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101)

고토 회복 사백력(斯白力)

1791. 6. 5. 연해주.

연해주는 동명시의 항구를 개발하여 청진으로 대량의 목재를 수송하고 있었고, 지금의 나홋카 항을 추가로 개발하여 겨울에 항구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동진시(東進, 나홋카)는 연해주의 유일한 부동항으로 청진과 가까워 앞으로 곡물 수송 등을 위해 동명과 같은 규모로 개발하기로 하고 지금 한창 항만조성공사를 하고 있었다.

가온에서는 동명항을 군항으로 부동항인 동진항은 무역항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그동안 청국과 조우가 없었던 가온군은 날이 풀리자 흥개호 대평원과 붙어 있는 우수리강 건너편에서 말을 탄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였다.

변발을 하고 있어 그들이 여진족인 것은 확인되었다. 아직까지 여진족이 적대감을 보이고 있지 않아 그대로 두었지만 일단 경계는 철저히 하기로 했다.

만주는 한족 이주를 금지하는 봉금령이 계속 시행되고 있어 만주 전체가 거의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

여진의 청나라 입성이후 만주팔기에 속한 거의 모든 여진족들은 그들을 따라갔으나 일부 자신들의 근거지를 버리기 싫어하는 여진족들이 목축과 사냥으로 드넓은 만주 지역에 소수가 살고 있었고, 만주 지역은 봉천(지금의 심양)에 청국의 최강군인 만주팔기군 의군구를 두어 지금의 동북삼성과 내몽골 자치주 일대를 관리하고 있었다.

봉천에 있는 이 만주팔기는 자신들의 발원지를 지킨다는 자부심과 드넓은 초원을 배경으로 그들의 장기인 기마 연습을 수없이 거듭하였기 때문에 청국군 중 최강의 부대였다.

오소리강(烏蘇里江) 너머 송화강 아래 지역인 간도 지역에는 조선 백성들이 대대로 살고 있었다.

평안도와 함경도 북방의 척박함과 조선 관리들의 수탈을 견디지 못하고 조선의 백성들이 계속하여 간도로 이주하여 본래 살고 있던 조선인들을 포함하여 간도 지역에는 상당한 조선인들이 살고 있었다.

1712년 강희제가 관리를 파견하여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토문강(송화강의 지류)을 경계로 국경을 정한다.

이때 청나라는 백두산의 좌측 지역인 서간도 지역을 강제로 자신들의 영토로 만든다. 두 눈 뻔히 뜨고 서간도를 빼앗긴 조선은 만주 봉금령으로 청나라의 눈치를 보면서 동간도와 북간도를 방치하다시피 내버려두어 후일 간도 분쟁의 단초를 제공한다.

청나라에서도 18세기 후반에 만주 봉금령을 해제하여 한인들의 만주 이주를 풀어주지만 역사에서도 1880년대까지는 간도 지역에 이주를 하지 않고 있다가 1881년에 들어서 비로소 간도 지역 흠차대신을 보내면서 개척을 하려고 한다.

청국의 행동은 그만큼 이들도 간도 지역은 조선의 땅으로 인식했다는 근거가 된다.

연해주(沿海州)는 북간도(北間道)와 동간도(東間道)에 접해 있어 청국도 자신의 땅이 아닌 조선의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간도의 위치에 대하여 많은 의견들이 있으나 여기서는 토문강의 본류인 송화강(松花江)의 동쪽 부분을 북간도와 동간도로 송화강 지류인 토문강 서쪽 부분을 서간도로 규정했다.

연해주도 사백력(시베리아)과 마주 닿은 북쪽의 표시가 불분명했다. 대부분의 경우 강을 경계로 국경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흑룡강(黑龍江)을 경계로 하여 남쪽은 연해주로 북쪽은 사백력(시베리아)으로 정했다.

장도현 중령은 오소리강 경계 부대의 보고를 받고 전 부대에 경계령을 내렸다. 지금의 흥개호 대평원 개발은 이미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할 정도의 규모가 넘어선 지금 할 수 있는 한은 접촉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지만 그 후 이곳을 찾은 여진족들은 상당 기간 볼 수가 없었다.

러시아는 1689년 청국과 국경 조약을 맺은 이후에도 꾸준히 동쪽으로 탐험대를 파견하였다.

