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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198화 (198/200)

제198화

“들려?”

로한이 마왕성 입구 쪽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곧 르기에의 귓가에 들려오는 수많은 익숙한 소리들.

마나가 폭발하는 소리, 살갗이 베이는 소리, 고함과 함성, 그리고 고통스러운 단말마 비명까지…. 문제는 비명의 대부분이 데르툴족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이내 로한이 친절하게 바깥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지구인들과 엘도르 대륙의 병력들에 너희 병사들이 죽어가는 소리야.”

“……!”

“확실하게 이 영지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두 차원의 거의 모든 병력들을 다 이끌고 왔다. 이전에 투할 세력을 멸망시켰던 연합군 있지? 그때보다 더 강할 거야. 기대해도 좋아.”

로한의 말을 들은 르기에는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큰일이다!’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

하필 지금처럼 전쟁으로 인해 영지 전체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을 타이밍에 예상치도 못한 카운터 공격을 맞게 되다니!

하지만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미소를 유지하는 르기에였다. 그는 텐자흔 세력의 총사령관이다. 모두를 대표하는 그마저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된다.

“훗… 오만하군. 여기는 데르툴 행성이야. 엘도르와는 달리 데르툴족의 힘을 100% 이상 끄집어낼 수 있는 장소라고. 반면 너희는 이곳에서 평소처럼 활약할 수 없는 환경이고.”

“알아. 그런데, 지금 상황이면 그 정도 페널티를 가지고도 이곳을 멸망시키기엔 충분할 것 같은데? 세계 전쟁 때문에 병력 숫자가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잖아?”

“……!”

“대충 상황을 보니까 내 생각보다 더 전쟁의 여파가 심한 것처럼 보이더라고. 아무리 봐도 연합군을 절대 못 막아낼 것 같던데.”

이어지는 로한의 말을 계속 듣던 르기에의 두 눈동자가 가늘게 떨려왔다. 정곡을 제대로 찔린 기분 탓이었다.

동시의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우리 상황을 다 알고 있지?’

어떻게 타 차원의 존재가 이 행성의 세계 전쟁 등 상황을 완벽하게 알고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곳 상황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

그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물어오는 로한.

그는 곧 품속에서 작은 물건을 하나 꺼내서 르기에에게 던졌다.

발치에 떨어진 그것을 본 르기에는,

“!!”

순간 두 눈동자의 떨림이 더욱 커졌다.

그것은 명패였다. 텐자흔 세력 특유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 계급과 직위 그리고 이름이 새겨져 있는 귀족 명패.

거기에 적혀 있는 글자들은 최상위 귀족, 비서실장, 그리고… 콘록이었다.

‘설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르기에가 로한을 바라보았고, 로한은 씨익 웃으면서 과장된 몸짓으로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동시에 입에서 흘러나오는 변조된 목소리.

“두 달 만입니다, 총사령관님. 비서실장 콘록이 다시 인사드립니다.”

“……!”

“뭐, 뭐라고?!”

왕좌에 앉아 있던 텐자흔도 크게 놀라 외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가 받은 충격은 지금 눈을 부릅뜬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르기에보다는 못했다.

얼굴에 미소가 사라진 채 순간 패닉 상태에 빠져든 듯한 모습…. 아마 그가 태어난 이후 처음 보여주는 반응일 것이다.

“어때? 맨날 남을 속이기만 하다가 제대로 한 방 먹은 기분이?”

“…….”

“그나저나 계속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을 시간이 있어? 빨리 나를 처치한 후 마왕성 바깥의 병력들을 도우러 가야 하는 거 아냐?”

로한의 그 말을 들은 뒤에야 르기에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의 말이 맞았다. 지금 한 방 먹은 충격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다. 그 와중에도 마왕성 바깥에서 계속해서 데르툴족들이 죽어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지 않은가.

르기에는 급격히 마기를 폭발적으로 뿜어내면서 등 뒤를 향해 말했다.

“마왕님, 같이 싸우셔야 합니다.”

