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8화
로한은 이후 가르텡 등과 함께 빠르게 폭탄 설치 작업을 계속했다.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적진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굉장히 위험한 작업.
하지만 다행히 가르텡 등이 있어서 조금 더 수월해지긴 했다.
“두 번째 폭탄은 이곳에 심으시면 됩니다.”
다른 창고 근처로 이동한 가르텡이 그렇게 말했고, 로한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원래 설치 장소는 창고 안 아닌가?”
“맞습니다만, 현재 창고 근처에 경비병 숫자들이 꽤 많습니다.”
대답하는 가르텡 옆에는 한 명의 리사크 경비병이 기절한 채 쓰러져 있었다. 창고 근처에서 서성이던 놈을 만약을 대비해 처리한 후 혹시 몰라 이곳까지 끌고 온 것이다.
가르텡의 대답이 이어졌다.
“리사크 쪽에서 30분 전쯤부터 갑자기 창고 주변에 병사들 배치를 늘렸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작전에 대한 정보가 일부 리사크 쪽의 귀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면서 로한을 흘끗 바라보는 가르텡.
그 눈빛은 분명 의심의 눈초리였다.
하지만 로한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당당히 되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나?”
“죄송합니다.”
바로 눈을 깔아 내리는 가르텡. 역시 군대에선 계급이 깡패다.
다시 창고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로한은 생각했다.
‘왠지 르기에한테 무언가 언질을 받은 것 같군.’
방금 전 눈초리도 그렇고, 각 구역마다 상급 귀족 스파이가 전부 합류했다는 것도 그렇고…. 뭔가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혹시 로한이 기존 작전대로 바로 리사크 쪽으로 귀환하겠다고 얘기했으면 바로 그를 제압하기 위한 술수를 쓰지 않았을까?
확실히, 작전을 취소하고 르기에의 명령을 그대로 따른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좀 더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겠어.’
마음을 잡은 로한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저 병사들을 모두 소리 소문 없이 제압하면 되잖아?”
“그게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대략 열 명 가까이 지키고 있고, 감시 마정석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기다려.”
“…엇, 안 됩니다!”
갑자기 뛰쳐나가는 로한의 행동에 가르텡은 당황해했다. 작전대로 움직여도 성공할 확률이 희박한 이번 작전에 왜 단독 행동을?
하지만 곧,
‘아니!’
가르텡의 당황한 표정은 곧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로한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창고 근처의 경비병들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창고 안으로 잠입한 후, 다시 걸어 나와서 가르텡 등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할 때까지 어떤 경비병의 외침이나 감시 마정석의 알림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정말 다 제압한 건가?’
가르텡은 긴가민가하면서도 부하들과 함께 창고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그는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6명의 기절한 경비병들의 모습을.
‘정말 다 제압했잖아!’
가르텡 등이 놀라거나 말거나, 로한은 창고 중앙 바닥을 파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다 파고 난 뒤 그는 가르텡을 돌아보았다.
“뭐 해?”
“…앗, 죄송합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후 부랴부랴 들고 있던 폭탄을 꺼내는 모습.
이후 바닥에 매설하면서 그는 생각했다.
‘이 정도 무위는 최소 최상위 귀족급이 아니면 불가능한데….’
그가 상급 귀족이기 때문에 잘 안다. 중급 귀족이 섞여 있는 경비병들을 들키기 않고 모조리 제압함과 동시에, 창고 안의 감시 마정석의 위치를 찾아내서 알림음이 들리기 전에 박살 내는 과정을 물 흐르듯이 모두 마치려면 자신보다 최소 몇 배는 더 빠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건 르기에 님이 사전에 말씀해 주셨던 경지 그 이상이잖아?’
또다시 로한을 흘끗 돌아보는 가르텡.
이번에 바라보는 눈초리에는 의심이 아닌, 두려움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로한은 기존에 계획했던 장소에 모두 폭탄을 매설했다.
그 과정 동안 총 네 곳의 창고 주변 경비병들을 정리했고, 그 숫자는 50명에 육박했다. 혼자서 그냥 무쌍을 찍은 것이다.
“이제 이 버튼을 누른 뒤 바로 귀환하시면 됩니다. 누르시면 1분 뒤 폭파합니다.”
가르텡이 폭탄 스위치를 로한에게 건네며 말했다.
받은 로한은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눌렀고,
“그럼.”
바로 눈앞에 가르텡이 만들어 준 차원의 틈 안으로 들어갔다.
로한을 삼킨 차원의 틈이 이내 사라진 걸 확인한 가르텡은,
“자, 서둘러라.”
재빨리 부하들과 함께 해당 지역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폭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1분이 지난 뒤.
콰과과과광!
다섯 개의 매설된 폭탄이 일제히 폭발하면서 거대한 화염 구름을 생성했다.
이후 화약 물자들이 연이어 폭파하면서, 22구역 전체는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뭐, 뭐야?!”
“모두 피해!”
콰아앙!
“끄아악!”
여기저시서 들려오는 폭파음과 비명을 멀리서 듣고 있던 가르텡은, 바로 통신 마정석을 든 채로 텐자흔 세력 쪽에 짧은 한마디를 남겼다.
“22구역 작전 성공.”
* * *
차원의 틈을 이용해 로한이 이동한 곳은 텐자흔 세력 쪽 국경선 근처였다.
기다리고 있던 운전병의 차를 타고 다시 사령부로 복귀한 로한은, 예상치 못한 이를 만날 수 있었다.
“왔나?”
미소를 띤 채 로한을 맞이한 그는 르기에였다.
차렷 자세로 경례를 한 로한이 물었다.
“이곳까지 직접 오셨습니까?”
