩이가 함정처럼 파여 있고, 샛강 양옆으로는 재방이 쌓여 있어 영등포 방면으로 나갈 수 있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위장을 한 국정원 요원이 상주하며 지키고 있었다.

그 요원의 보고로는 비상이 떨어지자 혹시 하는 마음에 부하 3명을 이끌고 그곳으로 달려가 상주 인원을 보강시켰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통행한 사람이 없다는 보고였다.

정철학은 그 요원의 신속한 행동에 안심을 하였다.

그렇다면 범인은 여의도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철학 차장은 날이 밝기 전에 전 요원을 배치했다.

우선 영등포 방면에 2명의 요원과 10명의 갑사를 추가로 배치했고, 여의나루에는 3명의 요원과 10여 명의 갑사를 배치했다. 그리고 나머지 4명의 요원과 30명의 갑사들을 풀어 여의도 전역을 샅샅이 수색하게 했다.

여의도에는 별무사와 여의도 전체의 치안을 위해 50명의 제주 출신 병사들이 용호영(龍虎營) 갑사(甲士)로 위장하여 들어와 있었다.

여의도가 별무사의 직할지이므로 용호영 갑사의 주재는 조정에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정철학의 지시를 받은 국정원 요원들과 갑사들은 신속히 움직였으며 용호영 갑사들의 갑작스런 수색에 이른 아침부터 열리던 상가들이 덩달아 더 일찍 문을 열게 됐다.

이때 전영진을 납치하고 소총 5청을 훔친 납치범들은 도매 상가가 늘어서 있는 시장의 한 상점 안에 숨어들어 있었고, 그 상점은 싸전(미전, 米廛)이었다.

이 점포는 과거 김관주가 영조 시절부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던 시전 상인 출신의 김경순이 운영하는 상점으로, 김경순은 여의도에만 3곳의 상점이 있을 정도로 상당한 재력가였다.

전영진을 납치하고 소총을 훔친 범인들은 모두 5명으로, 이들 모두 검계(劍契) 출신이었다.

김관주는 정순 왕후가 영조의 계비가 됐을 때부터 은밀히 이들을 관리해 왔고, 1772년 유배를 받고 풀려났어도 정조의 계속된 배척으로 출사가 막혀 시간이 많아진 김관주는 후일을 대비해 검계를 지속적으로 관리해 왔었다.

검계 한 명이 두목으로 보이는 자에게 말했다.

“형님, 일이 심각해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두목이 말했다.

“그런 것 같구나. 무슨 놈들이 마치 준비한 것같이 순식간에 병사들이 풀리는지… 큰일 날 뻔했구나.”

그러자 다른 검계원이 말했다.

“용호영 갑사들이라서 그런지 포청(捕廳) 병졸들과는 다릅니다.”

그 말에 처음 말을 한 검계원이 말했다.

“아! 아까는 정말 아쉬웠습니다. 조금 전 그놈이 한 발만 더 들어왔어도 이렇게 시끄럽지 않았을 건데.”

“지난 일 아쉬워하면 무엇을 하나. 그의 명이 거기서 죽을 운명이 아닌가 보지.”

조금 전 서이수가 상관 문을 들어서려고 발을 내디딜 당시 문 앞에 인기척을 느낀 검계들이 문 옆에서 서이수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이수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검계 두목이 말했다.

“우선 인원을 나눠야겠다. 너희 둘은 옆에 있는 옹기전으로 들어가라. 김경진이 오늘은 만일을 대비해서 점원들에게 입단속을 해놓았다고 한다.”

“알겠습니다, 형님. 몸조심 하십시오, 형님.”

“그래, 저놈은 내가 데리고 있겠다.”

그러면서 검계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다른 자들에게 행동 요령을 일일이 가르쳤다.

두목에게 지시를 받은 2명은 점포 뒤로 은밀히 빠져나가 옹기전으로 옮겼다.

검계 두목이 그들을 보내며 말했다.

