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101)

고토 회복 하바롭스크 전투

1791. 6. 11. 06:30 하바롭스크 주변 1대대 본부 중대.

김재갑 소령은 헤드셋을 열었다.

“각 중대별 인원 보고하라.”

대대장의 지시에 각 중대장들이 인원을 보고해 왔다.

“각 중대 변동 사항이 없군. 2중대장.”

“예, 이종찬입니다.”

“귀관이 통역관을 대동하고 요새로 가라.”

“알겠습니다.”

변동 사항이 없음으로 확인한 김재갑 소령은 이종찬 대위와 통역관을 요새로 보냈다.

푸가초프 백작은 페테르부르크에 있을 때만 해도 주변의 귀족들과 밤새워 파티를 벌이다 오전 늦게 일어나는 게 일상사였지만 하바롭스크로 유배를 온 후부터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푸가초프 백작은 예카테리나 여제의 마지막 정부인 주보프와 궁전에서 벌어진 파티에서 별거 아닌 일로 작은 다툼이 벌어져 그의 눈 밖에 났었다.

주보프는 그것을 잊지 않고 예카테리나 여제에게 푸가초프 백작이 주변에 사람들을 모아 프랑스와 같이 공화정을 도모하고 있다는 고변으로, 말도 안 돼는 누명을 씌워 이곳 하바롭스크까지 유형을 오게 된 것이다.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하여도 자신보다 20년이나 나이 어린 주보프를 죽이고 싶어 밤마다 절규했다.

이곳 하바롭스크로 끌려 황제의 사면이 없는 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만 하바롭스크 요새 내에서는 신체적인 구속 없이 자유가 있고 주변에서 자신을 귀족으로 대우하여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처음 몇 개월의 어려움이 지나자 하바롭스크에 유형 온 다른 정치범 귀족들처럼 동쪽으로 탐험을 떠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귀족들은 한 달에 한 번 요새 사무소에 직접 방문하여 신고만 하면 어디로든 탐험은 자유로웠으며 더 멀리 갈 경우에도 서쪽으로 가지 않는 한 별다른 문제를 삼지 않았다.

하바롭스크에 와서 몇 달이 지나고 어느 정도 마음을 다스리고 나자 지난 1년간 푸가초프 백작은 주변의 반경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쉬지 않고 탐험을 하였다.

며칠 전에 돌아온 푸가초프 백작은 내일 다시 신고를 하고 시종과 함께 다시 탐험을 떠나려 했다.

다른 날과 같이 바뀐 잠자리 습관으로 오늘도 해가 뜨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푸가초프 백작이 자리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이곳의 창문은 유리로 창문을 막은 것이 아니라 겨울철 혹독한 날씨를 고려하여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일반 문같이 여닫이가 전부였다.

창문을 열자 환하게 아침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바롭스크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귀족인 푸가초프 백작은 같이 온 하인 레핀이 백작이 일어난 것을 알고 따듯한 물을 가지고 들어왔다.

“백작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오, 레핀. 어서 오게.”

푸가초프 백작은 레핀이 떠온 따듯한 물로 손과 얼굴을 씻었다. 백작이 씻는 동안 수건을 들고 있던 레핀은 밖이 웅성거리자 푸가초프 백작에게 수건을 건네주고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푸가초프가 손과 얼굴을 닦고 자리에 앉자 레핀이 다시 들어왔다.

“백작님, 잠시 나가보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인가?”

“대한제국이라는 곳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대한제국? 그곳이 어디라던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밖에 그곳에서 사람이 왔다고 합니다. 잠깐 나가보셔야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겠군.”

가온군은 조선의 피해를 고려하여 대외적인 전투나 접촉이 있을 경우 호주에서도 그랬듯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하기로 결정하였었다.

푸가초프가 밖으로 나오자 요새의 거대한 정문이 열려 있었고 많은 수의 사람들이 요새 정문 앞에 모여 있었다.

푸가초프 백작이 앞으로 나가자 하바롭스크의 보예보다(군사령관) 이반 대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반 대위도 정치범으로 이곳 하바롭스크로 유형을 와 20년간의 수형 생활 끝에 사면되어 군에 복직해서 하바롭스크 보예보다(군사령관)로 임명된 사람이다.

“어서 오십시오, 백작님.”

이반 대위는 은연중 푸가초프 백작을 이곳 하바롭스크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었고 다른 주민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반 대위, 고생이 많소. 이들이 누구라고요?”

수형자 신분이라서 평민인 이반 대위에게 말을 아주 놓지 못한 백작은 반공대로 이반 대위에게 말했다.

“예, 이들은 조금 전에 왔습니다. 대한제국 사신의 자격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래요? 내가 한번 그들을 만나보겠소.”

“그렇게 하십시오.”

백작의 말에 주변의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백작을 보호하는 듯 호위를 하며 정문 앞으로 몰려갔다.

정문 앞에는 이종찬 대위와 통역관, 그리고 백기를 들고 이들을 호위하는 3명의 병사들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그대들은 어디서 온 누구요?”

푸가초프 백작의 말에 이종찬 대위가 말했다.

“우리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의 황실 친위 부대이고, 본인은 대위 이종찬입니다.”

“아! 그렇소? 나는 러시아 백작 알렉세이 푸가초프요. 그런데 그대들은 여기 무슨 일로 왔소?”

그러자 이종찬이 말했다.

