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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189화 (189/200)

제189화

여기는 4대 패왕 중 한 명인 카훌 영지의 최남단. 바로 텐자흔 영지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장소다.

국경선의 정중앙에 위치한 132구역. 요충지이기도 한 이곳은 남쪽 국경선의 총사령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건물의 사령실 앞에 선 행정병 한 명이 문을 향해 노크를 하고 있었다.

똑똑.

“들어와.”

중후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문밖에 서 있던 행정병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경례를 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서류를 바라보던 거대한 데르툴족이 쳐다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그의 이름은 사이카.

이 남쪽 국경선을 총지휘하고 있는 사령관이자, 4대 패왕인 카훌 세력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강자다. 현재 이 행성에서 가장 강한 데르툴족 100명을 뽑으면 반드시 상위권에 뽑히는 존재다.

행정병이 대답했다.

“텐자흔 영지 쪽에서 병사 한 명이 사절단의 권한으로 우리 영지 쪽으로의 공식 방문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네오두이며, 상위 귀족이라 합니다.”

사이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통과시키고, 여기로 바로 데려와.”

“넷.”

대답과 함께 행정병이 나간 지 5분 정도 됐을까?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사이카의 허락과 함께 문이 열리면서 아까 전 그 행정병과 텐자흔 세력 쪽 복장을 입은 낯선 데르툴족이 들어왔다.

행정병이 보고했다.

“사령관님. 텐자흔 쪽 사절인 네오두를 데려왔습니다.”

“넌 나가 있어.”

행정병을 내보낸 사이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훌 영지의 북부 총사령관, 사이카라 하오.”

“텐자흔 영지에서 온 네오두입니다.”

인사와 함께 악수를 나누는 둘.

최상위와 상위라는 둘의 위치 차이는 하늘과 땅 수준이지만, 지금 네오두는 마왕 텐자흔을 대신해서 파견 나온 공식 사절이다. 그런 그를 하대하는 것은 텐자흔에 대한 모욕이므로, 두 영지 간의 외교적 마찰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사이카는 계속 존칭을 유지하면서 네오두와 대화를 나누었다.

“마왕성 측에서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소. 텐자흔 마왕의 탄신일 파티 초대장을 가지고 왔다고 들었소만.”

“맞습니다. 제 주인님께서 공식 사절로 저를 보내셨습니다.”

“곧 마왕성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워프진을 준비하겠으니, 잠시 귀빈 숙소에서 쉬고 계시오.”

“감사합니다. 아, 혹시 괜찮다면, 이곳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지금 주인님께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이오. 행정병, 사절분을 먼저 통신실로 안내하게.”

곧 행정병과 함께 네오두가 방 바깥으로 나갔고, 홀로 남은 사이카는 닫힌 방문 쪽을 바라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오래 살다 보니 텐자흔 따위의 사절을 대우하는 날도 오는군.”

강대국들 사이에 껴서 빌빌거리던 그 텐자흔이 이렇게 4대 패왕의 바로 뒤꽁무니까지 따라올 정도로 성장한 날이 올 줄도 몰랐고, 그런 텐자흔의 공식 사절을 주인님께서 불편함이 없게 대접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날이 올 줄도 몰랐었다.

그렇게 사이카가 홀로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을 그때, 통신실로 이동한 네오두는 직원의 도움을 받아 텐자흔 마왕성 쪽과 직통 연결을 시도하고 있었다.

“여기는 네오두, 여기는 네오두. 들리십니까?”

[비서실장 콘록이다. 얘기하라.]

“방금 국경선을 넘어 카훌 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 사령관인 사이카도 만났으며, 곧 워프진을 통해 카훌 마왕성으로 바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알았다. 마왕성에서의 모든 절차가 끝난 후 다시 보고하도록.]

“네.”

그것을 끝으로 통신기를 내려놓는 네오두였다.

그 시각, 네오두한테 보고를 받은 로한은 미리 켜놓은 체내 문서 프로그램에,

※ 네오두, 출발한 지 53분 만에 카훌 쪽 국경선 부대에 도착. 사이카 사령관이 주둔하는 부대임.

