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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199화 (199/200)

제199화

4대 패왕 중 한 명인 카훌의 마왕성이 누군가에게 점령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수많은 데르툴족들이 3천 년 동안 해내지 못했던 걸, 타 차원에서 넘어온 진 대륙 검사들이 해낸 것이다.

사실 타이밍이 너무 좋긴 했다.

‘조금만 일찍 쳐들어왔어도 이 지경까진 되지 않았을 텐데…!’

현재 카훌 세력은 최악 중의 최악이 겹친 상황이었다. 정리하자면,

1. 4대 패왕들 간의 계속된 멸망전으로 병력 숫자가 많이 줄어든 상황.

2. 계속된 전쟁 때문에 대부분의 병력이 전선 쪽으로 몰려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마왕성 내 병력이 친위대를 제외하고는 전무하다는 점.

3. 료를 포함한 최상위 귀족 숫자가 전쟁 때문에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 그래서 그들 역시 지금 전선에서 빠질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점.

4. 심지어 병력 부족 현상 때문에 진을 비롯한 점령한, 혹은 점령 중인 차원 내의 병력까지 대부분 끄집어내서 전선에 보낸 상황.

5. 설마 차원을 넘어 공격해 올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안 해서, 아예 대비조차 안 하고 있었던 점.

이런 이유들이 겹친 지금 상황에 진 놈들이 차원 내 병력을 전부 이끌고 마왕성 근처 포탈을 넘어와 버린 것이다. 카훌 입장에서는 심장부에 직접적으로 치명타를 입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하필 진 대륙이라서 더 문제다.’

세계 전쟁 전에도 카훌 세력의 거의 모든 병력을 투입했음에도 차원의 절반도 점령하지 못했던 대륙. 병사 숫자도 많고, 개개인의 무력도 엄청나게 강해서 카훌 세력 역사상 가장 점령 난도가 높기로 소문이 나 있던 대륙.

그래서 세계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꽤 많은 방어 병력을 남겨뒀던 곳인데… 설마 순식간에 그 병력들을 모조리 처치하고 곧바로 차원을 넘어 공격해 올 줄이야!

“방심했구나, 카훌.”

그 진 대륙 검사들의 제일 선두에 서 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카훌은 이를 악물었다.

“남궁일천…!”

진 대륙의 무림맹주라는 위치에 올라선 그는 대륙 역사상 최고의 경지에 오른 검사로 유명했다. 얼마나 강력하냐면, 천하의 카훌과 1대1로 능히 맞설 수 있을 정도였다.

솔직히 저 남궁일천과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제들의 힘 때문에 쉽게 이길 수 있었던 전투도 백중세로 끝나거나 패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진 대륙의 검사들은 예로부터 은혜는 배로 갚고, 원한은 네 배로 갚는 존재들이다. 우리 대륙을 그렇게 괴롭혔으면서, 응당 복수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안 해본 것이냐?”

“…흥. 칼을 그렇게 갈았는데 아직도 마왕성조차 점령하지 못한 것인가?”

남궁일천의 말에 되레 도발하는 카훌이었다.

“천하의 진 대륙도 별것 아니군. 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나와 친위대를 제압하지 못하다니!”

“곧 죽을 것처럼 헐떡이는 놈이 입만 살았구나.”

“큭큭큭! 너희들은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곧 귀환할 료를 비롯한 정예 병사들이 단번에 너희 모두의 목을 베어버릴 테니까!”

지금 카훌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까 전, 최상위 귀족들 모두에게 전선이고 뭐고 모든 병력을 데리고 마왕성으로 돌아오라고 이미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제아무리 전쟁으로 전력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지금 상태라 할지라도, 데르툴 행성 안이라면 이 정도 진 대륙 병력들은 충분히 막아내고도 남는다. 마기가 충만한 이곳에서 데르툴족은 100% 그 이상의 위력을 뿜어내는 것이 가능하니까.

“정말 어리석구나, 카훌.”

남궁일천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설마 우리 진 대륙만 쳐들어왔을 것이라 생각했단 말이냐?”

“…뭐?”

크워어어어!

“!!”

그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익숙한 괴성.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거대한 공룡의 모습을 한 생명체들 다수가 또 다른 차원의 문을 타고 넘어오고 있었다.

그걸 본 카훌의 눈이 부릅떠졌다.

‘사르빅 차원 놈들!’

