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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는 사이보그-176화 (176/200)

제176화

잠시 후.

르기에의 집무실을 떠난 일행들은 국경선 쪽으로 출발할 준비를 서둘렀다. 워프진으로 이동한다 하더라도 한 시간 안에 도착하려면 장비를 챙기는 것만 해도 빠듯하다.

그 와중에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사후바는 지금 일행들에게 자신의 업무까지 떠맡긴 채로 마왕성의 한 구석진 건물 안에 숨어 있었다.

그곳은 고대 유물 창고였다. 전시회 직원들이 가끔 들르는 경우가 아니면 데르툴족의 인기척이 아예 없다시피 한 그곳에서 사후바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여기는 콘록. 콘록이다. 한 시간 뒤, ‘콘록 전원’이 국경선 쪽으로 직접 폭탄 공작을 하러 출발한다. 매설할 장소는 1구역, 5구역, 13구역, 21구역이다. ‘하데스’는 즉시 대비하길 바란다. ‘하데스’의 답변은 국경선 쪽 비밀 장소에서 들을 예정이다. 그리고, 현재 국경선 쪽에 또 다른 텐자흔 세력의 스파이가 잠입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스파이는 지속적으로 정보를 르기에에게 보고하고 있으며….”

통신 마법석을 통해 사후바가 말한 내용은 고스란히 마왕성 바로 근처 지하에 있던 리사크 세력의 비밀 첩보부를 통해 전달되었다.

기존 리사크 세력의 스파이들로 구성된 이들은 전달받은 소식을 바로 암호명 ‘하데스’, 즉 리사크 마왕성의 정보부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모든 내용을 수신받은 정보부 본부장은 해당 내용을 곧바로 리사크 세력의 2인자인 타바츠에게 가져갔다.

“…‘콘록’ 쪽 네 명이 직접 폭탄 설치를 한다라….”

타바츠는 고민에 잠겼다.

“가장 좋은 방법은 폭탄 설치를 원천 차단하는 거겠지. 하지만 그러면 스파이들을 다시 본국으로 귀환시킬 수밖에 없다.”

최고의 방법은 폭탄을 매설하러 리사크 국경선 쪽으로 잠입한 넷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넷의 목숨도 부지할 수 있고, 국경선 쪽 피해도 사라지게 된다.

폭탄이 터지지도 않았는데 넷을 다시 텐자흔 세력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면 스파이들이 가져다준 정보의 허위성이 드러날 것이고, 그 순간 넷의 정체가 의심받게 된다.

게다가 현재 국경선 쪽에 다른 텐자흔 측 스파이가 잠입한 걸로 드러난 상태이니 더더욱 위험하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콘록’들은 아직 더 잠입해 있을 필요가 있어.”

타바츠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이대로 스파이를 돌려보내기에는, 현재 로한이 얻은 정보부 본부장이라는 위치가 너무나도 아깝다. 지금껏 어떤 스파이도 해내지 못한 고위 간부직을 고작 단 하루 만에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암호명 ‘콘록’, 즉 로한 등 스파이들은 아직 더 남아서 계속해서 핵심 정보들을 수집해야만 한다. 냉혹하지만 그것이 스파이들의 임무이자, 운명이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폭파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수밖에.”

결정한 타바츠는 정보를 가져온 본부장을 향해 물었다.

“폭파 예정인 1, 5, 13, 21구역이 내 기억으로는 중요 군수 물자가 없는 곳인 걸로 아는데, 맞나?”

“네. 텐자흔 쪽이 받은 허위 정보에는 핵심 물자 창고들이 있는 지역으로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결정을 내린 듯싶습니다.”

“그럼 여기를 그냥 폭파하게 내버려 둬. 해당 구역 병사들을 모두 물려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래야 ‘콘록’들이 다시 돌아가도 의심을 안 받을 테니까.”

“넷.”

“바르긴 사령관한테 이 내용 그대로 전달하고, 한 시간 뒤 국경선에 도착할 ‘콘록’에게도 정보 제공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본부장은 다급히 다시 정보부로 뛰어갔다.

한 시간 뒤.

로한 등 일행은 워프진을 타고 리사크 세력과 맞대고 있는 국경선 쪽 마탑으로 돌아왔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탑승한 그들은 바로 펫가 사령관이 있는 사령부 건물로 이동했다.