“오늘 일진이 더럽게 사납네.”

“그렇습니다, 형님. 그 관원이 그렇게 일찍 나올 줄 예상 못한 우리 잘못입니다.”

그러자 검계 두목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저놈의 별무사는 녹봉을 배로 주나. 뭐 그렇게 일찍 나와 일을 망쳐 놓나, 에이.”

이들이 별무사 상관으로 잠입한 것은 월담을 한 것이 아니었다.

어제 늦은 오후 일행 중 몸집이 작은 한 명이 상관 안에 숨어 있다 밤이 깊어져 사람들이 한잠에 들 새벽 무렵 안에서 문을 열어주어 들어갔던 것이다.

낮에 몇 차례 현장을 답사하였기 때문에 들어가자마자 전영진이 자고 있던 숙직실을 급습했다.

그리고 검계들이 전영진을 고문한 끝에 총기 보관함을 찾아내서 상관을 벗어나려는 순간, 서이수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전영진까지 데려나온 것이다.

전영진은 납치를 당하는 사이 고문으로 인해 의식을 잃어버려서 진열대 밑에 숨겨져 있었다.

“그나저나 형님, 저자는 어찌합니까?”

검계 두목이 말했다.

“큰일이군. 죽이더라도 여의도를 벗어나야 되는데, 그래야 김 행수가 안 다치는데 큰일이구나.”

“형님, 일단 저자를 처리해 입을 막고 봅시다. 뒷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시고요.”

그러자 검계 두목이 화를 벌컥 냈다.

“이놈아, 너는 사람 죽일 줄밖에 모르냐?! 저번에도 광통방(廣通坊)에서 지나가던 술 취한 양반을 보고 눈에 거슬린다고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 목을 부러트리더니. 이놈이 사람 죽이는 데 재미 냈네, 재미 냈어.”

그러자 덩치 큰 검계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게 아니고 형님, 제가 언제 양반 놈들 말고 사람 죽인 적 있습니까?”

두목이 말했다.

“아무리 우리가 검계라고 하지만 무고한 사람을 죽이진 말라는 말이다.”

덩치 큰 검계원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다시 말했다.

“형님, 도성에 살고 있는 양반 놈들 중에 백성들 피 안 빨아먹고 사는 놈들이 과연 몇이나 있겠습니까?”

검계 두목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이고, 그래. 그만하자. 내가 그 바람에 오부(五部)에 끌려가서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아느냐? 그리고 지금 저기 있는 위인도 상인인 것을 보니 우리 같은 중인일진대 함부로 목숨을 거두면 쓰겠냐?”

그러자 검계원이 바로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경솔했습니다.”

그들이 갑론을박하는 사이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조선의 오부(五部)는 한성의 행정 구역이다.

동, 서, 남, 북, 중부로 구성되고 산하에 방(坊)과 계(契)를 두었으며 조선 후기 5부 46방 328계(契)가 있다.

5부의 관할 구역은 도성으로부터 사방 10리까지(성저십리)였으며, 특이한 것은 한성부(漢城府)의 아문(衙門)이 아닌 호조(戶曹)의 아문(衙門)이라는 것이다.

각 부의 장은 종5품의 영(令)이고, 종9품의 도사(都事)와 참봉(參奉)이 보좌했다.

정철학 차장은 안가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도난된 소총도 문제지만 전영진의 생사가 더 문제였기 때문이다.

범인들이 여의도에 있다면 이쪽의 움직임을 눈치챘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들이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철학이 심각한 표정으로 새로운 소식에 목말라 있을 때 범인들이 숨어 있는 싸전의 상점 문이 밖에서부터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 있던 세 사람은 바짝 긴장하며 몸을 날려 상점 문 옆으로 섰다.

문을 연 사람이 상점 안으로 들어오려는 인기척이 계속 들렸다.

두목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요?”

그러자 밖에서 대답을 했다.

“접니다. 김경순입니다.”

칼을 빼 들고 바짝 긴장했던 검계들이 순간 맥이 풀렸다.

