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는 사이보그-163화 (163/200)

제163화

“시청자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김 퀴즈 온 더 블럭의 MC, 김재석입니다.”

다시 한번 카메라 앞에 선 김재석이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올렸다.

“오늘 저를 도와줄 MC분을 소개해드릴 텐데, 오늘은 유감스럽게도 주세호 씨가 아닙니다. 이유는, 여기가 지구가 아니기 때문이죠.”

여전히 김재석을 비롯한 촬영 팀은 아로엘에 머무는 중이었다. 그들도 정부의 특별 허락을 받고 이곳에 온 마당에, 주세호를 어떻게 데려오겠는가.

“그래서 오늘 주세호 씨를 대신해서 저를 도와줄 두 분을 모시겠습니다. 바로 왕호동, 그리고 진동엽 씨입니다!”

김재석과 촬영 팀의 박수 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 둘이 카메라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악수를 나눈 뒤 셋은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정말 반갑습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 만인가요?”

“한… 30분 됐죠?”

“벌써 점심 먹은 지 30분이나 지났네요?”

“아, 그거밖에 안 됐어요? 하하하.”

김재석은 민망하게 웃었다.

“사실, 이 엘도르 대륙에 넘어온 이후부터 저희 셋이서 계속 뭉쳐 다니고 있거든요. 너무 낯선 곳이라 아는 사람도 없고, 그리고 다들 좀 겁이 많아서. 하하하.”

“우리 셋뿐이야? 촬영 팀까지 전부 같이 뭉쳐 다니잖아. 보니까 화장실도 최소 네 명 이상 짝지어서 가던데?”

“그러니까 말이야. 밥이야 같이 먹는 건 이해하겠어. 이 대륙 언어가 안 통하니까. 화장실은 왜 굳이 같이 가요? 화장실도 혼자 가기 겁나는 거야, 이 사람들?”

“어, 근데… 그러는 진동엽 씨도 아까 저보고 화장실 같이 가달라고 했잖아요.”

“…무섭잖아. 갑자기 안에서 포탈 열리고 몬스터 튀어나오면 어떡해….”

“아니, 뭔 몬스터가 화장실에서 튀어나와요? 무엇보다, 나랑 가면 뭐 달라지기나 해?”

“그래도 너는 천하장사 출신이잖아요! 혹시 알아? 엎어 치기로 몬스터 기절시킬 수 있을지?”

그렇게 서로 티격태격하며 방송을 진행하는 세 베테랑 MC들.

하지만 실제로 방송 스케줄을 제외하면 촬영 팀 모두가 뭉쳐서 몰려다니는 건 사실이었다. 정부의 추천으로 온 마당에 사고 치는 게 겁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엘도르의 언어를 포함한 문화가 지구와 완전히 다르다는 게 가장 컸다.

“자, 이쯤하고 오늘의 게스트를 한번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게스트는, 다행히 여러분들 모두에게 굉장히 친숙한 분입니다.”

“오~ 혹시 지구인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김재석은 바로 옆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전(前) 대한민국 사이보그 제1부대장 로한의 유일무이한 휴머노이드! 아린 님이십니다!”

“와아아!”

촬영 팀 전원의 환호 소리와 함께 옆에서 아린이 카메라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MC들은 호들갑을 떨어댔다.

“우와! 아린 님이다! 정말 팬입니다!”

“지구에서도 못 뵌 분을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된다니…!”

“와, 그새 더 아름다워지셨어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치고 중앙 자리에 앉은 아린은 자신의 소개를 했다.

“지구에 계신 여러분들께는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아요. 로한 대장의 휴머노이드이자, 현 테르디아 내 영지인 아로엘의 성주 및 마탑주인 아린입니다. 반갑습니다.”

“와아아!”

또 한번 환호하는 촬영 팀.

이후 김재석의 진행을 통해 본격적인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아로엘의 성주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역할인가요?”

“음… 한국으로 따지면 총리? 영주님이 외부 일로 자리를 비울 때 대신 영지를 관리하죠.”

