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0화
갑자기 사후바의 정수리가 부풀어 오르면서, 마기가 폭발적으로 일렁이는 모습.
이건 누가 봐도 자폭하려는 상황이었다.
막 폭발하려던 그때.
“위험합니다!”
옆에 부복해 있던 로한이 반사적으로 제자리에서 튕기듯이 몸을 날려 르기에를 옆으로 밀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콰아앙!
강력한 폭발이 로한 주변을 뒤덮었다.
“크윽!”
로한이 신음과 함께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그의 온몸에 생겨난 작고 큰 상처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이었다.
놀란 텐자흔이 눈을 크게 떴다.
“이런… 괜찮나, 본부장?”
“윽… 저는, 괜찮습니다.”
억지로 대답하면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로한의 모습. 다행히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기 시작하는 걸 보니 치명상을 입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때, 로한 덕분에 폭발 범위에서 벗어난 르기에는 쓰러진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내내 놀란 눈으로 두뇌 부분이 날아간 사후바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중급 귀족 따위가 자폭 공격을…!’
자폭 공격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자폭할 부위의 마기를 완벽하게 컨트롤해서, 나머지 신체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게끔 만들려면 최소 최상급 귀족 이상의 뛰어난 마기 조절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후바의 자폭 공격은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심지어 자폭 방지 마법이 룬어로 새겨져 있는 특제 쇠사슬에 묶여 있는 상태인데 도대체 어떻게?
그때였다.
“크…흐흐…!”
사후바의 입에서 사악한 웃음소리가 들려온 것은 말이다.
“아니…!”
이번엔 텐자흔과 로한조차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뇌핵이 날아간 사후바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텐자…흔! 감히… 내… 영토를… 점령하려… 테러를… 하다니…!”
그런데, 더듬더듬 말을 잇는 사후바의 목소리가 평상시와는 달랐다. 기존 사후바보다 훨씬 굵고, 더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로한에게는 매우 익숙한 목소리였다.
‘리사크의 목소리인데?’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마왕, 리사크의 목소리가 왜 사후바에게서 들려온단 말인가?
그가 놀라거나 말거나 사후바는 계속 텐자흔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건방진… 놈…. 너의… 오만한… 기세도… 잠시…뿐이다…. 내… 영지를… 점령하기… 전에… 네놈이… 먼저… 주변 세력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크… 크하하…하하!”
크게 광소하던 사후바의 몸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또다시 자폭하려는 모습!
하지만 이번엔 르기에가 반응했다.
폭발하기 전에 재빨리 마기를 끌어 올려 사후바의 주변에 보호막을 생성한 것이다.
콰아앙!
또 한 번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이번엔 아까보다 훨씬 화력이나 폭발 규모가 컸다.
하지만 그것은 르기에의 마기 보호막을 뚫어내지 못했고,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못했다.
완벽하게 방어를 성공한 르기에는 곧 보호막을 다시 걷어냈다. 폭발 후 남은 것은 한때 사후바가 입고 있던 천 쪼가리 몇 개뿐이었다.
“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텐자흔이 여전히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한 상태로 혼잣말을 했다.
그 말에 바로 대답한 것은 르기에였다.
“인형술입니다.”
“인형술?”
“마왕 리사크의 고유 능력 말입니다.”
“아…!”
그제야 텐자흔도 어디선가 들어봤다는 표정을 지었다.
르기에의 설명은 이어졌다.
“최근에 얻은 정보에 의하면, 마왕 리사크는 카인의 맹세를 한 모든 부하들을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 인형술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능력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100% 확신하지는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후바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이제야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금 들은 목소리는, 분명 리사크의 것이었습니다.”
“그건 나도 동의하네.”
텐자흔 역시 리사크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기본 정보쯤은 알고 있었다. 그 정보 안에는 당연히 목소리도 포함이 되어 있고 말이다.
곧 르기에는 자책했다.
“저의 불찰입니다. 제아무리 마기 억제 쇠사슬에 묶여 있다 하더라도, 마왕의 고유 능력은 그 모든 걸 무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깨달았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주인님.”
“나는 괜찮으니 네 부하나 잘 살펴라. 너 구하다가 죽을 뻔했다.”
텐자흔은 턱짓으로 로한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르기에는 그를 여러 가지 감정이 담겨 있는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일단 의원실로 가서 치료부터 하도록. 대화는 상처가 다 나은 다음 하도록 하지. 본부장을 의원실로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주인님?”
“어서 가게.”
“감사합니다, 주인님.”
허락을 맡은 로한은 허리를 숙인 뒤 대복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알아서 처리한다 했던 거였군.’
로한도 리사크의 고유 능력을 자세히 몰랐었다. 첫날 술자리에서 얼핏 인형술이라는 단어만 들었을 뿐, 자세한 설명을 못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랬더라? 부하들이 함부로 마왕의 능력을 떠벌리고 다니는 건 불경의 죄에 속한다 했던가?
‘어쨌든 다행이다. 이로써 더 이상 의심받을 만한 건더기가 사라졌어.’
사후바가 저렇게 사라진 이상, 이제 그의 정체를 아는 존재는 마왕성 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방금 전 르기에를 사후바에게서 밀쳐내면서 신뢰도도 한층 더 쌓았고 말이다.
* * *
잠시 후.
리사크 마왕성 내 총사령관 집무실.
“총사령관님, 정보 본부장입니다.”
“들여보내.”
책상 뒤에 앉아서 서류에서 눈을 안 뗀 채로 대답하는 타바츠. 곧 문이 열리고 정보 본부장이 경례를 한 뒤 책상 앞까지 걸어왔다.
“방금 ‘콘록’이 보내온 정보입니다.”
