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방어 작전(2)
1791년 2월 20일 호주 서해안 유럽 호주항로 손원일함.
손원일함장 최정호 중령은 1개월이 넘는 유럽 호주항로 감시에 서서히 지겨워졌다
오늘도 지겨움을 이기기 위해 잠수함을 해상에 부상시켜 놓고 자신은 낚시를 하고 있었고 병사들은 공에 줄을 묶어 잠수함 선상에서 족구를 하고 있었다.
견시수를 두어 쌍안경으로 해상을 관측하고 있었지만 함 내 레이더가 먼저 함정을 발견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에 레이더에 관측되지 않는 배를 확인하려는 시각적인 관측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 넓은 망망대해에 레이더에 관측되지 않을 작은 배 들이 떠다닌다는 것은 난파선에서 내려진 보트가 아닌 경우 외에는 불가능했다.
최정호 함장은 오늘따라 고기가 한 마리도 낚이지 않아 낚싯대를 슬슬 거두려고 하는데 레이더를 관측하던 부사관에게서 연락이 왔다.
급히 족구를 하던 병사들을 내려 보내고 자신도 내려와서 통신사관 정성철 상사에게 물었다.
“정 상사, 뭐가 보이나?”
“지금 300㎞ 전방에 레이더에 잡힌 물체가 있습니다. 반사파로 봐서 10여 척의 목선으로 추정됩니다.”
“그래? 그렇다면 첫 번째 손님이겠구먼. 효종함과 교신 준비해라.”
잠시 후 효종함에 연결이 되었다.
“최정호 중령입니다.”
“그래, 최 함장. 수고 많다. 무슨 일인가?”
“손님이 온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도 확인했다. 목선이라 그런지 거리가 멀어 명확히 보이지 않아 잠시 추적 중이었다. 그쪽에서도 발견한 것을 보니 확실한가 보구나. 최 함장, 조금 기다려라. 잠시 후 헬기작전 반경에 들어오면 헬기를 띄워서 정확히 확인하겠다.”
“예, 우리도 근접 잠수하겠습니다.”
“그래, 잠시 후 교신하자.”
이지스 구축함 효종의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반경 1,000㎞로 600개 물체를 동시 탐지 가능한 최신형이었으나 관측거리 정도로 떨어진 거리에 있는 목선이어서인지 확실히 탐지되지는 않았다.
효종함은 30노트(48㎞)로 전속 항진하여 500㎞까지 접근하자 목표물이 분명히 보였다.
통신사관이 김기철 함장에게 보고를 했다.
“목표물이 확인됐습니다.”
“그래? 어떤가.”
“10척입니다. 반사파로 봐서 1,500톤급입니다.”
“지금 시대 1,500톤급 배는 범선이 분명하겠군.”
“맞습니다. 범선이 분명합니다.”
레이더에 탐지된 물체는 대형범선으로 추정되었다.
이지스구축함 효종함장 김기철 대령은 목표물에 200㎞까지 함정을 접근시켜 헬기를 띄웠다.
잠시 후 헬기 기장으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목표물 확인했습니다.”
“확인 결과 보고해라.”
“영국범선입니다. 마스트에 유니언잭이 걸려 있습니다. 아마 이번에 새로 오는 정착민인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작전을 개시하여야 되겠군. 통신장교. 손원일함 최정호 중령을 불러라.”
김기철 함장의 명령으로 손원일 잠함을 호출하자 부근까지 따라온 손원일함과 바로 연결이 되었다.
“최 중령, 계획된 작전 시행한다. 지금시간이 16시 45분이니까 일몰 후 1시간이 지난 21시 정각에 시행한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이때 영국에서는 3차에 걸친 죄수들의 수송이 큰 어려움 없이 이루어지자 이번 항해만 무사히 마친다면 본격적으로 영국 내 정치범을 비롯한 죄수들을 대대적으로 수송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항해에 죄수 3,000명과 내륙 탐험에 필요한 탐험대원 100명과 항구 건설을 하기 위한 기능공들 500명과 벽돌공 200명 등, 총 1,000명의 기술자들과 선원 1,000명 등 총 5,000명을 10척의 범선에 나누어 타고 포트 잭슨(시드니)으로 향하고 있었다.
영국과 호주 항로는 영국에서 아프리카 연안을 끼고 항해를 하고 내려와 케이프타운에서 재보급을 받고 희망봉을 돌아 직선코스로 인도양을 관통해서 남극 대륙과 호주 대륙 사이를 지나 태즈메이니아와 호주 대륙 사이 해협을 돌아 시드니로 가는 항로가 제임스 쿡이 발견한 최단거리 항로였다.
