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되는 교역
1791년 3월 31일 제주도 경공업공장(輕工業工場)과 지도군 공장 및 염전.
최성용은 그동안 제주도와 지도군의 공장 및 건설 현황을 점검하였다.
그동안 제주도 지역 공장들이 경공업단지 조성 작업을 거쳐 증설 또는 완성을 보았다.
제주시 공단의 공장은 백열전구 공장, 성냥 공장, 비누 공장, 발화기 공장, 연필 공장, 제지 공장, 구필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전구는 형광등 개발이 되지 않아 우선 백열전구를 생산하였다.
제지 공장은 대정농공단지의 시설을 재조립하여 만들었다. 대정농공단지는 식품공업단지로 조성했다.
대정공단에는 라면 공장, 젓갈 공장을 개조한 스프 공장, 어묵 공장, 생선 진공팩 공장, 전기모터 공장이 확장과 설비 보강을 마치거나 양산을 준비 중이었다.
청진에서 비닐이 공급되고 밀가루만 수급된다면 식품 공장은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준비되었으며 모슬포 통조림 공장은 주석 도금 철판의 공급으로 인하여 대량생산하고 있었다.
현재 제주도와 지도군 일원에 어업이 재개되었고 동력선과 어군 음파탐지기에 의한 조업으로 엄청난 어획고를 올렸다.
잡아 온 생선은 가온에서는 전량 수매하였고 제주도민의 밥상은 물론 조선 내륙에 염장한 생선이 급속도로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남은 생선은 전량 통조림으로 저장됐다.
어묵 공장도 풀가동 중에 있었다. 특히 어묵의 경우 그 새로운 맛으로 제주도 주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어묵이 나오는 날에는 어묵을 더 받기 위해 주민들끼리 싸우기도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지도군의 요업 공장은 아직 골회 자기의 완벽한 배합 비율을 구하지 못하여 계속 연구 중이었고 나머지 판형 도기 및 벽돌 공장은 정상 가동 중이었다.
자은도의 유리 공장은 판형 유리의 양산에 들어갔으며 이미 대궐의 창문들을 먼저 이중창으로 만들어서 전부 교체 중이었다. 추가 생산량은 전량 대형 유리 온실에 투입되었으며, 제주 훈련소 건설이 마무리되면 창문 자재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천일염은 이미 3월부터 본격 생산되었다.
골회 자기 등 몇 가지만 만들어낸다면 일차적인 무역준비는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1791년 4월 1일 10시 제주도 훈련소 제주도민 수료식과 군 입대식.
훈련소 연병장에는 수만 명의 주민들이 좌우로 도열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새로 입영하는 15,000명의 입대 병력이 오와 열을 맞추어 도열해 있었다.
입대 병력들은 지난 4개월의 교육을 받아서인지 이전과는 다르게 질서 정연하게 도열해 있었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오와 열을 맞추어 서 있는 모습이 입대식이 아닌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는 병사들같이 군기가 엄정하였다.
“위국공 합하께서 입장하고 계십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군악대의 축하곡이 울려 퍼졌다. 그 음악을 들으며 위국공 장준하를 비롯한 제주도의 전 지도부가 입장하고 있었다. 이윽고 위국공이 단상에 올라와 자리에 앉자 음악이 그쳤다.
“지금으로부터 제주도민 교육 수료식과 제1기 장병 입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먼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단상에 계신 귀빈께서는 자리에 일어나셔서 군기단의 국기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의례가 시작되었다.
국민의례를 마치고 귀빈들이 자리에 앉자 장준하가 자리에 일어나 축사를 하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그리고 오늘 입대하는 장병 여러분, 우선 축하드립니다. 지난 4개월 동안 힘든 훈련을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이 잘 마쳐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최소한 남들 앞에서 자신의 의사는 당당히 표시할 수 있으실 정도로 교육받으셨습니다.”
