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179화 (179/200)

제179화

‘일단은 알려야겠지.’

로한은 주변을 돌아본 뒤, 이전에 사후바와 같이 향했던 그 구석진 건물 사이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품에서 작은 쪽지를 한 장 꺼냈다.

쪽지를 펼친 뒤 그곳에 손바닥을 갖다 대자, 인공지능 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저 프린팅’ 시스템을 활성화합니다.]

[기존에 저장해 두었던 ‘리사크_보고.txt’ 파일 내용을 프린트하겠습니다.]

[프린팅이 완료되었습니다.]

로한은 완성된 쪽지를 확인해 보았다.

텐자흔 쪽에서 이번 작전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획득. 서쪽 국경선 전체에 다수 잠입한 텐자흔 쪽 스파이들이 보내준 정보로 예측하는 중.

스파이들 중 상위 귀족도 다수 있음. 22구역의 가르텡이 그중 한 명이며….

아까 르기에를 만나기 전에 미리 내부 시스템을 통해 작성해놨던 텍스트 파일 내용이 쪽지에 글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프린트된 모습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기 때문에 로한은 쪽지의 내용을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확인해 보았다.

…그래서 함정에 빠져 차자, 사후바, 하즈쿠슨의 정체가 발각되었고, 체포 후 사후바를 제외한 둘은 소멸되었다.

사후바는 현재 텐자흔의 마왕성으로 끌려간 상태. 곧 강도 높은 심문 및 세뇌를 받을 것이라 예측된다. 모두 털어놓는 순간 ‘콘록’ 본체의 정체도 위험해지게 된다.

30분 뒤 거처에서 통신이 가능하다. 그때 앞으로의 행동 방향을 지시 바람.

쪽지를 다 읽은 로한은 품에서 성냥갑을 하나 꺼냈다. 이전에 사후바가 병사에게 받았던 그 성냥갑이었다.

안에 쪽지를 접어 넣은 그 순간, 골목 반대편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엇!”

“중장님!”

놀란 표정으로 바로 경례를 하는 두 병사는, 아까 전 봤던 그 리사크 쪽 스파이들이었다.

로한은 그들에게 다가간 뒤 입을 열었다.

“아깐 미안했네. 사후바가 좀 선을 넘었지? 새 성냥갑을 다시 사 왔으니, 받게.”

“아… 감사합니다.”

어색한 표정으로 연기하면서 성냥갑을 받는 스파이들의 모습을 확인한 로한은 몸을 돌려 다시 사령부로 향했다.

걸어가면서 그는 생각했다.

‘과연 리사크 쪽에서 30분 안에 괜찮은 해결책을 떠올리는 게 가능할까?’

당장 로한도 사후바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좋은 대책이 안 떠오르는 상황. 과연, 리사크 세력의 두뇌라 불리는 타바츠가 이 상황에 대한 답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로한은 최악 중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기 시작했다.

‘정 아무 대책이 없으면 어쩔 수 없지. 몰래 가둬놓은 곳에 잠입해서 나르커즈 약물이나 최면 시스템을 이용하는 수밖에.’

지금 로한의 경지라면, 마왕성 지하 감옥까지 있는 중~상급 귀족들쯤은 충분히 제압한 후 사후바의 옥방 안까지 접근하는 게 가능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마왕성은 르기에 등의 최상위 귀족들이 우글거리는 곳. 로한이 잠입하는 도중에 누구 한 명이 눈치챌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정말 최후 중의 최후일 때 사용하고 싶은 게 로한의 심정이었다.

* * *

로한의 쪽지를 받아 간 스파이는 바로 비밀 연락망을 통해 리사크 마왕성의 정보부에 보고했고, 정보 본부장은 바로 해당 내용을 서류로 뽑아서 타바츠에게 갖다 주었다.

“음….”

서류를 바라보며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던 타바츠.

곧 그는 본부장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일단 알았어. 이건 내가 주인님과 직접 얘기를 해보겠다.”

“넷.”