가온함대에서는 이것을 알고 그들이 오는 항로를 중점적으로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잠수함이 앞에 있고 효종함이 뒤를 받치는 반경 1,000㎞를 감시하는 구조라서 배가 난파되지 않으면 호주로 가는 모든 배가 100퍼센트 걸리게 되어 있었다.
1791년 2월 20일 21시 호주 서해안 유럽 호주항로 영국함대.
“21시 정각이다. 작전 시작하라.”
김기철 대령의 명령으로 21시부터 좌도도와 같은 ‘유령작전’이 시행되었다.
김기철의 명령과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헬기가 띄워졌으며, 헬기는 수십 ㎞를 날아 영국함대 위로 다가서자 작전대로 음향을 최대한 크게 틀었다.
타타타타타!
“꺄아아아악!”
“이히히히…….”
망망대해에 조용하던 바다에서 헬기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괴조의 울음소리와 사이사이 소름 끼칠 정도의 귀신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10여 척의 범선을 휘감았다.
“저게 뭐야?”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보니 새인가본데 어떻게 저런 무서운 소리를 내지?”
“으악! 악룡인가봐!”
밤이라 속력을 줄이기 위해 돛을 반 정도 접어 속도를 줄인 범선들이 파도의 너울에 울렁거리며 떠 있고, 그 사이로 헬기가 엄청나게 밝은 불을 밝히고 헤집고 날아다니자 배에 탄 5,000여 명의 인원이 좌도도(佐渡島)의 주민보다 더한 공포에 떨었다.
이곳은 사방을 둘러봐야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다.
이들이 가고자 하는 가장 가까운 호주까지 가려 해도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영국함대는 오는 동안 순풍을 받았고 큰 폭풍우도 없는 항해를 해서 예정보다 보름 이상은 단축할 것 같은 항해였는데 목적지를 1개월여를 놔두고 악룡이 배 주변을 날아다니는 변괴가 발행한 것이다.
모든 함대의 인원들이 선상으로 올라와 하늘을 날고 있는 악룡을 쳐다보았고 함대를 헤집고 날아다니던 악룡은 그 하얀 눈빛을 함대의 선상을 샅샅이 비춰가면서 수색을 했다. 마침내 주변 사람과는 다르게 영국군 제독 복장을 한 함대 사령관을 찾아냈다.
“찾았다. 좌측 세 번째 함이 기함이다. 함명이 엘리자베스다.”
헬기에 타고 있던 수색조는 영국함대의 함대 지휘관을 찾던 중 엘리자베스호에 타고 있던 사람의 제복이 영국 제독의 정복인 것을 확인하고는 무선으로 침투조에게 알려줬다.
바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침투조는 수색조의 교신을 받자 바다 속에서 몸을 움직여 헬기 때문에 정신이 없는 엘리자베스호의 함상으로 아무도 모르게 올라갔다.
신속하고 은밀히 배의 갑판에 오른 침투조는 제독으로 생각되는 자의 뒤쪽 주변에 특수 장치를 설치하고는 소리 없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침투조들은 그사이 여러 척의 배 옆면에 장비를 부착시켰다.
침투조가 작업을 하는 동안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하늘에 떠 있는 헬기는 계속하여 제독의 눈 정면으로 엄청나게 밝은 서치라이트를 비추었고, 음향장치에서는 괴조의 음이 더 크게 들려왔다.
영국함대 사령관 윌리엄 매킨리 제독은 엄청나게 눈부신 눈빛을 쏘아대면서 하늘을 날고 있는 괴조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 방도를 모르고 서 있기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을 비추던 괴조가 눈빛을 거두고 다른 곳을 바라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모두 정신 차려라! 저 괴조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괴조가 굉음만을 내며 하늘에 머물기만 하자 매킨리 선장은 괴조가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소리를 질러 주변의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잠시 후 괴조가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않고 돌아가자 매킨리 제독은 서둘러 약간의 경계병만을 갑판 위에 남겨놓고 함장실로 들어갔다.
매킨리 제독은 지난 4개월여의 항해 동안 별다른 어려움 없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지금 악룡이 나타나 한바탕 함대를 휘젓고 가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동안 선원들 사이에 퍼져 있는 악룡에 대한 얘기가 전설인 줄만 알았는데 오늘 직접 목격한 것이다.