장준하는 좌중을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멸시를 당하고 핍박을 받는 이전의 여러분으로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자신의 권리는 자신들이 찾아야 된다고 배웠을 겁니다. 여러분들은 개개인이 소중한 분들입니다. 누구도 여러분들에게 이전과 같은 행동이나 지시를 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 제주도는 주상 전하를 제외한 전 주민들이 모두 평등합니다. 단지 자신의 자리가 있으므로 대우를 받는 것뿐입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도 지금까지 배우신 모든 교육을 생각하셔서 누구에게도 차별받지 않는 당당한 조선의 국민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입대하는 장병 여러분, 여러분들도 교육을 받으셔서 잘 아실 겁니다.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의무입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단 한 사람도 군대를 안 갈 수는 없습니다. 몸이 불편하시거나 어쩔 수 없는 분들은 대체 복무라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제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앞으로 어떠한 일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군은 또 다른 기회의 장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동안 신분 문제로 차별받았다면 이제 그런 억울함은 싹 잊어버리십시오. 군은 계급만이 존재하는 사회입니다. 자신만 적성에 맞는다면 장기 복무로 간부가 되어 국가 공무원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주도는 본토와 다르게 은근히 차별을 당하여 관직에 진출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군은 다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제공됩니다. 열심히 복무하셔서 여러분 중에 여러분 앞에 있는 별을 단 장군들이 나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입대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장준하의 축사가 끝나자 많은 박수가 울려 퍼졌다.
박수 소리는 장준하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울렸으며 그동안의 교육으로 주민들은 이전과는 다르게 절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제주민의 수료식과 입대식은 간단하게 끝났다.
수료식이 끝난 주민들은 각처로 배치가 되었다.
입대한 장병의 경우 지금의 훈련소에서 1개월간 기초 군사훈련 더 받은 후, 육군은 좌도도에 만들어진 육군종합훈련소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기 위해 좌도도로 이동을 할 것이다.
해군의 경우 전원 흑산도로 이동을 하여 광무황제함과 흑산 항에 정박해 있는 이순신함 등에 승선하여 일차적인 전함 교육을 받을 것이다.
장차 영국의 범선이 흑산 항에 입항을 한다면 인원을 나눠 범선 교육을 받은 후 인원을 나누어 현재 가온 함대와 범선 함대 인원으로 나누어 각각 배치하기로 하였다.
15,000명의 병력은 그동안의 교육으로 현대의 훈련 교육과정을 훌륭히 이수하였고 계속하여 의식화 교육도 병행을 하여 실시하고 있었다.
나머지 주민들도 자신들의 배정된 일터로 배치되었으며 주민 교육은 하루 2시간씩 계속하여 실시되었다.
교육받은 주민들 거의 대부분이 문맹에서 벗어났으며 군단 정훈단의 계속된 문화영화 상영으로 이전과는 비교할 수없이 개화되었다.
각지에 배치된 주민들 전원에게 일정한 수준의 일당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조정의 일을 하면서 돈을 받는다는 것이 신기해했다.
이전에 조정이 하는 일은 전부가 부역이었다.
부역은 조선의 세제인 조용조(租庸調) 가운데 백성의 노동력을 징발하는 용(庸)으로 노동력을 징발하거나 노역에 종사하는 대신 포(布) 등의 현물 징수를 하는 제도로 후일 극심한 폐해로 민란의 주원인이 되는 것이 부역이다.
그런데 지금은 일을 시키고 일당을 지급해 주었다.
그것도 한 사람이 일하면 4인 가족은 먹고살 정도의 일당이다. 가온에서도 대체 복무를 하는 사람도 최소한의 곡식을 지급해 주었으며, 부부가 같이 일할 경우에는 집에 조금씩 돈이 모이거나 쌀이 쌓일 정도로 급여 형태의 일당을 지급해 주었다.
그러자 제주도에서는 남은 돈과 물품으로 물물교환을 하기 위한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시작됐다.
1791년 4월 1일 18시 제주도청 광장.
오늘은 그동안 도로 공사와 더프랑스어 진행한 전선 공사를 마치고 전구 공장에서 양산되는 백열전구로 가로등을 설치하고 각 가정에 전기를 보급하였다.
아직까지 제주도 전체 가구에 보급되지는 못하였지만 도로 주변 가로등과 주변 가정부터 보급하기로 하고 오늘 드디어 제주도청에서 점등식을 하였다.
점등식은 김석태 지사의 지휘로 새로 준공한 제주도청 앞 광장에서 하기로 하였다.
재주도청은 3개월의 공사 끝에 준공되었다.
