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이곳은 데르툴 대륙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어느 작은 산골 마을.
이 행성도 지구나 엘도르와 다를 바가 없이 북쪽은 매우 추웠다. 온 천지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이런 환경 속에서는 천하의 데르툴 족도 두꺼운 옷을 입지 않으면 벌벌 떨다가 동사하고 만다.
워낙 추운 곳이라 4대 패왕을 비롯한 어느 마왕도 점령하기 위해 손길을 뻗치지 않는 이곳에, 데르툴족이 아닌 외부인이 들이닥쳤다.
바로 로한이었다.
“다 잡았나?”
마을 회관 안쪽을 바라보면서 로한은 두 손을 탁탁 털었다. 대략 50명쯤 되는 데르툴족이 기절한 상태로 꽁꽁 묶여 있었는데, 전부 다 이 마을에 사는 데르툴들이었다.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데르툴족 시체들이 마을 광장에 쌓여 있었고 말이다.
레이더 시스템을 활용해 혹시나 도망친 자가 있나 확인해본 로한은 마을 회관 앞마당으로 향한 뒤 품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었다.
안에 담겨 있는 최고급 마정석을 모조리 우르르 꺼낸 그는, 문 모양으로 마정석을 쌓고 에너지원을 통해 접합시키기 시작했다.
차원 이동문을 만들 생각이었다.
‘이제 이 행성에서 할 일은 다했으니, 돌아갈 일만 남았다.’
벌써 이곳에 온 지 한 달 가까이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정찰만 하고 끝내려던 계획이, 결국에는 ‘혼란’이라는 대규모 작전을 실행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보람은 확실히 있었다.
‘작전이 대성공한 덕분에, 지금 데르툴 행성은 완전히 대혼란에 빠져들었어.’
로한은 다시금 지금 상황을 정리해놓은 문서 파일을 각막 스크린 위에 띄운 뒤 읽기 시작했다.
6일 전 : 위고스와 요르바 세력이 연합해서 카훌 영지를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함. 당시 디하브로 쳐들어갔던 카훌 세력은 뒤늦게 부랴부랴 돌아와서 방어에 나섰지만, 그땐 이미 많은 영토를 점령당한 뒤였다.
5일 전 : 회군해서 카훌을 공격하려던 디하브 세력은 상황을 확인한 후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방향을 틀어 비어 있던 위고스 영지로 쳐들어감. 그로 인해 4대 패왕끼리의 치열한 멸망전이 시작됨.
4일 전 : 디하브 세력이 회군한 뒤에도 여전히 공격해오는 4명의 12강호 소속 마왕 세력으로 인해 계속된 고전을 면치 못한 텐자흔은 기존 영지의 절반 이상을 빼앗김.
3일 전 : 남은 12강호 소속 8명의 마왕들은 눈치 싸움 끝에 결국 서로 물리고 물리는 멸망전에 돌입하게 됨. 4대 패왕과 비슷한 상황.
2일 전 : 리사크 세력의 2인자, 타바츠를 필두로 한 캉베, 펠로슈브 이 세 명의 마왕 세력이 연합을 선포함. 동시에 텐자흔에게 선전 포고를 한 뒤, 기존 킬라단 영지였던 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국경선을 침범함.
1일 전 : 이번 사태와 상관없는 중립 마왕들도 곧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거라 생각하는 4대 패왕 및 12강호 세력을 지원하거나 동맹군을 파견하기 시작함.
‘…결론을 내리자면, 세계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거지.’
중립 마왕들마저 병력 및 군수 물자를 지원 및 파견하기 시작한 지금은, 오히려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세력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상황으로 변했다.
로한이 만들어낸 텐자흔 마왕성 내에서의 작은 불씨가 이 정도로 커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 믿기지 않는 성과였다.
‘세계 전쟁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수많은 데르툴족이 소멸되어서야 슬슬 결말이 보일랑 말랑 하겠지.’