“이곳은 대대로 우리의 땅입니다. 이곳의 날씨가 사람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추워 흑룡강 밑에 있는 연해주 부근을 제외하고는 그동안 방치해 두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귀국에서 사람들을 보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국내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대로 두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황명을 받들고 귀국의 요새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푸가초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이곳은 우리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개척하기 위해 만든 요새요. 귀국의 영토라니, 그런 억지 주장이 어디 있소?”

“귀국이 이곳을 시베리아라고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이 땅은 우리 대한제국이 7,000년 전부터 사백력(斯白力)이라 부르고 있는 우리의 땅입니다.

귀국이 말하는 바이칼 호는 우리 민족의 발원지(發源地)입니다. 우리는 그 호수를 밝달호라 부르며 있습니다. 앞으로 그 호수도 되찾을 계획입니다.”

푸가초프 백작은 이종찬 대위가 하는 어이없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보게, 대위. 그대 말은 많은 모순이 있네. 7,000년이라니, 그러면 대한제국은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그저 내 땅이다, 라고 하면 다 내 땅이 되나? 우리 러시아는 1689년 청국과 조약을 맺은 이래 많은 탐험가들과 개척자들이 동쪽의 영토를 개척하고 있네.”

그러자 이종찬도 지지 않고 말했다.

“백작님의 말씀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임자가 있는 물건을 잠시 놔두었는데 다른 사람이 가졌다고 그게 그 사람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대한제국의 영토인 주인이 있는 사백력 땅을 귀국이 무엇 때문에 개척을 하고 탐험을 합니까? 이미 이 땅은 예전부터 에벤키 족을 비롯한 많은 원주민들이 수렵 생활로 그들 나름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땅은 무주공산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들은 푸가초프 백작은 할 말이 없었다.

이종찬 대위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시베리아로 탐험을 나가고 개척을 하면 반드시 이곳 원주민들과 조우하였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로 들어오게 된 것은 17세기 말 피요트르(피터) 대제의 담비 가죽 독점을 위한 새로운 모피 산지를 찾기 위해서 카자크 용병들을 고용하여 동진을 명령한 이후였다.

하지만 그 동진 경로에는 그 길이만큼 수많은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흘린 피의 복속도 있었다.

시베리아의 역사에 대하여 잘 알고 있던 푸가초프 백작은 원주민에 관한 말이 나오자 할 말이 없었다.

누구의 땅이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영토를 침해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잠시 시베리아에 대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하던 이종찬과 푸가초프 백작이 말을 멈추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푸가초프 백작이 물었다.

“그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곳. 러시아가 말하는 하바롭스크에서의 철수입니다. 이르쿠츠크 이후의 땅으로 물러가십시오.”

“우리가 못하겠다면 어찌하겠는가?”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종찬 대위가 그 말을 하자 하바롭스크 보예보다(군사령관)인 이반 대위가 참지를 못하고 자신이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들며 말했다.

“백작님, 이들의 말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하바롭스크는 삶이고 전부입니다. 여기서 돌아가는 것은 곧 죽음입니다.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이자들을 전부 죽여 우리의 결의를 보여줍시다.”

이반 대위가 칼을 뽑아 들고 큰 소리로 말을 하자 주변의 스트렐찌(직업 군인)들도 머스캣 소총과 칼을 들어 일제히 이종찬 대위를 겨누자, 이종찬을 호위해 온 가온군의 장병들도 총구를 러시아인들에게 겨냥했다.

양군 사이에 일촉즉발(一觸卽發)의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자 푸가초프 백작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반 대위, 이들은 사신이라네. 사신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군인으로서 더할 수 없는 치욕이라네.”

그 말을 듣던 이종찬 대위가 푸가초프 백작을 보며 말했다.

“백작님, 저희들이 무작정 이런 말을 드린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저희들은 그만한 힘이 있습니다.”

“대위, 이제는 협박을 하는 건가?”

푸가초프 백작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하자 그 말에 분위기가 더 갑자기 험악해지려고 했다.

이종찬 대위가 침착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백작님. 협박이라뇨. 그럴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아예 이리 오지도 않았습니다. 진정하시고 잠시 기다려보십시오.”

이종찬 대위가 그 말을 하고 나서 헤드셋을 열었다.

헤드셋을 열고 잠시 통화를 하던 이종찬이 푸가초프 백작에게 말했다.

“백작님, 잠시 저쪽을 보아주시죠.”

이종찬 대위가 요새 앞 커다란 바위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갔다.

‘무언가?’ 하고 느끼는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다.

꽈광!

“으악!”

엄청난 굉음과 폭발력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의 병사들이 급격히 굳어가는 것을 보던 이종찬 대위가 다음 목표점을 지적하였다.

“다음은 이곳입니다.”

이종찬 대위가 손짓한 곳으로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이번에는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꽈광! 화~악!

그러자 목표점 인근 백여 미터가 엄청난 폭발과 함께 수백 미터 밖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열기가 확 퍼졌다. 소이탄이었다. 이번에 이들이 받아들이는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종찬 대위가 주변 사람들은 돌아다보았다. 모두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엄청난 화력에 공포에 물드는 모습이 펼쳐졌다.

“저기다.”

러시아의 한 병사가 소리쳤다. 그러자 모두가 병사가 소리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장갑차가 있었다. 수킬로미터 밖에 서 있던 장갑차를 한 병사가 용하게도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곳을 바라보던 푸가초프 백작 과 이반 대위를 보며 이종찬이 말했다.

“맞습니다. 이번에 쏜 것은 저 앞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저 앞에 있는 것보다 10배나 더 뒤에서도 이곳을 타격시킬 수 있습니다.”