항해를 떠나오기 전 출항 보고를 위해 버킹엄궁전에 들러 조지 3세(George III)를 알현하였을 때, 국왕은 그에게 지금 영국에 정치범을 비롯하여 죄수들이 넘쳐나니 호주에 정착촌을 빨리 개발하여 죄수들을 모두 호주로 보내겠다는 말을 듣고 항해를 나섰다.
국왕은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정적들을 죄수로 만들어 호주로 유형을 보내기를 원하고 있었고 이 시기 조지 3세는 왕권의 회복을 꾀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지 3세는 왕실 비용을 줄인 돈으로 의회 의원을 매수하여 어용당을 만들었고, 이를 조종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국정의 지도력을 강화해 나갔다.
그러나 조지 3세의 왕권 강화 노력은 미국의 독립이라는 뼈아픈 실패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국왕의 정책을 반대하는 많은 정적들이 나타나서 조지 3세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항해가 성공하면 조지 3세는 자신을 반대하는 정적들을 무더기로 정치범으로 만들어 호주로 유형을 보낼 계획을 갖고 있었다.
매킨리 제독은 이번 항해가 영국에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항해이며 이번 항해만 무사히 마치고 나면 자신에게 귀족작위(貴族爵位)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항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확실하게 준비를 하였고, 항해 중에 일어나는 작은 문제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직접 처리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어려운 항해는 다 마치고 이제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일만 남아 한결 여유가 있었는데, 갑자기 불길한 악룡이 나타나 수십 분간 온 함대를 휘젓고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것이 이번으로 끝이 나면 다행이지만 만일 악룡(惡龍)이 또 나타나 자신의 수송함대에 나쁜 짓을 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울적해졌다.
매킨리 제독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무슨 일인가 하여 황급히 선장실을 나선 제독은 그만 문 앞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그가 타고 있는 엘리자베스호의 돛이 있는 곳에는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거대한 형상이 떠 있었다.
우르릉!
그 형상이 입을 벌리자 자신이 탄 배가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울림이 울렸다.
화들짝 놀란 매킨리 제독은 자신도 모르게 문 앞에 있는 기둥을 붙잡았다.
우르릉!
한 번 더 배를 울릴 정도의 커다란 소리가 들리자 이번에는 옆에 그림자 같이 서 있던 매킨리 제독의 전속부관 웨슬리 중령이 입을 열었다.
“제독님, 저것은 포세이돈 아닙니까?”
그랬다. 앞에 있는 모습은 그들이 말로만 들어오던 포세이돈의 형상이었다.
형상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으로 청동의 발굽과 황금의 갈기가 있는 명마(名馬)들이 끄는 전차(戰車)를 타고 있었고, 그리스인의 복장을 하고 그의 상징과도 같은 삼지창(三枝槍)을 들고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휘날리는 모습을 하고 함대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커서 포세이돈 형상은 모든 함대의 마스트 위에까지 높게 솟아 있었다.
매킨리 제독은 기가 막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신화라고 생각하던 포세이돈이 하늘 높이 솟아 자신을 굽어보는 모습은 모든 생각을 멈추게 하였다.
눈에 불을 뿜고 있던 포세이돈은 고개를 돌리다 매킨리가 서 있는 쪽에 눈을 멈추었고 제독은 눈이 마주친 순간 한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포세이돈은 매킨리를 한참을 보았다. 매킨리 제독은 포세이돈의 눈에서 나오는 시뻘건 불빛의 이글거림에 점점 몸이 굳어 왔다.
이윽고 포세이돈에서 말이 들렸다.
그 소리는 너무 커서 모든 함선에 전부 들릴 정도였으며, 함대의 모든 승무원들은 이미 전부가 갑판에 올라와 있었다.
포세이돈이 온 세상을 울리며 소리쳤다.
“돌아가라. 너희들이 가려는 곳은 악마의 땅이다. 마지막 경고다. 돌아가라.”
그리고 포세이돈에 바다 쪽을 가리켰다.
꽝!
갑자기 바다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수십 m의 물기둥이 치솟았다. 엘리자베스호에도 물벼락이 온 갑판에 퍼부어졌다.
한참을 공포로 함대를 몰아가던 포세이돈이 함대를 휘둘러보더니 말했다.
“마지막 경고다. 돌아가라. 계속 가면 다음에는 너희들이 진짜 죽는다.”
포세이돈은 큰 소리와 함께 잔상을 흐리며 사라졌다.
