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
1791. 7. 15. 홍해 수에즈 해안.
항모 광무황제함이 8대의 해리어기와 5대의 헬기를 싣고 수에즈 해안에 도착한지 한 달이 지났다.
안중근함과 교대한 손원일함도 대서양을 돌아 지중해를 지나 흑해로 들어온 지는 보름이 되었다.
이미 박격포 부대 100명과 이들의 안전을 책임질 100명의 경호 부대원과 박격포 등 장비 전부를 이미 손원일함에 헬기를 이용하여 옮겨 놓았다.
그동안 가온군은 자체 작전을 수행하면서 오스만 제국 술탄의 승인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알리 아지즈와 김영석은 고속정의 도움으로 광저우에서 보름 만에 쿠웨이트에 도착하여 가져온 제이스 소총과 총탄 등은 알리 아지즈 상단 직원들에게 빠른 수송을 부탁하고는 소총 몇 자루와 실탄만을 낙타에 싣고 중동 아시아 내륙을 관통하여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스탄불에 도착한 것이 7월 초였다.
3개월간의 강행군의 여독을 풀 사이도 없이 술탄의 궁전으로 들어간 알리 아지즈는 셀림 3세(1789~1807)를 알현하였다.
지금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러시아의 명장 수보로프에게 연전연패하며 밀리고 있었다.
러시아의 수보로프는 계속되는 승전으로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기 위해 러―오 연합군을 모아 이스탄불을 침공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1790. 11. 23. 베사라비아를 침공하여 난공불락이라고 이름 높은 이즈마일 요새를 생각보다 쉽게 함락시킨 후 항복을 하지 않았다고 40,000명의 무슬림을 대학살하고는 지금 마지막 일전을 치르기 위해 모든 병력을 이즈마일 요새 인근에 집결시키고 있었다.
알리 아지즈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 셀림 3세와 예니체리(Yenicheri) 군단사령관(Agha) 출신인 와지르(수상) 무함마드 알리에게 광저우에서의 가온의 이경식 관장을 만난 일에 대하여 말했다.
알리 아지즈가 술탄에게 말했다.
“폐하, 신이 이번에 같이 온 김영석 과장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들어오라고 하세요.”
술탄의 말을 들은 알리 아지즈가 밖으로 나가 김영석 과장을 데리고 들어왔다.
김영석 과장은 술탄의 앞으로 걸어 나가 오른손을 들어 왼쪽 심장에 대고는 고개를 숙이며 무슬림식 인사를 했다.
“앗 쌀라무 알라이쿰(당신께 평화가 깃드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술탄 셀림 3세는 알리 아지즈와 같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답변하였다.
“와 알라이쿠뭇 쌀람(당신께도 평화가 깃드시기 바랍니다).”
김영석이 고개를 들자 셀림 3세가 말했다.
“어떻게 동양인이 무슬림 인사를 하는가?”
그러자 알리 아지즈의 통역을 들은 김영석이 말했다.
“폐하를 알현하려고 익혔습니다.”
“호! 그대 정성이 갸륵하오.”
“황공하옵니다.”
“그래, 그대 가온 무역에서 우리 오스만을 도와준다고 하는데 어떻게 도와줄 생각이오?”
“우선 외신(外臣)이 가져온 소총을 먼저 보십시오.”
그러면서 김영석 과장이 술탄에게 제이스 소총을 바쳤다.
“이게 가온 무역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소총이오?”
“그렇습니다. 지금 오스만 제국에서 사용하는 머스캣 소총보다 사거리가 2배이며 살상력 또한 우수합니다.”
그러자 예니체리 군단사령관 출신으로 수상격인 와지르 무함마드 알리가 제이스 소총에 아주 큰 관심을 보였다.
“아니, 2배의 사거리라고요? 이 소총은 머스캣 소총보다 작은데도 그런 사거리와 살상력이 나온다는 것이오?”
그러자 알리 아지즈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제가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래요? 폐하, 일단 확인을 먼저 해봐야겠습니다.”
그러자 셀렘 3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했다.
“그럽시다. 나도 보고 싶군요.”
술탄의 명령으로 소총의 위력을 시험하기 위하여 즉석에서 사격 시범이 있었다.
