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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188화 (188/200)

제188화

‘일단 이번 파티에 초대장을 보낼 명단부터 정리해보자.’

며칠 뒤에 있을 마왕, 텐자흔의 탄신일 파티. 그때 타 영지 마왕들 초대에 관한 업무를 이번에 로한이 모두 전담하게 되었다.

로한은 체내에 저장된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연 뒤, 책상 위에 놓인 서류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기 시작했다. 읽는 속도와 작성하는 속도가 똑같았기에, 입력되는 속도 역시 엄청나게 빨랐다.

※ 초청장을 보낼 마왕 목록.

- 4대 패왕 : 카훌, 디하브, 위고스, 요르바.

- 전 투할 영지 쪽 마왕들 : 캉베, 리사크, 펠로슈브.

- 중간 세력이라 불리는 12 마왕 : 가즈피, 팡위, 델로, 우사파후, 하롸스, 말그라카휘, 틸로후슈, 멀시치, 라로츠, 랑타마리가, 쏘호란, 사펠-자가.

정리해보니 무려 19곳이다. 정말 많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절단들에게 조사하라고 명령할 차원 숫자는 더 많겠군.’

로한은 일어선 뒤, 한쪽 캐비닛을 열어 특급 비밀로 분류된 파일 폴더를 꺼냈다.

‘타 영지 차원 조사 목록’이라고 전면에 적혀 있는 그것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후 천천히 넘기면서 필요한 내용들만 문서 작성 프로그램에 옮기기 시작했다.

※ 좌표 조사를 해야 할 차원 목록.

1. 카훌

- 현재 정복 진행 중인 차원 : 진

- 정복 완료된 차원 : 쉬트라, 사르빅, 멘파스, 조파

2. 디하브

- 현재 정복 진행 중인 차원 : 델타

- 정복 완료된 차원 : 이자르, 트로슈바, 아르곤

3. 위고스

- 현재 정복 진행 중인 차원 : 폴라리스

- 정복 완료된 차원 : 오르마, 하말, 샤할라

4. 요르바

…….

‘…총 51개군.’

정말 엄청나게 많은 숫자인데, 이 중 절반 이상에 달하는 타 차원 대륙이 이미 데르툴족에게 점령당한 상태라는 게 더 놀라웠다. 어떻게 한 행성의 단일 종족이 30개에 가까운 차원을 모두 점령할 수 있단 말인가?

로한, 그가 두 번이나 데르툴족과 전쟁을 펼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들의 힘을 몸소 체감하지 못했다면 도저히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 보니 4대 패왕, 이놈들은 지금 행성에 남아 있는 데르툴이 힘의 전부가 아니군. 점령한 차원들 안에도 수많은 데르툴족이 살고 있을 테니.’

정보부에 있으면서 배운 것 중 하나인데, 데르툴족의 특성상 어지간하면 점령한 차원의 생명체들을 살려두지 않는다. 전부 마나를 흡수해서 자신의 마기로 변환시키는 편이니까.

즉, 점령당한 차원은 99% 이상 데르툴족이 산다고 한다.

그 차원 안에 살고 있는 데르툴족의 힘까지 합한다면, 실제 4대 패왕의 개개인 전력은 지금 눈에 보이는 것보다 최소 3배는 넘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놈들이 만약 지구나 엘도르를 노린다면 정말 위험하겠군.’

그렇게 되면 지금 텐자흔 세력의 위협과는 비교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사전에 미리 막아놔야 한다. 로한이 계획한 작전명 ‘혼란’을 통해 말이다.

‘아직 정복당하지 않은 23개의 차원을 이용해야 한다.’

저 23개의 차원은 당연히 데르툴족에게 대한 원한이 어마어마할 터. 그걸 이용하면, 잘하면 지구와 엘도르 차원 외에도 데르툴 행성을 침범할 또 다른 연합 차원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이 행성에 오기 전까진 몰랐는데, 지구와 엘도르 두 차원의 힘만 가지고 이 데르툴 행성을 침략하는 건 이젠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로한은 깨달은 것이다.