“아~ 쉽게 말하자면 아로엘의 2인자라는 말씀이시네요?”

“하하하… 비슷하긴 해요.”

“그런데, 성주 그 이상으로 이번 연합군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맡으셨더라고요. 여기 적힌 것만 봐도 대단해요.”

김재석이 대본을 바라보며 술술 읽기 시작했다.

“버몬드를 이용해 테르디아를 장악하려고 했던 마족, 말파스를 1대1로 격파했고, 아르베니아 성국이 마족, 힌스테딘으로 인해 위기에 빠졌을 때 정예 원군 멤버로 참여해서 큰 활약을 펼쳤으며, ‘해돋이’ 작전과 신마대전에서 각각 최상위 귀족 카르스트와 르기에를 막아내었고, 막바지에 마왕 드레하츠를 처치할 때도 1등 공신이었다. 와…!”

“캬~ 끝이 없네.”

“나중에 이력서 쓰면 칸이 모자라겠어요.”

크게 감탄사를 터뜨리는 왕호동과 진동엽. 아린은 그저 살짝 민망한 얼굴로 대답 없이 조용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김재석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이런 활약상들로 인해 연합군 내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번 지구-엘도르 두 차원 간의 협정 회의에도 참여해서 양쪽 차원의 대화 연결의 구심점이 되었다고 해요. 와, 회의에도 참여하셨어요?”

“네.”

“와… 이거, 지구에 있을 때보다 위상이 더 대단해지셨는데요?”

“이 정도면 우리가 같이 겸상하면 안 되는 수준 아냐?”

“하하하….”

김재석이 아린에게 질문했다.

“회의는 어떻게 되었나요? 협의가 잘 이루어졌나요? 아, 혹시 1급 비밀이라 말하면 안 되는 건가요?”

“아, 괜찮아요. 일단 두 차원이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은 확정되었어요.”

“오오오!”

촬영 팀 전원이 크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들도 지금 처음 듣는 소식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에 지구의 핵심 인사들이 넘어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두 차원 간의 협력 논의 때문이었는데, 그게 성공했다는 말을 지금 아린이 한 것이다.

아린은 이어서 말했다.

“이번에 마족들의 침범으로 인해 엘도르 대륙의 절반 이상이 큰 피해를 보았거든요. 건물도 많이 무너졌고, 마족들의 시체로 오염된 곳도 너무 많고요. 연합군만으로는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을 정도예요. 그래서 이번에 지구에서 건설 팀과 구조 팀을 보내서, 피해를 본 지역의 재건을 도와주기로 협의를 했어요.”

“와… 정말 잘됐네요.”

계약서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구의 특정 국가 및 기업이 엘도르 영지의 재건을 도와주면, 그 영지 쪽은 해당 국가 및 기업이 향후 몇 년간 개발 독점권을 가진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역시, 뭐든지 공짜는 없다.

심지어 멸망한 오스크만 제국에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미국 등 강대국들은 몇 년 동안 일부 영지의 영유권도 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건 엘도르 쪽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아서 2차 회의 때 다시 얘기하자고 보류를 했다.

물론, 이런 자세한 내용은 비밀 유지 조항에 들어가기 때문에 아린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차원 간의 회의에도 참석하실 정도로 유명한 아린 님인데, 미모로도 인기가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오~ 근데 지구에서도 아린 님은 인기 많았었잖아?”

“그러게. 휴머노이드들 대상으로 투표하면 맨날 인기투표 1위 했던 걸로 아는데.”

“말씀 잘하셨어요, 진동엽 씨. 안 그래도 엘도르 대륙의 인기 조사도 몇 개 가져와 봤거든요? 그걸 말씀드릴게요.”

김재석은 다시 대본을 보며 빠르게 줄줄 읽어갔다.