사격 시범에는 예니체리의 장교들이 대거 참관했다.
김영석이 사선에 섰다.
탕.
“명중.”
탕.
“명중.”
탕.
“명중.”
특등사수였던 김영석은 유효사거리 끝인 200미터에 표적을 놓고 10발을 사격하여 전부 명중을 시켰다.
“와, 대단합니다.”
“어떻게 저 먼 거리의 표적을 백발백중할 수 있습니까?”
“이 정도면 머스캣 소총의 3배는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격 후 반동이 아주 적어 명중률이 잘 나오는 것 갔습니다.”
“이 정도면 러시아와 붙어볼 만합니다. 탄환을 장전하는 속도가 머스캣의 3배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 이 소총이면 싸워볼 만하겠어.”
사격 시범이 끝나자 예니체리 군단 사령관 출신의 와지르(수상) 무함마드 알리보다 주변에 있는 예니체리 군 장성과 장교들이 아주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일행들이 다시 술탄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와지르 무함마드 알리가 물었다.
“이 제이스 소총은 아주 만족합니다. 바로 구입을 하겠습니다. 알리 아지즈 님, 소총은 언제쯤 도착을 하겠습니까?”
“앞으로 5일 후면 이스탄불에 도착을 합니다.”
“폐하, 이 제이스 소총을 바로 구매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5일 후에 소총을 넘겨받기로 하고 숙부에게 지금 바로 대금을 지급해 주시오.”
그러자 알리 아지즈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폐하, 감사합니다.”
무함마드 알리가 제이스 소총의 사격을 보고 난 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채로 김영석에게 물었다.
“그리고 가온 무역에서 지금 베사라비아의 이스마일 요새에 있는 러시아군을 격퇴할 방안이 있다고 하던데, 어떤 방식으로 격퇴할 것입니까?”
“저희 가온 무역의 화력은 수상께서 생각하시는 상상 이상입니다. 저희들이 보유하고 있는 대포와 비밀 무기로 러시아군을 초토화시킬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기밀을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무함마드 알리 수상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그것은 염려 마시오. 우리 오스만 제국과 예니체리 군단은 알라신께 맹세코 이 일을 누설하지 않을 것이오.”
“영원히 비밀을 지키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적어도 10년은 지켜주셔야 합니다.”
“걱정 마시오. 우리 땅을 침략해 온 외적을 물리쳐 주는 일인데 당연히 지켜야지요.”
“수상 각하만 믿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알리 아지즈에게는 즉석에서 가져온 소총1,000자루와 탄약 대금이 광저우에서 매입한 대금의 2배가 지급되었고, 지금 이즈마일 요새를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의 포격에 대한 대가도 그 자리에서 즉시 지급되었다.
포격의 대가를 선 지급한 것은 알리 아지즈의 영향도 컸으나 지금의 오스만 제국의 입장이 그만큼 사면초가의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패전으로 그동안 제국을 두려워하던 주변국들이 서서히 맞서기 위해 머리를 들던 시기로, 이 시기를 잘 넘기지 못하면 오스만 제국은 이류국가(二流國家)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동안 동맹을 유지하던 영국과 스웨덴도 전쟁의 막바지에 이르자 슬며시 발을 빼기 시작하였다.
알리 아지즈는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온 김영석 과장은 가져온 무선 통신기로 흑해에 대기하고 있던 손원일함에게 연락을 하였고, 손원일함의 함장 최정호 대령은 이 사실을 즉각 홍해에 있는 항모 광무황제함의 함장 박용현 소장에게 보고를 하였다.
1791. 7. 29. 베사라비아 이즈마일 요새.
베사라비아는 현재의 몰도바 공화국인 그 아래에 있는 우크라이나 공화국으로 도나우 강과 드네스트르 강 사이에 있으며, 토지가 비옥해서 농업이 발달한 곡창지대였다.
흑해 연안에 있는 곡창지대인 이 지역을 두고 여러 국가들이 부침을 거듭하였다.
몽골의 침략 시기에는 몽골의 킵차크한국(汗國) 영토였으나 현재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흑해 진출을 호시탐탐 노리는 러시아의 침입을 받고 있었다.
이즈마일 요새는 북해에서 80km 정도 들어간 도나우 강의 북안(北岸)에 위치한 항구 도시다.