1790년대의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비롯한 흑해로의 진출이 최대 문제였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전 국력을 기울여 제2차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서 시베리아 지방은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러시아에서는 아직까지 시베리아는 사형수들과 정치범들의 유형지로 인식되는 시기로, 바이칼 호의 앞뒤로 이르쿠츠크는 정치범 유형지로, 바이칼 호 동쪽은 울란우데가 개발 중에 있었다.

흑룡강을 넘어선 연해주 주변은 당시에는 러시아가 조선의 땅으로 인식하여 거의 왕래가 없었다.

청진부사(淸津府使) 유득공(柳得恭)은 이번 목재 운반선을 타고 동명항에 왔다.

유득공은 말로만 듣던 연해주에 도착하자 감회가 새로웠다. 유득공은 발해고(渤海考)라는 책을 집필할 정도로 연해주에 대하여 남다른 애착이 있었는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가온이 개발을 하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동명항에 내린 유득공은 장도현 중령이 있는 흥개호(興凱湖) 대평원으로 안내를 받았다.

“어서 오십시오, 처음 뵙겠습니다. 5여단장 장도현입니다.”

장도현 중령이 먼저 유득공에게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청진부사 유득공이라 합니다.”

유득공이 답례를 하자 장도현은 앞에 보이는 대평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참으로 넓은 평원이죠?”

“맞습니다. 조선에 이렇게 넓은 땅이 어디 있습니까. 전라도에 넓은 들이 있다고는 하나 이 정도로 넓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로 앞에 이렇게 넓은 땅을 놔두고 배고파하는 백성들을 안타깝게만 바라보고 있었던 저희들이 부끄럽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청국의 눈치만 보느라 우리 땅도 마음대로 왕래하지 못하는 것이 조선의 현실 아닙니까?”

장도현의 말을 들은 유득공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모두 변명밖에 되지 않았다.

유득공의 표정을 본 장도현 중령이 다시 말을 했다.

“이제 우리가 여기에 왔습니다. 한 번 들어온 이상 그 누구도 이 땅을 넘보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으니 부사님께서는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득공이 그 말에 미안해하며 말했다.

“조선의 녹을 먹는 관리로서 왜 부끄럽지가 않겠습니까? 당연한 우리의 땅을 백두산정계비로 서간도를 잃어버리고 남아 있는 간도 땅과 이 땅도 소유권 주장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우리가 연해주에서 자리를 잡으면 간도뿐이 아니라 저 저 넓은 만주도 곧 수복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부사님. 저희들이 이렇게 조선의 백성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까닭은 만주 지역은 우리 가온군이 아닌 조선 출신 백성들의 노력으로 고토를 회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까?”

장도현의 말에 울컥하고 목이 메인 유득공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처음 주상의 명으로 이들에게 교육받으며 느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많은 회상의 얼굴을 하고 있는 유득공을 옆에서 바라보는 장도현도 유득공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연해주는 지금 차근차근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오신 김에 이곳을 한번 돌아보고 가시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도현은 유득공을 데리고 비행장이 건설되는 현장으로 갔다.

“비행기를 아시지요?”

“예, 지난 교육 때 배웠습니다.”

“이곳이 비행장입니다. 길게 뻗어 있는 저 길은 활주로라고 하고 길이가 새로운 도량형으로 2km가 됩니다.”

“2km는 오 리(五里)나 되는 길이 아닙니까?”

“예, 비행기가 뜨려면 어느 정도 양력(揚力)이라는 힘을 받아야 하는데, 그 양력을 받기 위해서 길이를 길게 하는 것입니다.”

“바닥에 까는 검은 것은 무엇입니까?”

“역청(瀝靑)이라는 것으로 흔히 아스팔트라고 부릅니다.”

“아스팔트요?”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양이들도 사용하지 않는 건축 재료로 도로를 포장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 지난번 가온에 갔을 때 도로 바닥에 깔린 것이군요?”

“맞습니다. 그것과는 강도는 다르기는 하나 같은 아스팔트의 일종입니다. 그러고 저기 서 있는 것이 관제탑이라고 합니다.”

“비행기의 뜨고 내리는 것을 관제하는 곳인가 보군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단순한 통신만을 하지만 앞으로 기술이 발달하면 하늘을 통제하는 장치 등을 설치해 명실상부한 관제탑이 될 것입니다.”

“하늘을 통제를 하다니요?”

“아! 저희들 기계 중에 무선 탐지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레이더라는 장비가 있는데, 정식 명칭으로 무선 탐지 거리 측정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기계를 장치를 하면 수천 km 밖의 물체도 식별이 가능합니다.”