이반 대위는 이종찬의 말을 듣고 이들의 화력이 무섭기는 하지만 이번의 말은 설마 했다.

지금도 자신이 겨우 보이는 정도의 거리에서 포탄을 쏜다는 것도 직접 보고 있어도 믿기지가 않는데 어떻게 10배나 먼 거리에서 포탄을 쏠 수 있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종찬 대위는 이반 대위가 고개를 흔드는 것을 보고 있다가 다시 헤드셋에 몇 마디 말을 하였다.

“잠시 기다려 보시죠.”

이종찬 대위는 이 말을 하면서 이번에는 어디를 짚어주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씨잉’ 하고 무언가 날아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이번에는 요새의 방책 모서리 위에 있던 경계 초소가 엄청난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났다.

꽈광!

요새의 망루 초소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났다.

나무로 만든 요새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초소를 박살 낸 포탄의 여파로 요새 전체가 우르릉 하고 흔들리자 푸가초프 백작과 이반 대위는 질려버렸다.

어떻게 포탄 한 발이 튼튼한 요새를 흔들거릴 정도의 힘이 있다는 것에 놀라서 경악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이종찬 대위가 말을 꺼냈다.

“백작님, 우리가 힘이 없어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필요 없는 살상을 막기 위해 이런 수고를 감수하면서 찾아온 것입니다. 1시간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종찬 대위가 하바롭스크의 러시아인들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돌아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반 대위가 소리쳤다.

“이렇게 하고 가면 그만이오? 이렇게 협박을 하고 가면 우리가 항복할 것 갔소? 전쟁이든 협상이든 결정을 하고 가시오.”

그 소리를 들은 이종찬이 뒤돌아보며 말했다.

“잠시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들은 협박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협상인지 전쟁인지는 귀국이 판단하십시오. 그리고 그 결정을 요새 앞에 깃발로 결정하십시오. 협상이면 백기를 내걸어주시고 전쟁이면 그대로 있으시면 됩니다. 판단은 귀측에서 하십시오.”

이종찬이 러시아인들의 말을 더 듣지 않고 다시 몸을 돌려 일행들과 같이 본대로 돌아왔다.

이종찬이 돌아가자 하바롭스크는 정적이 흐르더니 이곳저곳에서 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문에서 자신의 숙소로 돌아오던 푸가초프 백작은 뒤에서 들려오는 이반 대위의 말에 발을 멈추었다.

“백작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대위 지금 하바롭스크의 주민들 대표들을 모두 모이라 하게.”

잠시 후 푸가초프 백작의 숙소로 1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주민들은 방금 전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하바롭스크에는 아직 한 번도 원주민들이 쳐들어온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이곳 하바롭스크의 무서운 적은 추운 날씨와 보드카에 취한 같은 러시아 사람들뿐이었는데 처음으로 총칼을 맞대고 싸워야 할 적을 맞이한 것이다.

주민들 대표가 푸가초프 백작의 집에 모두 모였다.

“잘들 오시었소.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저들 말대로 항복을 하든지, 아니면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든지.”

푸가초프 백작이 말을 끝내자 이반 대위가 말을 했다.

“백작님, 우리가 항복을 한다 해도 이들이 어떻게 할지 모릅니다. 차라리 최후에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반 대위가 말을 하자 옆에 있던 하바롭스크 주민 중에서 한 사람이 말했다.

“맞습니다. 저들이 우리를 어떻게 할지도 모르는데 항복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백작님이 더 잘 알고 계시자 않습니까? 싸웁시다.”

주민들 중 한 사람이 말하자 나머지 주민들이 그 말에 동조를 하였다. 푸가초프 백작은 이반 대위와 동조하는 주민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들의 웅성거림이 끝이 나자 백작이 말했다.

“이반 대위, 대위가 이 하바롭스크의 보예보다(군사령관)이 대위가 결정하면 싸워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오. 그런데 만일 이들이 아까 보여준 포탄을 수십 발 쏴서 우리 요새의 방책을 파괴시키면 우리는 어디에 의지하여 싸워야 하는 거요? 그들이 포를 쏜 곳은 우리가 포를 쏴도 닿지 않는 거리인데 잘못하면 일방적인 학살이 이루어질 수도 있소.”

푸가초프 백작이 말을 하자 이반 대위를 비롯한 주전파들의 목소리가 쑥 들어가 버렸다.

이반 대위도 방금 3발 포탄의 위력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반 대위는 억울했다. 십 년이 넘는 수형 생활 끝에 비록 대위 계급이었지만 이곳 하바롭스크의 군사령관이 되었는데, 또다시 저들에게 수형 생활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푸가초프 백작은 자신도 억울하게 정치범으로 몰려 수형 생활 중이었지만 이반 대위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대위, 그러지 말고 이들과 다시 한 번 대화를 해봅시다. 만일 우리가 항복을 한다면 이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대우를 해줄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오.”

이반 대위는 푸가초프 백작의 말에 잠시 생각을 했다.

생각을 하던 이반 대위가 푸가초프 백작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한 번 더 그들과 대화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반 대위는 그 말을 하고 자신의 부하들 중 2명과 하바롭스크 주민 중 2명, 그리고 자신과 푸가초프 백작 등 6명을 지목하고 백작의 하인 레핀에게 백기를 들게 하고 요새 정문을 나섰다.

김재갑 소령이 쌍안경으로 요새를 바라보면서 말을 했다.

“이 대위, 저들이 백기를 들고 나왔네? 이 대위의 작전이 먹혀들은 것 같군. 협상을 하려고 나온 것 같은데?”