홀로 남은 타바츠는 바로 서류를 든 채로 집무실을 빠져나와 리사크의 침실로 향했다.

문 앞에 서자, 옆의 경비병이 외쳤다.

“주인님. 타바츠 총사령관입니다.”

“들라 해라.”

곧바로 열린 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매력적인 젊은 여성 데르툴족과 함께 침대에서 부비적거리던 발가벗은 리사크의 모습이 바로 시야에 들어왔다.

리사크는 침대에 늘어지게 누운 상태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

“이번에 보낸 스파이들과 관련된 문제로 보고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음? 그건 자네가 알아서 처리한다 하지 않았나?”

“이번만큼은 마왕님께서도 반드시 확인하셔야 합니다. 마지막 밑의 세 줄만 읽으십시오.”

“…줘봐.”

리사크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서류를 받았고, 정말 밑의 세 줄만 딱 읽는 모습이었다.

“흠… 잡힌 스파이 때문에, 남아 있는 스파이의 정체가 탄로 날까 두렵다?”

“네. 그래서 저는 이 스파이를 살리기 위해, 감히 마왕님께서 능력을 사용해 주시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리사크의 눈이 커졌다.

“내 능력을? 고작 스파이 한 명 따위 살리려고?”

“따위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현재 그는 텐자흔 세력의 2인자, 르기에와 가장 가까운 정보 본부장의 자리까지 올라가 있습니다. 이 스파이 한 명만 지킬 수 있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이상의 투자 없이 손쉽게 텐자흔 세력의 모든 핵심 정보를 얻게 됩니다.”

“음… 꼭 내 능력이 필요한가? 잘 찾아보면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

“다른 곳이면 모르겠지만, 로그한과 사후바가 모두 텐자흔 마왕성에 갇힌 이상 마왕님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끄응….”

귀찮음 때문에 인상을 구기는 리사크.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타바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럴 때라도 좀 마기를 사용해라, 이 굼벵이 새끼야.’

맨날 모든 일은 타바츠한테 위임해놓고 24시간 놀고먹으면서 한 번 본업 좀 하라는 게 저렇게 귀찮을까?

“…알았다. 언제 시작하면 되나?”

곧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묻는 리사크의 말에 타바츠는 대답했다.

“정확히 30분 뒤가 적절할 것으로 보입니다.”

“30분? 에잉! 그럼 흥이 팍 식는데….”

양옆의 나체인 여성 데르툴족을 보며 아쉬운 입맛을 다시는 리사크.

그 모습을 타바츠는 입을 다문 채, 한심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30분 뒤쯤.

텐자흔 마왕성 내 대복도.

왕좌에 앉아 있던 텐자흔이 르기에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호오~ 그랬단 말이지?”

“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잠시 후 정보 본부장이 설명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본부장 놈은 믿을 수 있겠어?”

텐자흔의 못 미덥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제아무리 의심되는 행동이 없다 하더라도, 이번에 발각된 스파이들과 리사크 세력 쪽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지내던 놈 아냐? 그 정도면 마음이 없었어도 셋에게 물들어서 스파이가 될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저도 맨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려 세 번의 테스트를 거친 것입니다.”

르기에는 술술 대답을 이었다.

“특히 마지막 테스트가 주요했습니다. 만약 그가 리사크 세력의 스파이였다면, 절대로 그 셋에게 손톱을 겨누지 못했을 겁니다. 상급 귀족 이상의 스파이들은 기본적으로 카인의 맹세를 한 뒤 넘어오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우리 세력도 그렇지 않습니까?”

“흐음….”

“정 못미더우시면, 조금 이따가 그가 도착했을 때 한 번 더 테스트를 해보시지요.”

“호오~ 또 준비한 게 있나 보지?”

“그렇습니다, 주인님. 어떤 테스트인지 설명해 드리자면….”

막 설명하려던 르기에를, 텐자흔이 갑자기 손을 들어 멈추게 만들었다.

“지금 그놈이 마왕성 입구로 들어오고 있어. 혹시 우리 목소리를 들을지 모르니, 아예 도착한 후 설명해주게.”