천혜의 지형으로 난공불락의 요새로 불릴 정도로 공격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지형에 위치해 있으며, 지금 요새 안에는 오스만 제국군을 전멸시키고 50,000명이 넘는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이 주둔해 있었다.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은 이즈마일 주변에도 십만 명의 병력을 4군으로 나누어 오스만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로 진격하기 위해 주둔시키고 있었다.
밀집 대형으로 집결한 연합군은 사령관 수보로프 백작의 이동 명령 기다리며 대기 중이었다.
수보로프 백작은 그동안 파괴된 이스마일 요새를 정비하면서 부근의 베사라비아 지역의 도시들에게 항복을 권하는 사신을 보내면서 부대를 보강하고 있었다.
“사령관 각하, 이제 부대 보강도 마치고 인근 지역도 평정을 하였으니 이스탄불로 진군만 하시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베사라비아 지역은 이 정도로 정비를 끝내시죠?”
수보로프 백작의 집무실에는 전군 간부회의를 하고 있었다.
“알겠소. 본인도 이제 더 늦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오. 먼저 기병부대를 시작으로 진군을 시작합시다. 이스탄불까지는 2달간의 기간을 두고 흑해 연안을 복속해 가면서 천천히 진군할 계획이니 이점 명심하시고, 각 부대로 복귀하면 내일 09시를 기해 진군할 수 있도록 모든 지휘관들은 준비를 마쳐주시오.”
그러자 모여 있던 제병 지휘관들이 합창을 했다.
“알겠습니다.”
쐐~액.
“이게 무슨 소린가?”
“제가 나가보고 오겠습니다.”
그 말을 하고는 수보로프의 부관이 밖으로 뛰어 나갔다 바로 다시 들어왔다.
“각하, 잠깐 나와보시죠. 하늘에 이상한 새가 떠다닙니다.”
“새?”
수보로프는 그 말을 하고는 궁금하여 지휘관들을 이끌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저게 무슨 새지?”
“처음 보는 새입니다. 그런데 새가 나는데 저런 큰 소리가 납니까?”
“그러게 말일세.”
지휘관들이 웅성거리며 쳐다보는 하늘에는 1개 편대의 전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새로군.”
수보로프 백작이 중얼거리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하늘에는 편대 비행을 하던 해리어기가 날아와 목표물 상공에 도착을 했다.
“목표물에 도착했다. 각자 부여받은 목표물로 이동한다.”
편대장의 무전으로 4대의 비행기가 각자 정해진 표적으로 분산되었다.
수보로프 백작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무슨 새가 저렇게 날아가지?”
“참 훈련받은 것처럼 새들이 예쁘게 분산합니다.”
부관이 말을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보로프가 말했다.
“이상한 새도 다 있군. 자, 그만들 보고 각자 부대로 돌아가지?”
“알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해리어기에서는 포탄이 발사되었다.
그것을 본 러시아군 장군이 소리쳤다.
“어! 저게 뭐지?”
쒸~잉.
쾅!
화~악.
“으악!”
러시아군 지휘관의 말대로 무언가를 쏜다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해리어로 돌리는 순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사방이 지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시간 여행을 하고 나서 가온군은 앞으로 사용할 포탄에 대하여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그중 가장 많은 표를 받으며 채택된 것이 네이팜탄으로 대변되는 소이탄이었다.
지금 시대인 18세기 말에 거의 모든 군대 무기류는 대부분이 목재와 그것을 끄는 것은 짐승의 힘이 사용되고 있었다.
가온군에서는 공포심 유발이나 폭발력 등 여러 문제를 검토하여 소이탄을 폭격 때 주요 폭탄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물론 폭발 시 소이탄의 잔인성 등을 들어 반대하는 지휘관도 있었으나 피할 수 없는 전쟁에서는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성과를 얻는 것이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이다.
이후 군산단지의 함포용 포탄 제조 공장에서는 제조 라인을 약간의 수정 보완하여 소이탄 중 대표적인 네이팜탄을 수백 발을 생산하여 보유하게 되었다.