옆에서 이종찬도 쌍안경으로 요새를 보며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이종찬 대위가 김재갑에게 허락을 받아 종전과 같은 인원으로 하바롭스크의 협상단을 맞으러 갔다.

하바롭스크 협상단은 정문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종찬 일행이 도착을 하자 이반 대위가 앞을 나서며 말했다.

“조금 전 우리를 보고 항복을 하라고 하는데, 만일 항복을 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요?”

“우선 전 병력은 무장 해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제국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일은 교육이 끝나고 나서 여러분들의 대우는 각자가 달라집니다. 교육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약간의 제약은 있습니다만 나머지는 큰 불편함은 없을 겁니다.”

그러자 이반 대위가 다시 말했다.

“우리는 이곳 시베리아에 수십 년을 살아왔소. 무장 해제는 이곳 시베리아의 환경에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는데 무장 해제는 곤란하오이다. 그리고 우리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시오.”

“무장 해제는 반드시 실시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안전은 우리 대한제국군이 책임을 집니다. 그리고 자치권은 우리가 실시하는 교육을 다 마치면 우리도 여러분들의 자치권을 일부 인정할 계획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푸가초프 백작이 나서며 물었다.

“귀측이 실시하는 교육이 어떠한 것이오? 그리고 그 교육이 언제까지 실시되는 것이오?”

“그것은 우리 대한제국의 말과 글 등 우리 대한제국 국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전반적인 교육을 말합니다.”

그러자 이반 대위가 격양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아니, 우리는 항복을 한 것뿐이지 귀국에 귀화를 하려는 것이 아니오. 어느 적당한 시기에 포로를 석방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오?”

“제가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에게 떠나갈 기회를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포로가 필요 없습니다. 투항을 하여 우리 국민으로 살아가든지 아니면 이곳 하바롭스크를 떠나 밝달호 아니, 바이칼 호 너머로 돌아가든지 결정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제 말을 따라만 주신다면 대한 제국국민으로 자유를 누리실 수 있을 겁니다.”

이종찬 대위의 말에 2명의 스트렐찌(직업 군인)와 이반 대위의 안색이 심각하게 변하였다. 이들은 그동안 동시베리아 지역을 돌아다니며 복속된 에벤키 족을 비롯한 부근의 원주민들에게 야삭(공물세, 현물 징수)을 징수하는 징수 부대로, 은근하게 누려오던 권력을 내놓게 된다는 것에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이반 대위가 말했다.

“백작님, 잠시 들어가서 다시 회의를 하시지요.”

“그럽시다. 이것 보시오, 대위.”

“말씀하십시오.”

“우리에게 잠시 시간을 더 주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다시 한 시간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알겠소이다.”

이종찬과 대화를 마친 러시아 일행이 다시 돌아갔다.

하바롭스크로 돌아온 푸가초프 일행은 다시 백작의 집으로 모였다.

“싸웁시다.”

이반 대위는 두 말하지 않고 항전을 결정했다.

“이반 대위, 다시 한 번 재고해 보면 안 되겠소?”

“백작님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시베리아에서 무장 해제를 하고 산다는 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아무래도 무모한 일인 것 같소.”

“아무리 목숨도 중요하지만 자치권도 없이 무장 해제를 당하면서까지 항복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러자 이반 대위의 부하인 한 군인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같은 직업 군인들이 총을 내려놓으면 그 다음은 죽음뿐입니다.”

“맞습니다. 우리 시민들도 총이 없으면 위험에 대처할 방법이 없어 목숨이 위태롭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러자 이반 대위가 결정하듯 말했다.

“싸웁시다. 죽든 살든 일단은 부딪쳐봅시다. 길고 짧은 것은 재봐야지요.”

“알겠소. 그렇게 합시다.”

푸가초프 백작은 이반 대위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생각해서는 무모한 저항일 것 같은데, 갖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이반 대위들과 그 부하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전을 하자고 이반 대위가 결정을 하자 두말없이 따라주었다.

항전이 결정이 되자 요새 안에 들어와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소총이 주어지고 실탄과 탄약이 지급됐다.

그리고 대포도 자리를 잡고 장약을 넣고 포탄을 미리 장전시켜서 전투에 대비를 했다.

요새가 외침을 받은 것은 처음이지만 그동안 주변의 원주민들과의 전투를 예상하여 꾸준히 훈련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 준비는 신속히 이루어졌다.

김재갑 소령과 이종찬 대위는 쌍안경으로 요새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백기는 결코 올라가지 않았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도 하바롭스크에서 소식이 없자 그들이 항전을 하기로 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저들이 전쟁을 택한 모양이구나. 이 대위,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

“맞습니다, 대대장님. 이제 저들에게 협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전투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이종찬 대위의 말에 김재갑 중령이 헤드셋을 켜며 각 중대장들과 교신을 했다.

“각 중대에 알린다. 협상이 결렬되었다. 각자 작전 계획에 따라 앞으로 30분 후 작전을 시작한다.”

김재갑 소령의 명령이 떨어지자 각 중대별로 계획된 작전 계획에 의해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하바롭스크요새의 방책위에서 병사들과 시민군을 포진시키고 망원경으로 사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이반 대위는 시간이 지나도 가온군이 아무 행동이 없자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온군이 혹시 위협만을 가하려고 허풍을 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폭풍 전의 고요함인 양 너무 조용한 가온군의 행동이 불안하기도 했다.

한참의 기다림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즈음, 갑자기 사방에서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으며, 소리가 나자마자 요새 방책이 사정없이 폭발하며 터져 나갔다.