“어서 오게.”

펫가가 벌떡 일어나서 그들을 맞이했다.

웃는 낯으로 반기는 모습은 어제 아무 감정 없는 것처럼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하긴, 일개 병사였다가 하루 만에 별을 달고 다시 돌아온 로한 등을 어떻게 똑같이 대할 수 있겠는가.

말투도 이전보다 확실히 부드러워졌다.

“오기 전 르기에에게 이미 작전에 대한 설명은 들었네. 폭파 공작에 필요한 장비들을 옆방에 준비해 두었으니, 그걸 가져가서 사용하면 되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닐세. 그럼 다시 명령이 오기 전까지 방 안에서 준비하고 있게.”

옆방으로 안내하려는 펫가를 향해 로한이 물었다.

“잠깐 담배 좀 피우고 와도 되겠습니까?”

“아, 그러게.”

펫가는 흔쾌히 승낙했고, 곧 일행 중 로한과 사후바만 사령부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나온 뒤 구석으로 향한 사후바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야.”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두 하급 병사를 불렀다.

곧바로 차렷 자세를 하는 둘을 향해 사후바가 말했다.

“두 개비만 줘봐.”

“넷.”

대답하는 병사들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불만족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사후바는 그걸 보지 못한 듯했다.

곧 담뱃갑에서 두 대를 뽑아 건네주는 왼쪽의 병사.

하지만 사후바는 뭐 하냐는 표정으로 되레 그를 쳐다본다.

“불은?”

“…….”

굳은 표정으로 품속에서 성냥갑을 꺼내 건네는 병사. 사후바는 그 성냥갑을 통째로 집어 든 뒤 몸을 돌려 걸어갔다.

병사들은 그의 뒷모습을 흘겨보면서 이내 몸을 돌려 골목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진짜 재수 없네….”

“상관이면 부하 거 다 뺏고 다녀도 되는 줄 아나?”

작게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사후바와 로한의 귀에까지 들려왔지만 둘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들의 신경은 온통 성냥갑에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있다.”

성냥갑을 연 사후바의 한마디였다.

성냥갑 안에는 성냥이 아닌,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사후바는 바로 쪽지를 펴서 읽어보았다.

1, 5, 13, 21구역 쪽 병력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겠다.

기존 지시대로 해당 구역에 폭파 공작을 진행하라.

성공한 뒤, 다시 텐자흔 세력으로 돌아가 계속 스파이 임무를 수행하라.

적혀 있는 내용은 리사크의 정보부에서 작성한 것이었다.

아까 전 담배를 빼앗겼던 두 병사는 사실 리사크 쪽에서 이전에 미리 심어놓았던 또 다른 스파이였던 것이다. 방금 전 상황은 이 쪽지를 전달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연기였을 뿐이다.

“…예상대로군.”

쪽지를 본 로한의 말이었다.

그들 역시 여기로 오기 전에 예상을 한번 해봤는데, 정보부까지 승진한 그들을 아까워서라도 다시 귀환시키지 않을까? 라는 의견으로 좁혀졌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이러면 부담 없이 작업이 가능하겠어.”

사후바가 안도한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폭파 공작이든 뭐든 간에 어떤 방식으로도 리사크 쪽 병사를 죽이면 바로 ‘카인의 맹세’가 발동된다. 하지만 미리 병사를 빼놨다면 이제 소멸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돌아가자.”

다시 사령부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사후바는 받은 두 개의 담배를 반으로 접어서 바닥에 던져버렸다. 사실, 원래 사후바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사이보그인 로한 역시 당연하고.

사령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아, 왔군.”

펫가가 그들을 바로 손짓으로 불러들였다. 방 안으로 들어가 있을 줄 알았던 차자, 하즈쿠슨 역시 펫가의 사무용 책상 앞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로한, 사후바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자,

“르기에일세. 받게.”

그가 통신 마정석을 로한에게 내밀었다.

로한은 바로 마정석을 입가에 가져갔다.

“정보 본부장, 콘록입니다.”

- 작전이 변경되었다.

마정석에서 들려온 르기에의 목소리는 여기 있는 모두의 귀에 들어갔다.

- 기존에 폭파 공작을 펼치려 했던 1, 5, 13, 21구역에는 다른 작업병을 투입하기로 했다. 너희는 2, 6, 14, 22구역의 폭파 공작을 진행하라.