2층의 벽돌 건물로 지은 도청은 전기 시설을 구비하고 조선의 건물과는 다르게 지어졌으나 조선의 건축과 조화되는 설계로 상당히 품격 있게 지어졌다.
도청 앞 광장에는 많은 주민들이 나와 있었고, 계속하여 주민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군단 군악대의 연주가 행사를 빛내주고 있었다.
그동안 보고 들은 것이 있어서인지 주민들 스스로가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도청 앞 광장은 수만은 주민들이 모였다. 군악대의 연주가 잠시 멈추자 사방은 조용해졌고, 날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사회자가 진행을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제주 지역 점등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점등식에 참석하시는 귀빈께서는 점등 단상에 서주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김석태 지사와 귀빈들이 자리를 잡자 사회자가 다시 말을 하였다.
“지금 점등을 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도청의 전 층이 불이 켜졌다.
“와.”
주민들의 환성과 함께 도청 광장 주위의 가로등이 점차 점등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무것도 없었던 제주도에 도청 정면에 도로를 따라 두 줄의 가로등으로 점등되기 시작하였다.
주민들이 환호를 울렸다. 조선의 또 하나의 개혁의 시작이었다. 점등식에 참여하고 가온으로 돌아온 최성용은 장준하의 집무실을 찾았다.
“어서 오게. 점등식은 잘 마쳤는가?”
“예.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그래, 잘되었네. 주민들의 호응이 좋았겠지?”
“환호가 대단했습니다. 그동안 훈련소의 우리 교관들 사무실에는 군용 발전기로 점등해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적응됐을 거라 예상했는데 실제 모든 곳의 불이 들어오니 또 달랐던가 봅니다. 합하께서도 참석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아닐세. 이제 실무 문제는 실무자들이 직접 간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앞으로 가온이 커갈수록 점점 더 이런 행사가 많을 것인데 내가 일일이 참석하는 것은 좋지 않네. 그건 그렇고 지금까지 완성된 사업과 미진한 부분은 어느 것들인가?”
장준하의 말에 최성용은 그동안 취합된 자료를 보며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음, 큰 차질 없이 진행되니 다행이군. 관건은 역시 청진에 있군.”
“그렇습니다. 청진공단이 계획대로만 진행된다고 하여도 기반 시설이 전혀 없는 현실에 비추어 10년 이상의 시간이 있어야 어느 정도의 공장들과 제철소 건설이 가능합니다. 기간이 많이 걸리는 관계로 우선 전기로 건설을 하여 필요한 철을 확보하고 기반이 되는 공작기계와 주변 기기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백기소 박사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이니 어쩔 수 없지. 각 부문별로 단장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진행하게.”
최성용은 장준하의 지시를 메모하며 문제점은 일일이 확인하면서 적어나갔다.
1791년 4월 2일 제주도 훈련소.
“100사로 봐.”
“일어서.”
“200사로 봐.”
“일어서.”
“동작 봐라.”
“아닙니다.”
“앞으로 취침. 기상. 뒤로 취침. 기상.”
“너희들은 교관 후보생으로 뽑힌 놈들이다. 이런 훈련에 힘들어할 것 같으면 아예 일반병으로 돌아가라.”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정신 차리란 말이야. 앞으로 너희들이 가르칠 사람들이 얼마인 줄 아나.”
“시정하겠습니다.”
고진성은 기계적으로 교관의 지시에 몸을 움직였다. 지난 4개월간의 주민 교육 때 받은 기초 체력 훈련과 그동안의 규칙적인 식사로 기초 체력이 향상되어 힘든 훈련도 큰 무리 없이 소화하였다.
집안이 어려워 어렸을 때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가다 가온군을 만난 고진성은 가온군에게 훈련받으며 지금까지 자신이 하던 모든 생각을 바꾸었다.
이들은 전 주민을 대상으로 훈련소라는 것을 만들어 이전에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교육과 훈련을 시켰다.
처음에는 반나절 교육을 시키고 점심이라는 것을 주다가,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니 하루 세 끼 처음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고진성은 나이 스물이 넘어도 집안이 가난하여 결혼도 못하였다. 지금 자신은 1,000명의 교관 후보생에 선출되어 다른 군 입대자 보다 훨씬 더 가혹한 훈련을 받고 있었지만 몸은 힘들어도 고진성은 지금의 현실이 너무 좋았다.