꽈광!

꽝!

와르르~

“으아악!”

이반 대위도 엄청난 소리와 함께 폭탄의 폭발력에 휘말려 몸이 뒤로 나동그라지면서 머리를 어딘가에 심하게 부딪치며 정신을 잃었다.

푸가초프 백작은 정신이 없었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를 폭탄 수십 발이 방책을 때리자 방책이 순식간에 거의 부서져 내려앉았다.

위에서 경계를 하던 병사들 대부분이 방책과 같이 폭발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사방에서 신음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잠시 포격이 멈추었다.

주변이 조용해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주변에 있던 병사들도 그것을 느끼는 순간 이번에는 폭발 소리와 함께 포탄이 방책을 넘어와 요새 안을 포격했다.

꽈광!

화~악.

“으악!”

“살려줘!”

“으악, 뜨거워!”

그 폭탄은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번 폭탄은 폭탄이 터지면서 엄청난 불길이 치솟아 주변에 불길이 닿는 모든 건물들을 태워버렸고, 그 불길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의 몸에 불이 붙어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장전을 마친 대포에 불길이 옮겨붙자 주변의 폭약에서 유폭이 발생하였다.

꽈광!

인화성이 강한 흑색 화약은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포병과 대포를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부근의 포병들은 전부 대포를 버리고 황급히 피신을 하였다. 포병이 피신을 하는 사이에도 유폭이 계속 일어나 20문에 달하던 거의 대부분의 대포가 폭발을 하여 요새 안에 있던 주민들에게 또 다른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다.

사방에서 터지는 폭발음에 푸가초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더 이상 끌면 전멸당하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 아! 이건 불지옥이야, 불지옥!”

푸가초프가 독백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자 주변에 살아 있는 사람은 자신의 하인인 레핀뿐이었다.

푸가초프는 레핀에게 말했다.

“레핀, 빨리 이반 대위를 찾아봐라. 빨리!”

푸가초프가 소리를 치자 레핀이 몸을 돌려 이반 대위를 찾기 시작했다. 레핀이 이반 대위를 업고 온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이반 대위는 머리에 심하게 피를 흘리고 있었다.

급히 지혈을 하고 이반 대위가 깨어나기를 기다렸으나 이반 대위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푸가초프는 안되겠다는 심정으로 주변에 있던 막대기에 자신의 피 묻은 흰색 셔츠를 벗어서 묶고는 무너져버린 정문을 뛰어 넘어갔다.

정문을 넘어간 푸가초프 백작은 그 천이 묶인 막대기를 흔들며 양손으로 중지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 대대장님, 요새 정문을 보십시오.”

이종찬 대위의 말에 정문을 바라보던 김재갑 소령은 잠깐 생각하다가 헤드셋을 열고 전 부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군 사격 중지.”

순식간에 포격이 멈추었다.

푸가초프 백작은 백기를 흔들어 항복을 표시했으나 이들이 들어줄지 알 수 없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길 외에는 없었다.

적이 보여야 싸우든지 말든지 하지, 이건 싸움이 아니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푸가초프 백작이 정문을 넘어 백기를 흔들자 잠시 후 포격은 멈추었지만 아직도 요새 안에서는 폭약을 저장한 창고 등이 터지며 계속 유폭이 일어나고 있었다. 불과 30여 분의 포격으로 수천의 인구가 살고 있던 요새가 쑥대밭이 되었다.

정문에 백기를 꽂아놓고 다시 돌아온 푸가초프 백작은 이반 대위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 이반 대위가 깨어났다. 흔들리는 머리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뜬 이반 대위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푸가초프와 시선이 마주쳤다.

“백작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반 대위가 전황을 물어오자 푸가초프 백작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뜨던 대위는 힘이 빠진 듯 바닥으로 몸을 눕혔다.

“어쩔 수 없었네. 이건 전쟁이 아니야. 이건 일방적인 학살이야. 나는 더 이상 하바롭스크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 수 없었네.”

이반 대위는 백작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감겨진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고 생각을 했지만 가온의 화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자신의 판단 한 번으로 그동안 가꾸어왔던 요새는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반 대위는 예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학살의 현장이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순간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푸가초프 백작은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푸가초프 백작은 살아남은 병사에게 이반 대위의 간호를 맡기고 레핀에게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두 모으라고 말했다.

레핀이 쫓아다니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환자들을 이동시키고 하여 정문 광장에 모든 사람들이 모인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직 가온군은 이곳으로 항복 서약을 받으러 오지 않고 있었다. 백작은 졌지만 요새의 이런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백작은 주변에 명령하여 환자들을 분리했다.

중환자들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어차피 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경상자부터 치료를 하는 것이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었다.

주변의 수습할 수 있는 시신을 수습하여 일단 요새 밖으로 전부 이동시켰다. 엄청난 숫자의 시신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너무 엄청난 참사에 하바롭스크 주민들은 공포심에 몸이 굳어버린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어진 일만 기계적으로 하였다.

1791. 6. 11. 15:00 시베리아 하바롭스크.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협상과 이어진 전투로 순식간에 파괴된 하바롭스크를 어느 정도 정리하자 오후 3시경이 되었다.

가온군은 그동안 백작이 백기를 꽂고 들어간 뒤로 몇 시간 동안 일체 하바롭스크로 진격을 하지 않고 쌍안경으로 그들이 하는 것을 지켜만 보았다.

가온군이 지금 들어가도 하는 일은 포격에 의한 잔해 정리뿐이었다. 이미 포격으로 사방의 방책은 대부분 무너져 내려 요새 안의 상황이 훤하게 보였다.