타바츠는 바로 본부장이 내민 서류를 받은 뒤 읽기 시작했다.
‘콘록’은 위기에서 벗어났음.
사후바는 자폭했고, 르기에 등은 전혀 주인님의 고유 능력을 예상하지 못함.
자폭 당시 ‘콘록’은 임기응변을 통해 텐자흔과 르기에의 신임을 얻음.
“…잘됐군.”
읽던 중간에 타바츠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주인님의 고유 능력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야.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능력이라 텐자흔 쪽에서도 예상치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적중했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럴 땐 그나마 쓸모가 있군.”
“…네?”
“아닐세.”
순간 당황하는 본부장에게 손사래를 친 후 타바츠는 계속 서류를 읽어갔다.
사후바의 자폭 이후 텐자흔 쪽은 기존 계획을 바꿈.
현재 주인님 쪽에서 텐자흔 쪽에 큰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 주인님 영지가 아닌 다른 세력을 공격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함.
아마도 며칠 전 폭파 공작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킬라단 세력이 첫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음. ‘콘록’도 그곳에 투입될 예정임.
“목표가 주인님에서 킬라단 쪽으로 바뀌었다라…. 이건 희소식이군.”
안 그래도 최근에 캉베 세력 쪽 국경선에 전력을 집중시킨 상태라 텐자흔 쪽 국경선에 더 병력을 보낼 여력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러면 진짜 한시름 덜게 되었다.
타바츠는 본부장에게 지시했다.
“텐자흔 쪽으로 원군 보낼 계획 전부 취소시켜.”
“네. 사령관들에게 그렇게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그럼 가봐.”
축객령을 내리는 타바츠. 하지만 본부장은 바로 나가지 않았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한 시간 전, ‘콘록’이 보낸 정보에 텐자흔 쪽 스파이가 많다는 정보가 있었던 거, 기억나십니까?”
“알지. 그래서 긴급 체포하라고 각 사령관들에게 명령도 내렸지 않은가?”
“네. 그것에 관련된 새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본부장은 말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번에 폭파된 8개 구역에 모두 상급 귀족 이상의 스파이가 있다는 ‘콘록’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폭파되었을 때 자리를 비웠던 상급 귀족들을 긴급 체포해서 심문한 결과, 모두 스파이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전부? 허… 로그한이 아주 큰일 하나 했군.”
“그런데, 그 로그한에 대한 정보가 하나 들어왔는데….”
본부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22구역에서 잡힌 스파이, 가르텡이 자백한 내용으로는 22구역의 폭파 작업을 직접 진행한 이가 다름 아닌 콘록이라고 합니다.”
“뭐?”
타바츠의 눈이 커졌다.
“22구역이라면, 모든 구역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아니야?”
“그렇습니다. 병사들도 가장 많이 희생된 곳입니다.”
“거길 폭파시켰다고? 다름 아닌 카인의 맹세까지 한 로그한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건….”
말끝을 흐리는 본부장을 향해 타바츠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적진의 스파이들이 세뇌된 상태로 넘어와서 거짓 자백을 늘어놓는 걸 하루 이틀 겪나? 명색이 정보 본부장이 되어가지고 이런 정보에 속아 넘어가려고 했어?”
“아, 아닙니다!”
“정신 차려! 네놈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앉아 있는지 다시 한번 명심하란 말이야!”
“죄송합니다!”
차렷 자세로 외치는 본부장을 향해 혀를 찬 타바츠는, 서류를 다시 넘기면서 또 축객령을 내렸다.
“그렇게 의심할 시간에 ‘콘록’과의 연락망이나 더 늘릴 생각을 해. 지금 당장 콘록이 킬라단 쪽 국경선으로 이동하면 직통으로 연락할 방법이 있긴 하나?”
“아직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서둘러! 텐자흔 놈들의 병력 규모면 당장 전쟁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넷!”
경례를 한 본부장은 빠른 걸음으로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 * *
다시 20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여기는 텐자흔의 마왕성 안.
“벌써 왔군.”
총사령관 집무실로 찾아온 로한에게 르기에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로한은 경례 후 대답했다.
“큰 상처가 아니라서 금방 나을 수 있었습니다.”
“앉아.”
르기에는 그를 소파에 앉힌 후, 블랙커피까지 손수 타서 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로한은 생각했다.
‘이제 의심을 완전히 푼 건가?’
이전에 넷이서 총사령관실을 찾아왔을 때랑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말투나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진 게 대놓고 체감이 될 정도였다.
곧 로한의 옆자리에 앉은 르기에가 입을 열었다.
“고맙다는 말을 아까 못 했군. 몸을 날려 나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서 고맙네.”
“감사합니다만, 제가 과한 행동을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총사령관님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대응하고도 남았을 것 같습니다.”
“후후후… 그래도 상처는 생겼을 거야. 이번에는 나도 전혀 예상치 못했거든.”
르기에는 진심으로 대답했다. 그가 데르툴 행성으로 귀환한 이후 방금 전처럼 놀랐던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계속 정체를 의심한 것도 사과하지. 첫 만남 때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다른 놈들보다 더 의심을 많이 한 것이 오늘 같은 사태를 만들어 버렸네.”
“아닙니다. 저라도 직속 부하 셋이 모두 스파이였다면 총사령관님처럼 계속 의심했을 겁니다. 전 정말 괜찮습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서 고맙군.”
미소와 함께 대답하는 르기에의 눈빛은 따스했다. 저 눈빛은, 의심하고 있으면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눈빛이다.
곧 르기에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그동안 자네에게도 공유하지 못했던 ‘특급’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야.”
“!”
로한은 속으로 눈빛을 빛냈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정보를 들을 수 있는 건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