그러자 유득공이 놀라 물었다.

“수천 km요?”

“그렇습니다.”

“그런 기계가 다 있습니까?”

“저희들이 갖고 있는 것 중에는 수천 km를 날아가 목표물에 명중하는 폭탄도 있습니다.”

“그럴 수가.”

가온에서 교육 중에도 이러한 것을 배우지 못한 유득공이 더욱 놀란 얼굴을 하며 장도현을 바라봤다.

“부사님께서는 문관이시니 군사적인 것은 배우지 못하셔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조선의 무관들은 이런 모든 것을 배우게 됩니다.”

“조선은 문관과 무관의 구분이 없습니다. 지방관은 당연히 겸직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군사력이 형편없어진 것입니다. 지금의 조선의 문관이라면 군문의 일을 다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앞으로는 전문화된 시대가 되면 문관이 군문의 일을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습니까?”

“지금은 비상시국이라서 가온군이 연해주 등 개척지에서 군정을 하고 있지만 어느 시기가 되면 가온군도 군정을 폐지하고 모든 정권을 전부 민간에 이양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유득공이 놀라 물었다.

“아니! 힘들여 잡은 권력을 왜 이양을 합니까?”

그러자 장도현이 웃으면서 말했다.

“부사님, 우리들은 군인입니다. 군인이 정치에 개입을 하면 부패하게 되어있습니다. 부패한 군인은 곧 총칼을 적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돌려 엄청난 피를 부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민간에 이양을 하고 군은 자신의 본연의 업무인 군인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되겠습니까?”

“조선의 군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 가온군은 그 문제만큼은 확실합니다. 다만 그 시기가 문제겠지요.”

유득공은 지금 장도현이 하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조선의 정치 권력은 정국을 장악을 하면 적대 세력은 사돈의 팔촌까지 피를 튀기는 살육전을 전개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는데, 이들은 어느 시기가 되면 정권을 이양하고 군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장 소령님 정권을 이양할 것이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하십니까?”

그러자 장도현은 유득공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웃으면서 말했다.

“부사님 지금의 조선의 자신들의 가문과 당파만 아는 정치 세력들과 저희들을 같이 놓고 보시면 안 됩니다.”

그러자 속을 들킨 유득공이 얼굴이 벌게지면서 말했다.

“제 말은 너무 아까워서입니다. 장기 집권의 폐단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이렇게 고생해서 개척을 해놓고 정권을 이양하면 권신들이 그것을 기회로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먹어치우면 그동안 고생한 것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한 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들이 백성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성들을 교육시켜 봐야 힘없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부사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는 10년 동안 200만 명을 교육시킬 목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5년 후부터 그들이 조선에 들어가 서서히 주민들을 교육을 시키기 시작한다면 의식이 깨인 주민들이 그들이 수탈하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권신들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는 우리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 그러시면 조선의 정국에 개입을 하시려고요?”

“아닙니다. 우리들은 앞으로 조선의 군부만을 개혁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군부를 장악하면 그때부터는 군이 조선의 백성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조선의 내정은 시간이 걸려도 조선의 백성들 스스로가 바꿔 나가야 합니다. 그게 우리 가온의 방침입니다. 우리는 군을 장악해서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복잡한 군제를 개혁하여 모든 명령을 일원화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되면 힘이 없어진 권신들의 수탈하고 싶어도 백성들이 무서워서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 말만 들어도 속이다 시원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부사님이 관리하시는 청진공단에서 수많은 기계들과 물품들이 쏟아져 나오면 그때부터 천하는 조선의 것입니다.”

“제가 그 일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부사님께서 ‘발해고’라는 책을 쓰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 졸저이기는 하나 몇 년 전(1784)에 썼습니다.”

“오신 김에 날도 좋고 하니 연해주의 발해 유적지를 돌아보고 가시지요?”

“맞습니다, 제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지금이라도 하시면 되죠.”

“지금은 아닙니다. 유적지를 답사를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조정의 녹을 먹는 신하된 입장에서 그 것은 책무를 방기하는 것입니다. 후일 전하께 장계를 올려 윤허를 받고 정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자 장도현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이런… 제가 부사님을 직무 유기를 하게 만들 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내가 융통성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하. 하. 하. 하.”

두 사람은 그러면서 서로를 쳐다보고 크게 웃음을 지었다.