“뭐? 둘이 저 한 명을 상대하라는 소린가 지금?”

“그래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놈은 투할을 단신으로 때려잡은 놈입니다.”

“……!”

“어서!”

마지막에 버럭 외치는 소리에 텐자흔은 어쩔 수 없이 마기를 끌어 올렸다.

곧 둘이 뿜어내는 마기가 대복도 전체를 뒤덮었다. 그 안에 휩쓸린 로한은 순수하게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확실히, 두 달 전보다 더 강해졌군. 거기에 텐자흔까지 합세하면 전성기 투할의 무력 못지않겠는걸?”

“아니, 그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그래?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바깥 병사들을 도와주러 가기는커녕 둘 다 내 손에 소멸할 모습이 눈에 선한걸?”

“바깥 상황을 이용해서 조급함을 유도하려는 것 같은데, 소용없다.”

로한의 도발을 받는 르기에의 얼굴에는 다시금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타 차원의 병력들이 공격해 왔다는 소식이 퍼지면, 다른 마왕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나? 당장 전쟁을 중단하고 너희 연합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전 대륙에서 병력을 끌고 내려올 것이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 왔듯이 말이다.”

르기에의 지금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전 우주에서 자신들이 가장 강하다고 믿고 있는 데르툴족은, 타 차원에게 먼저 공격당하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

그래서 타 차원이 공격해 왔다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대륙 전체에서 어떤 조건도 없이 해당 영지를 돕기 위해 지원 병력들을 보내는 편이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봐도 늘 그랬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데르툴족은 단 한 번도 타 차원의 공격에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조급해야 하는 건 너다. 소문이 퍼지기 전에 우리 영지를 멸망시키지 못하면, 그 순간 너희 연합군은 물론 너희 두 차원 대륙까지 모두 데르툴족 전체의 분노를 받게 될 테니까.”

“알아.”

그 말에 바로 대답하는 로한.

“그거, 두 달 전 콘록으로 행세하면서 다 배워뒀다. 그래서 당연히 그것에 관한 해결책도 가지고 왔지.”

“어떤 해결책을 갖고 와도 소용없다. 우리 데르툴족은….”

“설마 내가 말한 연합군이 단순히 지구와 엘도르 대륙 병력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뭐?”

순간 당황한 르기에의 모습에, 로한은 다시 한번 씨익 미소를 지었다.

* * *

이곳은 리사크 마왕성.

아니, 리사크의 것이었던 마왕성 대복도 안.

“주인님.”

마왕성 입구에서부터 달려온 병사 한 명이 왕좌 바로 앞에서 부복했다.

“무슨 일이냐?”

대답하는 목소리는 타바츠의 것이었다.

왕좌에 앉아 있는 그를 향해 병사가 보고했다.

“펠로슈브 쪽 진영에서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곧 방어선을 향해 돌격해 올 것으로 예측됩니다.”

“전군을 그쪽 방어선으로 옮겨라. 나도 곧 이동하겠다.”

“넷.”

병사가 물러선 후 타바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왕성 실내에 마련된 마왕 전용 워프진으로 향했다. 그러자, 근처에 서 있던 마왕 전용 경호 병력이 일제히 그를 따라 움직였다.

그들과 함께 워프진으로 걸어가면서 타바츠는 생각했다.

‘이번 펠로슈브의 병력만 어떻게든 막아내면, 세 명 중 내가 가장 우위에 설 수 있다.’

현재 캉베는 대부분의 병력을 잃고 사실상 그로기에 빠진 상황이라 보면 되고, 남은 건 펠로슈브뿐이다. 그리고 지금 몰려오는 병력이 사실상 펠로슈브가 모을 수 있는 마지막 병력이라는 걸 타바츠는 잘 알고 있다.

쥐어 짜낸 이번 병력만 막아내면,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세 세력 간의 싸움은 끝이 난다.

‘예상보다 너무 오래 걸렸어. 캉베, 펠로슈브 그놈들이 이 정도까지 끈질기게 버틸 줄이야.’