두목의 눈짓으로 부하가 문을 열어주었고, 김경순이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지금 용호영 갑사들이 모든 상점을 일일이 열고 검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 분은 검색이 지나갈 때까지 점원으로 위장하고 계십시오.”

검계 두목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 사람을 납치해 와서 그를 어딘가에 숨겨야 합니다.”

깜짝 놀란 김경순이 순간 멈칫 하였으나 내친걸음이었다.

김경순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자는 뒤꼍 창고에 있는 쌀뒤주에 잠시 숨겨놓으십시오. 갑사들이 검색을 마치고 나면 그때 다른 곳으로 옮기는 문제를 논의합시다.”

“알겠습니다. 예들아, 그자를 옮겨라.”

김경순의 말에 검계들이 진열대 밑에 숨겨놓은 전영진을 꺼냈으나 그는 여전히 정신을 놓고 있었다.

전영진을 들여다보던 검계원이 두목을 보고 조용히 속삭였다.

“형님, 이자가 이상합니다.”

“뭐야?”

두목이 바쁘게 전영진의 몸을 이곳저곳 만졌지만 전영진은 아쉽게도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두목이 안타까운 듯 말했다.

“이런! 이자가 죽었구나.”

전영진의 죽음은 검계들의 모진 고문과 싸전으로 납치돼 오면서 몸을 너무 세게 묶인 탓이었다.

김경순과 검계들은 난감해하였으나 넋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김경순이 말했다.

“일단 뒤주에 숨겨놓읍시다.”

“알겠습니다. 너희들은 이 시신을 들어라.”

“예, 형님.”

검계 두목의 지시로 일단 뒤주의 쌀 속에 시신을 숨겨 검색을 피하였다.

용호영 갑사가 검색을 마치고 지나가자 뒤꼍 창고 바닥을 파고 임시로 시신을 묻고 그 위에 쌀가마를 얹어놓았다.

계절이 겨울이라 시신이 빨리 부패되지 않는 점을 이용하여 임시로 시신을 숨겨놓았다 감시가 느슨해지면 여의도 밖으로 옮겨 나갈 계획이었다.

검계 두목은 오전은 검문이 심할 것이라 예상해 오후 늦게 여의도를 빠져나가기로 하고 점원으로 위장하여 김경순을 도와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용호영 갑사들이 검색을 하기 시작하던 그 시간, 정철학 차장은 여전히 고민을 하고 있었다.

범인들이 여의도를 빠져나가지 못한 것은 분명했다.

지금 모든 상점들을 수색하고 철저한 검문검색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영진의 안위에 심각한 위험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던 총기 보관함이 도난당했다면 전영진이 분명 말을 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전영진의 강직한 성품으로 봐서 엄청난 고문을 당했을 거라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전영진의 안위를 고민하던 정철학 국정원 차장은 무언가를 결심하고 최성용과 교신을 하였다.

그때가 오전 6시를 지나고 있었고,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다.

1793. 1. 9. 17:00 여의도 여의나루.

최성용 대령은 새벽에 온 정철학 차장의 보고를 받고 이미 본부에 출근해 있었다.

6시경 정철학과 교신을 마친 최성용은 지급으로 송악산 비행장에 연락을 하고 정철학 차장이 부탁한 물건을 서둘러 나무 박스에 싣고 물에 빠지지 않게 고무보트에 묶어서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비행장에는 이미 헬기가 시동을 걸고 대기하고 있었고, 최성용은 부하들을 독려하며 실었다.

헬기는 곧바로 날아올랐고, 이때가 오전 8시였다.

헬기는 쉬지 않고 한성으로 올라갔다.

헬기가 잠실을 지나갈 때 여의도로 무전을 보냈다.

“여의도 나와라. 여기는 수리온 7호. 여의도 나와라.”

“여기는 여의도. 올라오느라 고생했다.”

“아닙니다. 물건은 계획된 곳에 떨어트리겠습니다.”