포세이돈이 사라지고 주위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져도 함대의 어느 누구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엄청난 공포감에 온 함대가 짓눌려 버렸다.
바다에서 전해오는 미신과 금기(禁忌)에 유독이 강한 믿음을 가진 뱃사람들은 조금 전의 그 광경은 공포를 넘어 거의 공황 수준이었다.
1790년대의 바다란 기존의 해도를 갖고 노련한 선원의 측량기술과 바다의 날씨에 몸을 맡겨 항해를 하는 것이 대부분으로 일기예보도 없던 시절이었다.
대양의 항해도 원해가 아닌 해안을 따라 항해가 주로 행해졌으며 부득이 먼 바다를 운항하는 경우에는 이전의 누군가가 개척한 항로를 주로 이용하여 항해를 할 정도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일이 어려운 시기였다.
공황과 같은 시간이 흐르자 정신을 차린 함대 지휘관들이 선원들을 밑으로 내려 보냈다. 각함의 함장들도 함장실로 들어갔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매킨리 제독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거듭된 불길한 일로 인해 포세이돈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무시하고 계속 항해를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만약 돌아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인생은 그것으로 그냥 끝이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배를 전진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매킨리 제독은 눈을 감고 잠이 들 수 있도록 애를 썼다. 몸을 뒤척이다가 어느덧 잠이 막 들려고 할 때 어디선가 흐느끼는 듯 음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히히히히…….”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매킨리 제독이 전속부관을 찾았다.
“웨슬리, 이봐, 웨슬리 중령 어디에 있나?”
제독의 호출에 옆방의 웨슬리 중령이 옷도 다 차려입지 못하고 허둥거리며 뛰어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그래, 웨슬리 중령. 무슨 소리 듣지 못했나?”
“아니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아니야, 방금 흐느끼는 음산한 소리가 들렸어.”
“저는 아직 잠이 들기 전인데 제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잘못 들었나?”
매킨리 제독은 귀를 기울여 조금 전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네? 내가 잘못 들었나?’
그렇게 생각한 제독은 웨슬리 중령에게 사과를 하고 돌아가 쉬라고 하였다.
“미안하네. 내가 신경이 예민해졌나 보네. 그만 돌아가 쉬게.”
“아닙니다, 제독님. 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웨슬리 중령이 나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매킨리 제독은 자리에 누울 수 없었다.
그는 테이블에 있는 위스키를 마셨다. 술기운이 목젖을 타고 온몸으로 흘렀고 거푸 석 잔을 들이켜자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제독은 독백을 하였다.
“천하의 무서울 것이 없는 윌리엄 매킨리가 이게 무슨 꼴인가. 귀신의 환청까지 듣고.”
그의 독백을 들은 손원일함에 타고 있었던 특수효과반의 이진수 중위가 말했다.
“저 함대 제독의 이름이 매킨리로군. 잘 되었다. 앞으로 특수효과가 더 효과가 발휘되겠구나. 오늘은 이만 하자.”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1791년 2월 21일 8시 호주(濠洲) 서해안 영국수송함대(英國輸送艦隊).
어젯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운 매킨리 제독은 함대의 전 함장과 조찬을 겸한 회의를 하기로 했다.
10명의 함장과 매킨리 제독 그리고 각 함장의 전속부관들이 제독의 방에 모두 모였다.
매킨리 제독의 전용 식당 식탁에 앉는 함장들과 부관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전 같으면 자리에 앉아서 많은 말들을 했는데 오늘은 어젯밤의 일을 겪고 나서인지 모두 입들이 무거워졌다. 매킨리 제독은 옆에 있던 로즈마리호의 함장 윌슨 대령을 보며 말했다.
“윌슨 대령, 어젯밤의 일을 어찌 생각하는가?”
로즈마리호의 선장 윌슨 대령이 말했다
“제독님, 사실 어젯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여기 함장들과 부관들 대부분이 저와 같을 겁니다. 저희들 뱃사람들이야 거친 파도와 평생을 같이 산 사람들인데 무엇이 겁이 나겠습니까.”
윌슨 대령의 이야기에 모두가 수긍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제 일은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국왕의 명령만 아니라면 당장 돌아가고 싶습니다. 꿈을 꾼 것도 아니고 두 눈으로 생생히 본 것을 착각이라 할 수도 없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독님의 어떠한 결정이라도 따르겠습니다.”