이라고 보고 내용을 작성했다.

이후 속으로 생각했다.

‘이러면 네오두가 돌아온 뒤, 칩을 회수해서 53분 경 좌표를 확인하면 되겠군.’

이번 사절단의 의복 안 ‘좌표 탐지 시스템’ 칩은, 원래라면 로한의 본체로 바로 좌표를 보내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넣지 않았다.

이유는 보안 때문이었다.

아무 때나 좌표를 주고받다가 행여나 텐자흔, 르기에 등이 그 전파를 느끼기라도 한다면? 그러면 ‘혼란’ 작전을 실행하기도 전에 계획이 망가지고 만다. 그래서 지금처럼 수작업으로 시간을 체크해서 문서 프로그램에 도착 시간을 입력해놓는 것이다.

지구나 엘도르처럼 인공위성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거기에 마왕성 안이라 사이보그 기능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없어서 일일이 시간을 전부 입력해야 하는 상황.

그래도 최첨단 CPU를 장착한 사이보그 신체를 보유한 로한 아닌가? 수작업이긴 해도 입력 시간이 잘못될 일은 없다.

‘일단 국경선 좌표는 수월하게 얻을 수 있겠군.’

지금 얻은 상대방 영지의 국경선 쪽 부대 좌표는, 이후 그가 실행할 작전명 ‘혼란’을 성공시키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 * *

잠시 후.

네오두는 카훌의 마왕성 대복도 중앙에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여기서 상위 귀족은 그 한 명뿐이었다. 좌우에 서 있는 최소 사령관급 이상의 소수 최상위 귀족들은, 네오두의 전신이 가느다랗게 떨릴 정도로 강렬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를 합쳐도 왕좌 오른쪽에 서 있는 총사령관, 료의 기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한 료의 기운 역시 왕좌에 앉아 있는 4대 패왕, 카훌의 기운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4대 패왕…!’

카훌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에 이미 잠식당해 있는 네오두. 벌벌 떨리려는 두 손을 주먹 모양으로 꽉 쥔 그를 향해 카훌이 물어왔다.

“텐자흔의 사절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군. 초대장을 가져왔다고?”

“그렇습니다, 마왕님.”

대답을 들은 카훌에게 옆에 서 있던 료가 초대장을 받아 직접 넘겨주었다. 빠르게 초대장을 읽은 카훌은 피식 웃었다.

“큭… 텐자흔, 그 풋내기가 이제 나한테 감히 초대장을 보낼 정도로 성장했군. 상위 귀족 시절에 내 밑에서 용병 생활을 하던 게 몇십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

대놓고 텐자흔을 자신의 아래로 표현하는 카훌의 말에도, 네오두는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자는 현재 명실상부한 데르툴 행성 최고의 마왕이니까.

카훌이 초대장을 한 손으로 흔들며 물었다.

“이 초대장, 다른 4대 패왕에게도 보냈나?”

“그렇습니다.”

“꽤나 솔직하게 대답하는군.”

“솔직하게 대답하라는 주인님의 명이 있었습니다.”

“그래? 그럼 파티에 굳이 4대 패왕을 전부 초대하는 이유도 말해줄 수 있겠군?”

“그것까진 제가 들은 바가 없습니다.”

끝까지 솔직하게 대답하는 네오두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카훌.

침묵이 길어지자, 가뜩이나 긴장하고 있던 네오두의 심장 박동은 더더욱 빨라졌다.

‘거절하면 어떡하지? 콘록 님께선 반드시 참석한다는 대답을 받아 오라 했는데….’

속으로 걱정하던 그때, 드디어 카훌의 입이 열렸다.

“텐자흔에게 가서 전해라. 파티 날에 맞춰서 참석하겠다고.”

“아! 알겠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크게 기뻐하는 목소리와 함께 대답한 네오두.

카훌은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나가면 병사가 숙소로 안내해줄 걸세.”