저 한 명 한 명이 괴수급으로 강한 힘을 보유한 거대한 종족은 바로, 카훌 세력이 점령했었던 사르빅 차원의 생명체들 아닌가!

그뿐만 아니었다.

그들과 같이 섞여서 달려오고 있는 온몸이 초록색 피부인 종족은 조파 차원인들이고, 곤충의 몸통에 인간의 머리가 달려 있는 저들은 쉬트라 차원의 생명체들이며, 등에 달린 날개로 공중에서 날아오고 있는 인간형 생명체는 멘파스 차원인들이었다.

‘설마…!’

그들을 본 카훌의 온몸을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예감.

그것은 남궁일천이 꺼낸 말로 현실이 되었다.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 네가 점령했던 네 곳의 차원 안에 주둔하던 데르툴족부터 처리하고 오는 길이다.”

“!!”

“다들 데르툴족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더구나. 네놈들의 포악한 지배에 대륙 전체가 피폐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병력을 데리고 차원을 넘어오고 있다.”

크게 두 눈동자가 떨리고 있는 카훌을 향해 남궁일천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 우리 진 대륙만으로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다섯 차원이 한데 뭉치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리라. 아니 그런가? 허허허….”

“큭…!”

“전군!”

말을 마친 남궁일천이 검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저 악마 같은 데르툴족에게 처참하게 죽어간 동료들의 복수를 할 시간이다!”

“와아아아!”

“크워어어!”

다섯 종족의 각기 다른 함성과 함께, 순식간에 엄청난 숫자로 불어난 연합군들이 밀물이 밀려오듯이 카훌과 친위대들이 서 있는 마왕성 입구를 향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망할…!”

이를 악문 채 한마디 내뱉은 카훌의 머릿속에는 또 하나의 불길한 예감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왠지 모르게, 료를 비롯한 아군들이 도착하기 전에 저들의 검에 목이 날아갈 것 같은 기분 말이다.

그리고 지금껏 카훌의 그런 불길한 예감은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다.

* * *

콰아아앙!

“크악!”

거대한 폭발과 함께, 또 한 번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멀찌감치 물러나는 르기에.

꽤 큰 충격을 입고 휘청이는 그는 자신의 비어 있는 왼 손목 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폭발로 손 전체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큭…!”

이를 악문 채로 로한을 향해 안광을 뿜어내는 르기에.

저 멀리, 로한의 등 뒤쪽에 신음을 흘리면서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는 텐자흔의 모습이 동시에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미 신체의 절반 이상이 훼손된 상태라는 걸 감안하면, 이제 사실상 텐자흔은 전투 불능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르기에는 현실을 부정했다. 이건 그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투할의 사망 이후, 로한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 행성에서 얼마나 마기를 끌어모으려 노력했던가? 최상위 귀족은 물론, 일개 하급 병사들까지 기회만 있으면 시체란 시체는 모조리 흡수했었던 그였다.

그 결과, 그의 체내의 마기는 투할의 전성기 수준으로 모아진 상태였다. 물론 아직 완벽하게 정제된 상태가 아니라서 전성기 투할 정도의 전투력을 보여줄 순 없지만, 그래도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몸 상태였다.

‘최소한, 저 변신하기 전의 사이보그 놈은 때려잡고도 남는 수준이었단 말이다!’

지금 르기에의 시야에 보이는 평범한 인간형인 로한의 모습.

엘도르 대륙에서 보여줬던 그 푸른 기체형의 모습도 아니고, 세이버라는 타이탄에 탑승한 상태도 아니다. 어떤 변신도 거치지 않은 저 평범한 상태에서 지금 이렇게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단 말이다!

정말 이건 말이 안 된다. 두 달 동안, 데르툴족도 아닌 다른 생명체가 자신보다 빠른 속도로 더 성장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단 말이다!

“확실히, 효과가 괜찮군그래.”

로한이 자신의 온몸의 피부에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마나를 느끼면서 입을 열었다.

“에너지원과 마기를 효율적으로 섞어서 사용하니, 위력이 이전보다 몇 배는 강해졌어.”

그의 말대로, 지금 흘러나오는 마나 성분은 100% 에너지원이 아닌 마기도 일부분 섞여 있었다. 그렇다고 데르툴족의 기분 나쁜 끈적끈적한 마기가 아니라, 어둠의 정령왕 아르카나를 통해 얻은 아주 순수하고 정제된 마기였다.

“역시 에드먼은 천재야. 두 달 만에 마기와 융합하는 시스템을 발명하다니.”