지난 일본의 니가타 항 폭격 때도 사용되어 일본의 불순한 야욕을 두 번 다시 갖지 못하도록 하였었고, 이번 이즈마일 요새 전투에서의 폭격도 니가타 항의 폭격과는 비슷한 방식으로 폭격을 하기로 했다.
폭격은 이들이 보유한 대포 등 공성 장비를 주 대상으로 폭격하기로 하고 처음에는 공포심을 유발시키기 위해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선별하여 폭격하기로 하고 초탄을 발사했다.
요새 밖에 밀집하여 이동을 위해 준비 중이던 각 군에 폭탄이 터지며 폭발을 하자 러시아 연합군에서는 지옥도가 연출되었다.
수천 도의 고온과 엄청난 불길이 단 한 발의 폭격으로 수백 명의 넘는 인원들이 몰살되고, 엄청난 불길이 주변을 휩쓸며 모든 것을 태우기 시작했다.
18세기 군대 대형은 부대 지휘관들이 전투나 이동 시 지휘를 편하게 하고 사격이나 백병전에서 전투력을 배가시키기 위해 대부분이 밀집 대형이었다.
부대 밀집 대형은 참호 전투가 군대 전투 대형으로 도입될 때까지 군의 중요한 전술 대형으로 사용되었다.
모두들 엄청난 폭발력에 경악하는 순간 해리어기는 다시 기수를 내려 이번에는 이동을 위해 대포들이 도열해 있는 포병단에 폭격을 가했다.
이번의 폭발은 조금 전보다 더 거대하였다.
대포 주변에 우마차 등에 쌓여 있는 폭약이 소이탄 폭발의 여파로 유폭을 일으키면서 대폭발을 하였다.
폭발에 놀란 소와 말들이 불 붙은 마차를 끌고 이리저리 마구 날뛰자 사방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사방이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손써볼 틈도 없이 폭탄들은 연이어 대포가 도열되어 있는 곳을 집중 폭격하였다.
4대의 해리어기가 4발씩의 폭탄을 정밀 폭격하고 나서 귀함을 하자 바로 이어서 해리어기 1개 편대가 폭격을 시작했다.
각 군단별로 순식간에 8발의 네이팜탄이 투하되고 나자 러시아 연합군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저 새가 그 무섭다는 드래건인가?”
수보로프는 비행기를 드래건으로 생각했다.
“아! 아! 우리가 작년에 무슬림을 학살한 벌을 받는 것인가. 왜? 드래건이 와서 우리에게 지옥 불을 퍼붓는 것인가?”
그러자 부관이 진정을 시키겠다고 말을 했다.
“각하, 그것은 아닐 겁니다. 학살을 각하께서도 모르는 사이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자 수보로프가 화를 내며 말했다.
“이봐, 부관. 그 말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있을 때나 하는 소리야. 하늘이 그 말을 믿을 것 갔나?”
독실한 정교 신자인 수보로프는 부관의 어이없는 말에 화를 냈다.
악마의 드래건의 휩쓸고 나서 부대들 수습하자 각 군 별로 수천의 병사들이 죽어 나갔고, 또한 수천의 병사들이 부상자가 발생했다.
수보로프 백작은 오후에 부대 상황을 보고받고는 탄식을 했다. 사상자보다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아! 다른 것보다 포병이 전멸을 하다니 안타깝구나. 그리고 군의 사기가 떨어져서 큰일이구나.”
부관이 옆에서 말했다.
“이 상태로는 진군이 불가능합니다, 각하. 아쉽지만 포병과 병사들을 충원한 후 다시 진격을 해야 합니다.”
“그래. 어쩔 수 없군. 이보게, 부관.”
“예, 각하.”
“지휘관들을 소집하게.”
“알겠습니다.”
잠시 후 모든 지휘관들이 모였고 수보로프 백작은 여기서 잠시 부대 이동을 멈추고 예카테리나 여제와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Joseph II)에게 포병과 병사들의 충원을 구하기로 결정하고 전령을 파견했다.
개인끼리, 부대끼리 전투에서 패하였다면 할 말이 없었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수보로프 백작은 일단 이즈마일 요새에서 장기전에 대비한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하였지만 가온군은 그 틈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1791. 7. 30. 베사라비아 이즈마일 요새.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이 폭격으로 인하여 정신이 없는 사이 이스탄불에서는 제이스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 1,000명과 머스캣 소총으로 무장한 병력 1,000명 등 2,000명의 예니체리 군단이 7월 23일 이스탄불을 출발하여 베사라비아에 은밀히 상륙하였다.