비록 양반이기는 하였지만 집안이 몰락하여 상민보다 더 빈곤하여 과거는 물론 제주 자제도 될 수 없었던 지난날에 비해 지금은 원하던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고진성은 교관이 가르치는 것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하였고 그동안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한 한을 원 없이 풀었다.
자신이 한글 등 주민 교육에 뛰어난 성적을 보이자 자신을 가르치던 친위군 교관이 특별히 자신을 지목하여 이번 교관 후보생 교육에 선발해 주었다.
이 교육을 수료하고 나면 앞으로 올 본토 백성들 교육의 교관이 되고, 더 나아가 나만 열심히 한다면 군의 고급 간부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고진성은 힘든 줄 모르고 훈련을 받았다. 가온에서도 그동안 교육 중 뛰어난 성적을 보이는 사람들을 선별하고 있었다.
그중 특출 나게 우수한 100명은 이미 국정원 교육을 위해 울릉도로 보내졌다. 가온에서는 1,000명의 교관들을 교육시켜 부사관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가온의 모든 병사들은 전원 사관 교육 후 임관을 시키려고 교육 중에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부사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고진성은 어제부터 훈련소에 입소하여 받는 훈련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 생각되어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자신과 같이 훈련받는 1,000명의 교관 후보자들도 대부분도 같은 생각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같은 시간 북한산성에서도 용호영군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군 간부 교육이 시행되었다. 3개월 예정으로 실시되는 훈련은 이들을 완전히 개조시킬 계획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벌써 10여 명이 낙오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가면 돌아오는 후환 때문에 한사코 돌아가기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낙오자들을 위한 특별 교육을 실시하기로 하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용호영 군관들은 그래도 조선의 군관이라는 자부심 때문인지 실시하고 있는 특수 훈련을 잘 따라오고 있었다.
1791년 4월 5일 광저우 별무사 상관(商館).
한 무리의 청국 관리들이 상관으로 들어섰다.
“어서들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경식 관장의 환대에 송지청은 포권으로 답했다.
“자,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송지청을 안으로 안내를 하자 또한 무리의 청국 사람들이 상관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어디서 오셨는지요.”
“예, 우리는 광둥십상행(廣東十三行)의 상인들입니다.”
그러면서 청국 상인은 초대장을 내밀었다.
“그렇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이경식 관장은 오늘 광저우의 상인 및 외교관들을 초청하였다. 청국에서는 월해관의 관리 송지청이 관리들과 같이 왔으며, 광둥십상행의 행상 대표들이 총상과 함께 왔다.
서양에서는 영국 공사대리와 영국의 동인도회사, 프랑스의 공사대리와 상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그리고 포르투갈과 스페인 상인 등 광저우에 있는 모든 유럽인들을 초청하였다.
안휘상인의 대저택을 약간의 손을 보고 대문위에 ‘가온무역’이라는 현판을 내걸었다.
안상의 대저택은 안에 상업을 하기 위한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고 내부 살림 공간과 외부 접객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대대적인 청소와 약간의 손질 외에는 특별히 손을 볼 필요가 없어 오늘 개관식을 하였다.
30여 명의 각국 상인들과 10여 명의 청국 관리들이 상관을 개관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에 참석하였다.
“조선은 청국의 속국으로 아는데 이렇게 대대적으로 상관을 열다니 의외입니다.”
영국 동인도회사 광저우 지점장 로버트 해리스가 영국 공사대리 니콜라스 홀트를 보며 말했다.
“그러네. 이들이 파티를 준비한 것을 보니 상당히 준비를 한 것 같군. 세팅되어 있는 음식과 준비된 주류 등을 보니 세련되어 보이네.”
앙리 드 툴루즈 프랑스 공사대리가 말했다.
“그리고 유리그릇과 도자기를 보십시오. 상당히 세련되고 격조 있어 보입니다.”
홀에는 은은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연회를 위해 영국 동인도회사에 부탁하여 광저우에 와 있던 영국 연주단을 초빙하였으며 격식을 갖춘 개관 행사는 성대히 진행되고 있었다. 광저우에서는 이렇게 격조 있는 연회가 거의 없었다.