“테르디아의 모든 평민이 뽑은 미인 순위 1위. 테르디아의 귀족들이 뽑은 파티에서 가장 파트너가 되고 싶은 여성 1위. 아르베니아에서 또 한 명의 성녀로 삼고 싶은 여성 1위. 이종족들이 뽑은 가장 결혼하고 싶은 인간 여성 1위. 드래곤족이 뽑은 엘도르 대륙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인간 여성 1위…. 이건 뭐예요? 마족 포로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뽑은 인간 여성 1위?”

“엥?”

“와… 너무 예쁘니까 싸우는 도중에 반해버린 거야?”

MC들과 아린 본인마저 마지막 인기 조사를 듣고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포로들을 상대로 데르툴 행성에 대해 조사하기도 벅찰 텐데 무슨 외모 순위 조사를 하고 있겠는가.

그때, 왕호동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김재석 씨. 제가 어제 아린 님에 대해 들은 소문이 있거든요?”

“뭔데요?”

“아린 님이 밀리오? 라는 사람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던데요? 흐흐흐.”

“아….”

아린이 알고 있다는 듯이 반응하자, 나머지 MC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그 반응은 뭐예요?”

“설마 진짜…예요?”

“아, 진짜는 아니고요. 최근에 저도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얼마 전에 마왕을 처치하고 돌아오는 길에 제가 다친 밀리오 님을 부축했거든요.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소문을 이상하게 내서….”

“아~”

지금 아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지만, 당시 그 광경을 지켜봤던 아로엘 성내의 평민들은 난리가 났었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가장 큰 화제이자 안줏거리였으며, 심지어 전쟁 직후 연합군 전체가 잔치를 여는 통에 소문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대륙 전체로 퍼졌다.

심지어 소문이 퍼지면서 사실이 완벽하게 왜곡되었는데, ‘아린이 직접 밀리오를 부축했다’가 ‘아린이 온몸으로 밀리오를 껴안았다’로 바뀌더니, 나중에는 ‘아린과 밀리오가 서로 껴안고 애정행각을 벌였다’로까지 변해버렸다.

설로는, 당시 아린과 밀리오를 사모하던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혼자 조용히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그러니까 진짜는 아니라는 거죠?”

김재석의 물음에 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지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루머 수준이에요. 단지, 여기는 인터넷 같은 게 없으니까 소문이 한번 퍼지면 바로잡기가 힘들더라고요.”

“아~”

“무엇보다, 밀리오 님은 평생 결혼이 불가능한 대신관이세요. 심지어 대신관들의 리더라고 볼 수 있는 폰티펙스 자리에 앉아 계신 분인 걸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루머인거죠.”

“아~ 그, 지구로 따지면 천주교의 신부 같은 느낌이군요?”

“에이, 그러면 루머 맞지.”

그제야 MC들도 의심을 완전히 거두는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종교에 몸을 담은 이와 열애설을 계속 몰아가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베테랑인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매우 특별한 게스트인 아린을 더는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인터뷰를 진행한 후 촬영은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손한 인사를 나눈 후 인터뷰 장소인 내성 밖으로 나서는 촬영 팀. 듣기로는 이어서 일반 평민들과 함께하는 스케줄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홀로 남은 아린은 행정실로 향했다. 이제 영지 관련 일을 하러 갈 때였다.

행정실에 딱 발을 디딘 순간.

“아, 오빠.”

미리 기다리고 있던 로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촬영 잘 끝냈어?”

“네. 다들 유명한 MC들이라 편하게 찍고 왔어요.”

“그래. 그, 마족 포로들 누가 관리한다고 했었지?”

로한의 물음에 아린은 체내에 저장된 데이터를 빠르게 돌려보았다. 저장된 해당 내용을 찾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윌리엄 공작님이 알고 계세요.”

“어디에 가뒀는지는 모르지?”

“네.”

“그럼 직접 물어봐야겠네.”

“아, 그럴 거면 이안한테 물어봐요. 윌리엄 가문 전체가 마족 포로 수용을 담당하고 있거든요.”

“오케이. 땡큐.”

“근데 마족 포로는 왜요?”

행정실을 나서려던 로한이 대답했다.

“잠깐 데르툴 행성에 좀 다녀오려고.”

“…네?”

아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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