요새 주변에 있던 마을은 대부분은 폭격을 면해 외관상으로는 멀쩡하게 서 있었다.

김재갑 소령은 푸가초프 백작이 사태를 수습하는 동안 장갑차를 전진하여 그들이 다른 곳으로 도주를 하지 못하게 도주로를 차단하고는 그들이 모든 일을 마칠 때까지 ‘나도 저 입장이 되면 적들에게 험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기다려 주었다.

탕!

탕!

그사이 10여 명의 주민들과 병사들이 요새를 나와 사방으로 도망하였으나 기다리고 있던 저격병들의 총탄을 맞고 요새에서 100미터도 나가지 못하고 전원 사살되었다.

이 일을 보고받은 푸가초프 백작은 전 주민들에게 요새를 나가는 순간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총탄에 사살된다고 말하며 요새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그 후 3번의 총성이 더 울렸다.

러시아 직업 군인들이 도망을 하려고 푸가초프 백작 몰래 요새를 벗어났으나 전원 사살당한 것이다.

그렇게 되자 그 누구도 요새를 벗어나지 않았다.

점심도 거르고 요새 정리에 힘을 쓰고 오후 3시경이 되자 어느 정도 주변이 정리되었다. 푸가초프 백작은 모든 인원을 모아 인원 점검을 하였다.

다친 곳 없이 살아 있는 사람이 300명에 불과했다.

경상자가 300여 명이고 중상자도 100여 명이 있었다.

순식간에 2,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바롭스크는 시베리아의 최일선 도시로 막 성세를 구가하려던 시기였다. 인구도 3,000여 명 정도로 요새치고는 많았다.

하바롭스크는 이제 막 요새를 벗어나 도시로 탈바꿈하기 직전이었다.

한순간의 꿈이었다. 수십 년간 유형지로 개척 전초 기지로 정치인 수용소로 발전을 하던 하바롭스크의 역사가 30분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푸가초프 백작은 중상자를 제외하고는 전원을 이끌고 정문 앞에 도열하였다. 도열한 앞에는 요새에서 수거한 무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멀리서 ‘으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5대의 장갑차를 필두로 500여 명의 군대가 사방에서 질서 정연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바롭스크 주민들은 이상한 괴물들을 앞세운 가온군이 몰려오자 동요하기 시작했다.

푸가초프 백작이 나서서 이들을 무마하지 않았다.

러시아 주민들은 백작의 말에 마음을 진정시켰고, 이들이 불안한 마음에 아마도 사방으로 도망을 하려고 했다면 전원 사살되었을 것이다.

5대의 장갑차는 사방을 포위하듯이 몰려와 멈춰 섰다. 특히 양편의 강을 타고 물살을 가르며 넘어오는 장갑차와 고무보트는 압권이었다.

이윽고 김재갑 소령을 태운 장갑차가 푸가초프 백작 일행이 모여 있는 앞으로 다가와 섰다.

차에서 내리는 김재갑 소령과 이종찬 대위는 자신들 앞에 모여 서 있는 러시아인들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그나마 격식을 갖춘 옷을 입고 있었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보는 그들의 모습은 가히 가관이었다.

푸가초프 백작도 백기를 만들기 위해 입고 있던 셔츠를 벗었기 때문에 겉옷만을 입고 있었다.

김재갑은 이종찬과 통역관을 앞세운 가온군은 서 있는 수백 명을 가운데 두고 십자 포화 대형으로 넓게 섰다. 십자 포화 대형을 모르는 푸가초프 백작은 이들이 자신들을 사방에서 포위하지 않고 이상한 대형으로 넓게 포위를 하자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김재갑 일행이 푸가초프 백작에게 다가섰다.

김재갑 소령이 먼저 푸가초프 백작에게 말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제국 5여단 1대대장 소령 김재갑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유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러시아 백작 알렉세이 푸가초프입니다. 그래도 포격을 중지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상호간의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러시아 백작 알렉세이 푸가초프와 하바롭스크 주민들은 대한제국에 항복을 청원합니다.”

“예, 그 청원 받아들이겠습니다.”

김재갑 소령이 대답을 하였다.

잠깐 시간이 지나자 푸가초프 백작은 자신들의 러시아국기를 접어 김재갑 소령에게 건네주었다.

김재갑 소령은 러시아 국기를 정중히 받아 이종찬 대위에게 넘겨주었다. 이로써 동시베리아의 러시아 거점 도시 하나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김재갑 소령이 말했다.

“러시아 주민 대표로 푸가초프 백작께서 수고를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마무리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부대를 잠시 요새 밖에 주둔시켜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재갑 소령은 헤드셋을 켰다.

“전군 현지 대기한다.”

그러자 모든 장비들이 그 자리에서 대기하였고, 병력들도 대기 대형으로 들어갔다.

“자, 우리는 다시 돌아가 요새를 정리합시다.”

푸가초프 백작은 주민들을 이끌고 돌아가 하바롭스크 정리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한참 요새를 정리하다 요새 한쪽에서 웅성거림이 있었다.

레핀이 급히 푸가초프를 찾았다.

“백작님, 잠시 가보시죠?”

“무슨 일인가?”

“이반 대위가 자살을 했습니다.”

“뭐라고?”

푸가초프 백작은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레핀을 따라갔고 그 뒤를 이종찬과 통역관도 뒤따라갔다.

이종찬과 푸가초프 백작이 사람이 모인 곳에 다가서니 거기에는 한 구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이반 대위가 누굽니까.”