매킨리 제독이 윌슨 대령의 말을 듣고 나머지 선장들을 바라보자 모두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윌슨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만큼 어제의 일들이 이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다. 식탁 위에 놓인 따듯한 음식은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 점점 식어만 갔다.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해 매킨리 제독은 일부러 활달한 목소리로 참석자들에게 잔을 들어 식사를 권했다.
“자, 우선 식사부터 합시다.”
제독의 제의에도 참석자들은 앞에 놓인 포도주잔을 잠시 들어 응하고 입을 조금 축였을 뿐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매킨리 제독이 마음을 굳힌 듯 함장들을 보고 말했다.
“이제 항해가 길어야 한 달 정도 남았네. 그 시간만 지나면 목적지 포트 잭슨에 도착하네. 어쩌겠는가. 계속항해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매킨리 제독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어디선가 섬뜩한 귀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히히히히…….”
모두 놀라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졌다. 밤도 아니고 아침에 귀신의 소리가 들리다니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가나는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한 번 더 귀신의 웃음소리가 들렸으며 그 웃음소리는 선실 밖에서 들려왔다.
오찬 참석자 모두가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갔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귀신은 없었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일행들이 다시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저주’라는 말이 맴돌았다.
매킨리는 어젯밤에 자신이 들었던 귀신의 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어제의 그 소리가 환청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모두들 귀신, 악마, 저주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도 두려웠다.
한두 명이 들은 것도 아니고 참석한 모든 사람이 들은 귀신의 웃음소리에 모두들 말을 조심스럽게 했다.
그래도 함대를 이끌고 있기에 매킨리 제독이 먼저 말을 꺼냈다.
“후, 벌써 백 수십 차례 항해를 해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오.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솔직히 불안하기도 하오.”
그러자 웨슬리 중령이 말했다.
“혹 어젯밤도 이것 때문에 저를 부르신 겁니까?”
“그렇다네. 어제는 그 뒤로 소리가 들리지 않아 착각이었나 생각했는데 오늘은 모두가 있는 데서 들려왔으니 어제 내가 잘못들은 것이 아닌가보군.”
웨슬리 중령의 말에 솔직히 매킨리가 말했다.
그러자 로즈마리호의 윌슨 함장이 말했다.
“제독님,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계속 항해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지금 이대로 돌아간다면 제독님이나 저희들의 명예와 인생은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저희들은 더 이상 군에 있지도 못하고 불명예 제대를 해야 하는데 그건 더욱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윌슨의 말에 모두들 동감했다. 귀신이 무서워 그냥 돌아왔다는 것이 알려지면 자신들은 온 유럽의 웃음거리가 된다. 매킨리 제독은 마음의 결정을 하고 말을 했다.
“후! 아무리 힘든 항해라도 어쩔 수 없소. 함장들은 모두 귀함하여 출항 준비를 해주시오.”
매킨리 제독의 말에 모두들 자리에 일어나 나갔다. 그들이 모두 나가서 갑판에 서 있을 때 또 그 귀신의 곡소리가 들려왔다.
“이히히히히, 매킨리… 후회할 것이다. 후회. 이히히히히…….”
이번에는 그 소리가 아까보다 더 커서 갑판 위에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들려왔다.
“으악! 귀신이다!”
마음 약한 선원들은 소리치며 도망을 쳤고, 그 소리를 들은 매킨리 제독도 귀신이 자신을 정확히 호칭하는 소리에 몸을 휘청할 정도였다.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어서, 기둥을 손으로 붙잡고 억지로 서 있었다. 다른 함장들도 그 소리를 들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범선 선원들을 다독이기 위해 도망치듯 자신의 배로 돌아갔다.
돌아가든지 전진을 하든지 결정을 해야만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매킨리 제독이 웨슬리 중령에게 출발의 깃발을 올리라고 하였다.
바다에서는 함대를 이끄는 제독이나 배의 선장 말은 절대적이어서 싫어도 무조건 명령에 따라야 했다.
모든 함정이 돛을 내리고 출발 준비를 하였으며 이윽고 다시 배가 출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머물고 있던 바다를 채 빠져나가지도 못했는데 어디선가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쾅! 꽈광!
매킨리가 급하게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맨 마지막으로 바다를 빠져나오던 범선이 커다란 폭발과 함께 함선이 두 쪽으로 쪼개지며 가라앉았다.
이건 포를 맞은 것도 아니고 단지 폭발음만 엄청나게 들리고 순식간에 배가 쪼개지며 가라앉은 것이다.