‘이 23개 차원의 좌표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사절들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

비서실장이라는 핵심 위치에 올라간 이상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있다. 보는 눈이 많아져서 혼자 몰래 움직이기 힘들다는 점이다.

지금 시점에서 로한 본인이 다른 영지에 몰래 건너가 차원 포탈 좌표를 얻어내는 행동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

‘이제 슬슬 그걸 사용할 때가 됐군.’

로한은 자리에서 일어선 뒤 집무실 바깥으로 향했다. 입구 쪽에 앉아 있는 비서가 일어서자 로한이 물었다.

“마왕님과 총사령관님은 아직 안 돌아오셨나?”

“넷.”

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잠깐 점령한 킬라단 마왕성을 구경하러 간다고 했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다.

“지금 새 숙소로 이동한다고 전해.”

“넷.”

그 말을 남긴 후 마왕성 입구 바깥으로 걸어가는 로한. 수많은 데르툴족 병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입구 바깥에 도착하니, 비서의 연락을 받자마자 출발한 고급 리무진 한 대가 때마침 입구 앞에 도착했다.

마왕성 경비병이 열어준 뒷문으로 탑승한 로한은 운전병에게 지시했다.

“비서실장 숙소로.”

“넷.”

잠시 후, 로한은 베테랑 운전병의 부드러운 운전 스킬 덕분에 편안한 승차감을 느끼며 자신의 새로운 숙소에 도착했다.

이곳은 마왕성 바로 옆에 위치한 개인 저택. 비서실장 정도 되는 최상위 귀족은 간부 숙소 같은 고급 빌라가 아닌, 단독 주택을 숙소로 이용한다.

군용차에서 내리자마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데르툴족 집사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이곳 집사, 호츠라고 합니다.”

“잘 부탁한다.”

“네. 이쪽으로….”

호츠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저택 내부는 딱 세 단어로 설명할 수 있었다. 고풍스럽다. 호화롭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넓다.

저택을 구경하던 로한에게 호츠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저택 내부 구조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건 다음에 하지. 지금은 피곤해서 좀 쉬고 싶군.”

“알겠습니다. 침실로 모시겠습니다.”

호츠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침실 역시 엄청나게 넓었다. 맨 처음 콘록을 제거했을 때 들어갔던 국경선 쪽 간부 숙소가 이 방 크기만 했던 것 같은데.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옆의 마정석 통신기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럼 쉬십시오.”

꾸벅 인사하고 문을 닫은 호츠. 이제 방 안에는 로한 혼자 남게 되었다.

호츠가 멀어지는 것을 느낀 로한은 바로 체내 시스템을 가동했다.

첫 번째는 도청 장치 확인이었다.

[…검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어떠한 탐지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도청 장치는 없었고, 이제 두 번째 시스템을 가동할 차례다.

로한은 몸속에 내장되어 있던 작은 정육면체의 기계를 꺼냈다. 작동 버튼을 누르자 기기가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여섯 면 전체에서 작은 안테나 같은 것이 불쑥 튀어나왔다.

동시에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소유주 ‘로한’의 ‘마나 감지 방지 시스템 캡슐’ 전원이 켜졌습니다.]

[최신 개발된 ‘오메가 파장’을 내뿜겠습니다. 이 파장 안에서는 마나를 이용한 어떤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외부에서 쉽게 눈치챌 수 없습니다.]

[기기 작동을 시작합니다. 지속 시간은 최대 15분입니다.]

곧 아주 가느다란 진동과 함께 ‘오메가 파장’이 침실 전체를 뒤덮었다. 가까이 있는 로한도 최첨단 마이크 시스템으로 아주 간신히 들을 수 있는 수준이니 다른 데르툴족은 절대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캡슐은 에너지원이나 마기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텐자흔이나 르기에 정도만 아니면 쉽게 눈치챌 수 없을 거야.’

공기의 파장을 이용해 마기를 특정 공간 안에 가두는 획기적인 시스템. 정말 에드먼의 아이디어와 개발력은 언제나 로한을 감탄하게끔 만든다.

어찌 되었든, 로한은 이 캡슐을 사용한 본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일단 마정석을 꺼내야지.’