“……!!”

로한 등 넷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갑자기 폭파 구역을 바꾸라고?

‘심지어 지금 말한 곳은 리사크 세력 쪽의 핵심 구역들인데?’

여기는 핵심 군용 물자 창고는 물론, 주둔하는 병사 숫자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여기를 터트리면 무조건 병사 한 명 이상은 소멸될 것이고, 그러면 바로 ‘카인의 맹세’가 발동한다.

심지어 이제 리사크 쪽과 더 연락할 방도도, 시간도 없는 상태. 즉, 그들이 절대로 투입돼서는 안 되는 구역이다.

그래서 로한은 답변 대신 감히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작업 구역이 바뀐 이유가 있습니까? 이곳은 분명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중요 병력이나 물자 창고가 없는 곳으로….”

- 방금 전 해당 국경선 쪽 스파이가 정보를 보내왔다. 1, 5, 13, 21구역 병사들이 일제히 2, 6, 14, 22구역으로 이동했다고 하더군.

“!”

- 아무래도 정보가 새어 나간 것 같다. 그래서 급하게 작전을 변경한 것이니, 더 이상 의문을 가지지 말고 지시에 따르도록. 명령이다.

“…넷.”

- 15분 뒤 일제히 작전에 돌입하겠다. 지금 바로 준비해라.

그것을 끝으로 통신은 끊겼다.

로한 등 넷은 굳은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망할!’

‘어떡해야 하지?’

‘최악의 상황인데….’

하나같이 얼굴에 비슷한 감정이 담겨 있는 모습.

이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잠시 후.

5구역의 구석진 창고 건물 안에 순간 아주 미세한 차원의 틈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틈에서 기어 나오듯 빠져나온 데르툴족은 둘.

한 명은 사후바였고, 한 명은 추가로 투입된 작업병이었다.

“위스키.”

도착과 동시에 바로 앞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톱을 뽑아 든 채 마기를 끌어 올리고 있는 리사크 세력 병사의 모습.

당장이라도 공격해 올 듯한 모습을 본 사후바가 바로 대답했다.

“블루.”

리사크 세력 쪽 암구호를 대답하는 그를 향해 병사가 또 한 번의 암구호를 불렀다.

“심장.”

“블랙.”

두 번째 암구호는 바로 텐자흔 쪽 암구호였다.

이 정찰병은 다름 아닌 텐자흔 세력의 또 다른 스파이였다. 이미 사전에 이들을 도와주라고 르기에에게 지시를 받은 상태다.

두 번의 암구호를 모두 대답하자 그제야 병사가 마기를 풀었다.

“누가 사후바 소령님이십니까?”

“나다.”

“따라오십시오.”

병사는 사후바를 창고 뒷문으로 데려갔다. 홀로 남은 작업병은 그 자리에서 폭파 작업을 위해 준비를 시작한 모습이었다.

이동하는 도중 병사는 휴대용 통신 마정석을 들고 보고를 했다.

“‘연어’가 목표 지점에 차원 이동을 했다. 이상.”

병사는 텐자흔 쪽 스파이이자, 현재는 리사크 세력의 정찰병이다. 당연히 이쪽 구역에 사후바 등의 폭파 작업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상부에게 하달받은 상태다.

그 폭파 작업의 작전명이 ‘연어’다. 이제 이렇게 보고를 했으니 주변의 정찰병들은 곧 이곳에서 일어날 폭발에 대비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는 동안 정찰병과 사후바는 텐자흔 세력의 스파이로서 임무를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30분 전 갑자기 이 구역 병사들이 뒤로 물러났습니다. 아무래도 리사크 쪽에서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것 같으니, 소령님께서도 조심하십시오.”

뒤따르는 사후바를 향해 조용히 말하는 정찰병.

사후바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군.’

그들의 이번 임무는 핵심 데르툴족 몇 명만 알고 있는 극비 중의 극비이다.

당연히 눈앞의 중급 귀족 스파이는 병사들이 뒤로 물러난 것이 사후바 등의 보고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걸 알았다면 지금처럼 쉽게 도와주지도 않았을 테고 말이다.

‘이제 로그한이 말한 대로 행동하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러는 그의 머릿속에는, 10분 전 로그한이 전음 마법으로 전달해 주었던 작전 내용이 다시금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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