“그리하라. 배는 준비되어 있다.”

헬기는 목적지에 도착을 하자 급격히 고도를 낮추었고, 곧바로 시야에 판옥선이 눈에 들어왔다.

여의도의 정철학 차장과 통화한 수리온 헬기는 가져온 화물을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대기하고 있던 판옥선 위에 무사히 내려놓고 헬기의 기수를 바로 올려 북한산으로 날아갔다.

이때 시간이 10:00이었다.

수리온 헬기가 조선 백성들 눈에 뜨이는 것을 감수하고 작전이 벌어진 것이다.

몇 명의 조선 백성들이 이 광경을 보았지만 헬기가 물건을 내린 곳은 사람들이 그나마 별로 없었다.

수리온 헬기를 본 백성들이 놀라 관아에 자신들이 본 것을 신고하여 현장 확인 나온 지방관에게 상황을 말해 주었지만 흐르는 임진강이 표시가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변을 한 백성들은 거짓을 고했다고 꾸지람만 들었고, 아니라고 항변하는 백성들에게 지방관은 한 번 더 거짓말을 하면 치도곤 맞는다고 선심을 베푸는 듯 호통만 치며 돌아갔다.

엔진을 달아 개조된 판옥선은 곧 출발을 하였고, 한강에 들어서자 왕래하는 배가 많아 속력을 낼 수 없어 2시간 만에 여의나루에 도착하였다.

정철학 차장은 요원들을 시켜 물건을 하역하였다.

하역된 물건이 자리를 잡자 오전 내내 사람만 통행시키며 대기시켰던 여의나루의 물건들이 본격적으로 하역되기 시작하였다.

정철학 차장이 최성용 대령에게 부탁한 것은 금속 탐지기였다.

소총을 검색하기 위해 여의나루에 매일 엄청나게 들고 나는 품목을 일일이 뒤질 수는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 비상 대책을 강구한 것이다.

오전 내내 쌓여 있던 화물을 금속 탐지기로 검색을 하니 쌓여 있던 화물들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화물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거의 선적되어 한강을 타고 각지로 흩어졌다.

17:00이 되자 검계의 두목은 자신들을 싸전과 옹기전의 점원으로 분장하여 2패로 나누었고 소총은 각각 3정과 2정으로 나누어 쌀가마니 속과 옹기 마차 밑에 나무를 덧대고 숨겼다.

이들의 마차는 워낙 무겁고 부피가 큰 화물이라 화물을 실은 수레는 그동안 많이 보급된 위공 손수레가 아닌 기존의 우마차였다.

여의나루에서는 손수레에 실려 온 작은 화물은 전부 내려져 검색을 받았다.

하지만 손수레에서 내렸다 잠시 탐지기로 탐지를 하고 싣는 것이라 별문제가 없었고, 이들 손수레의 물품은 나루터에 내렸기 때문에 시간이 더 이상 추가되지는 않았다.

여의나루에서는 계속하여 검문검색을 실시하여서 검계들이 올 때에는 여의나루에 쌓여 있던 거의 모든 물건들이 배에 선적이 된 후였다.

소총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행인들의 몸수색은 간단하게 실시하여 별다른 항의가 없었고, 행인들도 별무사에 도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용호영 갑사들의 지시에 잘 따라주었다.

검계 두목은 국정원 요원들이 사용하는 쇠막대를 보고 저게 무언가? 하고 생각은 하였지만 조선의 물품상 쇠붙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손을 휘휘 젓는 동작에 의문을 표시만 하였다.

이윽고 옹기 마차의 차례가 되었다.

이전과 같이 손을 휘휘 젓던 손길이 갑자기 멈췄다.

귀마개같이 생긴 헤드폰에서 삐~ 하는 금속 탐지음이 나타난 것이다.

국정원 요원은 동료들만 알 수 있는 작은 수신호를 보냈으며, 그 신호를 본 동료 요원들은 표시 나지 않게 마차 주위로 은밀히 접근을 하였다.