로한은 품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꺼내 연 뒤, 킬라단 마왕성에서 챙겨 온 최고급 마정석 몇 개를 꺼냈다. 이후 그것들을 방문 모양으로 한쪽 벽에 부착했다.

위와 아래에는 4개씩, 그리고 양옆에는 6개씩 적절한 간격을 두고 부착한 뒤, 마기를 부여해서 서로 마기가 연결되게끔 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검은 마기 선으로 이루어진 문 모양이 벽에 형성되었다.

‘좋아. 이 상태로 해보자.’

[미리 저장된 ‘로한의 미니 아공간’ 좌표를 불러오겠습니다.]

[해당 좌표로 이동하는 차원 이동 텔레포트를 생성합니다.]

[생성 작업에 30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동안 에너지원이 계속해서 소모됩니다….]

30초 뒤.

곧 벽에 푸른색으로 일렁이는 차원 이동 포탈이 만들어졌다.

이 안에 들어가면 로한의 아공간이 있다. 이번 데르툴 행성 잠입을 위해 에드먼이 개발한 새로운 최첨단 물품들이 이 안에 가득 담겨 있다.

‘가서 전부 다 꺼내 와야겠군.’

텐자흔과 르기에가 자리를 비운 이번이 아니면 언제 포탈을 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필요한 물품은 지금 전부 꺼내 오는 게 좋다.

1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다 꺼내 오냐고?

걱정 마라. 로한에게는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해둔, 아공간 주머니들이 품 안에 한가득 있는 상태니까.

* * *

3일 뒤.

비서실장 집무실 안에는 수많은 데르툴족이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전부 모였나?”

“넷!”

로한의 물음에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모습으로 일제히 외치는 이들은, 이번에 초청장을 다른 영지의 마왕으로 전달하기 위해 로한의 손으로 직접 뽑은 사절들이었다.

“다들 이번 임무에 필요한 지식들은 모두 암기했나?”

“넷!”

“그러리라 믿는다.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간 죽을 수도 있을 테니.”

긴장한 얼굴의 상급 귀족 사절들을 한 명씩 바라보면서 로한은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너희는 가장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알고 있겠지만, 현재 주인님에 대한 다른 마왕들의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아. 4대 패왕을 비롯한 모두가, 급속도로 강해지고 있는 우리 세력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

“즉, 너희들을 보는 시선도 그리 좋진 않을 거라는 얘기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실수한다? 그 순간 너희들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랜 스파이 생활을 한 내 경험담에 의한 충고이니, 새겨듣도록.”

“…꿀꺽.”

사절 중 한 명이 긴장해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로한의 최첨단 고막에 미세하게 들려왔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미리 말하지. 배신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조금이라도 마음을 다르게 먹는 순간, 아까 전 주인님 앞에서 했던 ‘카인의 맹세’가 바로 작동할 것이다. 알겠나?”

“넷!”

“자, 모두 이것을 하나씩 받고 착용하도록.”

로한은 옆에 놓인 옷가지들을 하나씩 사절들에게 넘겨주었다.

그것은 검은색 바탕으로 매우 깔끔하게 디자인된 텐자흔 세력의 공식 사절 복장이었다. 다들 이 복장을 입으니 그제야 좀 사절 느낌이 풍겼다.

로한은 씨익 웃었다.

“다들 잘 어울리는군. 이번에 너희들을 위해 주인님께서 특별히 따로 제작하신 의상이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잘 관리하도록 해라.”

“넷!”

크게 대답하는 사절들을 보며 로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시스템이 별문제 없이 작동해야 될 텐데.’

사실 저 의복들 안에는 에드먼이 개발한 최첨단 ‘좌표 탐지 시스템 칩’이 내장되어 있었다. 이번 사절단을 최종 관리하는 게 로한이었기 때문에, 의복 안에 칩을 몰래 심는 행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확실히 아무도 눈치채진 못했군.’

에드먼의 말로는 마나가 아예 없는 순도 100% 최첨단 기술로만 이루어진 칩이라 최상위 귀족급 실력자도 정말 대놓고 검사해야만 눈치챌 수 있는 수준이라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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