예니체리 군단은 상륙과 동시에 신속히 이동을 하여 이즈마일 요새와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이 이스탄불로 진격하는 주 공격로에 매복을 실시했다. 폭격을 당한 러시아 연합군이 무모한 돌격을 방지하기 위한 매복이었다.
예니체리 군단을 동행한 김영석 과장의 무전으로 손원일함에 대기하고 있던 박격포병과 호위 병력 등 200명의 가온군이 예니체리군과 동시에 상륙을 했다.
박격포병이 자리를 잡자 가온군의 관측병이 지도를 들고 관측이 용이한 지형으로 이동을 하였다.
관측병들이 자리를 잡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해리어기 1개 편대가 이스탄불 방향에서 날아오고 있었고, 이번의 폭격은 어제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관측병들이 폭격 지점을 지정하자 해리어기에서 쏘아지는 네이팜탄은 정확히 목표 지점을 폭격했다.
요새 주변으로 4개의 부대로 나누어진 러시아군은 정확한 폭격으로 수천의 사상자를 내고 러시아 연합군의 혼을 뺀 해리어기가 돌아가자 또다시 다음 2차 공습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고폭탄으로 목표는 이즈마일 요새의 외곽 성벽이었다.
연발신관(延發信管)을 사용한 고폭탄은 처음에 포탄이 요새에 박히자 ‘드래건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일반 포탄도 사용하는가?’ 하고 생각하던 러시아군은 갑자기 폭탄이 폭발하자 요새 안에 주둔해 있던 러시아군은 피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요새가 함께 무너져 내렸고, 요새에 방어를 위해 거치해 놓은 대포들도 함께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만일 가온군이 요새 주둔 러시아 병사들의 전멸을 생각했었다면 이렇게 요새만 무너지는 타격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날의 폭격은 그 뒤로 번갈아가며 한 차례 더 이루어졌다.
수십여 발의 고폭탄과 네이팜탄의 정밀 폭격으로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은 어제의 피해보다 엄청나게 더 많은 피해를 입고 말았다.
이제는 이즈마일 요새의 성벽조차 무너져 내려 더 이상 주둔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요새 안의 5만과 요새 밖의 10만 명의 연합군은 100여 발의 네이팜탄과 고폭탄으로 절반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포병을 비롯한 군수물자 대부분이 불에 타 더 이상 이즈마일에 주둔하기도 어려웠고 이스탄불로의 진격은 더더욱 어려웠다.
이제는 오히려 오스만군의 침공을 걱정할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때 오스만 제국군이 쳐들어온다면 꼼짝 없이 전멸을 각오한 백병전에 돌입하여야 했다.
드래건의 공격을 받아도 그대로 진군을 했어야 했는데 포병의 전멸은 러시아군의 발목을 잡는 뼈아픈 손실이었다.
오전 일찍부터 시작된 폭격은 점심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관측병과 같이 이 상황을 지켜보던 김영석 과장은 수보로프가 부대를 수습하기 전에 한 번 더 혼을 빼놓을 생각으로 옆에 있던 장성민 박격포 대대장에게 말을 했다.
“장 소령님, 이제 이놈들 속을 뒤집어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장성민 소령이 말했다.
“지금 시점이 작전을 펼치기 적절한 시간 같습니다.”
박격포대는 4인을 1조로 포반이 운영되고 있었다.
호위조도 조별로 가-삼(K-3) 기관총 1정과 부사수 등 2인 1조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을 비롯한 2명이 한 조를 이루어 총 25대의 박격포를 이스탄불을 등지고 반달형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관측병들도 2인 1조를 이루어 25조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들 가온 파견대의 목적은 러시아 연합군의 이즈마일 요새의 철수에 그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퇴각로를 충분히 확보해서 배치하였다.
장성민 소령은 헤드셋을 켰다.
“지금부터 불곰 사냥을 시작한다. 각자 자신들의 포격 지점을 다시 한 번 숙지 바란다.”