당시 함포는 둥글게 생긴 철환을 포탄으로 하여 수백 발을 범선에 맞혀 가라앉히는 방식이기 때문에 순식간에 배가 쪼개지며 가라앉은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침몰하는 배를 향해 함포 사격하는 배도 주위에 없었다. 매킨리 제독은 황급히 함대를 정지시키고 부근 바다에 떠 있는 선원들과 시신을 수습했다.
몇 시간에 걸쳐 선원들을 구조하고 확인한 결과 사망자와 실종자가 400명에 이르렀다. 승선했던 선원의 80퍼센트가 단 한 번의 폭발로 수장된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해역은 빠져나가야 했기 때문에 매킨리 제독은 다시 함대에게 출발을 명령했다.
“모든 배 출발하라.”
꽝! 우지끈.
함대가 출발을 하자마자 마지막에 있던 범선이 또다시 굉음을 내며 폭발하면서 두 조각 나며 침몰했다.
“정선!”
“정선!”
어쩔 수 없이 다시 함대를 세운 매킨리 제독이 침몰한 배의 선원들 구조를 명령하자 모든 함대에서 요트를 내려 그들을 구조하였고, 이 함선도 300명의 선원이 희생되어 200명밖에 구할 수 없었다.
단 두 번의 폭발로 700여 명의 목숨이 죽어 나갔다.
생존 선원들의 구조를 끝내자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 항해를 할 수 없어 오늘은 여기서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다.
선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난날과는 다르게 바다는 잔잔하여 너울도 없었으며 바람도 별로 불지 않자 습도가 높아져 끈적거리는 무더운 여름 날씨가 온몸을 적셔왔다.
밤이 점점 깊어지자 혹시 어제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선원들이 불안에 떨었다.
타타타타타!
“끼야아아악!”
“이히히히…….”
역시 오늘도 어제와 같이 악룡이 나타나 한 시간 정도 함대를 날아다니며 위협하였고, 곧이어 포세이돈이 나타나 사방에 불벼락을 쏘아대며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고 위협하고 돌아갔다
매킨리 제독이 머무는 선장실에는 밤새도록 들리는 귀신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영국함대가 밤새도록 유령작전에 시달리고 지쳐서 선원들이 피곤해 곯아떨어질 새벽 4시에 ‘2차 유령작전’이 펼쳐졌다.
특수효과 팀은 새벽에 함대가 머물고 있는 바다에 안개를 피웠다.
이 안개는 점액질을 내포하고 있고 끈끈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웬만큼 센 바람이 불지 않으면 흩어지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함대가 머물고 있는 바다에 안개가 퍼지자 순식간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에는 종종 새벽녘 물안개가 피어오르기 때문에 함선을 경계하는 병사들은 별 의심을 하지 않았고, 밤새 시달린 탓인지 대부분의 경계병들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안개가 사방에 깔리자 물속에서 잠수복을 입은 수중 작전 팀의 머리 10여 개가 소리 없이 떠올랐다.
작전이 시작되었다.
“목표는 엘리자베스호의 좌측 끝 로즈마리호다.”
수중 작전반장 하창한 준위가 함대의 가장 바깥에 있는 로즈마리호 한 척을 지정했다.
하창한 준위가 지정한 범선으로 10명의 수중작전 반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하창한 준위가 수신호로 침투 명령을 했다.
“지금부터 시작한다. 작전 개시.”
목표한 로즈마리호에 도착한 대원들은 곧 배에 소리 없이 올랐고 시작하라는 팀장의 수신호와 함께 대원들의 침투가 시작되었다.
소리 없이 로즈마리호 갑판에 오른 대원들은 범선의 선원들을 제거해가기 시작하였다.
틱.
틱.
여기저기서 소음기를 단 총소리가 몇 차례 들렸다.
잠시 후 갑판위의 선원들을 전부 제거한 작전 팀은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에게 갑판의 선원들 제거를 알리자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이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중작전 팀 대원들은 로즈마리호를 굵은 줄로 손원일함에 연결을 했다.
“연결 완료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동 시작합니다.”
연결이 완료되자 손원일함은 로즈마리호 선원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함대에서 이탈시켰다.
범선이 함대에서 이탈하는 동안에도 계속하여 작전반의 대원들이 갑판으로 올라갔다. 1시간에 3~4노트로 배를 천천히 1시간을 이동시키자 범선은 함대에서 5㎞ 정도 떨어졌다. 어느 정도 이동시키자 30명으로 불어난 대원들은 본격적으로 작전을 시작했다.