아직까지 광저우에는 서양 조차지가 없어서 상인들이 가족을 동반하는 예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1769년 동인도회사 해산된 이후 아직까지 재결성되지 않아 공사대리가 교역을 대표하고 있었다. 광저우에서는 보기 드문 연회를 주재하면서 이경식과 김영석 과장, 이영달 과장은 각자 자신들이 맡고 있는 중국과 유럽의 인사들과 상견례를 하였다.
초저녁에 시작된 행사는 밤늦도록 진행되었고 조선의 개관 행사는 성황리에 끝이 났고 가온무역은 광저우에서 인상 깊은 파티로 자리를 잡았다.
행사가 끝이 나고 숙소로 돌아온 중국과장 이영달은 중국 관리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 귀에 익은 이름을 들었다. 이영달 과장은 혹시나 하여 파티가 끝난 후 자신의 방에서 가온에서 가져온 서류를 뒤져보았다.
한참을 뒤지던 이영달은 그 이름을 찾아냈다.
“여기 있었군.”
그 이름은 송지청으로 백련교도의 명단에서 백련교 교두였던 유송의 고제자로 등재되어 있었다.
“백련교를 이끌던 유송의 처형 이후 상당수의 백련교도들이 처형을 당했는데 송지청이 여기에 숨어 있었다니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교묘하게 위장해 있군.”
이영달 과장은 오늘 온 송지청이 동명이인일 수도 있어서 당분간은 예의주시하기만 했다.
1791년 4월 7일 광저우 영국 공사관.
니콜라스 홀트 공사대리가 개관 행사 후 이틀이 지나서 이경식 상관장을 초청하였다.
초청의 형식이지만 교역을 위한 준비 모임의 성격을 띄우고 있다는 것을 이경식 관장은 알고 있었다.
이경식 관장은 미리 부하 직원을 시켜 교역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였다. 이경식은 유럽과장 김영식과 2명 직원을 대동하고 영국공사관으로 향하였다.
청국과는 별무사 별좌로 인사를 하였지만 대외적으로는 가온무역 광저우 상관장의 신분을 유지하기로 청국과 사전 협의가 있었다. 아직 청국도 조선이 서양과 의 교역에 있어 광저우에서 조선조정이 직접 나서서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들었기 때문에 대외적인 가온무역 상관장이라는 직책을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민간인의 신분이 문제해결이 쉬웠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상관장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리공사 각하.”
이경식이 세련된 매너와 양복복장에 니콜라스 홀트 영국 대리공사는 감탄을 하였다.
자신이 광저우에 온 10년 동안 양복을 입고 머리를 자른 동양인은 한 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정통 영국식 영어와는 조금 억양이 다르지만 대화가 가능한 영어가 나오는 것을 보고도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이경식이 보기에는 정통 영국식 복장을 한 영국 대리공사는 그 나름대로 기품이 있어 보였다.
이 당시 서양의 양복은 머리 위로 높게 솟은 모자를 쓴 형식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경식을 비롯한 조선 사람들도 그 정도 높이는 아니지만 적당한 높이의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19세기 복식에는 모든 나라들 대부분이 모자를 착용하였다. 이윽고 홀트 영국 대리공사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소개를 하였다.
모두 지난 개관식 행사로 인하여 안면이 있었다.
그곳에는 프랑스 대리공사와 영국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지점장들이 모여 있었다. 각자에게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자 홀트 대리공사가 모두를 대표하여 말하였다.
“조선은 청국의 속방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타국과 직접 교역해도 됩니까?”
“예, 그건 청국과의 외교상 관례일 뿐이고 우리 조선은 자주국으로서 타국과의 교역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 알기로는 150여 년 전 청국에 점령당하여 청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잘못 알았나?”
옆에 앉아 있던 프랑스 대리공사 앙리 드 툴루즈가 프랑스어로 독백을 하였다. 그러자 이경식의 옆에 있던 국정원 프랑스 담당 직원이 프랑스어로 말했다.