원래 모든 세계 대전이 그러했다. 지구도 그랬고, 엘도르에서의 1차 신마대전도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었다. 로한이 참여했던 2차 신마대전이 유난히 빨리 끝난 편이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빨리 힘을 모아서 이 행성을 쳐야 돼.’
다행히 시간도 충분하고, 그동안 이 행성을 공략할 수 있는 충분한 병력도 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전에 일단 지구인들부터 설득시켜야 하겠지?’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지구인들이 데르툴 행성 공략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단순히 엘도르 대륙의 재건을 도와주는 것만으로는 큰 힘이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의 마음을 가장 빠르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역시 충격 요법이지.’
로한이 그렇게 생각할 즈음, 마정석으로 만들던 차원 이동문 틀이 완성되었다. 로한은 곧바로 두 손을 틀 중앙에 내민 뒤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미리 저장된 ‘지구-수용소’ 좌표를 불러오겠습니다.]
[해당 좌표로 이동하는 차원 이동 텔레포트를 생성합니다.]
[생성 작업에 1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동안 에너지원이 계속해서 소모됩니다….]
그가 만드는 차원 이동문의 좌표는 원래 목적지였던 엘도르가 아닌, 지구였다. ‘혼란’ 작전의 대성공으로 인해 로한의 귀환 계획도 대폭 수정된 것이다.
‘설마 한 달 지났다고 지구로 귀환 시 계획을 까먹진 않았겠지?’
괜히 강동혁의 기억력이 걱정되는 로한이었다. 사이보그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인 강동혁이라면 ‘잊어먹는다’라는 상황이 가능하니까.
* * *
지구가 데르툴족의 침략을 막아낸 지 벌써 반년 가까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전쟁으로 입은 피해는 거의 다 복구가 된 상태다.
최첨단 기술로 인해 부서진 건물 및 도로들은 100% 재건된 상태며, 시민들 역시 전쟁 전의 그 평화로웠던 일상생활로 다시 돌아갔다. 물론 돌아다니는 인구 숫자가 눈에 띄게 많이 줄어든 건 확연히 티가 나긴 했다.
전쟁의 상처를 거의 다 치유한 지구. 하지만 아직 그들이 처리하지 못한 고름이 하나 남아 있었다.
바로 ‘배신자’들이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 혹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지구인들을 배신하고 데르툴족에게 붙어 수많은 인간들이 학살당하는 원인을 제공한 이들.
일부 한국인들에게는 과거의 이완용보다도 더 증오스러운 존재들.
그들 중 죄가 중한 이들은 모두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조금 애매한 위치의 죄인들은 종신형, 혹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아직도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런 이들만 특별히 모아놓은 감옥이 전 세계 각지에 존재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흔히 말하는 ‘데르툴족 관련 특별 수용소’, 줄여서 ‘데특 수용소’는 쉽게 관리하기 위해 특별히 국방부와 가까운 위치에 새롭게 지어졌다.
데특 수용소에 갇힌 죄인들은 모두 독방을 사용해야 한다. 이들 중에는 데르툴족에게 마기를 물려받은 이들도 있어서, 두 명 이상 뭉쳐도 수용소 전체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식사도 당연히 독방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수감인들에게 식사를 배급하는 것은 교도관 직급을 배정받은 휴머노이드의 몫이다.
“식사다.”
무려 삼중 잠금 장치를 푼 뒤에 한 독방의 배급로로 음식이 담긴 식판을 내미는 교도관.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년의 죄인, 심종근이 식판을 받으면서 물었다.
“쳇! 오늘도 한식이야? 거, 치킨 한번 줄 때 안 됐나?”
“닥치고 먹어.”
“허허~ 세상 참 좋아졌어? 휴머노이드 주제에 사람한테 닥치라고 하고… 허허헛!”
이죽대는 심종근의 목소리를 깔끔히 무시한 채로 다음 독방으로 향하는 교도관. 오랜 경험을 통해, 말싸움해 봤자 결국 교도관 본인만 손해라는 걸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속으로는 이렇게 반박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세상 진짜 좋아지긴 했지. 너 같은 쓰레기를 아직까지 살려두고 있으니 말이다.’