장성민 소령의 무선을 받은 박격포대는 잠시 자신들의 포격 지점을 한 번 더 확인하였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장성민 소령이 명령을 하였다.
“관측병의 유도대로 초탄 발사 후 확인된 포반부터 3발 연발 효력사를 포격한다. 포격 개시.”
뽕.
꽈광!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박격포 특유의 발사음을 내면서 각 포반에서 초탄이 발사되었고, 잠시 후 효력사를 마친 포반부터 정밀 포격이 실시되었다.
뽕. 뽕. 뽕. 뽕. 뽕.
꽝! 꽝! 꽝! 꽝! 꽝!
이 정밀 포격은 거의 부대 지휘관들을 목표로 포격이 이루어졌으며, 18세기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군의 화려한 장교 복장은 표적과 같아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관측병에게도 정확히 포착이 되었다.
수보로프 백작도 박격포 사격에 죽을 고비를 넘기자 더 이상 전장에 서 있을 수 없었다.
1시간여의 박격포의 포격에 몸을 피하지 못한 장교들 대부분이 포격에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어 전장에서 이탈되었다.
1시간의 박격포를 끝으로 포격이 끝났다.
포격을 견디다 못한 기병대 3,000여 명이 말을 몰고 이스탄불로 무모한 진격을 하였으나 매복하고 있던 예니체리 군단의 제이스 소총의 사격에 완전 몰살되고 말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해리어기의 폭격과 이어서 시작된 박격포의 1시간여의 포격으로 러시아 연합군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였다.
그나마 박격포단이 장교들을 대상으로 정밀 포격하여 일반 병사의 사상자가 거의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병을 지휘할 장교들이 절대 부족하였다.
지휘관이 없는 사병들이란 오합지졸과 다름없었다.
수보로프 백작은 하늘에서 내리는 불벼락에 이어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포탄에 대부분의 장교들을 잃어버리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전 병력을 드네스트르 강을 넘어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지역까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다.
하지만 이들의 후퇴가 결코 편하지 않았고, 어떻게 보면 악몽의 시작이었다.
이들의 뒤로 예니체리 군단의 2,000명의 병사들이 박격포병의 지원을 받아 추격에 추격을 하였다.
여기서부터 이전의 역사와 다르게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본래 역사는 수보로프가 이스탄불을 점령하자 오스만 제국은 굴욕적인 조약을 체결하였다.
악전고투 끝에 모든 물자를 버려두면서 수보로프는 드네스트르 강을 넘었다.
드네스트르 강까지 러시아 군을 추적한 예니체리 군단의 병력은 뒤따라온 오스만 제국의 일반 군단과 함께 드네스트르 강에 요새를 세워 호시탐탐 크림반도의 회복을 노리게 되었다.
이 전쟁은 이후 상당 기간 계속되었으며 러시아가 시베리아 정책을 더 이상 펼치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1791. 8. 5. 이스탄불 술탄의 궁전.
홍해에 정박하고 있는 광무황제함에서 출격한 해리어기의 네이팜탄 폭격과 고폭탄 공격 및 대대적인 박격포의 정확한 포격으로 박살이 난 러시아 연합군들이 드네스트르 강을 건너 후퇴하였다는 사실이 예니체리군의 연락 장교의 보고를 통해 이스탄불의 궁전에 전해지자 오스만 제국은 마치 승전을 한 것 같은 축제 분위기였다.
일단 가온의 의도가 먹혀들었다. 가온군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전투는 바라지 않았다.
러시아는 폐퇴를 하였지만 아직 절반 정도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 연합군을 베사라비아 밖으로 밀어내었지만 몇 년간의 전투로 20여만 명의 병력의 손실을 보아 어느 쪽이 승전했다고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
단지 오스만 제국은 다 빼앗긴 이즈마일 요새와 베사라비아를 탈환했다는 데 의의를 두었다. 앞으로 수년간 밀고 밀리는 지루한 소모전으로 러시아 오스만 제국 전쟁에 참가한 5개국은 상당한 국력 소모를 하게 된다.
영국은 일찌감치 발을 빼지만 두 당사국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처지에 이른다.
술탄 셀림 3세와 와지르(수상) 무함마드 알리는 전장에서 돌아와 알리 아지즈의 저택에 머물고 있는 김영석 과장을 술탄의 황궁으로 불러 크게 치하하였다.