“그건 공사께서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조선은 청국과 전쟁을 하였지만 휴전을 한 후 외교상 조공국으로 남은 것이지 청국의 식민지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국정원 프랑스 담당관 임철순이 프랑스어로 정확히 답변을 하자 앞에 있던 네 명의 유럽인이 깜짝 놀랐다. 자신들은 모두 프랑스어를 알고 있었고 툴루즈 대리공사가 독백한 프랑스어는 자신들만 알아듣는 줄 알고 있었다.
내심 자신들도 조선이 청국의 식민지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아니, 임철순 담당관이 툴루즈 대리공사의 말을 반박하는 프랑스어 실력에 놀랐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프랑스어는 유럽인들도 정확한 언어 구사가 힘든 언어인데 동양인이 프랑스어를 구사한다는 것이 상당히 경이한 일이었다. 툴루즈 대리공사는 바로 사과를 하였다.
“미안합니다. 귀국을 낮추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정식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런데 우리 프랑스어에 상당히 능통하십니다.”
툴루즈의 사과의 말에 임철순이 답변을 했다.
“예, 우연히 배울 기회가 있어서 익혔습니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툴루즈 대리공사는 임철순이 프랑스어를 한다는데 기분이 좋아 프랑스어를 주제로 몇 마디 대화가 오갔다. 잠시 대화를 마친 뒤 영국의 홀트 대리공사가 말했다.
“귀국이 서양의 제국들과 교역을 원하는데 그럼 우리들과 국교를 개설하겠다는 것입니까?”
“지금은 조선의 내부 사정으로 인하여 개국은 당장 곤란합니다. 조선의 개국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개방을 하려고 합니다.”
“예, 귀국의 사정이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지요 일본도 200여 년 전부터 나가사키만을 개방하고 네덜란드인의 통교만을 허락하는 상태이니 조선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겠지요.”
홀트 대리공사의 말에 이경식 상관장이 말했다.
“우리 조선은 10년 이내 전면 개국을 하려 합니다. 저희 주상 전하께서도 이를 서양 각국에 미리 알려 양해를 구하시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아국 주상 전하를 대리하여 위국공 합하의 대외 문서입니다. 위국공 합하께서는 주상 전하를 대리하여 각국과의 교섭과 협상 일체를 위임받으신 분입니다.”
이경식이 이번 초대의 성격상 이들 3개국이 같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준비해 온 위국공의 외교문서를 전하였다. 그 문서는 한글과 영어와 각국의 말로 쓰인 공식 문서였다.
“이 글이 무슨 글이지요?”
“아, 그건 저희 조선의 고유문자인 정음입니다.”
“그렇습니까? 조선에도 고유의 문자가 있었습니까?”
네덜란드 동인도 상관장인 렌 아트 베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조선은 이미 기원전 2181년에 가림토 정음 38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1446년에 다시 정리 반포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글이 오래된 문자라는데 놀라고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도 자신의 문자가 있다는데도 놀랐다.
다시 홀트 대리공사가 이경식 관장을 보고 물었다.
“그럼 국교 수립은 후일 거론하기로 하고 조선은 우리 유럽과 무엇을 교역하고 싶은 겁니까?”
이경식은 그 말이 끝나자 대동한 직원을 시켜 준비해간 물품을 탁자 위에 꺼내놓게 하였다.
연필, 구필, 성냥, 비누, 발화기, 홍삼이었다.
직원이 그 물품을 꺼내놓는 것을 보고 이경식이 말했다.
“우선 몇 가지 물품만을 가져왔습니다. 앞으로 계속 물품이 늘어날 겁니다.”
이들은 앞에 놓인 물품을 보았다. 홀트 공사를 비롯한 각국의 동인도회사 지점장들은 앞에 놓인 상품의 대부분이 처음 보는 상품들이었다.
“이것이 동양의 만병통치 영약이라고 하는 홍삼이라는 것은 알 것 같은데 나머지는 무엇입니까?”
영국 동인도회사 지점장 해리스가 말했다. 이경식은 홀트 공사를 보며 말했다.
“먼저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이경식이 말을 하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대리공사에게 문서를 전했다.
그 문서는 특허 신청서였다.
“이것은 특허 신청서가 아닙니까?”
홀트 대리공사의 말에 이경식이 대답하였다.
유럽은 이미 특허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영국은 1623년부터 특허가 정립되었고 프랑스는 1762년부터 특허 제도를 시행하였다.