하창한 팀장이 대원들에게 작전을 지시했다.
“지금부터 진압 작전을 시작한다. 가스.”
신호와 함께 전 대원들은 방독면을 착용하였고, 하창한 반장의 수신호로 각자 주어진 작전 계획 지역으로 조별 이동을 하면서 최루탄을 쏘면서 선원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시달려 대부분 잠이 든 선원들을 제압하는 데는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선장실에서 잠을 자던 로즈마리호의 선장 윌슨은 매운 최루가스에 참을 수 없는 기침과 호흡곤란으로 격렬하게 기침을 하다 머리를 가격당하고 기절했다.
범선을 전부 제압하자 하창한 준위는 손원일함으로 연락을 보냈다. 연락을 받은 손원일함은 속력을 높여 시속 10노트 정도로 배를 끌고 이동을 했다.
곧 날이 밝아왔으나 살포된 안개와 기민한 작전 때문에 로즈마리호가 사라진 것은 누구도 몰랐다.
날이 어느 정도 밝아지고도 한참을 머물던 인공안개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전속부관 웨슬리 중령이 선장실 문을 두드렸다,
“제독님. 제독님.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웨슬리 중령의 말에 매킨리 제독은 벌떡 일어났다. 정신없이 의복을 갖춘 제독은 문을 박차고 나갔다.
“무슨 일인가?”
“배가 한 척이 없어졌습니다. 로즈마리호입니다.”
“뭐야, 잘못 본 것이 아닌가? 로즈마리라니, 윌슨은 역전의 맹장이야.”
소리친 매킨리는 고개를 돌려 로즈마리를 찾았으나 그 배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배가 어디로 간 것인가?”
“밤사이 안개가 짙어서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아! 이건 저주야, 저주.”
매킨리는 절망했다. 포세이돈의 저주였다.
여기가 오디세우스의 모험에 나오는 죽음의 바다였다. 벌써 3척의 범선이 파괴되거나 사라졌다. 전진을 하지 못한다면 돌아갈 수박에 없었다. 고민을 하던 매킨리 제독이 남아프리카로 함대를 돌리기로 했다.
아직까지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함대의 선원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난 환호를 울렸다.
하지만 그들이 케이프타운으로 돌아가는 항로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1달여 기간 동안 2척의 배가 더 사라졌으며 마지막에는 폭풍우에 휘말려 2척의 배를 잃었다. 이때 매킨리 제독이 탄 엘리자베스호도 폭풍에 휩쓸려 침몰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케이프타운에 돌아간 배는 3척에 불과하였다.
이후 이 함대의 배에 탔던 상당수의 선원들이 바다를 떠나 다시는 배를 타지 않았으며 바다를 떠나지 않은 인원들도 호주 항해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았다.
김기철 대령은 포획한 범선 3척과 타고 있던 선원1,700명을 포로로 삼았다.
가온군 중 아직까지 범선을 몰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각각 경남함과 LST 6함과 손원일함으로 견인하게 하여 고선지 항으로 끌고 갔다.
3척의 영국 범선들의 지휘관들 상당수가 격렬한 반항을 하였으나 선상에 있던 하창한 준위 팀은 앞으로 상당기간 범선을 끌고 가야 했기 때문에 선상 반란을 우려하여 반항하기만 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사살해 버렸다.
고선지 항에 끌려온 영국 범선을 보고 김영훈 제독은 반갑게 수중작전 팀과 함대를 반겼다.
아직까지 범선의 제작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그 기술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온에서는 유럽에서 배를 수입하려고 계획했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큰 배에 들어가는 1,200톤급 범선을 나포하여 오다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나포된 범선을 인도한 3척의 경계선은 바로 호주 서해로 돌아갔다.
잡혀온 영국인 선원들을 분류하다 보니 여기에서도 기술자들이 상당수 섞여 있었다.
항구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기술자들과 벽돌공이 각 100여 명 있었으며 특히 호주에서 범선을 제작하기 위해 동승한 범선 기술자들도 200명이나 있었다.
김영훈 제독은 다음에 귀국하는 배에 이들과 함께 3척의 범선을 올려 보내기로 하였다.
김영훈은 그동안 범선기술자 200명과 각 함선을 운항할 최소인원 함선당 각 100명씩 도합 500명을 따로 분리하여 수용하고 그들에게 정신교육과 함께 기존의 포로들과는 다른 특별대우를 해주라고 지시를 했다.