두 달 전, 지구로 돌아가자마자 로한은 에드먼에게 작전명 ‘혼란’ 때 사용했던 다크 레기스트륨 폭탄의 위력을 설명하면서, 사이보그 신체에 에너지원과 마기를 효율적으로 융합하는 시스템을 착용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에드먼은 그 즉시 개발에 착수했고, 며칠 전 지금과 같은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줄 만한 융합 시스템을 완성한 것이다.

“너희들 덕분이다. 네놈들을 반드시 멸종시키겠다는 결심이 없었으면, 이런 뛰어난 융합 시스템을 발견하고 연구할 생각조차 못했을 거야.”

르기에를 향해 말을 한 로한은 다시금 폭발적으로 기운을 끌어 올렸다.

“자, 이제 마무리를 할까?”

이내 전력을 다해 르기에에게 달려드는 로한. 두 달 전과 비교하면 몇 배는 더 빨라진 속도였다.

당연히 르기에는 피할 생각도 못 했다. 그렇다고 방어로 막아낼 수 있는 공격력도 아니었다.

퍼어엉!

“아악…!”

이번엔 오른팔이 어깻죽지부터 떨어져 나가는 큰 피해를 입은 르기에. 하지만 공격은 끝나질 않았다. 이미 그의 신체에 가까이 붙은 로한이 연이어서 주먹을 휘둘렀던 것이다.

퍼퍼퍼펑! 하고 연이은 폭발음이 터졌고, 한 번 터질 때마다 반드시 르기에의 신체 한 곳이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열 번 정도 주먹을 휘두른 뒤 로한은 행동을 멈추었다.

“으… 으으….”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르기에의 모습은 처참했다. 왼팔과 가슴, 머리만 남은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힘겹게 신음을 지르고 있었다.

전투의 승패는 이미 결정되었다. 이제, 처리할 일만 남았다.

로한은 한 손으로 르기에의 머리를 잡고 그대로 시선이 동등해지는 위치까지 들어 올렸다.

“질긴 인연이었다, 르기에.”

마지막 한마디를 끝으로 최후의 주먹을 날리려던 로한.

그때였다.

“흐… 흐흐흐…!”

르기에가 갑자기 미소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실성한 것일까?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로한의 등 뒤를 향하고 있었다.

“방심…했구나… 로한…! 텐자흔의… 존재를… 잊고… 있었어…. 큭… 크큭!”

그 말에 그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텐자흔의 온몸에서 갑자기 마기가 폭발적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저 현상이 뭔지 로한은 알고 있었다. 바로, 과거로 시간을 돌리는 고유 능력을 사용할 때 보이는 현상이었다!

텐자흔이 씨익 웃었다.

“24시간 뒤에 다시 만나자, 로…!”

퍼억!

하지만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그의 머리가 수박 터지듯 폭발해 버렸다.

그로 인해 막 고유 능력이 실행되기 직전에 마나의 움직임이 멈추었고, 결국 텐자흔의 마지막 한 수는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르기에의 눈이 부릅떠졌다.

“무슨…!”

“밖에 다 정리했어요, 오빠.”

그때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

아린이, 어느새 마왕성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방금 전 텐자흔을 처치한 것도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 탄의 작품이었다.

로한이 물었다.

“마왕성 다 점령했어?”

“네. 지금 오빠 부하들 전부 신이 나서 남은 데르툴족들 학살하고 다니고 있어요. 마기 융합 시스템 때문에 평소보다 몇 배는 강해져서 기분이 좋은가 봐요.”

“풋….”

“오빠가 들고 있는 놈만 처치하면 이제 마왕성에 남은 데르툴족은 없어요.”

“그래?”

로한은 곧바로 르기에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날아오는 주먹을 바라보는 르기에는 모든 희망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의 원대했던 꿈이 이렇게 허무하게…!’

퍼억!

머리를 잃은 르기에의 남은 몸통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텐자흔 세력을 이용해 지구와 엘도르 대륙에 복수를 꿈꿨던 르기에의 허망한 최후였다.

“자, 이제 다른 차원들 도와주러 가자. 아직 데르툴 놈들이 정신 못 차렸을 때 빨리 기세를 잡아야 해.”

“어디로 이동할까요?”

“일단 4대 패왕 쪽부터.”

로한과 아린은 곧바로 마왕성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둘이 떠난 이후 마왕성에 남은 것은, 머리 없는 데르툴족의 시체들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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