그리고 약속한 은 50만 냥에 50만 냥을 더하여 은 100만 냥으로 감사의 뜻을 표하고, 김영석 과장에게 상급으로 10만 냥을 내렸다. 김영석 과장은 은 100만 냥만을 받았으나 자신에게 내리는 상금은 거절하였다.
가온군이 노리는 것을 알고 있는 김영석 과장으로서는 이들의 불필요한 환대는 자칫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영석 과장의 속을 알 수 없던 술탄 셀림 3세는 그 행동이 더욱 맘에 들어 더 많은 선물을 하려 하였다.
술탄의 거듭되는 선물 공세를 너무 거절하는 것이 결례로 비쳐질 우려가 있자 김영석 과장은 술탄에게 감사를 표하며 처음에 준다는 은 10만 냥을 받기로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와지르(수상) 무함마드가 나서서 은을 10만 냥을 더하여 은 20만 냥이라는 거금을 상금으로 받았다. 오스만 제국이 돈이 많은 것을 알았지만 참 이들의 통이 커도 너무 컸다.
김영석은 은의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것을 말하고 금으로 교환을 부탁하자 두 말하지 않고 들어주었다.
120만 냥의 은이 12만 냥의 금으로 교환하자 4.5톤의 무게가 되어 그나마 이동이 한결 편리해졌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든 돈을 가지고 감사를 표하자 곧이어 유희들이 들어오며 대형 연회가 시작되었다.
이슬람의 연회의 특성상 술이 없는 연회였지만 그 연회의 음식은 김영석이 이전에 먹어본 어떠한 음식보다 화려하고 맛이 있었다.
특히 다양한 해산물과 풍성한 야채, 그리고 다양한 양고기 요리는 그 맛이 김영석의 입맛에 맞아 아주 독특한 풍미를 제공하였다.
이 맛을 보고 반한 김영석은 알리 아지즈에게 자신이 받은 상금으로 요리를 만들어 지금 흑해에 있는 손원일함의 병사들에게 줄 음식을 만들어줄 수 없느냐는 말을 하였고, 김영석의 부탁을 웃으며 들은 알리 아지즈는 일어나서 술탄 셀림 3세에게 보고를 하였다.
당황한 김영석은 손사래를 치며 말렸지만 알리 아지즈는 이미 술탄에게 보고를 하였고, 김영석의 부탁에 크게 반가움을 표한 술탄은 옆에 있는 시종을 통하여 엄청난 양의 음식이 만들어져 전쟁에 참여한 박격포 대대 병력과 손원일함의 병력에게 제공되어 전쟁을 마친 병사들을 위로하였다.
연회를 마치고 알리 아지즈의 저택으로 돌아온 김영석은 곧바로 작별을 고한 후 귀대를 하였다.
생각지도 않은 많은 금(金)을 갖고 광무황제함으로 돌아온 김영석은 자신이 별도로 받은 은 20만 냥을 함장 박용현 소장에게 보고를 하였다.
박용현 소장은 김영석이 받은 상금이니 본인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하자 김영석은 이 돈 전액을 가온에 기금으로 내놓았다.
이 돈은 전액 오스만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예치되었으며, 이 돈은 오스만에서 대한제국으로 유학 오는 학생들의 복지 기금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후일 이 소식을 알리 아지즈로부터 들은 술탄 셀림 3세는 김영석의 처신에 감사를 표하였고, 오스만 황실에서 은 30만 냥을 더 출연하게 된다.
이 발전 기금으로 가온 무역에 출자를 하여 상당한 이익이 발생하였고, 후일 국력이 쇠퇴한 오스만 제국의 영재들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하여 제주 가온에 유학을 왔을 때 유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기금이 되었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이미 조성된 이 기금으로 공부를 하고 오스만 제국으로 돌아간 유학생들은 자신들이 유학 당시 많은 도움이 되었던 이 기금을 기려 김영석이 첫발을 내디딘 쿠웨이트에 김영석의 기념비를 세우게 된다.
첫 번의 유럽 원정을 성공리에 마친 손원일함과 항모 광무황제함은 영광스런 귀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