“알겠습니다, 주인님.”

기본적으로 상급 귀족 이상은 마왕과 카인의 맹세를 하게 되고, 이후 해당 데르툴족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마왕이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은 불가능하지만, 최소 이 마왕성 내의 위치는 완벽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콘록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도 텐자흔은 바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대복도에 등장한 콘록이 왕좌와 20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춘 뒤, 바로 부복을 했다.

“정보 본부장, 콘록이 주인님을 뵙습니다.”

“그래. 이번 작전 때 큰 활약을 펼쳤다 하더군. 정말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그런데… 이번에 자네와 함께 넘어왔던 셋이 모두 스파이로 밝혀졌다면서?”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묻는 텐자흔.

로한은 더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주인님.”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설마 이중 스파이로 돌아오다니…. 나도 리사크 놈들처럼 하급 스파이들한테도 전부 카인의 맹세를 받을 걸 그랬어.”

당시 마기가 바닥난 상태라서 콘록 같은 중급 이상의 놈들한테만 카인의 맹세를 받았던 게 화근이 될 줄은 그도 상상하지 못했다.

텐자흔은 르기에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때 자네 말이 맞았어. 좀 더 무리를 했었더라도 전부 카인의 맹세를 받았어야 해.”

르기에는 대답 없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로한이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던 텐자흔이 직접 물어왔다.

“자네만큼은 마음이 변할 일은 없겠지?”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주인님. 제가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총사령관님께서 확인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르기에가 입을 열었다.

“나는 확인했지만, 아직 마왕님께서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지금 한 번 더 테스트를 거치려고 한다.”

“……!”

“데려와라.”

르기에가 입구 쪽을 향해 크게 외쳤다.

잠시 후, 병사들 둘이 포박된 상태의 사후바를 질질 끌듯이 데려온 뒤 강제로 로한 옆에 무릎을 꿇렸다.

여전히 피투성이인 사후바를 바라보며 르기에가 말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저 스파이를 세뇌시키려 합니다. 마왕님도 아시겠지만, 아직 상급까지 올라오지 못한 데르툴족은 쉽게 세뇌가 가능하고, 동시에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100% 거짓 없이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 그렇지.”

“만약 정보 본부장이 스파이들과 아무 연관이 없다면, 세뇌시킨 사후바의 입에서 어떠한 의심될 만한 정보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관이 있다면, 반드시 털어놓겠죠.”

“호오~ 그렇겠군! 아주 좋은 생각이야.”

감탄하는 텐자흔을 향해 르기에는 허리를 숙였다.

“감사드립니다, 주인님. 그러면 지금 바로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사후바 쪽으로 다가가는 르기에. 마왕급 실력을 가지고 있는 그가 직접 세뇌를 하려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을 흘끗 바라보고 있는 로한은 속으로 걱정하는 중이었다.

‘정말 타바츠 말대로,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둬도 되는 건가?’

정확히 10분 전.

텐자흔 쪽에서 마련해준 로한의 임시 거처에서 그는 타바츠의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가 들은 내용은 짧았다.

아무 행동도 하지 말도록. 사후바는 10분 이내에 주인님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아무 사전 작업 없이 마왕성에 들어온 건데, 이렇게 대놓고 세뇌 작업을 시작할 줄은 몰랐다. 최소 몇 시간 뒤에나 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어쩌면 리사크 쪽에서 나를 버린 것일 수도 있다.’

만약 머릿속에 떠오른 최악의 가정이 현실화된다면, 그는 곧바로 르기에 및 텐자흔을 기습한 뒤 전력을 다해 이곳을 벗어날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텐자흔 쪽 스파이 임무는 불가능해지겠지만, 일단은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차원 이동 시스템을 미리 예약해 놔야겠군.’

속으로 시스템 예열을 막 하던 그때.

사후바 바로 앞에 도달한 르기에가, 조용히 손을 사후바 머리 위에 올렸다.

그 상태로 세뇌 마법을 사용하려던 그때.

“……!”

갑자기 르기에의 두 눈이 커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