“그렇습니다. 특허 신청서입니다. 저희 가온무역은 이번 교역 전에 우리 제품의 특허 신청서를 미리 각국에 제출하여 특허권을 획득하고자 합니다. 대리공사님들께서는 각국을 대표하시니 이 특허 신청서의 접수가 가능하리라 판단됩니다.”
“예, 맞습니다. 특허 신청서 접수가 가능합니다.”
프랑스의 툴루즈 대리공사가 말했다. 그 말에 영국 대리공사도 수긍의 말을 했다.
“그럼 두 분 공사님께서 접수 확인서에 서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영국과 프랑스 대리공사는 이경식의 접수 확인서에 서명을 하여주었다. 특허는 연필과 구필, 성냥, 그리고 발화기에 대한 특허 신청이었다.
근대적인 연필은 1795년 프랑스에서, 성냥은 1827년 영국에서, 발화기는 1906년 오스트리아에서 발명된 제품이어서 특허 신청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경식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광저우 지점장에게도 서류를 주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교역 특허 회사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동인도회사에 서류를 접수하면 특허 인정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예, 제가 자바의 바타비아 총독 각하께 접수하겠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지점장은 다른 공사들과 마찬가지로 접수 확인서에 날인해 주었고 가온은 이후 미국과 유럽의 각 나라의 특허도 전부 획득했다.
가온무역은 이 특허제도를 잘 활용하여 거의 모든 제품의 특허권을 취득했고, 수십 년간의 특허 보유로 전 세계에 독점 공급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특허 신청을 마친 이경식 상관장은 앞에 있는 물품을 하나씩 설명해 주었다.
먼저 성냥이었다.
“이것은 성냥이라는 물건입니다.”
모여 있는 유럽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성냥을 바라봤다.
“딱. 화악.”
“아니, 저게 뭐야. 나무에 불이 바로 붙다니.”
성미 급한 프랑스의 툴루즈 대리공사가 화들짝 놀라며 성냥을 바라봤다.
이경식 관장이 가져온 것은 딱성냥으로 4명의 유럽인들 앞에 놓았다.
그러자 서둘러 성냥을 들고 몇 번을 켜보던 사람들이 감탄을 했다.
“이 정도로 불을 켜는 게 쉽다면 판로는 걱정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뭐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대단합니다.”
유럽의 동인도회사 지점장과 대리공사들은 성냥을 보면서 감탄을 거듭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이경식이 발화기를 들었다.
“이것을 한번 보시죠?”
영국 동인도회사 해리스 지점장이 물었다.
“발화기라고 하는데 발화기가 무슨 말입니까?”
“보시면 압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만져보았다.
“은을 아름답게 조각한 것을 보니 액세서리입니까?”
“한번 맞춰보시죠.”
웃으면서 제안하는 이경식의 말에 궁금해했으나 액세서리 외에는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이경식이 발화기를 들고 불을 켰다.
“화악.”
“이야, 이게 뭐야”
역시 툴루즈가 먼저 감탄을 표시했고 이번에는 영국의 홀트 공사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발화기의 불은 아무리 지나도 꺼지지 않자 모든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착.”
뚜껑을 닫자 불이 꺼졌고 그것을 건네주자 유럽 사람들은 체면도 나이도 잊은 서로 먼저 경험해 보려고 하였다.
잠시 그들이 하는 양을 쳐다보던 이경식이 말했다.
“앞에 있는 것은 서민용으로 보시면 되고 이 발화기는 고급품으로 각국의 왕실과 귀족들에게 판매를 하시면 될 것입니다.”
로버트 해리스 영국 동인도회사 지점장이 물었다.
“이경식 관장님, 발화기가 무슨 뜻입니까?”
“발화기는 불을 만드는 기계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까? 발화기라 발하기라.”
영어의 발음으로 발화기 발음이 어려웠는지 해리스 지점장은 몇 번을 되뇌었다.
나머지 제품인 홍삼은 이들이 동양에서 나는 신비의 영약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었고, 연필과 구필 또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비누는 역시 이들에게 아직까지는 별로였던지 무덤덤했다.
이경식 관장은 영국과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제품 주문을 받았고 주문받은 양이 많아서 공급은 6월말부터 순차적으로 공급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