그들의 움직임에 용호영 갑사들 또한 신속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검색을 하던 국정원 요원은 옹기 마차를 끌고 온 이들 2명 이외에 다른 자들이 있을 것이라 짐작해 이들을 통과시키고 다음 마차를 검색하였다.

다음 마차는 검계 두목이 끌고 온 쌀이 실린 마차였다.

그러나 검계 두목도 산전수전을 겪은 자였다.

검색을 하던 국정원 요원이 수신호를 보내 주변에 있던 요원들이나 갑사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바로 눈치를 챘고, 옆에 있던 부하들에게 이 사실을 눈짓으로 알려주었다.

국정원 요원은 이 사실도 모르고 마차로 다가서고 있었다.

이윽고 검색이 시작되었고, 국정원 요원의 손이 귀에서 들리는 삐~ 하는 소리에 순간 멈추었다.

검계 두목이 소리쳤다.

“쳐라!”

검계 두목은 소리를 치는 것과 동시에 품속에 있던 칼을 빼 들고 요원의 목을 치면서 나루터로 달려갔고, 일당들 전원이 순식간에 몸을 날려 칼을 휘두르며 길을 내며 달렸다.

목에 칼을 맞은 국정원 요원은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목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으악!”

옆에서 피를 뒤집어쓴 행인이 고함을 지르자, 그 광경을 본 주변의 행인들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나머지 국정원 요원들과 갑사들은 이들의 선제공격에 바로 대처하지 못하고 서너 명이 칼을 맞고 쓰러졌으나 곧 수습을 하고 이들을 에워싸기 시작하였다.

나루터에는 인파가 많아 총을 쓰기가 곤란하였고, 안타깝게도 갑사 대부분은 주변의 눈을 의식하여 소총을 소지하지 않고 있었다.

국정원 요원들은 전원이 권총이 있었지만 인파들로 인해 총을 쏘지 못하고, 이들을 에워싸려고 포위망을 구축하려 했지만 이들 또한 교묘하게 인파들 사이를 누비며 피해 다니면서 갑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순간 국정원 요원 한 명이 권총을 뽑아 하늘을 향해 총을 쏘았다.

탕! 탕! 탕!

총소리에 나루터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순간 몸을 멈추었고, 요원이 소리쳤다.

“엎드려!”

탕!

국정원 요원은 또 한 번 총을 쏘았고, 그러자 화약 냄새와 총소리에 놀란 행인들이 순식간에 길바닥에 엎드렸다.

그러자 검계 5명만이 서 있게 됐다.

그렇게 되자 주변에 있던 국정원 요원들이 품에 있는 총을 빼 들고 이들 검계를 향해 겨누었다.

“칼을 버려라.”

검계 두목이 웃으며 말했다.

“이봐, 당신 같으면 칼을 버리겠어? 웃기는 소리 말고 덤벼.”

그러자 먼저 총을 쏜 국정원 요원이 말했다

“이놈들, 안 되겠다. 이놈들 죽지 않을 곳만 맞춰라.”

탕! 탕! 탕! 탕! 탕!

말이 떨어지자 5발의 총소리가 들렸고, 총을 맞은 검계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러자 먼저 총을 쏜 국정원 요원이 다시 말했다.

“갑사들, 제압해라.”

명령을 받은 갑사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이들을 제압하였지만 검계 두목은 끝까지 저항을 하여 갑사들에게 곤죽이 될 만큼 맞았다.

검계들은 별무사 상관의 안가로 끌려갔으며, 현장은 곧바로 수습이 되어 정리가 되었다.

별무사에 침입한 범인을 잡은 일은 서이수가 신속히 정조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리는 장계를 올렸다.

정조는 곧바로 그들을 엄히 문초하라는 비답을 밤을 달려 내려보냈다.

정조의 특별 지시로 한성부 북부 연희방(延禧坊) 여의도계(汝矣島契)에 속했던 여의도가 이미 2년 전에 별무사의 직할지가 되었기 때문에 여의도에서 일어난 이들의 사건의 문초도 서이수가 관장하도록 했다.