장도현은 그를 대리고 동명시 중심에 있는 총독궁 공사 현장으로 데려갔다.

“엄청나게 큰 건물입니다.”

“예, 앞으로 이곳 연해주를 다스릴 총독궁입니다.”

“총독궁이라뇨? 그럼 앞으로 이곳에 주상 전하께서 묵으시는 곳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있습니까? 아! 건물이 이렇게 큰 것을 보니 위국공 합하께서 오시면 묵으시는 곳이군요.”

“아닙니다.”

그러자 유득공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도현에게 말했다.

“아니, 그럼 무슨 건물이기에 궁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입니까?”

“말 그대로 총독이 사용할 궁입니다.”

“예? 왕족도 아닌 일개 총독이 사용하는 건물에 궁(宮)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는 안 되는 일이지만 앞으로는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어떤 생각을 유추해 낸 유득공이 놀란 얼굴을 하며 장도현에게 물으려고 하자 장도현이 손을 들어 그 말을 막았다.

“저는 부사님을 믿기 때문에 이런 말씀 드린다는 것을 미리 알아주십시오.”

그러자 다음 말이 얼마나 무거운 말인 줄 짐작으로 안 유득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가온은 힘으로만 하면 저 청나라쯤은 하룻밤이면 북경을 완전히 초토화시킬 수 있고 자금성을 당장에라도 잿더미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미 가온의 화력을 알고 있는 유득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면 무엇을 합니까? 다음에는 누가 청국을 다스리죠? 그들에게는 우리가 점령군에 불과할 텐데요. 청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발을 피를 부르며 막아야 할까요? 그렇다고 우리 이 얼마 안 되는 인원으로요?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반란을 잠재우다가 모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고 나면 조선의 백성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요. 조선의 백성들이 청국을 무너뜨려서 좋아만 할까요? 그렇게 되면 조선의 백성에게 우리는 청국과 같은 또 하나의 무서운 점령군일 뿐입니다.”

유득공은 장도현의 말을 경청하면서 그 말에 동조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힘이 들더라도 그것을 조선의 백성들이 하기를 바라고 이렇게 온 힘을 들여 교육을 시키고 기반조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의 자긍심이 살아나서 패배주의에 젖은 민족의 정기를 되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우리는 기다릴 겁니다. 조선의 백성들이 알에서 깨어나 더 높은 곳을 날 수 있을 때까지 우리 민족이 고구려의 기상을 되찾을 그날까지 말입니다.

장도현이 그러면서 고개를 들어 비계가 높게 처진 총독궁을 바라보았다.

유득공은 고개를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있으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6월의 연해주의 하늘은 높고 높았다.

유득공은 하늘을 쳐다보며 그 하늘에 날게 될 조선의 백성들의 날개를 그리고 있었다.

“지금 우리 군대가 사백력으로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사백력이요?”

“예, 이 연해주 너머에 있는 우리 민족의 고토 사백력 말입니다. 가온군은 금년과 내년 동안 사백력의 고토를 전부 수복할 것입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유득공은 장도현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다르게 가온에서는 한 칸 높게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5월부터 제주에서는 조선 백성들의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가을부터라고 들었는데요.”

“주상 전하께서 아무래도 금년에 농사가 어려울 것 같아 위국공 합하께 말씀을 드려 지난 5월부터 실시가 되었습니다.”

“예, 그렇습니까?”

“예,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힘드시더라도 부사님 같은 조선의 개혁적인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당연히 그래야죠.”

장도현은 1개 대대병력을 지금의 하바롭스크로 보내 러시아 전진 기지를 공격하여 점령하고 우리의 전진 기지 건설을 하도록 했다.

하바롭스크는 흑룡강과 오소리강(烏蘇里江)이 만나는 지점에 건설된 도시로 이때는 목책으로 만들어 군대가 파견되어 있는 요새에 불과하였으며, 1858년경에 가서야 도시로 개발을 하게 된다.

본래는 제주도의 병력이 도착을 하면 원정대를 구성하여 출발하려고 하였으나 사백력의 기후를 고려하여 일정을 변경해 6월 1일 먼저 출발을 시켰다.

1791. 6. 10 하바롭스크 흑룡강 연안(沿岸).

김재갑 소령은 5여단 1대대 병력 500명을 이끌고 장갑차 5대와 수송 트럭 5대를 이끌고 하바롭스크 흑룡강 건너편에 도착을 했다.