심종근. 그는 전 동해시 시장이었다.
그는 데르툴족이 포탈을 열고 한국에 쳐들어왔을 때, 본인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데르툴족에게 동해시 전체를 넘긴 후 자신의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로 도망쳤다. 본인을 포함한 네 명의 목숨을 위해 십만 명에 육박하는 동해 시민들의 생명을 버린 것이다.
남은 시민들은 모두 생체 재료가 되어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심종근은 군법 재판에 회부되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여기 수감된 상태다.
“쩝쩝쩝… 어우, 오늘따라 장조림이 질기네.”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 열심히 밥을 퍼먹고 있는 심종근의 모습.
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감옥 생활도 얼마 안 남았다! 국방부의 내 후배 놈이 곧 나를 일반 교도소로 옮겨준다 그랬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국방부 내의 빽을 믿고 있는 심종근.
그때였다.
우우웅-!
“……?”
갑자기 눈앞 벽면에 생기는 거대한 검은 물결에 심종근의 눈이 커졌다.
이윽고 벽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커진 그곳에, 갑자기 다수의 괴생명체들이 튀어나왔다.
“히, 히이익?!”
하나같이 바닥에 철푸덕 쓰러지는 그것들을 본 심종근은 기겁하면서 등 뒤의 벽에 밀착했다.
지금 바닥에서 슬금슬금 일어나는 저것들, 전부 다 데르툴족 아닌가!
“데, 데, 데, 데르툴족이다!! 데르툴족이야!!”
다급하게 문 바깥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심종근.
그때 정신을 차린 데르툴족 중 한 명이 심종근을 확인했다.
동시에 그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안광.
“인간! 죽인다!”
외치면서 곧바로 두 손의 손톱을 뽑아 든 뒤 달려드는 데르툴족.
“으, 으아악!!”
촤악!
곧 처절한 비명과 함께 독방 벽면 한쪽이 핏물로 완전히 뒤덮였다.
똑똑.
“들어와.”
집무실 안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대한민국 사이보그 특수 부대 총사령관, 강동혁의 허락에 문이 열리고 그의 비서 휴머노이드가 들어왔다.
비서는 바로 보고했다.
“주인님. 지금 마족 특별 수용소에 차원 이동 포탈이 생성되었다 합니다.”
“뭐?”
“안에서 튀어나온 마족들이 지금 교도소 안의 수감자들을 학살하는 중이라 합니다. 속히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잠깐만.”
보고를 듣던 그의 머릿속에 순간 한 달 전 기억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설마, 로한인가?’
한 달 전, 로한이 그랬었다.
행여나 마족 특별 수용소에 데르툴 행성 쪽 포탈이 열리면 내가 한 일인 줄 알라고. 그리고 자신이 말한 대로 행동하라고.
그래서 강동혁이 비서에게 물었다.
“데르툴족은 몇 명인가?”
“총 9명이라고 합니다.”
“9명?”
고작 9명밖에? 보통 포탈이 생성되면 최소 백 명이 넘는 데르툴족이 쏟아질 텐데?
이건 아무리 봐도, 로한이 생성한 것이 맞아 보였다.
“대기 병력들은 출동했나?”
“네. 현재 속속들이 도착해서 수용소 전체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한 상태입니다.”
“알았어. 바로 출발 준비해.”
“네.”
비서가 나간 직후, 강동혁은 품 안에서 미니 통신기를 꺼낸 후 귀에 착용했다. 로한과 직통이 가능한 통신기의 전원 버튼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서 작동시키자마자,
[강동혁!]
바로 매우 익숙한, 그리고 반가운 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동혁이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물었다.
“수용소 난리 난 거, 네가 한 짓이냐?”
[어. 말했었잖아?]
“큭큭… 알았다. 호텔에서 대기하고 있어.”
[빨리 처리하고 와라.]
그렇게 통신을 끝낸 강동혁은 바로 책상 위 전화기를 들어 올린 후, 대통령에게 직접 연결하는 단축 번호 키를 눌렀다.
“강동혁입니다. 지금 수용소 사태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