이 사건으로 국정원 요원 1명이 죽고 2명이 크게 다쳤으며 갑사도 3명이 죽고 5명이 다쳤다.

분실된 제이스 소총과 탄통은 바로 회수되었다.

정철학 차장은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극도로 화가 났으며 범인들을 직접 문초하였다.

하지만 검계 두목은 모진 고문에도 끝까지 배후에 관한 입을 열지 않았고, 총상과 체포 당시 반항으로 갑사들에게 많이 구타를 당한 탓으로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유일하게 배후를 알고 있는 검계 두목이 죽자 문초는 흐지부지되었으며, 전영진의 시신과 이들이 검계인 것만을 밝힌 채 끝이 났다.

부상이 심한 국정원 요원 1명과 갑사 3명도 끝내 목숨을 거두었다. 나머지 1명의 국정원 요원도 장기 치료를 요하는 상처를 입어 후송되었다.

이번 사건으로 8명이 죽고 1명이 후송되고 2명이 경상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치고는 참으로 많은 사상자였고, 검계들의 무력 또한 상상 이상이었다.

국정원 요원들은 특히 새벽에 일어난 일이라 방탄복을 착용하지 않고 나와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죽은 국정원 요원 2명은 독신이었기 때문에 화장을 해서 제주도의 국가 유공자 묘역에 안장시켰고, 제주 출신 갑사들은 그들의 시신을 가족이 있는 제주로 운구하여 장례를 치르고 역시 화장하여 국가 유공자 묘역에 안장시켰다.

소식을 듣고 개성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전창진은 동생의 시신을 보고는 대성통곡하였다.

그것이 또 주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던 전창진은 전영진의 시신을 개성으로 운구하여 선산에 안장시키기로 했다.

모든 일을 마친 서이수는 정조에게 다시 장계를 올렸다.

전말을 보고받은 정조는 검계 4명을 한성으로 이송하여 효수를 하고는, 좌우 포도청에 전교를 내려 대대적으로 검계를 검거하도록 했다.

이미 정철학의 문초로 잡힌 검계원들이 검계의 상당부분을 토설한 터라 검거는 빠르게 진행됐다.

숙종 때부터 생겨났던 검계는 영조 1년(1725년)부터 10년간 포도대장이던 장붕익(張鵬翼)의 철저한 일망타진으로 거의 명맥만 유지하다가, 이때 또 한 번의 철퇴를 맞아 완전히 회생 불능이 되었다.

두목의 죽음으로 체포를 모면한 김관주는 자신의 잘못은 모르고 그 뒤 더욱 정조를 증오하게 된다.

정철학 차장은 이번에 발생한 10여 명의 사상자가 자신의 준비 소홀로 발생했다며 장준하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장준하는 그의 사표를 반려하였으나 정철학은 끝까지 사퇴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어쩔 수 없이 장준하는 신경식 원장과 상의하여 대외 사업국장 강성국을 제2차장으로 승진시켜 여의도로 파견을 보내고 정철학에게 머리를 식히라며 직위는 그대로 두고 직책은 유구 국왕의 고문 자리로 발령을 했다.

김영석 과장은 가온으로 불러들여 국장직대로 승진시켜 대외 사업국을 맡겼고, 김영석의 자리는 임철순을 과장으로 승진시켰다.

정철학 차장은 강성국 제2차장이 여의도로 들어오자 1주일간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북한산성을 통해 가온으로 들어가 복귀 신고를 하고는, 선걸음에 비행선 101금강호를 타고는 바로 유구로 날아갔다.

정철학은 비행선을 타고 가면서 참으로 실내가 조용하다 생각하며 지난 2년 4개월의 시간 동안 단 하루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보낸 시간을 뒤돌아보기 시작했다.

비행선은 정철학의 회상을 도와주는 듯 아주 조용히 목적지인 유구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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