오전에 흑룡강 하안(河岸)에 도착한 김재갑 소령은 대원들에게 부대 주둔지 확보를 명령하고 쌍안경으로 건너편 하바롭스크 요새를 바라보았다.

요새는 목재로 지어졌지만 지어진 지 상당한 시간을 두고 보강을 했는지 견고한 느낌을 가진 요새였다.

요새 주변으로는 수형 생활을 마치고 현지에 정착한 주민들의 주택으로 보이는 주거지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었고, 상당한 규모로 지어져 있었다.

쌍안경으로 요새를 정찰하던 김재갑 소령이 먼저 정찰조를 투입하여 요새의 상황을 파악시켰다.

정찰조 20명은 고무보트 3척에 나누어 타고 하바롭스크 요새로 다가갔다. 요새는 흑룡강(黑龍江)과 오소리강(烏蘇里江)이 만나는 지점에 요새를 건설되었다.

요새 주변이 개활지로 되어 있고 두면이 강을 접하고 있어 외부에서 공격을 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지형이었다.

투입된 정찰조는 3개조로 나누어 주변 지형지물을 철저히 조사하였으며, 부근에 다른 요새가 있는지도 알아보기 위해 강을 따라 상당한 먼 거리까지 시베리아 서쪽으로 들어갔다. 주변 정찰을 마친 정찰조가 돌아온 것은 저녁 식사 후였다.

정찰조의 보고를 받은 김재갑 소령이 전 중대장을 소집하였다. 중대장들이 모이자 김재갑이 말했다

“정찰조가 침투하여 파악한 바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요새는 흙과 나무로 상당히 견고하게 지어져 있고 포탑도 상당수 보인다고 하니 대포가 있는 게 분명할 것이다. 어차피 저들과 교전을 피할 수 없다면 바로 공격을 했으면 하는데,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이종찬 2중대장이 나서서 말했다.

“이들은 지금 대부분이 유형수들일 겁니다.

러시아는 사형수들과 정치범을 시베리아 개발에 내몰아 이들이 살기 위해서 시베리아 개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들을 설득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주변을 포위를 하고 나서 설득을 해보고 그래도 반항을 하면 그때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일 이들의 도움을 얻는다면 우리가 계획하는 밝달호까지의 수복이나 앞으로 만주에서 있을 청국과의 관계에 이들을 앞세운다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2중대장 이종찬 대위의 말이었다.

“음… 정치적이라 군인이 정치라고 하니 상당히 기분이 묘하다.”

김재갑 소령이 말을 하며 웃자 나머지 중대장들이 덩달아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의견은 없나?”

“저도 이종찬 대위의 말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은 그렇게 시도를 해보시죠?”

그러자 다른 중대장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래, 그러면 이대위 말대로 시행을 하자. 항복해서 넘어오면 다행이고, 그게 아니라면 처음 방식대로 추진한다. 휴식을 취한 후 오늘밤 전원 도강한다. 6월이라고 하지만 밤 날씨가 쌀쌀하니 장병들이 물에 젖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을 쓰기 바란다. 도강은 정찰조가 저녁 식사를 마치는 20:00부터 실시한다.”

김재갑 소령은 각 중대의 도강 위치와 매복지를 지정해 주었다. 김재갑이 중대장들에게 말했다.

“매복지에 도착한 각 중대는 경계근무를 철저히 하면서 그 자리에서 일 박한다. 각 중대장들의 헤드셋은 익일 06:30 미명과 동시에 통신 주파수를 오픈한다. 협상조는 오전 7시 일출과 동시에 이종찬 대위가 통역관을 대동하고 하바롭스크 요새로 간다.”

김재갑 소령은 하바롭스크 주변 지도를 펼쳐놓고 각 중대별 작전 지역을 하달하였다. 5여단 1대대는 저녁을 끝내자마자 도강을 실시했다.

도강은 10여 척의 고무보트와 장갑차가 먼저 실시하였으며 수송 트럭은 전투 종료 후 도강하기로 하고 강을 넘지 않았다.

지금까지 연해주는 대평원에서 여기까지 별다른 산악 지형이 없어 차를 끌고 왔지만 앞으로의 상황을 알 수 없어 무리하여 도강하지 않기로 하였다.

1개 소대 병력을 차량 방어를 위해 남겨놓고 모든 병력이 도강하여 각 중대별 작전 계획별 주둔지로 침투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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