이들을 맡은 김영훈 제독의 부관 이기선 중위는 탁월한 영어 실력을 발휘하여 이들을 통솔하였다.
그리고 이번 작전을 완벽히 수행한 수중 작전반 대원들 30명을 특별히 불러 치하하고 대장인 하창한 준위에게 작전 성공에 따른 고마움을 특별히 표했다.
영국 선원들은 처음 나포되어 올 때 바다에서 떠올라오는 손원일함을 보고 전부 해룡이 자신들을 끌고 와서 죽이는 줄 알고 공포에 떨었다.
이곳에 도착을 하여서도 처음에 가온군을 만났을 때 영국인들은 가온군을 드래곤의 부하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온군의 말을 시키는 대로 잘 따르자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은 죽이지는 않겠다고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처음에 무서운 기분이 많이 가셨다.
다만 발목에 차꼬(足枷)가 채워져 있어 움직임에 불편하였으나 손에 수갑(手匣)을 채우지 않아 행동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가온군은 영국인들에게 자신들의 말만 잘 따르면 행동에 큰 제약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영국인들이 생각하기에는 노동이 조금 힘들었을 뿐 식사는 생각보다 잘 나왔으며, 오히려 영국에서 혹독한 죄수 생활을 하였던 수형자들은 가온군의 처사를 오히려 환영했다.
이들은 영국에서의 참혹할 정도의 수형 생활보다 이곳의 생활이 훨씬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가온군에 협조하는 수형자들 중 상당한 학식이 있는 사람도 있어서 통솔하기가 한결 편했다.
특히 조지 3세의 말도 안 되는 누명에 의해 그동안 모진 수형 생활을 하던 정치범들은 조지 3세와 영국 왕실이 자신을 반역자로 몰아간 데 이를 갈고 있던 중 가온군을 만나자 솔선해서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었다.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매킨리 제독의 선단은 일단 그 곳에 머물며 영국 정부의 지시를 받기로 했다.
그들의 소문은 케이프타운에 있던 각국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급속히 유럽에 퍼졌다.
이에 화가 난 조지 3세는 살아남은 배의 10여 명의 지휘관을 공개처형했고, 다시 10여 척의 선박을 보내 돌아온 3척과 함대를 꾸며 호주로 떠나게 했다.
그 13척의 선박도 1척을 제외하고는 김기철 대령의 함대의 작전으로 전부 침몰되었다.
1척의 배가 케이프타운에 도착하자 또 유럽이 들썩였다. 화가 난 조지 3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돈을 들여 30여 척의 대 선단을 호주 항로로 보냈으나 김기철 대령의 함대가 이번에는 인도양에 이들을 모조리 수장시켜 버렸다.
이후 영국은 몇 차례 더 선단을 파견하였으나 단 한 척도 살아 돌아가지 못했다. 유럽의 다른 나라의 모험심 강한 사람들이 호주로 가려고 시도를 했으나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인도양의 호주 방면 바다는 버뮤다삼각지대와 같은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호주가 완전히 대한제국의 영토가 되고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유럽의 배는 이 항로를 의식적으로 운항하지 않으려고 했고, 호주 항로는 그 후 상당 기간 이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던 대한제국 배들의 독점항로가 되었다.
영국은 더 이상 호주에 손을 쓰지 못했다.
영국의 동양의 대외 업무를 독점하던 영국동인도 회사는 100년간에 걸친 인도 공략이 1757년경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이기고부터 주도권을 쥐고 공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790년대는 아직 인도는 영국이 벵골 지역만을 점령한 상태로 지금은 남부의 마이소르 왕국과 전쟁 중에 있어서 동인도회사는 모든 역량의 대부분을 마이소르 왕국과의 전쟁 등 인도 공략에 쏟고 있었다.
영국에게 인도는 ‘국왕의 왕관에 있는 가장 큰 보석’이었다. 미국의 독립으로 가뜩이나 입지가 좁아진 조지 3세는 아직까지 유형지로밖에 가치가 없는 호주에 투자를 반대하는 귀족들과 의회의 의견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조지 3세는 호주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하고 이후 더 이상 함대를 파견하지 않았으며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함대를 파견하지 못했다.
프랑스는 대혁명 시기였고, 네덜란드는 그 혁명에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고 있어서 여력이 없었으며,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이미 다른 식민지 힘을 쓸 수 없을 때로 유럽에서 호주에 눈을 돌릴 수 있는 나라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