“네, 그러면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네오두는 공손히 허리를 숙인 뒤, 천천히 뒷걸음질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물러나는 내내 카훌이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있길래 행여나 트집을 잡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대복도를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없었다.

‘후… 일단 본 목적은 달성했다.’

네오두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병사의 뒤를 따라 멀어질 그때.

카훌은 료 등의 최상위급 귀족들과 이번 초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 평생 텐자흔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군그래. 아마 다른 마왕도 마찬가지의 기분 아닐까? 큭큭큭….”

“…….”

“이래서 난 이 대륙이 재밌어. 언제나 예상치 못한 놈들이 치고 올라오거든. 이전의 투할 놈도 그랬었고. 혹시 알아? 텐자흔, 그놈이 다른 4대 패왕을 제치고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이 올지?”

“…….”

대답 없는 부하들을 향해 카훌은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참석한다는 얘길 들으면 다른 4대 패왕 놈들도 모두 참석할 거다. 그 에고 높은 놈들이 알량한 자존심 따위를 지킨다고 엉덩이를 무겁게 유지할 리가 없지. 간만에 그 건방진 애송이들의 얼굴을 한꺼번에 보겠군. 머리가 얼마나 컸으려나? 후후후….”

“…….”

“료.”

“네, 주인님.”

대답해오는 료를 향해 카훌은 지시했다.

“이번 일정의 호위단은 특급으로 준비하도록.”

특급 호위 병력은, 보통 가장 위험도가 높은 장소를 방문할 때 사용한다. 이때 호위 병력은 무려 2인자인 료를 포함해 최소 최상위급을 앞두고 있는 실력자들로만 구성이 된다.

“4대 패왕을 모두 만나는 자리기도 하고, 또 르기에 그놈이 단순히 술만 먹고 가라고 우리를 초대했을 리가 없다. 뭔가 협상이나 계략이 반드시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주인님.”

오랜 시간 동안 카훌 밑에서 일한 료는 단번에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 시각, 병사의 뒤를 따라가던 네오두는 귀빈 숙소로 이동한 상태였다.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인이 공손히 허리를 숙인 뒤 그에게 물었다.

“지금 씻으시겠습니까? 곧바로 따뜻한 물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뇨, 아직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거절한 네오두는 자신을 여기까지 안내한 병사한테 물었다.

“그, 혹시 ‘진’으로 이동하는 차원 포탈 말입니다. 저 같은 외부인에게도 공개되어 있습니까?”

그의 물음에 병사는 바로 대답했다.

“네, 공개 상태입니다.”

“아, 그렇다면 지금 구경이 가능할까요?

“음… 일단 상관에게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는 병사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네오두의 표정은 밝아져 있었다.

‘이러면 비서실장님이 따로 지시한 부가 임무도 수행이 가능하다.’

콘록이 여기 오기 전 지시한 게 몇 개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반드시 각 영지에서 정복 작업 중인 차원의 포탈을 찾아가서 자세한 정보를 알아오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곳이 정복 작업 중인 차원, ‘진’ 대륙의 포탈은 공개되어 있었다.

‘하긴, 마왕들의 습성을 생각해보면 공개를 안 할 리가 없지.’

데르툴족의 최종 목적은 무조건 타 차원 정복이다. 그것이 본인 세력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차원 정복에 성공한 마왕들은 이 행성 내에서 20명이 넘질 않으며, 차원 정복에 도전한 마왕의 숫자도 역사상 100명이 채 안 된다.

차원 정복에 도전만 해도 이 행성 내에서는 꽤 강한 영지라는 소문이 돌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모든 외부인에게 그 증거인 차원 포탈을 공개하는 편이다. 해당 포탈을 비공개로 전환하는 경우는 정복이 실패에 가까워졌을 때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 편이다.

‘어째, 이번 사절 임무가 너무도 수월하게 진행되는 기분인데?’

네오두의 머릿속에 벌써부터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대로 100%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가면, 이제 자신의 앞길은 잘 닦여 있는 탄탄대로나 다름없으리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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