캉베, 리사크, 펠로슈브, 이 세 명의 마왕 연합이 깨진 건 연합이 결성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였다.

처음 연합군의 기세는 좋았다. 텐자흔에게 선전포고를 한 지 단 이틀 만에 기존 킬라단 영지였던 곳을 점령해 버렸으니까.

이후 파죽지세로 근처의 20구역에 달하는 영지를 점령했고, 그때부터 연합군을 바라보는 주변 마왕들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 세계 전쟁 시작 때에는 그들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던 타 마왕 놈들이 그때부터 외교를 위해 사절들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연합군은 거기까지였다. 잠깐 진군을 멈추고 숨을 고르고 있을 그 타이밍에 갑자기 펠로슈브가 마음을 바꿔서 전군을 몰고 캉베 영지를 침략한 것이다.

그때부터 세 마왕 세력의 서로 물리고 물리는 치열한 멸망전이 시작되었고, 결국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온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제 승리가 눈앞에 보인다. 이제 이 주변의 모든 영토는 나, 타바츠의 이름으로 지배될 것이다.’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타바츠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2인자가 아닌, 마왕의 이름으로 멸망전의 승리자가 된다라!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참고로, 리사크는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타바츠가 혼수상태인 리사크의 뇌핵에 주기적으로 독약을 주입했기 때문이었다.

‘지옥에서 지켜봐라, 리사크! 네놈이 지배할 때보다 훨씬 더 넓고 강대해진 영지의 모습을. 큭큭큭…!’

속으로 득의의 웃음을 그리던 그때였다.

[주인님! 주인님! 큰일입니다!]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직접 들려오는 다급한 외침이 있었다. 마왕 전용 통신 마법을 통해 최상위 귀족 중 한 명인 바르긴이 연락해온 것이다.

타바츠가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바르긴은 다급히 보고를 이었다.

[라비앙 대륙 차원 이동 포탈에서, 라비앙 차원의 병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

타바츠의 두 다리가 우뚝 멈춰졌다.

라비앙? 이번 전쟁 후에 점령 작업에 들어가려고 했던 차원에서?

[지금 포탈 주변은 완전히 점령당했고, 마왕성 쪽으로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빨리 전군을 대동해서 막아야…!]

[콰앙!]

[크악…!]

곧 폭발음과 함께 들려오는 바르긴의 비명을 마지막으로 통신은 끊겼다.

그와 동시에 그의 민감한 청력에 감지되는 마왕성 바깥에서의 소란스러운 소리들.

“마왕성이 저기 있다!”

“마왕성을 점령해라! 마왕, 타바츠를 죽여라!”

“와아아아!”

콰아앙! 콰앙!

“크아악!”

“아악…!”

처음 듣는 낯선 생명체의 외침들과, 폭음과 함께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데르툴족들의 목소리가 섞여서 들려오고 있었다.

순간 타바츠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하필 왜 이 타이밍에…!’

지금 펠로슈브가 쥐어 짜낸 마지막 병력을 막아내는 것도 힘겨울 정도로 전력이 줄어든 상황에, 아직 작업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한 차원의 병력이 모조리 차원문을 통해 쏟아지고 있다.

이건 결과를 더 볼 필요도 없었다. 크게 두 눈동자를 떨고 있는 타바츠의 얼굴이 어느새 완전히 하얀색으로 변해버렸다.

* * *

이곳은 4대 패왕 중 한 명인 카훌의 마왕성 근처.

“헉, 헉, 헉…!”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카훌의 모습.

근래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데르툴 행성 최강의 마왕이라고 불리는 카훌이 이 정도로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그의 부하들에게 물으면, 단연코 한 번도 없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그를 이렇게 만든 상대가 같은 데르툴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 대륙 놈들…!”

붉은 안광을 내뿜는 카훌의 시야에, 이미 마왕성 주변을 완전히 장악한 수많은 진 대륙 검사들의 모습이 들어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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