“이곳 하바롭스크의 군사령관입니다.”

“그런데 왜 자살을?”

“제가 항복하자는 것을 극구 싸우자고 하더니, 무고한 사람이 죽은 것이 견디기 힘들었나 봅니다.”

“그렇습니까? 지휘관의 잘못된 선택은 엄청난 결과를 야기합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책임감이 뚜렷한 지휘관이었는데 이렇게 생을 마감하다니…….”

이반 대위는 자신의 한순간의 잘못으로 수천의 목숨이 없어진 것이 못내 견딜 수 없었던지 아무도 모르게 목을 매어 자살을 한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푸가초프는 마음이 아팠지만 표시를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남아 있는 700여 사람들의 생명이 이반 대위의 죽음보다 소중했다.

“레핀, 이반 대위를 잘 모시게.”

“알겠습니다, 백작님.”

푸가초프는 레핀에게 명하여 요새 밖의 공동묘지에 다른 시신들과 같이 장사를 지내라고 말하고는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가온군은 무기 회수 이외에는 일체 요새 정비에 나서지 않았다. 모든 일은 푸가초프 백작의 지시를 받은 러시아인들이 했으며, 가온군은 부상당한 경상자 300명과 중상자 100명을 분류하여 치료를 시작했다.

가온의 치료로 경상자들은 대부분 움직이는 데 큰 불편함 없이 되었으며, 중상자들은 어쩔 수 없는 중상자들을 제외하고는 30여 명의 인명을 구했다.

푸가초프 백작은 가온군의 의술에 놀라워했다.

중상자는 대부분 목숨을 잃고 경상자도 20~30%는 목숨을 잃는 것이 그동안의 전투에서의 실태였는데, 이들의 치료로 자신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생존율을 보인 것이다.

푸가초프 백작의 빠른 사태 수습으로 하바롭스크는 빠르게 안정을 취해갔다. 가온군은 주변을 철저히 차단을 하고 인근의 나무를 벌목해 와 임시로 요새 방책 보수를 마쳤다.

전보다 견고하지는 않았지만 3미터 높이의 방책은 주위와 충분히 격리가 가능하였다.

가온군은 요새 밖 주민 거주지에 머물렀고, 요새는 러시아 주민들의 수형지가 되었다.

김재갑 소령은 도시가 안정이 되자 하바롭스크의 전체 현황 파악에 착수하였다.

그 일은 푸가초프 백작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 빠르게 진행되었다. 백작은 이왕 협조할 거 최대한 협조하여 러시아인들의 안전을 최대한 도모하는 것이 실익이 크다고 판단되어 가온의 일에 적극 협조를 하였고, 푸가초프 백작의 지시를 받은 러시아인들은 적극적인 협조를 하였다.

하바롭스크는 그동안 복속시킨 주변 원주민들에게 세금으로 야삭(현물로 받는 공물 세금)을 받아 모아두었다가 1년에 1번 짜르의 감독관이 오면 그동안 모아놓은 공물을 실어가고는 했다.

지금 하바롭스크는 주변 원주민들에게 받은 야삭과 멀리 야쿠츠크 요새에서 보낸 수많은 가죽들이 창고에 쌓여 있었다.

다행히 창고는 폭격을 받지 않았으며 일부만 이번 폭격에 그을렸지만 짐승의 가죽과 그 부산물들은 아직도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김재갑 소령은 그 모든 것을 강 건너에 있는 수송 트럭 5대에 나눠 싣고 동명으로 보냈다.

5대의 수송 트럭은 모피를 산더미같이 싣고는 김재갑 대대가 그동안 진군하면서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동명으로 귀대를 했다.

김재갑 소령은 트럭을 동명시로 보내며 앞으로 원활한 물자 수송을 위해 개조한 판옥선 2~3척 정도를 흑룡강에 정규 노선을 만들어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김재갑 소령은 부대를 나누어 사백력에 북부 지역에 있는 1632년에 건설된 야쿠츠크(Yakutsk) 요새와 1638년에 건설된 오호츠크(Okhotsk) 요새, 1648년에 마지막으로 건설된 캄챠카(Kamchatka) 요새까지 점령을 하여 하바롭스크를 기점으로 동부 사백력의 러시아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금년을 보내고 내년에 네르친스크와 울란우데 이르쿠츠크를 점령하여 밝달호를 기점으로 예니세이 강을 분기하는 서부 사백력을 완전 평정할 계획이었고, 이 작전은 3개월이 지나지 않아 전부 성공을 하였다.

각 지역에서 잡은 500명 내외의 러시아 포로들은 그곳에 수용하여 포로수용소에 수용하여 각 지역의 도시 건설에 인력을 활용하기로 했다.

러시아인들이 어느 정도 하바롭스크를 수습하자 김재갑 소령은 하바롭스크의 러시아인들에게도 예외 없이 한글 교육과 산수 및 역사 교육이 실시했다.

그리고 그들을 이용하여 하바롭스크를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먼저 도시 중앙에 시청 건물을 벽돌과 주변의 석재를 이용하여 3층으로 건물을 짓기로 했다.

시청 앞에는 대형 광장을 조성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모든 건물은 벽돌로 지었다.

최초 개척 시기에 급조해서 지은 목재 건물들은 사료적인 가치가 있는 건물을 제외하고 벽돌 건물이 지어지면서 차츰 허물어버릴 계획이었다.