“내가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서 말이지. 자네와도 관련된 일이고.”
르기에는 옆을 돌아보았다.
“안내하게.”
같은 최상위 귀족, 펫가가 고개를 끄덕인 후 둘을 데리고 사령부 건물을 나섰다.
군용차에 둘을 태운 뒤 그는 직접 운전해서 한 건물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바로 수용소였다.
곧 셋은 수용소에서 가장 깊은 지하에 있는 한 감옥 안에 발을 디뎠고,
“……!”
이내 로한의 눈이 살짝 커졌다.
눈앞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완전히 결박되어 있는 세 명의 데르툴족.
바로 그의 동료였뎐 차자, 사후바, 그리고 하즈쿠슨이었다.
“이번 8번의 폭파 공작 중 실패한 곳은 단 세 곳. 2, 6, 14구역이지.”
르기에가 말한 구역은 눈앞의 셋이 파견되었던 장소다.
“이 셋은 해당 구역에 도착하자마자 동료 스파이를 기절시킨 후, 그대로 리사크 세력에 귀환하려 했어. 자신이 리사크 쪽 스파이라는 걸 밝히면서 말이지. 만약 내가 정체를 의심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파견 나가 있던 우리 쪽 상위 귀족 스파이들한테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다면 이 셋을 그냥 멀쩡히 돌려보낼 뻔했어.”
‘역시….’
말을 들어보니 로한의 예상이 정확했다. 역시 르기에는 그들에 대한 의심의 끈을 아직까지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파놓은 함정에 이 셋은 제대로 빠져버린 셈이 되었고 말이다.
“비록 폭파 공작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리사크 쪽의 핵심 스파이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설명하던 르기에는 곧 로한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지. 난 자네를 가장 의심하고 있었어.”
“…….”
“하지만 그건 내 오판이었더군. 오히려 자네가 투입된 22구역이 가장 결과가 좋더군. 얘기를 듣기로는, 경비병들을 50명이나 물리치면서 더 좋은 장소에 폭탄을 매설했다면서?”
“네.”
“아주 훌륭해. 그 공을 높이 산다. 돌아가면 주인님께 말씀드려서 큰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 전에.”
르기에가 손을 들어올렸다.
“한 가지 더 해결할 일이 있다. 이놈들에 대한 처우지.”
그는 포박된 셋을 내려다보면서 로한에게 물었다.
“이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로한은 고민 없이 대답했다.
“정신 세뇌를 통해 최대한 정보를 빼낼 수 있을 만큼 빼내야 합니다. 그다음에 소멸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석에 가까운 대답.
르기에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하지만 굳이 세 명을 다 할 필요는 없지. 한 명만 살려둬도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똑같을 테니까. 안 그런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로 대답한 로한은 셋을 내려다보았다. 셋은 이미 체념한 표정이었다. 이미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자네에게 이들을 직접 소멸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겠네.”
르기에는 다시 로한을 바라보았다.
“이들의 정체를 알고 난 후 가장 분노할 데르툴은 자네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 세 명밖에 없는 내 부하들이 모두 배신자라면 그 기분이 어떨지 상상조차 가지 않아. 그래서 자네에게 처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군.”
말을 마친 이후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르기에.
로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도 나를 의심하고 있군.’
그는 바로 눈치챘다. 이번이 르기에가 그에게 내리는 마지막 시험이라고.
첫 번째 시험, 그러니까 리사크 세력이라고 속였던 타 세력 스파이들을 죽일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진짜 리사크 쪽 세력인 셋을 직접 처치하는 셈이다. 만약 로한이 진짜 이들과 한 패라면, 셋 중 그 누구라도 죽이는 순간 소멸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상관없지.’
로한은 망설이지 않고 손톱을 뽑아 든 뒤, 마기를 가득 불어넣은 상태로 차자, 하즈쿠슨의 머리에 힘껏 꽂아 넣었다.
푸푹.
“으읍!”
“읍…!”
재갈로 막혀 있는 둘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부릅뜬 눈으로 일제히 로한을 바라보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퍼퍼퍽!
곧바로 둘의 머리가 모두 박살이 났기 때문이었다.
다시 손톱을 회수한 로한은 르기에에게 머리를 숙였다.
“복수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총사령관님.”
르기에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평상시와 똑같이 미소 띤 얼굴로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사후바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이놈은 지금 마왕성으로 데려간다.”
라고 말한 뒤 감옥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곧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사후바를 끌고 감옥을 나섰고, 그 뒤를 펫가와 로한이 뒤따랐다.
뒤를 따르면서 로한은 생각했다.
‘이러면 사후바가 세뇌당하기 전에 먼저 손을 써놔야겠군.’
사후바가 세뇌되어서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면, 자연스럽게 콘록으로 위장한 로한의 정체도 들통나게 된다. 그 전에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도 로한의 위기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수용소 건물을 나온 셋은 다시 군용차에 탔다. 출발하는 그 차의 뒤를, 사후바를 태운 포로 수용 차량이 뒤따랐다.
우선 펫가는 르기에를 워프존이 있는 마탑 앞에 내려주었다. 내린 르기에가 로한에게 지시했다.
“장비를 회수한 뒤 곧바로 마왕성으로 돌아오도록. 한 시간 뒤 주인님께 이번 사건을 보고해야 하니까.”
“넷.”
르기에와 사후바 등이 워프진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펫가는 로한과 함께 다시 사령부로 향했다. 그곳에 장비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군용차에서 내린 로한은 바로 건물로 들어가지 않았다.
“잠깐 한 대 피우고 와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펫가는 흔쾌히 수락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로한은,
‘자, 이제 사후바에 대한 처리를 생각해봐야 하는데….’
라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