주택은 온돌식 구조로 지어 난방을 하였으며, 주변에 있는 노천 탄광을 개발하여 도시의 난방을 전부 석탄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겨울까지 진행되는 공사가 끝이 나면 내년의 하바롭스크는 다른 얼굴을 한 도시로 탄생이 될 것이다.

공사에 동원되는 러시아인들은 충분한 휴식과 푸짐한 식사가 제공되기에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몰라도 이전의 러시아 시절처럼 나름대로 상당히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김재갑은 주변의 원주민들과의 유대에도 힘을 썼다.

그동안 현물로 징수되는 공물 세금인 야삭의 과중한 부과로 불만이 팽배해 있던 에벤키 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에게 야삭의 부담을 전부 없애주었고, 나머지 가죽은 전부 현 시가로 구입하여 주기로 하였다.

그러자 부근의 원주민들은 대환영을 표시하였다.

그동안 야쿠츠크로 몰리던 가죽 시장도 하바롭스크로 그 시장이 급격하게 옮겨오게 되었다.

가온 무역에서는 앞으로 사백력 가죽 시장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모피 팀이 결성하여 하바롭스크로 파견했다.

1791. 6. 15. 청진 중공업 단지 시멘트 제조 공장. 연해주 동명 비행장.

연해주 동명 비행장이 우선적으로 활주로 건설을 마쳤다. 청진 중공업 단지의 시멘트 제조 공장도 완성을 보았다. 비행장은 처음으로 제주를 출발한 C-130 수송기를 가뿐하게 받아들였다.

최초의 수송 작전은 김재갑이 보낸 엄청난 모피와 가죽이었다. 5대의 수송 트럭에 가득 싣고 온 모피 가죽을 실은 수송기는 4개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며 울려 퍼지는 소리가 마치 행진곡을 연주하는 것같이 비행장에 울려 퍼지며 힘차게 동명 비행장을 날아올랐다.

앞으로 공항은 수개월이 더 지나야 완공을 보겠지만, 임시로 활주로만 개방을 하였다.

이 모피와 가죽은 바로 가온으로 전해졌다.

장준하는 얼마간의 모피를 남겨두고 전량 별무사에 보내어 조선의 양반들에게 비싼 값에 판매를 하게 하였다.

고급 담비 가죽 등 최상품은 정조에게 보내 임금을 기쁘게 하였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에 김재갑의 노력으로 조선에 들여온 가죽은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다.

이 때문에 조선에서 가죽이 유행처럼 번져 조선 상단의 주머니를 불렸다. 별무사는 이번에 판매한 가죽 대금으로 전량 쌀을 구해 제주도로 보내기로 했고, 모피를 판매한 것으로 구입한 쌀이 수십만 석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시멘트 공장은 모든 준비가 갖추어 있었다.

그동안 회전 가마에 쓰일 대형 철판이 공급되지 않아 준비만 하고 있던 중 제주도의 전기로에서 만들어진 철판을 공급받아 우선 1개의 준공을 보게 된 것이다.

여러 공정을 거친 후 제주도의 제지 공장에서 만들어진 포장지에 담겨져 나오는 시멘트를 보고 이호 박사를 비롯한 팀들이 전부 환호성을 울렸다.

제주도의 제지 공장에서는 대량 생산은 아니었지만 가온이 불편 없이 쓸 정도의 모든 종이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직은 수요가 많지 않아 대량 생산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뿐 대량 생산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처음 생산을 시작한 포틀랜드 시멘트는 연해주, 사할린, 청진, 좌도도 및 조선의 가온의 건설 현장에 바로 투입이 될 것이다. 시멘트 공장이 준공을 보자 바로 레미콘 공장도 덩달아 준공되었다.

레미콘 공장 건설로 지금까지 공장 건설보다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내면서 공장 건물이 들어설 수 있을 것이고, 공장 건설에 투입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레미콘 10대와 펌프카가 긴급 수송되었다.

1791. 6. 16. 청진 중공업 단지(淸津 重工業團地).

오늘 청진 발전소가 준공되었다.

그동안 남 제주 발전소에서 30㎿급 발전기를 떼어 와서 공사를 해왔었는데 오늘에서야 준공을 보았다.

발전소가 준공을 하자마자 그동안 공사를 마친 청진의 대형 전기로 2기가 곧바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미 무산철광에서 철광석을 가져오고 내화 벽돌을 이용하여 전기로 공사를 마치고 변압기 등을 설치하고 발전소가 건설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전기로에서 쇳물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아직 고로 제철소처럼 대용량은 아니지만 용광로가 만들어지기 전에 몇 개의 전기로가 만들어진다면 어느 정도 철강 생산 부족을 메워줄 수 있을 수 있다.

청진 부사 유득공은 쇳물이 시뻘겋게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감회가 남달랐다. 이들 가온군은 이전까지 자신이 상상해 오던 모든 것을 뒤바꿔놓았다.

수십 톤짜리 대형 전기로에서 쏟아져 나오는 쇳물을 보고 또 주변에 쇳물을 제강하기 위한 많은 기계 설비들을 보고 과연 조선의 양반들이 이들을 대장장이라고 천시할 수 있을까 하고 유득공은 생각해 보았다.

이호 박사는 유득공(柳得恭)이 쇳물을 바라보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단은 가온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제강 능력은 보유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이것으로 부족한 철강 수요를 충당하면서 지금 조선의 개혁에 가장 필요한 공작 기계 등을 생산하면, 고로가 만들어지는 2~3년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호 박사는 이제 나프타 공장을 비롯한 대규모 석유 화학 단지와 석탄 화학 공업 단지 조성에 더 한층 박차를 가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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